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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금지 채선배 찔러나 보기-95화 (9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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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 선셋 세일링(2)

“하나 더 마셔야 하는 거 아니냐.”

“네. 이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죠.”

도혁이 미간을 찌푸리자 주원이 피식 웃었다. 눈에 뭐가 쓰인 건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도혁이 너무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평온하고 다소 차가워 보이는 모습을 유지했다. 도혁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원 시그니처 냉미남 모먼트’였다.

같이 살게 된 이후로 또 공식적인 애인이 된 이후로 주원은 많이 변화했다. 늘 날을 세우고 도혁을 밀어내기 급급했던 초창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러워졌고, 혼란과 머뭇거림을 반복하던 올림픽 직전에 비하면 제 애정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섰으며, 지금은 애인이 사랑스럽고 좋아서 미치려 했다.

다만 표현법은 여전히 상알파답고 꼰대스러운 본연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원은 여전히 딱딱하면서도 무뚝뚝한 면이 강했다. 속에 담긴 마음은 꽤 달콤하고 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녁 식탁에서도 맛있는 걸 먹여 주면서 다정다감한 면모를 선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죽었다 깨나도 자기야, 내가 만든 요리 어때? 하면서 도혁에게 직접 음식을 먹여 주는 일 같은 건 하기 어려웠다. “간은 잘 맞냐.” 이게 주원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침대에 있을 때는 열정적으로 임하긴 했지만 절대 도혁을 먼저 유혹하지는 못했다. 어젯밤도 도혁이 조르듯이 시작되었으나 사실 속내로는 주원 역시 도혁에게 이런 짓 저런 짓을 하며 낯뜨거운 말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라치면 목구멍에 가시라도 박힌 듯 도저히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주원은 그런 자신이 때로는 답답했다. 사귀기 전에는 남이 뭐라든 알 바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자는 좌우명 아래 무뚝뚝한 제 성정을 전혀 고칠 생각이 없었으나 정말 사랑하는 애인이 생기고 나자 그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런데 타고난 성격이 이런 걸 어떡해. 도대체 어떻게 해야 도혁이에게 상냥하고 부드러운 애인이 될 수 있는 거지? 주원은 무언가에 있어 방법을 알지 못해 초급반에 머물러 본 경험이 없었다.

공부든 펜싱이든 천재 소리를 들으며 능숙하게, 남들보다 한발 앞서 모든 것을 쉽게 헤쳐 나갔다. 거기에 본인의 노력이 더해지니 두말할 나위 없는 훌륭한 선수로 거듭난 것이고. 하다못해 어릴 적 바둑도 간단하게 배웠다.

하지만 도혁 앞에서는 도로 위에서 어리바리 구는 초보 운전자처럼 어쩔 줄을 몰랐다. 이건 주원의 인생에 있어 처음 겪는 아찔한 변화였다. 이럴 거면 지금껏 연애 여러 번 해 봤다고 명함 내밀기도 무색했다.

…진짜 사랑은 처음이라 그런가.

마음이 복잡해진 주원이 얼굴을 긁적이려는데 도혁이 카운터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저 아예 민석이 형 규영이 형 것까지 해서 여러 개 사 올게요. 다양하게 시켜 놓고 나눠 마시죠, 뭐.”

“응. 그래.”

도혁이 카운터로 걸어가 음료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도혁의 주문을 받는 아르바이트생은 키가 작고 체구가 가녀린 여자 오메가였는데, 언뜻 듣기에 말투에 애교가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고 잘 웃었다.

딱 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의 그녀는 도혁에게 사인을 해 달라고 부탁하는 건지 흰 종이와 볼펜을 내미는 중이었다.

“흠…….”

도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마주 보며 환하게 웃고서 사인을 해 주었다. 얼핏 보면 아주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난 저렇게 애교 있게 못 하겠는데……. 도혁이한테 나도 사근사근 대할 필요가 있겠지. 기왕이면 밝으면서 착착 감기는 애인이 좋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것 같은데.

주원이 팔짱을 끼며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이번 여행을 전환점으로 삼아 볼까? 평소랑 다른 분위기 속에서 나도 좀 변화를 꾀해 보는 거야.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채주원이라니, 내가 말해 놓고도 좀 짜증 나긴 하지만 그래도 난 도혁이를 사랑하니까.

주원은 곧 결심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여행, 잘해 보자.

그때였다. 문가에 캐리어 끄는 소리가 났다.

“일찍들 왔네!”

“주원이 형! 도혁아! 오랜만이다.”

민석과 규영이 카페 안으로 들어서며 손을 흔들었다.

“어서 오세요, 형님들.”

“오느라 고생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으며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음료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아메리카노에 카페모카에 녹차 셰이크에… 이거 망고 바나나지? 우리 넷이서 이거 다 먹는 거야?”

“여행 가기 전에 이 정도는 섭취해 줘야죠. 저희가 누굽니까. 인당 네 잔은 마셔야 한다고 봐요.”

“그건 그래.”

