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 (22)화 (22/115)

22화.

“왜, 왜 그래, 너.”

지선우의 입꼬리가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형. 형이지? 크게 말해 줘, 안 들려.”

‘뭐?’

터엉! 충격으로 들고 있던 수프 그릇을 놓치고 말았다. 철퍽, 미끄덩거리는 살덩이들이 느적느적 쏟아져 나왔다. 분명 꽤 커다란 소리가 났을 텐데 낙유성의 반응은 미미했다. 평소라면 그릇이 떨어지기 전에 잡아챘을 놈이.

지선우는 목이 졸린 것 같은 끔찍한 표정으로 그의 뺨을 쥐었다.

“……왜 불행은 한 번에 올까, 유성아.”

툭, 투두둑. 희망 한 점 보이지 않는 낙유성의 얼굴 위로 지선우의 눈물이 떨어졌다.

* * *

오감. 인간이 지닌 다섯 가지의 감각. 강제 각성의 후유증으로 오감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등급이 높아 예민하고 뛰어난 만큼 대가는 컸다. 아예 안 보이거나 안 들리는 건 아니었으나, 거의 그랬다.

몸의 감각이 지하 바닥까지 끌려 내려간 기분은 썩 유쾌하지 못했다. 특히나 평소 뛰어난 감각을 지녔던 때에 비교하자면 더더욱. 물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걸 알지만 처음 겪어 보는 후유증은 나름의 공포를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힘을 너무 많이 썼나 봐. 가이딩 좀 해 줘. 몸이 너무 춥다.”

가이딩을 받는다면 조금 더 빨리 회복할 수 있겠지.

“내 곁에 있는 거지?”

나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어둠 속에 나 혼자 있는 것만 같다. 그때, 따뜻한 기운이 다가왔다.

문제는 다가오되 정작 닿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보통 각인을 맺는다 해도 다른 에스퍼에게 가이딩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지선우의 가이딩은 내게 전혀 먹히질 않았다. 마치 막이라도 쳐진 것처럼.

……역시 운명의 짝은 평범한 각인과는 다르다는 걸까.

“지선우, 아파.”

나랑 그 새끼는 다르다 이거냐고.

“가이딩해 줘. 가이딩, 형.”

내가 그 새끼보다 못한 게 뭔데.

“제발, 형, 아파, 형! 형! 아파! 아프다고! 아프다고 X발!”

내 목소리가 형에게 잘 안 들리는 걸까? 나는 더욱 목에 핏대를 세웠다. 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발버둥을 쳐 댔다. 이 정도로 불쾌하고 짜증 나는 감정은 난생처음이었다. 말을 뱉으면 뱉을수록 몸속의 ‘악’이 역류하는 기분이다.

다른 건 다 가져도 지선우는 안 되는데. 그건 내가 너무 아픈데.

살아, 처음, 나는 절망했다.

* * *

“읏! 제발, 유성아. 제발 진정해!”

지선우는 발작해 대는 낙유성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발버둥 치는 커다란 몸을 있는 힘껏 끌어안아도 그는 자신을 찾아 대며 악을 썼다.

여러 번 가이딩을 시도했으나 전혀 닿지 않았다. 되레 거부반응이 일었다. ……이 아이가 아니라 지하 어딘가에 갇혀 있을 그 남자를 데려오라고.

지선우의 뺨에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낙유성과 지선우, 둘은 끝이 났다.

“미안해, 미안. 너무 미안해, 흑…… 미안해. 내가, 너무 미안해.”

유성이에 대한 죄책감과 그 남자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부딪치고 또 부딪쳤다. 여러 후회가 밀려왔다. 이곳에 남자고 한 자신이 미워졌다.

‘내가 어떻게 얘를 버려. 우리가 어떻게 함께해 왔는데.’

“……유성, 으…… 흡.”

지선우가 입을 틀어막았다. 할 수만 있다면 마음을 도려내고 싶었다.

계속 외면해도 잔인할 정도로 마음 한구석에서 그가 만든 적 없는 감정이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밟고 짓뭉개도 멈추지 않았다. 자라지 마라, 시들어라, 빌어 봤으나 곧 제일 예쁜 꽃을 피워 항상 자리하던 해바라기를 밀어냈다.

인정해야 했다. 품에 매달려 괴로워하는 이 아이보다 어딘가에 혼자 쓰러져 있을 그 남자가 수천 배는 더 걱정된다는 걸.

“유성아…….”

지선우는 자신을 바닥에 엎드러뜨린 채 길 잃은 강아지처럼 코와 입술로 이곳저곳을 꾹꾹 눌러 대는 낙유성의 행동을 거부하지 않았다. 더듬더듬, 그는 제 몸을 만져 대면서도 불안해 보였다.

낙유성은 한참이나 지선우를 찾아 헤맸다. 눈앞에 있으나 보지 못했고, 닿았으나 느끼지 못했다. 낙유성은 스스로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굴었다.

콱!

“아, 읏!”

덜덜거리는 그의 턱이 지선우의 목덜미를 세게 깨물었다. 그가 이런 식의 자국을 남긴 건 처음이었다. 피가 배어날 만큼 강하고 집요하게 깨물었다. 꼭 자신의 영역이라는 걸 표시하는 것처럼.

“하아, 하…….”

“유성, 흣…… 아…….”

“가지 마. 안 돼. 너는 안 돼, 안 된다고! 내 거잖아…….”

