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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금지 채선배 찔러나 보기-43화 (27/115)

43화.

심지어 전 애인들과도 안 해 본 행위가 음식 먹여 주기였다. 주원은 자기 이마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이제 내가 먹을게. 혼자 먹을 수 있어.”

“선배 먹여 드리는 거 재밌는데요. 몇 개만 더 드세요.”

“나 진짜 괜찮,”

도혁이 주원에게 한껏 불쌍한 척을 했다.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고 주원을 눈치를 보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선배, 나 싫어요? 내가 뭘 잘못했어요?

영상을 보는 누구라도 도혁의 머리에 강아지 귀를 덧그려 주고, 엉덩이에 통통한 꼬리를 붙여 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모습이었다.

으으, 어쩔 수 없지.

주원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입을 벌렸다. 쏙, 쏙. 도혁은 신나게 튀김을 먹이고, 주원은 억지로 웃으며 감자튀김 한 봉지를 다 비웠다.

여기까지가 K4의 1회차 편집분이었다. 방송이 전파를 타자, 펜싱 팬덤은 난리가 났다.

댓글

대세는 도혁X주원이다. 감자튀김 짤이 모든 걸 설명한다.

➥ 인정 ㅇㅇ. 난 원래 주원X도혁이었는데 대가리 박고 반성했다.

➥ 이도혁 상알파! 채주원 아기새!

또한 이불 안에서 투닥투닥 싸움을 벌이는 신에서 도혁이 위에 있었다는 점, 후식으로 사과를 먹일 때에도 주원이 얌전히 받아먹었다는 점 등을 들어 도혁X주원 팬들은 의기양양하게 세력을 불려 나갔다.

주원은 화가 났다. 어떻게 내가 위가 아니란 말이야? 이건 잘못됐어. 비록 그때… 음… 도혁이가 위에 있었던 건 맞지만, 그건 단 한 번이었잖아. 파트너로 지낼 기간이 수개월인데, 다음번이라고 해서 또 그러란 법이 있나?

심지어 나 같은 알파 중의 알파가 아기 새 취급을 받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 그때는 도혁이 카메라 앞에서 팔 빠지게 감자튀김을 들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먹었던 것뿐인데.

주원은 필사적으로 도혁X주원을 부정했다. 그는 게시판에 올라오는 도혁X주원 게시물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팬들이 만들어 놓은 커플링에 과몰입하기 시작했다. 여론을 반대로 돌릴 방법을 찾아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주원아, 그렇게 해서 우리 오늘 훈련은… 야, 듣고 있냐?”

“내 알파다움을 보여 주는 거지.”

“주원아? 너 뭐 해?”

“코치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잘 못 들었습니다.”

박 코치는 혼자서 중얼거리는 주원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훈련을 앞두고 진지한 미팅 중에 허공을 보며 혼잣말을 하는 주원이라니. 이건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모습이었다.

“너 지금 딴생각하고 있었지? 뭔데 그렇게 넋이 빠졌어?”

“죄송합니다.”

“올림픽 앞두고 중압감이 커서 그래? 자꾸 딴생각 들고, 집중 안 되고? 그런 거라면 안타깝다.”

“아…….”

“너무 우울해만 하지 마. 넌 해낼 수 있어.”

박 코치는 파이팅 모드가 되어 주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 속으로 커플링 생각했는데. 진지해 보인 건가? 민망해진 주원은 대충 그렇다며 둘러대고 어색하게 웃었다.

점심시간에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도혁은 오늘따라 배가 고프다며 급식을 세 번 리필하고, 그마저도 모자란지 선수식 코너에 가서 닭가슴살 샐러드 네 팩과 식빵 한 줄, 삶은 계란 10개를 작살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오후 훈련 끝나고 라면을 다섯 개만 끓여 먹으면 딱 좋을 것 같단다.

민석과 규영이 도혁이 너는 어쩜 그렇게 잘 먹냐고 감탄했다. 도혁은 키가 크려고 그러는 것 같다며, 뒤돌면 배가 고프다고 대답했다. 그 말에 주원은 강한 자극을 받았다.

“막내, 너 요즘도 키 크냐?”

“아, 네. 조금씩 크고 있어요.”

