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85)

힐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승의 말대로 당장 비가 쏟아질 것처럼 어느새 새까만 먹구름이 가득 끼어 있었다.

이런 날씨에 나가는 건 번거롭지만, 해승과 칼국수라니. 희윤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자고 답변했더니 웃으며 춤을 추는 토끼 이모티콘이 돌아왔다.

깡충깡충 뛰며 하트를 뿌리는 게 딱 해승같이 귀여웠다.

“누구예요?”

너무 즐거운 티를 냈나 보다. 전 팀장이 웃으며 물어왔다.

“아……. 표해승 가이드요.”

“아하.”

전 팀장이 작게 감탄사를 흘리더니 곧 관심을 끊었다. 희윤도 다시 한번 메신저 앱을 봤다가 다시금 일에 집중했다.

12시가 가까워지며 출동했던 조사팀이 돌아왔다. 셋은 이번에도 역시나 괴물체가 아니었다며 떠들썩하게 말로 보고했다.

“자, 그럼 다들 점심 먹으러 갈까요?”

팀 내 가장 연장자인 전 팀장의 말에 희윤이 얼른 말했다.

“전 따로 먹고 올게요.”

“오늘도, 해승 씨랑 먹으러 가는구나. 맛있게 먹고 와요.”

희윤의 말에 전 팀장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들 식사 즐겁게 하세요.”

희윤도 조사팀 팀원들에게 꾸벅 인사하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막 도착한 엘리베이터 안은 만원이었다.

조사팀이 4층에 있어 그 위에서부터 타고 내려온 직원들로 가득 찬 것이었다.

“계단으로 가죠. 아무래도 다음 것까지 이럴 거 같은데.”

어느새 다가온 팀원이 전 팀장에게 말했다.

“그러자. 어차피 금방인데.”

구내식당은 3층에 있으니 계단이 더 빠를 거라는 말이었다.

“희윤 씨 이따가 봐요.”

“네.”

희윤만 둔 채 나머지 조사팀 팀원들은 전부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아무 생각 없이 문을 벌컥 열었던 팀원 중 하나가 움찔하고 몸을 물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멈칫하면서 앞을 봤다.

“어, 표해승 가이드.”

해승의 이름이 불리자 절로 희윤도 그쪽을 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열린 비상문에 해승이 서 있었다.

해승은 대꾸도 없이 고개만 까닥이고 그들을 지나쳐 복도로 나왔다.

“형.”

그러더니 곧 엘리베이터 앞에 선 희윤을 발견하고는 환히 웃었다. 조금 전 딱딱한 태도는 씻은 듯 사라졌다.

비상문 앞에 있던 팀원들은 희윤과 해승을 번갈아 보더니 곧 계단으로 사라졌다. 다들 익숙하다는 반응에 도리어 희윤이 민망했다.

“어떻게 그쪽에서 와?”

“대회의실에서 오는 길이라서요.”

“회의실?”

거긴 19층에 있는 거 아냐. 그럼 무려 15층을 걸어 내려왔다는 건데 해승은 참 가볍게도 말했다.

“네.”

해승이 생긋 웃으며 희윤 옆에 섰다. 그에게 은은한 향이 풍겼다. 최근 들어 해승은 향수를 뿌리고 있었다.

청량하고 시원한 여름이 다가왔고, 눅눅한 계절인 만큼 더욱 이런 게 필요하다면서 희윤에게도 칙칙 뿌려 주었다.

해승과 같은 향을 풍기며 서 있다는 자각을 하자 또 살랑살랑 심장이 술렁거렸다.

그렇게 다음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전 팀장의 말처럼 다음 엘리베이터 역시 꽉 차기는 마찬가지였다.

“표해승. 먼저 간다더니?”

그런데 그 안에 타 있던 사람 중 하나가 해승을 보면서 알은체했다. 바짝 정리한 컷트 머리, 떡 벌어진 어깨, 거의 2m는 되어 보임 직한 길쭉한 키. 심지어 이마에 길게 흉터까지 있어서 강한 인상의 남자였다.

“무슨 상관.”

해승이 삐딱하게 대꾸했다. 말투로 보나 표정으로 보나 말 건 상대에게 썩 호의적이지 않은 티가 팍팍 났다.

하지만 그것보다 희윤이 놀란 건, 해승에게 말을 건 그의 격의 없는 태도였다.

“엘리베이터도 안 기다리고 부리나케 튀어 가길래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했지.”

남자는 같은 공간에서 이쪽을 지켜보는 눈은 아랑곳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그건 해승도 마찬가지였다.

“관심 꺼. 네 갈 길이나 가.”

여전히 말투는 까칠했다. 그러자 남자의 시선이 해승에게서 희윤에게 옮겨갔다. 희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눈만 마주했다.

