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너 그거 아니야? 서큐버스 (2/11)

2. 너 그거 아니야? 서큐버스

언제든, 어디든. 도대체 그 말을 왜 했을까. 상우는 미친 듯이 후회했다. 그러나 잔인한 현실에는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었다.

[7시]

아니, 7시 뭐! 7시 왜! 덜렁 7시라고만 보내진 문자에 상우는 강의를 듣다 벌떡 일어날 뻔했다. 보낸 이는 소중한 식량 제공자 백재현 사장님이셨다. 그리고 오늘은 먹이를 섭취한 지 아직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고작 나흘밖에 안 지난 금요일이었다. 당장 전화해서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상우는 토독토독 문자를 쳤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상우는 철저한 을이었다.

호오. 답장을 확인한 재현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아직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시험 삼아 보내 봤는데. 새로 얻은 장난감은 제 생각보다 열정이 넘치는 친구였다. 

어디서 볼까 고민하던 재현은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시간은 미리 정해 줘도 장소까지 미리 알려 줄 이유는 없지. 먼저 연락하긴 했지만, 막상 또 보려니 다리 사이에 같은 거 달린 새끼한테 제 걸 물려 주려고 약속을 잡는 게 찝찝한 마음이었다.

그러다 문득 재현은 제 좆을 물고 빨던 변태 새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악마라고 했지? 그것도 인큐버스. 좆 대가리를 빠는 인큐버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아무도 없는 사장실에 앉아 있어 다행이지 누가 봤으면 혼자 인상을 찡그렸다가 웃다가 하는 재현이 드디어 정신 나간 줄 알았을 것이다.

할 일 없는 재현은 검색창에 인큐버스를 입력했다. 게임을 하면서 서큐버스를 본 적은 있어도 인큐버스는 생소했다. 뭐, 있어도 관심 없었겠지만.

인큐버스, 몽마. 인큐버스는 라틴어의 ‘íncŭbo: 위에서 자다, 올라타다’라는 낱말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마찬가지로 서큐버스는 ‘súccubo: 밑에서 자다, 아래에 눕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검색 결과를 살피던 재현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답장조차 없는 재현 때문에 상우는 괜히 좌불안석이었다. 이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이 무슨 뜻일까. 아직 배도 안 고프고 생각만 해도 무서운 사람인데…… 재현의 사나운 얼굴을 떠올린 상우는 순간 움찔하는 물건 때문에 고개를 푹 숙였다. 지금 영양분 공급받던 날을 떠올린 것만으로 발기할 뻔한 거야? 이거 진짜 위험한데?

“아…… 미쳤나 봐.”

강의에 제대로 집중도 못 하고 핸드폰 액정만 초조하게 바라보다가 책상에 머리를 박는 상우를 인수가 빤히 바라봤다. 왜 그러냐고 물어볼까 생각하다 괜히 귀찮아져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까지는 빌빌대던 놈이 이번 주는 거짓말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흐음. 아무리 무시하려고 노력해도 옆에서 들리는 끙끙 소리에 결국 인수는 지고 말았다.

“야, 정신 사나워.”

닥치라고 한 말인데 상우는 인수가 저를 신경 쓴다는 걸 알자 마치 저에게 관심을 가져 줄 때까지 낑낑거리는 개새끼처럼 더 심하게 앓는 소리를 냈다. 타박이 너무 약했나?

강의가 끝나고 담배를 피우러 가는 인수의 뒤를 졸졸 따라가며 상우가 10초에 한 번씩 한숨을 내쉬었다. 나 좀 봐줘. 내가 이렇게 뭔가 고민하잖아! 나한테 왜 그러냐고 물어봐 줘!

“아오, 시발! 뭔데! 뭐야!”

인수가 폭발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상우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인수야, 이건 내 친구 얘기인데…….”

“어디서 본 건 있어서. 개소리 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라.”

자기 얘기라고 말하기 민망해서 친구 얘기라고 둘러대 봤지만, 인수가 칼같이 자르는 바람에 상우는 하는 수 없이 사실은, 하고 말을 이었다.

“사실은 내가 어떤 사람을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났는데 그 사람이 진짜 내 취향이 아니거든.”

“사설 넣지 말고 본론만.”

인수의 차가운 대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상우는 구구절절 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진짜 내가 한 번도 그런 사람을 보고 그런 적이 없는데 말이야.”

“뭐가 그런 사람이고 뭐가 그런 적이야. 똑바로 말 안 하면 나 간다.”

“내 취향이 아닌 사람을 보고, 발기한 적이 없는데 말이야.”

상우가 드디어 똑바로 내용을 전달했다. 차마 남자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취향이라고 에둘러 표현하긴 했지만.

“근데.”

“근데 이상하게 얼굴만 떠올려도 막 거기가 벌떡벌떡 일어나.”

상대가 남자라는 것 외에 인수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몇 개 더 있긴 했지만, 모조리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너무 아팠다. 발기부전, 그리고 만져 주지도 않는데 사정하는 조루. 발기부전과 조루가 한 번에 오다니. 대단하다, 대단해. 전 세계 인큐버스의 훌륭한 표본이었다.

어쨌든 꺼낸 이야기만큼은 진짜 고민이었다. 왜일까. 재현의 얼굴만 상상해도 주니어가 빵긋 웃으며 기지개를 켜는 건.

상우 혼자 자조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인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예뻐?”

“아니! 내 취향 아니라니까? 완전 무섭게 생겼어.”

“돈 많아?”

“응. 돈은 많아.”

그것도 완전 많아. 진짜 많아. 내가 본 부자 중에서 제일 부자야. 상우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몰라? 한…… 열 살에서 열다섯 살은 많아 보이던데.”

상우가 대답할수록 인수의 표정이 점점 더 굳어져 갔다.

“사귀는 건……?”

“에이, 그건 아니지.”

“데이트는?”

“한 적 없어.”

“몇 번 봤어?”

“음…… 세 번?”

“설마…… 잤냐?”

“그건 아직 아닌데. ……비슷한 거는 했어.”

친구에게 성생활을 고하는 입장이 조금 낯부끄러워서 상우는 목소리를 줄였다.

인수는 손에 들린 담배를 빠는 것조차 잊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물론, 눈앞에 있는 동기가 온전한 정신상태로 살고 있지 않은 건 진작 알고 있었다.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같이 맹한 게 어떻게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나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섭게 생기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취향도 아닌 여자를 상대로 고작 돈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발정하다니.

그게 인간 새끼가 할 짓인가!

“미친. 쓰레기 새끼.”

“뭐? 야, 그 정도는 아니야.”

상우가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돈 때문에 몸 파는 게 우리 나이에 할 짓이냐?”

인수의 말에 상우가 밝게 웃었다. 쓸데없이 예쁘게 생겨서 주위가 환해지는 웃음이었다.

“뭐야. 그런 거 아니야. 돈 받은 적 없어, 나.”

이런 오해를 하다니, 참. 상우는 멋쩍게 웃었다. 자신이 돈을 내도 모자를 판인데 돈을 어떻게 받겠는가.

“그럼 왜 만나?”

“음…… 밥 먹으려고?”

인수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사실대로 말한 것뿐인데.

“쓰레기 새끼라는 말 취소. 넌 그냥 개쓰레기. 폐기물. 재활용도 안 돼.”

더 말도 섞기 싫다는 듯 인수가 손에 들린 담배를 재떨이에 꾹꾹 눌러 껐다.

상우는 어디 가, 아직 얘기 안 끝났어, 하며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재활용도 안 되는 폐기물이라는 소리까지 해 놓고 인수는 7시까지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상우에게 붙잡혀 피시방에서 같이 게임을 해 주었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상우는 인수가 대학에 와서 처음 만난 친구였다.

4시에 한 번, 5시에 한 번, 6시에 한 번. ‘사장님?’ 하고 메시지를 보내던 상우는 묵묵부답이던 재현에게 전화를 걸고야 말았다.

[왜?]

다짜고짜 왜라뇨. 원망의 말을 꾹꾹 눌러 삼킨 상우가 최대한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저 어디로 갈까요?”

[아, 맞다.]

아, 맞다? 아, 맞다!?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건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상우는 이번에도 꾹꾹 내리눌렀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세요…….”

[좆 빨고 싶어서 안달이 났네, 아주.]

웃음기 섞인 재현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울렸다.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재현을 만나야 하는 건가. 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취급을 받더라도 밥은 먹어야 했다. 홧김에 안 먹는다고 했다가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재현이 저를 부르지 않는다면 죽는 건 상우지 재현이 아니었다.

“네. 맞아요. 그러니까 얼른 알려 주세요.”

[삐친 건가?]

“남이야 삐치든 말든 무슨 상관이세요.”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마음의 소리를 내뱉은 상우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재현의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닌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 또다. 고작 웃음소리에 자지가 또 반응했다.

“……얼른요.”

[호텔로 와.]

재현의 말에 상우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어차피 호텔에서 볼 거였으면 진작 알려 주지. 정말 이상한 아저씨라고 생각하면서 상우는 터덜터덜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갔다.

원래 재현의 계획은 변태 새끼가 도착하면 화장실이든 사장실이든 좆만 빨게 해 주고 클럽으로 놀러 가는 것이었다. 유니폼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촌스러운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상우를 봤을 때, 재현은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어쩐지 불퉁해 보이는 얼굴이 귀여워서인가. 한참 학번 차이가 나는 대학교 후배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재현은 학창시절 완벽한 물주였다. 그렇다고 호구는 아니었다. 호구의 조건이 생활이 힘들 정도로 돈을 퍼 주다가 후회하는 것이라면, 재현은 돈은 퍼 주되 그것이 부담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그저 애초에 많이 가졌으니 많이 쓸 뿐이고 그것이 당연했다. 덕분에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재현은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돈으로 산 사랑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재현이 돈을 쓰는 것은 숨을 쉬는 것과 같았으니까.

물론 재현은 특정 여성에게 선물 공세를 하거나 돈을 꾸준히 쓴 적은 없었다. 돈을 쓸 의향은 가득했지만, 잠자리의 고통을 담보로 빨대를 꽂으려는 사람이 여태껏 나타나지 않았다. 결론을 말하자면, 재현은 그저 친구들과 선후배, 그리고 동기들에게만 신과 같이 추앙받는 물주님이셨다.

그래서 상우에게 밥을 사 주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먹어.”

재현의 말에 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전 초밥집이나 동네 횟집은 가 봤어도 룸으로 들어와서 먹는 호텔 일식당은 처음이었다. 눈앞에 정갈하게 차려지는 요리에 상우는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하루만 더 일찍 부르지! 하루만 더! 식사한 지 사 일차인 오늘은 일반 음식을 아무리 먹어도 그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맛이라면 괜찮을 텐데, 알고 있는 맛이라 더 서러워졌다. 게다가 이렇게 비싼 초밥이라면 분명 알고 있는 맛보다 더 맛있을 것이다.

깨작깨작 음식을 먹는 상우의 모습에 재현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일식 싫어해?”

돈을 쓰는 이유는 돈 쓰는 걸 보는 맛이 있어서인데. 제가 사 주는 음식을 이렇게까지 맛없게 먹는 사람을 재현은 난생처음 봤다.

“아뇨…… 엄청 좋아해요…….”

없어서 못 먹죠. 상우는 정말로, 진심으로 이 맛을 느끼고 싶었다. 입안에서 탱글하게 씹히는 고소한 활어의 맛을 만끽하고 싶었다.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텐데 먹고도 무슨 맛인지 모른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나중에 팔순 잔치에서도 손주들에게 말하겠지. 할애비가 스무 살 때 고급 호텔에서 고급 초밥을 먹었는데 그 맛을 아직도 모르는 게 한이구나, 하고.

“사장님. 저 한 번만 빨고 나서 먹으면 안 될까요?”

상우는 마침내 결심했다.

상우의 돌발 행동에 재현은 당황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음식을 깨작깨작 먹던 게 고작 좆을 먼저 빨고 싶어서라니. 돈으로 사 주는 것보다 자지를 더 좋아하는 진성 변태가 제 눈앞에 앉아 있다니. 재현은 일생일대에 느껴 본 적 없는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돈보다 더 위대한 것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그게 자신의 자지였다.

“뭐?”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되물었지만, 마음을 굳힌 상우는 대답도 하지 않고 테이블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재현이 앉은 의자 앞까지 다가온 상우가 오늘도 반짝반짝 빛나는 H 로고에 손을 가져다 댔다. 재현이 황급히 손을 내려 상우를 저지했다.

“잠깐만.”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상우가 빼꼼히 고개를 들고 재현을 바라봤다. 어서 정액을 먹어야 일분일초라도 빨리 초밥을 먹을 텐데, 하고 생각하며.

“지금 내 좆 먼저 빨겠다는 거. 그거 공짜로 얻어먹기 미안해서 그래?”

재현의 추론은 충분히 상식적이고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상우는 재현을 안 지 얼마 안 됐으니 재현이 평소에 남들에게 돈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는 게 당연했다. 만약 상우가 그렇다고 대답하면 됐으니 밥부터 먹으라고 할 셈이었다.

상우는 눈치 없이 헛소리를 하는 재현 때문에 답답했다. 돈도 많은 사람이 밥 좀 사 준다는데 미안한 마음을 가질 게 뭐 있겠는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저를 위해서 먼저 빨아야 해요.”

이제 해도 되냐고 허락을 묻는 표정으로 상우가 눈을 빛내며 재현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밥부터 먹는 게 낫지 않나?”

재현의 나지막한 물음에 상우가 정색을 했다.

“사장님, 지금 안 빨면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후회할 거 같아요.”

상우의 단호한 목소리에 재현은 누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후려갈긴 느낌이었다. 두근두근. 재현의 심장이 주책맞게 빨리 뛰었다. 돈보다 제 자지를 더 좋아하고, 심지어 당장 빨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비록 사내 새끼에 변태였지만, 서른 살 인생을 평범과 거리가 멀게 살아온 재현에게는 절절한 사랑 고백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멍하니 제 가랑이 사이를 내려다보는 재현의 표정에 상우는 초조해졌다. 재현이 멍 때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초밥 위 생선의 수분이 조금씩 날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상우는 더 기다릴 여유가 없어져 정신을 놓은 재현을 내버려 둔 채 바지 지퍼를 내렸다. 아직 달달한 냄새도 나지 않는데 불편해 보일 정도로 갇혀 있는 성기의 윤곽을 바라보며 침을 꼴딱 삼켰다.

제정신으로도 빨 수 있을까? 만약 지난번 게이바처럼 생리적 거부감에 실패한다면? 그러면 평생 호텔 일식당에서 주는 초밥의 맛을 알지 못하게 되겠지.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이런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상우는 검은색 천 쪼가리를 끌어내렸다.

“어우…….”

아직 발기도 안 한 게 뭐 이리 크지. 정신이 맑은 상태에서 보니 사람 몸에 달려 있을 크기가 아니었다. 이것은 자지가 아니다. 이것은…… 그래, 자지랑 발음이 비슷한 가지다. 크기도 비슷하겠다, 상우는 잠시 눈을 감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 가지를 손에 쥐었다. 가지가 이렇게 물렁물렁하고 따뜻할 리가. 그래도 상우는 계속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가지다. 이건 가지다.

……생각해 보니 상우는 가지를 싫어했다.

손으로 건조한 가지를 조물딱거리고 있자니 조금씩 단내가 풍기기 시작했다. 상우는 생각의 방향을 바꿨다. 이건 가지 모양의 사탕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몇 번 만나 본 자지, 아니 가지라고 게이바에서처럼 불쾌감이 들지는 않았다. 점점 짙어지는 달콤한 냄새도 상우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데 한몫했다.

그래, 어차피 먹어야만 끝나는 거라면. 상우는 눈을 꾹 감고 가지의 끝에 혀를 가져다 댔다.

그 순간 묵직한 단내가 확 풍겨 올랐다.

“후…….”

테이블 위에서 낮은 신음이 울렸다. 눈치 없는 상우의 주니어는 그 소리에 오늘도 방긋 웃으며 일어날 준비를 시작했다. 예상보다 나쁜 느낌은 아니라 상우는 제 마음이 변덕을 부리기 전에 얼른 두툼한 재현의 귀두를 입에 물었다. 손에 쥔 가지의 몸통이 끝도 모르게 굵어지고 있었다. 열심히 훑어 내리기에는 메말라 있어 상우는 물고 있던 자지를 뱉어 냈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기둥을 싸악 핥아 올렸다. 재현의 허벅지가 눈에 띄게 떨려 왔다. 초콜릿보다도 더, 사탕보다도 더 달달한 냄새가 상우를 덮쳤다. 추운 겨울날 지하철 환승역을 걸어가다가 맡는 델리만쥬 냄새와 동급일 정도로 유혹적인 냄새였다. 열심히 핥아 대는 상우 덕분에 재현의 기둥이 타액에 젖어 번들거렸다. 어차피 빨리 사정시키고 미각을 되찾는 게 목표였던 상우는 양손으로 재현의 성기를 훑어 내렸다.

