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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금지 채선배 찔러나 보기-33화 (22/115)

33화.

겨우 몇 잔 마셨을 뿐인데 몸에 술기운이 확 퍼진 것이다. 온몸이 화끈거리고 진땀이 나는 게 심상치 않았다. 원래도 술이 센 편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열이 오른 적은 없었기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 어지러워.”

“도혁아, 괜찮아?”

규영이 도혁의 안색을 살폈다.

“저 좀 안 좋습니다. 머리도 아프고…….”

“무리했나? 낮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들어가서 쉬는 게 어때?”

“그래. 술 그만 마시고 이만 들어가 봐.”

“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푹 쉬고 내일 보자.”

박 코치가 도혁을 식당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숙소에 딸린 레스토랑이라 방까지 그리 멀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걸어서 겨우 5분 남짓이면 방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했다. 과할 정도로 목이 탔다. 마치 뜨거운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목이 말랐다.

“아… 왜 이러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몸 구석구석에 점점 더 강하게 열이 올랐다. 숨결도 거칠어져 이제는 숨을 몰아쉬어야만 했고, 시야가 흐려졌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건 주원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랬다. 지금 숙소에 있을 주원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고,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고 싶었다. 아니, 키스하고 싶었다.

“…형.”

도혁은 걸음을 빨리했다. 자꾸만 초조한 마음이 들고,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는 스스로의 모습이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서둘러 걸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로비에 아무도 없었다. 다만, 흐릿하게 주원의 페로몬이 감지됐다. 방금 전까지 주원이 머물렀다는 증거였다.

…선배 냄새, 못 견디겠어.

도혁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자꾸만 조급해지는 마음 때문에 엘리베이터 따위를 탈 여유가 없어졌다. 그는 8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점점 더 높이 올라갈수록 주원의 향기가 뚜렷하게 감지되었다.

“형… 형.”

방문 앞에 도착했을 때, 도혁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거친 손놀림으로 벌컥 문을 열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봤다.

“흐읏… 읏.”

그곳에는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주원이 있었다. 옷은 다 벗어 던진 채였고, 손길은 방황하며 이곳저곳을 만지는 중이었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주원은 더운 숨결을 뿜어내며 도혁을 쳐다봤다. 그에게서는 농축된 페로몬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묵직한 민트향이 치명적이었다. 도혁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하아… 도혁, 이……?”

“…형.”

“너 왜 이제 와.”

“형.”

도혁은 홀린 듯 주원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눈은 이지를 상실한 채 번들거리고 있었다. 또한 그의 손은 자기 티셔츠 안을 헤매며 옷자락을 걷어 올리기 바빴는데, 그 모습은 단언컨대 도혁이 태어나 본 광경 중 가장 외설적인 풍경이었다. 안 그래도 이성이 흐려진 상태였다. 생각이나 판단 따위는 사치였다.

“…읍!”

주원이 도혁의 목 뒤를 낚아채 자기 쪽으로 끌고 왔다. 거센 키스가 이어졌다. 도혁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한 채 주원의 뜨거운 키스를 받아 내야만 했다. 물속에 처박혀 심해로 가라앉는 듯 무겁고 공격적인 키스였다.

“하아… 형, 주원이 형.”

“이도혁.”

주원이 도혁의 양어깨를 붙잡고 침대에 눕힌 채로 속삭였다. 도혁은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부름에 그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앞의 입술과 입을 맞추고, 폭풍 같은 페로몬에 휩싸이기를 반복했다. 열기가 한계에 도달해 도혁의 본능을 뒤흔들었다.

안고 싶어. 형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뚝.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겼다. 도혁은 가공할 힘으로 두 사람의 몸을 뒤집었다. 순식간에 위와 아래가 뒤집힌 주원이 혼란스러운 한숨을 내뱉었다.

“도혁,”

하지만 이내 뜨거운 입술에 잡아먹혀, 한숨은 말이 되지 못했다.

* * *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주원은 손을 들어 쏟아지는 햇볕을 가렸다.

“으음… 피곤해.”

몸을 뒤척이자 온몸이 쑤시고 결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온몸을 얻어맞은 것같이 아팠는데, 특히 하체가 그랬다. 허벅지 전체가 땅겼고 골반이 시큰거렸다.

어, 근데 왜 다른 데도 아프지?

갑자기 위화감이 들었다. 평소 아프지 않았던 곳들이 아프단 건 무슨 의미지? 주원은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으아아악!”

왜 내가 다 벗고 있는 건데, 그것도 이도혁 품에 안겨서!

주원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자 도혁도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으음… 형, 깼어요?”

“후우… 후우…….”

주원은 가까스로 호흡을 진정시키며 머리를 차갑게 하려 노력했다. 드문드문 지난밤의 영상이 리플레이됐다.

‘혁아… 도혁아.’

‘형, 사랑해요. 저 지금 미칠 것 같아요.’

민망한 소음, 뜨거운 숨결, 그리고 망할 열기에 휩싸였던 자신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주원의 멘탈이 와르를, 무너졌다.

“하… 혹시 우리, 간밤에… 했냐?”

확인 사살을 위해 괴로운 질문을 했다. 도혁은 눈을 내리깔고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주원의 혈압이 솟구쳤다.

했구나, 했어. 그건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근데 왜 내 몸이 아파! 이거 뭔가 잘못됐어!”

“그거야…….”

도혁이 말끝을 흐렸다.

“어떻게 내가… 내가……! 천하의 상알파인 내가… 네 아래에……! 위도 아니고 아래란 말이야?!”

주원은 숨이 넘어갈 듯 흥분했다. 얼굴에 피가 몰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다가 픽, 쓰러졌다.

