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그래서 뭘 할 건데.”
나는 송여환을 떠올리자 파도처럼 밀려드는 애정과 그리움, 애써 눌러놓았던 서운함 등등의 감정을 누르기 위해 별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던졌다. 이대로 계속 송여환을 떠올리고 있노라면 차에서 내려 그에게로 달려갈 거 같기에.
“음…… 몰라. 일단 드라이브?”
“생각한 것도 없이 무작정 온 거냐?”
“그런 건 도련님이 생각해야지.”
“내가 왜.”
“오늘 하루 나만의…… 가이드니까?”
끝음절에 맞추어 차가 더욱 속도를 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외곽으로 향하는 도로는 텅 비어 달리기 좋아 보였다.
“바다나 보러 갈까? 가서 회도 먹고.”
“너랑 둘이? 아서라. 체한다.”
“자꾸 비협조적으로 나와라?”
“더 달리기나 해. 이건…… 뭐, 좋네.”
상대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냥 운전수라 생각하면 못 참을 만한 것도 아니고…… 솔직히 억지로라도 끌려 나와 이렇게 하늘을 보고 쌩쌩 달리니, 그러고 싶지 않아도 절로 기분이 상쾌해졌다.
혼자서 드라이브할 생각은 왜 못 한 거지? 송여환 혼자 바쁘게 일하고 다니는데 눈치 없이 탱자탱자 노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싫어서 그랬던 건가?
‘아, 또 여환이 생각.’
나는 고개를 작게 젓곤 창문을 살짝 내려 몰아닥치는 바람을 느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울적해져 있던 기분을 달래 주었다.
기분 좋네, 소리 없이 중얼거린 나는 조금 풀어진 말투로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야. 가다가 휴게소나 들러. 배고프다.”
“회 먹자니까.”
“너랑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진 않거든?”
“그럼 아예 굶든가. 하루 종일 달릴 테니 화장실도 가지 말고, 밥도 먹지 말아 그럼.”
결국 운전대 잡은 사람이 승자라 이건가.
“네 마음대로 해라.”
“으응, 어디 공기나 실컷 먹어 봐.”
하찮은 협박질이었으나 저 미친놈은 진짜 끝까지 본인의 의견을 고수할 거 같았다.
“……하아, 그럼 회 말고 다른 메뉴로 먹어.”
차 안에서 내리 쫄쫄 굶고 화장실도 못 가는 생고문을 당할 생각은 없던지라 나는 결국 백기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놈이 옆에서 소리 높여 웃었다. 재미 하나 없는 나를 데리고 다니는 게 뭐 그리 좋다고 저러는 걸까.
‘진짜 친구가 없나?’
나야 원래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으니 이제 와서 친구라 부를 만한 인간을 만들기도 애매하다지만…… 저 녀석은 주변에 밥 한번 먹자, 커피 한잔하자고 들이댈 인간이 차고 넘칠 테다.
외모도 화려하고, 브릭트스컴트의 지원도 받고, 무엇보다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는 타이틀까지 있으니 어떻게든 친분을 쌓고 싶어 하는 놈들만 해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줄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나 말고 다른 놈들 데리고 다니는 게 낫지 않냐?”
몸 달아 잘해 줄 그놈들이 더 낫지 않나 싶어 묻자 자얀이 코웃음을 친다.
“내가 왜?”
“친구 없다며.”
“도련님 있잖아.”
“난 오늘 이후로 널 만날 생각이 없거든.”
“왜. 강아지가 만나지 말래? 내가 흑심 품은 거 같다고?”
얼마나 열심히 속도 내서 달린 건지,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조금의 짠 내가 맡아지고, 자얀이 픽 웃으며 물었다. 딱 잘라 쳐 내서 기분이 상할 만도 하건만 녀석은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여환이는 그런 말 안 했어. 그냥 내가 싫은 거야.”
차는 어느새 모래사장 근처 주차장에 들어섰다. 부드럽게 제동을 걸어 주차를 마무리한 녀석이 내리라며 고개를 까딱였다. 내 대답에 별다른 대꾸는 돌아오지 않았다.
