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7화 (57/85)

해승이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무실로 들어오니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누구는 시선을 피했고, 누구는 전화를 받는 척했으며 또 누구는 커피나 마셔야겠다며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것은 무척 공교롭게도 꼭 해승이 나타난 직후에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출근한 이후로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리 남들 신경 쓰지 않는 그라도 이쯤 되니 무시할 수 없어졌다. 그렇다고 무슨 상황인지 모르는데 무턱대고 아무나 붙들고 다그칠 수도 없었다.

해승은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이 정도로 제 눈치를 보고 있는 걸 봐서는 조만간 누군가가 표를 낼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딩동.

경쾌한 알림이 해승의 신경을 끌어갔다. 액정을 내려다보니 희윤에게 온 메시지가 떠 있었다.

[내 에스퍼 : 나도 아침 잘 먹었지. 넌 출근 무사히 잘했어? 오전 11:04]

해승은 아침 식사를 하면서 희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눈을 뜨자마자 잘 잤느냐고도 보냈다.

물론 출근하면서도 자기는 지금 본부에 간다면서 형은 뭐 하고 있느냐고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시차를 두고 세 번이나 연속으로 메시지를 전송했는데 이제야 답이 돌아온 것이었다.

[나 : 네. 형. 저야 잘했죠. 형은 아침부터 바빴나 봐요. 오전 11:05]

조 이사가 어지간히 괴롭히는지 지방으로 출장을 간 후 희윤에게서 제때제때 답이 온 적이 없었다.

그게 불만스러워 차라리 영상 통화를 할까 하다가도 희윤이 괜히 신경 쓸까 봐 참는 중이었다.

이 얄팍한 인내심이 끊어지기 전 부디 희윤이 제 곁으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었다.

[내 에스퍼 : 응, 그러게. 미안해. 답장 매번 늦어서. 오전 11:05]

곧장 돌아온 메시지는 사과만 달랑 적혀 있었다. 말주변 없는 게 참 그 사람다웠다. 해승은 피식 웃으며 희윤에게 일 열심히 하라는 응원을 던지고 고개를 들었다.

때마침 사무실로 들어오던 가이드와 눈이 딱 마주쳤다. 가이드가 움칠 어깨를 떨더니 ‘딸꾹. 딸꾹딸꾹.’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딱 봐도 이쪽에 찔리는 게 있다는 티가 팍팍 났다.

해승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망설이지 않고 곧장 몸을 일으켜 아직도 창백한 낯으로 제 눈치를 보는 가이드 앞에 다가갔다.

“히익.”

마치 맹수라도 만난 사냥감처럼 가이드가 질색했다. 등 뒤에 다른 가이드들이 쯧쯧 혀를 차거나 안타깝게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해승은 그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건 마음 약하고, 겁도 많아서 조금만 협박하면 원하는 말을 줄줄 늘어놓을 상대였다.

“잠깐 얘기 좀 할까?”

해승이 바깥을 턱짓하자 가이드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목이 물린 사냥감처럼 새하얗게 질린 채 비척비척 걸어갔다.

그들 뒤에서 남은 가이드들이 숙덕숙덕했다.

“표해승 가이드 진짜 짐승 아냐? 어떻게 골라도 딱 제대로 고르네.”

“맹수죠, 맹수. 사파리의 사자. 감이 보통이 아니잖아요. 성깔은 더 보통이 아니고.”

“그나저나 어째요. 가서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도와요? 누가요? 박 가이드님이 갈래요?”

“아니, 제가 어떻게…….”

그럼 대체 누가 가느냐고. 어이없어하는 눈길에 박 가이드가 바쁘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마치 급한 일이 있었다는 듯 서둘러 키보드를 두드려 댔다. 어차피 이 자리에 해승을 상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저 끌려간 가이드가 무사히 복귀할 수 있도록 속으로 기도를 해 줄 뿐. 그러면서도 무슨 대화가 오갈지 궁금해 자꾸만 관심이 갔다.

