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85)

촬영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순조로웠고, 또 예상했던 것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해승이랑 함께하는 건 그나마 괜찮은데, 단독으로 찍을 때 지체가 됐기 때문이었다.

“자, 희윤 씨. 좀 더 편안하게 웃어 보세요. 어깨의 힘 빼시고요.”

희윤은 감독의 지시에 입꼬리를 조금 더 올리고, 어깨에 힘을 풀었다. 하지만 감독은 여전히 뭔가 마음에 차지 않는지 카메라에서 다시 눈을 뗐다.

“아니. 그렇게 웃으라는 게 아닌데.”

감독이 난감한 듯 ‘허허.’ 웃었다. 아까 둘이 할 땐 괜찮더니. 속으로 생각하다가 슬쩍 팔짱을 끼고 구경 중인 해승을 봤다.

“희윤 형.”

마치 감독의 사인을 알아들은 듯 해승이 희윤을 불렀다. 목소리가 마치 솜사탕이라도 된 듯 달고 부드러웠다.

희윤이 그 소리에 끌려 눈을 돌렸다.

“끝나면 맛있는 것 먹으러 가요. 제가 쏠 테니까. 형이 좋아하는 거로요.”

해승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씩 웃었다. 정말 별거 아닌 말이었다. 하지만 희윤의 긴장을 풀어 주기도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만들어 내기에도 충분했다.

찰칵. 찰칵. 찰칵찰칵.

감독은 그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그 뒤로 옷을 두 번 더 갈아입고, 포즈도 몇 번 더 바꾸어 찍었다.

크로마키 천을 뒤에 두고 하는 촬영이라서 희윤은 이게 어떻게 바뀔지 알지 못했다.

“자아, 능력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상상하며 눈을 감고 포즈를 취해 보세요.”

다만 중간중간 감독의 말이 있었기에 대충 어떤 게 나올지 짐작이 가기는 했다. 몇 시간 고생한 끝에 간신히 희윤은 제 촬영분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희윤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해승을 보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어느새 해승은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아까와 달리 이번엔 흰색 제복 차림이었는데, 그 모습도 해승에겐 너무나 잘 어울렸다. 어쩜 뭘 입어도 이렇게 눈길을 끄는지. 스태프들이 해승을 볼 때마다 감탄하는 게 이해가 갔다.

“와, 처음에 봤을 때도 느꼈지만, 진짜 배우나 모델을 했으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 얼굴에, 저 분위기에, 가이드라니. 국가적 손실이죠……!”

“그러니까요. 아무리 준공무원이라고는 해도 대우가 썩 좋은 건 아니잖아요?”

“에이. 또 그렇지도 않아. 자기 모르는구나? 표해승 가이드는 S급이잖아. 우리나라 유일한.”

“헉. 그래요? 와…… 능력도 좋구나.”

“그것만 그런 줄 알아? 집안도 엄청나.”

“집안요?”

“어. 수호 그룹이라고, 수호 그룹.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에 드는 군수 기업.”

“헉! 정말요?”

스태프들이 속닥속닥하는 말을 들으며 희윤은 괜히 제가 다 기분이 좋았다. 잘난 모습을 남들이 알아주니 자랑스럽다고 해야 할까.

형광 녹색을 배경으로 서 있는데도 해승은 정말 뚜렷한 존재감을 보였다. 저러니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루를 거의 소비하고 나서야 비로소 촬영이 끝났다. 김 감독이 환히 웃으며 해승과 희윤에게 다가왔다.

“오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두 분. 괜찮으면 저녁이라도 대접하려는데 시간 어떠세요?”

촬영을 마치고 뒤풀이를 하는데 함께 가자며 김 감독이 말했다. 희윤의 시선이 해승에게 향했다.

“감사하지만,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오래 촬영해서 피곤하네요.”

해승이 단박에 제안을 거절했다. 그래도 되는 건가. 희윤이 김 감독의 눈치를 봤다. 보통 이런 일이 있을 땐 상대에게 따라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다음에 언제 시간 괜찮으면 그때 한번 저녁 식사해요.”

다행히 김 감독은 불쾌한 빛도 없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스태프들에게 걸어갔다.

“형, 이만 갈까요?”