면전에 대고 이제 너와 만날 생각이 없다는 말은 어찌 보면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딱히 미안하진 않았다. 남을 크게 배려하는 성격이 아닌 것도 한몫하지만 그보다는 송여환을 제외한 타인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게 제일 큰 이유였다.
“여유롭네.”
“그러게.”
그래도 이왕 바다에 온 거, 자얀과 어색하게나마 모래사장을 걸었다. 녀석은 신발까지 벗은 채 젖은 모래, 버석한 모래 할 것 없이 꾹꾹 밟아 댔다.
신기한 건가? 나는 어린애처럼 구는 녀석을 지켜봤다. 지랄 맞은 녀석이지만 저런 모습을 가만 보고 있자면 아주 조금이나마 동정심이 생겨난다.
“이게 바다…….”
시원하게 몰아치는 바다와 부글거리며 만들어지는 하얀 거품을 보는 물빛 눈동자가 어쩐지 조금 슬퍼 보였다.
“이봐, 도련님.”
“어.”
“아리아의 대신으로 삼겠다는 게 싫어?”
한참을 걷다 녀석이 지나가듯 툭 물었다. 궁금해서 물어보는 주제에 귀찮다는 듯 심드렁한 목소리가 어이없었다.
“아니.”
“그럼? 내가 그렇게 싫어? 난 잘 지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봐, 나 같은 남자가 구질구질하게 놀자고 매달리잖아. 흔한 기회 아냐.”
“하.”
“난 여기가 참 좋아. 환상의 세계 같거든.”
솨아아아,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바다를 물끄러미 쳐다본 녀석이 덤덤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채워지지 않는 게 있어.”
“…….”
“먹을 것도 풍족하고 생전 처음 보는 신비한 것이 넘치는데, 가끔 말이야. 그 빌어먹을 서블이 계속 떠올라. 내 손으로 버렸던 것들까지.”
나는 녀석의 푸념인지 한풀이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을 가만히 들어 주었다.
“후회인지 뭔지 모르겠어. 그저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카오루도 천도, 다른 아이들까지…… 가끔 꿈에 나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은데, 자꾸만 두고 온 거 같아. 내 손으로 끝을 냈음에도 그래.”
거센 바람이 녀석과 내 머리카락을 마구 흩뜨리고 지나갔다.
“난 어떻게든 이곳에 익숙해질 거야. 누리지 못한 모든 걸 누리고 살 거다.”
자얀이 바다를 응시하며 다짐처럼 중얼거렸다.
“그치만 외로워.”
녀석의 시선이 내게로 닿아 왔다. 그 순간 문득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 둘밖에 없는 능력도 있고, 앞으로도 그런 외로움은 서로밖에 이해를 못 할 테니까?’
아마 이 녀석이 내게 바라는 건 그걸 거다. 동질감. 애초에 녀석은 오랜 시간 무리에 소속되어 안정을 얻어 왔다. 그런데 돌연 낯선 세계에 홀로 떨어졌으니 아무래도 연결 고리를 찾고 싶은 거겠지.
다만 유감스럽게도 그건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녀석은 나에게서 그나마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 글쎄. 무릇 감정이란 양쪽이 맞물려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놈과 무엇도 나눌 수 없는데. 즉, 자얀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우리는 유일한 에스퍼가 아니라 평화로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이물질이지.’
가이드 없는 세계의 에스퍼. 안전장치가 사라진 시한폭탄. 나와 자얀은 더 이상 힘을 써서는 안 된다. 이미 퇴색되어 빛을 잃은 자들이란 말이다.
고로 나는 ‘에스퍼 낙유성’을 버렸고, 녀석은 내게서 어떤 공감도 이끌어 낼 수가 없다. 내게는 송여환과의 미래가 소중하고, 앞으로 그려 나갈 인생의 전부이므로. 녀석도 이 세계에 적응해 살아가고 싶다면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있어선 안 됐다.