* *

해승이 목표물을 이끌고 간 곳은 휴게실이었다. 나타나자 먼저 와 있던 이들이 두 사람의 심상찮은 분위기에 눈치껏 자리를 비켰다.

“말해.”

해승이 입구를 막듯이 서서 가이드를 쳐다보았다. 딱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가이드는 “힉.” 하고 헛숨을 들이켰다.

해승이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그의 앞에 있는 가이드는 해승이 무서워 희윤과 매칭 테스트도 제대로 끝내지 못하고 도망쳤던 상대였다.

“뭐, 뭐, 뭘 말, 마, 말하라고 하시는지.”

“왜 나 보자마자 놀랐는지 말하라고.”

“어, 어, 그, 그런 적 없는데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불안해하는 주제에 그런 적 없다니. 해승이 코웃음을 쳤다.

“지금 말하는 게 좋을걸. 나중에 내가 알았을 때, 무사히 넘어가고 싶으면.”

“윽.”

너무 놀라 혀를 깨문 가이드가 신음을 흘렸다. 우연히 정류장을 지나가던 길에 본부에서 나온 직원 둘이 하는 말을 들었다.

페루로 파견 간 에스퍼들에 관한 얘기였다. 그런데 그 멤버에 요즘 본부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끈 희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거기까지라면 그도 그렇게 흥미를 보이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희윤의 담당 가이드로 정소한이 함께 했다는 소리에는 절로 걸음이 멈춰졌다.

그리고 본부로 출근한 그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다. 본부에는 희윤이 지방으로 출장을 갔다고 알려졌다는 것이었다.

그쯤 되니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 듯했고, 이 재미있는 걸 자신만 알 수 없어 친한 동료에게 떠벌렸다.

‘그런데 그 녀석이 그렇게 입이 가벼운 줄 몰랐지!’

문제는 그 동료가 말을 옮기기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희윤과 정소한, 해승을 둘러싼 묘한 소문이 순식간에 돌게 되었고 그때부터 가이드는 전전긍긍했다.

해승이 알게 되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후회해 봐야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그는 도망갈 데가 없었다.

“실은…… 어제 우연히 들은 얘기가 있거든요.”

“뭘?”

가이드는 주저주저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연희윤 에스퍼가 페루에 있다고요.”

“페루?”

해승이 눈살을 찌푸렸다.

“남섬에 있는 연구소가 아니라? 언제?”

“어, 언제인지는 저도 잘…….”

“누구랑?”

하긴 중요한 건 시기가 아니다. 자신이 희윤의 파견 소식을 몰랐다는 거다. 그 말은 저 말고 다른 가이드와 함께 갔다는 소리 아닌가. 해외 파견은 담당 가이드의 동행이 필수였으니.

“저기, 그, 그게요.”

가이드가 눈을 질끈 감고 와락 외치듯이 말했다.

“정소한 가이드요.”

해승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형이, 누구랑, 갔다고?”

마치 가위로 싹둑싹둑 자른 것처럼 말이 튀어나왔다. 그게 어찌나 살벌한지 가이드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하.”

새하얗게 질린 가이드를 보는 해승의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확실해?”

“어? 네. 그, 그게. 지원팀 직원들이 얘기하는 걸 들은 거라…….”

“그래?”

가이드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해승이 못 볼까 봐 큰 동작으로 두 번 더 반복했다.

삐딱하게 있던 해승의 얼굴이 바로 세워졌다. 곧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분명 화사하고 안심이 되는 표정인데 어쩐지 그걸 보고 있는 가이드는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들 살살 눈치를 봤구나.”

해승이 겁먹지 말라는 듯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당장 확인해 봐야 했다. 지금 제가 알게 된 게 사실인지.

해승의 걸음은 곧장 지부장실로 향했다.

“왜?”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침 통화를 마친 지부장이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며 뚱하니 물었다.

“형, 페루에 있다면서.”

“……뭐?”

마주치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피하는 시선. 떨리는 입술. 지부장은 뜻밖의 얘기에 표정을 감출 생각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드러냈다.

