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 (62)화 (62/115)

61화.

“……뭐?”

그런데 송여환의 반응이 이상했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들러붙던 몸을 휙 떼어 내더니 나를 빤히 보며 되묻는다.

“방금 뭐라고?”

“너 대단하다고.”

“아니, 아니아니아니. 아, 앞에, 앞.”

녀석이 다급히 손을 휙휙 흔든다.

“……위로?”

“더, 더 앞.”

“……싫어하는?”

“뭐…… 뭣…… 뭐어어어어?!”

찌이이잉! 귓가가 얼얼할 정도의 고함이었다. 씹, 고막 나갈 뻔했네. 나는 인상을 찡그린 채 놈을 쳐다봤다. 그런데 이 뻔뻔한 자식은 내 귀를 조져 놓은 것에 대한 사과는커녕 되레 나를 외계인 보듯 보고 있었다.

이 자식이 왜 이래? 황당하다는 나와 억울해 죽겠다는 송여환. 우리는 서로를 향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누, 누누누, 누굴 싫어해?”

아예 벌떡 일어난 송여환이 제 가슴을 퍽퍽 치며 내게 물었다.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나는 입 한번 뻥긋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거렸다. 지금…… 대화의 흐름을 나만 못 따라가고 있는 건가?

“누굴? 너, 너를? 내가? 하 촤- 내, 내가 너를? 이, 송여환이 낙유성을 싫어해?”

왜 저렇게 화를 내지? 당연한 사실을 얘기했을 뿐인데.

“굳이 따지자면 쌍방으로……?”

검지로 놈과 나를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짚자 송여환의 고개가 휙휙 따라 움직였다.

기실 송여환과 내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는 사실은 협회 소속 관계자라면 모두 안다. 놈은 나만 보면 덤벼들었고, 나는 놈을 무시하다시피 했으니까. 이는 송여환 역시 잘 아는 사실일 터.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반응이 영 이상했다.

‘앗’, ‘하익’, ‘아으으!’, ‘엣, 아잇, 그게!’ 등등. 송여환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제 가슴팍만 퍽퍽 두드리더니 거의 울먹임 어린 목소리로 ‘아- 안 싫어해애애애!’ 하고 온몸을 방방 떨어 댔다. 왜, 그…… 어린애가 너무 짜증이 날 때나 고집을 부릴 때 ‘아아아!’ 하며 몸을 털어 대는 그거 말이다.

어린아이가 해도 썩 좋은 모습이 아닌 행동을 20대 건장한 성인 남성이 하니 진심으로 꼴불견이라 나는 절로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라고, 안 싫어한다고! 오해라고오오오!”

“닥쳐 좀.”

“아, 아아아아! 아니라고오오!”

폭주하듯 찡찡거리는 녀석에게 그만하라며 짜증을 내려던 찰나였다.

“좋아한다고!!”

녀석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찾아온 정적.

“…….”

“…….”

“아.”

누구의 입에서 나온 소리인지 모르겠다. 이 바보 같은 대화의 흐름은 도대체 뭘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물론 오해는 하지 않는다. 송여환의 ‘좋아’는 인간적인 ‘호감’을 말하는 걸 테니까.

그래, 분명…… 그래야 할 텐데. 젠장. 왜 아닌 거 같지?

싸한 직감을 느꼈다. 동시에 내 시야에 본인이 내뱉고 본인이 더 놀란 듯, 바짝 얼어 버린 송여환이 걸렸다. 살짝 벌어진 입과 크게 뜨인 눈,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는 손가락, 그리고 서서히 달아오르는 목덜미와 뺨.

‘설마…….’

송여환이 입술을 지르문다.

‘……X발, 맞나 보다. 도대체 왜?’

순식간에 분위기가 초상집이 돼 버렸다.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쓸어 내곤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놈과 있어 위로받았던 마음이 다시금 술렁였다.

그저 이 모든 게 내 착각이길 바랐다. 아니, 그래야 했다. 내겐 아직 지선우라는 큰 구멍이 남아 있으니까. 잊되 메우지는 않을 구멍. 만약 다른 여유가 생긴다 해도 ‘사랑’만큼은 빈 공간 그대로 두고 싶었다.

“많이 늦었다. 이만 가라.”

상황을 수습하고자 말을 던졌다. 어떻게 보면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준 거다. 그런데 이 눈치 없는 녀석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켰다.

“어…… 어, 어. 맞아.”

송여환이 덜떨어진 소리를 흘리며 기계처럼 뻣뻣하게 움직였다.

“야, 그만-”

“좋아하, 했…… 아니, ……사랑해.”

내가 아닌 다른 곳을 보며 송여환이 중얼거렸다. 나로선 그게 무슨 표정인지 도통 읽을 수가 없었다. 허탈한 것 같기도 하고, 내심 기뻐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랑인 거 같아.”

녀석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웃음을 짓고선 또 한 번의 고백을 해 왔다. 이번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였다. 녀석의 갈색 머리카락이 잘게 흔들렸다.

“확실해. 사랑이야.”

“……하아.”

“어이없지.”

“…….”

“괜찮아, 나도 그러니까.”

송여환이 한숨처럼 대꾸했다.

“나도 되게 어이없어, 지금.”