해승도 그쪽에는 금세 관심을 끊고 희윤을 봤다. 희윤은 정말 그대로 가도 되는지 알 수 없어 망설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을 마주친 스태프가 생긋 웃으며 고개를 꾸뻑였다. 그러나 와서 말을 걸거나 다시 식사를 제안하는 건 없었다.

“신경 안 써도 돼요. 저쪽도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이니까.”

희윤이 두리번거리는 걸 보았는지 해승이 상냥하게 말했다. 그도 모자라 어깨를 감싸 제 쪽으로 당기기까지 했다.

저녁은 가까운 갈비탕 전문점에서 해결했다. 희윤이 열심히 검색해서 간 곳인데, 맛은 썩 괜찮았다.

“형, 오늘은 밖에서 한잔하고 갈까요?”

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에 오르는데 해승이 시동을 걸며 물었다. 희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피곤하지 않으세요?”

해승이 다시 한번 희윤을 배려하듯 물었다. 바쁘긴 했다. 곧장 광고 촬영하러 와서 식사까지 거기서 해결하면서 온종일 찍고, 찍고, 찍었으니까.

하지만 뭐랄까. 들뜬 기분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고 할까. 그래서 이대로 집에 가기보다는 뭔가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술 한잔하고 싶었어, 나도.”

“마음이 통했네요.”

해승이 생긋이 웃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어디를 간다는 말도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지도 않았다. 아마 또 익히 아는 곳으로 가려니 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남산 자락 아래에 있는 특급 호텔이었다. 희윤이 의아한 듯 쳐다보자 로비에 차를 세운 해승이 운전석 문을 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기 바에서 보는 풍경이 정말 예쁘거든요.”

밖으로 나온 해승이 곧장 차를 돌아서 조수석으로 다가와 문을 열었다.

“자, 희윤 형.”

희윤은 제 앞에 다가온 손을 보다가 붙잡았다. 해승이 그를 당겨 밖으로 나오니 화려한 호텔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해승에게 손이 붙들린 채로 희윤은 걸음을 내디뎠다.

“어? 저거 연희윤 에스퍼 아냐. 그 옆에는 표해승 가이드인가?”

막 두 사람이 정문을 통과하던 순간. 그들을 발견한 누군가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혼잣말을 흘렸다.

며칠 후 희윤은 안효정과 또 다른 C급 물 속성 에스퍼와 함께 서울 남부에 있는 관음산으로 파견을 나왔다.

이번에도 역시 산을 돌아다니며 물 모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걸쳐져 있는 관음산은 산세가 꽤 가파른 편이었다.

새벽같이 출동해서 소방대원 둘과 짝을 맞추어 셋이 각각 흩어져 온 산을 돌아다니며 물을 채운 덕분에 이번에는 하늘에 해가 떠 있을 때 끝마칠 수 있었다.

“으…… 얼른 가이딩 받고 집에 가야겠어요. 몸이 피곤하니 밥 생각도 안 나네요.”

본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차에서 내린 C급 에스퍼가 앓는 소리를 했다. 그러더니 내일 보자고 인사하며 먼저 떠났다. 오늘은 출동을 다녀온 터라 사무실에 들를 것 없이 곧장 퇴근하면 되었기 때문에 가이딩만 받고 가려고 바삐 움직이는 거였다.

“희윤 씨, 나도 이만 가 볼게. 내일 봐.”

“네. 선배. 조심히 들어가세요.”

“응.”

안효정도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오늘 그녀는 예의 가이드와 밖에서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혼자 남겨진 희윤은 팔을 위로 쭉 뻗어 스트레칭하고 다리도 굽혔다 폈다 하면서 몸을 풀었다.

좀 뻐근하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대부분 해승이 보낸 것이었는데, 그중에 다른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정소한 가이드님 : 희윤 씨, 오늘 출동 나갔죠? 저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끝나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할 얘기도 있으니까. 꼭이요. 오후 1:30]

정소한에게 온 메시지였다. 그와는 지난번 가이딩 이후로 만난 적이 없었다. 희윤이 능력을 쓸 일이 없고, 해승이 거의 붙어 있다시피 하니 다른 에스퍼를 부를 겨를이 없었던 거다.