배가 고파 안달이 나서 달려들던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상우는 재현이 빨리 싸면 날름 먹고 얼른 테이블 위의 음식을 맛보고 싶었다. 배를 채우려 먹는 게 아닌 만큼 굳이 쿠퍼액까지 아낌없이 먹을 필요는 없었다. 상우는 혼자 자위할 때 어디를 어떻게 만지면 좋았는지 열심히 생각하며 손을 움직였다.

질척하게 젖은 좆의 뿌리부터 귀두까지 미끄러지듯 문지르고, 귀두와 기둥이 이어지는 부분을 엄지로 간지럽혔다. 귀두를 손바닥으로 힘주어 꾹 움켜쥘 때마다 재현의 하반신이 들썩거렸고, 새끼손가락으로 슬쩍슬쩍 자지 만큼이나 큰 재현의 음낭을 건드릴 때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에잇, 기분이다, 하며 손을 계속 움직이며 구멍 위에 혀를 가져다 대는 순간. 드륵, 의자가 뒤로 밀려나는 소리와 함께 재현의 자지를 잡고 있던 상우의 손이 미끄러졌다.

“어어?”

상우의 입에서 튀어나온 멍청한 소리와 함께 우악스러운 힘에 팔이 잡히고 몸이 끌어올려 졌다. 뭐하는 짓이냐고 물을 새도 없이 상우는 재현의 손에 이끌려 그 앞에 서서 내려다보는 꼴이 됐다. 그 바람에 눈앞의 상대가 먹이인지, 자신이 먹이인 건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맹렬히 저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는 눈빛을 오롯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욕정에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무서워서 상우는 도로록 눈알을 굴렸다.

“섰어?”

재현의 깔끔하고 담백한 물음에 상우의 사고가 마비됐다. 뭐가 섰나요? 뭐가 서야 하나요? 대답 없는 상우가 답답했는지 재현의 손이 상우의 바지 앞섶을 콱 움켜쥐었다. 물론 폴폴 나는 단내에 상우의 좆은 이미 아까부터 꺼떡거리고 있었다.

재현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섰네.”

굳이 중계해 주지 않아도 상우도 이미 아는 사실을 내뱉으며 재현이 양손으로 상우의 무릎을 끌어당겼다.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는 사이 상우는 재현의 무릎 위에 앉는 모양새가 되었다. 한시라도 빨리 재현의 정액을 먹고 음식을 맛볼 생각이었던 상우의 계획이 틀어졌다. 재현의 기다란 손가락이 상우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속옷까지 끌어내리자 상우의 분홍빛 도는 자지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 아니, 사장님 왜 이러시는……!”

말을 제대로 끝마치기도 전에 상우의 자지가 재현의 손에 쥐어졌다. 대한민국 평균 사이즈인 상우의 자지는 재현의 큰 손에 수월히 들어왔다. 직접 닿아오는 자극에 상우의 등이 동그랗게 말렸다. 고새를 못 참고 인내심 부족한 오랜 친구가 따뜻한 온기를 반기며 투명한 액체를 퐁퐁 내보냈다. 몇 번 귀여워 해 주지도 않았는데 상우의 자지가 질척하게 젖어 들어갔다.

“좆도 귀엽네.”

재현이 눈을 내려 처음 본 상우의 자지에 대한 감상평을 내뱉었다. 검붉은 재현의 것과 나란히 놓고 보니 앙증맞아 보이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재현은 상우와 제 성기를 맞닿은 채 다른 손도 가져와 한 번에 붙들었다. 타액과 체액으로 젖은 두 자지가 끈적하게 비벼졌다.

“아읏!”

나이만큼이나 자극에 어수룩한 상우가 몸을 잔뜩 움츠렸다. 남의 살이 뜨겁게 닿아오는 느낌이 익숙할 리 없었다. 게다가 힘 조절도 못 하고 쥐어짜듯 움직이는 손길에 꼬리뼈를 지나 척추를 타고 간질간질한 감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상우는 이상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방 안을 가득 메우는 달콤한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흐읏, 사…… 장님……!”

상우가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재현을 부르면서 눈앞의 넓은 어깨에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 왜.”

차라리 목소리라도 안 들렸으면 좋았을 텐데. 귀에 바로 내리꽂히는 낮은 목소리에 상우는 이를 악물었다. 사정하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비된다고! 상우는 꽥 소리 지르고 싶은 걸 억지로 참아 내며 재현이 선사하는 쾌감에 몸을 맡겼다. 차근차근 치고 올라오는 쾌감 때문에 허리가 저절로 흔들렸다. 재현도 그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작게 소리 내 웃었다.

“읏, 손…… 손 놔주세요……!”

그렇게 쉽게 놔줄 거였으면 애초에 손도 대지 않았겠지. 재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상우가 얄미워 눈앞에 드러난 하얀 목덜미를 콱 깨물었다.

“으하아……!”

잔뜩 말려 있던 상우의 허리가 꼿꼿이 세워지고 등이 뒤로 넘어갔다. 재현은 재빨리 상우가 넘어지지 않게 등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경련하는 등 근육이 손바닥을 타고 그대로 느껴졌다. 다른 손은 울컥울컥 쏘아 올려지는 상우의 정액으로 젖어 들어갔다.

“빠르네.”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저를 업신여기고 있다고 느껴졌지만 상우는 지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타인의 손길에 사정하는 게 이런 느낌인 건가. 이렇게 기분 좋은 거였단 말인가. 새하얗게 비워지는 머리로 간신히 생각하며 상우는 마지막 남은 정액까지 툭툭 뱉어 냈다. 아, 아까워. 상우가 제대로 사고하기도 전에 재현이 상우의 정액으로 질퍽한 손바닥을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정액 먹는 거 좋아하잖아.”

상우가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누가 에너지원도 되지 못하는 제 정액을 좋아한다고 했는가. 그걸 먹어서 힘이 나면 혼자 싸고 먹고 알아서 해결하지, 무한동력도 아니고. 재현의 정액과 달리 비릿한 냄새만 올라오는 자신의 정액에 상우는 휙 고개를 돌렸다.

“제가 먹을 수 있는 건…… 사장님 거예요……!”

상우의 냉담한 반응에 이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던 재현은 곧이어 들려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미친. 뭘 믿고 이렇게 야하고 귀여운 거지? 한번 귀엽다, 기특하다 생각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노력해 볼게.”

재현은 상우의 정액으로 젖은 손을 내려 제 것을 움켜쥐었다. 서른이 될 동안 숱하게 흔들어 대던 거니 어떻게 쥐어야 금방 쌀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감촉도 싸구려 같은 상우의 체크무늬 셔츠에 기댄 채 재현은 열심히 제 자지를 쓸어내렸다.

“하…… 곧 쌀 거 같아.”

재현의 중얼거림에 상우가 깜짝 놀라며 후다닥 재현의 무릎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고는 재현의 앞에 꿇어앉아 입을 크게 벌렸다.

말랑한 혀 위로 쏟아지는 정액의 맛은, 모든 고생이 잊힐 정도로 달았다.

일식을 좋아한다는 말은 사실이었던 걸까. 방금 전까지 저와 끈적하게 살을 부딪치던 상우는 정액을 꼴딱 삼키자마자 자리로 돌아가 고개도 들지 않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돈 쓰는 맛이 날 정도로 정신없이 처먹는 상우를 재현은 턱을 괸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시 보니 예쁘게 생긴 얼굴 빼고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것도 저보다 열 살이나 어린. 그런데 이상하게 상우가 귀여워 보였다. 오물오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입술이 제 걸 얼마나 열심히 빨았는지 재현은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클럽에 가기로 한 계획은 이미 재현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맛있어?”

“네. 저 이런 거 태어나서 처음 먹어 봐요.”

저런. 상우의 대답에 재현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고작 이 정도 가지고.

“많이 먹어. 더 먹고 싶으면 더 시켜도 돼.”

갑자기 친절해진 재현의 태도에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상우의 젓가락이 멈췄다. 이 인간, 뭔가 이상했다. 여태까지 관심도 없던 제 좆을 만지질 않나, 쓸데없이 친절해지질 않나. 상우가 의심을 가득 담은 눈초리로 재현을 바라봤다.

이미 상우를 귀엽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재현의 눈에는 그마저도 깜찍했다. 예쁘장한 눈동자에 경계를 가득 품고 눈썹을 잔뜩 찡그린 채 입만 오물거리는 꼴이 마치 먹이를 뺏길까 걱정하는 햄스터 같았다. 옷만 저 촌스러운 체크 남방이 아니면 더 귀여웠을 텐데. 클럽에서 본 날처럼 깔끔한 단색 셔츠에 머리를 넘긴 게 더 잘 어울리는데 옷 취향도 변태인지 벙벙한 청바지와 티셔츠, 그리고 오버핏 셔츠가 90년대 힙합 전사 같아 보였다.

“다른 옷 없어?”

재현은 선의를 한가득 담아 물었다. 없다 하면 다음엔 백화점에서 만나 옷 몇 벌 사 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지만 상우의 귀에는 옷 입은 꼬락서니를 트집 잡는 꼰대 아저씨의 말로만 들렸다. 그럼 그렇지. 친절은 무슨. 뭐 하나 비꼴 거 없나 찾으려고 그렇게 꼼꼼히 훑어봤던 거였네. 상우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게 또 오리 새끼 같아 보여서 재현은 픽 웃었다.

“오늘 금요일인데 뭐해?”

“집에 가려고요.”

재현의 대기 명령에 약속 잡은 것도 없으니 금요일이고 뭐고 귀가 행이었다. 어차피 식사도 뚝딱 해결했겠다. 집에 가서 게임 레벨이나 올리고 새벽에 자서 내일 오후에 일어나는 완벽한 주말 계획. 갑자기 시간을 번 것 같아져 상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로써 앞으로 일주일은 또 굶을 걱정 없이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야식으로 치킨을 시킬까? 입안에서 살살 녹는 디저트를 음미하며 야식 메뉴를 고르다니. 사치스러운 생각에 상우는 그만 헤실헤실 웃어 버렸다.

“데려다줘?”

제대로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한 재현은 제가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남자는 연애 상대의 범위가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게다가 상우는…… 돈보다도 제 좆을 더 좋아하고 미슐랭 3스타로 유명한 가야 호텔 일식집에서 나오는 음식보다 제 정액을 더 맛있게 먹는 기특한 놈 아닌가. 잘해 줘서 나쁠 건 없어 보였다.

“왜요?”

하지만 상우는 재현의 달라진 태도에 의아한 모양이었다. 사장님이 뭔데 날 데려다줘요? 하고 묻는 상우의 표정에 재현은 기분이 상했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와서 울고불고 난리 친 건 분명히 상우였는데. 거기에 좀 어울려 줄까 했더니만, 이상하게 제가 매달리는 기분이었다.

“왜긴, 시발. 어디 공터에다 암매장하려고 그러지.”

퉁명스럽게 내뱉어지는 재현의 말에 상우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잊고 있었다. 눈앞에 계신 분이 돈이 아주아주 많으신 사장님이라는걸. 영화나 드라마 보면 그런 사람들은 꼭 조폭 출신이거나 어둠의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재현의 말이 진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상우는 조신하게 멈추었던 숟가락을 들어 남은 디저트를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 * *

재현은 기분이 굉장히 별로였다. 의외로 사내새끼 좆을 만지는 게 괜찮,……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존나 꼴려서 짧게나마 상우와 밤새도록 이런저런 야한 일들을 하는 상상을 했다. 모태솔로들의 전형적인 특징인 조금만 잘해 주면 머릿속에서 식장을 잡고 손자 손녀 이름까지 짓고 있는 것과 비슷한 꼴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두세 번의 만남이 이어질수록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점점 상우와의 관계가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만나서 대딸을 하든, 펠라를 하든 정액을 꼴딱 먹고 나면 상우는 태도가 휙 돌변했다. 식당에서 만나면 대화를 하는 둥 마는 둥 밥만 냠냠 먹고 가고, 그 외에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쏙 사라졌다.

마치 둘 사이의 관계는 별거 아니라는 듯한 상우의 차가운 태도에, 그리고 일주일 내내 만나는 약속을 잡는 것 외에 단 한 번의 연락조차 없는 모습에 재현은 뿔이 날 대로 나 버렸다.

“아, 그렇게 신경 쓰이시면 사장님이 먼저 뭐하냐고 연락하시면 되잖아요.”

바텐더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재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싫어.”

“왜요?”

“걔가 날 좋아하는 거지, 내가 걜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지. 연애에 관해서 통달하다 못해 책이라도 냈을 것 같이 생긴 사장님이 연애 고자처럼 답답한 소리를 해대니 바텐더는 기가 딱 막혔다.

“사장님. 그 여자 생각만 해도 아랫도리가 주체가 안 되신다면서요.”

여자도 아니고, 정확히 말하자면 변태 새끼지. 하지만 빨아 주던 생각만 하면 저절로 발기되는 건 사실이었다. 야한 생각하는데 발기하는 건 당연한 거다 싶으면서도 차마 사내새끼 생각하면서 발기했다고 말할 수가 없어 재현은 딱히 토를 달지 않고 고분고분 긍정의 답을 했다.

“응.”

“지난번에 저한테 요즘 애들은 무슨 스타일 좋아하냐고 물으신 것도 그 여자 때문이죠?”

요즘 어린 친구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옷이라도 하나 사 줄까 생각했었다. 비록 백화점에서 만나자는 제 말에 상우가 그런 데서 어떻게 빠냐고 수줍게 말하는 바람에 실패했지만.

아무래도 바텐더는 재현이 그런 스타일로 맞춰 입으려나 보다 생각한 것 같았다.

“맞아.”

“지금 그 여자한테 연락이 안 와서 신경 쓰이고 짜증 나시는 것도 사실이고요.”

재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맞긴 한데, 어쨌든 난 걔 안 좋아하는데?”

같은 사내 새끼를 좋아할 리가.

상대가 남자란 걸 모르는 바텐더는 체할 것 같이 턱턱 막히는 대화에 분노마저 일었다. 사장님만 아니면 썩 꺼지라고 뺨이라도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저 인간이 사장으로 부임하기 전에 백제그룹 삼남 백재현이가 그렇게 망나니라고, 온갖 여자 다 후리고 다닌다고 소문을 전해 준 게 작자를 지금 이 자리에 데려다 놓고 싶었다. 와서 제 사장님이랑 대화해 보라고. 망나니는 무슨, 이건 유치원생보다도 연애 세포가 부족한 인간이었다.

“네…… 안 좋아한다고 치고. 마음에는 드신 거죠?”

음…… 재현이 고민을 시작했다. 상우의 예쁜 얼굴이 머릿속에 뿅 떠올랐다. 동시에 딱 한 번 봤던 분홍색 좆 대가리가 같이 눈앞에 그려졌다. 일식당에서 같이 뺀 날 이후로 상우는 매번 발기하면서도 재현에게 제 것을 꽁꽁 숨기고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래도 귀여운 자지를 생각하니 절로 꼴렸다. 마음에 들었다는 말은 차마 부정할 수가 없겠네.

“조금.”

“네, 조금…… 하…….”

답답한 상황에 놓인 건 자신인데 바텐더의 얼굴이 점점 질린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근데 걔가 나한테 더 관심 있다니까?”

“무슨 근거로요.”

재현이 씨익 웃었다. 아, 직원한테 이런 말까지 하기엔 조금 부끄러운데.

“걔가 내 걸 존나 맛있게 빨아. 돈도 필요 없고 그냥 빨게만 해 달래.”

재현의 뿌듯한 표정을 보며 바텐더는 할 말을 잃었다. 그래. 사장님이랑 만나는 여자도 제정신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적당히 미친년이 아닌 것 같았다. 꽃뱀이면 펠라 하면서 돈이라도 받던가. 재벌한테 돈도 필요 없으니 빨게만 해 달라는 말을 하는 여자가 제정신일 리 없었다. 차라리 돈이 목적이면 사장님은 돈이 차고 넘치니 안심이라도 됐을 텐데.