자신이 누구라고 밝히기에는 모호한 상황이었다.

띵. 띵. 띵.

오래 열려 있던 엘리베이터가 그만 문을 닫으라며 소리를 울렸다.

“최관우 에스퍼. 이만 가지.”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문을 붙들고 있던 남자가 쯧 혀를 찼다. 그러더니 미련 없이 누르고 있던 버튼에서 손을 뗐다.

“나중에 봐. 그쪽도 다음에 또 봅시다.”

남자가 해승과 희윤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희윤에게 시선을 줄 때는 씩 웃기까지 했다.

“보긴 뭘 또 봐.”

이미 엘리베이터는 문이 닫히고,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해승이 뒤늦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말했지만, 들을 수 있는 건 희윤뿐이었다.

“아는 사람이야?”

희윤이 다물린 문을 보면서 물었다. 본부에 출근한 지도 꽤 됐지만, 아직도 낯선 얼굴이 많았다.

수백이나 되는 에스퍼와 가이드를 다 기억할 수는 없으니까. 더군다나 업무 특성상 파견이나 외부 출장 등이 잦아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 걸 생각하더라도 그 남자는 강한 인상이 한 번 보면 잊힐 것 같지는 않았다.

“최관우라고. 있어요.”

이름은 아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는데. 하지만 해승은 그 외에 더 알려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어차피 희윤도 크게 궁금하지는 않았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본부는 해승이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태반인 곳이었고, 호의적인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어디로 먹으러 가려고?”

두 번 더 엘리베이터를 보낸 끝에야 마침내 둘은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중 한 번은 희윤이 그냥 계단으로 내려가자는 말까지 했는데, 해승이 거부했다.

무릎에 무리가 간다며 안 된다는 소리를 하며 그를 말렸다.

19층에서 내려온 사람이 할 말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희윤은 일반인보다 체력도 힘도 좋은 에스퍼였는데.

하지만 저를 걱정해서 꺼낸 말임을 알기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 덕분에 이제야 밖에 나온 참이었다.

“두 블록만 가면 맛있는 곳 있어요.”

후텁지근한 날씨 덕에 지금 막 나왔는데도 더위가 훅 느껴졌다. 뜨거운 것보다는 차라리 시원한 음식이 나을 것 같은데, 하고 잠깐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해승이 칼국수를 먹자고 했고 어차피 식당 안은 에어컨 때문에 시원하니까 괜찮다는 생각도 했다.

골목길을 통과하자 해승이 말한 칼국수 집이 나타났다.

문제는 문밖에 길게 줄지어 선 사람들이었다. 점심시간이라 근처 직장인들마저 전부 식사하기 위해서 서 있는 듯했다.

“어쩌지?”

보아하니 최소한 20분은 기다려야 할 판이라 희윤이 해승을 돌아보며 물었다. 본부는 그래도 점심시간이 12시부터 1시 반까지라 본래는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느라 시간이 많이 소요돼 벌써 점심시간은 1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아 고민이 됐다.

“형은 뭐 다른 것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아니.”

희윤이 고개를 젓자 해승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기다리죠. 어차피 금방 빠질 텐데.”

하긴 칼국수니까 나오기만 한다면 먹는 거야 금방일 거다. 희윤은 이번에도 또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10여 분이 흐르자 자리가 났다. 가게 안의 테이블은 고작 여덟 개.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손님들은 일행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빈 자리에 대충 앉아서 주문하는 것처럼 보였다.

희윤은 해승과 앉고 싶어 빠르게 안을 스캔했다. 운이 좋게도 이미 손님이 앉아 있는 4인 테이블 중에 두 자리가 빈 게 보였다.

“저기 가자.”

희윤이 가리킨 방향을 본 해승의 미간이 좁아졌다.

해승의 못마땅한 시선이 빠르게 식당 안을 훑었다. 듬성듬성 한 자리씩 떨어진 것만 보였다. 빠르게 먹고 빠져야 하는 직장인들이 대다수로 있는 대로 앉다 보니 그런 듯했다.

“가자.”

해승이 망설이는 걸 모르는지 희윤이 다시 말하며 먼저 빈 테이블로 다가갔다.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해승도 결국 그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은 버리지 못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한 희윤이 먼저 식사 중인 남자에게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

그리고 별생각 없이 상대를 확인했다가 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제야 열심히 칼국수를 먹던 남자도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 길게 난 상처가 꿈틀했다.

“여. 이렇게 바로 만나네요?”

남자가 씩 웃으며 말을 걸었다.

“거기 칼국수 드려요?”

희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우렁찬 음성이 끼어들었다.

“네. 두 개 주세요.”