녀석은 힘 빠지게 웃더니 숨을 크게 들이켰다. 더 이상의 할 말을 찾지 못하겠는지 양손을 깍지 껴 뒷머리를 감쌌다. 곧 고개를 푹 떨구는 꼴이 되게 처량해 보였다.

“아……. 망했다.”

말을 길게 끌다 픽 웃으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듣는 나까지 속이 쓰릴 만큼 처져 있었다. 밝던 놈이 저러니 더 그랬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위로도 건넬 수가 없었다. 이미 내 대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먹었던 미역국이 역류하며 체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주먹을 말아 쥔 채 명치 부위를 툭툭 쳤다. 조용한 공간에 명치를 치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때 갑자기 송여환이 휙 고개를 들었다. 놈의 시선이 순간 내 명치 쪽에 닿았다 사라진다. 이내 녀석은 불쑥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근데 나 연하인 건 알지?”

심각했던 분위기가 녀석의 헛소리로 인해 흐려졌다.

“뭐?”

“아래도 장난 아니야.”

“개소리야, 이 미친.”

역겨운 발언으로 미세하게나마 가졌던 미안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런데 이 골 때리는 새끼는 멈추지 않는 폭주 기관차처럼 말을 죽죽 뱉어 냈다.

“객관적으로 잘생겼고, 몸도 좋아. 영 앤 리치. 거기다 일편단심이지, 절륜하지, 집안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진짜 미친 건가?

“X발, 뭐 어쩌라고.”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놈이 뻔뻔히 대꾸했다.

“너 완전 거저먹는 거야. 딱 지금만 판매한다?”

은근슬쩍 윙크를 날리는 놈에게 안면 근육을 살벌히 굳혀 줬다.

“안 사. 꺼져.”

“……그렇게까지?”

“나가.”

“웅…….”

쭈그러든 송여환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품은 좋은데……. 홍보를 잘못한 건가?”

끊임없이 구시렁거리는 놈에게 축 처진 꼬리가 보이는 건 착각일까.

“송여환.”

“어어. 차지 마! 나 아직 너한테 고백한 거 아니야. 아니니까, 거절하는 거 들을 생각 없어.”

무슨 미친 소린가 싶다. 하지만 송여환은 정말로 내 대답을 들을 생각이 없는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곤 별다른 반응 없이 테이블만 치웠다. 그러더니 입고 왔던 겉옷을 걸치며 인사를 고했다.

“이만 갈게.”

나는 놈을 따라 현관으로 걸어갔다. 신발을 신는 놈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종알종알 떠들던 모습과 너무나 딴판이었다. 나는 그제야 송여환 또한 지금의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술 적당히 마시고.”

현관 손잡이를 잡은 송여환이 말했다. 바로 나가지 않고 미적거리는 행동엔 미련이 듬뿍 묻어 있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있다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갈게.”

픽 웃은 놈이 현관문을 밀어젖혔다. 바깥바람이 들어오며 따뜻했던 공기가 차게 식어 간다. 적막만이 내려앉은 복도, 점점 사라져 가는 놈의 체취. 나는 커다란 등을 응시하다 무심코 입을 열었다.

“송여환.”

“응?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사다 줄까?”

기다렸다는 듯 뒤를 돌아본 놈의 눈동자가 맑았다.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일까? 내게 닿는 놈의 시선이 유독 살랑살랑 간지러웠다.

나는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고맙다.”

내 인사가 뜻밖이었는지 놈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보람 있네.”

그러다 점점 번지는 웃음. 시원스럽게 올라간 입꼬리와 곱게 접히는 눈매.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에도 놈은 참 밝았다. 반짝반짝, 그게 꼭 복도의 불빛 때문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나는 놈을 보며 같이 웃었다. 똑같이 입꼬리를 올리고 눈매를 접어 웃어 보였다.

그러자 나를 보던 송여환의 얼굴이 낯설게 변해 갔다. 개구쟁이처럼 웃던 얼굴은 사라지고, 단단히 굳어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눈가를 떨며 침만 삼키는 꼴이 꼭 지선우를 보던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뜨겁고, 애달픈.

난 그런 송여환을 보며 마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좋은 놈이라는 걸 알기에 해 줄 수 있는 내 마지막 배려였다.

“이제 오지 마.”

나한테 더 이상 신경 쓰지 마. 네가 내게 무슨 마음을 가졌는지 알게 되었으니 더는 가까워질 수가 없다. 부러 상처 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는 놈에게서 돌아올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몸을 돌렸다. 일방적인 대화의 단절이었다. 그렇게 현관문이 서서히 닫히며 아주 작은 불빛만이 통과될 틈새만 남았음에도 놈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어이가 없겠지. 아니면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고.

그래도 이게 맞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던 찰나.

─쾅!

하얀 손이 문을 거세게 열어젖혔다. 깜짝 놀라 뒤를 돌자 보이는 송여환의 얼굴. 녀석은 나를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네가 꺾여. 난 안 꺾일 거니까.”

아, 모르나 본데 이거 선전포고야. 그렇게 말한 녀석이 내 이마로 약한 딱밤을 날렸다.

“내 꿈이나 꿔, 멍청아.”

어안이 벙벙해져 멍하니 있자 녀석이 메롱, 혀를 내밀곤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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