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저 시선은…….’
짐승처럼 소름 끼치는 시선. 가이드인 지선우는 그 눈빛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제 가이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톱을 세우는 에스퍼 특유의 징그러운 경계였다.
지선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여, 여환아.”
폭주 직후, 날카로운 상태의 에스퍼를 자극할 시 좋은 꼴을 보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선우는 어째서 송여환이 같은 에스퍼인 낙유성을, 아니, ‘처음 만난’ 상대인 낙유성에게 집착하는지 의문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여환아…… 나 몰라보겠어?”
지선우의 물음에 송여환은 계속해서 깨물고 빨아 대던 낙유성의 목덜미에서 입술을 떼어 냈다. 후끈한 열기와 기운이 느껴졌다. 여환의 것인지 유성의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파장이 짙고 끈적하게 얽혀 있었다.
“응, 하하, 알지, 알죠……. 흣, 하, 제가 왜 형님을 못 알아, 으, 보…… 흑, 겠어요. 세상에서 제일, 하아…… 부러워하는, 사람인데.”
탁한 목소리가 그르렁거리듯 흘러나왔다. 송여환은 마른침을 여러 번 삼키며 고개를 흔들어 댔다. 자꾸만 놓칠 것 같은 이성을 꽉 붙들려는 듯.
“하아, 제가, 더워…… 후우, 지금…… 읏, 하아…… 조절이 안 돼…… 그러니까, 빨리.”
딸꾹질하듯 말하던 송여환이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느릿하게 숨을 고르곤 금빛 눈동자로 지선우를 응시했다. 잡아먹을 것처럼 굶주린 시선이었다.
“여…….”
어깨가 저절로 웅크려졌다. 그로서는 저런 모습의 송여환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늘 매너 있고, 다정하며, 언제나 형님, 형님 애교를 곧잘 떨어 대던 친한 동생이었는데……. 겁을 먹은 지선우가 다시금 그를 부르려던 찰나였다.
“……형님.”
커다란 몸을 움찔거리며 낙유성을 품에 안은 송여환이 목에 푸른 핏대를 세우고서 말했다.
“……뭐 해요, X발. 가이딩 안 하고.”
“가, 가이딩?”
“얘, 상태 안 보여?”
“그게, 가이딩, 내가…… 그게…….”
지선우의 뒤늦은 반응에 송여환은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라면 자신이 말하기도 전에 유성아, 유성아! 호들갑을 떨어 대며 가이딩을 할 사람인데. 머뭇거리며 다가와 눈만 껌뻑이는 꼴이 답답했다.
혹시 자신이 무서워서 그런 건가 싶어 자리를 좀 비켜 주고 싶어도, 본능이 이성을 앞서고 있는 지금 낙유성에게서 떨어지는 쪽이 오히려 위험했다. 자신 외의 타인이 낙유성에게 접촉하려는 꼴을 두고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니까.
“안…… 돼. 그게, 아무래도 이쪽에선 내, 내, 짝 말고는 가이딩이 안 되나 봐. 저번에 유성이한테 해 주려고 했는데, 어차피 가이딩이 안 된다고 거절당했거든. 몰래 시도해 봤는데 역시 짝 말고는 안 되는 거 같아.”
지선우가 줄줄 말을 뱉을수록 송여환의 표정은 가관이 되었다. 조금 격하게 표현하자면 ‘이 새끼가 지금 뭔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지?’의 뜻을 담은 얼굴이었다.
“형님, 짝이…….”
낙유성이잖아.
“너 뭐야.”
“악!”
지선우의 앞으로 짧은 전기가 팍 튀어 올랐다. 지선우는 송여환이 자신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 처음 보는 저 애를 끌어안고 날 공격한 거지? 내가 아는 송여환이 아닌 건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뭔가가 이상한 거 같은데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늘 ‘뤙’을 쫓아다니며 시비를 걸어 댔지만 제게는 상냥하던 여환인데, 왜?
‘뭔가, 속이, 아니…… 머리가 어지러워.’
지선우가 얼어붙어 넋을 빼고 있을 때였다. 흥분한 송여환이 또 한 번 지선우를 향해 능력을 쓰려던 찰나, 자얀이 나타나 공격을 막아 냈다.
[젠장, 이건 또 뭐야?]
자얀은 지선우를, 송여환은 낙유성을 품 안에 각각 숨긴 채 서로를 향해 날이 선 기운을 드러냈다.
[이봐.]
“이건 또 뭔…….”
[너 뭐야.]
“너 누구야.”
눈썹을 까딱인 자얀이 능글맞게 중얼거렸다.
[아하……? 말이 안 통하는 건 또 오랜만인데.]
* * *
“음…….”
느리게 눈이 떠졌다. 온몸은 두들겨 맞은 것 같고, 머릿속은 뿌연 안개로 가득했다. 뭔가 기억이 날락 말락 하는데…… 어지러워 생각하기를 그만뒀다. 멍하니 정면을 응시하다 시선을 돌리니 나를 집요하게 보고 있는 밝은 고동색의 눈동자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우, 우오와아악-!”
병신인가. 나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저 멍청한 새끼 덕에 잠시 잃어버렸던 기억이 번쩍이며 돌아왔다.
“아, 안 만졌다! 나 그런 파렴치한 새끼 아냐! 끅!”
