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윤은 대회의실의 커다란 문을 앞에 두고 길게 심호흡했다.
“형, 걱정하지 말아요. 별거 아니니까.”
해승이 희윤의 손을 끌어다 잡았다. 여간 긴장한 게 아닌지 손끝이 차갑고 땀에 배어 있었다. 얼굴이 평소와 다름없어서 아마 얼핏 봐서는 모를 거다.
“응.”
희윤의 시선이 저를 꼭 잡은 손에 머물다가 떨어졌다. 온기가 닿으니 확실히 아까보다 긴장은 덜했다.
덜컹.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동시에 새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다시 한번 깊이 숨을 마신 희윤이 먼저 걸음을 뗐다. 그와 발맞추어 해승도 걸어갔다.
찰칵. 찰칵찰칵.
귀가 아프도록 셔터 소리가 쏟아졌다. 팡팡 터지는 플래시도 뒤를 이었다. 어느새 희윤의 앞에는 해승이 서 있었다.
덕분에 희윤은 플래시의 강렬한 빛에 더는 노출되지 않았다. 사진도 해승에게 가려져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심지어 해승이 의자까지 빼 희윤을 앉히는 모습을 본 기자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상황을 파악하느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뒤따라 들어오다가 그 광경을 본 지부장은 할 말이 많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에게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지부장이 애써 외면하고, 단상에 섰다.
-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기자 여러분. 지금부터 이능력자 관리 본부 서울지역 중앙지부에서 새로운 에스퍼에 관한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발표는 지부장이 어제 말했던 대로 진행되었다. 새로운 물 속성 에스퍼가 각성했으며 등급은 A라는 것.
해당 자료를 화면에 띄워 기자들에게 좀 더 정확한 전달이 되도록 도왔다. 희윤의 이름과 나이, 사진도 함께 나왔다.
하지만 거주지나 기타 자세한 개인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이미 인터넷에 다 까발려지기는 했어도 그것 역시 본부에서 삭제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 그럼 연희윤 에스퍼를 소개합니다.
이름이 불리자마자 희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희윤입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짤막한 자기소개 후 허리까지 숙여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너무 간결한 인사에 기자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다가 희윤의 인사 장면은 카메라에 담지도 못했다.
덕분에 뒤이어 해승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메라는 마치 불이라도 뿜듯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려 댔다.
해승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그쪽을 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연희윤 에스퍼의 S급 가이드 표해승입니다. 처음으로 담당 에스퍼가 생겨서 떨리고 긴장이 많이 되네요. 앞으로 제 에스퍼가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확실하게 서포트하겠습니다.”
지부장의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기자들도 다들 바쁘게 해승이 꺼낸 말을 기록했다. 아까 희윤을 찍지 못한 만큼 해승을 담아내려고 카메라도 바쁘게 움직였다.
‘저, 저, 저놈 저거!’
지부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처음 담당한 에스퍼라느니 제 에스퍼라느니. 모든 일을 확실히 서포트하겠다느니.
예비 가이드가 아무리 늘어도 앞으로도 희윤은 제 거라고 아주 대놓고 말하고 있었다.
역시 부득불 공식 발표를 같이하겠다고 우긴 이유가 있었다. 그런 지부장의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대회의장은 기자들의 열기로 뜨거워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식 발표는 질의응답 시간도 없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에스퍼를 소개하는 자리이니 그런 건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는 게 본부의 방침이었다.
다만 별도의 지부장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으로 얘기가 되었다.
- 그럼 이만 발표를 마칩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지부장이 행사 끝을 알리자 기자석이 들썩였다.
“형, 가요.”
해승은 그런 기자들은 신경 쓰지도 않고 희윤에게 다정한 투로 말하며 먼저 몸을 일으켰다. 아수라장처럼 변한 분위기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던 희윤이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희윤까지 일어서자 더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가요.”
해승이 희윤의 손목을 붙들고 문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더 얘기할 의사가 없다는 걸 안 기자들이 어떻게든 쫓아가려 했지만, 그보다 문 너머로 사라지는 게 더 빨랐다.
