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는 연오를 처음 본 날을 떠올렸다.
과제를 하느라 밤늦게까지 깨어있던 어느 밤이었다.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우당탕탕, 현관문이 부서질 것처럼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현관에 나가보니 제 형과 낯선 얼굴이 하나 보였다. 사전에 언질도 없이 형이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온 것은 처음이었다.
동아리 모임이 끝나고 술자리를 가졌는지 두 사람에게선 술 냄새가 진동했다. 제 친구라고 짧게 소개를 마친 태범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를 소파에 눕힌 뒤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선재는 팔짱을 낀 채로 소파에 널브러진 사람을 관찰했다.
“아주 꽐라가 따로 없네.”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졸고 있던 남자가 눈을 번쩍 뜬다. 무표정한 선재와 눈이 마주치자 유순한 눈꼬리가 둥글게 휘었다. 그리고 곧장 일어난 형의 친구는 불쑥 제 앞으로 다가와 반갑다고 악수까지 청했다.
“네가 선재구나아……. 태범이한테 얘기 들었어!”
가까이 있으니 달달한 체향이 맡아졌다. 친구라더니, 오메가였네.
대답 없이 서 있자 형의 친구는 마치 명화를 감상하는 사람처럼 신중한 눈빛으로 선재를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된다는 게 썩 기분 좋을 일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 시선에는 기분이 묘하게 들떴다. 그래서 선재도 희멀건 낯짝을 탐색하듯 구경하기 시작했다.
구석구석을 훑던 선재의 시선이 도톰하고 붉은 입술에 머물 때쯤이었다.
“선재 너어, 태범이랑 정말 닮았구나!”
해맑은 그 말에 기분이 조금 나빠졌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얼굴을 굳힌 선재는 불쾌한 것을 만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검지로 하얀 이마를 툭 밀어내곤 몸을 뒤로 물렸다. 때마침 샤워를 마친 태범이 나왔고, 선재는 별말 없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선재는 과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팔락거리는 기다란 속눈썹이나 핥으면 단맛이 날 것 같은 보드라운 뺨 따위가 선재의 망막에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예쁜 얼굴이 퍽 제 취향이었다. 특히 유순한 눈꼬리에 눈물이 매달려 있으면 더 예쁠 것 같기도 했다.
이름이 정연오라고 했던가.
밤마다 생각나던 말간 얼굴을 다시 보게 된 것은 그날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지금 들어오냐.”
“어. 존나 피곤해.”
아침 훈련을 하러 가려는지 태범이 현관에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선재는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동기들과 밤새워 놀다가 동이 틀 때가 되어서야 들어온 참이었다.
몹시 피곤했다. 나른하게 감기는 눈을 겨우 뜬 선재는 형에게 대충 손을 휘저어 인사를 한 다음 곧장 제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태범의 목소리가 선재를 멈춰 세웠다.
“강선재. 내 방에 정연오 있으니까 나중에 깨워서 같이 밥 먹어.”
정연오. 그때 그 오메가가 지금 우리 집에 있다니.
뜻밖의 소식이었다. 잠이 한순간에 훅 깨는 기분에 선재가 빙긋 웃으며 뒤를 돌았다.
“아, 그때 본 형 친구?”
굳이 친구라는 말에 강세를 두며 말하자 태범의 얼굴이 얼핏 구겨지는 것도 같았다. 선재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당겨 내리며 태범을 향해 물었다.
“내가 같이 먹어도 될까?”
“어.”
뭘 귀찮게 되묻고 있냐는 듯이 성의 없는 대답이었다. 태범은 운동 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섰고, 이내 현관문이 완전히 닫혔다. 빙글 돌아서는 선재의 얼굴에는 질 나쁜 미소가 걸려있었다.
태범은 식사를 같이하란 의미로 답한 거였겠지만, 선재는 다른 의미로 물어본 말이었다. 지금 형이 공들이고 있는 오메가를 자신이 같이 맛봐도 되겠냐고.
사람을 가려 사귀기로 유명한 태범이 집까지 데려와서 재우고, 아침을 챙겨줄 정도로 관심을 쏟고 있었다. 연애하고 싶은 건지, 따먹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연오에게 호감이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런 상대를 선수 쳐서 먼저 맛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즐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마친 선재는 바지만 대충 걸친 차림으로 아침을 준비했다. 시간을 확인하니 아홉 시가 조금 넘었다. 이쯤이면 연오가 일어났을 거라 생각하고 노크도 없이 방문을 벌컥 열었다.
“으응, 흐, 태으, 어, 선재야?”
정면으로 알궁둥이를 드러낸 채 태범의 베개에 얼굴을 묻고 성기를 흔들고 있는 연오가 보였다. 갑자기 문을 연 선재를 보고 놀랐는지 그대로 굳어 눈만 꿈쩍인다.