해승이 남자를 힐끔 보더니 곧 눈을 돌려 큰 목소리로 주문했다. 돌아오는 대꾸는 없었지만, 다시 물어 오지 않는 걸 보니 접수는 잘 되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보다 희윤은 맞은편에 앉은 남자와 눈을 맞추고 난감해했다.

“반갑습니다. 최관우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전 연희윤입니다.”

“흠…… 짐작이 맞았네요. 표해승의 에스퍼.”

시원스러운 미소가 남자의 입가에 떠올랐다. 그러자 다소 사나워 보이던 인상이 또 달라졌다.

희윤은 그렇다는 의미로 고개만 끄덕였다. 금세 펄펄 끓는 칼국수 두 그릇이 희윤과 해승 앞에 각각 놓였다.

노란 지단, 채 썬 호박, 동글동글한 생파와 유부, 양념장과 김 가루를 고명으로 올린 알찬 모습이 군침을 돌게 했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커다란 냉면 그릇에 보리 비빔밥까지 함께 등장했다.

“형. 먹어요.”

최관우에게는 알은체도 하지 않던 해승이 희윤에게 수저를 내밀어 살갑게 웃었다.

“얼른요. 국수 불겠어요.”

희윤이 괜히 맞은편을 신경 쓰느라 머뭇거리자 해승은 다시금 재촉했다.

“아, 응.”

은근히 앞에 앉은 남자의 눈치를 보던 희윤이 젓가락을 들어 칼국수 면발을 집었다. 탱글탱글하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수를 보자 입맛이 절로 돌았다.

“전 바람 속성입니다. S급이고요.”

칼국수를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우고 비빔밥마저 바닥까지 싹싹 긁으며 최관우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음식을 씹느라 대답을 못 하는 희윤을 대신해 해승이 입을 열었다.

“뭐, 어쩌라고.”

여전히 한결같이 쌀쌀맞은 태도로. 이쯤 되니 희윤도 저 둘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명성이 자자해서 만나 보고 싶었어요. 저는 인천지부에서 왔습니다.”

가만 보니까 최관우도 만만찮았다. 해승이 어떻게 반응하든 신경도 쓰지 않고 희윤에게 계속 말을 걸어 왔다.

“아…….”

희윤의 관심도 인천지부라는 말에 높아졌다. 아까 조사팀에 앉아 엘리베이터가 열렸을 때 그 안에 있던 사람 중 하나였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인천지부에서 표해승 가이드를 영입해 가려고 몇 년 동안 얼마나 애썼는지 몰라요.〉

그 순간 예전에 안효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때 말했던 게 눈앞에 있는 남자인 듯했다.

“전 A급 물 속성 연희윤이라고 합니다.”

희윤도 성실하게 자기소개했다. 최관우가 씩 웃었다.

“요즘 대련 영상이 자주 올라오더라고요. 실력이 보통이 아니던데. 그간 어디에서 활동했습니까?”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희윤의 대답이 최관우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능력 다루는 기술이나 구현 속도가 장난 아니던데?”

겸연쩍어진 희윤이 저도 모르게 해승을 봤다. 칼국수 면을 세듯이 깨지락거리던 해승이 눈을 마주치자 생긋 웃어 보인다.

“진짜냐?”

최관우가 확인차 해승에게 물었다.

“형이 대단하긴 하지. 그러니까 내가 형의 가이드가 된 거 아니겠어.”

“놀랍네. 그럼 성인 각성이라는 소리인데. 몇 살입니까? 음, 보자……. 스물둘? 셋?”

희윤이 동안이기는 했다. 갈색빛이 도는 눈동자, 동글동글한 눈매, 부드러운 실타래 같은 머리칼, 보얀 피부.

그래서 귀여우면서도 단정한 분위기를 풍기는 탓에 보통 제 나이보다는 좀 깎아 보긴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아뇨.”

“눈 삐었어? 아니지. 우리 형이 좀 귀엽고 어려 보이긴 해. 그래도 그거 하나 못 맞혀?”

“아, 하긴. 형이라고 했지. 참.”

숟가락을 내려놓은 최관우가 그제야 해승의 말을 기억해 내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더니 곧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 형?”

“뭐, 왜?”

“표해승이 에스퍼 하나에 목매단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진짜 침 발라 놨어?”

“무슨 상관이야.”

이번에도 대답은 쌀쌀맞았다. 최관우는 곧바로 타깃을 희윤에게 바꿨다.

“표해승이 안 괴롭힙니까? 가이딩할 때 안 불편해요? 울렁거리거나 몸이 따끔따끔하거나 아니면 꼭 썩은 물 마신 것처럼 기분이 안 좋거나 역겹거나.”

부정적인 소리를 내뱉은 최관우가 얼른 대답해 보라는 듯 희윤을 바라봤다.

“아뇨. 전혀요. 오히려 느낌이 좋던데요.”

