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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금지 채선배 찔러나 보기-48화 (31/115)

48화.

주원은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나머지 며칠간 SNS를 끊기로 했다. 하지만 4회짜리 예능에 뭐 그리 찍을 게 많은지, 오늘도 촬영은 계속되었다.

“오늘은 네 분 합동 촬영이에요. 조금 이따가 1001호에서 같이 놀기로 되어 있으시죠?”

셀프 카메라를 건네기 전, 촬영 미팅에서 조연출이 물었다.

“네. 오랜만에 단합 대회 가지기로 했습니다.”

주원은 오늘 모임을 단합 대회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냥 놀자판이었다. 올림픽을 앞둔 지금 선수들은 선수촌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말 외박을 제외하면 사실상 감금 시스템으로, 놀 거리고 먹거리고 자체적으로 조달을 해야 했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주원이 후배들을 위해 치킨을 무제한 제공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와 호흡이 척척 맞는 규영은 일찍이 주원의 카드를 이용해 간식거리를 주문 완료해 놓은 상황이었다.

주원이 넷이서 치킨 여덟 마리로는 부족하지 않겠냐고 묻자, 규영을 안경을 쓱 밀어 올리며 그럴 줄 알고 피자 네 판도 따로 주문해 놨다고 답했다. 역시 믿음직한 후배였다.

제작진이 카메라를 주고 방을 나섰다.

“잘 부탁드려요. 자연스럽게 노시면 됩니다.”

주원은 거실 서랍장에 빼곡히 꽂힌 보드게임 중 하나를 꺼내 테이블로 가지고 왔다.

“얘들아, 할리갈리 하자.”

“오, 저희 할리갈리 해요? 그거 재밌는데.”

“펜싱 선수는 무조건 할리갈리야. 절대 법칙이지.”

“왜요?”

“순발력 기르기에 최고니까.”

그건 또 처음 안 사실이네. 도혁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 생각하며 손을 씻고 와 손마디를 풀었다.

“도혁이 잘하게 생겼어.”

“예사 손이 아니잖아. 크기도 커, 손마디도 굵어……. 딱 보니 할리갈리 고수다.”

민석과 규영이 도혁을 예의 주시했다. 그러나 주원의 생각은 달랐다.

“손 크다고 다 할리갈리 잘하는 거 아니야. 누가 더 빨리 종을 치느냐의 문제지. 카드를 빨리 읽고 순식간에 판단하는 자. 즉, 날렵한 사람이 이기게 돼 있어.”

“오, 역시 국대 제일의 할리갈리 제왕다운 발언이네요.”

민석의 칭찬에 주원은 가볍게 웃고 판을 깔았다. 공평하게 카드를 나누어 가지고, 테이블 중앙에 조그만 종을 놓았다.

“도혁아, 너무 빠르다고 놀라지 마라.”

“그 정도예요?”

“물론이지. 자, 시작하자.”

민석의 주도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다들 룰에 맞춰 과일이 그려진 카드를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종을 칠 타이밍이 찾아왔다.

도혁이 종을 내리쳐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이미 세 사람의 손이 종을 덮쳤다.

“어……?”

“주원 선배 승!”

가장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주원이었다. 도혁의 눈에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속도였다.

“역시 주원이 형 빠르네. 현존하는 인류 중에 제일 빠를 듯.”

규영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주원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주원은 코웃음을 치며 모든 카드를 회수해 움켜쥐었다. 얼굴은 웃고 있었으나, 손등은 시뻘겠다.

“선배님, 안 아파요? 손등 아플 것 같아요.”

도혁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하지만 세 사람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네가 아직 국대 할리갈리의 매운맛을 모르는구나. 이 정도는 약과야. 다들 순발력이랑 손힘이 너무 좋아서 피투성이 되기 직전까지 종을 친다고.”

“정말요?”

할리갈리를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한다고? 그래 봤자 게임인데? 도혁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선배들은 무림 한복판에 명예를 걸고 나온 고수들처럼 진지했다.

“그럼. 이건 몸풀기에 불과해. 자, 한 번 더 가자!”

세 사람은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문득 도혁은 걱정이 됐다. 그럼 주원 선배처럼 잘하는 사람일수록 손이 아래 깔리게 되고, 많이 얻어맞는 게 아닌가.

그리고 걱정대로 두 번째 판에서도, 세 번째 판에서도 주원은 가장 먼저 손을 뻗어 찰싹! 손등을 얻어맞았다.

이런, 안 돼. 더는 두고 못 보겠어.

아무리 카드 부자여도 손등이 시뻘게진 주원이 너무 안쓰러웠다. 도혁은 주원의 손에서 피가 터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번 판부터 죽자 사자 덤빈다!

도혁은 온몸의 기운을 모으며 눈을 부릅떴다.

“막내야, 너 눈을 왜 그렇게 떠?”

“무서워.”

민석과 규영이 한마디씩 했지만, 도혁은 진지했다.

“한 판 더 가 보죠.”

“좋아. 다들 카드 내.”

4인방은 룰에 따라 돌아가며 카드를 냈다. 그러다가 종을 칠 타이밍이 됐다. 이번에도 주원이 가장 일찍 손을 내밀었다. 도혁은 유소년기부터 길러온 동체 시력을 풀 파워로 발휘했다. 주원 바로 위로 손을 뻗은 것이다.

“읍!”

도혁의 손등 위를 민석, 규영의 손이 무식하게 덮쳤다. 얼마나 매섭게 후려치는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팠다.

그러나 도혁은 팔에 힘을 주고 버텼다. 주원의 손에 아무런 하중에 실리지 않도록 살짝 간격을 띄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덕분에 주원은 종을 치고도 아무런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도혁만 힘이 들어 그렇지.