하, 얌전하게 생긴 것치곤 하는 짓이 아주 발랑 까졌네.
선재는 인사를 건네는 대신 관람하듯 연오의 앙큼한 자태를 눈으로 훑었다. 진득한 시선이 사타구니로 향하자 그제야 화드득 몸을 떨며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서둘러 어정쩡하게 내렸던 바지를 추켜올리고는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연오 형. 저 기억하네요? 그때 술에 취해서 기억 못 할 줄 알았더니.”
“……응. 태범이 동생이잖아. 근데 계속 집에 있었어?”
이불 안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선재가 숨죽여 웃으며 대답했다.
“네. 태범이 형이 아침밥 챙겨 먹이라고 해서요.”
“나 밥 생각 없는데…….”
“그래요?”
선재는 가벼운 걸음걸이로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 침대에 걸터앉았다. 묵직하게 가라앉는 매트리스에 당황했는지 이불 안이 크게 한 번 들썩거린다. 밥을 먹지 않겠다고 대답하면 자신이 그냥 나갈 줄 알았나 보다.
다시 한번 웃음을 삼킨 선재가 짓궂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연오 형, 방금 우리 형 생각하면서 자위한 거죠?”
“뭐?! 아, 아니야!”
뒤집어쓴 이불을 홱 끌어 내리며 연오가 다급하게 소리를 내질렀다. 아니라곤 해도 수치심으로 얼굴에 열감이 화악 번지는 게 보였다.
진짜 귀엽게도 구네. 베개에 코를 묻고 킁킁대며 강태범 이름 부르려고 한 거 다 봤는데.
“거짓말.”
“아니라니까.”
“아니긴요. 야한 냄새가 지금 진동하는데요?”
“어, 이건 아침이라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사람 있는 줄은 몰랐어. 미안.”
우물우물 변명하려다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결국엔 선재를 향해 사과한다. 발긋하게 물든 얼굴이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눈물까지 매달면 더 절경이겠고.
그래서 선재는 내뱉었다.
“우리 형 좋아하죠?”
“…….”
“그래서 주인도 없는 침대에 올라와서 변태처럼 좆 내놓고 자위하고 있던 거 아니에요?”
까만 동공이 세차게 흔들린다. 설마하니 자위하는 꼴을 좋아하는 사람의 동생에게 들킬 줄 알았겠는가. 선재와 눈도 못 마주치고 연오의 시선은 계속 아래를 배회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물론 선재의 얼굴까지 닿지는 않았다. 치부를 들켰다는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그러면 왜? 가만히 지켜보니 연오의 시선은 제 가슴께를 향하고 있었다.
선재는 조금 전 샤워하고 웃통을 벗고 나온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동시에 떠오르는 목소리도.
‘선재 너, 태범이랑 정말 많이 닮았구나!’
아하. 술에 취해서도 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게 이런 이유였던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무래도 연오는 태범과 닮은 제 외양에 약한 모양이었다. 대답도 못 하고 도자기처럼 새하얀 얼굴이 울긋불긋 물드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던 선재가 덧붙였다.
“근데 어쩌나. 딱 봐도 우리 형 취향은 아닌데.”
“어?”
“강태범은 조신한 오메가를 좋아하거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방종한 여느 알파들과는 다르게 태범은 조금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여기저기 페로몬을 흩뿌리고 다니는 문란한 오메가라면 아주 질색했다. 그러나 동생인 선재는 달랐다. 마음에 들기만 하면 애인이 있는 상대라도 상관없이 페로몬을 휘둘러 붙어먹으려 했다.
설령 그게 형의 오메가일지라도.
선재는 조금 뜸 들이는 척을 하며 말을 이었다.
“형은 좀…….”
“내가, 뭐……! 어, 어떻게 생겼는데.”
“아닌 척하면서 알파 밝히게 생겼어요. 얼굴도 밝히고, 남자 가슴도 밝히고.”
“그게 무슨, 아냐. 아닌데.”
연오는 난잡한 오메가 취급이 억울했는지 제 딴엔 매섭게 눈을 치켜뜨고 선재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선재의 눈엔 그저 가소롭기만 한 얼굴이었다.
지금도 봐라, 또 흘긋.
넓고 단단한 어깨와 보기 좋은 근육으로 짜인 가슴을 아닌 척 몰래 훔쳐보는 시선이 무척이나 불순했다.
“그리고 알파 좆도 되게 밝히게 생겼는데, 진짜 아니에요?”
알파 페로몬이 유혹하듯 살랑였다.
