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 도도! 멍멍!(3)
그러고는 도혁을 꽉 안은 채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낑…….”
아, 형. 자지 말라고. 얼른 일어나요.
주원을 깨워야겠다는 일념하에 도혁은 주원의 얼굴을 날름 핥았다.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으음… 알았어, 알았어. 도도, 기다려.”
주원이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도혁은 멍! 하고 크게 짖으며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주원이 침실 밖으로 걸어 나가길래 도혁도 잽싸게 그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주원은 도혁이 개라는 사실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전혀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거실 한구석에 놓인 밥그릇에 사료를 퍼 주고, 정수기에서 새 물을 받아 바닥에 놓아줄 뿐이었다.
“끙?”
도혁은 너무 당혹스러웠다. 이 밥그릇과 사료는 어디서 났지? 마치 내가 여기 살던 개 같잖아. 그리고 저 지금 배고파서 형을 깨운 게 아니라고요. 사람이 개가 되었으니 좀 알아봐 달라고 깨운 거잖아……!
“낑!”
도혁은 답답해서 가슴을 치고 싶었지만 신체 구조상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려서 데구르르 굴러야 하나, 아니면 어디 연필이라도 주워서 글씨를 써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다. 주원의 전화벨이 울렸다.
“어? 누나다.”
“낑……?”
도혁이 휙 고개를 돌렸다. 주원이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나 일어났어. 누나도 잘 잤어?”
누군가와 안부를 묻는 듯하다가 주원이 웃었다. 도혁은 그 대화를 들으며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누나라니, 무슨 누나? 대체 무슨 누나를 말하는 거지? 그리고 저 다정한 말투는 뭐고?
불안한 도혁은 주원의 주위를 빙빙 돌며 헥헥거렸다.
“응응, 도도. 잠깐만 기다려. 곧 놀아 줄게.”
주원이 무릎을 굽혀 도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도혁이 원하는 것은 이런 간단한 스킨십이 아니었다. 당장 전화를 끊고 진지한 대화를 하길 원했다. 그러나 주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통화를 이어 나갔다.
“아, 도혁이?”
갑자기 튀어나온 자신의 이름에 도혁이 화들짝 놀랐다. 드디어 형이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구나. 도혁은 펄쩍펄쩍 뛰며 난리를 피웠다.
“어? 갑자기 왜 이러지. 도도, 진정해.”
형! 도혁이, 나예요, 나.
“아… 거절했지. 뜬금없이 고백받아서 당황하긴 했어. 근데 어쩌겠어. 그냥 늘씬하게 패 주고 끝냈지. 울더라.”
헐. 인간 세상 도혁이가 따로 있는 거야? 나는 그냥 개인 거고?
도혁은 현실 감각이 사라진 듯 아찔해져 왔다. 네발로 딛고 있는 바닥이 푹 꺼진 기분이었다. 갑자기 꼬리와 귀를 축 늘어트리는 도혁을 눈치채지 못하고 주원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욕실로 향했다.
도혁은 바닥에 풀썩 쓰러져 낑낑거렸다.
설마… 설마.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모두 다 꿈이었던 건가? 펜싱을 하는 형에게 한눈에 반해 꿈을 키우고, 같은 대학교에 진학해 친해진 다음 고백하고, 결국에는 형도 날 사랑한다고 해 줬던 일들이 모두 다 내 꿈이었나?
처음부터 나는 그냥 한 마리 골든레트리버에 불과했던 걸까? 주인을 너무 사랑해서 망상 속에 미쳐 버린 강아지… 그런 거?
아니야… 아니야. 난 인간이 맞다. 저주에 걸려서 개가 된 거야!
도혁은 자꾸만 흐려져 가는 이성을 단단히 붙잡았다.
내가 어째서 개가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인간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주원이 통화한 상대, 무슨 누나인지는 몰라도 심상치 않은 사이인 게 틀림없었다.
잠시간 절망했었지만, 도혁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사나이답게 부활했다.
어떻게든 다시 사람이 될 테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원이 형을 손에 넣겠어. 도혁의 송아지같이 커다란 눈망울이 결의로 가득 찼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우선 형이 못 나가게 막아야겠지? 그래야 그 누나인지 뭔지를 못 만날 테니까.
도혁이 침착하게 생각을 마치고 침실로 향했다. 마침 주원이 욕실에서 나와서 이것저것 옷을 입어 보며 패션쇼를 벌이고 있는 참이었다. 딱 봐도 미끈하게 꾸미는 꼴이 여자 만나러 외출 준비를 하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차려입은 주원은 근사하기는 했다. 캐주얼한 슈트에 값비싼 손목시계를 차고 나서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고, 향수까지 뿌리는 주원의 모습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멋있었다.
“누나도 좋아하겠지?”
주원의 마지막 말에 도혁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얼른 나가야겠다.”
가긴 어딜 가, 못 가!
도혁이 맹렬하게 돌진해 주원의 바짓가랑이를 앙 물었다.
“어어, 도도야. 왜 이래.”
주원이 말하지만 도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이빨에 더 힘을 줬다.
