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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금지 채선배 찔러나 보기-47화 (30/115)

47화.

“안 되지.”

“아까는 손잡아 주셨잖아요.”

“네가 일방적으로 잡은 거잖아.”

“한 번만 더 잡혀 주시면 안 될까요.”

“응. 안 돼.”

매정하게 거절당한 도혁은 주원에게 최대한 붙어 걸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손등을 스치려 애쓰는 도혁 때문에 주원은 자꾸만 웃음이 났다. 귀엽기는 하네.

“선배님, 기분 좋으세요? 오늘 많이 웃으시네요.”

산책로 중간쯤에서 도혁이 물었다. 주원은 짧게 생각에 잠겼다.

나 기분 좋은가? 응, 좋지. 그런데 왜 좋냐고 물으면… 그 이유는 도혁과 보내는 이 시간이 만족스러워서였다. 식사도 맛있었다.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기는 했지만 유난히도 맛이 각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도혁이 잘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맛있게,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기분 좋았다.

녀석을 위해 어제부터 코스를 짰고, 레스토랑을 예약했고, 데려와 보니 생각보다도 더 신나 했고, 손잡았다고 기뻐했고…….

도혁이 기뻐하는 모습. 그게 주원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음… 좋지. 좋은데.”

“좋으신 거 맞구나.”

그게 너 때문이라는 게 나한테는 자그마한 충격이다. 새삼스럽게 깨닫고 나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 주기에는 자존심이 가로막았다.

주원은 말을 삼갔다. 이런 말을 해서 자신에게 도움 될 일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일었다.

언제부터 도혁의 만족이 내 기분을 좌우했지? 도혁이 시무룩해하면 신경이 쓰이고, 도혁이 기뻐하면 나도 흐뭇해지고. 어느 시점부터 분명 나도 도혁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 깨닫지 못한 사이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이도혁이라는 존재가.

말이 없어진 주원을 살피던 도혁이 말을 걸었다.

“선배님, 왜 갑자기 심각해지셨어요? 표정이 안 좋아요.”

“잠시 뭣 좀 생각 중이야.”

“뭔데요? 설마… 제 생각?”

정곡을 찔린 주원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속이 뜨끔거려 자기도 모르게 반응하고 말았다.

“음? 설마 진짜예요? 너무 놀란 얼굴인데요.”

“그, 그건 아니고… 그냥 네 선물 따로 안 챙겨 준 게 생각나서 그래. 미안해서.”

주원은 되는 대로 둘러댔다. 실제로 케이크만 마련해 줬지, 정식 선물을 주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고. 선물까지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오늘 이렇게 즐거워하는 도혁을 보자 선물도 마련해 줄 걸 그랬나 하는 작은 아쉬움이 생겨났다.

“아, 선물이요?”

“그래. 내가 변변찮은 선물 하나 못 줘서. 미안해서 마음이 복잡했어.”

“선배… 절 생각해 주시는 마음이 너무 크세요. 진짜 우리 애인 사이 같다.”

“논리가 왜 그렇게 튀어. 그건 그렇고 선물은 다음에 사 줄게.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주원이 화제를 돌리려던 참이었다. 도혁이 불쑥 그의 앞으로 다가와 허리에 손을 감았다.

“야, 갑자기 왜 이래.”

“진짜 받고 싶은 선물 있어요. 지금 주실 수 있고요.”

“뭐?”

도혁이 어느새 주원의 가까이 다가와 그의 양손을 잡았다. 그는 가만히 주원과 눈을 마주해 왔다. 그 눈 너머 깊은 곳에는 뭉근한 열기가 서려 있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시잖아요.”

내가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네. 주원은 순간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저를 그윽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도혁을 보고 있자면… 주원의 심장도 속도를 빨리한다. 바로 지금처럼.

이건 전염병인가 보지. 멀쩡했던 내가 이상해진 걸 보면 말이야.

잠시 침묵하던 주원이 입을 열었다.

“입술은 안 돼.”

“왜요?”

“요새 너랑 키스 너무 많이 했어.”

“그게 뭐 어때서요.”

“지나친 건 뭐든 나쁜 거야. 그러니까 입술 아닌 데다가 해.”

주원이 선을 긋자 도혁은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입술에는 절대 키스 안 할 테니까, 대신 가만히 있어 주세요.”

“그래. 알겠다.”

도혁이 한 손을 들어 주원의 뺨을 감쌌다. 손에서도 미미한 열기가 묻어났다.

뺨에 머무르던 손길이 턱가를 쓸자 주원이 움찔했다. 도혁이 천천히 다가와 아래턱에 입을 맞췄다. 주원은 숨을 멈췄다. 입술은 분명히 빗겨났으나, 도혁의 입술이 너무 뜨거웠다.

느릿하게 입술을 뗀 도혁은 주원의 뺨에 가벼운 키스를 남긴 뒤, 눈가로 이동했다. 그리고 주원의 눈가에 길게 입을 맞췄다. 파르르, 속눈썹을 떨면서 주원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사뿐한 키스가 눈꺼풀에 내려앉았다.

너무 뜨거워. 얼른 끝났으면.

도혁의 열기인지 자신의 열기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도혁이 주원의 목 뒤를 받치며 자신 쪽으로 그를 더 강하게 이끌었다. 그러고는 아주 소중한 것을 다루듯 주원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뽀뽀 수준의 스킨십이었으나, 문제는 모든 동작이 느릿했다는 점이었다. 주원은 도혁의 입술이 오간 순서를 외울 수도 있었다.

