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1/85)

콰과과과.

크애애액.

어마어마한 굉음에 이어 여러 에스퍼가 쏟아 낸 공격에 마침내 괴물체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바다로 검붉은 피가 흘러가는 걸 보던 희윤은 제게 다가오는 사람을 발견했다. 20대 중후반쯤 되는 여성이었다.

덕분에 그나마 남아 있던 희윤과 해승 사이의 묘한 기류는 전부 휘발됐다. 희윤은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려 부지런히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그런 그를 해승이 꼭 껴안으며 다가오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부지런히 걸어오던 에스퍼는 멈칫했다. 꼭 연인 사이를 방해하는 방해꾼이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연희윤 에스퍼. 전 부산 본부 소속 B급 물 속성 에스퍼 고유정이라고 합니다.”

이윽고 부산 본부 소속 에스퍼가 평정을 찾고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와 함께 제 이름, 소속을 밝혔다. 다시 얼굴을 들어 희윤을 바라보는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심지어 대단한 사람이라도 만난 듯 꺼낸 말에 희윤은 어안이 벙벙하여 손부채질하던 것도 멈추었다.

“진작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전투 중이라 좀 늦었습니다.”

고유정이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희윤도 거절할 수 없어 잡으려고 했지만, 옆에서 당기는 힘에 실패했다. 눈을 마주친 해승이 고개를 저었다.

“하하. 괜찮아요.”

고유정은 조금 전 둘 사이에서 보이던 분위기를 생각해내고 얼른 손을 물렸다.

“저쪽 상황은 어떤가요?”

희윤도 한숨을 쉬며 화제를 돌렸다. 그에 고유정도 바로 대꾸했다.

“다행히 머리가 사라지니 더는 재생하지 않아 해결했습니다.”

희윤은 그녀의 말에 괴물체가 절명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에스퍼들이 모인 쪽을 보았다.

“저 그런데 방금 바다에 나타난 개체는…….”

이번엔 고유정이 바다 쪽을 힐끔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은 아까부터 궁금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 모르기는 희윤도 마찬가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대로 사라진 건지 아니면 다시 나타날 건지.”

“아.”

고유정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다시 말을 붙여 왔다.

“괜찮으시다면 연희윤 에스퍼. 지금 일이 정리되면 저희와 잠시 대화를 좀…….”

고유정의 제안은 미처 다 끝맺지 못했다. 마치 무언가를 예고하듯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앗.”

비틀거리던 고유정이 바다를 보며 짧게 소리쳤다. 파도가 다시금 거세게 출렁거렸다.

“바람 속성 에스퍼! 상황을 확인해!”

명령을 들은 에스퍼 둘이 허공에 몸을 띄우더니 심상찮게 변한 바다로 날아갔다. 희윤은 그곳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들이 날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돌연 출렁거리던 파도가 솟구쳐올랐다. 금세 3층 높이가 된 파도는 그대로 날아가던 바람 속성 에스퍼들을 강타했다.

“으아악!”

“꺄악!

짧은 비명과 함께 바람 속성 에스퍼 둘은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지금 그거 뭐야?”

“무슨 일이야.”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사라진 바람 속성 에스퍼들의 일로 부산 본부 에스퍼 모두가 경악했다.

기분 탓일까. 마치 바다 전체가 거대한 괴물체가 된 듯했다.

“이건 꼭, 30년 전 해저에서 괴물체가 해일을 일으켰던 때와 동일한 상황 같아요.”

고유정이 말을 흘렸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에스퍼들의 동요가 조용히 해변에 퍼지고 있었다.

촤아아아아악.

엄청난 소리와 함께 파도가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이어 모습을 드러낸 건 희윤의 공격에 바다로 침몰했던 거대 괴물체였다.

키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괴이한 울음이 공기를 찢어발길 듯 울려 퍼졌다. 그때마다 파도가 넘실거리며 해안가로 밀려왔다.

급변한 상황에 에스퍼들도 바빠졌다.

“본부! 지원 바람. 지원 바랍니다!”

“바닷속으로 떨어진 바람 속성 에스퍼들과 연락 안 됩니다. 잠수부나 잠수 가능한 에스퍼 투입이 필요합니다!”

