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내 시선을 알아챈 두 놈이 뒤늦게 몸을 움직였다.
“와, 하하하…… 창피해라…….”
송여환은 입꼬리를 올린 채로 괴물 놈을 보고 있었다. 덤덤한 척하고 있지만 한 줄기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장난스러운 말투와 달리 시선만큼은 끈덕질 정도로 괴물에게 집중해 있었다.
저건 본능이었다. 시선을 돌리는 순간 본인이 잡아먹힐 걸 알기에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는 거다. 즉, 그 정도로 겁에 질렸다는 거겠지.
[내가 두려운 건 화난 아리아뿐인데. 이거 참, 재밌네…….]
은발 역시 여유로운 척 지껄이지만, 자세히 보면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지금 내 손에 카메라가 없다는 게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저 꼴을 찍으면 평생 놈을 조롱할 수 있을 텐데.
나는 혀를 짧게 차곤 다시 괴물 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다 문득 두 놈의 모습이 과거, 오메가를 만난 나와 아주 유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괜찮은데?’
괴물 놈이 강한 건 알겠다. 하지만 난 두 놈과 달리 별다른 압박감을 받지 않았다. 왜지? 잠깐 의문이 들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소한 건 지금 중요치 않았으므로. 당장 급한 건 저 괴물 새끼를 어떻게 죽이느냐다. 그래야 지선우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다.
‘삼 대 일.’
희망을 걸어 볼 수 있었다. 비록 저쪽이 사냥꾼, 이쪽이 산짐승이지만. 뭐,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발악이란 발악은 전부 떨어 봐야지. 저 괴물 새끼가 지칠 때까지.
“힘을 빼 놔!”
나는 두 놈을 향해 외쳤다.
[말이 쉽지.]
“몸으로 때우든가.”
[하, 그냥 대놓고 고기 방패가 되라고 하지 그래.]
멀리서 빈정거리는 은발을 향해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잘 알아듣네.”
손안에서 뜨거운 불꽃이 작게 일렁이며 만들어졌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저 새끼가 뭐라고 했더라? 내 몸을 화분으로 쓰겠다 했던가. 하, 웃기고 있네. 안타깝게도 내가 아닌 네가 내 불꽃의 화분이 되어 줘야겠다.
* * *
「끝인가.」
덤덤한 목소리와 함께 뻐억-! 소리가 크게 터져 나왔다.
“컥!”
나는 복부에 가해진 큰 충격에 두 눈을 부릅떴다. 공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거센 기침을 쏟아 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젠장…… 세 명이면 그래도 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완벽한 판단 미스였다.
“허억, 헉…….”
부은 눈가와 여기저기 상처가 난 몸은 넝마라 부르기도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바닥을 기어 겨우 상체를 일으켰다. 핏물이 가득 고인 코와 입안이 답답했다.
허억, 숨을 고르는데 빌어먹을 놈이 내 머리통을 발로 후려쳤다. ……X발. 시야가 휙 돌아갔다. 몸이 아예 무너지기 전, 후들거리는 팔로 바닥을 또 짚었다.
「질긴 놈이군.」
정신 차리고 일어나. 약한 척하지 말고. 지선우, 구해서 돌아가야 할 거 아냐. 흐려지는 정신을 잡을 겸 세게 입술을 깨문 탓에 안 그래도 찢어진 부위가 더욱 짓이겨져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빌어먹을. 겨우 몸을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개새끼가 아주 골고루 두드려 놓은 탓이다.
나는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돌려 주변을 훑어봤다. 은발은 스스로 말한 대로 확실한 ‘방패’가 되어 줬다. 비록 사지가 찢어지고 머리마저 뜯겨 나갔지만 말이다. 그건 은발에게도 꽤 큰 타격이었는지 평소라면 회복했을 놈이 미동조차 없었다.
‘……뒈졌나.’
팔, 다리, 머리까지 없는 몸통. 처참하다 못해 이젠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시체 덩어리일 뿐이다.
‘X발…….’
체념 어린 시선으로 다른 쪽을 훑었다.
“……송여환.”
“…….”
송여환은 벽에 튀어나온 커다란 철근에 복부를 뚫린 채로 기절해 있었다. 안색은 곧 죽을 것처럼 창백했으나, 희미하게 가슴을 들썩이고 있다.
‘……다행이다. 아직 숨이 붙어 있구나.’
나는 끅, 신음을 흘리며 기절한 송여환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정신 차리라며 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이기 위해.
“야…….”
탁하게 갈라진 목소리로 송여환을 불렀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콜록, 정신 차려.”
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벌려 녀석을 한 번 더 불렀다. 요지부동이다. ……살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진짜 뒈진 거 같네.
“윽, 하아, 야…… 송여환!”
소리치는 걸로도 몸이 울린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아득바득 기었다.
“야, 야!”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놈에게 힘없이 손을 뻗었다. 젠장, 차라리 지선우나 찾으러 가라 할걸. ……괜히 내가 죽인 것 같잖아.
그렇게 송여환의 얼굴에 손이 막 닿으려던 찰나였다.
콰직.
“아악!”