“그거…… 사장님 몸만 노리는 거 아니에요……?”

바텐더의 명쾌한 해설에 재현은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재현도 그냥 변태 새끼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도 달가워하지 않던 자지를 매번 예뻐해 주는 상우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졌었다. 시발, 하고 중얼거리는 재현을 바텐더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맞네, 맞아. 상대는 고작 섹파로 보고 있고, 사장님 혼자 난리 난 거였네.

“사장님…… 이런 상황을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재현의 귀에 바텐더의 조그마한 속삭임이 벼락처럼 꽂혀 들었다.

“짝사랑.”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을 한 재현을 바라보며 바텐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건 충격요법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였다.

그 이후에도 현실 부정과 분노를 오락가락하는 재현에게 시달리던 바텐더는 하는 수 없이 조언했다. 사장님이 몸을 안 대줘도 매달리는지 한번 지켜보세요. 그냥 평범한 데이트를 해 보시라고요, 하고.

* * *

가족과 저녁을 먹고 있던 상우는 재현의 메시지에 화들짝 놀랐다.

“아, 미쳤나 봐 진짜.”

“박상우. 식탁 앞에서 누가 핸드폰 보래.”

엄마의 싸늘한 목소리에 상우는 재빨리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누군데 그래?”

“응? 먹이…….”

재현이 숟가락 가득 쌀밥을 퍼서 입안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비록 맛은 느껴지지 않지만, 입안에서 고슬고슬 돌아다니는 밥알의 느낌이 좋았다.

“요즘 꾸준히 만난다는 그분?”

“응. 맞아.”

“근데 뭐가 미쳤니? 아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한단다.”

“그게 아니라, 영화관에서 보자고 그러잖아. 거기서 어떻게 먹으라고.”

상우의 투덜거림이 다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숟가락이 이마를 딱 때렸다.

“악!”

“엄마는 널 그렇게 키운 적 없다. 여자는 섬세한 존재야! 아무리 먹으려고 만난다고 해도 애정을 주고, 소중하게 여기라고 했잖니.”

아직 남자에게 정기를 공급받고 있다고 실토하지 못한 상우는 합죽이가 되었다. 엄마가 수저까지 내려놓은 걸 보니 본격적으로 잔소리 모터에 시동이 걸릴 모양이었다.

“딱 먹기만 하고 헤어지면 여자들은 아, 이 사람이 내 몸만 보고 만나나 하고 상처받는다고 몇 번을 말해!”

엄마의 연륜은 재현의 고민을 딱 집어 냈다. 단지 재현은 상처받는 게 아니라 뜨겁게 분노했을 뿐. 상우는 여전히 입을 꼭 다물었다.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됐을 땐 그냥 닥치고 있는 게 최고였다.

“먹기 전에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데이트도 하면서 분위기를 끌어내야지. 그러고 보니 너 데이트는 해? 아르바이트 그만둔 게 언젠데 무슨 돈이 있어서…… 설마 먹이한테 돈 다 쓰라고 하는 건 아니지!?”

끊임없이 쏘아지는 잔소리에 상우는 정신이 아찔했다. 엄마는 상우에게 카드를 쥐여 주며 인큐버스 명성에 먹칠하지 말고 다음번엔 네가 다 사라는 소리까지 했다.

엄마, 사장님 소비 습관에 맞추면 우리 집 파산해!

* * *

영화관 매표소 앞에서 재현을 기다리던 상우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폭 내쉬었다. 영화관은 좀 아니지 않냐고 매달려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든, 어디든’ 딱 두 마디였다. 그 말을 내뱉은 건 제 입이니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마구 말한 입술을 탁탁 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말로 영화관에서 사장님의 좆을 빨게 되는 걸까? 처음에는 일주일만 굶어도 눈이 돌아가 어디에서든 빨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정기적으로 영양분을 섭취하다 보니 배고픔의 역치가 올라간 것 같았다. 이제는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 자신이 없었다.

집을 나서기 전 영화관 성행위, 공연음란죄 같은 내용을 검색해 보던 상우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생각보다 영화관에서 떡 치는 커플이 많다는걸. 근데 다들 심야 영화나 관객이 둘밖에 없을 때 한다던데, 변태 사장님은 뭘 믿고 금요일 저녁 사람들이 우글우글한 시간에 영화를 보자고 한 걸까.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던데 그 정도 돈은 껌값이라는 건가? 상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찍 왔네?”

귀에 익은 목소리에 몸을 돌린 상우는 화들짝 놀랐다. 어우, 누가 영화 보는데 이렇게까지 정장을 쫙 빼입고 와? 다른 옷 없냐고 물어볼 건 상우지 재현이 아니었다. 적당한 캐주얼이라는 단어가 없는 사람처럼 넥타이에 베스트까지 갖춰 입고 나온 재현이 부담스러워서 상우는 눈길을 피했다.

재현도 상우를 바라보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체크무늬 셔츠는 아니었지만, 청바지에 후드티라니. 사람을 만나는 기본 자세가 덜 되어 있는 놈이었다. 이런 놈을 만나자고 두 시간이나 일찍 퇴근해서 온 것인가.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회의감이 피곤해 재현 역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뭐 볼래?”

재현의 물음에 상우는 미리 준비해 온 대답을 했다. 개봉한 지 한참 되었지만,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해 더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 정말 끝의 끝물을 타는 영화였다. 최대한 적은 관객들 앞에서 좆을 빨겠다는 심산이었다.

“영화 값은 제가 낼게요.”

상우의 말에 재현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리며 올라갔다.

“맨날 얻어먹었으니까요.”

쿵. 쑥스러운 듯 내뱉는 말이 재현의 심장을 또 한 번 때렸다. 저를 상대로 돈을 쓰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니. 제대로 된 연락 한번 안 하는 괘씸한 놈이었지만 기특한 것은 기특한 거였다.

재현의 씩 웃는 입꼬리를 보면서 상우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돈도 많은 사람이 영화 한번 공짜로 본다고 되게 좋아하네. 집에 개인 영화관이 따로 있을 것 같이 생겨서는. 하여간 있는 사람이 더 해요.

일부러 외진 자리를 예매한 상우는 광고가 끝나고 영화관이 어두컴컴해지자 긴장감에 침을 꼴딱 삼켰다. 예상한 대로 관객도 몇 없어서 앞뒤 양옆은 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쪽쪽 빠는 소리가 나면 다 들키지 않을까? 사장님이 빨라고 신호를 주는 건지, 아니면 눈치껏 제가 먼저 가서 빨아야 하는지 타이밍을 재 보는 사이, 시간이 잘도 흘렀다.

영화의 중반부가 될 때까지 재현은 아무 말이 없었다. 상우는 더욱 초조해졌다. 영화는 더럽게 재미없었고 재현도 마찬가지인 듯 중간중간 헛웃음을 내뱉었다. 상우는 저도 모르게 다리를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읏……!”

잔뜩 긴장한 탓에 재현의 손가락이 제 무릎을 톡 쳤을 때 상우는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왜 이렇게 다리를 떨어. 정신 사나워.”

귓가에 소곤소곤 들려오는 목소리가 잠들어 있던 상우의 주니어를 깨웠다. 왜 귀에다 바람까지 불어가면서 말을 하고 그런담! 간지러움에 목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야, 너…….”

재현도 상우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부산하게 다리를 떨던 놈이 경고 한마디에 갑자기 몸을 바들바들 떨며 저에게서 최대한 멀찍이 떨어진다? 그 꼴이 누가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딱 보였다. 정말 제 몸만이 목적인 걸까? 어떻게 이 정도로 재미없는 영화를 보면서 야한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재현은 기가 막혀서 상우를 빤히 바라봤다. 이 변태 새끼가 영화관에서도 좆을 빨 생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니 짜증이 밀려 왔다. 그리고 동시에 상우가 제 것을 빠는 상상이 같이 들었다.

확 짙어지는 달콤한 냄새에 상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지금인가, 지금이 사장님 자지를 빨 타이밍인가? 언제든, 어디든 가겠다고 말했으니 내뱉은 말은 지켜야 하는 게 아닐까? 오랜만에 음식 냄새를 맡은 위장도 난리가 났다. 빨리 음식물을 내놔! 이제 먹을 때야! 꼬르륵 소리가 시작되자 상우는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상우가 재현의 소매 끝을 붙잡으며 작은 목소리를 내었다.

“하.”

어둠 속에서도 확연히 색욕을 드러내는 상우의 얼굴에 재현은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게다가 저를 잡고 있지 않은 한 손은 뭘 감추려는지 후드티 밑자락을 꼭 쥐어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끌고 나가서 통통한 입술에다 자지를 물리고 싶은 충동이 벌컥 일어났다. 하지만 오늘은 안 된다. 오늘은 평범하게 만나 보려고 나온 날이었다.

“참아.”

재현의 간결한 명령에 상우는 붙잡고 있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단내는 점점 짙어지는데 참으라니. 이건 또 무슨 신종 플레이인가. 어차피 집중도 안 하고 있었긴 하지만 상우는 더더욱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화관을 가득 메우고도 남을 달달한 음식 냄새에 절어서 상우는 혼자 애태우며 영화가 얼른 끝나길 바라고 또 바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상우가 벌떡 일어섰다. 그에 비해 재현은 한껏 여유로운 표정으로 상우를 올려다보았다.

“저녁은 뭐 먹고 싶어?”

내용만 들으면 평범한 질문이었지만 상우는 저를 놀리는 거로밖에 안 들렸다.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정체도 밝히고, 정액 아니면 배가 안 찬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이건 제 말을 안 믿거나 아니면 믿으면서도 약 올리는 게 분명했다. 전자면 속이 터질 일이었고 후자면 진짜 나쁜 놈이었다.

씩씩거리며 저를 내려다보는 상우를 향해 재현이 빙긋 웃었다. 영화관에서 좆 한번 안 물려줬다고 이렇게 삐쳐 버리다니. 발정 난 개새끼가 따로 없다 생각하면서도 미묘한 우월감에 취해 웃음이 절로 나왔다. 몸만 노리는 거면 어떠하리. 둘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확실히 재현에게 있었다. 괜히 아래 직원한테 짝사랑이라는 둥 못들을 말까지 들어가면서 혼자 안절부절못한 것 같아 민망했다. 역시, 두 번 보고 세 번을 봐도 자신의 마음속엔 사랑의 ‘ㅅ’조차 없었다. 재현에게 필요했던 것은 매달리고 있는 주체에 대한 명확한 정의였을 뿐.

기분 좋게 일어선 재현이 상우의 어깨를 툭 쳤다.

“뭐 먹고 싶냐니까.”

능글거리는 재현의 물음에 상우는 머리 꼭대기까지 분노가 차올랐다. 아무리 자신이 완벽한 을이라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엿을 먹여? 처음 봤을 때부터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까지 치사한 사람일 줄 몰랐다. 도와주기로 선뜻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지.

이런 갑질은 어디에 신고해야 할까? 정액을 준다 약속해 놓고 모른 척했다고 신고하면 누가 믿어 주기라도 할까? 재현을 가만히 노려보던 상우가 몸을 돌려 영화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배고픔이고 나발이고 다 잊힐 만큼 자존심 상하고 짜증 났다. 어쩌면 배가 고파서 유독 평소보다 참지 못하고 짜증 난 것일 수도 있다.

어? 상우가 전처럼 저에게 매달려 한 번만 빨게 해 달라고 애원할 줄 알았던 재현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허둥지둥 상우를 쫓아 계단을 내려갔지만, 상우 역시 재현이 쫓아오는 걸 알고 더 발걸음을 빨리하는 바람에 간격이 잘 좁혀지지 않았다. 재현은 결국 영화관을 나와서 복도를 한참 걸어 나가고 나서야 상우를 붙잡을 수 있었다.

“너 왜 그래?”

정작 짜증 나게 만든 건 본인이면서 재현은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다. 그게 또 못마땅해져서 상우는 대답도 하지 않고 씩씩 숨을 몰아쉬며 재현을 올려다보았다. 흥행에 처참히 실패한 영화의 명성만큼 관객도 없었던 탓에 어느새 복도에는 재현과 상우만 덜렁 남겨져 있었다. 조용한 복도에 상우의 분노 가득한 숨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도와주신다면서요.”

“도와주고 있잖아.”

“제가, 그거…… 밖에 못 먹는 거 아시잖아요.”

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지 않기는 했지만 일단은.

“알지.”

천연덕스러운 재현의 답에 상우는 답답해서 제 가슴을 주먹으로 팡팡 쳤다.

“영화관에서 어떻게 빨아요……!”

상우의 목소리가 잔뜩 낮아졌다.

“누가 여기서 빨래?”

재현도 지지 않고 답했다.

“그럼 왜 이런 데서 보자고 하셨어요!”

얼굴까지 새빨개져서 말하는 상우의 꼴이, 재현은 어디서 많이 본 듯싶었다. 연애는 제대로 해 보지 않았어도 제 뜻대로 되지 않아서 화가 난 상대를 다루는 법은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상우가 귀여워 보여 재현은 픽 웃음이 났다. 재현의 웃는 얼굴에 안 그래도 분노 가득한 상우의 눈이 더 사납게 뜨여져 재현은 얼른 입술을 안으로 말고 웃음을 참았다.

재현의 기다란 손가락이 상우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평범한 데이트.”

그 말이 뭐 그렇게 놀라운지 분노로 일렁이던 상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 짐작도 못 했던 건가? 재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뭐라 말하려다가 말고 달싹거리기만 하는 상우의 입술을 보며 다시 한번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번엔 귀엽다보다 조금 더 나간 감정이었다. 사랑의 ‘ㅅ’도 없다고 했던가? 그 말은 취소였다. 이 기분은 사랑스럽다, 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얼굴만 예뻤지 키는 저만큼 크고 어깨도 떡 벌어진 사내새끼가 잔뜩 더 놀려 주고 싶을 만큼 관심이 갔다.

재현의 평범한 데이트라는 말에 상우의 머릿속에서는 엄마의 잔소리가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먹기 전에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데이트도 하면서 분위기를 끌어내야지! 하던 잔소리. 사장님은 나랑 분위기를 내고 싶었던 걸까? 그동안 내가 무심하게 정액만 받아먹고 돌아섰던 걸까? 미안한 마음과 함께 이러다 재현이 재미없다고 자신을 밀어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떠올랐다.

“이제 뭐 먹고 싶은지 정했어?”

재현이 혼자 안절부절못하는 상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상우도 제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굳혔다. 어떻게 얻어 낸 먹이인데 이대로 손에서 놔줄 수는 없었다.

“네.”

“뭐 먹을래?”

데이트, 손잡기 그리고 키스.

상우는 두 눈을 꾹 감고 재현을 향해 돌진했다. 쪽, 눈을 감은 탓에 입술에 부딪혔는지 인중에 부딪혔는지 아니면 턱에 부딪혔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상우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돌아온 반응은.

“시발, 너 미쳤어!?”

였다.

아니, 왜? 왜 욕을 해? 상우는 나름대로 용기를 내서 한 행동의 대가가 욕이라서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대뜸 욕부터 내뱉은 주제에 달큰한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 오기 시작해서 더 당황스러웠다.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 종잡을 수 없는 재현의 반응에 상우는 입을 떡 벌리고 맹한 얼굴로 재현을 바라봤다.

“이거…… 아니에요?”

멍청하게 묻는 상우에게 재현 역시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다지만 이 변태 새끼가 공공장소에서 저에게 뽀뽀할 줄은 몰랐다. 더 미치겠는 사실은 그 어린애 같은 스킨십이 뭐라고 반응하는 좆 대가리였다.

“시발. 이거 진짜 난 놈이네.”

칭찬인지 욕인지 알기 힘든 말을 중얼거리면서 재현이 상우를 지나쳐서 저벅저벅 걸어갔다. 상우는 제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어서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앞서 가던 재현이 휙 몸을 돌리고 신경질을 냈다.

“빨리 안 와!? 밥 먹겠다며!”

하여간 승질은. 상우는 사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재현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배가 고파서 빨리 걸을 힘도 없는데 좀 천천히 가지. 속으로 투덜투덜하면서도 재현을 놓칠세라 걸음을 재촉했다.

차에 타고 나서도 재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급 외제 차를 처음 타 본 상우는 차원이 다른 안락함에 혼자 속으로 감탄했다. 와, 내 인생에 포르세를 탈 날이 오네. 상우는 재현 덕분에 인생에 한번 할까 말까 한 경험들을 요즘 죄다 해 보고 있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재현이 크게 내쉰 한숨에 제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여기서 빨아요?”

