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91화 (91/115)

91화

사실 송여환이 말한 ‘형이 원한다면 그만둘 수 있다’라는 위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실제로 실험은 계속되었고, 나는 신경 쓰지 말자 생각하면서도 새로운 덩어리들을 보기 위해 종종 연구실을 찾았다. 성공률이 희박해 매번 폐기되어 죽어 가는 나의 찌꺼기들을 보면서 이상한 우울감에 빠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뮤웅- 뮹, 끽, 끼이……!’

가끔은 덩어리들이 죽어 가며 질러 대던 비명이 나오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식은땀에 푹 절어 황급히 눈을 뜨면 이상하게 가슴이 욱신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걸 며칠 반복하니 컨디션은 당연히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은 흐리고 몸은 둔해져서 백산과의 전투에서 평소보다 심한 상처를 입기 일쑤였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콰앙, 쾅!

“하악, 하, X발……!”

전투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원래였다면 쉽게 피했을 공격을 멍청이처럼 맞아 버렸다. 그 때문에 왼쪽 발목이 제대로 움직여지질 않았다. 부러진 건가? 미간을 찌푸리며 날아오는 공격을 피해 몸을 숨겼다.

“이봐, 놀러 왔어?”

저 멀리서 백산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이딴 곳에 놀러 오고 싶은 정신병자가 어디 있겠냐?

“그리움, 굼뜨게 굴다간 죽어.”

“윽!”

어느새 다가온 녀석이 내 목을 한 손으로 잡아 들어 올렸다. 콱, 조여 오는 숨통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병든 닭 새끼처럼 힘이 없다더니……. 그래, 네게서 풍겨 나오는 짙은 죽음의 냄새는 전부 새끼들의 것이었어.”

……새끼?

“인간이란 참 잔인해.”

중얼거린 녀석이 나를 바닥으로 세게 집어던졌다. 보호하지 못한 머리로 큰 충격이 닥쳤다.

“큭!”

“아리아, 나의 작은 아이가 나를 위해 많은 짓을 벌여 놓았나 보구나……. 생각보다 더 재밌게 돌아가. 내가 봉인했던 오메가마저…… 흐음. 음? 전에도 이 말을 했었나? 매번 기억이 섞여 모르겠네……. 네가 대답 좀 해 주지 그래.”

귀에서 이명이 들려 녀석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다잡기 위해 노력했다.

“하아, 하아…….”

그렇게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자니 백산이 발끝으로 내 턱을 들어 올리며 음산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에게 집중해야지.”

“치, 워……. 하아, 큭…….”

“으흠, 방금 생각했는데 모든 인간을 죽이고 네게서 만들어진 생명들로 이 세계를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그것들은 본능에 충실할 뿐 인간처럼 탐욕스럽진 않으니.”

“뭐라는, 콜록, 거야……. 헉, 하아…….”

“조급해하지 않아도 언젠가 내 말을 깊이 생각해 보는 날이 올 거다, 그리움.”

“하아, 윽…… 내가, X발, 그딴……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지!”

화르르! 가까이 온 녀석을 향해 거대한 화염을 만들어 던졌다. 헉헉, 숨을 몰아쉴수록 눈앞이 흐려졌다. 빌어먹을……. 아직 더 버텨야 하는데 몸 상태가 따라 주질 않았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정신적으로 한계였다.

반복되는 악몽. 의미 모를 우울감. 자꾸만 덮쳐 오는 죄책감과…… 시간이 지날수록 덩어리들을 폐기하는 연구원. 즉, 사람에게 가져선 안 될 거부감 등등이 한데 뭉쳐 내 컨디션을 망쳐 놨기 때문이다.

‘빨리 돌아가자…… 빨리.’

어차피 송여환이 있으니 힘을 더 끌어 올려도 될 거다. 그래, 그 녀석이 있으니까 조금 무리해도 괜찮겠지.

“허억, 헉……. 야, 너…… 내 힘, 보고 싶다고 했지.”

“투지가 느껴지는데? 참…… 이럴수록 안타까워. 이 몸의 재료가 조금 더 좋았더라면 훨씬 즐거웠을 텐데.”

“……재료라 부르지 마, X발 새끼야!”

나는 이를 악물며 그동안 억제했던 힘을 밑바닥에서부터 끌어 올렸다. 이젠 나도 한계니 빨리 결판을 내 버리는 게 나았다. 시민의 안전이니 뭐니, 잔소리하는 본부 사람들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으나 이성이 반쯤 날아가기 직전인 나에게는 그 어떤 경계심도 주지 못했다.

‘힘들어.’

이제 그만 싸우고 싶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한시라도 빨리 모든 상황을 마무리 짓고 편해지고 싶었다.

‘나도 이제 그만 평범하게 살고 싶어.’

그저 송여환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평범한 하루를 보내길 바랐고, 선우 형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녀석을 몇십 번이나 내 손으로 태워 죽이는 짓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으며, 매번 원치 않게 태어나 원치 않게 죽임당하는 작은 덩어리들의 참극을 반복해 보고 싶지 않았다.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나는 조금, 아주 조금만, 정말 남들만큼만 평범해지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절뚝거리는 다리 한쪽을 끌어 재수 없는 백산을 향해 거대한 불꽃과 함께 달려들었다.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길 빌면서.