“좋습니까? 어떻게? 그럴 리 없는데……. 설마 표해승이 어디 가서 욕하지 말라고 협박이라도 했습니까?”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반응들이 이런 걸까. 희윤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계곡물에 손 담근 것처럼 시원하고 기분 좋아요. 오히려 해승이의 가이딩 덕분에 능력을 쓰는 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

“매칭률이 얼마였죠?”

“89%요.”

“높긴 했네. 쟤랑 나랑 매칭률이 51%였어요. 근데 상성은 진짜 최악이었죠.”

최관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몸에 가시가 돌아다니는 것 같은 기분 알아요? 그거 진짜 기분 더럽거든요. 계속 따끔따끔하다가 가끔은 악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아프고.”

그때를 떠올렸는지 최관우는 얼굴도 찌푸렸다.

“네 탓이지.”

해승이 희윤의 앞에 김치가 담긴 접시를 끌어다 주고, 그도 모자라 한 개를 칼국수 위에 올리며 툭 말을 던졌다.

“그래. 내가 문제지, 내가. 가이드님께서야 가이딩을 베풀어 주신 것뿐이니까. 어쨌든 같은 S급인데도 표해승과는 정말 안 맞았어요. 근데 그보다 더 문제는…….”

최관우가 그 모습을 어이없이 보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격렬한 거부였습니다. 어느 정도로 심했느냐 하면.”

“저놈 가이딩 받다가 기절했어요, 형.”

최관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승이 다시 끼어들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재미있다는 듯 웃음기마저 담긴 말투였다.

“기절?”

하지만 희윤은 예사롭게 넘어갈 수 없는 내용이었다.

“네. 계속 따갑다고 구시렁거리더니 갑자기 벌렁 뒤로 넘어갔어요.”

“거품 안 문 게 다행이었지. 그때도 솔직히 표해승이 중간에 낌새가 이상하다고 중단 안 했으면 더 못 볼 걸 보였을 겁니다.”

“그랬어야 했는데. 그래야 인천지부에서 빨리 포기했을걸.”

그때 일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해승이 혀를 작게 찼다.

“인천지부에서 꽤 오래도록 너한테 연락했다고 했지.”

“맞아요. 얼마나 끈질겼는데요. 만약 저놈이랑 저랑 치고받고 싸우지 않았으면……. 아, 이건 못 들은 걸로 해요, 형.”

살살 웃으며 해승이 말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이미 희윤은 들어 버린 후였다.

“싸웠어? 왜? 그보다 에스퍼랑 싸우다니! 위험하게.”

희윤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최관우가 말했다.

“연희윤 에스퍼, 표해승이 특공 유단자라는 거 모르십니까?”

“그래도 에스퍼랑 싸운 거잖아요.”

“그거야 육체 강화 속성에나 해당하는 거고요. 쟤가 총도 잘 다룬다는 거 모르시는구나. 아주 명사수예요, 명사수.”

총도 잘 쏜다고? 희윤이 놀라 해승을 돌아보았다.

“다음에 보여 줄게요, 형.”

해승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총뿐만 아니에요. 아마 웬만한 무기는 다 쓸걸요. 괜히 무기상 손자가 아니라고요.”

최관우가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집안 가업을 확 깎아내리는 발언에 해승도 빈정댔다.

“그러는 넌. 힘 조절 제대로 못 해서 바람으로 건물 벽을 뚫어 버렸잖아.”

“그건 네가 도발해서 그런 거잖아!”

“내가 언제? 힘자랑 적당히 하라고 한 게 도발이야? 넌 진짜 도발이 뭔지도 몰라?”

동갑끼리 앉아서 그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참 잘 맞는 듯했다.

“됐어. 형한테나 관심 꺼.”

“여기 온 거 너거든? 내가 오라고 연락한 거 아니거든?”

무엇보다 식당에는 제가 먼저 왔다면서 최관우가 불퉁하게 말했다. 해승도 만만찮았다.

“그러게.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거슬리게 해.”

“이래 봬도 내가 인천지부 대표니까 어쩔 수 없지.”

“퍽도 그렇겠다. 제 능력도 제대로 컨트롤 못 해서 건물이나 부수는 사고뭉치 주제에.”

역시 아무리 봐도 오래된 동갑내기 친구 같다. 희윤은 저와 있을 때보다 더 자유롭고 편해 보이는 해승을 신기하게 봤다.

그러다 문득 같은 S급에 상성까지 좋았다면, 해승이 저 에스퍼의 담당 혹은 전담이 되었겠다고 하는 것까지 생각이 미쳤다.

‘다행이다.’

저절로 그런 못된 생각이 올라왔다. 그리고 희윤은 제가 그런 생각을 한 거에 놀라 얼른 고개를 털었다.

다행히 서로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말싸움을 하는 해승과 최관우는 그런 희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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