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 (56)화 (56/115)

55화.

이런저런 청승을 떠느라고 차로 30분이면 될 거리를 장장 한 시간이나 끈 탓에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급히 주차하고서 병원 내부로 들어갔다. 안내 데스크로 갈 필요 없이 따로 마련된 7호기 엘리베이터를 타면 VVIP전용 병실이 나온다.

[송여환]

“…….”

호실 판 옆에 적힌 이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 음료나 꽃 등 아무런 준비 없이 찾아왔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하지만 다시 내려가 사 오기엔 정해진 면회 시간이 짧았다. 참 이런 면에서 부족한 사회성이 드러나는구나 싶어 입안이 썼다.

나는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곤 병실 문을 드르륵 열었다.

내부는 일반 병실과 달리 여느 호텔처럼 화려하고 넓었다. 나는 송여환이 누워 있는 침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놈은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평소처럼 시끄럽게 굴지도 않고 그저 색색 숨만 내쉬는 꼴이 아주 어색했다.

나는 뭐에 홀린 듯 송여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숨이…….’

숨이 느껴진다. 송여환이 살아 있다. 그래, 살아 있다. 나 말고도 누군가가 그곳에서 살아 돌아왔다.

X발, 나는 흐린 음성으로 욕설을 씹어뱉고 주저앉았다. 마음속이 울렁였다.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가빠지는 숨과 뜨거워지는 눈두덩이에 헛웃음이 샜다. 실은 집 안에 틀어박혀 술을 마시며 지선우와 송여환 생각만 했다.

송여환 넌 싫겠지만, 나는 그랬다. 제발 살아 달라고 새벽 내내 기도 아닌 기도를 한 적도 있었다. 너까지 죽어 버리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이 들었다. 지선우도 너도 나를 버리고 가 버리면, 나는 정말 그 세계의 기억에 홀로 파묻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

“……살았으면 됐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여기 더 있어 봤자 뭐 하나 싶어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큭!”

신음과 함께 아랫배에 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나는 입을 벌리고 허리를 수그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온몸이 식은땀에 젖어 들었다. 눈앞이 번쩍일 정도로 끔찍했다. 왜 이러는 거지?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몸의 중심이 기울었다.

젠장, 나는 넘어지기 전 다급히 송여환의 침대 펜스를 붙잡았다. 한쪽 무릎은 꺾였지만, 다행히 아예 나자빠지진 않았다.

“하아…… 후으.”

부들거리며 심호흡을 하던 중 송여환 쪽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그러자 징징 고통만을 유발하던 아랫배에서 묵직하고 간지러운 열감이 스르르 번졌다. 그 이상한 감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졌다.

이내 아픔은 사라졌지만, 그보다 곤혹스러운 감각이 내 몸을 지배했다. 목덜미와 등허리, 그리고 발끝으로 뜨뜻한 무언가가 천천히 퍼지며 소름이 돋았다. 거기다 더해 미친 듯이 이는 허기와 갈증.

“헉, 하악.”

나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하지 말아야 할 비도덕적인 행위를…… 즉 사고를 쳐 버릴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하! X팔, 진짜…… 왜 이래?”

후끈함이 점점 진해진다싶더니 하체가 뻐근해져 절로 헛웃음이 터졌다. 빌어먹을. 혹시 나도 모르던 페티시가 있었나? 그도 아니면 아예 돌아 버린 건가? 어떻게 환자, 그것도 송여환을 보고 이러는 거야.

“미친, 미친 새끼.”

이건 전부 술 때문이다. 거의 두 달을 쉬지 않고 마셨으니 이딴 금주 현상이 있는 거겠지. 그래, 그런 거다. 집 가서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다.

‘……젠장, 대체 왜 이렇게 목마르고 배가 고프지?’

송여환을 보자마자 참았던 무언가가 팍 터지는 듯해 나는 이를 악물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돌아가자. 돌아, 돌아가…… 서, 돌…….’

생각이 점점 느려지는가 싶더니 곧 삐─ 긴 이명이 찾아왔다. 으윽, 그만 좀 해! 삐- 삐- 아주 시끄러워 죽겠네! 짜증스레 미간을 찌푸린 그 순간이었다. 코끝으로 다디단 냄새가 풍겨 왔다.

“하아, 하…….”

고개가 삐걱대며 돌아갔다. 냄새의 주인은 송여환이었다. 놈의 모든 것이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생전 맡아 본 적 없는 아주 강하고 향긋한 냄새 때문에 입안이 바싹 말랐다.

처음 이갈이하는 새끼 짐승처럼 어금니 근처가 근질거렸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송여환을 입안에 쑤셔 넣고 잘근잘근 씹어 버리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나는 조금만 더 가까이, 가까이, 하는 욕심을 부리다 그만…….

덜컹!

어느새 나는 펜스를 붙잡은 채 고개를 숙여, 송여환을 덮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막말로 돌아 버리기 직전이었으나 그나마 남은 이성이 나를 간신히 막아 세웠다.

‘낙유성 이 미친 새끼야. 대체 무슨 짓거릴 하려는 거야?’

상대는 송여환이다. 지선우가 아닌 송여환. 에스퍼에 나를 싫어하던, 아니, 내가, 내가……. 아, 아아아, 아니다. 아니지, 그걸 떠나서 그래. 짜, 짝을, 내 짝이 아닌데. ……선우를 잃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발정이 나서 이래. 이러면 안 되는-

‘X발, 냄새가 너무…….’