등에 낙유성의 이마가 닿았다.

지선우는 낙유성이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없을 줄 알았건만. 믿을 수 없게도 등이 점점 축축해졌다.

‘울어……? 유성이가?’

황급히 그를 부르려는데, 낙유성이 비틀거리며 몸을 비켰다. 그러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옆으로 쿵- 추하게 넘어지기도 했다.

“유성아!”

“가!”

“……!”

“그만 좀 가. 꺼지라고. ……흐, 가, 가라고. 제발…….”

그가 얼굴을 감싸며 흐느꼈다. 낙유성의 가이드가 된 후 처음으로 듣는, 자신에 대한 거절이었다. 가슴이 너무 쓰리고 아팠다.

에스퍼인 낙유성과 달리 상처 회복이 더딘 지선우는 절뚝이는 걸음으로 천천히 뒤를 돌았다. 이 이상 유성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그가 들을까 입을 막은 채 울음을 쏟아 냈다.

당장 그 남자를 찾아가고 싶은 마음 위로 유성의 눈물이 쌓였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스스로도 답답했으나 방법은 없었다.

* * *

“이거 몇 개로 보여?”

나는 내 옆에서 낑낑거리고 있는 지선우를 애써 무시했다.

“입맛이 없더라도 더 먹어야 해. 응? 유성아.”

오감을 빼앗긴 그날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나는 괴물들의 살덩이를 매번 꾸역꾸역 배 속으로 밀어 넣어 간신히 몸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느린 속도지만 몸은 착실하게 호전되어 갔다.

그러나 전혀 기쁘지 않았다. 더 이상 형의 가이딩이 아닌, 징그러운 그것들의 덩어리를 먹어야만 회복할 수 있다는 현실이 매우 비참했다. 거기다 파장 자체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제대로 된 가이딩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몸 안 찝찝해? 내가 천을 좀 적셔 왔-”

“나한테 노력하지 마. 그래 봤자 아무 의미 없는 사이잖아.”

내뱉는 목소리가 살얼음 같았다. 나는 또 못된 말로 지선우를 아프게 찔렀다. 요 며칠 무슨 정해진 공식처럼 지선우는 다가오고, 나는 밀어냈다. 우리는 이 개 같은 일을 무수히 반복하고 있었다.

하하, 아주 복에 겨웠지. 나는 헛웃음을 픽 터뜨렸다.

‘천하의 지선우를 내가 이렇게 대해 볼 수 있다니. 이게 꿈이야 생시야.’

비꼬는 생각이 도저히 멈추질 않았다.

나는 창고 구석에 찌그러진 채 하루 종일 지선우와 모든 상황에 대해 할 말, 못 할 말 거리낄 거 없이 모욕해 댔다. 그러면 꽤나 통쾌해지다가도 스스로가 역겨울 만큼 싫어진다. 그런 멍청한 짓을 종일 반복하는 거다.

정말 한심하고 없어 보였다.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기분이었다. 그만하려 해도, 형을 보면 야속함이 밀려와 견딜 수가 없었다. 분노가 원망으로, 원망이 자괴감으로, 자괴감은 곧 다시 그를 향한 애원으로 휙휙 형태를 바꾸어 갔다.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건 참으로 끔찍하구나. 나름 형에게 부족하지 않은 애인이라 자부했는데, 이젠 감정 조절조차 안 되는 애송이가 되어 버렸다.

물론 형의 잘못이 없다는 걸 안다. 지선우가 원해서 운명의 짝을 만난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고의가 아니란 걸 안다. 전부 알고 있단 말이다.

그러나 미웠다. 밉고 또 밉지만, 그 이상으로 사랑해서 힘들었다. 차라리 형이 ‘현대 시대에서 바람을 피웠더라면’ 하고 바랄 정도로. 그러면 적어도 운명의 상대를 만나진 않았을 텐데.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뭐가 있을까. 그래, 고작 사랑이 대단한 운명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옆에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왜 의미가 없는데?”

지선우가 젖은 천을 꽉 쥐며 고개를 숙인다. 그의 작은 몸이 부들거리는 게 흐린 시야 사이로 보였다. 벌써 며칠이나 나의 돼먹지도 않은 비난을 묵묵히 받아 냈기에 새삼 그의 반응이 놀라웠다.

나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는 그를 괴롭혀도 될 거라 혼자 납득하고 있었던 거겠지. 나만 피해자인 줄 알고.

“뭐가 그렇게 쉬워?”

씹어뱉듯 말하는 지선우의 감정은 알아채기 어려웠다. 나를 탓하는 것 같으면서도 아니었다. 고개를 든 그의 얼굴엔 억울함, 그리고 약간의 허탈함이 섞여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너를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넌 왜 자꾸 우리를 부정해. 왜? 왜!”

지선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눈가 주변이 점점 붉어졌다. 그러다 귀, 코끝, 이마와 목덜미까지 발갛게 달아올랐다.

철퍽! 그가 내게 젖은 천을 집어 던졌다. 기어코 지선우가 악을 써 댔다.

“야, 나도 싫어! 나도 힘들어, 나도!”

그가 제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쳐 댔다. 나는 입 한번 뻥긋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지선우를 쳐다보기만 했다. 전부 형 탓이라고, 형이 칠칠맞은 거라고, 나는 피해자고 형은 내게 해선 안 될 잘못을 한 거라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마음이 쥐구멍으로 쏙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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