내 손등을 밟고 있는 하얀 발. 그리고 뼈가 산산조각이 나 형태를 잃은 손. ……내 손이 으깨졌다.
「육집.」
괴물이 내 머리채를 확 잡아챘다. 뿌연 시야 사이로 무표정한 괴물이 보였다.
“큭, 으.”
「더러워졌어. 쯧, 너무 막 다뤘군.」
「오메가의 씨만 무사하다면 상관없지만.」
“이거…… 놔. 허억, 헉…….”
「역시, 머리는 떼어 놓는 게 좋겠어. 인간이란 족속들은 항상 주제도 모르는 욕심을 만들어 내니까.」
괴물이 중얼거리며 머리채를 놓았다. 힘이 풀린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처벅, 처벅. 피 웅덩이를 밟으며 괴물이 찾아 손에 들고 온 것은 날이 바짝 선 쇠 창이었다. 내 목을 자르기 위해 가져온 게 분명했다.
나는 마지막 반항을 하듯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이미 능력의 한계로 인해 불꽃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젠장…… 진짜 X됐네.’
왠지 헛웃음이 나왔다. 문득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개, 같네…….”
힘이 빠진 손이 결국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넌, 콜록, 죽어도, 하아…… 죽어서도 내가, 죽일 거야…….”
「이해가 느리군. 넌 죽지 않는다. 그저 머리가 없어질 뿐이야. 네 몸은 오메가의 육집으로 영원을 사는 거다.」
말을 끝낸 괴물 놈이 쇠 창을 치켜들고 내 가슴팍을 발로 꾹 밟아 고정했다. 아, 이제 저게 내 목을 잘라 내겠구나.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파앗! 휙! 그 순간 무언가가 나타나 괴물의 팔을 꽉 붙들었다.
“허억, 헉…… 빠, 리…… 빨리 가, 쿨럭…… 가, 형!”
피를 토하며 외치는 이는, 송여환이었다. 기절, 아니…… 죽었다 생각했는데?
송여환의 하관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실제로 놈의 복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 보기에도 괴로울 정도로 엉망이었다. 저 상태로 움직일 수 있단 게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내가 놀라 두 눈을 크게 뜨자 송여환이 한 번 더 소리를 질렀다.
“가라고, X발! 제발, 내…… 앞에서, 죽지 말라고……. 가라, 어? 가!”
괴물의 팔을 꽉 붙든 채 나를 향해 소리치는 송여환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치, 울음을 터뜨리는 것처럼.
왜? 왜 나를 위해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나보다 약한 주제에. 난 가이드도 아닌 에스퍼인데. 왜? 도대체 왜 네가 그렇게 절박한 표정을 짓고 구하려는 거야.
“야, 송여환. 너…….”
움직일 힘이 있으면 너나 당장 도망치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였다.
「불결해.」
촤악! 괴물이 들고 있던 쇠 창이 순식간에 송여환의 가슴에 박혀 들었다. 송여환은 작은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를 보며 ‘도망가’라며 느리게 입을 벙긋거렸다.
……멍청한 새끼. 어쩌면 삶의 마지막 유언이 될 말조차 그따위 거라니. 본인의 목숨을 건 게 고작 나라고? 별로 대단한 관계도 아닌 나?
“……송, 여…… 환.”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내 얼굴을 축축이 적셨다.
그 순간 톡,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자그마한 소리가 들렸다. 시선이 느리게 아래로 향하니 그곳엔 사탕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찢어진 바지 주머니에서 떨어진 듯, 찌글찌글한 모양이 아주 못나 보였다.
아, 기억난다. 언젠가 지선우가 주었던 사탕이었다.
“…….”
또옥……. 주르륵. 그 위로 송여환의 피가 떨어져 사탕이 검붉게 젖어 들었다. 나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세상이 뒤집히는 감각이 낯설었다.
“이대로…….”
속이 들끓었다. 이토록 뜨거운 불을 삼켜 본 적이 있던가? 나는 몽롱한 정신 속에서 내가 굉장히 화가 났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얼굴을 가득 적신 핏물이 뜨거운 눈물로 지워졌다.
“죽으면…….”
오로지 내 숨소리만 들렸다.
“내가…….”
입꼬리가 일그러지듯 올라갔다. 흐으, 흐…… 울음이 섞인 웃음소리가 끔찍한 공간을 가득 메웠다.
“내가, 너무 분해.”
그 말을 끝으로, 내 손안에서 거대한 불꽃이 일어났다. 의지를 떠나 점점 더 커다랗게 크기를 키워 가는 불꽃은 마치 태양 같았다. 어느 때보다 웅장하고 강렬했다. 노을을 떠올리게 하던 주홍빛이 어느새 황금빛으로 변해 활활 타올랐다.
「거짓말, 설마…….」
죽음을 물리칠 거대한 태양이 내 손안에서 떠올랐다.
「어째서, 왜…….」
「……오메가.」
괴물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그래, 그대구나.」
─화아악! 황금빛 태양 아래, 일그러진 웃음을 지은 괴물이 한 방울의 눈물을 뚝 떨구었다.
「……너무 빛나.」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힘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오로지 이 힘만이 저 괴물을 죽일 수 있다는 걸.
‘딱, 한 번이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