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를 좀 더 확실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인지 숫자는 굵게 표시된 상태였다.
“연희윤 에스퍼도 각인에 관해서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봤을 테지만, 그 점은 각오하는 게 좋아요.”
해승과의 가이딩 매칭률도 89%였다. 희윤은 괜히 그게 두 사람의 성공률을 더 올려 주는 것처럼 느껴져 자꾸 수치에 눈길을 주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분명 성공할 테니까.”
해승이 호언장담했다.
“그래. 뭐, 네 말이 그렇다면야.”
지부장은 희윤이 처음으로 매칭 테스트를 했을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도 해승은 저렇게 자신만만해했다. 대체 뭘 믿고 저러나 했는데 보란 듯이 매칭률이 최고치를 경신해 버렸다.
이제는 해승이 저렇게 말하면 정말 가능할 것 같은, 아니 어떻게든 그렇게 되도록 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어쨌든 자세한 설명은 연구원이 해 줄 겁니다.”
지부장이 그때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연구원을 돌아보았다. 연구원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럼 각인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화면을 봐 주세요.”
연구원이 벽에 걸린 모니터를 가리켰다. 희윤은 다시금 긴장한 눈으로 그쪽을 봤다. 곧 영상이 흘러나왔다.
각인을 위해서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어느 정도 기간이 소요되는지, 성공 확률이 어떻게 되는지 등 각인에 대한 정보를 담은 영상이었다.
약 20여 분간 이어지던 설명은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각인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의 친밀감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각인 예정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방법은 서로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접촉을…….]
화면에 입을 맞추는 모습이 나오자 희윤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노골적인 장면이 이어졌다.
“보시는 것처럼 각인을 진행할 때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육체적인 결합입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감정과 교감을 가장 효과적으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필이면 두 사람이 입술을 마주 댄 장면에서 영상을 일시 정지한 연구원이 입을 열었다. 덕분에 희윤은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얼굴은 홧홧했고, 괜히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해승의 표정을 확인해 보고 싶으면서도 차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하필이면 어젯밤 해승이 제게 쏟아붓는 애정이 평소보다 깊었기에 더 그랬다.
“형, 어때요?”
제 생각했다는 걸 알아챘나. 해승이 희윤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간지러운 숨결에 희윤이 귀를 쫑긋거렸다.
“뭘?”
애써 태연한 척 묻자 해승이 또 입술을 바짝 붙이며 말한다.
“우리 요즘 계속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애썼잖아요. 그러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죠?”
뭘 어떻게 높이려 애썼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듯했다. 희윤은 해승의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한 귀가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기어이 해승이 귓바퀴에 살짝 입술을 댔다. 동시에 희윤이 목을 움츠렸다.
“너희 뭐 하냐!”
지부장이 그 꼴을 보고 버럭 소리쳤다. 해승은 뻔뻔하게도 웃으면서 희윤을 제 품으로 바짝 당겼다.
“뭐 하긴요. 각인을 좀 더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 애쓰는 거죠.”
“저, 저…….”
지부장의 표정이 썩어 들어 가든 말든 해승은 만족해하는 얼굴을 감추지 않고 계속 희윤에게 장난을 걸었다.
“형, 가요. 들을 건 다 들었으니까.”
아직 설명도 다 끝나지 않았건만, 해승은 아예 서서 희윤까지 일으키려고 했다.
“아직 얘기 안 끝났어. 앉아.”
희윤이 지부장의 말에 도로 엉덩이를 붙이며 해승을 제 옆으로 잡아끌었다. 해승은 순순히 앉으면서도 불퉁한 눈빛을 지부장에게 쏘아 보냈다.
“왜요?”
“왜긴. 준비 뭐 뭐 해야 할지도 들어야 할 거 아냐.”
“따로 준비할 게 있어요?”
“당연하지!”
지부장은 해승을 더 상대하는 대신 연구원에게 마저 말하라고 눈짓했다.
“두 분이야 워낙 매칭률도, 상성도 심지어 각인 예상률도 높아서 걱정이 없지만. 제대로 성공했는지는 연구소에서도 알아야 하거든요.”
연구원의 말에 희윤이 의문 섞인 눈빛을 보냈다.
“저희가 연락드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 그것도 좋겠지만 스마트 워치를 통해서도 알 수 있어요.”
