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도도! 멍멍!(2)
도혁 역시 스포티한 후디를 뒤집어쓰고 모 스포츠 브랜드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만 한정판으로 제작해 준 운동화를 신어 스타일리시한 느낌을 냈다.
“그럼 가시죠.”
“좋아. 가자.”
둘은 오피스텔을 나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도혁이 운전석에 올라타고 주원이 조수석에 탔다. 차량은 주원의 것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도혁이 운전기사를 자처하고 나섰고, 그게 습관이 되어 주원은 편하게 조수석에 탔다.
주원이 안전벨트를 메자, 도혁이 어라? 하며 주원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뭐 잊은 거 없어요?”
“잊다니? 뭘.”
도혁이 말 대신 얼굴을 들이밀었다. 살짝 내민 입술을 보고 주원은 피식 웃은 다음 가벼운 키스를 해 주었다. 그제야 도혁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갑시다!”
백화점에 도착한 두 사람은 야무지게 주차를 하고 의류 매장이 위치한 층으로 올라갔다. 둘을 알아본 사람들이 헉하며 뒤를 돌아보고, 때로는 용기 내 말을 걸기도 했다. 올림픽 이후 하도 이런 일이 많았기 때문에 도혁과 주원은 능숙하게 사인을 해 주고 셀카를 찍어 주며 팬 서비스를 해 주었다.
“어머, 선수님들! 저희 브랜드에 옷 보러 오신 거예요?”
“네. 코트 좀 보려고요.”
브랜드 매니저가 반가운 티를 냈다.
“채주원 선수님은 블랙 계열이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요. 이런 심플한 디자인 어떠실까요?”
“괜찮네요. 형, 이거 입어 봐.”
매니저와 도혁이 입을 모아 권한 옷은 매장 내에서 손꼽히게 비싼 가격대였다. 옷은 솔직히 말해 잡스러운 디테일이 없고 깔끔하게 딱 떨어져 맘에 쏙 들었다. 하지만 도혁이 저한테 옷을 사 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요. 이거 말고 다른 거 볼게요.”
“아니야, 형. 이게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래? 그럼 내가 사지 뭐. 계산해 주세요.”
주원이 카드를 내밀자 도혁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사 준다고 했잖아요. 내가 계산할래.”
“이거 비싸잖아. 그냥 내가 사면 돼.”
“싫어. 내가 계산할 거야. 여기 얼른 계산해 주세요. 그리고 형이 나 한 벌 사 줘. 됐죠?”
도혁의 철벽 방어에 주원은 결국 웃으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았어.”
“신난다!”
사이좋은 두 사람의 모습에 매니저는 흐뭇하게 웃으며 확정된 매출을 기뻐했다. 또 다른 의미로 도혁은 무척이나 신이 났고, 주원도 내심 기뻤다.
주원은 보답하겠다며 도혁에게 어울릴 만한 후드티와 스포티한 티셔츠를 여러 벌 사 주었다. 도혁은 또 고맙다며 주원을 인근 최고의 맛집으로 데려갔다.
“갈비까지 사 주고, 우리 도혁이 최고다.”
“저야말로 같이 와 줘서 고마워요. 오늘 너무 행복하다.”
식당을 나서며 도혁은 양손 가득히 쇼핑백을 들었다. 이렇게 풍족하고도 충만한 나날이 또 올까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초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날씨가 맑고 바람도 따스했으며, 무엇보다도 둘이서 온전히 시간을 보내는 이 하루가 너무나 소중했다.
…그랬는데.
도혁이 자신의 손이 두툼하고 누르스름한 앞발로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은 그다음 날, 즉 일요일 아침이었다.
이, 이게 뭐야.
도혁이 손을 들자 커다란 개에나 달려 있을 법한 앞발이 움직였다. 당황스럽다 못해 꿈을 꾸는 게 아닌가, 도혁은 이 상황을 믿기 힘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야는 왜 이렇게 낮아졌는지. 190cm 이상의 키를 자랑하는 도혁은 침대에 누워 있을 때마다 발이 간당간당 삐져나올락 말락 하는 게 특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옆으로 누운 자세 그대로 공간이 차고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꼭 큰 개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꿈인가? 뺨이라도 때려 봐?
도혁은 손을 들어 자기 뺨을 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치긴 쳤는데 앞발로 주둥이를 가격한 꼴이 되었다. 축축한 코와 부들부들한 털의 감촉이 영락없는 개 주둥이였다.
헐… 말도 안 돼. 나 지금 개잖아! 마치 작가 카프카의 고전 명작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리가 이런 감정이었을까. 크나큰 충격을 받은 도혁은 몸을 일으키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느라 바빴다.
물론 그 다리 역시 굵직하고 단단한 사람 다리가 아니라 개의 다리였다. 일어서는 것도 두 발이 아니라 네발을 짚고 일어났다.
침착하자, 일단 진정하고 내 모습을 확인하는 거야.
도혁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견뎌 내며 현관문 옆에 놓인 전신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즉시 할 말을 잃었다. 거울 안에 비친 것은 멀쩡한 청년이 아니라 한 마리의 골든레트리버였다.
컹컹!