영화관에서 빨아 재낄 각오도 했는데 짙게 선팅된 차 안이라면 양반이었다.

“아니.”

화가 날 게 뭐가 있다고 재현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하더니 시동을 걸었다. 그동안 곱게 좆을 대 준다 싶더니만, 오늘의 재현은 상우를 달달 볶아서 피곤하게 만들 생각인 것 같았다. 상우는 하는 수 없이 네, 하고 중얼거리며 안전벨트를 맸다. 아직 면허가 없어 운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금만큼은 상우도 알 것 같았다. 재현의 심기 불편한 마음이 운전에 고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상우는 본능적으로 안전벨트를 양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내려.”

한참을 아무 말도 안 하고 달리던 재현의 차가 널찍한 지하 주차장에 멈추었다. 재현이 하란 대로 내리기 위해 안전벨트를 풀던 상우의 손이 재현에게 덥석 잡혔다.

“아니야, 아직 내리지 마.”

아씨. 뭐 어쩌라는 거야. 내리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어져서 상우는 다시 꼼지락거리며 안전벨트를 채웠다.

혼란스럽기는 재현도 마찬가지였다. 꼴리는 대로 상우를 데리고 오긴 했는데 이대로 집에 들이면 정말 인생 인생이 꼬일지도 모른단 생각 때문에 멈칫하고 말았다. 사내새끼한테 자지를 물렸을 때부터 이미 망한 거 같긴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은 명백히 이 빌어먹을 변태 새끼한테 진심으로 욕정하고 있었다. 사실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을 뿐이다.

“너.”

“네?”

애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담기지 않은 냉랭한 목소리에 상우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지금 나 따라 내리면 진짜 끝이야.”

“네?”

상우는 조금 전과 똑같은 톤으로 네? 하고 답했다. 말 그대로 재현이 뭔 말을 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갔다. 따라 내리면 끝이라는데, 뭐가 끝인지 주어가 없었다. 제 말을 들어 주는 인수의 기분이 이랬을까. 새삼 반성하면서도 상우는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다.

가설 1. 밥 제공하는 게 끝이다. 이러면 따라 내려서는 안 된다. 제가 왜 속만 박박 긁는 재현을 참고 만나는데.

가설 2. 재현과의 관계가 끝이다. 이것도 곤란했다. 대안을 찾을 때까지는 재현이 유일한 에너지 공급원이었다.

가설 3. 상우의 목숨이 끝이다. 목이 졸리더라도 절대 내려서는 안 되는 상황. 손모가지가 부러져도 차 안에서 버텨야 했다.

가만히 생각하던 상우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사장님. 절대 안 따라 내릴게요.”

있으라면 밤새도록 차 안에서 대기할게요.

결연히 답하는 상우의 목소리에 힘이 빠져 재현은 픽 웃고 말았다. 여기서 따라 내리면 빼도 박도 못 하고 저랑 뒹굴어야 한다는 소리였는데. 좆만 빨고 홀딱 도망가거나 미적지근하게 구는 건 이제 끝이라는 말이었는데. 조그마한 머리통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진지한 표정을 한 채 절대 안 내리겠다고 말하는 통통한 입술이 못 견디게 귀여웠다.

“난 이제 내릴 건데. 알아서 해.”

그 말을 끝으로 재현이 차에서 툭 내려 버렸다. 그러더니 빙 돌아와 상우가 앉아 있는 보조석 문을 열었다.

끌어내려고 하나 싶어 상우는 아직도 매고 있는 안전벨트를 꽉 붙든 채 버텼다. 재현은 별 상관없다는 듯 몸을 숙여 달칵, 상우의 마지막 생명줄 같은 안전벨트를 풀어 버렸다. 잠시 주춤하던 재현이 고개를 돌려 잔뜩 긴장한 상우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지금 사장님이 먼저 뽀뽀한 거야? 깜짝 놀라기 무섭게 달콤한 냄새가 차 안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정액, 안 먹으려고?”

코앞에서 씩 웃는 재현의 얼굴에 상우는 숨을 잠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상황 판단에 미숙한 자지가 주인의 속도 모르고 벌떡거렸다. 지금 내리면 끝이라 그랬는데…… 안 그래도 무슨 생각인지 잘 모르겠는 재현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았다. 뭐가 끝인지도 모르면서 상우는 재현의 차에서 내리기 위해 발을 뻗었다.

우와, 한강 뷰! 부자 동네!

하고 감탄하기도 전에 상우는 재현에게 질질 끌려 들어갔다. 불도 켜지 않아 캄캄한 집안에서 상우는 어깨를 잡힌 채 재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희미한 윤곽만 보여서 그런지 재현이 무섭지 않았다. 점점 짙어지는 달콤한 냄새에 상우는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아무 말도 없어 색색 내쉬는 두 명분의 숨소리만 가득하던 곳에서 그 꼴깍 소리는 유독 크게 울렸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자 결국 상우가 먼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 저 이제…….”

진짜 빨아도 되나요?

질문을 끝까지 내뱉기도 전에 상우의 입술에 말캉한 것이 닿았다. 잠깐 닿았다 떨어졌던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말랑한 입술이 마주한 채로 가볍게 벌어졌다가 문지르며 닫혔다. 생긴 것과 달리 다정한 입맞춤에 상우는 밀어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왜 사장님은 이렇게 달콤한 키스를 하는 걸까? 수면 위로 떠올랐던 의문은 재현의 혀가 아랫입술을 간지럽혔을 때 다시 가라앉고 말았다.

“키스 처음 해 봐?”

다정은 개뿔. 답답한 듯 내뱉는 재현의 까칠한 목소리에 상우는 발끈했다.

“아니요? 저를 뭐로 보시고.”

아직도 어깨를 꽉 쥐고 있던 재현의 손가락이 올라와 상우의 턱을 살짝 쓸어내렸다.

“그럼 입 벌려.”

재현의 말에 상우는 청개구리처럼 입술을 더 꼭 다물었다. 뭐 하나 쉽게 가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래서 더 귀여웠다. 재현은 입술을 맞닿은 채로 픽 웃고 말았다. 저를 비웃는다고 생각했는지 상우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재현은 이미 닿아 있는 상태로 움찔거리는 상우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

아프게 깨물지도 않았는데 상우가 엄살을 부렸다. 재현은 벌려진 틈을 놓치지 않고 혀를 밀어 넣었다. 따뜻한 입안으로 파고든 살덩이가 상우의 혀를 살그머니 쓸어내리며 얽혔다. 재현의 몸에서 단맛이 나는 것은, 비단 정액만이 아니었다. 일주일씩이나 굶어서일까, 상우의 혀에 닿아 온 재현의 혀마저도 달콤했다. 휘핑크림처럼 달달하고 부드러운 감촉은 도저히 참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상우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재현의 목을 감싸 안았다. 이 달콤한 맛을 더 깊게, 더 많이 맛보고 싶어서 재현의 머리를 꽉 끌어안아 제 쪽으로 당겼다. 재현의 키스는 달아도 너무 달았다. 꿀에 푹 절인 것처럼 달콤한 맛을 놓치기 싫어 상우는 입속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재현의 혀를 따라 제 혀를 움직였다.

윗니의 뒤를 간지럽히고 볼 안쪽에서 미끌거리고. 따라가기 무섭게 도망 다니는 혀를 쫓아가며 상우의 고개가 점점 기울어졌다. 먹고 있는 것은 분명 자신인데, 잡아먹히는 듯한 키스에 상우의 성기가 발딱 일어났다. 그도 모자라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움찔거리며 온기를 찾아 비벼 댔다. 더 세게 문지르고 싶어 안달 난 아랫도리가 재현의 허벅지 위에 바짝 부딪혔다.

본능에 충실한 움직임을 느낀 재현은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만족감에 허벅지에 힘을 주어 상우를 자극했다.

“으응…….”

들릴 듯 말듯 작게 울리는 상우의 신음이 재현의 욕망을 들쑤셨다. 당장에라도 상우를 엎어 놓고 통통한 입술이든, 곧게 뻗은 콧날이든 아니면 전에 본 분홍빛 자지든. 어디에든 제 좆을 마구잡이로 짓누르고 이리저리 비비고 싶어졌다. 변태 새끼. 그렇게 속으로 욕을 해 놓고 변태 새끼한테 박고 싶어지는 저는 무엇인가. 재현은 날아갈 것 같은 이성을 간신히 붙들고 생각했다.

왜 이 커다랗고 딱딱한 놈이 이렇게 사랑스러워 보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변태 새끼라고 말하면서도 자꾸만 잘해 주고 싶어지는 걸까? 왜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귀엽다고 말해 주고 싶은 걸까? 재현은 잠시 입술을 떼고 상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멍하게 저를 마주 바라보는 예쁘장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깜빡깜빡할 때마다 상우의 짙은 쌍꺼풀이 풀어졌다가 다시 깊어졌다. 그 위에 자리 잡은 긴 속눈썹은 어둠 속에서도 홀로 음영을 만들었고, 오동통한 입술은 타액에 젖어 번들거렸다. 그래. 분명 얼굴은 제 취향이었다. 그렇다고 상우가 유연하고 부드러운 여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생각이 넘쳐 흐른 탓에 재현은 상우를 방치해 놓았다.

“사장님…….”

달콤한 먹이를 빼앗긴 상우가 잔뜩 조르는 목소리로 재현을 불렀다. 넓은 집 안을 가득 채우고도 넘치는 단내에 상우는 절여지다 못해 꿀통에 퐁당 빠진 기분이었다.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진동하는 맛있는 냄새에 상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이 배고픔이 사라질지 상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배를 채우게 해 줄 유일한 상대 역시 상우는 알고 있었다. 눈앞에는 먹음직스러운 만찬이 더없이 탐스럽게 놓여 있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색정에 건조해진 재현의 목구멍을 비집고 메마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떻게 하고 싶으냐니. 상우는 다 알면서도 물어보는 재현이 얄미웠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건 졸라 대는 것밖에 없었다.

“자지 빨고 싶어요…… 먹게 해 주세요…….”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는 상우가 귀여워 재현은 또다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안 돼.”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안…… 돼요?”

제정신이었으면 화가 날 말인데 이미 이성은 저 멀리 날려 버린 상우는 그저 서럽기만 했다.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아가며 상우가 재현의 옷깃을 꼭 쥐었다.

“정말 안 돼요……?”

그 모습이 뭐라고 귀엽게 느껴져서 재현은 상우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응. 오늘은 참아.”

상우의 허리를 가볍게 움켜쥐고 있던 재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상우는 재현이 이끄는 대로 집 가장 안쪽 방으로 끌려갔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넓고 푹신한 침대 위에 던져졌다. 던져졌다고 표현하기에는 아프거나 함부로 다루는 느낌이 부족했지만, 어쨌든 제 의지로 누운 것은 아니었다. 재현은 침대 위에 누워 멍하게 눈만 껌뻑껌뻑 감았다가 뜨고 있는 상우를 잠시 바라보았다. 멈추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였다. 그리고 멈추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는 상태.

재현의 손가락이 거칠게 넥타이를 풀었다. 재킷과 베스트를 벗어 던졌지만, 목 위까지 채웠던 와이셔츠까지 벗을 만큼 인내심이 깊지는 않았다. 결국, 와이셔츠를 벗는 것을 포기한 채 재현은 가만히 누워 있는 상우의 위로 올라갔다. 멍청한 표정. 나른하게 풀린 상우의 얼굴이 야해 보인다기보다는 멍청하게 느껴졌다. 재현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멍청한 얼굴이 귀엽다니. 한번 인정하고 나니 둑이 터진 듯 새어 나오는 감정이 우습게 느껴졌다.

“박상우.”

“네……?”

잔뜩 넋이 나가서도 꼬박꼬박 성실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후드티 안으로 손을 밀어 넣자 뜨거운 살결이 손에 닿았다. 그 감촉이 간지러워 상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후드티를 입고 와서 기본도 안 된 놈이라고 했는데, 만약 상우가 저처럼 셔츠를 입고 왔다면 분명 단추를 풀다가 벌컥 짜증이 났을 것 같았다. 상우의 촌스러운 패션감각에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고마웠다.

재현은 고개를 숙여 상우의 뺨에 입술을 눌렀다. 단정한 눈썹 위에도, 그리고 콧날을 타고 미끄러져 코끝에도 입술을 잠시 머물다 뗐다. 마음껏 거칠게 다뤄도 건장한 사내새끼이니 아프지 않을 텐데. 재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상우의 몸에 닿아 왔다.

“……상우야.”

속삭이듯 재현이 내뱉은 자신의 이름에 상우는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눈앞의 남자가 진짜 미친놈으로 보였다. 해가 서쪽에서 떴으면 떴지, 재현은 절대 제 이름을 이렇게 간지럽게 부를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처럼 좆만 물려 주고 정액만 제공하면 될 일을 성스러운 의식처럼 귀찮게 하나하나 절차를 밟아 나가고 있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봐야 하나? 아파서 먹이를 못 줄 상황인지 확인해 봐야 하는 건가? 뭔가 잘못 먹은 걸까? 오늘 만나서 같이 먹은 건 없으니 분명히 점심 먹은 게 잘못된 거 같았다. 앞으로 저를 만날 때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가능한 건강한 상태로 와 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상우는 아무 문제 없는 재현의 건강을 혼자 속으로 염려했다.

“대답 안 해?”

“아, 네네.”

혼자 생각에 빠져 버린 것을 나무라는 듯한 목소리에 상우는 얼른 대답했다.

“딴생각할 정신이 있나 봐?”

상우는 미친놈처럼 웃고 있다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고 흉흉하게 저를 노려보는 재현이 진심으로 무서웠다. 뭘 잘못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꾸지람을 듣는 바람에 상우는 도로록 눈알을 굴려 시선을 피했다.

“집중해.”

상우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왼쪽 옆구리를 배회하던 재현의 손가락이 슬그머니 위로 올라갔다. 여자와 달리 움켜쥘 살이 없는 밋밋한 가슴을 쓰다듬자 상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현을 올려다보았다. 흠. 남자 중에서도 젖꼭지로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재현의 손가락이 톡 튀어나온 상우의 왼쪽 유두를 살짝 꼬집었다.

“앗……!”

상우의 입술 사이로 작은 신음이 터졌다. 찌릿하고 올라온 감각은 쾌감이라고 절대 부를 수 없는 통증이었다. 하지만 오늘 맛이 제대로 간 사장님은 그 반응이 뭐라고 생각한 건지 씨익 웃으며 손가락에 더 힘을 실었다. 밀어내면 밥을 못 먹을까 봐 걱정이 돼 상우는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재현의 손가락에 젖꼭지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으읏! 사장님, 아파요…….”

잔뜩 인상까지 찌푸려 가며 아픔을 호소하는데 신이 난 상대는 빙글빙글 웃으며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기서 더 짙어질 수 있나 싶었던 달콤한 냄새가 한층 깊어졌다.

“아프기만 해?”

그럼 뭘 더해야 하나요. 상우는 정답을 알지 못해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재현의 손가락이 뭉근하게 작은 돌기 위를 문질렀다. 아픔 위로 덧그려지는 압력에 상우의 아랫배가 잔뜩 긴장했다.

원했던 답을 듣지 못해 짜증이 났는지 재현이 옷 밖으로 손을 빼냈다. 허리를 쓸어가며 빠져나가는 손가락에 상우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잠시. 후드티와 안에 받쳐 입은 흰색 티셔츠가 한 번에 훅 올라갔다. 그도 모자라 상우의 손을 억지로 끌고 와 턱밑까지 올라간 후드의 끝자락을 쥐게 만들었다.

“잘 잡고 있어.”

그러겠노라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재현의 뜨거운 숨결이 계속 어루만져져 예민해진 살갗에 닿자 상우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꼭 말아쥐었다. 곁눈질로 그 모양새를 본 재현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잘했어, 하고 작게 속삭였다. 아, 제발 거기에 대고 말하지 마세요. 이 말을 하려고 입을 벌리던 상우는 손가락과 달리 축축하고 부드러운 살덩이가 닿아오자 어깨를 흠칫 움츠리며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아으…….”

아주 작은 점에서부터 시작된 감각이 물결이 퍼지듯 동그랗게, 동그랗게 온몸을 타고 흘렀다. 아랫배가 간질간질해지고 재현의 다리와 얽혀 있는 상우의 다리가 배배 꼬였다. 해결할 수 없는 간지러움에 발가락이 꼼지락거리며 말려들어 갔다. 재현의 손가락이 메마른 살결을 가볍게 훑어 내리는 것조차 너무 날카롭게 느껴졌다.