철컹! 우지끈!

손안에서 펜스가 구겨졌다. 딱딱한 쇠가 쉽게 우그러졌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거친 숨소리가 조용한 병실을 가득 채웠다. 눈가가 뜨겁다. 아랫배도 간지럽고 속은 허해서 미칠 거 같다. 나는 침만 꿀꺽꿀꺽 삼켰다. 너무 세게 깨문 탓인지 입술에 피가 송골송골 맺혔다.

그러다 한 방울이 송여환의 입술로 떨어진 순간, 내 이성도 뚝 끊어졌다.

“하아, 제길, 씹!”

축 늘어진 놈의 머리 뒤로 손을 넣어 들어 올렸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부드러운 다갈색 머리카락이 감긴다. 나는 고개를 숙여 놈의 머리로 코를 묻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푸스스 웃음이 샜다. 이걸 어떻게 씹어 먹지? 따뜻하고 포근한 향이 자꾸만 아랫배를 간지럽혔다.

도대체 얼마나 발정이 난 건지 상대가 송여환이라는 것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가까이 닿을수록, 냄새를 맡을수록 나른한 만족감이 충족돼서, 그게 너무 좋아서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아, 하…… X발, 왜 이렇게 달아.”

나는 놀고 있던 다른 손으로 놈의 상체를 더듬었다. 착착 감겨 오는 촉감이 끝내줬다. 미지근하면서도 오래 누르고 있으면 꽤나 뜨겁게 변하는 체온이 기분 좋았다. 꼭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처럼.

“하, 후으…….”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놈과 내 사이에서 뭉게뭉게 만들어졌다. 나는 고개를 내려 송여환의 목덜미와 어깨, 쇄골 사이를 지분거렸다. 이대로 내 것이란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때 타지 않은 흰 눈에 맨 처음 발자국을 새기고 싶은 것처럼, 이 녀석의 하얀 몸을…….

참지 못하고 입을 쩍 벌린 순간,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타인의 기척을 감지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떼어 내곤 송여환을 내려다봤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흐트러진 모습이 아주 위험해 보였다.

‘X발, 왜…….’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나는 착실히 송여환의 매무새를 정돈했다. 손끝이 약간 떨렸다. 만약 누군가가 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녀석에게 무슨 짓을 하려 한 거지? 혼란스럽다 못해 어지러웠다.

곧 드르륵! 문이 열리고, 막 들어오려는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그녀를 지나쳐 병실을 나섰다.

“저기요!”

뒤에서 부르는 소리도 못 들은 척하며 아예 뛰다시피 병원 밖으로 도망쳤다.

‘미친. 미친 새끼. 미친 또라이 새끼!’

나는 내게 어떠한 문제가 생겼다는 확신이 들어 운전석에 앉자마자 곧장 돌아가려던 집이 아닌, 다른 장소로 행선지를 바꿨다. 차의 배기음이 평소보다 거칠게 울려 퍼졌다.

* * *

쾅! 나무로 만들어진 휘황찬란한 문을 격하게 열어젖히고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홀로 앉아 티 타임을 즐기던 정일문이 커다란 소음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나는 정일문을 향해 뚜벅뚜벅 다가가 툭 말을 뱉었다.

“나 병원 좀 하나 알아봐 줘, 정신과로.”

“뭐, 뭣, 콜록! 콜록!”

“빨리.”

정일문이 기침을 토하며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았다. 나는 그의 한심한 꼴을 한 번 흘겨보곤 병문안이랍시고 다시금 맸었던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냈다.

“두 번 말하게 좀 하지 마.”

“어우, 허우우, 심장 아파아……. 너는 무슨 애가 갑자기 쳐들어와서 정신과 타령이야!”

“아무래도 미친 거 같아. 아니, 미친 게 분명해.”

손수건을 꺼내 입을 닦은 정일문이 나를 보곤 ‘헝’ 코웃음을 쳤다. 마치 ‘네가 미친 게 어디 하루 이틀이니?’ 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연락할 땐 죽어도 안 받더니 대뜸 찾아와서 뭐어? 병워언-? 제정신이세요, 지금? 안 그래도 모두가 널 주목하는데 정신과를 가시겠다고요? 좋은 일로 화면을 채워도 부족할 지금?”

정일문은 내게 헛소리 말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러면서 같잖은 소리만 늘어놨다.

“네가 심적으로 힘든 건 아는데, 이제 이겨 낼 줄도 알아야지.”

울컥해 따지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주둥이가 깃털보다 가벼운 저 새끼한테 아까의 일을 줄줄 늘어놓을 수도 없고, 제길! 나는 팔짱을 낀 채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한숨만 반복해 내쉬었다.

사나워지는 내 분위기에 정일문은 눈치를 살피더니 두툼한 입술을 말아 물며 냉큼 무언가를 가져왔다. 남색 가죽 파일. 그 안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꽂혀 있었다.

정일문은 족제비 같은 얼굴로 빙긋빙긋 웃으며 내게 사진 더미를 슥 들이밀었다. 거기엔 언뜻 스치듯 본 적 있는 사람들과 아예 초면인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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