한참 만에 도혁이 주원을 안은 팔에서 힘을 풀었다. 눈을 뜬 주원은 차마 도혁을 마주 보기도 곤란했고, 붉어진 얼굴을 보일 생각도 없었다.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린 채 주원이 물었다.

“이런 것도 드라마에서 배웠어?”

도혁은 주원의 뺨에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답했다.

“아뇨. 이건 제 창작.”

주원의 뺨에 열이 올랐다.

드라마 따라 하는 걸로 모자라서 이제는 창작을 한다고? 얘 언제 이렇게 늘었어?

애송이가 어른이 된 모습을 정면으로 목격한 기분이었다. 드라마 보고 연습 좀 했다고 이렇게까지 일취월장할 수 있다니. 어느새 도혁은 레벨 업이 되어 있었다. 주원은 짜증이 스멀스멀 났다. 전세가 역전된 듯한 기분에 자존심도 상했다. 하지만 주원이 뭐라고 불만을 늘어놓을 새도 없이, 그는 도혁의 품에 갇혔다.

“왜 껴안아!”

“선배 당황한 얼굴이 너무 예뻐서요.”

“예쁘긴. 난 예쁜 게 아니라 잘생기고 멋있는 거야.”

“알았어요. 당황한 얼굴이 멋있네요.”

엎드려 절 받기였지만, 도혁이 진지한 척 자신의 말에 맞춰 주자, 손쉽게 기분이 풀려 버렸다. 그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면서도 도혁을 밀어내지 않았다. 도혁은 그런 주원의 이마에 또다시 입술 도장을 찍었다.

여름날 저녁의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결에 흐트러진 주원의 앞머리를 조심스럽게 정리해 주며 도혁이 은은하게 미소 지었다.

* * *

“여러분, 어제 참 기분 좋은 일이 있었어요.”

도혁이 거실 벽면에 매달린 셀프 카메라를 보며 소곤거렸다. 딱 봐도 신이 난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었냐고요? 그건 비밀이라 말씀 못 드려요.”

스포일러를 주는 듯했다가 비밀스럽게 속닥거렸다가, 도혁은 혼자서 잘 놀았다.

아주 신났네, 신났어.

주원은 도혁에게서 등을 지고 바닥에 앉아 빨래를 갰다. 기분 좋은 일이 뭘 가리키는지는 주원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도혁은 주원이 기분 나쁘면 같이 우울해했고, 기분 좋으면 함께 기뻐했다. 자신의 많은 것이 도혁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주원은 그 사실에 대해 솔직히 말해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러니 들떠서 카메라 앞에서 자랑하는 모습이 그저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맑은 날씨에 빨래가 보송하게 말라서 섬유가 포근포근했다. 큰 옷은 주원 것, 더 큰 옷은 도혁 것. 차근차근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쪽으로 도혁이 다가와 잽싸게 주원을 덮쳤다.

“무거워. 누르지 마.”

“무거워요? 그럼 옆에 앉을래.”

도혁이 주원 옆에 앉아 남은 빨랫감을 싹 자기 앞으로 가져왔다. 그러고는 빠르지만 정확하게 빨래의 각을 잡아 개기 시작했다. 큼지막한 손에서 나오는 동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손놀림이었다.

“빨래 잘 말랐네요.”

“응. 어제오늘 볕이 좋아서.”

주원이 숙소 거실의 전면창을 가리켰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유난히도 푸르렀다.

“와, 날씨 너무 좋아요.”

“햇볕은 따갑지만 좋아.”

“선배 맑은 날씨 좋아하죠?”

“어, 비나 눈은 별로. 흐린 날도 그다지. 덥고 맑은 날씨 좋아해.”

“저도인데.”

“그렇구나. 여름에 태어나서 그런가?”

“선배는 겨울에 태어났는데도 여름 좋아하시네요.”

“추운 건 딱 질색이야.”

도혁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원은 다 갠 빨래를 들고 일어났다. 도혁은 무슨 부록이라도 된 것처럼 그를 따라 쪼르르 일어났다. 주원이 침실로 들어가 옷장 쪽으로 걸어가는데도 두어 걸음 간격을 두고 졸졸 쫓아왔다.

“그만 좀 따라와.”

주원이 옷장에 옷을 다 넣고 돌아서니 눈앞이 도혁으로 가로막혀 나갈 수가 없었다. 몸을 옆으로 틀어 지나가려 하니, 도혁이 헤헤 웃으며 팔을 벌렸다.

“왜 이래?”

“너무 좋아서요. 한 번만 안아 볼게요.”

이게 미쳤나.

도혁이 성큼 다가와 주원을 안았다. 주원이 식겁하며 도혁을 밀어냈지만 사랑에 취한 도혁은 강력했다. 힘이 장사라고 소문난 주원조차도 그를 제압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으악!”

도혁이 주원을 끌어안은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

“야, 나 갈비뼈 부러져!”

“살살 안을게요. 조금만 굴러요, 우리.”

도혁은 해맑게 웃으며 주원을 안고 좌우로 굴렀다. 주원은 도혁의 등을 팡팡 때렸으나, 한번 신이 난 도혁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송출되어 주간 모든 예능 프로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어떤 SNS에 들어가도 둘의 영상은 화제였다. 영상의 제목은 다채로웠다.

제목: 놀고 싶은 강아지와 하악거리면서 다 받아 주는 고양이

제목: 사실은 채주원도 이도혁의 집적임을 즐기는 듯하다

제목: 주장막내 덕질 출구 최종 봉쇄

하, 내가 집적임을 즐긴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저 녀석 덩치에 깔려서 꼼짝 못 한 것뿐인데. 하지만 주원이 아무리 마음속으로 외친다 한들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마음대로 영상을 해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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