“형아가 안 놀아 줘서 그래? 금방 들어올 거야. 저녁에 같이 산책 가자.”
주원이 말하지만 도혁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그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주원은 그 꼴 그대로 도혁을 다리에 매달고 거실로 걸어 나왔다.
“아니, 얘가 왜 이러지.”
온순하던 평소와 다르게 외출 나가지 못하게 막는 도혁의 행동이, 주원은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아… 저거라도 줘야겠다.”
마침 주원의 눈에 도도의 애착 아이템인 장난감 칼이 보였다. 솜뭉치로 만든 말랑말랑한 것이라 안전하면서도 재미있게 갖고 놀 수 있는 물건이었다.
“도도! 저거 좀 봐!”
주원이 장난감 칼을 몇 번 흔들더니 냅다 허공에 던졌다. 도혁은 본능적으로 그 장난감을 향해 몸을 던졌다. 말 그대로 치명적인 이끌림이었다.
주원은 이때다 싶어서 잽싸게 현관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도혁이 한발 더 빨랐다. 주원은 결국 현관 앞에서 도혁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도도야. 대체 왜 그래.”
주원은 도혁의 눈높이에 맞춰 앉은 채로 도혁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주원의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보던 도혁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두툼한 앞발에 얼굴을 묻고 훌쩍이는 골든레트리버의 모습에 주원은 너무 크게 놀랐다.
“도도! 도도야, 왜 그래. 어디 아파?”
주원이 묻지만 말을 못 하는 도혁은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미치고 펄쩍 뛰도록 가슴이 짓눌리던 그 순간, 주원이 다시 한번 도혁을 불렀다.
도혁아, 이도혁!
날 도혁이라고 불렀어! 도혁은 드디어 속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형이 내 정체를 알아차렸구나! 도혁은 서둘러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배경이 갑자기 달라져, 더 이상 현관 앞이 아니었다.
도혁은 누워 있었으며, 누군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자신을 흔드는 손길을 느꼈다. 이 익숙한 침대의 느낌, 나를 흔드는 익숙한 손길과 체온……. 도혁은 눈을 번쩍 떴다.
“도혁아, 너 가위눌렸어?”
걱정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주원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어…….”
도혁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주원을 쳐다봤다.
“어, 어… 형?”
“그래. 나야.”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도 아주 멀쩡한 이도혁 자신의 목소리가 확실했다.
“주원이 형!”
도혁이 팔을 뻗어 주원을 덥석 끌어안았다.
“새삼스럽게 왜 그래. 무슨 꿈을 꾼 거야.”
“꿈… 그래. 꿈이었나 봐.”
도혁은 이제야 자신이 꿈을 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개꿈이었다. 꿈속에서의 답답함과 설움이 되살아나, 도혁은 서러워졌다.
“형, 주원이 형…….”
“응, 그래.”
도혁이 주원의 품에 마구잡이로 파고들었다. 주원은 그의 등을 두드려 주면서 커다란 덩치를 꼭꼭 안아 주었다.
“악몽 꿨나 보다, 우리 도혁이.”
“그게 아니고… 개가 된 꿈을 꿔 가지고요…….”
“개꿈 꿨다고?”
“개꿈이 아니라… 아니, 맞긴 한데.”
두서없이 말하면서 훌쩍이는 도혁을, 주원은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었다.
“내가 꿈에서 개였는데 형이 날 버리고 다른 여자 만나러 나갔어요.”
“내가?”
“그래서 내가 못 나가게 하려고 형 바짓가랑이 물고… 어헝.”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지금이 현실이고 그게 꿈이야, 알겠지?
주원이 도혁을 꽉 끌어안고 등을 툭툭 두드렸다.
“도혁아. 형은 사람이고 도혁이도 사람이야. 그리고 다른 여자 같은 거 안 만나.”
“진짜죠?”
“내가 우리 도혁이한테 거짓말을 왜 하겠어.”
“그럼 증거 대 봐요.”
“증거?”
주원이 눈을 끔뻑이자, 도혁이 눈물을 닦고 주원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형이 내 거라는 증거 말이에요. 나 지금 확인할래.”
도혁의 손길이 주원의 티셔츠 안으로 파고들며 끈적함을 더했다. 주원이 간지럽다고 몸을 비틀었다.
“야! 간지러워.”
“형, 나 좋아하죠?”
“좋아해. 좋아하지, 당연한 걸 묻고 있어.”
“형, 나 버리면 안 돼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도혁이 주원을 붙잡고 쪽, 쪽 사정없이 입을 맞췄다. 도혁의 얼굴에는 어느새 안도의 미소가 퍼져 있었다.
아, 다행이다. 이 모든 건 개꿈이었고, 나는 인간 이도혁. 인간 채주원의 애인이 맞네.
<애니멀 팜>은 당분간 금지야. 대형견 같다는 별명도 이제는 그만!
도혁은 주원을 으스러지도록 끌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부으며 슬그머니 웃었다.
평화로운 주말 아침의 시작이었다.
도도! 멍멍! 외전 마침.
오직 쉼터. SHu 제작. 공금. 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