“그런가요?”
“각인이 되면 뇌파가 달라지거든요? 그게 스마트 워치에 수치로 나타나요. 그걸로 1차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희윤은 저도 모르게 스마트 워치를 내려다봤다. 당연히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거 말고도 다른 방법도 있잖아.”
그 말에 희윤은 해승이 각인할 시 변화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해 줬던 것을 기억해 냈다.
“감정과 기분을 알 수 있다는 거?”
“그것도 있고요.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신체에 네임이 나타나기도 하거든요.”
해승이 희윤의 목과 어깨선을 검지로 느릿하게 쓸며 대답했다. 마치 그곳에 네임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네임이라면…….”
그건 희윤도 들어 본 적 있었다. 이능력자들에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인데, 아직 이유는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각인된 에스퍼, 가이드 사이에 발생하는 거라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에 로맨틱한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뭐 네임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긴 하죠. 극히 드물어서 그렇지.”
연구원이 대화에 끼어들며 작은 칩과 케이블을 꺼냈다.
“일단 그건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니 스마트 워치 패치부터 하겠습니다. 연희윤 에스퍼, 팔 좀.”
희윤이 손을 내밀자 연구원이 화면을 툭툭 터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에 새로운 앱이 생겨났다. 미각인 상태인 걸 확인하니 기분이 묘했다.
“보시는 것처럼 이 앱을 통해서 각인 상태 여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내용은 뜨지 않았다. 희윤은 항목에 점선만 나타난 부분을 가만히 보다가 연구원이 이어 설명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각인이 되면 저희 쪽에 곧바로 연락이 올 겁니다. 이후 두 분은 바로 의료 센터로 방문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그때 확실히 각인되었는지 검사를 진행한다며 연구원이 설명을 마쳤다.
“혹시 궁금한 것 있으십니까?”
희윤이 해승을 봤다. 저는 딱히 없어도 혹시 해승은 있을까 해서였다.
“형, 걱정하지 말아요. 우린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
걱정한다고 생각했을까. 해승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도 모자라 희윤의 손을 가져가 꽉 붙들었다.
“언제가 되었든?”
“네, 그게 언제라도.”
해승이 단호히 말했다. 심장이 술렁거렸다. 무어라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목이 꽉 메는 것 같았다. 눈가도 괜히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희윤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해승이 곧바로 손을 뻗어와 붉어진 아랫입술을 빼냈다. 지부장은 기막힌다는 표정을 지었고 연구원은 경악했지만, 희윤도 해승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희윤은 그저 자신감에 찬 눈동자를 가만 바라보았다.
정말로 하나도 걱정할 거 없다고. 저만 바라보고 따라오라고. 그렇게 표정과 눈빛으로 말하는 해승에게 희윤이 대꾸해 줄 말은 하나뿐이었다.
“응, 믿을게.”
쪼로록.
빨대로 음료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경쾌하다. 해승이 얼음이 가득 담긴 복숭아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었다.
희윤이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저기에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희윤은 다시금 집중해서 액정을 내려다봤다. 화면에는 여러 국내 인기 여행지로 가득 차 있었다.
“부산 갈까요?”
마침 부산과 관련된 제목을 클릭했던 희윤이 그 소리에 번뜩 얼굴을 들었다. 해승이 반쯤 비운 유리잔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엔 비행기 탔으니까 이번엔 기차를 타 보는 것도 좋을 듯해서요. 한 번도 이용해 본 적 없거든요.”
“아…….”
그 말에 희윤은 낮게 탄성을 흘렸다. 해승이 처음 해 보는 일이라니. 그런 거라면 희윤도 찬성이었다.
두 사람은 지금 각인에 도전할 장소를 물색하는 중이었다. 물론 집에서 해도 됐다. 지부장도 은근히 그걸 바랐으니까.
하지만 특별한 일인 만큼 색다른 장소에서 하는 건 어떻겠냐고 해승이 의견을 냈다. 그 말을 들으니 희윤의 고개도 절로 끄덕여졌다.
그래서 둘은 의료 센터를 나오자마자 곧장 카페로 자리를 옮겨 각인 장소를 물색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부산이라면 숙소를 알아볼 것도 없으니까 더 편할 거예요.”