너무 놀라서 욕을 했는데 강아지 짖는 소리가 나왔다.
낑, 낑.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라고 중얼대자 이번에도 개소리가 나왔다. 도혁은 털썩 주저앉아, 정확히는 바닥에 엎드려 울먹였다.
나는 개가 아니야. 국가대표 펜싱 선수 이도혁이라고. 대학생이기도 하고, 여우보다 깜찍하고 섹시한 애인이 있어. 멀쩡한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윤기 나고 꼬리가 커다란 개가 되어 방 안에 누워 있었던 거지.
도혁은 필사적으로 지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장면은 어젯밤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였다.
주원과 쇼핑과 외식을 마친 뒤 집에 돌아오니 약 다섯 시였다. 운동이나 하자며 학교 훈련장에 가서 가볍게 한 게임을 하고 나니 귀신같이 배가 꺼져 허기가 졌고, 식사 겸 야식 겸 해서 학교 앞에 유명한 치킨집에 가 콜라와 양념치킨, 맥주를 먹었다.
이런 둥글둥글 털 달린 발이 아니라 내 손으로 먹었어. 닭 다리를 집어서 주원이 형 입에 넣어 주기까지 했단 말이야.
도혁은 억울함과 황당함을 느끼며 계속해 그다음 장면을 회상해 보았다.
한 사람당 한 마리씩 닭을 해치우자 조금 허기가 가셨다. 살짝 취기가 오른 주원의 뺨이 발그레했고 그게 너무나 예뻐 보여,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도혁은 빨리 집에 가자고 보챘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주원을 덮쳤다.
좀 씻자는 말은 무시하고 아까 샤워했으니 되지 않았냐고 박박 우기며 그대로 주원을 끌고 침대로 갔다.
‘우리 내일도 노는 날이잖아. 우리 아무 일정도 없어. 그러니까 자기야, 오늘 밤 한번 새워 보자.’
‘너 짐승이야?’
‘어, 형. 나는 한 마리의 짐승이야. 몰랐어?’
그렇게 말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가졌는데……?
거기까지가 도혁이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고 나서 눈을 떠 보니 진짜로 짐승이 되어 있을 줄이야.
심지어 기억에 의하면 도혁은 분명 침대에서 잠들었었는데 지금 있는 곳은 거실이었다. 밤사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아무튼 방 안을 확인해야 할 것 같아 도혁은 침실로 후다닥 달려갔다. 발바닥과 마루가 마찰할 때마다 토독토독 소리가 났다.
이런, 망할.
침실 문이 닫혀 있었다. 문을 열려면 손잡이를 돌려야 하는데 개의 몸으로는 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포기할 도혁이 아니었다. 그는 큰 덩치를 이용해서 벌떡 일어선 다음, 두툼한 앞발로 이리저리 손잡이를 돌려 침실 문을 열었다.
“멍!”
어둑한 침실 안, 침대 위에 주원이 누워 있는 것이 보여 ‘형!’ 하고 불렀더니 멍 소리가 났다.
“멍멍!”
형, 형. 일어나. 큰일 났어.
소리가 꽤나 시끄러웠는지 주원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기척을 보였다.
“도도야, 형 잔다…….”
그러나 이내 주원은 다시 침대에 몸을 파묻을 뿐, 도혁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멍멍?”
“도도, 조용히 해.”
도도라니, 그게 누구지. 설마 내 이름이 도도야?
아니야. 주원이 형은 한 번도 나를 도도라고 부른 적이 없는데.
“멍……?”
“도도, 자꾸 이러면 형이 못 자잖아. 쉿.”
물론 내가 도혁이니까 대충 맞기는 한데… 아니, 마치 집에서 키우는 반려 강아지 이름 같잖아.
혼란스러운 마음과는 다르게, 주원의 목소리를 들으니 도혁의 꼬리가 절로 좌우로 붕붕 흔들렸다. 그 꼴이 꼭 커다랗고 결 좋은 빗자루 같았다.
“으음… 도도.”
주원이 침대 바깥으로 팔을 뻗어 도혁의 정수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그 느낌이 미칠 듯이 황홀해 도혁은 배를 까뒤집고 발라당 누웠다. 주원은 능숙하게 도혁의 분홍색 배를 만졌고, 도혁은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 가며 주원의 손길을 즐겼다.
“멍… 멍.”
한참 무아지경에 빠져 있다가, 도혁이 정신을 차렸다.
뭐지. 방금 나 굉장히 개 같았는데?
안 되겠다. 형을 깨우자.
도혁은 과감하게 점프해 침대로 난입했다. 출렁거리는 움직임에 주원이 가늘게 눈을 떴다.
주원이 형, 일어나 봐. 나 지금 큰일 났다니까?
그렇게 애타게 부르짖지만 나오는 소리는 끄응, 끼잉이 전부였다. 도혁은 점점 불안해졌다.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방법도 없었고, 해결할 수단도 없었다.
그 반면에 주원은 그런 도혁이 굉장히 사랑스럽다는 듯, 커다란 강아지의 몸을 덥석 끌어안으며 ‘우리 도도 사랑해.’라고 말할 뿐이었다.
오직 쉼터. SHu 제작. 공금. 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