소설리스트

30화 (30/85)

희윤은 검사 결과가 바로 나오려나 생각했는데 그렇진 않았다. 워낙 다양한 방면으로 진행했던 터라 최소 3일은 걸린다고 했다.

그사이 나머지 가이드들과 바삐 매칭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제 남은 건 두 팀으로 인원은 열다섯 명 남짓이었다.

“조금만 더 고생해요, 연희윤 에스퍼.”

희윤은 네가 얼마나 힘든지 안다는 듯 응원하는 지부장을 가만 바라보았다. 그러는 그녀야말로 어딘지 더 초췌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아직도 본부에 간간이 보이는 기자들과 여러 일 때문에 시달린 게 아닐까 짐작했다.

“지부장님도요.”

“고마워요. 알아줘서.”

지부장인 냉큼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본 연구원이 안경을 추어올리며 어이없어하는 눈빛을 감추었다.

‘고생은 내가 제일 많이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중에서 제일 바쁘고 정신이 없었던 건 다름 아닌 연구원이 아니던가. 희윤이야 가이드와 검사만 하면 되고, 지부장은 결과를 기다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연구원은 매칭 결과를 취합하고 정리해서 보고해야 했다. 그뿐인가 각 팀의 가이드에게 연락해서 몇 시까지 오라는 안내를 하며 일정도 조율했다.

“아, 연구원님이 가장 애쓰셨죠.”

마치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듯 희윤이 연구원에게 고개를 꾸벅했다.

“네, 뭐. 바쁘긴 했죠. 근데 결과가 영 신통치 않으니 좀 그렇네요. 부디 남은 일정 안에 괜찮은 결과가 나오면 좋을 텐데.”

그 말에 희윤은 겸연쩍은 얼굴을 했고, 지부장도 얼굴을 찡그렸다. 정말 이러다가 해승과 정소한 둘 외에는 70%가 넘는 가이드가 나타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도 슬그머니 밀려왔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그들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허…….”

마지막 가이드의 매칭률이 40% 넘겼을 때 연구원과 지부장은 부디 원하는 수치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숫자는 거기서 더 올라가지 않았다. 도리어 최종적으로 38%로 끝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좌절했고, 지켜보던 해승은 피식 실소했다.

“거봐요. 내가 그랬잖아요. 결국 형은 나밖에 없을 거라고.”

검사실을 나서는 희윤의 어깨를 붙들어 당기며 해승이 말했다. 목소리엔 즐거움이 담겨 있었고, 눈동자도 반짝반짝했다.

“야, 표해승. 이게 지금 좋아할 일인 줄 알아? A급 에스퍼한테 가이드가 둘이라니…….”

지부장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해승은 태연했다. 아직도 온 얼굴에는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나만 있으면 됐지. 나머지가 필요해요? 왜, 내가 못 할 것 같아요?”

어, 믿음이 안 간다. 도저히 안 가. 다른 사람도 아니라 너라서.

제 마음도 모르는 놈이 무슨!

지부장은 그런 말이 혀끝까지 밀려왔지만, 차마 뱉지 못했다.

굳이 듣지 않아도 해승이 어떤 대답을 해 올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그럼 믿음이 가도록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고 하겠지.

그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었다. 그만한 능력에 그를 뒷받침할 재력을 갖추고 있으니까.

“흠……. 희윤 형.”

“응?”

“형도 불안해요? 내가 혼자 형을 감당 못 할 것 같아서?”

“아니.”

희윤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너 혼자 아니잖아. 정소한 가이드도 있고, 박진우 가이드도 예비이긴 하지만 가능하다고도 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해승의 눈이 번뜩였다. 지부장은 그 눈빛을 보고 쯧쯧 혀를 찼고, 연구원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정작 해승에게 안겨 있는 희윤만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긴 하네요. 원칙상 담당 가이드는 세 명이니까.”

원칙이라는 말을 유독 강조한 느낌인데. 희윤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해승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해승이 희윤의 어깨에 턱을 괴는 게 먼저였다.

덕분에 귓가에 해승의 입술이 닿을락 말락 가까워졌다.

“그래도 형. 가장 먼저 찾을 건 나죠?”

간지러운 바람이 귀를 간지럽혔다. 희윤은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자 해승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대체 왜 이렇게 묻는 걸까. 희윤이 난감하게 눈을 찌푸렸다가 답이 늦어지면 또 같은 일이 생길까 염려되어 얼른 말했다.

“그래. 알았어.”

두 사람의 그 모습을 지부장은 또 어이없이 보았고, 연구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봐도 저건 수작이었다.

해승이 희윤을 꾀어내기 위한.

정작 당사자들은 왜 그러는지도 모르는, 타인이 보기에는 충분히 의도가 내비치는.

“그럼 연희윤 에스퍼 말대로. 표해승이랑 정소한, 박진우 가이드. 이렇게 셋이 희윤 씨 가이딩을 맡게 될 겁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식 발표할 거예요.”