한쪽에서는 해안을 위협하는 파도를 막고, 다른 쪽 에스퍼들이 스마트 워치에 대고 저마다 한마디씩 던졌다.

- 추가 병력 출동했습니다. 도착 예정 시간 10분!

- 현지 상황 어때? 다른 괴물체 상태는?

스마트 워치에서도 연신 경고 알림과 지시가 쏟아졌다. 괴물체의 눈이 마치 무언가를 찾듯이 해안가를 쭉 훑었다. 그리고 시선이 죽은 괴물체에 닿는 순간.

꽤애애애애애애액.

괴물체가 길게 괴성을 내질렀다.

“어우씨, 저게 뭐야…….”

고유정이 거친 소리를 뱉어 냈다.

“설마 진짜 30년 전 그 개체인가?”

희윤도 바다에서 포효하는 괴물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30년 전 부산 앞바다에서 등장했던 괴물체에 관해서는 그도 잘 알았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도 노출이 되었고, 에스퍼로 각성 후 찾아본 여러 괴물체 자료에서도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개체였으니까.

그런 과거의 무시무시한 괴물체를 다시 맞닥뜨렸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이 평소보다 더 커졌다.

“꼭 판타지물에 등장하는 나쁜 용 같네요.”

옆에서 들린 긴장감 없는 목소리에 희윤의 눈이 옆으로 향했다.

“형도 그렇게 생각하죠? 어쩜 하나같이 저렇게 나타날 때마다 포악하고, 심술궂게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희윤과 눈이 마주치자 해승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희윤은 그런 해승 덕에 불안감이 사라져 픽 웃음을 흘릴 수 있었다.

“고마워, 해승아.”

“음? 뭐가요?”

희윤은 고개를 갸웃하는 해승에게 소리 없는 미소를 보여 주었다. 네 농담 덕분에 조금씩 차오르던 걱정이 단숨에 날아갔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냥, 다.”

그렇게 말한 희윤은 이어 해승의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듯 말했다.

“넌 이제 안전한 곳에 가 있어.”

희윤은 이렇게 된 이상 본격적으로 부산 본부 에스퍼들에게 합류할 생각이었다. 아마 저쪽 물 속성 에스퍼가 말을 건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그러나 희윤의 말을 들은 해승은 움직이지 않고 그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금방 돌아올게.”

희윤이 그런 해승을 보며 다시 한번 설득했다. 그러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손을 뻗어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뺨을 손등으로 쓸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너 다 젖었잖아.”

아마도 아까 거대 괴물체가 만들어낸 파도를 부스며 그대로 맞은 듯한 데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니.

희윤은 제 소홀함을 자책하며 당장 눈을 빛냈다.

“전 괜찮아요.”

희윤이 능력을 구현하는 걸 눈치챈 해승이 만류했다. 그러나 이미 해승의 젖은 옷과 머리칼, 축축했던 피부는 뽀송하게 말라 있었다.

해승은 희윤의 손목을 가져가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이 정도로는 별로 안 떨어져.”

희윤이 얌전히 안정도 표시를 보여 주면서 말했다. 화면에 표시된 안정도는 겨우 1% 정도가 감소된 상태였지만, 해승은 그마저도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금세 가득 채워 버렸다.

꽤애애액.

또다시 담소를 방해하는 괴물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연희윤 에스퍼님!”

아무래도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을 듯했다. 희윤은 고유정의 다급한 부름에 해승을 지나쳐 앞으로 달려갔다. 이미 거대한 괴물체와 부산 본부 에스퍼들의 전투는 시작된 상태였다.

“저희가 저쪽으로 놈을 끌고 갈게요. 연희윤 에스퍼는 바다에 빠진 바람 속성 둘 좀 찾아서 구조해 주세요.”

희윤과 마찬가지로 부산 본부 에스퍼들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고유정이 외쳤다. 그건 희윤이 물구름을 띄워 허공을 날 수 있고 이곳에 있는 모든 에스퍼 중에 가장 물을 잘 다루기에 제안한 말이었다.

“네. 알겠어요.”

희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괴물체를 상대하는 건 그간 여러 전투를 통해서 호흡을 맞춘 에스퍼들끼리 하는 게 더 효율적일 터였다.

