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1/85)

업무에 복귀한 후 희윤에게 떨어진 건 오봉리 야산에서의 사건을 정리해서 보고하는 것이었다.

따각. 따각따각. 딸깍.

느릿느릿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때마다 알게 모르게 그 방향으로 시선이 옮겨졌다가 본래 자리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독수리 타법.’

‘에스퍼가 꼭 문서 작업을 잘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맞아요. 연희윤 에스퍼는 컴퓨터보다는 악기랑 더 친할 것 같은 인상이죠.’

‘그것도 그렇긴 하네.’

한 번씩 희윤이 타자 치는 걸 본 에스퍼들의 공통된 생각은 그랬다. 그렇지만 자꾸만 눈이 가는 건 세상 진지한 얼굴로 화면을 보는 희윤 때문이었다.

그게 꼭 자신들의 몇 년 전 모습 같아서 더 그랬다.

“흠. 흠. 연희윤 에스퍼.”

커피를 호로록 마신 염동력 속성 에스퍼 김동민이 희윤을 불렀다.

“네?”

“그…… 너무 길게 안 써도 돼요. 상부에서도 에스퍼한테 뭐 대단한 보고서를 바라지도 않고요.”

김동민의 말에 희윤은 눈을 끔뻑였다. 자연히 시선은 모니터에 뜬 출동 보고서로 향했다. 문서에는 이제 고작 장소가 어디였는지까지만 적힌 상태였다.

“네.”

“그보다 전에 보여 준 물구름, 그거요.”

아무래도 말을 건 이유는 보고서 때문이 아니라 이거였나 보다. 짤막하게 대답하고 다시금 키보드를 두드리려던 희윤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말해 보라는 희윤의 눈짓에 김동민이 눈을 반짝 빛내며 냉큼 입을 열었다.

“원리 좀 설명해 주세요. 아니, 이게 내가 궁금한 것도 있긴 한데. 친구 중에 물 속성 에스퍼가 있거든요. 내가 사실이라고 해도 못 믿겠다고 해서.”

빠르게 쏟아 내는 말을 가만 듣던 희윤이 목을 긁적였다.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닌데. 아무래도 이리저리 얘기가 퍼지면서 뭔가 대단한 능력으로 와전이 된 듯했다.

“음……. 그거 정말 어려운 일 아니에요. 그냥 머릿속으로 물을 뭉치고, 떠오르는 상상을 했을 뿐이지.”

“물을, 뭉치고, 떠오르게 했다고요? 아니 그걸 어떤 식으로요?”

희윤의 설명을 듣고도 김동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이쪽을 주목하고 있던 다른 에스퍼들도 ‘그게 뭐야’ 하는 얼굴을 했다.

희윤은 난처했다. 그냥 그렇게 했을 뿐인데, 뭔가 설명해 달라고 하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전 팀장처럼 시범을 보여 달라고 한다면 가능할 텐데.

“자자, 다들 일해요. 일. 궁금한 건 이따가 점심때 물어보고.”

때마침 전 팀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에스퍼들은 잔뜩 아쉬워하는 얼굴을 하면서 다시 화면을 쳐다보았다.

김동민은 뭔가 더 묻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전 팀장의 얼른 일하라는 눈길에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희윤은 점심시간 전에 출동 보고서 작성을 마칠 수 있었다.

“가요, 연희윤 에스퍼.”

제일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김동민이 희윤을 돌아보며 말했다. 식사하면서 능력 구현에 관해 물어보려는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막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대는 희윤을 발견하고 좌절했다.

“응, 해승아. 지금 막 나가려고 했어.”

하필 그 대화 상대가 본부에 있는 이능력자들이라면 누구나 불편해하는 해승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끼리 가죠.”

전 팀장이 침울해진 김동민을 다독여 챙긴 후, 희윤에게 점심 맛있게 먹고 이따 보자며 인사했다. 희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은 치즈돈가스와 스파게티라는 다소 학생 같은 메뉴로 결정했다. 해승이 뭘 먹고 싶으냐 물었을 때, 갑자기 떠오른 것이었다.

다만 장소가 예상을 벗어났다. 의미심장하게 웃은 해승은 곧장 차를 타라고 하더니 그대로 남산자락에 있는 돈가스집으로 이동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가게마다 ‘남산 돈가스’니 ‘원조 돈가스’니 ‘남산골 돈가스’니 하는 이름이 붙어 있는 신기한 장소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나무 그늘이 진 산책길을 20여 분 걷고 본부로 돌아와 곧장 출동팀과 합동으로 진행하는 회의에 참여했다.