다만 종종 메시지를 주고받고는 했다. 훈련은 잘 받고 있는지, 업무 처리할 때 어려운 건 없는지, 식사는 맛있게 했는지 뭐 그런.

배려가 담긴 연락에 희윤은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느꼈다. 어쨌든 정소한 역시 제 담당 가이드가 아닌가.

‘오늘은 정소한 가이드와 가이딩할까.’

생각하자마자 곧장 머릿속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해승이 떠올랐다. 이미 1시간 전에 언제 끝나느냐고 메시지를 보냈었으니 지금 그도 대기하는 중일 거다. 유독 다른 사람에게 가이딩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해승이다.

하필 정소한이랑 한 팀이라 그에게 가이딩을 받는 걸 해승이 모를 수 없었다. 아무래도 자진신고를 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듯했다.

[나 : 해승아, 오늘은 정소한 가이드랑 가이딩할게. 오후 4:11]

[해승 : 도착했어요? 내려갈게요. 오후 4:11]

대답이 곧장 돌아왔다. 내용은 영 생뚱맞았다. 아니, 실은 그건 안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희윤의 시선이 절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아래로 내려오는 화살표에 불이 들어온 걸 보니 어쩐지 저기에 해승이 타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문 너머로 해승의 모습이 보였다.

“형!”

희윤을 발견하자마자 해승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기쁜 티를 온 얼굴로 드러내며 제게 다가오는 해승을 보며 희윤도 미소를 띠었다.

정소한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희윤도 사실 해승이 가이딩해 주는 게 가장 좋으니까. 그가 제게 이렇게 다가오는 것조차도.

* *

출동과 사무 업무 외에 희윤이 요즘 하는 일은 다른 에스퍼들의 영상을 틈틈이 살펴보는 것이었다.

촬영한 것들은 본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올라가 있었기에 검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전부 출동할 때 영상만 있는 건 아니네요?”

“응. 사실 괴물체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건 아니니까. 또 괴물체의 특성에 따라서 에스퍼의 속성도 다르고.”

희윤의 옆에서 무료한 얼굴로 마우스를 달칵거리던 안효정이 대답했다. 그녀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찰랑거리는 휴양지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아직도 먼 휴가를 위한 준비라고 했다.

“아…….”

“대련 영상도 참고해 봐. 다른 에스퍼들이 능력을 어떻게 쓰는지 보기는 더 좋을 거야.”

“대련이요?”

“응. 같은 속성끼리 붙은 것도 있고, 다른 속성끼리 붙은 것도 있고.”

희윤의 눈이 반짝였다. 흥미가 확 당기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당장 검색어 창에 대련이라고 입력해 보았다.

안효정이 말한 대로 제법 많은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희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은지 조회 수도 높고 댓글도 꽤 달려 있었다.

사실 그간 희윤에게 에스퍼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그랬기에 인터넷에 올라오는 이런 영상도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에스퍼가 되고 나니 왜 사람들이 스포츠나 영상 매체를 보듯 열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물 속성과 빙결 속성의 싸움이었다. 물 속성이 허공 중에 물 화살을 날리면, 빙결이 그걸 얼려 다시 되돌려 날렸다.

그럼 물 속성은 반대로 녹여 내 바닥으로 쏟아 냈고, 빙결 속성이 바닥을 빙판으로 만들어 내어 물 속성이 미끄러지게 했다.

“비슷한 계열끼리 싸우면 이런 게 가능하네요.”

희윤이 흘리는 혼잣말에 안효정의 시선이 힐끔 모니터로 향한다.

“2년 전 자료네.”

잠깐 본 것만으로도 안효정은 언제 한 대련인지 단번에 알아냈다.

“거기 빙결 속성 에스퍼. 1팀 조소현이야. 조 이사님 딸.”

“아.”

희윤은 지난번 에스퍼 전체 회의 때 단상에 올라왔던 조 이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도 에스퍼인데 딸도 각성한 듯했다.

“응용력이 대단하네요.”

“그렇지.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게 있으니까.”

