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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금지 채선배 찔러나 보기-112화 (11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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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 오로라 헌팅(1)

“저 떨려요.”

“나도다.”

서울-부산 간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덜덜 떠는 두 남자가 있었다. 도혁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벌벌거리며 자꾸만 조여오는 넥타이를 풀었고, 주원은 손바닥에 흥건한 땀을 닦아 가며 운전했다.

그들은 해운대의 도혁 집에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1월 1일의 결혼 약속을 토대로, 드디어 본격적인 결혼 준비에 착수한 것이다. 우선 도혁의 부모님께 허락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기에 주원은 갖은 노력을 해서 자신을 꾸몄다.

안 그래도 옷발이 좋은 몸에 명품 슈트를 휘감고 아버님이 좋아하실 홍삼주, 어머님이 반겨 주실 화장품 세트를 준비하는 그는 일등 신랑감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알파 사위를 기꺼워하실까? 어디서 멀대같이 큰 놈이 도혁이 옆자리를 꿰찼다고 미워하시진 않을까, 주원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일전에 뵌 적이 있어 부담되지 않았지만, 도혁의 아버지는 난생처음 뵙는 자리였다. 그런데 바로 결혼 허락을 받아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눈앞이 컴컴한 주원이었다.

해운대 시가지에 진입해서부터는 주원이 거의 넋이 나가 도혁이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주원은 핸드폰 액정을 거울 삼아 계속 머리를 만졌다.

“나 잘할 수 있겠지?”

“우리 형이 누군데! 당연하죠.”

“나 지금 꼴 괜찮아?”

“너무 멋있어요. 최고야.”

주원은 넥타이를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누가 봐도 긴장한 티를 냈다.

“괜찮아요. 너무 떨지 말아요.”

“떨지 않으려고 해도 잘 안 돼. 겁나.”

“형이랑 결혼하기로 했다고 하면 우리 부모님 틀림없이 기뻐하실 거예요.”

“정말?”

“네. 제가 얼마나 형 좋아해 왔는지 잘 아시니까요. 펜싱도 형 때문에 사브르로 진로 정한 거잖아요. 안 그랬으면 나 지금 에페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렇다면 다행인데…….”

지난여름 도혁의 집에 놀러 갔을 때, 그의 방의 4면, 아니 천장까지 합치면 5면이 다 주원의 포스터로 도배돼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몰라도 주원이 어릴 때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던 시절의 저화질 사진까지도 확대해 붙여 놓을 정도였으니, 도혁의 부모님도 그의 열정은 잘 알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혼을 허락받으러 가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주원이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던 중에, 마침내 차가 도혁의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다. 주원은 심호흡을 크게 하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후우… 잘해 보자.”

뒷좌석에 야무지게 실어 온 과일 바구니와 선물들을 꺼내고, 주원은 다시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도혁이 앞장서 엘리베이터를 탄 다음, 두 사람은 도혁의 집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주원이 문 앞에서 벨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벌컥 문이 열렸다.

“이게 누구야. 채주원 선수!”

“어서 와요. 너무 반갑다. 차는 안 막혔고?”

도혁과 똑같이 생긴 중년의 남자와 일전에 뵈었던 도혁의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온 것이었다. 현관까지 마중을 나올 줄은 몰랐기에, 주원은 깜짝 놀랐다.

“아, 안녕하십니까.”

“태어나서 이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 보네.”

도혁의 아버지가 눈을 접어 웃으며 주원의 손을 맞잡았다. 손이 큰 것도 유전인지 손의 느낌이 도혁의 손과 흡사했다.

“감사합니다. 약소하지만 선물 준비했습니다.”

주원이 꾸벅 허리를 숙이며 홍삼주와 화장품을 건넸다.

“뭐 이런 걸 다?”

“어머, 내가 좋아하는 눈화설 크림이네!”

현관까지 마중을 나왔던 두 분 모두 크게 기뻐하며 선물을 받아 들었다. 일차 관문은 통과했다는 생각에 주원은 약간의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다음 코스, 댁의 강아지 같은 아드님을 제게 주십시오. 하는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느냐였다.

“이리 와서 앉아요. 과일 내올게.”

“감사합니다.”

도혁의 아버지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주방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음료수를 내오며 주원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런데 도혁이 짐 가지러 왔다고. 생전 짐 안 챙기더니 갑자기 왜?”

“아… 엄마, 그게요.”

명목상 도혁의 부산 방문은 본가에서 개인 짐을 빼 간다였다. 부모님이 알기로 도혁은 아직도 기숙사에 살면서 가끔씩 화성 펜싱 스타디움에 딸린 합숙소에서 잔다고 알고 있었다.

“실은…….”

“과일 먹자! 채주원 선수님도 드시죠.”

“네, 아버님.”

“그나저나 누굴 닮아서 이래 훤칠한지……. 눈이 부십니다. 우리 도혁이 우상 할 만하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원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래, 이야기 중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방해한 건가?”