재현도 상우의 반응이 아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좋아?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 타이밍에, 이렇게 숨을 할딱거리는 상대에게 굳이 확인할 정도로 촌스러운 남자는 아니었다.

바짝 곤두선 지점을 혀로 꾹 눌렀다가 살살 달래듯 주변을 핥으며 재현은 아까부터 어루만지던 상우의 왼쪽 유두만 끈질기게 괴롭혔다. 차라리 양쪽 다 만져 주면 이렇게까지 신경 쓰이지 않았을 텐데. 상우는 슬그머니 손가락을 내려 잊힌 것 같은 오른쪽 가슴을 손톱으로 꾹 눌렀다. 아니, 눌렀다는 표현보다는 긁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이상하게 간지럽혀지는 곳은 왼쪽인데 오른쪽 가슴이 긁고 싶어졌다.

“보기 좋네.”

재현이 상체를 일으키며 키득키득 웃었다. 재현이 하는 말을 제대로 따라가기 어려워서 상우는 인상을 찡그렸다.

“계속 개발하면 여기만으로도 갈 수 있다고 하던데.”

재현의 손가락이 상우의 왼쪽 유두를 아프게 꼬집었다. 안타깝게도 특정 상대를 개발할 기회는 없었지만, 삼십 년간 매체를 통해 보고 들은 정보력은 있었다.

“흐아아!”

간지러움 뒤에 찾아온 강렬한 자극에 상우의 입이 탁 벌어졌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상우의 격한 반응에 조금 심했나 싶었는지 있는 힘껏 압력을 가하던 손가락이 달래듯이 가슴 주위를 문질렀다.

“가슴으로만 가면, 상을 줄게.”

“상…… 이요?”

몽롱한 와중에도 상우는 저에게 이득이 되는 소리에 웅얼웅얼 답했다. 부자가 주는 상은 무슨 상일까? 상우의 심장이 기대감에 가득 차 콩콩 뛰었다.

“그래.”

“무슨 상인데요……?”

“뭐가 좋을까.”

재현이 싱긋 웃었다. 무서운 얼굴이랑 안 어울리게 다정한 미소였다.

“……물질적인 거요.”

제정신이었다면 절대 필터 없이 나오지 않았을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상우의 입술 사이로 툭 튀어나왔다. 차나, 집이나, 명품 같은 거요. 팔면 돈 되는 거요. 혼자 중얼중얼 말하는 상우를 내려다보며 재현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었다. 변태인 줄만 알았는데 속물이기까지 했네. 재현의 얼굴에 옅게 어려 있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귀엽다 생각했던 놈이 알고 보니 계산적이라 싫은 건 아니고, 그저 상우에게 제일 좋은 상이 돈이라는 게 실망스러웠다. 돈 말고 자지나 좆, 정액. 이런 대답이 나오길 기대했는데.

“돈이 좋아?”

“당연하죠.”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근데 왜 빨아 주는 대신 돈 달란 말은 안 했어.”

의문문임에도 끝이 올라가지 않는 싸늘한 목소리에 상우는 바르작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무표정한 재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우는 곤란한 듯 콧잔등을 찡그렸다. 아무리 제가 양심이 없어도 봉사활동하시는 분에게 돈까지 내놓으라고 할 생각은 없는데. 사장님은 저를 얼마나 염치없는 악마로 생각하는 거지.

“……저 좋자고 하는 건데 왜 돈을 받아요. 그 정도의 양심은 있어요.”

조금 퉁명스레 나온 상우의 말에 재현의 입꼬리가 싸악 올라갔다. 그러니까, 가슴으로 가는 건 몰라도 좆을 빠는 건 그냥 좋아해서 하는 거란 소리지? 재현은 어떻게 보면 상우보다 더 단순한 인간이었다. 한껏 가라앉았던 달콤한 냄새가 다시 톡톡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안 물려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예쁘게 말하면 어쩔 수 없지. 재현의 기다란 손가락이 상우의 뺨을 감싸 쥐었다.

또다시 다가온 재현의 입술이 부드럽게 상우의 입술 위로 겹쳐졌다.

“알겠어.”

가볍게 입을 맞춘 채로 재현의 손가락이 상우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이런 걸 몸정이라고 부르던가. 처음으로 누군가와 ‘여러 번’ 몸을 맞대 본 재현은 지금 당장 상우의 분홍색 자지를 손에 넣고 싶어졌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징그럽게 크고 붉은, 제 몸에 달린 좆이 아니라 뽀얗고 귀여운 것을 잔뜩 문지르고 싶었다.

벌어진 바지 틈새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재현의 손이 침범했다. 그러더니 뭐가 웃긴지, 지분대던 입술을 떼고 상우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또 씨익 웃어 댔다.

“벌써 쌌어?”

윽. 조루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동안 상우는 재현이 제 자지를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무던히 노력했었다. 잠깐 방심한 사이에 이렇게 걸리다니.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참 전부터 상우의 속옷은 질펀하게 싸지른 정액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언제 싼 거야?”

놀리듯 물어 오는 목소리에 상우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아 왜 그런 걸 묻고 그런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키스할 때부터 바짝 서 있었으니.

“설마, 아까 여기 만질 때?”

잔뜩 젖은 속옷 위를 배회하던 재현의 손가락이 상우의 왼쪽 젖꼭지를 꾹 눌렀다.

“으응…….”

자극에 약해진 가슴 위로 찌릿한 전류가 흘러들어 왔다.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말보다 신음이 먼저 흘러나왔다.

“약속한 대로 상 줘야겠네.”

만족감이 가득 서린 재현의 목소리가 위험하게 상우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상’이란 무엇인가.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기 위하여 주는 증서나 돈이나 값어치 있는 물건이다. 그러니까 상을 준다고 했으면 적어도 지갑은 꺼내 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재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몽롱한 머릿속으로 이게 아닌데, 이거 이상한데 생각하면서도 상우는 재현을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먹이에 길들여진 몸에서 힘이 픽픽 빠져나가는 바람에 어깨를 밀어 봐도 몸을 뒤틀어 봐도 소용이 없었다.

“아응……!”

제가 듣기에도 민망한 소리가 달뜬 숨결 위에 겹쳐졌다. 상을 준다며 위험하게 웃은 재현이 상우의 옷을 홀라당 벗기고 주저 없이 축축한 자지를 쥐었을 때부터 새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이 오락가락한데 집요하게 닿았다가 떨어지고, 떨어지기 무섭게 또다시 닿아 오는 재현의 입술 때문에 더 안달이 났다. 달콤한 먹이가 입안을 헤집다가 떨어질 때면 상우는 다급하게 재현의 목을 끌어안았고 재현은 보채지 말라고 타박하며 고개를 물렸다.

지금도 재현은 한 손으로는 상우의 성기를 쓸어내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상우의 뒷덜미를 붙잡은 채 입안을 헤집고 있었다. 이미 한번 사정을 마쳤기에 쾌감에 무뎌질 만도 하건만, 재현의 손안에 갇혀 있는 자지는 뜨겁다 못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잡고 흔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엄지손가락으로 요도 구멍을 비비고 가끔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는 재현의 손기술에 상우는 도저히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질척한 소리가 빨라지자 상우는 허리를 흠칫 거리며 사정감을 참아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상우가 애써 참고 있는 걸 알고 있는 건지 재현은 상우의 몸이 떨릴 때마다 입술을 맞닿은 채 작게 소리 내 웃었다.

아, 이대로 가다가는 먹이도 못 먹어 보고 에너지 고갈로 죽기 딱 좋겠다. 상우는 무언가 해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상우의 손이 덥석 재현의 것을 움켜쥐었다. 아직 옷도 제대로 벗지 않아 바스락거리는 정장 바지의 옷감 위로 한 손에 다 들어오지 않는 커다란 자지가 느껴졌다.

“왜?”

아랫도리를 붙잡힌 사람이 할 말치고는 너무 짧고 담백한 말을 재현이 내뱉었다. 왜냐고 하셨나요? 제발 밥 좀 주세요! 거지가 구걸하는 마음으로 상우는 재현에게 조를 수밖에 없었다.

“이거 주세요…….”

“이거가 뭔데?”

아씨. 스무고개 하는 것도 아니고.

“사장님 거요…….”

“내 거, 뭐?”

빙글빙글 얄밉게 웃는 얼굴을 밀어 버리고 싶었지만, 상우는 꾹 참고 정확한 단어를 끄집어 냈다.

“사장님 자지요. 사장님 자지 갖고 싶어요.”

이 말을 하는 자신도 진심으로 변태 같은데 이 말을 듣고 헤벌쭉 웃는 재현은 더 짜증이 났다.

반면 재현은 드디어 듣고 싶은 말을 들어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마음이었다. 그래. 우리가 무슨 사이인데, 상이라고 하면 돈이 아니라 자지여야지.

“상은 돈으로 달라며.”

재현의 말에 상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지금 상으로 준다는 게 정액인 거야? 먹을 거 가지고 장난치는 거야? 할 말을 잃은 상우가 색색 숨을 몰아쉬며 재현을 빤히 바라봤다. 돈도 정액도 전부 가진 비겁한 인간이 얄밉게 웃으며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분노에 혼자 파르르 떨어 대던 상우가 머리를 쥐어짜 내서 반격의 말을 찾았다.

“둘…… 다. 둘 다 주세요.”

그리고 그 말은 재현에게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혼자 키득키득 웃던 재현이 고개를 숙여 상우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귀엽기는.

“욕심쟁이네.”

뭐라고 한마디 반박해야 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상우는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계속 기어올랐다간 돈은 둘째치고, 영양분마저 못 받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자꾸 웃는 얼굴로 다정하게 구는 재현 때문에 말문이 턱턱 막혔다. 여태까지 보아 온 재현은 잘생김보다 무서움이 더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었는데, 오늘은 유난히 잘해 주고 자주 웃어서 그런지 잘생긴 얼굴이 무서움을 앞질렀다.

내가 이렇게 얼굴을 밝히는 놈이었나. 그보다 남자 얼굴을 밝히면 그거야말로 게이 아닌가. 혼란에 빠진 상우를 내버려 둔 채로 재현은 몸을 일으켜 옷을 벗었다. 툭툭 풀어지는 와이셔츠 단추 사이로 재현이 열심히 관리한 근육이 슬그머니 드러났다. 와. 돈 많고 잘생겼는데 몸까지 좋으면 반칙 아닌가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제 몸을 훑는 상우의 모습에 재현은 속으로 씩 웃었다. 고작 스무 살 먹은 사내새끼 보여 주려고 죽어라 운동해서 만든 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좋아해 주시니 뿌듯함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몸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각고의 노력이 있었는지 상우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근육 하나 없이 평평하고 납작한 상우의 배만 봐도 닭가슴살과 단백질 셰이크로 목숨을 연명하며 혹사하듯 쇠질 하는 건 상상도 못 하겠지.

“만져 볼래?”

상우의 눈빛에서 레이저가 나왔다면 재현은 이미 배가 뚫려서 죽어 있을 것이다. 그 눈빛을 모른 척하기 어려워 재현이 묻자 상우가 홀린 듯 손을 내밀었다.

일부러 길을 낸 것처럼 조각나 있는 복근은 상우의 생각보다 더 단단했다. 힘주어 꾹 눌러봐도 눌리기는커녕 제 손가락이 튕겨 나올 것 같았다. 이런 게 진정한 사나이의 몸이구나. 새삼 재현이 존경스러워졌다.

재현은 상우의 눈빛을 한껏 만끽하며 바지와 드로즈를 한 번에 벗어던졌다. 벌떡 일어선 재현의 좆이 상우를 향해 꺼떡거리며 인사했다. 가로막고 있던 천들이 사라지자 달콤한 냄새가 방 안을 밀도 높게 뒤덮었다. 상우의 목울대가 꼴깍 눈에 띄게 움직였다. 당장 입안에 삼켜 버리고 싶어서 다리가 절로 덜덜 떨렸다.

“사장님…….”

상우가 재현을 불렀다. 굶주림을 참는 것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흐리멍덩하게 풀린 상우의 눈을 보아하니 지금 아무런 이성적 판단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박상우. 너 지금 나랑 뭐 하고 있는지 알아?”

상우의 고개가 주억거렸다. 네, 당연하죠. 저 지금 밥 먹을 거예요. 사장님의 먹어도 된다는 허락만 기다리고 있어요. 제 좆을 바라보며 입맛을 냠냠 다시는 상우를 가만히 응시하던 재현이 손을 들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지나친 손가락이 상우의 귓바퀴를 가볍게 쓸었다.

“흣……!”

상우가 몸을 움찔했다. 재현의 몸이 기울어지고 예민한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너 이제 나랑 섹스할 거야.”

재현의 말에 상우가 화들짝 놀랐다. 토끼같이 똥그랗게 놀란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게 정말 상상조차 못 한 말을 들은 표정이었다. 재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상우의 앞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길에 따라 드러난 이마에 입술을 꾹 눌렀다가 뗄 때까지도 상우는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재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끼리 어떻게 하는 줄 알아?”

재현의 나지막한 속삭임은 답을 몰라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상우를 놀리기 위한 질문이었다. 전에 보았던 게이 포르노를 떠올린 상우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렸다. 남자끼리 어디에 박는지야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생생한 살색의 실사로 봤을 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그 작은 근육이 커다란 좆을 물고 있는 모습은 마치…… 에일리언이 나오는 영화에서 인간의 배를 뚫고 반쯤 튀어나온 새끼 외계인처럼 흉측하고 기괴했었다. 지금 그 공포 호러 영화를 나랑 찍겠다고?

상우는 살기 위해서 고개를 저었다. 누가 봐도, 딱 봐도 자신이 사장님의 거기에 좆을 처박을 일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남는 건 제가 처박히는 건데…… 눈알을 슬쩍 굴려 재현의 자지를 바라본 상우가 다시 한번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상우의 꿈은 잘 사는 게 아니라 오래 사는 거였다. 몸 건강히 오래오래.

두 번째 만난 날 혹시 제가 재현의 엉덩이에 박았냐고 먼저 물어봐 놓고, 다 알면서 모르는 척 고개를 젓는 상우가 귀여워서 재현은 픽 웃었다.

잘생긴 얼굴로 웃어 대도 아무 소용 없다, 이 악마야! 상우는 진짜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재현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고개를 저었다. 너무 흔들어 대서 머리가 조금 어지럽고 승모근이 뻣뻣해질 정도였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재현의 손가락이 슬금슬금 척추뼈를 타고 내려왔다. 꼬리뼈가 살살 문질러지는 감촉에 상우가 끙끙 앓는 소리를 내자 그 손가락은 차마 민망해서 명칭을 부르기도 힘든 곳까지 파고들었다.

“사장님―!”

상우가 파드득 놀라며 재현의 어깨를 밀었다.

“왜?”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왜’라는 말이 나올까? 상우는 재현의 팔목을 붙잡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흠. 어떡한담. 이대로 억지로 넣으면 강간이다. 모처럼 제 자지를 예뻐해 주는 상대를 만났는데 한번 자 보자고 영원히 작별 인사를 할 수는 없지. 재현은 무슨 말로 설득할까 고민하다가 눈꼬리까지 휘어 가며 깊게 웃었다. 어릴 때부터 재현이 공부는 못했어도 잔머리는 기똥 차게 잘 돌아갔다. 부모님께 하도 많이 혼나서 개소리로 핑계를 대는 데는 도가 텄다.

“좌약 알지?”

“……네.”

갑작스러운 좌약 타령에 상우는 눈썹을 찡그렸다. 설마 좌약도 들어가니 자기 좆도 들어갈 거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세우지는 않겠지? 상우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재현의 무식하게 커다란 자지를 힐끔 쳐다봤다. 다시 봐도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좌약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좌약을 왜 쓰는지 알아?”

아, 제발 하고 싶은 말은 빙빙 돌리지 말고 시원하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아기들은 약을 못 삼켜서요……?”

재현의 손가락이 상우의 가슴팍을 꾹 눌렀다. 그러더니 간지럽히듯 미끄러져서 배꼽 위를 한 번 더 눌러 왔다.

“위나 장에서 흡수되는 약은 간에서 한 번 걸러져서 약효가 떨어져.”

배꼽 위에 있던 재현의 손가락이 또다시 여행하듯 상우의 몸 위를 미끄러졌다. 도착지는 엉덩이 사이에 자리 잡은 오밀조밀한 구멍 위였다.