희윤이 후보지로 부산을 본 건, 각인에 성공한 이능력자 커플이 부산 지부에서 근무한다던 안효정의 정보 때문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만나고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해승에게 말해야 하고 안효정에게도 부탁해야겠지만.
그런데 마치 해승이 제 고민을 알아챈 듯 먼저 부산으로 가자고 운을 떼 주니 지금이라도 말할까 말까 고민됐다.
“응? 편할 거라니 뭐가?”
그러다 희윤은 조금 전 해승이 던진 의미심장한 말을 떠올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기장에 엄마 소유 별장이 있거든요.”
대수롭지 않게 툭 튀어나온 말에 희윤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하긴 전에 여름휴가를 떠난 곳도 개인이 소유한 섬이라고 했었다.
그러니 부산에 별장이 있는 건 별로 놀랄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해승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때마다 어쩐지 괜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와의 차이를 실감하게 되기 때문일 터였다.
“어, 그래.”
떨떠름해하는 얼굴로 대답하는 희윤의 볼을 해승이 툭 건드렸다. 장난기 어린 손짓에 희윤도 금세 기분을 풀었다. 여행지를 결정한 후 희윤은 곧장 지부장에게 연락했다.
- 그럼 언제 갈 생각이에요?
희윤이 각인을 위한 장소로 부산을 골랐다고 하자 지부장이 날짜를 물어 왔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해승이 끼어들었다.
“내일.”
- ……그래라.
마치 체념한 듯한 지부장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왔다.
- 연희윤 에스퍼. 다시 말하지만, 무리하지 않았으면 해요. 알겠죠?
지부장은 “지겹겠지만.”이라는 말까지 붙이면서 다시 한번 희윤에게 신신당부했다.
- 만약 중단하고 싶은데 표해승이 떼쓰고 안 들어준다! 그러면 당장 연락하고요.
희윤은 몇 번이고 이어지는 지부장의 조언과 염려에 결국 또 웃고 말았다. 해승에게는 비밀이었지만, 사실 그 외에도 비슷한 응원을 여러 곳에서 받았기 때문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지부장님.”
- 감사는. 그럼 이만 끊을게요. 참, 지금까지 담당했던 가이드들에게는 이미 연락이 갔을 거예요. 그러니 별도로 얘기할 필요는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지부장님 이만 끊겠습니다.”
희윤은 정중히 인사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그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던 해승이 손을 내밀었다.
“그럼 이제 가 볼까요?”
희윤이 어딜 가느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해승은 언제나 그렇듯 홀릴 듯한 미소를 선보였다.
“부산이요.”
“부산? 지금?”
지부장에겐 내일 간다고 한 거 아니었나. 뭣보다 벌써 저녁이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지금 출발하면 자정을 넘겨야 도착하는 거 아닌가.
“네. 멀지 않으니까요.”
마치 옆 동네를 가자는 듯 상큼하게 대꾸한 해승이 희윤을 잡아끌었다. 희윤은 황당해하면서도 순순히 해승에게 끌려갔다.
두 사람은 그대로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해승의 차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차에 다가선 희윤이 막 조수석 문을 열려던 때였다.
“내 말이 맞죠?”
“맞긴 뭐가 맞습니까.”
어디선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랬잖아요. 당신이랑 하룻밤 보내고 난 느낌이 꽤 좋다고.”
그런데 능글능글한 말투가 귀에 익었다. 물론 대답하는 사람의 음성도 마찬가지였다. 희윤은 설마 하며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대형 SUV 뒤로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정소한과 최관우였다. 둘은 대화에 집중하느라 주차장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65% 나온 거 가지고 그런 얘기 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정소한이 삐딱한 표정으로 최관우를 올려다봤다. 최관우는 그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했다.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합니까. 그게 나한테는 얼마나 유의미한 수치인데요. 얘기했잖아요? 한 번도 그런 매칭률을 받아 본 적 없다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희윤은 곧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정소한과 최관우의 매칭 테스트 결과가 나온 듯했다.
“그쪽 본부의 최종 병기인 표해승 가이드와도 고작 50%대였어요. 그런데 정소한 가이드, 당신이랑은 65%라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겁니까.”