평소였다면 능숙하게 감추었을 텐데. 하필 조금 전 통화 상대가 조 이사였기에 더 당황한 것이었다.

“사실인가 보네.”

해승이 단번에 확신했다. 더는 머뭇거리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대로 몸을 돌려 가 버리려는 해승을 지부장이 재빨리 달려와 붙들었다.

“어디 가!”

“어디겠어?”

해승이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쳐다보자 지부장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진짜 가려고?”

“왜?”

“왜긴 임마! 그렇게 무턱대고 움직이면 어떡해. 허가받아야지.”

“허가?”

내가 그런 걸 받아야 해? 해승은 더 말하지 않고 그런 눈빛을 보냈다. 지부장이 얼른 대답했다.

“당연하지. 너 S급이잖아. 해외로 갈 때는 정부에 미리 보고해야 하는 거 몰라?”

그 때문에 이번 파견에 해승이 참여하지 못한 게 아닌가.

정부에서 해승의 해외 파견을 달갑게 생각할 리 없었다. 그래서 지부장도 희윤이 해승 대신에 정소한과 간다고 했을 때 납득했다.

해승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벌어질 후환이 두려워 조 이사의 계획에 동참한 게 절대 아니었다.

“그러게, 이상하네. 희윤 형이 왜 그랬을까?”

해승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뭐가?”

“나중에라도 나보고 오라 그러면 되잖아. 평소의 형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거란 말이지.”

그런데 왜 굳이 저에게 말하지 않고 정소한을 데리고 갔을까.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요즘 희윤이 이상한 건 알고 있었다. 다른 고민이 있는 듯 자꾸 피했으니까. 며칠 전 희윤은 그게 조 이사와 출장 때문에 그랬다고 둘러댔었다.

그때도 해승은 전부 믿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이유를 더 캐물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가 되었든, 희윤이 제 곁에 있는 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속일 줄이야.

“됐어, 이유는 직접 들으면 되니까.”

뭐가 됐든 희윤을 만나야 했다. 오해를 한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었던 건지. 가만 기다리는 건 해승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가겠다니. 안 된다니까.”

지부장이 어떻게든 해승을 말려 보려고 했지만, 먹힐 리 없었다. 바깥으로 따라 나온 지부장을 기어이 떼어 낸 해승이 개인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공항에 전용기 준비해. 바로 갈 거니까.”

- 네. 준비하겠습니다.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페루.”

잠시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듯 알겠다는 대꾸가 돌아왔다. 이유를 묻거나 출국이 어렵다는 등 해승을 거슬리게 하는 소리는 일절 없었다.

해승이 어렸을 적부터 전담해서 곁을 지켰던 만큼 비서는 제 역할과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통화를 끝낸 해승은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이번엔 제 할아버지인 표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지금 해외 갈 거예요. 수속 준비해 주세요.”

달랑 제 요구만 내던지듯 말하고 전화를 끊어 버린 해승은 그대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올랐다.

끼기긱.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출발한 SUV가 순식간에 본부 건물을 빠져나갔다. 당연하게도 해승이 향한 곳은 공항이었다.

예상대로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아무도 그를 막아서지 않았다. 활주로를 달려 마침내 하늘을 날아올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 *

헉. 헉.

희윤은 거칠게 숨을 뱉으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감탄을 흘렸다. 세계 문화유산이라고 하더니 마추픽추는 정말 웅대하고 아름다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온 산을 헤집고 다니는 괴물체를 상대하느라 멋진 고대의 유적을 감상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안데스산맥에서의 전투는 괴물체도 괴물체였지만 며칠이 지나도 적응이 안 되는 고산증으로 인한 여러 가지 복합 요소가 더 큰 문제였다.

조금만 격하게 움직이면 금세 호흡이 가빠졌고, 몸은 마치 무거운 물건이라도 짊어진 듯 한없이 무거워졌다.