“직장에서 흡수되는 약은 간을 거치지 않아서 효과가 더 좋다더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저 지금 하나도 안 아픈데. 상우가 볼멘소리를 내자 재현이 으이구, 멍청이, 하며 상우를 타박했다.

“너 정액으로 영양분 섭취한다며. 정액도 먹는 거보다 직장으로 흡수하는 게 더 효과 직빵이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완벽한 논리였다. 상우도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는지 입이 딱 벌어졌다. 이런 상황을 두고 뭐라고 하더라. 그래,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고 한다 요놈아! 재현은 아무 말도 못 하는 상우를 바라보며 피실피실 웃었다.

“자, 이제 섹스해도 되지?”

재현은 스스로가 굉장히 기특했다. 물론 예전부터 자신의 비위가 좋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 좋은 비위를 특정 상대에게 온전히 쏟아부어 볼 수 있다는 만족감이 재현을 기분 좋게 만들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남의 뒷구멍에 손가락을 처박고도 좆을 세우고 있게 될 줄이야.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은 재현은 제 앞에 무릎으로 서 있는 상우의 허리를 더 꽉 끌어안았다. 고개를 들자 인상을 잔뜩 찡그린 상우의 뽀얀 얼굴이 재현을 맞이했다. 그 표정은 싫어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할딱거리는 숨을 애써 참아 내느라 생긴 것이었다. 재현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는지 간간이 터져 나오는 짙은 한숨이 달큰한 신음을 품고 있었다. 전립선을 눌러 주기 전까지는 분명히 이상한 기분일 텐데. 재현의 변태 새끼는 넣은 것만으로도 느끼고 있는지 얼굴에 색기가 그득그득 차올라 뚝뚝 떨어졌다.

윤활유가 묻은 콘돔을 손가락에 끼운 탓에 상우의 아랫구멍을 헤집을 때마다 찌걱찌걱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처음에는 싫다고 파닥거리던 상우도 몇 번 입을 맞추고 나니 온순해졌다. 오히려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도리질하며 매달리는 통에 재현은 입술이 쓰라릴 정도였다.

“아윽, 흣…….”

전혀 섹시하지 않은 목소리로 낑낑대는 게 갓 태어난 강아지 같아서 재현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나저나 그놈의 전립선은 어디에 있담.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지만 해 본 적이 없으니 실험자 정신으로 마냥 쑤시기만 하는 재현은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홀라당 벗겨 먹지 않으면 또 언제 섹스를 하겠노라 마음을 먹을지 몰랐다. 아, 물론 상우가 아니라 재현 자신이. 이게 다 상우가 영화관에서 어설프게 입술 박치기를 한 탓이었다.

“으응…… 사장님…….”

상우가 열기로 가득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재현이 왜 부르냐는 듯 인상을 찡그리자 상우가 칭얼거렸다.

“키스, 해 주세요…….”

“박상우. 가만히 좀 있어 봐.”

전립선인지 뭔지 얼른 찾아야 하는데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치근덕대며 방해하는 상우에게 재현이 퉁명스럽게 답했다. 벌려 주지도 않는 입술을 개처럼 할짝거리는 상우를 내버려 둔 채 재현은 상우의 몸 안에 박힌 손가락을 빙글 돌렸다.

“읏……!”

매끄러운 내장 안 여기저기를 쿡쿡 쑤시던 어느 순간, 상우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 떨렸다. 여기인가? 다른 곳보다 조금 도톰하게 부풀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누르니 안에 동그란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확인하기 위해 재현이 같은 곳을 힘을 주어 꽉 눌렀다.

“흐아앙!”

“흐아앙?”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신음이었는데 그게 뭐가 재밌다고 빙글빙글 웃으며 굳이 따라 하는 건지! 상우는 코앞에 있는 재현의 머리통을 콱 들이박고 싶어졌다. 그러나 들이박고 싶은 것은 생각뿐, 정작 움직여야 할 몸은 흐물흐물 연체동물처럼 풀어지고 있었다. 재현이 어딘가를 콕 누르면 배 속이 짜르르 울리고 그 감각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허벅지가 저절로 후들거리고 한 박자 늦게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소름 때문에 상우는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러다 뒤로 넘어가서 허리가 꺾이든 앞으로 넘어져서 재현에게 박치기 하든 둘 중 하나는 할 것 같아 상우는 다급하게 손을 뻗어 재현의 목을 끌어안았다.

“으읏! 사장님……! 흐응, 아!”

“응. 왜?”

재현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왜 불렀냐고 물었는데도 상우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자꾸만 사장님, 사장님, 하고 저를 불러 댔다. 이제는 재현의 손가락이 상우의 구멍을 헤집는 건지 아니면 상우의 구멍이 재현의 손가락을 먹어치우는 건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상우가 허리를 흔들어 댔다.

제대로 만져 주지도 않은 상우의 자지 끝에서는 맑은 물이 툭툭 떨어져 재현의 벗은 배 위를 적시고 있었다. 역시 젊어서 그런지 아까 싸 놓고도 금방 벌떡벌떡 일어서는 뽀얀 좆 대가리가 귀여웠다. 상우의 허리를 감고 있던 재현의 손이 풀어지고 기다란 손가락이 톡, 상우의 자지를 건드렸다.

“으응―!”

“콧소리 좀 그만 내.”

재현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상우가 재현의 목을 끌어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재현의 목뼈가 부러져서 죽었으면! 아니지. 저절로 떠오른 생각을 상우는 얼른 고개를 저으며 떨쳐 냈다. 그러면 유일한 먹이 공급원이 사라지는 건데. 그건 아주 곤란했다. 아무리 그래도 먼저 자극해 놓고 소리조차 내지 말라 하는 재현이 너무 미웠다.

“읏, 사장님…… 나빠요.”

풋. 재현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장님 나빠요? 그거 옛날 옛적에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유행어 아닌가? 하지만 재현과 십 년의 거리가 있는 상우는 이 사람이 왜 욕먹고 웃는 건지 몰라 고개를 젖혀서까지 재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지금 나 웃기려고 한 거야?”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재현을 바라보며 상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쁜 걸 나쁘다 한 게 어디가 웃긴가? 재현이 진짜 어디 아픈 건가 싶어 상우는 콩, 이마를 부딪쳤다. 아닌데. 열은 안 나는데. 상우의 심각해진 표정을 보고 재현은 깨달았다. 아, 이게 바로 세대 차이인가.

“너, 이거 몰라?”

“네……? 뭐요?”

뭘 몰라야 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하는 상우를 보며 재현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괜히 웃었다가 아재력만 뽐내고 얻은 게 없었다. 심술이 난 재현의 손가락이 상우의 전립선 위를 쿡 찍어눌렀다.

“하읏―!”

이제는 손가락 세 개가 자유자재로 움직일 정도로 풀린 상우의 구멍에서 재현은 천천히 손가락을 빼냈다. 얼마나 풀어 줘야 하는 건지 모르기도 했고, 잔뜩 풀어 줘 봤자 제 자지를 삼키기에는 좁을 게 뻔해서였다. 어차피 잘 들어가지도 않을 거, 상우의 체중에 도움이라도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재현은 기승위를 선택했다.

꼼지락거리며 손가락에 씌우고 있던 콘돔을 빼낸 재현이 자신의 손에도 간신히 잡히는 자지를 붙잡고 상우의 구멍 위에 문질렀다. 입이 아닌 구멍에 박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러고 보니 상우를 만난 이후로 다른 구멍은 먹은 적이 없었다. 공을 들여 풀어 준 상우의 아래 입이 빠끔빠끔 움직이며 닿아온 귀두 끝의 살을 씹어 댔다.

“사…… 사장님!”

상우도 제 엉덩이에 닿은 뜨거운 살덩이가 뭔지 눈치채고는 다급하게 재현을 불렀다. 얼른 처박고 싶은데. 재현은 눈썹을 찌푸리며 상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긴장이 역력한 표정이 언제나, 누구든 그래 왔듯이 곧 고통에 일그러질 것을 알기에 재현은 조금. 아주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콘돔, 안 쓰실 거예요?”

어차피 후장이 뚫리는 건 기정사실로 된 것 같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보고자 상우가 콘돔 타령을 했다.

“이거 진짜 바보인가…….”

잘 나가다 저지당한 불만족에 안 그래도 매섭게 상우를 노려보던 재현의 눈빛이 더 사나워졌다. 무슨 말만 하면 바보 멍청이래. 상우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정액 먹어야 한다며.”

위로든 아래로든. 재현이 좆을 붙잡지 않은 손으로 상우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상우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리고 내 자지에 맞는 콘돔은 따로 준비해야 해.”

물론, 침대 옆 서랍 한구석에 항상 구비해 놓기는 하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상우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이제 진짜 넣어도 되겠지. 재현의 좆이 상우의 오밀조밀한 구멍 틈새를 꾸욱 눌렀다.

“사장님!”

고작 닿아 온 것만으로도 그 크기가 가늠돼서 상우는 다시 한번 허겁지겁 재현을 불렀다.

“뭐, 또.”

재현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쓸데없는 말이면 이제 들어 주지도 말고 처박아야지.

“저…… 사실 처음이에요…….”

당연히 알고 있는 소리를 수줍게 고백하는 상우의 모습에 재현은 어처구니가 없어 픽 웃었다.

“응. 나도 처음이야.”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제 더 들어 줄 가치도 없다는 듯 재현의 양손이 상우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사내새끼 엉덩이에 처박는 건 재현도 처음이니,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래도 공들인 보람이 있게 부드럽게 풀린 구멍이 차근차근 벌어지며 재현의 귀두 끝을 삼키기 시작했다.

“으으…….”

재현의 목을 꽉 끌어안은 상우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귀두의 반도 못 삼킨 구멍이 움찔거리며 안에 든 것을 뱉어 내려고 들었다. 가만히 두면 밀어내는 힘에 그냥 뽁, 소리를 내며 빠질 것 같아서 재현은 혼자 마음의 준비를 했다. 힘을 빼라고 살살 달래 가면서 진입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품 안의 청개구리가 그 말을 들을 리 없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가슴을 부풀린 재현이 허리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어 상우를 억지로 앉혔다. 헬스장에서 배운 호흡법을 섹스할 때 쓰게 되다니. 허벅지를 잔뜩 굳히며 버텨 대는 상우의 몸이 결국 힘의 차이를 이기지 못했다.

“아흐윽―!”

이게 인간의 몸으로 가능한 거야? 몸이 앉혀질수록 빠듯하게 넓혀지는 구멍이 찢어질까 봐 무서워서 상우는 재현을 끌어안은 팔에 더 힘을 주었다. 일어나서 도망가고 싶은데 허리를 잡은 재현의 손 때문에 꼼짝없이 흉기 같은 자지를 몸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좆에서 제일 굵은 부분이 귀두 아닌가? 이쯤 앉았으면 더 얇은 부분이 나올 만도 하건만, 벌어지기 시작한 구멍은 다물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으……!”

숨을 내뱉을 때마다 구멍이 넓혀지는 게 느껴졌다. 진짜 한계예요! 이제 찢어져요―! 재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었지만, 상우는 할딱할딱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후…… 생각보다 힘드네.”

고통스러운 것은 재현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와 잘 때도 집어넣는 게 고생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조이는 구멍은 처음이었다. 상대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대로 포기하고 빼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재현에게는 상우를 아끼고 배려할 마음이 없었다.

“박상우. 참아.”

재현이 다시 한번 숨을 들이마셨다. 아까도 재현이 들숨을 쉬고 나서 손에 힘을 줬던 게 생각나서 상우는 흐어엉, 하며 끌어안은 재현의 목에 이를 세웠다. 시발. 맨날 나만 아파. 맨날 나만 고통받아! 평소처럼 곱게 빨게 해 줬으면 똥구멍이 찢어질 일도 없는데! 너도 아파 봐라, 이 자식아!

재현이 아까보다 거센 힘으로 상우를 앉히면서 동시에 제 허리를 위로 튕겨 올렸다.

“악!”

상우의 짧은 비명과 함께 구멍이 드디어 귀두를 삼키고, 기특하게도 재현의 자지를 무려 반 가까이 먹어치웠다.

“으읏…… 흑…… 찢어져…… 하윽…….”

재현이 잘게 허리를 흔들며 상우의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귓가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미 넣었으니 찢어져도 할 수 없었다. 끝까지 하는 수밖에. 재현의 자지가 점점 내벽을 밀고 들어갈수록 상우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으응, 하아…….”

어쩐지 달콤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재현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손가락을 뻗어 좆을 집어삼킨 구멍을 더듬어 봤다. 주름 하나 없이 매끈하게 펼쳐진 구멍을 만지던 손가락을 확인한 재현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빨갛게 묻어나는 건 없었다. 재현도 신기하다 생각하며 상우의 등을 툭툭 쳤다.

“야, 팔 풀어 봐.”

안 찢어졌다고 확인시켜 줄 생각이었는데. 드러난 상우의 얼굴을 본 재현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새끼 표정이 왜 이래…….”

재현은 속으로 삼켜야 할 말을 저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당연히 고통에 잔뜩 눈물 콧물 쏟아 내고 있을 줄 알았던 상우의 얼굴은 예상과 달리 쾌락에 잔뜩 젖어 있었다. 멍하게 풀린 화려한 눈매는 욕망에 젖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반쯤 벌려진 통통한 입술은 흘러내린 타액에 젖어 번들거렸다. 재현은 지금 상우의 얼굴과 비슷한 표정을 본 적이 있었다. 싸구려 성인 만화에서나 보던 표정이었다. 하아 하아, 상우가 밭은 숨을 내쉴 때마다 자지를 물고 있는 아래 입도 오물거렸다.

“괜찮아?”

재현은 드디어 상우의 상태가 걱정됐다. 억지로 처박아서 정신을 놓고 완전히 미쳐 버린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으…… 사장님…….”

“응. 그래그래. 얘기해 봐.”

재현은 너무 놀란 나머지 상우의 등허리를 달래듯 쓸어 주며 대꾸했다. 전에 없이 다정하고 염려 가득한 목소리였다.

“이거…… 뭐예요……? 으응…… 이거 뭔데 이렇게 좋아요……?”

상우가 웅얼웅얼 내뱉은 말을 재현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아무리 재현이 망나니라도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었던 적은 없었는데. 재현의 눈앞에 순간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이 스쳐 지나갔다. 백제그룹 삼남, 강제적 성관계로 스무 살 어린 청년의 인생을 망쳐.

“배 속이 가득 차서…… 흐읏…….”

뿌리 끝까지 자지를 삼키지 못한 게 아쉬운지 상우의 허리가 들썩거렸다. 한 번도 끝까지 넣어 본 본 적이 없어서 재현은 상우가 하는 행동들이 하나하나 모두 걱정이 됐다. 정말로 뉴스에 실리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것도 기묘한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면 아무리 저를 아끼는 부모님이라 해도 조용히 덮어 주시지 않으리라. 재현이 상우의 움직임을 막으려고 등을 받치고 있던 손을 내려 허리를 잡자 상우의 상체가 뒤로 기울어졌다.

“하으으―!”

그 바람에 괴물같이 큰 재현의 성기가 상우의 내장을 콱 짓눌렀다. 근육이 없이 말랑한 상우의 배가 조금 튀어나온 게 제 성기 때문인 것 같아 재현은 호다닥 상우의 몸을 끌어안았다. 내장 파열이라는 단어가 재현의 머릿속을 스쳤다. 아, 제발. 차라리 김이라도 새서 자지가 흐물흐물해지면 좋을 텐데 물리적인 압력에 기분이 좋아진 제2의 생명체는 도무지 수그러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쿵쾅쿵쾅. 끌어안은 상우의 심장이 거세게 박동하는 소리가 재현의 귓가를 울렸다. 재현의 머리를 끌어안은 상우는 안달이 나는지 재현의 머리카락 위에 쪽쪽, 새가 쪼는 것처럼 입술을 눌러 댔다.

“사장님…… 이게 섹스예요? 하으, 너무 좋아요…… 사장님 자지 너무 맛있어.”