* *
며칠은 새로운 물 속성 에스퍼의 일로 떠들썩했다. 새 에스퍼의 정보가 없을 때, 그가 선보인 능력이 너무도 대단했던 터라 ‘S급이 아니냐.’ 그것도 아니면 ‘재야에서 활동하던 에스퍼가 모습을 드러낸 거 아닌지 혹은 외국에 있다가 돌아온 에스퍼일 거다’라는 추측성 얘기가 심심찮게 떠돌았다.
이미 현대에 이능력이 생겨난 건 30년이 넘었다. 이제 그들은 연예인, 스포츠 스타처럼 가깝고도 먼 존재이며 동경의 대상이 된 지 오래였다.
그랬기에 본부에서 새 에스퍼에 관해 공식 발표했을 때 꽤 오래도록 회자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대형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조금씩 관심이 시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될 거 같아.”
희윤은 예전과 다름없어진 본부 앞을 살피며 말했다. 막 핸들을 돌리며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하던 해승의 시선도 잠시 그리로 향했다가 떨어졌다.
“혹시 그간 저 때문에 불편하신 거 있었어요??”
어둑해진 해승의 목소리에 희윤이 당황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전혀.”
불편하다니. 오히려 너무 편해서 미안할 정도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같이 운동하고, 아침도 챙겨 먹고, 같이 출근 준비를 하고 나면 그 차를 타고 편안하게 본부로 온다.
본부 출근 후에도 사무실에서 앉아 있다 보면 메신저 앱을 통해 끊임없이 연락하다가 점심도 같이 먹는다.
그러다가 퇴근할 때도 해승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 저녁을 먹거나 아니면 외식을 하거나 그리고 편안한 침대에 누워 잠들기까지.
혼자 살 때는 전혀 누려 보지 못한 편안한 생활이었는데.
“그럼 왜요.”
“왜라니…….”
그래도 거긴 내 집이 아닌데. 지금까지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머물던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좀 더 있다가 가셔도 되잖아요. 혹시 그 집에 꼭 가지고 와야 하는 거라도 있어요?”
“그건 아냐. 그냥 오래 비워 두면 안 되니까. 청소도 해야 하고, 이제 날도 따듯해져서 마당에 잡초도 많이 나왔을 테니 정리도 해야 하고.”
희윤은 제가 뱉은 말이 너무 빈약한 변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해승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어쩔 수 없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해승이 냉큼 말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없는데 희한하게 그가 뭘 할지 알 것 같았다.
“그러지 마. 내가 가면 될 일인데.”
“그럼 같이 가요.”
아무래도 해승은 돌려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희윤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옆얼굴이 참 모난 데 없이 매끈하다.
그 얼굴로 생긋 미소 지어 보이니 어둑한 지하마저 환한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또 이상하게 심장이 물에라도 휩쓸린 듯 술렁거린다.
“오늘 퇴근하고 바로 갈까요?”
행동력 좋은 해승은 벌써 계획까지 말해 왔다.
“아니. 오늘은 너무 늦지. 주말쯤에…….”
희윤은 저도 모르게 대꾸했다가 눈을 찌푸렸다. 뭔가 말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좋아요.”
해승이 또 예쁘게 눈웃음을 지었다. 차는 곧 멈추었고 시동도 꺼졌다.
희윤은 붉어진 귀는 알지 못하고 모른 척 차에서 내렸다. 해승이 곧바로 뒤쫓아 와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며 말을 걸어올 때마다 대꾸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 전 힐끔 거울을 봤다가 깜짝 놀랐다. 귀 끝에 아직도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귀를 매만지며 거울 너머로 해승을 봤다. 다행히 해승은 그를 눈치 못 챈 듯했다.
“형, 점심때 연락할게요.”
문이 열리자 해승이 생긋 웃으며 인사했다. 가이드 사무실이 모여 있는 12층이었다. 희윤이 귀를 만진 적 없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응. 고생해. 이따가 봐.”
“네.”
해승의 눈매가 부드럽게 접혔다. 사르르 녹아내릴 듯 웃는 얼굴은 문이 닫힐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대로 몇 층 더 올라온 희윤은 안효정과 15층에서 만났다. 오늘부터는 수습이 아닌 정식 직원이 되었기에 물과 빙결 속성이 있는 팀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었다.
