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탕!
컹컹. 컹. 깨갱.
캐애액.
총성과 괴물체가 짖는 소리, 비명이 숲을 가득 메웠다. 눈에 고글을 쓴 해승이 무섭도록 얼굴을 굳힌 채 총알을 날려 댔다.
괴물체를 상대하기 위해 특수 제작된 총이 미간, 눈, 목 등 급소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에스퍼도 아닌 가이드가 현장에 나오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렸을 적부터 온갖 무술과 사격술을 익혀 온 해승의 실력은 웬만한 하급 에스퍼보다 뛰어났다.
그랬기에 그의 실력을 눈으로 본 에스퍼들이 혀를 내두르는 건 당연했다.
‘저 괴물.’
그들이 속으로 생각하는 건 대부분 그랬다. 물론 지금 상황에 그런 말을 할 만큼 눈치 없는 사람은 없었지만.
에스퍼들은 자신들 못지않게 괴물체를 몰아붙이는 S급 가이드를 힐끔거리며 열심히 능력을 선보였다.
바짝 마른 땅. 수분이 부족한 나무. 수북이 쌓인 낙엽.
자칫 화재로 이어질 수 있어 출동한 건 화기와 관련 없는 물, 땅, 바람 속성 에스퍼였다. 그나마 바람 속성은 자칫 마찰력으로 불이라도 일으킬까 해서 강력한 능력 사용은 되도록 피했다.
그 때문에 예상보다 조사팀 전 팀장과 염동력 속성 에스퍼와의 합류가 좀 늦어졌다.
〈연희윤 에스퍼는 어디에 있습니까?〉
출동팀을 이끌고 온 A급 땅 속성 팀장이 물었다.
〈현재 허공에 떠 있습니다.〉
전 팀장이 서둘러 대답했다. 위치를 묻는 것이었는데, 다소 엉뚱한 말이 돌아왔다. 그랬기에 출동팀장이 눈을 끔뻑거리며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하는 건 당연했다.
〈아. 위치는 37.151475, 128.754850입니다.〉
전 팀장보다 좀 더 빨리 상황을 깨달은 염동력 속성 에스퍼가 얼른 희윤의 GPS 위치를 알려 주었다.
그제야 전 팀장도 출동팀장이 물은 게 뭔지 알아차렸다.
〈허공에 떠 있다고요?〉
〈네. 여러 마리를 상대하기 버거워서 택한 방법 같아요.〉
그 말에 출동팀장이 더 어리둥절한 눈으로 질문했다.
〈비행 능력이 있던가요? 연희윤 에스퍼가?〉
그제야 전 팀장은 또 자신의 대답이 미흡했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뇨. 물로 구름을 만들어서 허공에 띄운 것 같습니다.〉
출동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을 살피던 에스퍼들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주변에 있는 괴물체를 처치하면서도 그들의 귀는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에게로 집중된 상태였다.
〈서둘러 주세요. 연희윤 에스퍼, 능력을 많이 써서 오래 못 버틸 겁니다.〉
전 팀장도 더 시간을 끌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호기심을 채워 줄 때가 아니라 위험에 빠진 에스퍼를 구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죠. 너희 넷, 여기 지켜. 나머지는 날 따라와!〉
출동팀장이 주변에 있는 에스퍼들에게 명령하고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해승이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동팀장은 해승을 발견했다. 할 말이 많아 보이던 그는 괴물체를 상대하도록 특수 제작된 총알이 치명상까진 아니어도 움직임을 둔화하도록 만드는 걸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저만하면 한 사람분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조금 전 희윤의 안정도가 위험하다는 알림이 있었으니 담당 가이드가 동행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동하는 중에도 괴물체는 끊임없이 나타났다. 여러 마리거나 한 마리거나. 아무래도 산 전체에 퍼져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머리 위로 드론이 내려왔다.
〈전방 1시 연희윤 에스퍼가 있습니다.〉
에스퍼들의 스마트 워치에 염동력 속성 에스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전부 1시 방향을 바라보았다.