고작 낮은 언덕 하나 올라가는데도 헉헉거리게 되니, 그만큼 체력도 금방 떨어지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능력을 쓰면 안정도가 떨어지고 자연히 그에 따른 증상이 발생하는데 그저 가벼운 두통이면 될 게 매스꺼움이나 구토, 더 심한 경우 팔이나 다리, 안면에 약하게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다.

괴물체가 만들어 내는 산불도 전투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지금도 멀지 않은 곳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숲이 타오르고 있었다.

조금 전 지나간 괴물체의 꼬리가 나무에 닿으며 그 위로 불이 옮겨붙은 것이었다.

“저기! 물 뿌려!”

고함이 터진 직후 기다렸다는 듯 물 속성 에스퍼 둘이 달려와 능력을 구현했다. 불길이 주춤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괴물체를 잡지 않는 이상에는 산불을 전부 소화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걸 희윤도, 다른 에스퍼들도 알았다.

그때 지축이 거세게 흔들렸다. 희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꾸에에에엑.

돼지의 울음과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온 숲이 진동하는 듯했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곧이어 땅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이 소리는 혼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곧이어 불타는 숲에서 마침내 거대한 짐승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나타난 건 야생동물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험상궂고 무시무시한 뿔을 가진 괴물체였다. 코를 벌렁거릴 때마다 시꺼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꼬리에는 시뻘건 불이 활활 타올랐다.

“불 돼지 나타났다!”

“11시 방향! 세 마리!”

다급한 외침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괴물체 여러 마리가 사방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9시 방향!”

다시 한번 들린 소리에 희윤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변했다. 허공 중에 만들어진 물줄기가 회오리치듯 회전하며 여러 갈래로 쏘아져 나갔다.

꽈아앙.

거대한 물줄기가 내리꽂히며 엄청난 굉음을 냈다.

꾸엑!

꿰에에엑.

기괴한 소리와 함께 괴물체 두 마리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괴물체와 부딪친 물줄기는 산산이 부서져 타오르는 불을 덮치고 기세를 수그러지게 했다.

공기 중에 진한 피비린내가 올라왔다. 그곳을 바라보는 희윤의 눈동자는 아직도 파랗게 남실거렸다.

삑. 삑. 삑삑. 삑.

그때 스마트워치가 시끄럽게 울렸다.

- 경고! 에스퍼님의 안정도가 50% 이하로 하락했습니다.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경고를 알렸다. 희윤은 힐끗 손목을 내려다봤다. 이곳에서 전투를 시작한 후로 안정도는 60% 이상 올라간 적이 없었다.

정소한이 꾸준히 가이딩을 해 주지만 시간은 한정적이고 계속 능력을 사용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희윤은 팔을 뚝 떨어뜨리고 괴물체가 쓰러진 곳으로 걸어갔다. 확실하게 목숨이 끊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와. A급이 다르긴 다르네.”

“그러게요. 혼자서 두 마리를 한 방에 처리해 버리다니.”

조금 전 산을 태우는 불길을 저지하던 에스퍼 둘이 속닥속닥 말했다.

- 경고! 에스퍼님의 안정도가 50% 이하로 하락했습니다. 가이딩이 시급합니다.

희윤이 괴물체에 다가간 직후 다시금 경고음이 들려왔다.

- 연희윤 에스퍼! 얼른 돌아오세요. 가이딩해야 해요!

이어 정소한의 목소리가 스마트워치에서 흘러나왔다.

희윤은 대답 대신 괴물체를 살폈다. 숨이 끊어진 건 확실한 듯했다. 코에서 더는 시꺼먼 연기를 토하지 않았고, 내내 타오르던 꼬리의 불도 사그라들었다.

무엇보다 주변을 태우던 불길이 잦아들고 있었다.

- 연희윤 에스퍼. 듣고 있어요?

다시금 정소한이 희윤을 불렀다.

“네. 지금 돌아갈게요.”

그제야 대답한 희윤의 발밑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둥실.

물은 구름이 되어 희윤을 허공에 띄워 올렸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남겨진 에스퍼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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