희윤이 입원 중이라 미루어졌던 오동리 야산 괴물체에 관련된 회의였다.

회의는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하지만 희윤을 진땀 빼게 하는 시간이었다. 참석한 사람이 지부장, 출동 팀장, 대응 팀장, 에스퍼 총괄 부장 등 각 팀의 대표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내내 질문 공세를 퍼부었고, 희윤은 제가 기억하는 대로 현장에서의 경험과 능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설명하느라 애썼다.

“정말 고생했어요. 연희윤 에스퍼.”

조사팀으로 돌아와 책상에 넋을 놓고 앉은 희윤 옆에 얼음이 가득 들어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놓였다.

“머리 좀 식혀요.”

눈을 마주친 김동민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거절하지 않고 커피를 마시는데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김동민이 묘한 얼굴로 웃고 있는 게 보였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어쩜 그렇게 침착해요. 발표할 때 하나도 안 떨던데. 예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물어봐도 실례가 안 되려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질문이 나왔다. 말투도 평소보다 빨랐다.

“아니에요. 긴장해서 목소리 떨렸는데요. 질문해 주신 것 중 반은 제대로 대답도 못 했고요.”

“그게요? 아무도 못 느꼈을걸요?”

“맞아요. 오히려 대체 연희윤 에스퍼 정체가 뭐냐고 다들 놀랐어요.”

희윤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얘기가 들려왔다.

“하긴 그만한 배포여야 그런 능력도 쓰지. 이제 여유 좀 생겼죠? 연희윤 에스퍼, 저랑 훈련장 가요.”

오전부터 어떻게든 희윤에게 물구름을 구현해 낸 원리를 들어 보려던 김동민이 냉큼 말했다. 그리하여 희윤은 엉겁결에 조사팀 팀원들과 함께 지하로 이동했다.

훈련장은 생각 외로 사람이 많았다. 식후 제일 졸릴 시간대. 다들 몸을 움직이면서 졸음을 쫓으려는 의도였다.

“빈방이 없네요.”

전부 꽉 찬 훈련장을 돌아본 김동민이 침울한 투로 말했다. 다른 에스퍼들도 화면에 뜬 ‘사용 중’ 표시를 확인하고는 실망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희윤 씨. 대련하러 왔어?”

이대로 조사팀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고민하던 희윤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젖은 머리를 툴툴 털며 다가오는 안효정이 보였다.

“선배.”

“우리 되게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그렇죠?”

어느새 희윤 앞에 선 안효정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희윤 옆에 선 전 팀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전 팀장님.”

“네. 안녕하세요. 안효정 에스퍼.”

“희윤 씨랑 대련하는 건가요?”

“아뇨. 저는 연희윤 에스퍼가 물구름을 구현한다기에 구경하러 왔어요.”

“오……!”

물구름이라는 소리에 안효정도 당장 관심을 보였다.

“저도 그거 궁금했는데. 잘됐네요. 지금 막 대련 마치고 돌아가려던 참이니 저도 같이 봐야겠어요.”

“근데 아쉽게도 자리가 없네요.”

그 말에 안효정이 무슨 걱정이냐는 듯 말했다.

“어차피 대련도 아닌데 공간은 어디든 상관없지 않아요?”

“음?”

전 팀장이 어리둥절해하는 눈을 했다. 희윤도 고개를 갸웃했고, 다른 조사팀 팀원들도 의문을 띄웠다. 그들을 쭉 둘러본 안효정이 검지를 곧게 펼치고 위를 가리켰다.

“옥상 정원에서 해 보면 되죠.”

“아!”

그제야 다들 구름 사이에 반짝 뜬 태양을 본 것처럼 얼굴이 환해졌다. 어쩐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희윤은 슬그머니 미소를 띠었다.

안효정까지 합류하여 다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옥상에 도착한 후에는 다들 마술쇼를 구경하는 관중처럼 그늘에 주저앉아 희윤을 보았다.

“음.”

어쩐지 간질거리는 기분에 희윤이 헛기침했다. 이 웃긴 광경을 해승이 바라보고 있었다.