납작하고 둥그스름한 모양의 물이 둥둥 떠 있는 게 보였다. 그 위에 주저앉아 있는 건 그들이 찾는 희윤이었다.
“희윤 형!”
희윤을 발견한 해승이 먼저 움직였다.
탕탕. 탕탕탕.
자동 소총이 불을 뿜으며 연달아 총알을 발사했다. 물구름 아래에 몰려 있던 괴물체들이 놀라 사방으로 도망쳤다. 에스퍼들도 뿔뿔이 흩어지는 괴물체를 차례로 쓰러뜨렸다.
“형!”
줄곧 희윤의 상태를 확인해 보던 해승의 얼굴이 일순 딱딱하게 변했다. 물구름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부서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표해승 가이드!”
“엄호해!”
해승이 그대로 쏘아지듯 달려갔다. 희윤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걸 본 직후였다. 주변을 살필 겨를도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총도 바닥에 내던졌다. 두 팔을 뻗었다.
퍽!
강한 타격음과 함께 팔에 얼얼한 무게감이 전해졌다. 해승은 이를 악물어 제 품에 안긴 몸을 꽉 끌어당겼다.
캥캥. 캥.
캐캐캑. 캑.
쏟아지는 공격에 해승을 덮치려던 괴물체들이 나가떨어졌다. 에스퍼들이 날린 능력으로 사방에서 먼지가 바람처럼 흩날렸다.
해승은 제 머리칼이 어지럽게 휘날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두 팔로 받아 든 희윤을 내려다보았다.
희윤에게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아픈지 미간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희윤 형.”
조심스럽게 희윤을 불렀다. 응답이라도 하듯 감긴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눈을 뜨지는 못했다.
식은땀에 젖은 이마, 피가 흐르는 종아리. 찢긴 듯 깊게 벤 어깨. 여기저기 다치고 쓸린 상처들.
희윤을 알아 온 이후로 이렇게 엉망이 된 건 처음 봤다.
- 경고! 에스퍼님의 안정도 49%. 안정도가 50% 이하입니다. 가이딩이 시급합니다.
잠깐 사이 희윤은 안정도는 3%나 올랐다. 해승이 받자마자 자연스럽게 가이딩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몇 마리 남았습니까?”
주변이 정리되자 출동팀장이 염동력 속성 에스퍼에게 물었다.
- 아직 열 마리 정도요.
“위치는?”
-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쪽으로 이동 중이라 곧 마주칠 것 같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컹컹 짖는 소리와 우렁찬 목울음이 들려왔다. 아마 이곳에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적이 있다는 신호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으로 괴물체들이 몰려들었다. 염동력 속성 에스퍼가 파악했던 열 마리보다 두 마리가 더 많았다.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각양각색의 에스퍼들의 능력이 구현되었다. 떼로 몰려다니며 공격하는 괴물체보다는 에스퍼들 개개인이 더 뛰어났다.
출동한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 상황은 곧 종료되었다. 염동력 속성 에스퍼가 드론 수십 대를 날리며 근처에 남아 있는 괴물체가 있는지 살폈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에도 해승은 끊임없이 희윤을 가이딩했다. 안정도 수치는 꾸준히 변화를 보여 70%를 넘겼고 경고음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희윤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표해승 가이드. 본부로 돌아갑시다. 연희윤 에스퍼의 상태도 살펴봐야 할 것 같으니.”
그사이 현장에 남아 아직 살아 있는 괴물체가 있는지 파악할 별동 팀을 정비한 출동팀장이 해승에게 다가와 말했다. 해승은 군말 없이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동 중에 떨어져 있던 전 팀장과 염동력 속성 에스퍼와 만나 다시금 움직였다.
산 입구는 소식을 전해 들은 기자며 인플루언서, 민간인들로 시끌시끌했다. 그들은 산에서 우르르 나오는 이능력자들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마치 먹이를 쫓는 상어 떼처럼 순식간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을 자주 겪어 보았기에 에스퍼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어떤 괴물체가 나타났습니까!”