“아, 네.”

지부장이 꺼낸 말에 희윤이 그를 돌아보았다.

“아마 기자 회견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좀 시끄러울 순 있는데 곧 잠잠해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위로를 전하듯 말하던 지부장의 미간이 도로 구겨졌다. 희윤을 끌어안은 채 해승과 눈이 마주친 직후였다.

“참 아직 연희윤 에스퍼, 숙소 자리도 남아 있으니까 지금 지내는 곳이 불편하면…….”

“지부장님.”

지부장이 더 말을 이으려다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연구원이 내선 전화기를 내밀고 있었다.

“연구소장님이신데 지금 바로 뵈었으면 한답니다. 연희윤 에스퍼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하네요.”

희윤은 제 검사 결과가 나왔다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했다. 그 모습이 바로 옆에 있던 해승의 눈에 바로 들어왔다.

솜털까지 보송보송한 둥근 귀를 보니 이상하게 잘근잘근 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고픈가?’

시간을 보니 출출할 때가 되기는 했다. 이제 매칭 테스트도 다 끝났으니 그대로 퇴근하면 좋겠는데.

희윤의 둥근 눈이 어느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눈빛만으로도 해승은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어렵지 않게 읽어 냈다.

“형도 지금 확인하고 싶어요?”

희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지부장님. 괜찮죠?”

해승도 순순히 희윤에게 몸을 물리며 지부장을 돌아봤다.

“음, 뭐. 그래. 같이 가죠. 어차피 공식 발표하려면 연희윤 에스퍼도 확인해야 하니까.”

지부장이 수락하여 셋은 그길로 6층에 있는 연구소장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결과는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다. 희윤은 여전히 A급이었고, 그 외에 여러 지표 역시 별로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본래 이능력은 개인의 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능성이 달라집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지요.”

연구소장이 희윤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흰 눈썹, 흰 머리의 웃는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연구자보다는 동네 할아버지 같은 푸근함이 전해졌다.

“그러니 기대가 큽니다.”

말 뒤에는 꼭 ‘허허.’ 하고 너털웃음이 달라붙은 것 같은 착각도 일으켰다. 지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 10시에 본부에서 연희윤 에스퍼를 영입한 걸 공식적으로 발표하겠습니다.”

희윤은 그 소리에 긴장한 눈으로 지부장을 보았다.

“연희윤 에스퍼는 그냥 얼굴만 비치고 인사 한번하고 내려가면 돼요.”

“형, 내가 같이 있을 테니까 걱정 마.”

대답은 희윤이 아니라 옆에 다리를 꼬고 앉은 해승이 했다. 희윤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손길은 다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뭐? 그건 무슨 소리야?”

지부장이 대번에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차피 형 가이드가 누구인지도 알릴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가 같이 있겠다고요.”

아주 대놓고 희윤의 가이드가 저라고 얼굴도장을 찍겠다는 소리였다. 지부장이 미심쩍은 눈으로 물었다.

“그럼 정소한 가이드한테도 말한다?”

“뭘요?”

“발표할 때 담당 가이드도 알리겠다면서. 어차피 연희윤 에스퍼에 관한 관심도 높으니 같이 보이면 좋잖아?”

“지부장님.”

“왜? 별로야?”

지부장이 네 생각 따위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어쩜 그렇게 생각이 짧아요?”

“뭐?”

“나야 얼굴 팔릴 만큼 팔렸으니 괜찮죠. 근데 다른 두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렇게 막무가내로 다 알려 버리면 그 후폭풍은 어떡하시려고요?”

지부장은 말문이 막힌 표정이 되었다. 해승이 내놓은 얘기는 누가 들어도 너무도 타당한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근데 참 기분이 나빴다.

“설마 그런 것도 생각 안 하시고 막 말하신 거 아니죠?”

“막말이라니?”

“음? 막, 말한 거 아니냐고요.”

분명 같은 단어를 서로 꺼냈는데 느낌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희윤은 해승이 일부러 지부장의 저런 반응을 노리고 꺼낸 말이라는 걸 알아챘다.

“너, 이, 이……!”

지부장이 당장 욕이라도 한바탕 꺼내고 싶은 눈으로 해승을 노려보았다. 가만 보면 두 사람은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 알 수가 없었다.

“연희윤 에스퍼.”

“아, 네.”

희윤은 저를 조용히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연구소장이 눈을 마주치자 빙긋이 웃어 보인다.

역시 동네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다.

“말씀하세요.”

희윤이 말하자, 연구소장이 흰 눈썹을 한번 매만지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정말 연희윤 에스퍼에게 거는 기대가 커요. 표해승 가이드와 매칭률이 좋은 것도 그렇고, 요즘 보이는 행보도 그렇고.”

“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온화하게 웃으며 연구소장이 말했다. 참 묘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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