규영이 양손에 카페모카와 망고 바나나 셰이크를 쥐며 허허 웃었다. 민석은 그 모습을 찍고 도혁과 주원에게도 포즈를 취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 여행 가서 B로그 잔뜩 찍읍시다. 사진도 많이 찍고. 팬들이 우리 근황 안 올린다고 나한테 계속 DM 보내요. 아주 성화야, 성화.”

“역시 펜싱계 아이돌이 맞네.”

규영의 말에 민석이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컨텐츠 공급을 꾸준히 해 줘야 팬덤이 유지된다고.”

“나도 열심히 협조할게.”

민석과 규영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껄껄댔다. 팬미팅 이후 민석은 아이돌이라도 된 것처럼 팬 관리에 열심이었다. 규영 역시 아닌 듯 보이면서도 커뮤니티에 댓글을 달아 주고 오프라인에서 팬을 만나면 성실하게 팬서비스를 하는 등, 인기를 즐겼다.

“근데 주원이 형, 유난히 피곤해 보이네요. 여행 간다고 설레서 잠 못 잔 거예요?”

규영이 주원을 유심히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댔다. 그러자 민석이 규영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소곤댔다.

“형. 눈치 어디다 두고 왔어? 도혁이도 눈 밑이 시커멓잖아.”

“그게 왜?”

“아휴… 말을 말자.”

민석이 가볍게 짜증을 부리며 망고 바나나 셰이크를 입에 물었다. 규영만 못 알아듣고 도혁과 주원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듣고 이해한 당사자들은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흠흠. 어쨌든 애들아, 이렇게 모여서 포상 휴가 가니까 좋다. 국대 대접 제대로 해 주는 것 같아서 뿌듯하고, 또 너희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더 기쁘고.”

“맞아요, 형. 저 엄청 기대하고 있거든요. 넷이서 추억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규영의 말에 민석이 규영을 가볍게 흘겼다.

“제발 눈치 챙겨요, 형. 저 두 사람 단둘이 있을 시간 보장해 주자고.”

민석이 규영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규영은 그제야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야기 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얼른 해치우고 비행기 타러 가요. 기내식 먹으러 가자고요.”

“그래. 다들 열 모금에 끝낼 수 있지?”

“세 모금에 컷이요.”

4인방은 음료 열두 잔을 깔끔하게 클리어하고 카페를 나섰다. 출국장으로 향하는 네 명의 얼굴에 장난기 어린 웃음이 가득했다.

* * *

비행기에 오르는 건 주원이나 도혁이나 지난 올림픽 이후 처음이었다. 이 여행이 끝나면 바로 카타르에서 세계 선수권 대회가 열리므로 당분간은 여행 가기가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그래서 도혁은 어떻게 보면 민간인 신분으로 즐기는 이번 여행을 최대한 자유롭게 즐기고 싶었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이 순간까지도 오롯이 기억에 남기고 싶을 정도였으니 이번 여행에 임하는 그의 태도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하다못해 제 옆에서 벌써 잠이 들락 말락 눈을 깜빡거리는 주원의 모습을 단 1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도혁은 그에게 담요를 덮어 주고 연신 머릴 쓰다듬으며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기내가 좀 춥네.”

“어, 그러게.”

“손잡아 줄까요?”

“무슨… 됐어.”

“에이, 그러지 말고 손 이리 줘 봐요.”

도혁이 주원의 손을 잡아다가 제 손 위에 겹쳤다. 체온이 워낙 높은 도혁이라 뜨끈한 체온이 주원에게 잘 전달되었다. 주원은 그게 편안한지 입가를 살짝 끌어 올리며 도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편하다.”

“진짜로요? 그럼 손 놓으면 안 되겠다.”

“밥 먹을 때는 놔야지. 곧 기내식 나올 것 같은데.”

“내가 먹여 줄게요. 형은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

“그래도 될까?”

주원이 소곤거리자 도혁의 얼굴에 웃음이 확 퍼졌다.

“당연하죠. 아, 너무 좋다. 우리 자기.”

“왜 갑자기 자기래.”

“기분이 너무 좋으니까요.”

그들의 복도 건너 자리에 앉아 있던 규영이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닭살이 돋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자기들은 안 들린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규영은 귀가 밝아서 저런 소리가 아주 잘 들렸고, 살짝 짜증이 올라오려 했다.

귀마개를 챙겨 오지 않은 것이 이번 여행이 최대 실수이지 않았나 생각하며, 규영은 승무원이 나눠 준 안대라도 써 보려고 주섬주섬 좌석 앞주머니를 뒤졌다. 그때 어두웠던 기내 안에 조명이 들어오며 승무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어, 자기야. 이제 밥 나오나 봐요. 우리 형아는 맛있게 먹을 준비만 해요. 혁이가 다 해 줄게.”

기내식 타임이라 잠도 못 자겠구만. 규영은 마른세수를 하며 똑바로 앉았다.

“식사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치킨 누들과 비빔밥 중에 어떤 걸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승무원들이 카트를 끌고 다가오며 승객들에게 식사를 나누어 주었다. 규영은 비빔밥보다 차라리 귀마개가 간절했다.

오직 쉼터. SHu 제작. 공금. 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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