“무슨 능력을 썼나요?”
“오늘 출동한 에스퍼는…….”
“혹시 새로운 에스퍼가…….”
여러 소리가 터져 나오며 소란은 더욱 커졌다. 해승이 눈을 찌푸리며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출동팀장과 전 팀장이 사람들의 집중을 끌어모으고, 나머지 에스퍼들이 대응해 준 덕분에 그들보다 조금 떨어진 해승에게까지 관심이 오지는 않았다.
벗어나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해승은 망설이지 않았다. 때마침 그가 미리 대기시켜 둔 차량도 멀지 않은 곳에 준비 중이었다.
“…….”
성큼성큼 걸어가는 해승의 뒷모습을 전 팀장이 힐끔 보았다. 품에는 아직 희윤이 안겨 있었다. 하지만 전 팀장은 현명하게 해승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와글와글 몰린 기자와 인플루언서의 질문에 적당하게 대꾸하면서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출동팀장도 다른 에스퍼도 전 팀장을 따라 움직여 준 덕분에 해승은 무리 없이 주차된 차량에 도착했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보조석에 앉아 있던 해승의 개인 수행 비서가 얼른 내려와 뒷좌석 문을 열었다. 정중하게 말을 건네는 비서에게 해승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장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출발해.”
이어지는 명령에 비서가 보조석에 앉자마자 차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쯤 사람들의 이목이 잠깐 이쪽에 향했지만, 검게 선팅이 되어 있어 누가 타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어디로 모실까요?”
보조석에 앉은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승은 이제는 제 무릎에 엉덩이를, 가슴에 얼굴을 묻은 희윤을 바라보았다.
“병원.”
보통 에스퍼가 다치면 당연히 본부에 있는 의료 시설로 이송했다. 하지만 해승이 말한 병원은 그곳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수호 그룹 산하에 있는 병원에 가라는 말에 기사가 즉각 차를 출발시켰다.
해승은 그들에게 곧 관심을 끊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서 희윤의 뺨에 올렸다. 창백한 뺨은 평소보다 서늘하게 느껴졌다.
해승의 눈빛이 심해처럼 어둑해졌다.
희윤은 멍한 눈으로 먼지 한 톨 없는 새하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낯설었다.
“뭐…….”
뭐지. 여긴 어디야. 혼잣말을 뱉으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마디 꺼내자마자 깜짝 놀랐다.
지독한 목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낮게 쉰 소리가 튀어나왔다. 뒤늦게 목이 따끔따끔한 걸 느꼈다.
그뿐 아니었다. 머리도 띵하고 멍하고.
‘감기…….’
감기에 걸렸나 생각하다가 곧 제 상태가 어떤지 알아차렸다. 아파서가 아니었다. 아니 아픈 건 맞는데 이건 에스퍼가 과도한 능력을 사용해 안정도가 떨어져서 오는 후유증이었다.
“아.”
깨닫자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제가 있는 곳은 병원이었다. 희윤은 천천히 눈을 굴려 보았다. 머리맡 벽에 의료 기기가 달려 있었다.
‘전에 입원했던 의료 센터인가.’
심층 검사 때문에 하루 신세를 졌던 일을 떠올리며 희윤이 고개를 돌리다가 움찔했다. 어쩐지 병실을 채운 가구며 구조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번 병실도 1인실로 침대 하나, 냉장고 하나, 옷장을 겸한 멀티 수납장 하나 따로 떨어진 욕실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여긴…….
“형, 깨어났네요?”
문을 닫으며 등장한 건 해승이었다. 손에는 잘 개어 놓은 옷을 들고 있었다.
“해승아.”
여전히 쉰 듯했지만,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진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머리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희윤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머리 아파요?”
침대로 다가온 해승이 염려가 담긴 눈을 하며 희윤의 이마를 쓸었다. 따듯한 손길과 다정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희윤은 괜히 민망한 생각이 들어서 눈을 피했다.
“응. 괜찮아.”
다행히 대답은 덤덤하게 나왔다. 두통도 해승이 이마를 어루만져 주니 나은 듯했다.
