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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금지 채선배 찔러나 보기-49화 (32/115)

49화.

민석의 말에 주원은 욕실에 가서 거울이라도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지금 제 얼굴을 확인해 봤자 인생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이게 다 이도혁 때문이다.

주원은 닭 다리를 크게 한입 베어 물며 중얼댔다.

* * *

팬들의 눈썰미는 예리했다. 할리갈리 영상이 풀리자 각 SNS는 광기에 휩싸였다. 도혁이 주원의 손을 보호해 주고 있다는 것을 팬들이 눈치챈 것이다.

이도혁 매너손 움짤 99개 추출해 옴

댓글

환상이다. 도혁X주원 커뮤로 퍼갈게

피 토하겠네 케미 미쳤어! 99개 다 저장 중이야. 나 죽으면 무덤에 껴묻거리 할 거야.

제목: 야 근데 진짜로 이도혁이랑 채주원 사귀는 것 아님?

침대에 걸터앉아 인터넷 반응을 살피던 주원은 커피를 뿜을 뻔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게시글을 클릭했다.

그 안에는 그간 도혁과 자신의 사진, SNS 게시물, 예능 출연 장면 캡처본이 상세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도혁이랑 채주원이랑 사귀는 증거

첫 번째. 눈빛이 꿀 떨어진다. 특히 이도혁이 채주원 쳐다보는 시간이 내가 재 보니까 K4 1화 방송분의 95%야. 심하지 않아?

두 번째. 채주원은 이도혁을 신경 안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난치는 거 다 받아 줌. 타율이 75%임. 내가 1, 2, 3화 통계 내 봄.

세 번째. 할리갈리 씬에서 절정을 찍음. 애인 아닌데 왜 자기 손을 희생함? 그리고 28분 19초부터 31분 08초까지 이 영상 컷 본을 봐. 채주원도 이도혁 의도를 눈치챘다는 걸 알 수 있다.

댓글

진짜네. 채주원도 이도혁이 손 막아 주는 거 다 눈치챘네?

표정 미묘하게 변하는 거 움짤 쪄 옴. 놀람->당황->기쁨->속상함 그라데이션이다

하긴 자기 남친이 손 다쳐 가면서 희생하는데 마냥 기쁘지는 않을 거야

“허, 어이가 없네. 누가 누구 남친이야.”

주원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샷했다. 그래도 열이 가시질 않아 주방으로 나가 냉장고를 열었다. 마침 냉동 칸에 살얼음이 적당히 낀 생수병이 있어, 단숨에 들이켰다.

“남들 보기에 애인처럼 보이나?”

주원은 게시물을 뜯어보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자기 딴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인다면 심각한 일이었다. 그것도 어느새 대세는 도혁X주원으로 100% 판세를 보이고 있었다.

도혁X주원이 대세가 된 데다가 심지어 진짜 커플처럼 보인다니, 주원은 두통을 느꼈다. 내가 어쩌자고 도혁을 만나서 이처럼 고통받는가. 신에게 물었으나 신은 묵묵부답이었고, 실시간으로 게시물은 불어났다.

* * *

오후가 되고, 주원은 홀로 제작진의 호출을 받았다. 펜싱 경기장의 사무실 하나를 개조한 사무실을 찾자 스태프들이 그를 반겼다.

“오늘이 벌써 마지막 촬영이네요.”

“네. 그래서 오늘은 컨셉이 있는 특별 촬영을 할 거예요. 그래서 채주원 선수님만 따로 부른 거고요.”

“컨셉이라면 어떤 거죠?”

제작진이 곧 종이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촬영 기획서였다.

내 마니또는 누구인가

“이게 뭐죠?”

“K4 선수들 간에 랜덤으로 마니또를 정하는 거예요. 그리고 하루 동안 그 선수한테 비밀스럽게 잘해 주는 거죠. 선물도 하나 줘야 하는데 절대 선물인 거 티 내지 말고 전달해야 돼요. 그 사람이 눈치채 버리면 안 되거든요.”

“아, 뭔지 알 것 같아요.”