* * *

“……부.”

“……부우!”

흐릿하게 들리는 소리가 몽롱한 정신을 깨웠다. 몇 번 눈을 깜빡이니 환한 불빛이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알싸한 냄새로 추측하건대 병실이 분명했다.

나는 미간을 구기며 있는 힘껏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바로 보이는 건 눈가가 짓무른 송여환이었다. 녀석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

“……형? 형! 자, 잠깐만 기다려. 여기요! 형 눈떴어요!”

녀석의 외침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본부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그들은 내게 이름부터 현 상태 등 이것저것을 캐물었고, 나는 더듬더듬 대답했다.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시키는 대로 말을 하던 나는 곧 침상에 누운 채로 끌려가 몇 시간 동안이나 검사한 후에야 자유를 얻었다.

“……읏.”

“목 아직도 아파?”

“괜, 찮아.”

내뱉는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한쪽 눈가를 찡그리곤 송여환이 주는 물컵을 받아 들었다. 시원한 것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머리가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곤 송여환을 바라봤다. 바보 녀석이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있었다.

“그만 울어. 내가 죽었냐?”

퉁명스러운 내 말투에 송여환이 나를 노려보며 왁왁 성질을 부렸다.

“말 함부로 하지 마! 형 눈뜬 게 일주일만이거든? 내가 어떤 심정으로 기다렸는지 알아?”

“모른다니까? 그 말만 벌써 백번째야.”

기어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는 녀석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슥 닦아 냈다.

“그리고, 아까부터 거슬렸던 게…….”

그러곤 물음표를 띄우는 송여환을 향해 반대쪽 팔을 들어 보였다.

“이건 뭐냐.”

내 팔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처음 보는 꼬마 녀석. 몸이 훌쩍 들린 게 재밌는지 꺄아 하며 웃는다.

“너……. 혹시…… 애, 있었어?”

나도 모르게 굳은 얼굴로 송여환에게 물었다. 그러자 녀석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소리를 꽥 질렀다.

“어떻게 봐도 내가 아니라 형을 닮았잖아!”

그런가? 귀엽게 생긴 게 딱 송여환 판박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꺄꺄 웃으며 해맑은 꼬마를 보다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어떻게 봐도 나를 닮았다니?

“야,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애새끼가 왜 나를 닮아?”

“어허, 애 듣는데 말조심해.”

“뭐?”

송여환이 몸을 일으켜 내 팔에 매달린 아이를 가뿐히 안아 들었다. 꼬마도 송여환의 품이 익숙한지 다시 꺄아꺄아 하며 웃는다. 송여환은 품 안에 안긴 아이의 뺨에 조심스레 입을 맞추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얘, 형 애라고. 형 기절한 동안 내가 이 애 덕분에 겨우 제정신 붙잡고 버틸 수 있었어. 어때, 형이랑 꼭 닮았지?”

그게 뭔 소리야 X발.

“야, 나 뭐 자다가 쌌냐……?”

“……애가 뭔 똥이냐.”

* * *

“비행기 간다~ 슈웅.”

“꺄아.”

송여환이 깎아 준 사과를 우물거리며 잘 놀고 있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보기에는 썩 나쁘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여전히 저 꼬맹이가 내 애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성공적인 실험체’라는 게 맞는 말이겠지만.

‘정말 사람 같네.’

나는 무참히 폐기되었던 덩어리들을 떠올리며 아이를 응시했다. 그 징그럽던 것들과 달리 아이는 완벽한 사람의 형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봤다면 평범한 아이라고 믿을 만큼.

“유제야, 아~”

“으잇, 꺄아아아!”

사과를 갈아 열심히 아이에게 먹이는 송여환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누가 보면 본인 아들인 줄 알겠네. ……근데 왜 나한테는 신경을 안 써? 나는 묘한 불쾌감을 느끼며 꼬마에게 정신이 팔린 송여환을 불렀다.

“야.”

“어?”

“유제가 뭐야.”

“아아, 아기 이름. 근데 낙유제로 할까 송유제로 할까 고민 중이야.”

송 씨는 왜 들어가냐? 태클을 걸려다 말았다.

“어차피 진짜 사람도 아닌데 뭔 이름까지 지어? 그냥 대충 애새끼라 부르면 되지. 어차피 그거 내 보조로 쓰려고 키-”

“유제라고 불러.”

송여환이 내 말을 뚝 끊으며 뚱하게 대꾸했다. 지금 나한테 화낸 거야? 저 꼬맹이 때문에? 하, 헛웃음이 터졌다. 아까는 나 뒈진 줄 알고 울고불고했던 주제에.

“아가가 듣잖아. 유제라고 해. 형 앤데 왜 그렇게 차갑게 굴어?”

“그게 왜 내 애야.”

“그럼 우리 애.”

그게 무슨 억지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는 아이를 꼭 안고 있는 송여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