물 속성은 빙결 속성과 함께 세 팀으로 나뉘는데, 희윤이 배정된 곳은 3팀이었다.
“음, 연희윤 에스퍼. 어제 공식 발표 정말 수고 많았어요.”
희윤을 맞이한 3팀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겸손하시네. 서해만 갯벌에서도 진짜 대단했다면서요. 그것도 뒤늦게 전해 듣고 역시 남다르다 싶었어요. 그래서 사실 나도 오늘 아침까지 관련 영상을 몇 개나 찾아봤어요.”
계속된 칭찬에 희윤은 민망한 기분을 느꼈다. 안효정은 그런 희윤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 연희윤 에스퍼가 우리 팀에 처음으로 들어왔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첫 임무를 전달할게요.”
첫 임무라는 소리에 희윤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팀장이 더 말하길 기다렸다.
“요즘 산불 특별 관리 기간인 거 알죠?”
“네.”
대답하면서도 희윤은 벌써 그런 시기가 됐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당연했다.
“특히 지금처럼 건조한 시기에는 작은 불씨에도 산불이 일어나기에 십상이라 정부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그런 차에 소방서에서 지원 요청이 왔습니다. 연희윤 에스퍼가 안효정 에스퍼와 함께 파견을 다녀와 주세요.”
팀장이 말한 임무는 서울 외곽에 있는 소방서로의 파견이었다. 정확히는 그 소방서에서 산에 산불 예방을 위해 출동할 때 같이 참여하는 것.
그 외 자세한 사안은 현장에 가면 알 수 있다고 말하며 팀장은 곧장 출발하라고 했다. 희윤은 물 속성 에스퍼 둘과 처음 대면했다.
둘 다 2팀 소속이었고, C급 물 속성이며 김영호, 박희수라고 각각 자신들을 소개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본부에서 제공하는 승합차에 함께 올랐다.
희윤은 해승에게 임무가 생겨서 함께 점심을 못 먹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곧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응, 해승아.”
- 무슨 임무요?
“산불 예방을 위해서 상황을 살펴보러 가는 것 같아. 자세한 건 현장에 가면 들을 수 있다네.”
- 흠……. 퇴근 전에 올 수 있는 거예요?
“응. 본부 도착하면 연락할게.”
- 알았어요.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쉬엄쉬엄해요.
해승이 팀장이나 안효정이 들으면 얼굴을 구길 소리를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물론 현장에서 같이 일할 소방대원들도 마찬가지고.
희윤은 열심히 일하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말에는 핀잔이 가득했지만, 얼굴엔 웃음기가 가득했다.
“설마 표해승 가이드예요?”
희윤과 나란히 앉은 안효정이 물었다.
“네.”
“둘이 설마…….”
사귀는 건 아니죠? 안효정은 그렇게 물어보려고 입을 뻐끔 열었다가 닫았다. 긍정적인 답변을 듣는 건 사양이다. 지금 아니라고 해도 제 말이 씨가 되는 건 더더욱 원치 않았다.
“네?”
“아니. 아냐. 사이가…… 어째 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아서요.”
안효정이 떨떠름한 눈으로 말했다. 하지만 희윤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 네. 아무래도 계속 같이 지내다 보니까……. 뭣보다 해승이가 불편하지 않게 잘 챙겨 줘서요. 제가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순간 해승이 공식 발표에서 했던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첫 담당 에스퍼이자, 자신의 에스퍼라고 했던…….
왜인지 또 귀 끝이 좀 붉어진 듯해서 희윤은 슬그머니 손으로 귀를 만지듯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표해승 가이드 집에서 지내고 있어요?”
“네.”
“왜요?”
희윤은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그간 해승의 집에 머문 이유는 매스컴의 관심을 피해서였다.
이제 잠잠해졌으니 돌아가는 게 맞는데 해승이 붙잡는다는 핑계로 어영부영 함께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런 속사정까지 말하기가 좀 민망했다. 희윤은 괜히 눈을 굴리다가 저를 묘하게 보던 물 속성 에스퍼와 마주쳤다. 서둘러 시선을 피한 건 상대였다.
“아냐. 됐어요. 대답 안 해도. 표해승이 억지를 부렸겠지.”