“에이, 또 주원이 형이 1등이네.”

“근데 도혁이도 반응 속도 빨라졌다? 갑자기 2등 했어.”

민석과 규영은 제법이라며 도혁의 어깨를 한 대씩 쳤다. 도혁은 아쉽다고 거짓말을 하며 주원을 힐긋 봤다. 그는 손등을 쓸며 입 모양으로 ‘하지 마’라고 말했다.

도혁은 ‘싫은데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허공에서 팽팽하게 눈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며, 규영이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여러분, 게임은 게임일 뿐이에요. 서로 1등 하겠다고 경쟁의식 불태우는 건 좋지만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합시다. 도혁이 너는 선배를 그렇게 노려보면 어떻게 해. 공손하게 쳐다봐야지.”

“아니, 그게…….”

“다시 하자. 자, 첫 게임 끝났으니까 다시 카드 나눠 드릴게요.”

카드가 싹 회수된 다음 다시 배분이 이뤄졌다. 주원은 또다시 첫판에서 가장 먼저 종을 쳤다. 도혁은 타이밍을 잘 봐서 2등으로 손을 뻗어 주원의 손을 보호해 주었다. 가끔 주원이 2등을 할라치면 3등을 해 마찬가지로 손등을 가려 주었다.

“이야, 계속 주원이 형이 먼저고 도혁이가 그다음이야. 어떻게 된 게 도혁이는 한 번을 못 이기냐?”

“치열하다, 치열해.”

규영과 민석은 구경꾼 모드로 전환해 껄껄 웃기만 했다. 끝판쯤 가서는 주원도 모든 걸 포기하고 도혁의 실드 아래 게임을 했다.

주원은 약간의 짜증과 함께 미묘한 간지러움, 더위를 느꼈다. 도혁은 손등에 멍이 들 지경인데 뭐가 좋은지 허허 웃고 있었다. 한바탕 열중했던 게임이 끝나고 그는 목을 긁으며 도혁에게 다가가 멋쩍게 물었다.

“발코니나 좀 나갔다 오자.”

“진짜요?”

“어, 실내가 덥네.”

함께 어울려 놀다가 두 사람만 쏙 빠져나가서 밀회를 즐기는 장소. 발코니는 곧 애정이 피어오르는 장소라는 고정관념의 소유자 도혁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두 사람은 치킨 삼매경에 빠져 있는 민석과 규영을 내버려 두고 살며시 발코니로 향했다.

10층이다 보니 발코니에서는 선수촌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구기 종목 연습장의 불빛이 이따금 보일 뿐, 선수촌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주원은 도혁에게 캔 커피 하나를 건넨 다음 푹 한숨을 쉬었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지. 그는 캔 커피를 손안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혀를 쯧 찼다.

“애들 앞에서 그러면 어떡해.”

“뭐가요.”

“내 손 막아 준 거. 일부러 그런 거잖아.”

“그거야 선배 손 다칠까 봐 걱정돼서였죠.”

“그래, 그게 문제라고. 왜 애들 앞에서 내 손을 막아 주고 그러냐고.”

주원은 뻔뻔스레 제 행동의 근거를 대는 도혁이 얄미웠다.

“그래도 애들 앞에서는,”

“손 안 아파요?”

도혁이 한발 빨랐다. 그가 주원의 부어오른 손을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자기가 더 아픈 표정을 지으며 호호, 입김을 불었다.

“뭐 해.”

“아파 보여서요. 빨개진 것 좀 봐. 손바닥은 괜찮아요?”

도혁이 주원의 손 구석구석을 들여다보았다. 빨갛게 붓고 터진 곳을 찾으면 어김없이 인상을 찌푸렸고, 서툰 입김을 불어 넣었다.

주원은 그런 도혁이 진심으로 바보 같았다. 날 막아 내느라 네 손등은 더 엉망이 된 줄도 모르는 거냐.

“됐고, 애들 앞에서 유난 떨지는 말자.”

“그럼 민석 선배랑 규영 선배 없는 데서는 유난 떨어도 돼요?”

도혁이 얼굴을 훅 가깝게 붙였다. 주원은 타고난 운동 신경으로 그의 입술을 피했다.

“안 되지.”

“그럼 뽀뽀는 언제 할 수 있어요? 생일날 이후로 한 번도 못 했잖아요.”

“마치 해야 하는 사이처럼 말하지 마.”

“못 할 사이도 아니잖아요.”

도혁은 가만히 보면 요령 좋게 말을 했다. 주원은 그 점이 맘에 안 들었다. 꼭 자기의 말문을 막히게 하니까.

그렇지만 오늘은 도혁의 터진 손등이 더 맘에 안 들었다. 그래서 도혁의 오른손을 쥐어 자기 입가로 가져다 댔다.

주원은 도혁의 손등에 아주 살짝 입술을 가져다 댔다. 깃털처럼 가벼운 입맞춤이 끝나고 고개를 들자, 도혁의 얼굴은 시뻘건 횃불처럼 익어 있었다.

“서, 선……!”

“소리 지르지 마. 안에 애들 있어.”

주원은 먼저 거실로 통하는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뒤에서는 펄쩍펄쩍 뛰는 소리가 났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민석의 옆자리에 앉았다.

“형, 치킨 좀 먹어요.”

“오냐.”

“근데 얼굴이 왜 그래요?”

“내 얼굴이 왜.”

“아니… 기분 엄청 좋아 보여서요. 할리갈리 1등 해서 신나세요?”

민석이 프라이드치킨을 건네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기분 좋아 보여?”

“엄청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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