“네. 그 사람이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몰래 도와주는 역할이라고 보면 돼요.”

주원도 마니또라면 중고등학교 때 펜싱부에서 해 본 적 있었다. 상대방 모르게 잘해 준다는 규칙을 이용해 좋아하는 사람에게 은근슬쩍 자기 마음을 전하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때 커플이 탄생하기도 했던 기억이 났다.

이것도 사랑의 작대기 게임으로 변질하지는 않겠지? 도혁이 나를 뽑기라도 하면 곤란한데…….

생각에 잠긴 주원을 제작진이 불렀다.

“그럼 선수님이 오늘 하루 잘해 주셔야 하는 상대를 뽑아 볼게요. 여기 쪽지를 준비해 놨으니 세 사람 중에 누가 나올지 기대하면서 뽑아 주세요.”

“네.”

도혁이 걸릴 확률은 1/3이지. 그렇다면 웬만해서는 빗겨나지 않을까. 주원은 기대심 반 초조함 반으로 쪽지를 집어 들었다.

이도혁

“아…….”

주원은 탄식했다. 제작진은 그의 반응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박수를 쳤다.

“두 분 케미가 아주 좋던데 기대되네요. 채 선수는 오늘 하루 이도혁 선수의 수호천사가 되셨습니다.”

“으음… 끙… 네.”

“선물 한 개 잊지 마시고요. 이도혁 선수가 알아맞히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게 잘해 주시는 것도 잊지 마세요. 다들 자기한테 마니또가 있다는 건 알지만 그게 누군지 몰라야 합니다.”

“알았습니다…….”

주원은 씁쓸한 웃음을 띠며 터덜터덜 제작진의 사무실을 나섰다. 때마침 복도 맞은편에서 도혁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 선배님.”

“막내, 무슨 일이야.”

“제작진분들이 호출하셨어요.”

“아… 그렇구나. 들어가 봐.”

“선배님도 제작진분들 만나고 오는 길이세요?”

“응. 들어가서 설명 들어라.”

“재미있는 거라던데, 진짜예요?”

도혁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재미… 글쎄다.”

주원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려 했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오늘 하루 내가 얘 마니또지. 잘해 줘야 한다고 그랬어. 그럼 이렇게 껄렁하게 대해서는 안 된다.

“아, 재미있는 거 맞아. 들어가면 너도 좋아할 거야.”

주원은 자세를 똑바로 하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도혁이 활짝 웃으며 주원한테 손을 뻗었다.

“뭐… 뭐야.”

“선배 웃는 입꼬리가 너무 예뻐서요. 만져 봐도 돼요?”

도혁의 손이 주원의 얼굴 가까이 왔다. 주원은 갈등했다. 평소 같았으면 안 된다고 단칼에 잘랐을 것이나, 하지만 자신은 오늘 도혁의 마니또이니 오늘만큼은 도혁의 기분을 상하게 해선 안 됐다.

“어, 만져라.”

“진짜요?”

기대도 안 했던 선물을 받은 듯, 도혁은 화들짝 놀랐다.

“맘 변하기 전에 만져.”

주원이 떡하니 얼굴을 내놨다. 도혁은 도자기라도 다루듯 주원의 아래턱을 만지작거리다가 엄지로 그의 입꼬리를 쓸었다.

“우와… 너무 예뻐…….”

“다 됐어?”

난 예쁜 게 아니라 잘생긴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원은 꾹 참았다. 오늘은 그저 잘해 줘야 한다.

“조금만 더요.”

“그래.”

“선배, 너무 고마워요. 오늘 하루 살아갈 힘이 생겼어요.”

“별말을 다 하네. 그럼 들어가 봐.”

“네!”

도혁이 힘차게 제작진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원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뺨을 긁었다.

저 녀석 마니또는 누가 되려나? 쟤도 나를 뽑을 확률은 극히 적겠지?

주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훈련장으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들어가자 민석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어, 형님! 잘 주무셨습니까.”

“응. 너도?”

“저야 잘 잤죠. 형은 안 피곤하세요? 어깨라도 주물러 드릴까요.”

“웬 안마야. 됐어.”

