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85)

“내가 그 둘 매칭 테스트하는 데 뭘 관여했다 그래. 그쪽 S급이 먼저 요청했다니까?”

해승이 지부장실에 들어갔을 때, 지부장은 미간을 확 구긴 채 통화 중이었다.

“솔직히 급이 문제야? 그리고 A급 가이드가 어때서? 가이딩만 잘되면 그만이지.”

해승의 존재를 알아챈 지부장이 눈짓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해승은 소파로 가는 대신 지부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지부장이 왜 그러냐는 시선을 보내왔지만, 빙글빙글 웃으며 넘겼다. 그러더니 책상에 기대앉으며 지부장의 스마트폰에 귀를 가져갔다.

- 그러다 또 매칭률 바닥 쳐 봐. 담당 에스퍼들한테 공문까지 보내겠다는데. 쪽팔려서 어떡해!

어찌나 성량이 좋은지 상대편이 말하는 게 선명히 들려왔다. 짜랑짜랑한 목소리의 주인은 인천지부장이었다.

“아직도 쪽팔린 걸 생각하시네요. 급한 건 이쪽이 아니라 그쪽이잖아요?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여유도 없으실 텐데. 괜히 우리 지부장님 속 터지게 하지 말고 매칭 테스트나 잘하세요.”

해승이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순간 반대쪽이 조용해졌다.

- 표해승이지 너! 너, 네 일 아니라고 그렇게 함부로……!

이윽고 인천지부장이 잔뜩 흥분해서 말을 쏟아 냈다. 그와 반대로 해승은 시종일관 차분했다.

“내 일이 아니긴요. 최관우랑 정소한의 매칭률이 높게 나오면 나한테도 좋은 일인데. 어차피 지부장님 우리 본부 자꾸 들락거린 거 나랑 최관우 엮으려고 그런 거 모르는 사람 있나?”

인천지부장이 씩씩거렸다. 화가 난 건지, 아니면 기가 막힌 건지 말도 제대로 못 했다. 해승은 아랑곳없이 덧붙였다.

“그러니 매칭 테스트 진행하세요. 최대한 빨리.”

마치 제가 지부장이라도 되듯 허가까지 내렸다. 심지어 인천지부장이 무어라 말하는데, 스마트폰에 손을 가져가 화면을 툭 터치했다.

띠리릭.

통화가 허무하게 종료되는 소리가 들렸다. 지부장은 황당한 눈으로 액정과 해승을 번갈아 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넌 또 어떻게 알았어?”

“뭘요?”

“최관우 에스퍼와 정소한 가이드가 매칭 테스트할 거라는 거.”

“최관우가 전화했거든요. 최대한 빨리 잡아 버리세요. 인천지부에서 더 귀찮게 못 하게.”

해승이 몸을 돌려 소파로 향하며 말했다. 지부장도 스마트폰을 품에 넣고 그 뒤를 따르며 투덜거렸다.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 매칭은? 둘이 잘 맞아야 가능한 거지. 그리고 인천지부장 하는 거 봤잖아.”

“글쎄요, 전 느낌이 좋은데? 오히려 매칭률 높으면 우리한테도 유리할 거 같은데요?”

해승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불량하다면 불량한 자세지만, 지부장은 거기까진 신경 쓰지 못했다.

“유리하다고?”

대체 뭐가 유리하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최관우한테 유일한 담당이 생기는 거잖아요. 임대 계약 맺을 때 지부장님이 콧대 좀 세울 수 있을 텐데요.”

그 말에 지부장이 피식 웃었다.

“그래, 잘된다면 말이지. 일단 정소한 가이드 담당 에스퍼들한테 공문은 보내야겠네.”

“그러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그쪽에 관심을 끊은 해승이 가지고 온 물건을 툭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손바닥 정도 크기인 철제 상자였다.

지부장이 눈을 반짝 빛내며 상자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닿기도 전에 해승이 도로 가져가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뭐야?”

해승은 대답 대신 상자를 열어 지부장 앞에 놓았다. 안에는 고작 손가락 세 마디 정도 되는 작은 총이 들어 있었다.

“최근 개발된 다트 건이에요.”

“성능은 어때? 지난번 마취총은 대형 괴물체에는 사실상 효과가 거의 없었잖아.”

“글쎄요. 일단 실험 결과, 서해만 갯벌에 등장했던 괴물체 정도의 크기는 20초 안에 움직임을 둔화하고 10분 안에 잠재울 수 있다고 했다더군요.”