재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참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들리는 삼류 포르노에서 나올 법한 대사 때문에 자제력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미친. 아직 흔들지도 않았는데 자지가 맛있다니. 재현은 저를 사랑으로 키워 주신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이 못난 불효자를 용서해 주시고, 부디 문제가 생기면 돈을 써서 재빨리 무마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상우의 뒤통수를 손으로 감싸 안은 채 재현이 몸을 일으켜 상우를 침대 위로 천천히 눕혔다. 쾌감에 바르작거리는 몸이 선명하게 드러나자 한계까지 부풀어 선액을 질질 흘리는 상우의 자지도 그대로 노출됐다. 주인을 닮아 참을성 없이 보채는 귀여운 좆 대가리는 조금만 만져 줘도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분명히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주정뱅이 변태 새끼였는데. 지금 재현의 좆을 꽉 깨물고 할딱거리는 상우는 주왕을 폭군으로 만들고 은나라를 무너뜨린 세기의 요부 달기보다 더 위험해 보였다.

“후……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맛이 가면 어떡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같이 고동치는 심장 소리를 들키지 않으려 재현은 일부러 무뚝뚝하게 말을 뱉었다. 하지만 뻗어 오는 손끝은 말과는 달리 다정하게 상우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그게 간지러웠는지 상우의 콧잔등이 찡그려졌다. 못난이같이 구겨지는 것도 귀엽게 보여서 재현은 손가락으로 상우의 코를 톡 건드렸다. 열심히 태연한 척했지만, 재현도 이제 한계였다.

“박상우, 꽉 잡아.”

재현이 몸을 숙이고 상우의 팔을 들어 제 목에 둘러 주었다. 적당히 하다 말 생각은 없으니 적어도 신체 일부는 내주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재현이 더 고개를 숙여 상우의 뺨에 입술을 문질렀다. 귓가에 울리는 상우의 숨소리가 너무 가빠서 재현의 정신도 점점 혼미해졌다.

“끝까지 박아도 돼?”

적어도 합의 하에 이루어진 유혈 사태라고 둘러대기 위해 재현은 미리 상우의 동의를 구했다.

“으응…….”

긍정의 대답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재현의 자지가 상우의 내벽을 힘껏 벌리며 처박혔다.

“아흑―!”

상우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한 번에 넣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는지 재현이 이를 악물고 허리를 앞뒤로 잘게 움직이며 조금씩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재현은 더는 들어갈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 시발.”

제 좆을 끝까지 집어삼킨 상우의 구멍을 손으로 더듬은 재현이 작게 욕설을 중얼였다. 울컥, 감정이 북받쳤다. 할 수만 있다면 몸을 일으키고 난생처음 마주한 이 장면을 소중히 사진으로 남겨 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재현의 핸드폰이 저 멀리 내던져 놓은 재킷 안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좆 뿌리를 힘껏 조여 오는 상우 때문에 사정감이 너무 빠르게 치솟았다.

“괜찮아?”

쓸데없는 감상에 빠져 있던 재현이 정신을 차리고 상우에게 물었다. 죽은 거 아니지?

재현의 무식하게 큰 자지를 받아들이느냐 밭은 숨만 색색 내쉬며 널브러져 있던 상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상했다. 분명히 인간의 몸으로 소화할 수 없는 크기였는데, 내장을 억지로 벌려 가며 들어오던 어느 순간부터 상우는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방 안에 가득 들어찬 달콤한 냄새조차 잊을 만큼 넋이 나갔다.

아까 재현이 손가락으로 쿡쿡 찌를 때 느꼈던 쾌감과 다른 감각이 배 속부터 빠르게 번져 나갔다. 잔뜩 벌어지고 빠듯하게 채워져서 죽을 것 같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한 포만감에 두 번 죽을 것 같았다. 사장님 좆이 너무 커서 위까지 닿은 건가. 상우는 멍하게 비상식적인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재현의 허리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싹 날아갔다.

“아흐, 읏! 사…… 장님……! 하악, 흐……!”

재현이 움직일 때마다 상우의 자지가 울퉁불퉁한 복근 위에 문질러졌다. 그 감촉이 유독 미끈미끈한 게 언제인지 모르지만 이미 한차례 정액을 내뿜은 것 같았다. 사정해놓고도 쉴 새 없이 자극되는 안쪽이 징징 울려 대서 또다시 성기가 단단해졌다. 처음에는 상우를 배려라도 하는 건지 천천히 움직이던 재현의 허리가 점점 빨라졌다.

기둥의 반쯤 빼냈다가 다시 끝까지 박아넣고, 또다시 빠져나갔다. 상우는 재현의 자지에 솟아난 핏줄까지 느낄 수 있었다. 신경이 모여 있어 예민한 입구가 긁힐 때마다 엉덩이 근육이 단단하게 굳어지며 좋아 죽겠다고 경련을 했다. 내벽을 한계까지 벌려서 그런 걸까. 재현이 움직일 때마다 아까 자극하던 그 지점이 굳이 찾아내서 찔러 주지 않아도 계속 문질러졌다.

상우는 온몸을 휘젓는 쾌감이 무서워졌다. 계속해서 정액만 내뿜다가 미라처럼 삐쩍 말라서 죽을 것 같았다.

“힉, 흐아! 죽을 거…… 앗앗, 죽을 거 같아요……!”

입만 벌리면 튀어나오는 신음 사이로 상우가 최선을 다해 제 의견을 피력했다. 상우의 다급한 목소리에 재현이 자지를 끝까지 넣은 채 움직임을 멈췄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박아 대고 싶었지만 처음 할 때 잘해 줘야 두 번째도 있고 세 번째도 있을 것 같아 본능을 억지로 눌렀다.

“하으으…… 저, 진짜…… 죽어요…….”

상체를 세우고 바라본 상우의 얼굴은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은 아니었다. 재현은 씨익 웃으며 허리를 둥글게 돌렸다. 상우의 입술 만큼이나 통통한 엉덩이 살에 불알이 뭉그러지는 건 태어나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어떻게 죽을 거 같은데?”

좋아 죽을 거 같아? 소곤소곤 덧붙이는 재현의 말에 상우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게 사실이기는 한데 굳이 입 밖으로 내뱉는 건 너무 변태 아저씨 같았다. 게다가 굳이 허리를 돌려 가며 또다시 내벽 구석구석을 자극해서 상우의 입에서 달뜬 소리가 나오게 만들었다.

“아흑…….”

“대답해야지.”

“흑, 자꾸…… 자꾸 싸서 죽을 거 같아요…….”

재현의 독촉에 상우는 생각나는 그대로 말을 했다.

“저런.”

저런? 지금 남의 일이라고 저런이라고 말하고 끝내는 건가? 상우는 기가 막혀서 재현을 노려봤다. 재현은 피실피실 웃으며 상우의 뺨을 손가락으로 한 번 툭 치고 주르륵 미끄러트렸다.

“도와줘야겠네.”

선심을 쓰듯 말한 재현이 상우의 자지를 붙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요도 위를 꾹 눌렀다.

“아니…… 아윽―!”

상우가 그게 아니라고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재현이 다시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상우에게 목을 잡히지 않아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재현의 허리 짓은 아까보다 더 강하고 깊었다. 콱콱 들이받히는 상우의 내벽은 쾌감에 절어 꿈틀거리는데 배출할 곳이 막힌 성기는 고통에 꿈틀거렸다. 터져 나가지 못한 쾌감은 돌아와 더 큰 쾌감으로 중첩됐고 상우는 허리를 비틀며 재현의 손목을 붙잡았다.

“하악, 손……! 아아! 손 떼 주세요……!”

“안 돼. 후, 너무 싸서 죽을 거 같다며.”

요도를 막고 있던 재현의 손가락이 거세게 구멍을 비볐다. 안 그래도 사정하지 못해서 미칠 것 같은 상우에게는 가혹한 처사였다.

“읏, 흐윽……! 가고, 싶어……! 흑, 가고 싶어요…….”

제발, 제발, 하고 중얼거리는 상우의 애원에는 신음과 울음이 섞여들었다. 색욕에 젖어 상우의 하얀 얼굴은 발간 홍조를 띠고 있었고 긴 속눈썹은 흐르다 만 눈물방울로 가닥가닥 뭉쳐 있었다. 추삽질을 이어 가며 그 얼굴을 감상하던 재현도 곧 쌀 것 같았다. 집에 들어와 키스할 때부터 발기하고 있었으니 너무 오랫동안 참았다.

“하으, 너 지금 존나 야하다…….”

“으흑, 나, 아앗, 나 정말…… 이제 안 돼……!”

상우가 재현의 손등 위를 손톱으로 긁었다. 작은 고통에 구멍을 막고 있던 엄지손가락을 떼어 낸 순간 희뿌연 정액이 튀어 올랐다. 재현의 자지를 물고 있던 구멍이 바르르 떨리며 사정없이 조여 댔고,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한 재현이 상우의 양 팔뚝을 움켜쥐었다. 퍽퍽 소리가 나게 처박을 때마다 상우의 성기에서 미처 배출되지 못한 정액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자지를 터뜨릴 것 같은 압력을 견뎌 내며 흔들던 재현의 움직임이 콱 멈췄다.

“큭……!”

재현의 성기가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데일 듯 뜨거운 정액을 울컥울컥 쏟아 냈다. 머리가 핑 돌 정도로 강한 쾌감이 상우를 덮쳐 와 눈앞이 까맣게 흐려졌다. 깜빡깜빡 정신을 차릴 때까지도 재현의 자지는 정액을 뱉어 내고 있었다. 약을 하면 이런 기분일까? 순간 뿅 돌아 버리는 아찔한 감각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빠르게 흡수되는 영양분의 속도에 상우는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천천히 감겼다 뜨여지던 상우의 화려한 눈매가 완전히 감겨 버린 순간 재현은 깜짝 놀랐다. 죽었나? 너무 몰아붙여서 못 견디고…… 이게 복상사? 아니, 복하사?

재현이 툭툭 상우의 뺨을 쳤지만, 상우는 눈을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프지 않게 뺨을 두드리던 손은 짝, 소리가 날 정도로 힘이 실렸다.

“아파…….”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아픈 건 싫었는지 상우가 팔을 허우적거리며 눈을 떴다. 몽롱한 눈동자를 보아하니 아직 정신은 돌아오지 않은 것 같아 재현은 짝, 상우의 뺨을 한 번 더 후려갈겼다. 제발 내 집 침대 위에서 죽지 말아 달라는 염원을 담아.

“……아프다고요!”

매서운 손길에 번쩍 정신을 차린 상우가 빽 소리를 질렀다. 휴. 티 나게 긴 안도의 한숨이 재현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재현이 사정하고도 여전히 커다란 성기를 천천히 잡아 빼며 상우에게 물었다.

“어땠어?”

사실 재현은 좋았냐고 묻고 싶었다. 단지 섹스하고 좋았는지 확인하는 남자는 깬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마음에 걸렸다. 좋았냐고 묻는 거나 어땠냐고 묻는 거나 매한가지이긴 하지만.

“뭐가요……?”

“뭐긴 뭐야. 첫 섹스. 어땠냐고.”

아, 하고 상우의 입에서 바보 같은 소리가 나왔다. 나 방금 첫 경험 했구나. 동정을 못 뗐으니 아직 첫 경험은 아닌가? 상우는 잔뜩 벌어져 있던 다리가 민망해 꼭 오므리고 잠깐잠깐 끊어져 있는 기억을 더듬었다.

“죽을 것 같았어요…….”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다 마침내 나온 상우의 대답이 재현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는 건지, 싫었다는 건지. 직접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았지만, 재현은 애써 꾹꾹 눌어 담았다.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집어삼킨 입이 근질근질했다.

상우는 아직도 배 속이 짜르르 울리고 있는 게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몸을 뒤척거리자 상우의 허벅지가 자연스럽게 슬그머니 벌어졌다. 하얀 허벅지 안쪽 살과 조금 부어오른 구멍이 살포시 드러나 재현은 꼴깍 침을 삼켰다. 내 자지가 아까까지 저기에 처박았던 거지? 재현은 불알까지 집어삼킬 만큼 오물오물하던 구멍의 감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재현이 사정한 후 옅어졌던 달콤한 음식 냄새가 다시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최근 안정적으로 먹이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번만 정액을 먹고 나면 도망가듯 재현과 헤어졌지만, 오늘은 어쩐지 아쉬웠다. 죽을 것같이 좋았어서 그런가. 분명히 처음 넣을 때는 찢어질까 봐 무서웠는데 왜 한 번 더 하고 싶단 생각이 드는지 상우도 스스로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한 번 더 해 보면 제대로 알 것 같기도 하고…….”

고개를 외로 꼬고 부끄러운 듯 내뱉는 말치고는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재현이 그 미묘한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아주 조금만 벌려진 다리 사이로 두꺼운 몸뚱어리를 밀어 넣고 상우의 뺨에, 코에 입술을 꾹꾹 눌렀다.

“왜? 뭘 알 것 같은데?”

몰라요, 하고 대꾸하는 상우의 목소리는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확실히 재현의 말대로 직장으로 흡수하는 영양분이 더 효과가 좋은지 나른하게 배를 통통 칠 만큼 기분이 좋았다. 히히, 하고 상우가 웃는 얼굴을 보였다. 딱 스무 살 나이의 밝은 웃음이라 재현은 오히려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그렇게 웃으래.”

재현의 괜한 타박에도 상우는 헤실헤실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 얼굴이 은근히 얄미워 재현은 상우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 으응, 하며 코를 실룩거리는 게 토끼같이 느껴졌다. 재현이 상우의 몸을 빙글 돌려 엎드리게 만들었다.

“어디 가서 그런 얼굴로 웃지 마.”

미묘하게 독점욕이 묻어나는 말을 건넨 재현이 다시 부풀어 오르는 자지를 상우의 엉덩이골에 대고 앞뒤로 움직이며 비볐다. 엎드린 채로 고개만 재현을 향해 돌린 상우가 다시 헤헤, 웃었다.

“이런 얼굴요?”

“그래. 맞아.”

재현이 상우의 뺨 위에 입술을 꾹 문질렀다가 뗐다. 요망한 새끼. 상우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무치게 귀여워 재현은 픽 웃고 말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상우는 계속 재현이 껄끄럽고 무서웠다. 게다가 당장은 유일한 먹이라 혹시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매번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재현의 기분이 좋아서일까. 괜히 왜 웃지 말라는 건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왜요?”

상우의 질문에 엉덩이 사이에 자지를 문지르고 있던 재현의 움직임이 멈췄다. 상우는 은근히 기대하며 얌전히 답을 기다렸다. 보통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웃어 주지 마, 질투 나니까’ 이러던데. 재현의 질투를 받아서 무엇하겠냐마는, 그래도 하나뿐인 먹이가 저를 독점하고 싶어 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닌가?

상우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내려다보던 재현이 당연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넌 생긴 게 멍청해서 웃기까지 하면 진짜 없어 보여. 뒤통수 맞기 딱 좋은 관상이야.”

그럼 그렇지. 잠시나마 기대했던 제가 병신이라 생각하며 상우는 고개를 팩 돌렸다. 뒷구멍까지 대 줬는데 입에 발린 말이라도 달콤하게 속삭여 주지는 못할망정 재수 없는 말이나 툭툭 내뱉는 재현이 짜증 났다. 재현에게 달콤함이라고는 냄새 말고는 하나도 없었다. 아, 정액이랑 혀도 추가. 상우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잔뜩 기분 상한 티를 내 보았지만, 그저 구멍에 박기만 하면 되는 건지 재현은 상관도 안 하고 상우의 무릎을 굽혀 허리를 들어 올렸다.

“그래서. 한 번 더 해 보면 어떤지 알 거 같다고?”

재현의 귀두 끝이 상우의 구멍 위에 자리를 잡았다.

“아뇨. 영원히 모를 건데요.”

여전히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상우가 웅얼웅얼하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알 때까지 하면 되겠네.”

재현이 무서운 말을 하며 앞서 싸지른 정액으로 축축하게 젖은 상우의 구멍에 자지를 들이밀었다.

알 때까지 하겠다는 말이 진심이었는지 재현은 한번 사정할 때마다 상우에게 이젠 알겠어? 하고 물었다. 처음 저 질문을 받았을 때 삐친 게 덜 풀려 모른다고 대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모른다고 하자마자 다시 처박히는 자지에 상우는 엉엉 울며 재현의 어깨에 매달렸다. 재현이 한 번 사정할 때마다 상우는 두 번씩은 정액을 배출하니 수지타산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다. 채워지는 에너지보다 빠져나가는 에너지가 배로 더 많은, 상우의 일방적인 손해였다.

그래서 두 번째 알겠냐는 물음이 들렸을 때 상우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흐윽…… 네……! 하으, 알겠어요……!”

“어떤데?”