그러다 어처구니없는 제 생각에 희윤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해승이 만져 줘서 나았다니.
“근데 여긴 어디야?”
가만히 있다가는 엉뚱한 곳까지 의식이 흐를 것 같아 희윤이 서둘러 물었다.
“어깨는요. 종아리도 제법 깊게 베었는데. 당기거나 저리지는 않아요?”
그런데 해승은 장소는 알려 주지 않고 질문해 왔다.
“어깨는 좀 뻐근한데, 종아리는 괜찮아.”
희윤이 제 몸 여기저기를 살피며 착실하게 대답했다.
“등이나 허리는 안 아프고요?”
“응? 응. 괜찮은데…….”
괴물체에게 공격을 받아서 큰 상처가 난 건 어깨와 종아리다. 팔이나 다리 쪽도 물론 발톱에 긁혀서 조금씩 생채기가 나기는 했지만.
이미 처치하고 붕대를 감아서 그런지 쓰라린 느낌은 없었다. 그러니 다치지 않은 등이나 허리에서 고통을 느낄 리 만무했다. 그런데 해승의 말을 들어서일까.
등허리 부근이 좀 뻐근한 것 같았다. 산을 타고 달려서 그런가?
“그럼 안심이네요.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나 봐요.”
“충격?”
무슨 충격을 말하는 거지. 희윤이 어리둥절하게 보자 해승이 미소를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좀 경직된 웃음이었다.
“기억 안 나세요? 형, 허공에서 떨어졌잖아요.”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희윤을 보며 해승이 바로 말을 덧붙였다.
“급하게 제가 팔로 받기는 했는데, 등이나 허리가 결리지 않을까 걱정돼서요.”
“아!”
그제야 희윤은 자신의 정신을 잃어버리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렸다. 물로 띄운 구름, 그 아래에서 저를 쫓던 괴물체.
자신의 상태를 묻던 전 팀장과 염동력 속성 에스퍼. 본부에서 왔다는 희소식. 그리고 해승의 목소리.
안심을 하던 중에 그대로 까무룩 의식이 가라앉았다는 것.
“미안. 많이 놀랐지.”
그대로 추락하는 자신을 해승이 발견하고 늦지 않게 받아 낸 듯했다.
“정말 다행이었죠. 조금만 늦었어도, 하…….”
그때 생각이 나 해승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형?”
희윤을 병원에 데려다 두고 본부에 가자마자 난리가 났다. 이미 그가 만들어 낸 구름에 관한 소문이 벌써 파다하게 퍼진 것이었다.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이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현장에 왔던 에스퍼들이 떠벌렸기 때문이었다.
정작 해승은 희윤이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는데.
희윤과 출동했던 염동력 속성 에스퍼를 불러서 꼬치꼬치 묻고 나서야 상황을 알아챘다. 희윤이 또 남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능력을 구현해 냈다는 걸.
“음……. 그거. 전에 해마리 해수욕장에서 일을 떠올렸어.”
“해마리요?”
“응.”
희윤은 차근히 물로 구름을 만들어 낸 일을 설명했다. 그러나 정작 해승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의자를 끌어다가 침대 옆에 앉아서 희윤의 다치지 않은 손을 가져가 잡았다.
희윤이 움찔해서 붙들린 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떼어 낼 수 없었다. 마치 거부하기를 막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기운이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다급한 상황이었으니 안정도 체크할 겨를도 없었겠다. 그렇죠?”
“그렇지.”
“안정도는 50% 이하 때 경고하도록 기본 설정되어 있었으니까 얼마나 떨어졌는지 몰랐을 거고요.”
길쭉하고 고운 검지가 희윤의 손목에 걸린 스마트 워치 밴드에 닿았다. 조금 설렁하게 걸린 탄성 좋은 밴드 틈으로 손가락이 파고 들어갔다.
“구름을 만들어서 허공에 떠오를 생각을 다 하고. 진짜 우리 형 대단한 건 알아줘야 해.”