서해만 갯벌에 등장했던 괴물체는 올해 출몰한 것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종에 속했다. 그걸 10분 안에 기절시킬 수 있다는 건 대단히 성능이 좋다는 의미였다.

일반 마취총의 경우 대상이 마취 상태에 이르기까지 길면 1시간도 걸리곤 했으니까.

“20초면 가이드들한테는 좀 위험한데…….”

이능력자 관리 본부에서는 예전부터 꾸준히 가이드들을 위한 무기 개발에 힘쓰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괴물체와 맞닥뜨렸을 때 방어 수단으로 쓸 수 있는 마취총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괴물체는 인간보다 대부분 신체 능력이 뛰어났다. 20초는 언뜻 짧아 보일 수 있지만 실상 위험한 수치였다.

“괴물체한테 먹히는 걸 막아 주는 것만 해도 어디예요. 나머진 본인이 죽기 살기로 도망쳐야죠.”

해승이 무심하게 말을 던지며 마취총을 자연스럽게 품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본 지부장이 어이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뭐야? 그게 왜 네 품으로 들어가?”

“언제 쓸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뭐 겸사겸사 직접 테스트도 해 보고.”

태연하게 나오는 대꾸에 지부장은 “허.” 하고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뭐. 성과는 보고서로 작성해서 보내라.”

어차피 저걸 개발한 것도 수호 그룹이고, 개발을 지시한 사람도 해승이다. 괜히 더 말해 봐야 입만 아플 것이 뻔해 지부장은 깔끔히 포기했다.

* *

희윤은 모처럼 혼자 퇴근했다. 해승이 일이 있어 지부장과 미팅을 해야 한다며 먼저 가라고 연락했기 때문이었다.

조용한 거실을 가로질러 드레스룸으로 향한 희윤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가 문득 시선을 주방으로 던졌다.

“저녁 못 먹고 퇴근하겠지?”

아직 배도 고프지 않으니, 해승이 올 때를 기다려 같이 먹으면 좋을 듯했다.

“뭐가 있으려나…….”

커다란 냉장고를 열어 본 희윤은 차곡차곡 정리된 반찬과 채소, 과일을 쓱 훑었다. 다른 냉장고를 열었더니 차돌박이부터 삼겹살까지 고루고루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냉장고 문에는 소주와 맥주도 브랜드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 따로 마트에 다녀올 필요도 없을 듯했다.

“좋아. 그럼 차돌박이 된장찌개하고, 삼겹살에 소주 먹자고 해야겠다.”

저녁 메뉴를 결정한 희윤이 빠르게 찌개를 끓일 재료를 선별해 냈다. 도마에 호박, 양파, 감자를 올려 둘 때였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걸 보니 전화가 걸려 온 듯했다. 들고 있던 식칼을 내려놓은 희윤이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 액정을 봤다. 발신자는 해승이었다.

“응, 해승아.”

전화를 받는 희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목소리에도 반가운 빛이 흘러나왔다.

- 형, 어디예요?

“어디긴 집이지.”

- 그래요? 뭐 하고 계시는데요?

“아, 그냥 TV 보고 있었어.”

희윤은 저도 모르게 둘러대고 말았다. 시선이 절로 도마에 내려놓은 채소들로 향했다. 어쩐지 너 밥해 주려고 요리하고 있었다는 소리를 꺼내기가 민망했다.

- 그래요? 알겠어요. 저도 곧 갈 테니까 들어가서 쉬고 계세요.

다행히 해승은 뭘 보고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희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끊으려다가 혹시나 하고 물었다.

“저녁은?”

- 안 먹고 들어갈 거예요. 배고프면 먼저 드세요.

“나도 아직 생각 없어. 오면 같이 먹자.”

- 좋죠. 그럼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갈게요.

아까와 비슷한 말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조금 전보다 더 달콤하게 들려왔다. 심장께가 간질거리는 기분에 희윤의 입꼬리가 움칫움칫했다.

“삼겹살에 소주 어때?”

- 좋죠.

단번에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뒤에 이어지는 웃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심장이 또 콩콩 뛰면서 제 존재를 과시했다.

“알았어. 그럼 준비해 두고 있을게.”

- 네. 형. 금방 봐요.

“응.”

통화를 종료하고 호박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는 희윤의 손놀림이 경쾌했다.

* *

희윤과 통화를 마친 해승은 입가에 살짝 걸었던 미소를 순식간에 걷어 냈다. 그의 앞에는 지난번보다 행색이 나아진 연동수가 서 있었다.