삑사리까지 난 놈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인 채 손사래를 친다. 그러다 끅끅 딸꾹질까지 하는데 그 꼴이 정말 모자라 보였다. 당연한 걸 왜 해명하고 있는 거지?
“짖지 마. 골 울려.”
“어, 응, 큼!”
씹, 목은 왜 이렇게 따가워. 안 아픈 곳이 없었지만 유독 목 주변이 따끔했다. 손을 들어 쓰라린 곳을 감싸자 놈이 한 번 더 우당탕 정신 사납게 굴기 시작했다. 가만히 좀 있으라고 화를 내려다 힘이 없어 관뒀다.
그때, 나와 놈이 있는 곳을 가린 거대한 바위 뒤로 지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성이? 유성이지! 유성아, 정신 차린 거야?”
‘……선우 형? 아, 다행이다. 제대로 지켜 냈구나.’
지선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안심되는 동시에 잊고 있던 끔찍한 고통의 잔재가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만둬.’
‘제발…….’
‘싫, 싫어, 싫어-!’
이를 딱딱 떨며 비명을 내지르는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욱, 속이 메스꺼워졌다. 꿀렁이며 올라오는 토기에 느리게 침을 삼켜 냈다. 이내 바위 너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으로 넘어오려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오지 마.”
쾅! 송여환이 발을 올려 바위를 부숴 버릴 듯 거칠게 걷어찼다. 놈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일렁일렁하는 기운이 당장 가이딩을 받아야 할 만큼 사나웠다. 가까이 있기 거북할 정도였다.
송여환의 행동 때문인지 지선우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머뭇거리는 발소리. 그가 어쩌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설명부터 해.”
숨을 크게 들이쉰 놈이 고개를 삐딱하니 기울여 나를 쳐다봤다. 아까 전의 얼빠진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표정을 싹 굳힌 놈은 답지 않게 무게를 잡고 있었다.
“너 왜 홑몸이야.”
송여환이 서늘히 말을 뱉었다.
“대답해. 너한테서 저 형 냄새가 안 나잖아.”
하, 냄새는 무슨 냄새? 나는 짜증이 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머리를 쓸어 올렸다.
“너 여기 어떻게 온 거야.”
“말 돌리지 마. 내 질문이 먼저니까.”
애냐? 울컥해서 화를 내려다 바위 뒤쪽에서 들려오는 바스락 소리에 부러 목소리를 낮췄다.
“……송여환.”
낮은 경고를 전했으나 놈은 여전히 ‘내가 먼저 물었음!’ 하는 표정으로 눈썹을 쓱 들어 올릴 뿐이었다. 평소에도 항상 싸우자느니 대련을 하자느니 귀찮게 굴던 게 여기서까지 지랄이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알고 짜증 나게 구는 건가?
‘하…… 됐다.’
놈을 향해 한 소리 하려다 그냥 한숨만 내쉬고 말았다. 지금 입씨름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피곤함을 느낀 나는 마른 입술을 적시며 또 한 번 숨을 골랐다. 가슴이 아플 정도로 크게 팽창했다.
나는 대꾸 없이 턱을 쓸어내리며 놈을 쳐다봤다. 놈은 변함없이 입을 일자로 꾹 다물고 ‘내가 먼저 물었음’ 상태를 고수하고 있었다. X발, 집요한 새끼. 표정을 미루어 내가 먼저 답을 줘야 할 것 같다. 몰랐는데 고집통머리가 장난 아니다.
결국 원활한 대화를 위해 내가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도대체 왜 이게 궁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마 끽해야 날 조롱하고 싶어 하는 거겠지.
그러나 막상 ‘지선우랑 각인이 깨졌다’라고 직접 얘기하자니 입안이 썼다. 고작 생각하는 걸로도 속이 울렁거리고 코끝이 시큰해졌다.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나는 손바닥으로 입술을 쓸 듯 가리며 웅얼거렸다.
“……뭘 물어. 느껴지는 그대로지.”
약간 없어 보이긴 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민망한 침묵이 내려앉는다. 나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고선 곧 내게 쏟아질 비웃음을 기다렸다. 송여환이라면 분명 ‘에스퍼가 돼서 가이드 하나 못 지켰냐?’ 혹은 ‘낙유성 너 그럴 줄 알았다!’라며 깔깔깔 조롱할 거라 생각했다. 왜냐면 놈은 날 끔찍하게 싫어했으니까.
물론 날 싫어하는 에스퍼가 송여환 한 명만 있는 건 아니다. 아마 날 한 대라도 치고 싶어 하는 새끼를 부른다면 서울부터 부산까지 주욱 줄을 세워 놓아도 부족하리라. 뭐, 썩 나쁜 기분은 아니다. 어차피 버러지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니까.
아무튼 날 싫어하는 무리의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게 바로 송여환, 이놈이다. 나만 보면 열받는지 그는 항상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시비를 걸어왔다. 그러다 지면 너덜너덜한 꼴로 ‘가이드나 될 것이지!’라는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부어 대기도 했다. 정말 지긋지긋한 놈이다.
그래, 분명 그런 놈인데…… 왜 조용하지? 나는 이상함을 느끼고 놈을 쳐다봤다. 세상 누구보다 통쾌해하고 있을 거라 믿었는데, 놈은 내 예상을 완벽히 깨 버렸다.
송여환은 약간 초조해 보이는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물어 왔다.
“부작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