나는 마지막으로 녀석에게 연상으로서 뼈 있는 조언을 해 주기로 했다. 물론 나 또한 잘난 거 하나 없는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었다.
“찾아.”
“뭐?”
“외로우면 찾으라고, 너를 사랑해 줄 사람.”
옆에서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송여환에게 배운 게 있으니까. 그를 비롯해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 포기하지 않고 알려 준 사람들이 있다. 고마웠던, 고마운 두 사람이 존재한다.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 우습게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찾았어. 더 이상은 바보처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
“너도 잘 적응해서 누릴 거 다 누릴 거라며. 그럼 애새끼처럼 징징거리지 마. 네 인생은 네가 살아.”
나는 아무런 말이 없는 자얀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다 정 무겁다 싶으면 같이 들어 줄 사람을 찾든가. 나처럼.”
생각이 많아진 건지 답지 않게 조용해진 놈에 우리는 서로를 가만히 응시하며 침묵을 지켰다. 바로 그때, 주머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울렸다.
‘아, 젠장.’
발신인은 여환이였다. 나는 자얀을 흘끔 보고 마른 입술을 한 번 축이며 전화를 받았다.
-형!
보이지 않는데 보이는 기분은 뭘까. 강아지 귀를 펄럭이며 애교를 부리는 송여환이 눈앞에서 둥둥 떠다녔다.
“어. 일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심장 부근이 간질거려 괜히 긁적였다.
-이제 점심 먹으려고. 형은…… 음? 밖이야? 소리가 집이 아닌데?
“아, 좀 답답해서. 잠깐 바람 쐬러 나왔어.”
-미안해. 빨리 정리하고 휴가 얻어 올게.
“회사가 놀이터도 아니고.”
-하하, 요새 생각이 좀 많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걸까? 통 얼굴을 못 보니 뭘 알 수가 있어야지. 여환의 목소리가 약간 시무룩해진 것 같아 신경 쓰였다. 무어라 위로라도 해 줘야 할 거 같은데 그쪽으론 영 소질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까지 했다. 집 가는 길에 서점이라도 들러서 위로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해 볼까?
-그보다…… 바람 쐬러 혼자 갔어?
멍하니 생각을 하던 중 송여환이 머뭇거리며 건네 온 질문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자얀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자얀은 내게서 시선을 거둔 채 바다를 보고 있었다.
……나 왜 숨기려고 했지? 그냥 자얀과 왔다고 얘기해도 괜찮지 않나? 물론 여환이가 싫어하겠지만 나는 단호히 선을 긋고 있고, 만남도 오늘이 마지막일 텐데…….
손가락이 초조함을 담고 움찔거렸다.
‘하지만……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는 않은데.’
사실 머뭇거리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다. 이미 한 번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바라서 한 일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얀과 입을 맞춘 것은 사실이니까. 계속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면서도 결국 지금까지 입을 다물었으니.
‘이번에도 거짓말을 하면 뭔가 일이 이상해질 거 같은데.’
나중에 여환이에게 들키게 되면, 거짓말을 두 번이나 한 상황이 된다.
-형?
“아…… 아니. 혼자는 아니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입이 절로 열렸다.
“자얀…… 이랑 왔어. 할 말이, 그, 에스퍼로서 나한테 의논할 게 있다고…… 해서. 어…… 금방 갈 거야.”
하, 왜 더듬고 지랄이야. 괜히 수상해 보이잖아. 나는 내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마른 입술만 할짝거렸다.
-아아, 그래?
“어어.”
-하긴. 형 집에서 심심하긴 하니까. 하하…… 응, 잘 놀고 와. 그…… 너무 가까이 붙지는 말고.
“뭔……. 이상한 소리 하지 마.”
-형이 예쁘니까 그렇지.
……생각보다 괜찮은 건가? 여환이의 목소리는 평소와 딱히 다르지 않았다. 혼자 설레발을 친 기분에 귓불이 뜨끈해졌다. 이내 저녁 챙기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여환이가 먼저 끊은 건 처음이었지만 바쁘다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기에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가이드 없는 세계의 이물질 에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