“형! 주원이 형!”

도혁은 화들짝 놀라 주원을 흔들어 깨웠다. 주원은 가물가물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아, 차라리 이대로 기절해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다.

* * *

그로부터 24시간이 지났다. 알파와 갈 데까지 갔다, 심지어 그게 그동안 거절해 오던 후배였다. 상알파 주원의 두뇌는 아직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원은 아주 열심히 도혁을 피해 다녔다. 일단 자기 방에서 자지를 않고 민석과 규영의 방에 가서 바닥에서 잤다. 훈련도 새벽부터 오후 시간까지 말없이 받고, 도혁이 다가올라치면 냅다 줄행랑을 쳤다.

어쩔 수 없었다. 도혁과 정면으로 마주 보고 그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까 봐 너무나 겁이 났다. 문자나 전화는 당연히 무응답.

지금도 그는 징징 울리는 핸드폰을 등 뒤로 숨기며 작게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감자칩을 까먹던 민석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형, 아까부터 핸드폰 울리는데요. 전화 온 것 아니에요?”

“안 받아도 되는 전화야.”

“어… 도혁이인 것 같은데요? 혹시 형이랑 같이 있으면 받으라고 좀 전해 달래요.”

민석이 해맑게 말하며 감자칩을 아작아작 씹었다. 주원은 살짝 열이 받았으나, 전화를 받는 흉내라도 내야 했기에 하는 수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연결과 동시에 도혁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선배님, 오늘도 방에 안 오세요?

“…….”

─ 이야기 좀 해요, 우리.

주원은 민석과 규영의 눈치를 봤다. 그들은 다행히 감자칩과 SNS 동영상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무슨 이야기.”

─ 외면하지 마세요. 그 방에 가 있다고 해서 벌어진 일이 없는 일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정곡을 찔렸다. 주원은 마른세수를 하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 선배님도 하루 동안 머리 식히면서 이 생각 저 생각 다 했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만나서 이야기해요. 방으로 오세요.

도혁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주원은 핸드폰을 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주섬주섬 자기 재킷을 챙겼다.

“어, 형 가요?”

“어, 이제 내 방으로 복귀해야지.”

“둘이 싸웠구나? 그래서 우리 방 놀러 온 거였죠?”

민석이 눈치도 없이 재잘댔다. 주원은 선량한 후배에게 진실을 밝힐 수 없었으므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룸메 싸움은 손으로 물 베기래요. 저랑 규영이 형처럼 행복하게 사세요.”

“허허허, 맞는 소리다! 룸메는 부부나 다름없으니까 말이야.”

규영이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주원은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후…….”

내 방 내가 들어가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의식이 되지.

주원은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들어가면 두 사람이 역사를 만든 침대가 떡하니 놓여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고, 역사의 장본인인 도혁이 있다는 사실은 더욱 참기 힘들었다.

그래도 들어가야지 어쩔 거야. 도혁이 말대로 계속 도망 다닐 순 없다.

주원은 벌컥 문을 열었다. 도혁이 바로 문 앞에 서 있었다.

“깜짝이야.”

“기다렸어요, 선배님.”

만 하루 만에 마주한 도혁이 평소와는 너무나 다르게 느껴졌다. 냄새도 의식됐고, 덩치도 신경 쓰였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혁은 주원이 앉은 소파 옆자리에 같이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주원이 입을 열었다.

“일단… 상황을 좀 정리해 볼까.”

“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아마 우리가 서로한테 영향을 끼쳐서 러트가 앞당겨진 것 같아.”

“제 생각도 그래요. 확률은 낮지만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고 하네요.”

“하아… 하필이면 너랑 내가 같은 알파라서.”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발정기를 맞이해서 오메가를 차지하기 위한… 뭐, 그런 진화라고 하네요.”

오메가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도혁은 슬금슬금 주원의 눈치를 봤다.

사실 도혁도 사건 당일 엄청나게 놀라긴 했었다.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꿈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행복했다. 늘 상상만 하던 주원과의 하룻밤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황홀하고 강렬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아직도 손끝에는 그의 체온이 묻어나는 듯했고 자신에게는 더없이 달콤했던 페로몬도 생생했다.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찌르르 떨리는 그 감각이란…….

“야.”

회상에 잠기려는 도혁에게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너 지금 무슨 생각 해.”

“그… 그게… 그날 밤 생각이요.”

솔직한 대답에 주원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지었다.

“하아… 미치겠네.”

“선배님은…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뭐가.”

“저랑 했잖아요.”

“…….”

“이미 일어난 일이라 되돌릴 방법은 없어요. 이제부터 우리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나갈지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혁의 목소리는 한껏 긴장해 있었으나, 논리는 정연했다. 주원은 그 점이 짜증 났다. 자신은 아직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를 맞이하고 있는데 저쪽은 이미 교통정리가 끝난 모양이다.

“넌 그게 그렇게 쉽게 결론 나?”

“전 선배님 사랑하니까요.”

“사랑 타령 좀 그만해.”

“사랑하는 걸 어떻게 해요. 거짓말할 수도 없고.”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저걸 쥐어박을 수도 없고.

주원은 팔짱을 끼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사실 이건 자연재해에 가까운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밤 도혁이 그 타이밍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도 일은 벌어졌을 것이다. 자신은 강렬한 러트에 정신을 잃은 상태였고, 도혁은 몇 시간 후라도 방에 돌아왔을 테니.

“그래. 이미 일어난 일이고, 피할 수 없는 사고였어. 그 점은 인정할게. 하지만, 이 일로 인해서 우리 관계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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