선재는 고개를 내려 연오의 얼굴 가까이 다가갔다. 진한 단내가 뱃속을 동하게 한다. 토끼처럼 겁먹은 얼굴이 멍하니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서로의 코끝이 스칠 정도로 가까워졌는데도 연오는 밀어내기는커녕 깜빡이던 눈을 순순히 감는다. 꽤나 순종적인 태도였다. 피식 웃은 선재는 고개를 틀어 연오와 입술을 맞대었다. 폭신한 입술 위를 마주 비비다가 말랑한 틈새로 혀를 집어넣으니 먼저 입술을 벌려주기까지 한다.
알파 페로몬에 이토록이나 쉽게 무너지면서 곧 죽어도 안 밝힌다고 우기지.
가지런한 치열을 훑고 잇몸을 툭툭 건드리던 혀는 안을 파고들어 입천장을 넓게 어루만졌다. 기분 좋은지 연오가 앓듯이 목을 울렸다. 뜨거운 온도의 점막이 서서히 달아올랐다. 혀를 얽어 맞비빌수록 단내가 짙어졌다.
“으음, 응…….”
그리고 그때 선재는 고개를 뒤로 물렸다. 짧고도 강렬했던 입맞춤은 아쉬움을 남긴 채 끝이 나버렸다. 가쁜 숨을 쏟아내는 연오를 진득하게 바라보며 선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번에 태범이 형이랑 저랑 많이 닮았다고 했잖아요.”
“으응……. 그랬지.”
홍조가 어린 얼굴은 어딘가 멍해 보였다. 선재는 분홍빛으로 물든 귓불을 검지로 툭툭 건드려댔다.
“그럼 저랑 씹질하실래요?”
“뭐어?”
“저를 강태범 대신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니까, 다리 벌려 봐요.”
짧은 순간 연오의 표정이 다채롭게도 변했다. 키스랑 씹질이랑 다를 건 또 뭐라고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선재의 고개가 삐딱하게 기울어졌다.
“왜요? 아다라서 태범이 형이랑 소중한 첫날 밤 같은 걸 꿈꾸는 건가?”
“응? 처음은 아냐.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이 와중에도 착실하게 따먹히고 다녔다고 고분고분 자백하고 있다. 아랫입술을 혀로 느릿하게 훑으며 선재는 백치 같은 오메가를 바라보았다.
“아아, 아다 아니라고요? 그럼 왜 계속 내빼는 건데요.”
“어, 그게…….”
입 안에 혀를 쑤셔 넣을 때 목을 울리며 좋아했던 것처럼 구멍에 좆을 쑤셔 박으면 해롱해롱 정신 못 차릴 주제에 계속 내빼고 있다.
미약하게 짜증이 서린 얼굴의 선재가 당장이라도 옷을 벗길 태세로 다가서자 연오는 몸을 낮춰서 재빠르게 침대 밖으로 나가버린다. 선재는 도망치는 오메가를 굳이 붙잡지 않았다. 갈팡질팡하며 걸음을 잠시 헤매다가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주워 드는 얼굴이 어색하게 굳어있었던 탓이다.
“나, 나, 수업이 있는 걸 깜빡했네!”
누가 봐도 국어책을 읽는 것처럼 연기 톤으로 말을 한 연오가 ‘그럼 이만 가볼게.’란 인사를 남기고 그대로 도망가 버렸다. 방문 너머로 빠르게 사라지는 인영을 보며 선재는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나 참.”
연오가 누워있던 자리로 몸을 뉘었다. 여전히 따끈하고 달큼한 향이 맴돌고 있었다. 나른하게 숨을 들이켜며 선재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무언가가 보였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베개 옆에서 발견한 것은 연오가 미처 챙기지 못한 휴대폰이었다. 투명 케이스를 씌운 휴대폰을 손에 쥐고 살랑살랑 흔들며 선재는 연오를 한 번 따먹어보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독식할 생각이 사라졌다. 아무래도 같이 즐기는 편이 더 재밌을 듯했다. 쾌락에 약하지만 그만큼 겁도 많은 오메가는 달콤한 말로 몇 번 구슬리고 협박하면 금방 넘어올 게 뻔했으니까.
그리고 선재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태범이 과 모임 때문에 늦게 들어온다는 날, 연오는 제 발로 선재를 찾아왔다. 완연하게 무르익은 오메가를 내려다보며 선재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톡톡,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는 손길이 퍽 즐거워 보였다.
속옷 한 장만 걸친 연오가 작게 칭얼대자 선재는 알겠다며 소파 팔걸이에 휴대폰을 내려두고 다시 입맞춤을 이어 나갔다.
“선재야, 오늘 태범이 안 들어오는 거 확실하지?”
그렇게 묻는 연오는 까다로운 제 입맛을 충족시킬 만큼 순진무구하고 예쁜 얼굴이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눈치 없이 태범을 찾는 것에 조금씩 짜증이 치솟았다. 순간 괜히 메시지를 남겼나 싶기도 했지만, 어쩌겠어.
맛있는 건 같이 먹을 줄도 알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