상우는 여기에서 잠시 머뭇거렸다가 또다시 아래 입으로 재현의 좆을 물어야 했다. 세 번쯤 사정하고 나니 상우의 몸에 익숙해진 재현은 슬슬 사정하는 타이밍을 조절할 만했다. 느긋하게 상우의 몸 구석구석을 맛보며 재현이 봐준다는 듯이 말했다.

“알 거 같으면 언제든 얘기해.”

“힛, 좋아……! 아흑! 좋아요……!”

“어디가 어떻게 좋아?”

어깨에 걸쳐진 상우의 무릎에 가볍게 입술을 누르며 묻는 재현의 얼굴을 본 상우는 깨달음을 얻었다. 제가 알 때까지 하는 게 아니라 재현이 할 때까지 하는 거구나.

아래 입으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정액을 먹고 그 두 배로 정액을 토하던 상우가 끝내 정신을 잃을 때까지 섹스는 쉴 새 없이 계속 이어졌다. 중간중간 재현의 괴롭힘에 못 이겨 ‘사장님 자지가 꾹꾹 누르는 거 기분 좋아요’, ‘안쪽 거기, 지금 찌르는 데 좋아요’, ‘가슴 만져 주는 거 너무 좋아요’ 같이 뭐가 기분 좋은지 중계하는 것은 덤이었다.

* * *

잠에서 깬 상우는 습관처럼 눈도 뜨지 않은 채 몸을 쭈욱 늘리며 누워서 기지개를 켰다. 오늘따라 유난히 손끝에 닿아오는 침대 시트가 보드랍게 느껴졌다. 눈을 껌뻑껌뻑 뜨자 창문 사이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볕이 얼굴 위를 기분 좋게 간지럽혔다. 꿈도 안 꾸고 푹 자서 그런지 평소보다 더 개운한 기상이었다. 오늘 토요일인데 더 늦게까지 자 볼까, 하고 이불을 돌돌 말던 상우는 번쩍 눈을 떴다.

잠깐. 언제부터 내 싱글 침대가 기지개를 켜면 손끝에 시트가 닿을 정도로 넓었지? 맨날 허공에서 몇 번 잼잼 하고 일어났는데? 햇빛? 내 방은 베란다랑 붙어 있어서 햇빛이 잘 안 드는데? 상우가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아구구.”

저절로 노인네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배도 안 고프고 정신은 더없이 맑은데 온몸의 근육이 삐거덕거렸다. 엉덩이 사이의 깊숙한 곳에서 느껴지는 따끔따끔한 쓰라림을 인지하고 나서야 상우는 여기가 어딘지 깨달았다.

“깼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낮고 단조로운 목소리에 상우가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멀쩡하네?”

“안…… 녕히 주무셨어요.”

떨떠름하게 인사를 내뱉은 것은 재현이 너무 멀끔한 모습으로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벌거벗고 있는 상우와 달리 재현은 남색 실크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샤워도 하고 잤는지 어젯밤에는 왁스로 넘겼었던 재현의 머리카락이 눈썹 위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까치집일 게 안 봐도 뻔한 제 머리카락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상우가 혼자 꿍얼거렸다.

“와. 진짜 치사하다, 치사해.”

“다 들린다.”

“들으시라고 한 말이거든요. 치사하게 혼자만 씻고 잠옷 입고.”

별걸 가지고 다 툴툴거리는 상우를 보며 재현은 피식 웃었다. 별 이유는 없고 그냥 벗고 있는 게 예뻐서 아무것도 안 입힌 거뿐이었다. 재현의 집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24시간 적정 온도를 유지하니 벗고 잔다 해서 감기에 걸릴 리 없기도 했고.

“기절한 거 치고 기운이 펄펄 나네.”

“저 어제 기절했어요?”

상우가 몸을 돌려 앉으며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어쩐지.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없더라니. 어젯밤은 식고문이 따로 없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주더라도 배가 터질 것같이 부른데 억지로 입안에 계속 쏟아 넣으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지난밤 재현의 섹스가 딱 그 꼴이었다. 힘들고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고 사정을 했지만, 먹을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하던 사람이 재현이었다. 내가 못 먹겠다는데 왜 사장님이 맘대로 정하냐고 오열을 해도 재현은 타협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밥 먹게 일어나.”

재현이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 위에 엎어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책이랑 하나도 안 친해 보였는데 의외네. 상우는 방을 나서는 재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불퉁하게 생각했다.

침대 위에서 내려온 상우의 몸이 삐거덕거렸다. 체육대회 다음 날 같은 근육통에 상우는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 보니 땀과 온갖 체액에 절어 끈적거려야 할 몸이 보송보송했다. 아예 내버려 둔 건 아닌가 보네. 상우는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 끝을 억지로 끌어내리며 재현을 불렀다. 챙겨 주려면 좀 끝까지 챙겨 주던가.

사장님, 제 옷 어디 있어요―!

* * *

재현과 식탁 앞에 마주 앉은 상우는 의외라는 듯이 차려진 음식을 바라봤다. 재현이 부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아침도 빵, 베이컨, 오믈렛이랑 샐러드 같은 아메리칸 스타일일 줄 알았다. 진한 원두커피를 옆에 놓고. 하지만 식탁 위에는 갓 지은 쌀밥과 된장국, 밑반찬 다섯 가지와 생선구이가 올라와 있었다.

“와…… 이거 언제 다 하신 거예요?”

제가 자는 동안 혼자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재현을 상상하자 상우는 절로 웃음이 났다. 안 그래 보여도 재현은 꽤 다정하고 가정적인 남자인 것 같았다. 기절한 제 몸을 닦아 준 것도 그렇고.

“내가 밥을 왜 해?”

상우의 감탄에 재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상우는 재현이 민망해서 괜히 저렇게 말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럼 단둘밖에 없는 집에서 아침 준비를 누가 했을까? 기절하고 잠든 제가 몽유병처럼 일어나서 밥을 지었을 리도 없는데.

“에이…… 그럼 누가 했겠어요.”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했지.”

아. 상우는 또 깜빡하고 말았다. 앞에 앉아 계신 분이 저와 아주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괜히 감동받았다고 생각하며 상우는 숟가락을 들었다.

뭐 하나 입에 넣을 때마다 와, 대박, 하는 상우의 추임새 때문에 재현은 먹다 말고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맛있어?”

매일 먹는 밥이라 재현은 별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입안에 음식을 가득 물고 오물거리며 상우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그래. 많이 먹어.”

재현은 사실 상우가 오후 늦게까지 못 일어날 줄 알았다. 누군가와 체위를 바꿔 가며 여러 번 몸을 섞는다는 게 처음 겪는 일이라 재현도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놓치고 말았다. 상우가 진짜 기절한 걸 알았을 때는 너무 놀라 숨이 멎을 뻔했다. 완전히 앓아누워서 다시는 안 한다고 선언하면 어떡하나. 재현은 혼자 온갖 걱정을 다 하며 잠이 든 상우의 몸을 열심히 물에 젖은 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적어도 일어나서 조금이나마 감동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건장한 성인 남성의 몸을 요리조리 돌려 가며 꼼꼼히 닦고 나니 어느새 새벽이 밝아 왔고, 익숙지 않은 노동에 재현은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쓰러져서 잠들고 싶었지만, 잠에서 깬 상우가 더럽다고 기겁할까 봐 샤워도 하고 아끼는 파자마도 꺼내 입으며 꽃단장을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보통 재현이 출근한 평일에만 들러서 살림을 돌봐주시는 아주머니에게 전화해 밥 좀 차려 달라고까지 부탁했다. 주말, 특히 금요일 밤을 불태우고 나면 저녁 늦게 일어나는 재현은 토요일만큼은 절대 아무도 집에 들이지 않았다. 그런 재현이 새벽같이 연락해 와 달라고 하니 자다 깨서 전화를 받은 아주머니도 잠이 싹 달아나 버렸다.

아주머니가 음식을 준비하고 여기저기 널려진 옷을 정리하시는 동안 재현은 각성상태가 되었다. 너무 피곤하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내일의 체력을 가불해서 쓰는 그런 상태.

아주머니가 식사 준비를 끝내고 돌아갈 때까지 재현은 멍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때까지도 상우는 여전히 꿈나라였다. 재현은 이불로 꼭꼭 숨겨 놓은 상우의 옆자리로 다시 슬금슬금 기어 들어가 자는 얼굴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자다 깨서 뭐하냐고 물어보면 어쩌지? 쪽팔리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3년 전 선물을 받아 놓고 한 번도 펼쳐 보지 않은 책을 들고 왔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로 재현은 맘 놓고 상우를 구경했다.

얼굴만 빼꼼히 내놓고 보니 정말 재현이 그리던 이상적인 얼굴이긴 했다. 제발 요 예쁜 얼굴로 다시는 안 하겠다는 소리만 하지 말길. 상우가 잠든 사이 재현은 열 살이나 어린 상대와 계속 섹스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꽤 많은 노력을 했다.

혼자 생각에 빠져 버린 재현을 상우가 빤히 바라봤다. 밥상머리에서 무슨 생각을 저렇게 한담.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느껴 져 재현은 혼자만의 세계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쉴 새 없이 오물거리는 상우의 입술이 재현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 와서 어젯밤 입에다 한 번도 물리지 않은 게 아쉬워졌다. 저기다 좆을 들이밀면 버거워하면서도 열심히 쪽쪽 빨아대는 게 귀여운데.

“사장님.” 

“응.”

“밥 먹으면서 이상한 생각하지 마요.”

상우의 비난에 재현이 인상을 썼다.

“이상한 생각이라니.”

재현이 아무리 아닌 척 잡아떼도 상우는 이미 은근하게 퍼지는 달콤한 냄새를 맡아 버렸다.

“밤에는 배부르다고 울더니 잘 먹네.”

재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저 어제 배불러서 죽는 줄 알았어요, 진짜.”

배부르다는 말을 하며 상우가 노릇노릇한 생선살을 제 입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꼭꼭 씹느라 열심히 우물거리는 뽀얀 뺨은 어제 만났을 때보다 더 생기가 돌았다. 이렇게 멀쩡할 줄 알았으면 좀만 덜 노력할걸. 재현은 쓸데없이 잠도 안 자고 고생했네 싶다가도 볼이 터지도록 잘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꽤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오늘 하루 종일 골골댈 줄 알았더니만.”

“근육통 장난 아니에요.”

하룻밤 같이 보냈다고 좀 편해졌는지 상우가 따박따박 말대꾸를 했다.

“원래 그거 먹고 나면 숙취도 없고 몸도 완전 가뿐한데. 어제는 딴 데로 먹어서 그런가.”

“그거? 내 정액?”

식탁 앞에서 정액을 운운하는 게 민망해 일부러 그거라고 표현했는데, 굳이 콕 집어 말하다니.

“정액이 무슨 만병통치약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재현이 피식 웃으며 상우를 타박했다. 상우는 용기를 내서 전부터 재현에게 물어보고 싶던 말을 꺼냈다.

“사장님.”

“왜?”

“솔직히 말해 보세요. 제 말 믿고 있긴 하세요?”

재현이 턱을 괴고 상우를 빤히 바라봤다.

“무슨 말?”

상우는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해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으며 대답했다.

“제가 인큐버스라고 했던 거요.”

“아, 그거.”

정말 여태까지 안 믿고 있었던 거 아냐? 그럼 그동안 왜 정액을 준 거래? 안 믿으면서 준 거면 빼도 박도 못 하고 변태 확정인데! 상우는 입가로 들고온 김치를 넣지도 못한 채 재현의 반응을 기다리며 눈치를 살살 살폈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꼴깍. 긴장감에 저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너 인큐버스가 아니라, 그거 아니야? 서큐버스.”

탁. 상우의 손에서 젓가락이 맥없이 떨어졌다. 빨간 김칫국물이 회색 후드티 위에 길게 자국을 남겼다.

“여자랑은 안 된다면서. 내 아래 깔려서 좋다고 우는 것만 봐도 그렇고. 남자만 먹을 수 있는 거면 서큐버스 아닌가? 하긴. 뭐든 무슨 상관이겠어.”

상우의 반응이 어떻든 재현은 쫑알쫑알 제 하고 싶은 말만 쏟아 냈다. 애초에 인큐버스니 서큐버스니 하는 소리를 믿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소리였다. 유치 뽕짝인 판타지 세계관 컨셉은 그만두고 이제 그만 본인이 게이에 변태라는 걸 인정해야 할 텐데. 재현은 나름대로 스무 살씩이나 먹어서 비현실적인 컨셉에 진지한 상우가 걱정됐다.

“서…… 큐버스…….”

주섬주섬 떨어진 젓가락을 주우며 상우가 중얼거렸다. 재현의 지적은 아주 날카로웠다. 인큐버스인데 정액으로도 영양분 섭취가 되는구나, 정도만 생각했었지 차마 서큐버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 해 봤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앞으로 평생 성 정체성과 상관없이 남자 정액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소리인 건가. 지금이야 재현이랑 어찌어찌 붙어먹고 있다지만 해결책을 찾으면, 그래서 여자랑도 할 수 있게 되면 상우는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진작 엄마한테 물어볼걸. 하나뿐인 아들내미가 외간 남자 정액이나 먹고 돌아다니는 걸 알면 속상하실까 봐 얘기 안 했던 건데.

“엄마한테 물어볼게요…….”

인큐버스니, 서큐버스니 하는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상우는 엄청나게 충격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재현은 끝까지 컨셉를 유지하는 상우에게 박수 쳐 주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 냈다. 이 정도면 진짜다. 이 새끼는 인정이다, 인정.

“부모님 얘기 나와서. 너 외박한다고 연락은 드렸어?”

“어제 그럴 정신이 어디 있어요.”

여전히 힘없는 목소리로 상우가 답했다.

“걱정하시는 거 아니야?”

보아하니 자취생은 아닌 거 같던데. 상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먹이가 남자라는 말을 안 했을 뿐, 엄마도 어제 제가 밥 먹으러 간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 괜찮아요. 어제 사장님이랑 만나기로 한 거 엄마도 알아요. 영화 값 내라고 카드 준 거도 엄마고.”

툭. 이번에는 재현이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상우를 데려다주는 차 안은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각자 서로의 발언에 충격을 받아 대화할 의지를 잃은 탓이었다.

재현은 본인이 꼰대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요즘 어린 애들 발랑 까진 거 TV로도 많이 봤고 인터넷으로도 많이 봐서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스무 살 되자마자 남자랑 데이트하고 외박하는 걸 부모님께 순순히 고해……?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러면 안 되지. 얼굴 본 적도 없는 상우의 부모님의 먹먹한 가슴앓이가 떠올라 재현은 너무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나서서 잔소리하기에는 남이고.

아니지. 밤새 몇 번이나 뒹굴었는데 우리가 남인가?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상우와의 관계가 남인지 아닌지 고민하던 재현은 결국 꾸벅 인사하고 내리려던 상우의 팔목을 붙잡았다. 닦는다고 닦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김칫국물 자국이 눈에 거슬렸다. 옷이라도 하나 사 입혀서 보낼걸. 생각을 못 했네.

“박상우.”

“네?”

재현이 심호흡했다. 꼰대 아저씨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이 상황은 상우가 아니라 길 가다 만난 생판 모르는 사람이어도 잔소리할 만하다고 재현은 생각했다. 유교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어딜.

“너 이제 부모님께 나 만난다는 얘기하지 마.”

상우가 맹한 표정으로 재현을 바라봤다. 뭐래. 집 가자마자 바로 말해야 하는데.

“왜요?”

“왜냐니…….”

재현은 머리가 아파져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본 재현의 표정 중에 제일 살벌한 얼굴이라 상우는 아주 조금 쫄았다.

“남자랑 만나는 거 부모님께 알려서 뭐해.”

“그게 중요한 건데요…….”

여태까지 남자라고 말을 못 했으니 이제는 말해야 했다.

“그게 왜 중요해?”

“사장님 말씀대로 제가 서큐버스일지도 모르잖아요.”

“야!”

아직도 인큐버스니 서큐버스니 개소리를 하는 상우 때문에 재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상우의 어깨가 눈에 보이게 움찔 떨렸다.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세요…….”

“말하지 말라면 말하지 마.”

재현이 낮은 목소리로 상우를 압박했다. 아씨. 안 그래도 심란한데 왜 저래. 상우도 짜증이 치솟았다. 파다닥거리며 재현의 손을 뿌리친 상우가 차 문을 벌컥 열고 내렸다.

“싫어요!”

빽 소리를 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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