그렇구나……. 희윤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다시 영상을 봤다. 확실히 에스퍼들은 각자 하나씩 자신만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빙결 속성 에스퍼는 빠른 판단과 구현이 능력인 듯했다. 동체 시력이 좋고, 순발력이 뛰어나며 오래도록 A급 에스퍼를 보아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선배.”

한참 몇 개의 영상을 살피던 희윤이 불쑥 안효정을 불렀다.

“응?”

하트 모양 섬 사진을 보던 안효정이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마주친 희윤의 눈동자가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어째 무슨 말이 나올지 짐작이 되는데…….’

안효정이 속으로 생각하던 그때.

“점심 식사 후에 저랑 대련해 주실 수 있나요?”

“아, 역시.”

희윤이 꺼낸 말에 안효정은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하여 희윤과 안효정은 해승과 함께 점심을 먹고 그대로 지하에 있는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표해승 가이드는 일 안 해요?”

물론 안효정은 해승이 따라오는 걸 달갑게 생각하진 않았다. 훈련장 입구에 와서도 까칠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가이드한테는 가이딩이 제일 중요한 업무잖아요. 희윤 형이 능력 펑펑 쓰고 나면 제가 가이딩해 줘야죠.”

해승은 대수롭지도 않게 대꾸하며 희윤을 바라보았다. 생긋 웃는 얼굴이 제 말이 맞지 않느냐는 듯했다.

해승이 저럴 때마다 희윤은 제 얼굴이 부디 붉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바람과 달리 귀 끝은 이미 달아올라 있었지만.

“자, 그럼 희윤 씨. 시작해 볼까요?”

“네. 잘 부탁드려요. 선배.”

“나야말로. 살살해 주세요.”

안효정이 웃으며 엄살을 피웠다. 희윤도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눈동자는 이미 잔뜩 긴장해 있었다.

“갈게요!”

먼저 공격한 건 안효정이었다. 희윤이 자신을 생각해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공중에 얼음으로 만든 기다란 창이 나타났다. 그녀는 그 창을 한 손에 쥔 채 높이 점프했다. 희윤의 눈도 어느새 파랗게 변해 있었다.

“탁!”

몸이 가벼운 안효정의 도약은 어마어마했다. 마치 쏘아 날아오듯 다가온 안효정이 그대로 창을 내리찍었다.

쏴아아.

얼음 창이 끝부터 빠르게 산화했다. 말 그대로 안개처럼, 공중에서 흩어지고 있었다.

“하.”

불과 몇 초 사이 손에 쥔 얼음 창이 완전히 사라져 버려 안효정의 손이 비었다. 안효정에게서 감탄이 섞인 허탈한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여유롭게 감탄하고 있을 새가 없었다. 분명 사라진 줄 알았던 그녀의 창이 어느새 물로 이루어진 비수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몸을 피하는 안효정의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비수가 지나쳐 갔다. 목표물은 잃은 비수는 그대로 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응용력 좋은 건 알긴 했는데.”

안효정이 눈을 빛내며 희윤을 봤다. 어느새 희윤 앞에는 그의 장기라고 할 만한 물줄기가 넘실넘실 춤을 추고 있었다.

안효정은 곧장 물줄기를 얼려 버렸다. 동시에 딱딱해진 얼음 줄기로 희윤을 공격했다. 이번에도 역시 희윤에게 채 닿기도 전에 물로 변해 그대로 바닥에 쏟아졌다.

바닥을 얼리면, 희윤은 물을 쏟아부어 그대로 녹여 버렸고, 얼음 화살을 날리면 안개로 흩트려 버렸다. 어느새 훈련장은 온통 물바다로 변했다.

“하아, 하아, 하…….”

안효정이 무릎을 손으로 짚은 채 거칠게 숨을 뱉었다. 희윤의 가슴도 연신 부풀어 오르고 꺼지길 반복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둘의 대련은 막상막하였다. 물론 그건 안효정이 조금 희윤을 생각해 강약 조절을 해서 가능한 거였지만.

“희윤 씨 어때요? 능력 이렇게 써 보니까.”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요.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 점점 구현하는 속도가 빨라지네.”

이 정도면 정말 A급 이상으로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안효정은 그렇게 생각하며 양손에 얼음 창을 쥐고 달려갔다. 기다렸다는 듯 두꺼운 물 장벽에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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