“뭐……? 성인인데 키가 커?”

“네. 저 신입생 때보다 지금이 1cm 정도 더 큽니다.”

“뭐? 그럼 너랑 나랑 키 차이가…….”

주원은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알파로서의 자존심이 상했다.

“너 나랑 비슷한 거 아니었어?”

주원도 키가 큰 편이었으나, 도혁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펜싱 선수치고 굉장한 장신에 해당했다.

“에이, 무슨. 형, 그건 아니에요. 형이랑 도혁이 키 차이 꽤 나요.”

“누가 봐도 도혁이가 많이 크죠. 거의 이만큼?”

민석이 검지와 엄지를 쭉 벌려 길이감을 표현해 주었다. 주원은 정신이 혼미했다. 아니, 그러면 나랑 도혁이랑 같이 다니면 내가 상대적으로 너무 작아 보이잖아. 도혁X주원 측 주장도 일리가 있다.

젠장, 피지컬로는 게임이 안 돼.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분명히 도혁보다 자신이 위일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할 수 있는 나만의 매력이 있을 거다. 우선 내가 도혁이보다 연상이고 이 팀의 주장이니까, 연상으로 어른스럽게 도혁을 리드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럼 좀 가능성 있지 않아?

주원은 스스로 지어낸 아이디어가 그럴싸해 보였다. 그는 논리의 허점 따위 짚어 내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제아무리 키가 크고 덩치가 좋다 한들 내 앞에서 도혁은 한 마리 순한 양일 뿐이지. 나는 카리스마 넘치는 시크한 남자고 말이야.

주원은 상남자에 자상함을 곁들인 컨셉을 실천해 보기로 했다.

* * *

새벽 훈련장에 관찰 카메라 팀이 따라붙었다. 그들은 아주 멀리서 풀샷으로 4인방의 훈련 모습을 카메라에 담다가 재미있어 보이는 장면이 있으면 가까이 다가와 ENG 카메라와 핀 마이크를 붙이고 영상을 따곤 했다. 주원은 그런 촬영팀의 특성을 십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막내야! 물 마셔라.”

조깅이 끝나고 헉헉대며 땀을 닦는 도혁에게 주원이 얼음물을 건넸다. 자기가 마시기도 전에 먼저 물을 챙겨 주는 모습에 나머지 세 선수가 놀란 얼굴을 했다.

“선배는 안 드세요?”

“우리 도혁이부터 먹이고 마실래.”

“웬일이에요, 선배? 정말 도혁이랑 친해졌나 봐.”

민석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도혁도 놀란 기색은 마찬가지였다. 주원은 그러거나 말거나 도혁에게 손수 생수병을 따서 건넸다.

“고마워요, 선배.”

“하여간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 주지 않으면 안 된다니깐.”

주원은 과장되게 하하, 웃으며 도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들 주원 선배가 웬일일까, 하는 표정이었으나 그는 꿋꿋하게 컨셉을 밀고 나갔다.

“다시 연습 시작하자!”

박 코치가 휴식 시간 종료를 알렸다. 주원은 쏜살같이 튀어 올라 캐비닛에서 스포츠용 테이프를 꺼내 왔다. 그러고는 도혁의 손을 붙들고 테이프를 감기 시작했다.

“갑자기 웬 테이핑이요?”

“너 아까 보니까 손목 스냅이 전 같지 않더라. 피로 많이 쌓인 상태지?”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아셨어요?”

“딱 보면 알지. 내가 테이핑해 줄 테니까 잘 붙이고 훈련해. 우리 도혁이 다치면 안 돼.”

우리 도혁이……?! 지금 선배가 나를 우리 도혁이라고 불러 준 거야?

도혁은 감격한 나머지 입을 틀어막았다. 주원은 그런 그에게 부드러운 미소까지 날려 주며 오붓한 분위기를 한층 끌어 올렸다.

곧이어 이어진 훈련 시간은 실전 대비 게임 시간이었다. 2:2로 게임을 치러서 도혁, 주원 팀이 이겼다. 도혁은 기쁜 나머지 주원을 뒤에서 덥석 껴안았다.

“와! 이겼다.”

“잠깐만, 놔 봐.”