희윤이 보기에도 자신은 전투에 합류하는 것보다는 바닷속에서 실종된 이들을 찾는 게 나은 판단 같았다.

몇 분 후 부산 본부에서 급파한 에스퍼 넷이 합류하며 전투는 본격화되었다.

괴물체는 해안가에는 접근하지 않은 채 긴 꼬리를 휘둘러 댔다. 아마도 다른 괴물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기에 뭍으로 나오지 않으려 한 것 같았다.

“제길. 유인하기 쉽지 않겠는데요.”

문제는 괴물체를 다른 데로 끌고 가려고 시도할 수 없다는 것에 있었다. 이미 바람 속성 에스퍼 둘이 바다에 사라진 지 시간이 꽤 흐른 뒤였다.

이 이상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정말 바람 속성 에스퍼들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지 모른다. 아니 최소한 둘을 찾기라도 해야 했다. 그때 옆에서 부산 본부 소속 에스퍼 둘의 대화 내용이 들어왔다.

“괴물체와 가까운 바다 근처에 전격을 쏘는 건 어떨까?”

“괴물체와 가까운 바다 근처에 전격을 쏘는 건 어떨까?”

하늘에서 찍어 내리듯 낙뢰를 쏟아붓던 번개 속성 에스퍼에게 화염 덩어리를 던지던 불 속성 에스퍼가 의견을 낸 것이었다.

“피부가 단단해서 웬만한 공격은 안 먹힐 거 같아서.”

이미 여러 에스퍼가 다양한 공격을 괴물체에게 쏟아부은 후였다. 그러나 대부분 꼬리 짓 한 번에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 외에도 괴물체의 피부는 질기고 단단한 갑옷 역할을 해 꼬리를 피해 공격을 성공시키더라도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음, 확실히 그런 방안이 먹힐 수도 있죠. 아무리 외피가 단단해도 전기는 물을 타고 체내로 흐를 수 있으니까.”

번개 속성 에스퍼가 진지한 눈으로 괴물체 주의를 훑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안 돼요. 전극을 바다에 꽂으면 자칫 근처에 떨어진 에스퍼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어요.”

불 속성 에스퍼가 혀를 쯧쯧 차며 바다 멀찍이 시선을 던졌다. 번개 속성 에스퍼가 조금 조급한 목소리로 희윤에게 의견을 물어 왔다.

“연희윤 에스퍼, 뭐 좋은 의견 있어요?”

희윤도 신중하게 괴물체 주위를 살폈다. 괴물체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떠 있는 걸까요?”

희윤의 물음에 에스퍼들 시선이 일제히 괴물체가 있는 바다로 향했다.

“아예 움직이지 않는 거 보면 바닥에 몸체가 닿아 있는 거 같아요.”

고유정이 질린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희윤은 그런 중에도 괴물체를 주시했다. 확실히 바닥에 몸체가 닿아 있는 건 맞는 듯했다.

그러나 파도가 크게 일어날 때마다 몸은 약간이나마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아예 없진 않았다.

“몸의 균형을 무너뜨려 이동시키죠.”

에스퍼들을 구하려면 한시가 급하니 그 후 전투는 부산 본부 에스퍼들에게 맡긴다는 게 희윤의 생각이었다.

“균형을요? 어떻게요?”

“괴물체가 했던 방법을 우리도 쓰는 겁니다.”

그게 뭐지. 희윤을 향한 눈빛들에 의문이 섞였다. 희윤은 차분하게 자신이 세운 계획을 꺼내 놓았다.

“파도가 크게 일어나면 괴물체의 몸도 함께 출렁이더군요. 해서 그 주변 바닷물을 흔들어 괴물체가 중심을 잃도록 할 생각입니다.”

“저 정도 크기를 움직이려면 웬만한 파도로는 꿈쩍도 안 할 텐데요?”

고유정이 즉시 의견을 말했다.

“네. 맞아요. 그리고 파도로 괴물체를 이동시킨 뒤 시가지까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절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럼 대지 속성 에스퍼들도 힘을 보태죠. 이 정도 수심이라면 바다 밑으로도 지진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바닥이 불안정해지면 더 효과적으로 중심을 무너뜨릴 수 있겠죠.”