밴드 안쪽, 푸른 핏줄이 도드라진 여린 살갗이 검지에 쓱 문질러졌다. 순간 희윤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눈도 동그랗게 커진 상태였다. 해승은 모른 척 다시 한번 매끄러운 피부를 훑었다.
물론 심술이었다.
“저기, 해승아.”
희윤도 진작 알아챘다. 말투에 뾰족뾰족한 기운이 가득 담겨 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다시 입을 열려다가 도로 꽉 깨문 건, 손목 안쪽을 매만지는 느낌이 너무도 예민하게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자칫 이상한 소리가 나올 뻔했다.
“으으.”
“아파요?”
“아, 아니.”
해승과 눈이 마주쳤다. 희윤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자, 예쁜 눈매가 부드럽게 굽는다. 근데 왜 눈꼬리에 여전히 심술보가 매달린 것 같을까.
“진짜 미안.”
“다음번에는 그러지 마세요.”
그럴게. 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해승이 다시 입을 여는 게 빨랐다.
“아니다. 형은 이런 상황이 되면 또 이럴 것 같아요.”
해승이 고민에 빠진 눈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여전히 해승은 검지로 희윤의 손목 안쪽을 살살 쓸었다. 간지러우면서도 어딘지 묘한 느낌이 드는 감촉이었다.
빼고 싶은데 또 한편으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희윤은 입 안 살만 잘근잘근 물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희윤의 상태를 모르는지 해승은 계속 상념에 빠졌다. 희윤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능력을 쓰는 건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씩 발전해 가고, 그때마다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아 그냥 두었다. 그래서 결국 이런 상황에까지 처한 거다.
‘생채기 하나 내고 싶지 않은데.’
조사팀이라고 해서 안심했다. 설마 이런 상황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기절한 희윤을 안아 든 채 병원에 왔을 때,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상처는 더 심했다.
옷을 벗기고 나니 종아리는 살이 다 패일 정도로 다쳤고, 어깨도 근육 안쪽까지 크게 다쳐 지혈하는 데에만 시간이 한참 걸렸다.
팔이며 다리, 옆구리 할 것 없이 온갖 곳에 괴물체의 발톱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들이 있었다. 그보다 더 문제는 뚝 떨어진 안정도 때문에 온 부작용이었다.
비록 S급 가이드라고는 해도 단숨에 안정도를 안정권까지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희윤은 각성 후 가장 많은 능력치를 끌어다가, 단숨에 사용한 직후였다.
열은 펄펄 끓었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혈압이 뚝 떨어지고,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며 의식도 없으면서 입을 벌려 헛구역질을 했다.
희윤의 상태가 괜찮아진 건 그로부터 2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다신, 그런 일 겪기 싫어.’
한 번 손을 잡고 나면 놓지 않겠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제가 없는 곳에서 지금처럼 다치면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손목에서 검지를 빼낸 해승이 이번엔 손가락 사이사이에 깍지를 꼈다.
희윤이 움찔한 걸 알았지만 멈추지 않고 제 뺨에 가져다 댔다. 뜨거웠다가 차가웠다가, 열이 올랐다가 얼음장처럼 되었다가. 몇 번이고 저를 들었다가 놓았던 체온은 평소대로 돌아왔다.
“해승아.”
“형. 진짜 다시는 이러지 말아요.”
“미안.”
알았다는 대답은 이번에도 돌아오지 않는다. 에스퍼니까. 당연히 괴물체가 나타나면 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해승은 눈을 들어 희윤을 보았다. 희윤도 이쪽을 보던 중인지 곧바로 마주쳤다. 말만 아니라 표정도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안 된다. 형이 지금처럼 크게 다치는 장면을 보게 된다면.
‘형, 그러면 내가 본부를 가만두지 않을 건데. 그래도 괜찮아요?’
희윤이 놀랄 말을 해승은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아직은 희윤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 주고 싶으니까.
“알았어요. 다음에는 다치지 않게 조심해요.”
“그럴게.”
해승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희윤을 보며 다짐했다.
아예 다칠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