“그러지 말고 제 손길에 몸을 맡겨 보세요.”

민석이 성큼성큼 다가와 주원의 등 뒤에 서서 어깨를 꾹꾹 주무르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서로 어디가 아픈지 잘 알기 때문에, 안마는 아주 시원했다.

“좋으시죠?”

“어, 끝내준다. 너 혹시 스포츠 마사지 배우러 다녀?”

“에이, 아니요. 근데 형 해 드리려고 연습 좀 하긴 했어요.”

민석이 살갑게 대꾸하니 주원의 귀가 쫑긋 섰다.

혹시 이 녀석이 오늘 내 마니또?

의심 센서에 불이 켜졌다.

“민석아, 너 혹시……?”

“네?”

민석은 천진무구한 얼굴이었다. 주원은 조금 더 캐물어 볼까 하다가 말았다. 마니또 게임의 특성상 ‘네가 내 마니또냐?’라고 묻는 것은 룰에 위배됐다.

“아니다. 계속 주물러 봐.”

“우리 형, 어깨가 많이 뭉쳤네. 요새 훈련이 너무 고되긴 했지. 새벽에 산타고, 오늘은 갑자기 수영장에서 훈련한다고 하지 않나.”

“아, 맞네. 오늘 수영 훈련 있지?”

“네. 저는 하나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규영이 형이랑 도혁이는 시원한데 잘됐지 않냐면서 좋아하더라고요.”

박 코치와 장 감독은 수영 국가 대표팀 감독과 친분이 두터웠다. 그래서 펜싱팀은 그 어렵다는 여름 시즌 수영장 빌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럼 오늘은 기초 훈련만 하고 수영장으로 가는 거지?”

“네. 아까 코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예능팀도 우리 따라온다고 하고요.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해요.”

땅 위에서만 싸우다가 수상 훈련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몰라도 지루하진 않을 것 같았다.

뒤에 수상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기초 훈련은 가볍게 끝났다. 4인방은 재킷을 벗어놓고 대신 세면도구와 수영복을 챙겨 펜싱 경기장을 나섰다.

“꼭 놀러 온 것 같네요. 물놀이 가는 기분이에요.”

“그러게.”

도혁은 정말로 들떠 보였다. 주원은 도혁이 너무 신이 나 혹시나 도혁이 어떤 사고를 일으키지는 않을까 염려가 됐다. 그는 도혁을 아주 어리게 봤기 때문에, 물장난을 심하게 치다가 다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사고 대응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주원의 염려 가득한 마음을 전혀 모르는 도혁은 탈의실에서도 콧노래를 부르고, 몸풀기 운동을 할 때도 팔다리를 휘두르며 폴짝폴짝 뛰었다.

“우선 레인 안에서 걸으면서 하체 풀기부터 하자.”

“네!”

수심이 허리까지 오는 레인에 네 명이 나란히 들어갔다. 물살이 저항을 만들어 냈기 때문에 땅 위보다 걷기가 어려웠다. 풀장 내부에 유압 장치를 설치해 물살을 강하게 만든 탓에, 선수들은 평소보다 하체에 더 힘을 줘야 했다. 하체를 실컷 혹사시킨 네 사람을 박 코치가 불러들였다.

“이제부터는 물속의 핸드볼이라 불리는 수구를 해 보자. 2 대 2로 팀을 나눠서 똘똘 뭉쳐 공격을 하는 거야.”

“룰은 따로 없습니까?”

주원이 물었다.

“다치지만 않으면 상관없어. 얼굴에 물을 뿌려도 되고, 상대를 물속에 처박아도 된다. 최대한 물 안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는 게 이 훈련의 목적이야.”

박 코치가 물에 뜨는 공을 가져왔다. 수영장에서 서포터로 일하는 사람들이 골대를 설치해 주자 그럴싸한 필드가 마련되었다. 그다음으로는 한 팀이 되어 싸울 메이트를 정해야 했다.

“팀을 정해 보자. 자, 누구랑 누가 한 팀 할래?”

“저 주원 선배요.”

질문이 떨어짐과 동시에 도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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