* *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회의실에 있던 해승은 광합성을 해야 한다는 지부장에 의해 옥상까지 끌려온 상태였다.

한가하게 햇볕이나 쬐며 시간을 허무하게 보내는 지부장을 5분간 인내심 있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해승은 안 가겠다고 버티는 지부장의 등을 억지로 떠밀어 내려보냈다. 그 후 희윤에게 옥상으로 바람 쐬러 오라고 연락이나 할까 고민하던 때, 한 무리가 우르르 등장한 것이었다.

무시하고 갈까 하던 해승은 무리 사이에서 희윤을 발견하고 우뚝 멈추었다.

‘뭐지?’

희윤과 같이 온 사람들 구성도 희한했다. 조사팀은 그렇다고 치고 안효정까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궁금증이 든 해승은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그럼 시작할게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희윤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희윤의 주변으로 공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해승은 팔짱을 낀 채 조금씩 희윤의 발밑으로 물이 모이는 걸 지켜보았다.

수십, 수백, 수천 개의 물방울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기까지 불과 몇 초 걸리지도 않았다. 납작하고 둥근 원반 형태가 된 물방울이 곧 떠오르기 시작했다.

“와…….”

감탄과 탄성이 희윤의 앞에 앉은 이들에게 흘러나왔다.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특수한 능력을 사용하는데 익숙해진 에스퍼들이 희윤의 능력 사용 방법에 매번 놀라는 것이 신기하기는 했다.

해승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영상 통화를 걸었다. 곧 나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사님, 이런 거 본 적 있어요?”

대뜸 전화를 건 해승이 스마트폰 렌즈를 희윤이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때마침 희윤을 태운 물구름은 완전히 바닥에서 떨어져서 약 1m 이상 허공에 뜬 상태가 되었다.

- 흠…….

스마트폰 너머에서 낮게 침음성이 들렸다.

- 연희윤 에스퍼,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사람이군. 지금 올라가 볼게.

그 말을 끝으로 곧 전화가 끊어졌다.

짝짝짝. 짝짝짝짝.

물구름을 흐트러뜨리며 바닥에 내려섰던 희윤이 박수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희윤 형. 멋져요.”

해승이 미소 띤 얼굴로 손뼉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조 이사도 함께였다. 희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여긴 어떻게…….”

“제가 먼저 와 있었는데 형이랑 다른 분들이 나타난 거예요.”

“아.”

“희윤 형을 만났네요.”

해승이 봤다고 하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능력을 보이는 게 한두 번도 아닌데. 희윤이 뜨거워진 귓불을 만지려 손을 드는데 어느새 성큼 다가온 해승이 그 손을 자연스럽게 붙들고 깍지를 꼈다.

가이딩이 마치 숨이라도 쉬듯 곧바로 이어졌다.

“근데 능력 사용할 거라고 왜 말 안 했어요, 형?”

저도 모르게 연결된 손을 보던 희윤이 눈을 들었다. 분명 다정한데 해승의 말투는 찬기가 느껴졌다.

“또 아프면 어떡하려고.”

“이 정도는 괜찮아.”

“얼마 전에 공중에서 떨어진 건 기억 못 하나 봐요. 그때, 제가 받아 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크게 다쳤을 거라고요.”

“아.”

해승의 시선이 희윤에게서 떨어져 나와 물구름 만드는 걸 구경하던 조사팀과 안효정에게 향했다.

서늘한 눈빛은 경고가 담겨 있었다. 다시는 희윤에게 이런 짓을 시키지 말라는.

“해승의 말대로네. 연희윤 에스퍼. 바로 얼마 전에 능력 사용 과다로 의식까지 잃은 일이 있었는데 가이드가 없을 때 그렇게 함부로 능력을 사용해서는 큰일 날 수 있네.”

“죄송합니다.”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조 이사가 점잖은 말투로 끼어들었다. 전 팀장이나 안효정도 미안해하는 얼굴이 됐다. 솔직히 해승이 말하기 전까지 그들은 희윤이 병원에 있다가 퇴원한 일도 잊고 있었다.

“희윤 씨, 미안. 내가 괜히 말해서.”

안효정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희윤에게 사과했다.

“아니에요. 저도 크게 무리할 일은 아니라 생각해서 한 건데요. 뭣보다 그때는 좀 다급하게 해서 어떤 원리인지 저도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해서 지금은 오히려 도움이 됐어요.”