놓으란다. 그런데 평소 주원의 반응과 좀 달랐다. 도혁을 밀어내긴 밀어내되, 긴 팔을 이용해 도혁의 머리를 내리누르고는 헤드록을 걸어 왔다.

“우리가 이겼어, 도혁아.”

주원은 환하게 웃으며 땀에 젖은 도혁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기도 했다. 주원도 키가 큰 편이고 팔이 길지만, 도혁이 너무 덩치가 커 그림이 그럴싸하지는 못하고 미묘했다.

“주원이 형 이상하다. 아까부터 도혁이랑 뭐 해요?”

지나가던 민석이 핀잔을 줬다.

“내가 보기에는 둘이 부산 다녀와서 많이 끈끈해진 것 같아. 그 왜, 여행지에 가면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잖아. 심리학에서 그걸 무슨 효과라고 부르던데…….”

규영이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며 중얼댔다. 주원은 도혁만 죽어라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느라 여념이 없었다.

* * *

“저희 오늘 서울 가요. 외박은 아니고 외출입니다. 베를린 펜싱 월드컵 가기 전에 선수용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거든요. 6개월 이내 사진이 필요해서, 비자도 신청할 겸 사진도 찍고 올 겁니다.”

도혁이 셀프 캠코더 렌즈에 대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다 같이 서울에 있는 독일 대사관을 찾아가는 길이예요. 저는 국가 대표 되고 나서 처음 출전하는 국제 경기라 기분이 설레기도 하고 묘하기도 하네요.”

그가 캠코더를 들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 맨 뒷자리에 팔짱을 끼고 자리를 잡은 규영, 민석이 장난스럽게 인사를 했다.

“오늘 제 자리는 채 선배 옆자리입니다. 안녕하세요, 주장님?”

도혁이 중간쯤 자리에 앉은 주원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는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비며 겨우 인사를 했다.

“어젯밤에 늦게 주무시던데 뭘 그렇게 찾아보셨나요? 경기 영상 보셨어요?”

“아… 음. 네, 그렇습니다.”

차마 ‘도혁X주원’, 그리고 ‘주원X도혁’ 키워드로 검색하느라 밤을 꼴딱 새웠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주원은 적당히 화제를 돌려 도혁과 잡담을 나누었다.

간만에 서울에 간다는 설렘 때문일까. 아니면 주원과 외출을 한다는 기쁨 때문일까. 도혁은 1분에 한 번씩 웃으며 조잘거렸다. 그러다가 고속도로에 들어선 차가 느릿느릿 서행을 하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캠코더 이리 줘. 떨어뜨리겠다.”

“으음… 네.”

캠코더를 주원에게 건넨 도혁은 마음 놓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가 주원의 어깨에 기대어 웅얼웅얼 잠꼬대를 시작하자, 주원은 지금이 바로 타이밍이구나 싶었다. 내가 상알파고 이쪽이 아가 새라는 걸 보여 줘야 해……! 주원은 머리를 핑핑 굴리며 가식적인 미소를 지었다.

“도혁이 잘 자네요. 귀여운 것.”

제작진에게 카메라 고정을 부탁한 그는 자신과 도혁이 한 프레임에 담기게끔 각도를 잡았다. 그러고는 마음에 없는 소리를 쥐어짜 내며 도혁의 냉장고 문짝만 한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지금도 보시면 알겠지만, 도혁이가 저한테 의지를 많이 해요. 제 어깨에 기대서 자는 것 좀 보세요.”

“으음… 선배…….”

“이런. 꿈에서도 저를 찾네요. 제가 꿈속에 들어가서까지 챙겨 줄 수는 없는데 어쩌죠.”

주원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도혁의 앞머리를 넘겨 주었다. 입으로는 하하, 소리 내 웃었다. 뒷좌석에서 그 둘을 지켜보던 민석과 규영은 요즘 들어 도혁에게만 다정한 주장이 낯설지 않냐고 소곤댔다.

주원은 무겁디무거운 도혁에게 반쯤 깔려 1인 토크쇼를 하며 서울에 진입했다. 톨게이트에 진입할 무렵 그를 흔들어 깨우고, 비몽사몽 한 도혁을 챙겨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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