연동수는 비굴한 눈빛, 어색하면서도 어떻게든 호의적으로 보이려 노력하는 경직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제 아들과 해승이 전화하는 걸 들으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런 모습이 해승에게는 훤히 보였다.

“둘이 사이가 정말 좋은가 봐.”

“네. 같이 산 지도 오래됐고요.”

같은 집에서 지낸다는 소리에 연동수의 눈빛이 또 번쩍했다. 어쩜 자신의 예상보다 얻어 낼 수 있는 게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래? 그럼 앞으로도 쭉 잘 지냈으면 좋겠네. 해승 군도 알다시피 희윤이 녀석, 내내 혼자 지냈지 않은가. 제 할머니 보내고 말이야.”

연동수는 해승이 뒤를 봐준 이후로 일이 술술 풀려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빚은 모두 갚았고, 그도 모자라 보태 쓰라며 돈도 제법 받았다.

덕분에 제 식구들에게 어깨를 쫙 펴고 가장 행세를 할 수 있었다. 그간 저를 무시하던 주변인들에게도 여봐란듯이 돈을 펑펑 썼다.

그러다 최근 다시 또 좋은 기회가 떡하니 나타났다. 필리핀에서 진행되는 큰 사업이 있는데 투자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된 것이었다.

며칠 고민하던 연동수는 곧 해승을 떠올렸다. 물심양면으로 저를 챙겨 주었으니 이번에도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나기는 했는데 어떻게 본론을 꺼내야 하나 망설이게 되었고, 희윤을 팔아서 가까스로 대화를 시도하는 중이었다.

“네. 그럴 생각입니다.”

해승은 이미 비서를 통해 연동수가 왜 저를 찾아왔는지 알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그러니 더 시간 끌지 말고 본론이나 말하라는 뜻으로 웃어 보였다.

“어…… 그게 말이야. 별건 아니고…….”

연동수가 두 손을 마주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공간이 분리된 카페라 다른 사람은 보지도, 듣지도 못할 텐데도 괜히 신경이 쓰였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도움이 좀 더 필요하네.”

“그러시군요. 얼마나 필요하신 건가요?”

연동수는 곧바로 나온 해승의 말에 도리어 망설였다. 본래는 한 3억 정도만 말해 볼 생각이었다.

최근 친해진 친구의 지인의 아는 사업가가 그 정도면 수익률 200%를 보장한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해승이 얼마를 원하냐 물으니 더 욕심이 생겼다.

연동수가 입가를 떨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10억 빌려줄 수 있겠나? 물론 그냥 달라는 건 아니네. 사업이 안정되면 이 돈은 꼭 갚지.”

연동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혹시 거절당할까 봐 서둘러 지키지도 못할 약속도 던졌다. 그가 두 손을 마주 잡아 긴장감을 애써 억눌렀다.

“그러죠.”

다리를 꼬고 의자에 기대듯 앉아 잠시 침묵하던 해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안감에 떨던 연동수는 긍정적인 대답에 얼떨떨해하는 얼굴로 제 구원자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황홀하게 빛났다.

‘대체 이런 보물 창고가 왜 이제야 나타났지!’

이제는 억울할 지경이었다. 만약 희윤이 좀 더 빨리 에스퍼가 되어 눈앞의 도련님과 만났다면 더 일찍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헛된 생각마저 머리에 스며들었다.

“좀 더 넉넉하게 50억 준비하겠습니다. 필요한 만큼 쓰세요.”

해승은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연동수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쐐기를 박듯 선심을 썼다.

“그래도 되나?”

연동수는 감동했는지 손까지 벌벌 떨어 댔다. 50억이라니 평생 쥐어 보기도 힘든 돈이 아닌가. 반대로 해승은 여전히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사업 자금으로 쓰시려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묻는 해승의 말투가 조금 건방지게 들릴 법도 한데, 연동수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맞네. 그게 말이야, 이번에 내가 듣게 된 사업이 필리핀에 있는…….”

오히려 해승의 얼마든 원하는 대로 준다는 말에 눈까지 반짝거리면서 묻지도 않은 사정을 주절주절 떠들어 댔다.

해승은 지루해하는 눈빛으로 허황한 소리를 들었다. 뻔한 사기 수법에 저렇게 넘어가는 사람이 있다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우스웠다.

해승은 귀가 따갑도록 얘기하는 연동수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액정을 툭툭 두드렸다. 비서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말씀하신 50억, 연동수의 계좌로 송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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