안효정도 손을 내저으며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을 확실히 밝혔다. 다행인데, 뭔가 참 기분이 오묘했다.
그사이 차가 소방서 앞 옥외주차장에 멈추어 섰다. 이미 연락을 받았는지 몇몇 소방대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희윤과 안효정이 내리자 소방대원 중에서 견장에 꽃무늬 배지를 세 개를 단 중년 여성이 웃으며 인사했다.
“저는 강평 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소방령 이미영 과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능력자 관리 본부 서울지역 중앙지부에서 파견 온 빙결 속성 안효정 에스퍼입니다. 이쪽은 저와 함께 오늘 임무를 수행할 물 속성 연희윤 에스퍼, 그 옆은 김영호, 박희수 에스퍼고요.”
안효정이 대표로 이미영 과장과 인사를 나누며 본인과 희윤을 차례로 소개했다. 이어 다른 에스퍼 둘도 차례로 알려 주었다.
“반갑습니다. 저희가 좀 급하게 연락을 드려 걱정했는데, 이렇게 흔쾌히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은…….”
이미영 과장이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하더니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소방대원들을 차례차례 소개했다. 그 외에 오늘 함께 일할 대원들은 소방서 뒤편 마당에 있다며 직접 안내했다.
“오늘 에스퍼 분들과 함께 갈 곳은 문래산입니다. 해발 355m로 산세는 험하지 않지만, 침엽수림이 많아서 화재 발생 시 불이 빠르게 번져 대형 산불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영 과장이 파견 온 에스퍼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더군다나 올해는 강수량이 예년보다 턱없이 적고, 건조하며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이 많아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물 모이를 만드는 일입니다.”
물 모이? 생소한 표현이 희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그 생각을 알았다는 듯 이미영 과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요즘같이 건조한 시기에는 산불이 한 번 일어나면 크고 빠르게 번지곤 합니다. 바짝 마른 나무나 수풀이 땔감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그를 방지하기 위해서 일정한 수분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물 모이를 만드는 겁니다.”
“물 모이가 정확하게 뭔가요?”
안효정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네. 물 모이는 숲 곳곳에 나무나 흙, 돌을 쌓아서 물을 모아 두는 웅덩이를 말합니다. 비가 오거나 했을 때 이곳에 물이 모여 있으면, 숲의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어 불이 나도 쉽게 번지지 않도록 하지요.”
“아…….”
희윤은 이미영 과장이 하고자 하는 말을 그쯤에 이해했다.
“에스퍼 분들께서는 산을 돌아다니며 물 모이가 발견될 때마다 수분을 공급해 주시면 됩니다.”
왜 굳이 물 속성이나 빙결 속성을 찾았는지 알 것 같았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산 입구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미영 과장이 허리까지 숙이며 말했다. 희윤이 당황해서 마주 꾸벅하고, 안효정이나 다른 에스퍼들도 마찬가지로 마주 인사했다.
“두 분씩 팀을 나누시면 될 것 같고, 안내는 이쪽 두 대원이 책임지고 안내할 겁니다.”
이미영 과장의 소개로 소방대원 둘이 차례로 희윤을 비롯한 에스퍼들과 인사를 나눴다. 희윤은 안효정과 나머지 두 에스퍼가 함께 조를 짰다.
업무는 단순했다. 소방대원을 따라 산을 돌아다니며 마른 웅덩이가 보이면 물을 채우는 일이었다.
마른 땅에 마치 샘이라도 솟듯 물이 차는 모습을 본 소방대원은 온 얼굴로 감탄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말을 걸지 않는 걸 보면 과묵한 성격인 듯했다.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반대로 안효정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네?”
“이번엔 어떤 생각으로 능력을 썼어요?”
희윤이 왜 그러냐는 듯 바라보자 안효정이 냉큼 질문했다.
“그냥 이 웅덩이 가득 물을 채우고 싶다고요.”
“그냥?”
희윤은 어떻게 더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감하게 눈을 굴렸다. 안효정은 그 모습에 됐다며 손을 내저었다.
물론 지금 희윤이 한 건, 생소한 능력은 아니다. 그래도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은 걸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에스퍼가 이토록 쉽게 해 낸다는 게 대단한 부분이라 놀란 거지.
안효정은 다시금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