희윤은 해승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마음의 짐을 내려 주려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다시 한번 물구름을 구현하면서 당시 어떤 식으로 능력을 사용했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조금 더 연습해 보면 전보다 빨리, 크게 할 수도 있을 듯했다.

“그거 흥미롭군요. 연희윤 에스퍼. 그럼 나와 훈련장으로 옮겨서 다시 해 보도록 할까요?”

조 이사가 희윤에게 제안했다. 희윤은 대답하기 전 해승을 힐끔 봤다. 조금 전 제가 능력을 사용하던 걸 불쾌해하던 그였기에 혹시 반대하는 게 아닐까 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같이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형.”

아까와 달리 해승은 흔쾌히 말했다. 그뿐 아니라 오히려 조 이사와 이런저런 연구를 해 보라며 적극적으로 권장하기까지 했다.

조 이사도 해승의 말을 거들었다. 덕분에 희윤은 그날 이후로 조 이사와 만나 물구름과 관련하여 여러 실험을 해 보았다. 그 덕분에 알게 된 건 현재 희윤의 물구름은 한 사람 이상 이용하기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물은 기본적으로 부력이 있어요. 그렇지만 부력에도 크기가 정해져 있어서 한 사람 이상 띄우려면 더 커다란 걸 만들어야겠지요.”

조 이사가 흥건하게 젖은 훈련장 바닥을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문제는 희윤이 그만한 물구름을 구현하고 지속하기에는 어렵다는 점이었다. 어쨌든 물 속성 에스퍼가 비행이 가능해졌다는 건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건 연구 가치도 충분하다고 봐요. 사실 이미 연구소에서도 연희윤 에스퍼가 작성할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대한 상세히 기입해서 올리겠습니다.”

희윤의 대답에 조 이사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만족한 미소를 띠었다.

“좋아요. 그럼 지금까지 한 것 정리해서 보내 주세요.”

“네.”

조 이사와 훈련장을 나온 희윤은 조사팀으로 돌아왔다. 희윤은 곧장 자리에 앉아 문서 창을 열었다.

조 이사가 말한 대로 오늘 구현한 능력을 보고서로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느릿느릿 키보드를 누르며 문서를 작성하는 사이 출동을 나갔던 김동민이 돌아왔다.

“고생하셨어요. 김동민 에스퍼.”

“네. 연희윤 에스퍼도요. 요즘 조 이사님이 많이 괴롭히죠?”

“저야 그냥 훈련장에서 능력 쓰는 건데요. 출동 다녀오는 게 더 힘들죠.”

“에이, 괴물체가 나온 것도 아닌데요. 뭘.”

김동민이 어깨를 으쓱이고 자리에 앉았다. 단순히 구덩이 속에 커다란 칡뿌리를 보고는 괴물이라고 놀라 신고해 다녀온 것이었다.

“사실 오동리 같은 일이 있는 게 더 특이한 거지. 그거 알아요? 일반인들한테는 본부에서 근무하는 에스퍼들이 일이 없어 매일 논다고 알려졌다는 거.”

“매일 논다고요?”

“네.”

희윤이 무슨 소리인가 하는 눈으로 보자 김동민이 마치 비밀스러운 내용을 털어놓듯이 목소리까지 낮추며 입을 열었다.

“1년에 진짜 괴물체가 나오는 경우는 두세 번. 그나마도 떠들썩하게 사건이 벌어지는 일은 얼마 안 되잖아요. 나머지는 그냥 월급이나 받으면서 훈련 혹은 대련만 하니까 그런 말이 도는 거죠.”

“아.”

“그래서 다들 꿀 보직이라고 해요.”

그런가. 들어오자마자 여러 사건을 겪었던 희윤은 공감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올해가 좀 유난스러웠던 거지. 작년만 해도 달랑 두 번이었어요. 조사팀이 나갔다가 야생 동물, 유기 동물 그도 아니면 그냥 잘못 보고 신고한 건수가 다였다니까요.”

그러니까 출동 못 한 거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며 김동민이 말을 마쳤다. 아마 희윤이 신경 쓰고 있는 걸 알아채고 한 말인 듯했다.

7월로 들어서며 장마 대신 뜨거운 계절이 시작되었다. 연일 30도 중후반을 웃도는 기온에 여기저기 휴가를 간다는 사람들 얘기가 들려왔다.