“아닙니다. 실은… 도혁이 짐 가져가는 부분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응?”

“뭔데요?”

부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원을 바라봤다. 주원은 허벅지에 올린 주먹을 불끈 쥐고 숨을 들이마셨다.

“도혁이를 제게 주십시오.”

“…네?”

“뭘 줘요?”

도혁의 부모님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각, 어머님이 사과를 베어 물었다. 아버님은 청포도를 포크로 찍어 삼켰다.

“도혁이 말입니다. 저 이도혁 군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주원이 용기를 그러모아 똑똑히 외쳤다. 이제 처분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으려는 순간, 도혁의 어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아, 난 또 뭐라고.”

“…네?”

“여보. 얘들 만나는 건 알고 있죠?”

도혁의 어머니가 남편에게 물었다. 도혁의 아버지는 아주 평화로운 얼굴로 청포도를 먹으며 대답했다.

“알지. 당신이 지난번에 살짝 말해 줬잖아. 난 그래서 올림픽 중계 때도 둘이 뽀뽀라도 하는 거 아닌가, 긴장하면서 봤지.”

“아… 알고 계셨습니까.”

“엄마… 아빠…….”

주원과 도혁은 얼떨떨해 말을 잇지 못했다. 반면에 부부는 허허 웃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굴었다.

“우리도 눈치가 있어.”

도혁의 어머니가 돌처럼 굳어 있는 주원의 손에 포크를 쥐여 주었다.

“애플망고가 고급이네. 같이 먹어요.”

“감사…합니다.”

“음, 달다.”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 결혼은…….”

“둘이 좋다면 해야지.”

이제 겨우 스물한 살짜리, 앞으로의 미래가 전도유망한 도혁을 자신에게 준단 말인가? 나같이 시커먼 알파 사위에게? 주원은 이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럼 식은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어? 친척들한테 말하려면 날짜 확실해야 하는데.”

도혁의 어머니가 묻자 도혁 본인이 더 놀랐다.

“어, 엄마. 허락해 주시는 거예요?”

“허락하고 말고가 어딨어. 본인들이 좋아서 결혼한다는데 내가 반대하면 뭐, 안 하려고?”

“그건 아니죠. 하긴 할 건데 그래도.”

“식 날짜 아직 안 정한 거야?”

“저, 그게… 제가 아직 학생 신분이라, 일단 졸업이 급선무 같습니다. 그 이후에 하려고 합니다.”

주원이 수습에 나섰다.

“졸업식이 2월 말이니 그때 맞춰서 식 올리고 바로 신혼여행을 갈까 하는데… 어머님 아버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그것참 생각 좋네. 그럼, 공식 발표는 하나? 기자회견 같은 것 해?”

도혁의 아버지가 정말 궁금한 사람처럼 묻자 주원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기자회견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팬들… 어, 그러니까 펜싱 팬들이랑 연맹 사람들한테는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아. 그럼 집은 서울로 할 거지?”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여보. 애들 집은 여보가 알아서 마련해 줘.”

“그래요. 강남이 좋나, 강북이 좋나… 어디 보자.”

당장 등기부 등본을 건넬 사람처럼 도혁의 어머니가 진지하게 턱을 괴었다.

“엄마! 집이라뇨,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살 집이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우리끼리 살던 집이 있어요.”

“뭐? 너 기숙사 살던 거 아니었어?”

도혁이 아차, 하며 이마를 쳤다.

“벌써 동거를?”

“아… 그게.”

“요새 애들 빠르다더니 장난 아니구나.”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원은 자신이 도혁을 잘못된 길로 끌어들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아드님을… 잘 이끌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딱 보아하니 우리 도혁이가 채 선수 붙잡고 같이 살자고 매달렸을 것 같은데.”

“그… 그렇지는 않았고요. 저도 좋아서…….”

“그래요, 그래요. 그런데 진짜로 집 안 해 줘도 돼요?”

“네. 저희…가 살던 집 전세금이랑 협회 포상금, 또 CF 수입 같은 것 다 합치면 아파트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됐네. 장하다, 장해.”

부모님은 아들과 사위가 자랑스럽다는 듯 활짝 웃었다.

“우리 도혁이가 아직 모자란 점이 많고 어리지만 잘 부탁합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주원은 도혁의 아버지와 손을 맞잡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일이 술술 잘 풀려도 되는 건가……? 아무런 문제 없이?

결국 도혁의 집에서 그들의 걱정이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결혼을 허락받고, 둘은 호화스러운 밥상과 덕담을 받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주원의 집은 한술 더 떴다. 두 사람의 교제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원의 부모님은 전혀 놀라거나 충격을 받지 않았다.

거실에 무릎을 꿇고 거의 엎드리다시피 한 도혁만 뻘쭘한 꼴이 되었다.

“일어나서 식탁으로 와요. 같이 밥 먹게.”

“…네?”

오직 쉼터. SHu 제작. 공금. 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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