정소한은 팔짱까지 낀 채 물었다. 말투 역시 꽤 공격적으로 변했다. 의외의 모습이었다. 해승에게 듣기로 둘 사이가 썩 나쁘지 않다고 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매칭 테스트를 마치고 나니 정소한 쪽이 최관우와의 관계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듯 보였다.
“아마 내일 우리 지부에서 공식적으로 연락이 갈 거예요. 정소한 가이드 임대 건으로.”
“거절하겠습니다. 제가 거기 가면 원래 담당하던 에스퍼들은 어쩌라는 건지.”
정소한이 눈을 찌푸리며 정말 마음에 안 든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최관우는 불쾌해하는 표정 하나 없이 싱글싱글 웃었다.
“에이, 그 에스퍼들한테는 정소한 가이드 아니어도 가이딩해 줄 사람들이 있잖아요. 난 당신뿐인데?”
그 말에 정소한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동시에 희윤도 화들짝 놀라 몸을 굳혔다. 돌연 누군가가 뒤에서부터 껴안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대가 누군지는 금세 알아챘다.
“형. 안 타고 뭐 해요?”
다정하게 속삭이는 해승의 음성에 희윤이 힘을 풀었다. 사실은 익숙한 목소리보다 체향과 체온을 먼저 인식했지만, 그 사실은 굳이 티 내지는 않았다.
대신 해승의 품에 기대듯 몸을 밀착했다. 해승은 희윤의 무게감에 기분 좋게 눈꼬리를 휘었다.
뒷머리에 코를 비비며 애정을 한껏 표현하기도 했다. 그게 꼭 대형견이 주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느껴져 희윤의 입매도 슬며시 올라갔다.
“정소한 가이드랑 최관우 에스퍼가 매칭 테스트를 했나 봐. 결과가 괜찮게 나온 것 같아.”
희윤이 뒤로 손을 뻗어 해승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목소리는 사근사근하고 다정한 색을 띠었다.
해승은 제 머리칼을 쓸어 주는 손길을 잠시 음미하다 정소한과 최관우에게 시선을 던졌다. 별로 관심 없다는 무심한 눈빛이었다.
“아, 저도 들었어요. 60% 넘었다면서요? 그것 때문에 지부장이 고민하는 것 같던데요?”
“그래? 하긴…….”
해승은 벌써 알고 있었구나. 희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둘을 보았다.
“본부에서도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긴 하겠다. A급 가이드를 임대 보내는 거니까.”
“네. 그래도 아마 가게 되겠죠. 다른 누구도 아니고 최관우와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인데. 인천지부에서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겠지.”
“무엇보다 최관우한테도 정소한에게도 서로 좋은 일일걸요?”
최관우는 그렇다고 치고, 정소한에게도 마찬가지인가. 하지만 저 태도를 봐서는 썩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무엇보다 정소한이 저러는 거, 제 몸값을 부풀리려고 그러는 거예요.”
“몸값?”
“네. 파견이 아닌 임대니까요.”
에스퍼나 가이드가 다른 지부에서 일하는 방식은 두 가지. 하나는 파견이고 다른 하나는 임대였다.
둘 다 소속은 그대로이되 근무지만 다른 형태였지만, 파견과 달리 임대는 조건을 더 유리하게 붙여 계약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게 달랐다.
“특히나 지금 같은 경우 인천지부가 더 아쉬운 상황이잖아요. 그러니 정소한으로서는 제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을 진행하려는 거죠.”
“아…….”
파견이니 임대니 계약이니 하는 걸 자세하기 이해할 수 없는 희윤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승은 희윤의 동그란 두상에 다시 코끝을 비볐다가 몸을 더 바짝 끌어당겼다. 그 상태로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짤막하게 메시지를 날렸다.
정소한과 대화 중이던 최관우가 알림 소리에 미간 사이를 찌푸린 채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게 보였다.
“어쨌든 뭐, 그건 저 둘이 해결할 일이니까 우린 이만 가요.”
해승이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난 희윤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간지러운지 희윤이 몸을 움츠렸다. 그 순간 최관우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픽 입술만 늘어뜨려 웃는 최관우와 잠시 눈을 맞추고 있던 해승은 그대로 희윤의 몸을 돌려 조수석으로 향했다.
뒤에서 최관우와 정소한이 다시 아웅다웅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해승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