희윤의 설명을 듣던 대지 속성 에스퍼가 의견을 냈다.

“우선 이쪽으로 해일이 향하지 않게 물 속성 에스퍼들이 막아야겠네요.”

여러가지 의견들이 줄지어 나오면서 에스퍼들의 표정이 점차 결의에 차 갔다.

“한번 해 보죠! 그렇게 하면 저 난공불락 같은 놈의 약점도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마침내 짤막한 회의가 끝났다. 에스퍼들은 전의를 다지며 바다에 육중한 성채처럼 서 있는 괴물체를 노려보았다.

“연희윤 에스퍼님.”

희윤은 저를 부르는 소리에 나란히 선 고유정을 돌아봤다. 눈이 마주치자 고유정이 쑥스러운 듯 검지로 코를 쓱 문지르며 말했다.

“이 일이 끝나면, 잠시 저한테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으세요?”

희윤이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조금 전 무슨 말을 들었는지 되새겨 보았다. 시간을 내 달라고?

“연희윤 에스퍼와 표해승 가이드. 두 분과 꼭 대화하고 싶었어요. 그…… 각인 관련해서요.”

희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자, 고유정은 작게 웃었다.

“안효정 에스퍼한테 들었거든요.”

“아…….”

그렇지 않아도 부산에 있다는 각인 커플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던 희윤에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희윤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고유정의 얼굴도 환해졌다.

그때였다.

“연희윤 에스퍼. 시작해 주세요!”

희윤은 저를 부르는 소리에 능력을 끌어모았다. 지금은 일단 그보다 먼저 처리할 일이 있었다. 일순 희윤의 눈이 새파랗게 빛났고, 괴물체 주변에서 흔들리던 물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 *

바위를 등진 해승의 곁으로 현장지원팀 직원이 우물쭈물 다가왔다. 희윤이 태워 준 물구름을 타고 박 기사의 손녀를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아이는?”

“부모에게 잘 인계했습니다. 저…… 그리고 서울 지역 중앙 지부에서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파견을 해 주겠다고 지부장님께서 연락 주셨습니다.”

해승은 현장지원팀 직원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무심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만 내내 바라보았다.

희윤이 일으킨 거대한 파도에 휘청대던 괴물체가 돌연 에스퍼들이 있는 해변으로 꼬리를 내둘렀다. 제 주변에 일어난 현상이 에스퍼들 때문이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표해승 가이드가 직접 나서서 처리해 준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기, 그래서 말이지요.”

현장지원팀 직원이 부산 본부에서 비밀리에 지시한 사안을 조심스럽게 꺼내려던 그때였다.

끄애애애애애액.

기이한 울음과 함께 괴물체의 몸체가 크게 한쪽으로 흔들렸다.

“더! 더 쏟아부어!”

“지금이야! 지금!”

“지진 한 번 더!”

에스퍼들의 고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팔이 없는 괴물체는 지축이 흔들리고, 제 몸을 강타하는 타격에 더는 버티지 못했다.

쿠아아아앙.

마치 바닥을 뚫을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괴물체가 바다로 고꾸라졌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대한 파도가 해변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 어어…….”

아까 괴물체가 만들어 낸 해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현장지원팀 직원의 입이 떡 벌어졌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아예 움직일 생각도 못 한다고 했던가.

지금이 딱 그랬다. 얼이 빠진 현장지원팀 직원은 달아나야 한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눈만 크게 떴다.

“연희윤 에스퍼!”

희윤이 금세라도 덮칠 듯 달려드는 파도를 막아설 듯 앞으로 나선 상태였다.

“어? 어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현장지원팀 직원도 희윤을 손가락질했다. 해승은 담담한 눈으로 상황을 모습을 지켜봤다. 희윤을 믿기에 놀라거나 불안해하지도 않았다.

희윤의 주변 기운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저 기분 탓이 아니었다. 위협적으로 접근하던 거대한 파도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오!”

“뭐 해요! 지켜보기만 할 겁니까!”

지켜보던 다른 물 속성 에스퍼들이 희윤이 무얼 하려는지 알아채고 발 빠르게 합류했다. 결국 해안가에 다다를 때쯤 파도는 안개처럼 사라지고, 남은 건 눅눅한 공기와 축축하고 짠 바다 냄새뿐이었다.