“연희윤 에스퍼는 언제 가요?”

“아직 생각 안 해 봤어요.”

“휴가를요? 아직?”

“네.”

사실 휴가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희윤이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휴가는커녕 휴일도 제대로 챙겨 본 적 없으니 당연했다.

“그런 건 가장 먼저 챙겨야죠. 얼른 팀장님한테 얘기해요. 그래야 원하는 날짜에 갈 수 있으니까.”

김동민이 탁상 달력을 보며 본인이 다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때 희윤이 떠올린 건 해승은 어떻게 하려나 하는 것이었다.

‘이따 퇴근할 때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며 희윤은 다시 보고서 작성에 집중했다. 그래도 요즘 한글을 자주 사용해서 키보드 두드리는 속도가 조금 빨라진 것 같았다.

해가 길어진 덕분에 퇴근 시간이 되었는데도 밖이 훤했다. 그래서인지 엘리베이터 안에는 이런저런 약속을 잡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그들 틈에서 희윤은 조용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끝났다고 연락을 했더니 먼저 차에 가서 기다리라고 답한 해승은 그 후로 조용했다.

“페루로 간다고?”

“응. 이번에 연차까지 싹 다 끌어모아서 3주 신청했거든.”

해외로 휴가를 간다는 얘기에 희윤의 관심이 그리로 향했다.

“대단하다. 그 먼 데를. 페루면 뭐가 있지?”

“마추픽추가 있지!”

“아, 아. 그거! 와. 나도 보고 싶던데. 안데스산맥에 있는 세계 문화유산 맞지? 엄청 멋지겠다!”

“맞아. 근데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

“왜?”

“지금 그쪽 불 때문에 난리 났거든.”

“산불?”

“아니. 괴물체 때문에 산맥 쪽의 불이 꺼지지 않고 빠르게 퍼져서 난리래.”

엘리베이터가 내려갈 때까지 희윤 앞에 있는 두 명이 속닥속닥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로비에 멈추어 서고 문이 열리자 잠시 멈추었던 얘기는 금세 이어졌다.

“휴가라…….”

확실히 휴가철이긴 한가 보다. 다들 놀러 가는 얘기하는 걸 보니. 차에 올라서 희윤은 인터넷 창을 열었다.

뭘 검색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데 마침 대형포털사이트에 여름휴가 인기 국내 여행지 베스트 5라고 쓰인 제목이 눈에 뜨였다.

클릭하고 보니 희윤도 이름은 들어 봤으나 가 본 적 없는 지명이 주르륵 떴다. 제주, 부산, 인천 등등.

전부 푸른 물결이 찰랑거리는 바다였다.

“바다 좋지.”

자연히 생각은 해승과 잠시 가 보았던 해마리 해수욕장과 이어졌다. 사실상 희윤에게 바다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불과 몇 시간밖에 머물지 못했고, 그마저도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로 빠르게 돌아와야 했지만.

“그래도 해승이랑 같이 가면.”

입 밖으로 말을 꺼냈다가 희윤은 멈칫했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해승과 함께 가는 걸 생각하고 말았다.

본인은 어떨지 모르는데.

희윤이 쓰게 웃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끄고 고개를 들었다. 대체 언제 온 건지 해승이 차 앞에 서서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희윤과 눈이 마주치고야 해승의 몸이 움직였다. 금세 운전석 문이 열리고, 해승이 올라탔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봤어요?”

“휴가 때문에.”

“휴가요?”

생각도 못 한 답이었는지 해승이 드물게 놀란 표정을 했다.

“응. 같은 팀원이 얘기하길래. 어딜 가면 좋을까 보고 있었어.”

“어디로 가려고요?”

“글쎄…….”

“제주도 갈까요? 형. 거기도 안 가 봤죠?”

“그렇지.”

희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해승을 보았다. 조금 전 고민한 게 무색하도록 해승은 당연하게 함께 갈 생각을 하는 듯했다.

“그럼 제주로 가요. 비행기도 안 타 봤을 테니까 이번에 경험하고.”

“비행기는 타 봤잖아.”

“언제요? 본부 전용기요? 그게 무슨 비행기예요.”

눈까지 반짝반짝 빛내며 신나게 말하는 해승을 보며 희윤은 슬그머니 웃었다. 한없이 가라앉던 기분이 도로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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