“와, 해일을, 와……. 해일을 없애 버렸네.”

현장지원팀 직원이 주먹으로 제 두 눈을 비볐다.

끼애애애액.

하지만 감탄할 시간은 짧았다. 아직 괴물체는 누그러지지 않은 기세로 재차 공격하려 하고 있었다. 대지 속성 에스퍼와 바람 속성 에스퍼들이 힘을 합쳐 막는 중이었지만 언제까지 이대로 막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끄애애애애액.

괴물체가 울부짖자 바다가 심상찮게 들끓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게 꼭 용암이라도 올라오는 것 같았다.

“뭐야, 또.”

또다시 시작된 기이한 현상에 다른 에스퍼들 역시 긴장했다. 해승은 희윤에게만 고정했던 시선을 바다로 돌렸다.

이미 그의 눈에는 수면으로 머리를 들이민 검은 무언가가 들어왔다. 뾰족한 지느러미를 드러낸 그것은 꼭 상어처럼 보였지만, 분명 달랐다.

그것들은 물살을 헤치듯 움직이며 뭍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파도와 거대한 괴물체 때문에 저쪽에 있는 에스퍼들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건 현장지원팀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꾸에엑.

괴물체가 다시 한번 꼬리로 수면을 내리쳤다. 그에 반응하듯 수면 아래 있던 무언가가 불쑥 위로 솟구쳤다.

“괴, 괴, 괴물체.”

뒤늦게 놈들을 발견한 현장지원팀 직원이 사색이 됐다. 해승은 그런 직원을 힐끔 바라보곤 품에 넣어 두었던 총을 꺼내 들었다. 지부장에게 잠깐 선보였던 마취총이었다.

커다란 손에 전부 감싸일 만큼 아담한 크기지만, 아마 지금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괴물체 두 개체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다.

“표해승 가이드. 도망, 도망쳐요!”

그러기엔 조금 늦지 않았을까. 이미 괴물체는 해변과 꽤 가까워져 거대 괴물체를 상대하던 에스퍼들도 알아챌 정도로 모습을 나타낸 뒤였다.

“괴물체 두 마리 더 출몰했습니다!”

“젠장. 저쪽에 누구 있지 않았어요?”

다급한 목소리. 욕설과 고함이 시끄럽게 쏟아졌다. 해승은 총부리를 괴물체 중 하나에 조준했다.

“표해승 가이드!”

현장지원팀 직원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탕, 총성이 튀었다.

퍽!

총알은 정확히 괴물체의 왼쪽 눈알에 꽂혀 들었다.

끼에에엑!

괴물체가 찢어질 듯 울어 대며 몸을 뒤틀었다. 그러는 바람에 바로 옆에서 같이 헤엄치던 또 다른 괴물체와 엉켜 버렸다.

해승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곧바로 다른 놈도 처치하려고 했는데 그게 도리어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 해승아! 무슨 일이야?

“괜찮아요, 형. 여긴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해승이 스마트 워치에 대고 차분히 말하며 당장이라도 달려올 듯한 희윤을 말렸다.

- 괜찮긴, 지금 총성에 괴물체의 괴성도 있었잖아!

해승은 희윤의 질책 섞인 말에 드물게도 곤란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거짓으로 상황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아까 뒤엉켜 사라졌던 말짱한 괴물체가 다시 물 밖으로 머리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었다.

탕!

해승이 망설이지 않고 총을 쐈다. 이번엔 괴물체의 미간 사이에 총알이 박혀 들었다.

“꾸애애애액!”

괴물체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러나 눈에 정통으로 맞았을 때보다 마취 시간이 오래 걸려 그 개체는 차츰차츰 해변으로 가까워졌다.

“으아악!”

그 모습을 본 현장지원팀 직원이 비명을 내질렀다.

- 해승아!

그 소리에 놀란 건 희윤 쪽이었다. 해승은 현장지원팀 직원을 노려보았다가 곧 괴물체에게 총신을 겨누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걱정 안 해도 돼요, 형. 저 정도 괴물체는 마취총으로 10초 안에 재울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쪽 신경 쓰지 말고 얼른 마무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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