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 어떻게 하면 믿으실 건가요 (3/11)

3. 어떻게 하면 믿으실 건가요

재현의 차에서 내리자마자 집으로 쏙 들어간 상우는 이 세상에 재현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원래 알고 있긴 했는데 상우가 사고를 안 친 지 하도 오래돼 잊고 있었을 뿐이다.

“엄마……?”

비밀번호를 치고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엄마의 얼굴에 상우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와. 죽었다. 상우의 본능이 살고 싶으면 당장 도망가라고 외치고 있었고 상우의 이성은 지금 도망가면 진짜 목숨을 내놔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성과 본능이 치열하게 내면에서 싸우는 동안 상우는 얼른 무릎을 꿇었다.

“미쳤지?”

머리 위에서 들리는 시베리아 냉기류보다 더 싸늘한 목소리에 상우는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돌았지?”

상우는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 고개를 저어 봤지만, 엄마의 화를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상우의 등을 향해 가차 없이 날아오는 엄마의 손바닥에 상우는 악! 악! 소리를 질렀다.

“엄마, 엄마! 잠깐만! 악!”

“외박을! 할 거면! 연락이라도! 돼야지!”

짝짝, 등짝을 맞으면서 방으로 도망간 상우는 그제야 주섬주섬 백팩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분명히 영화관 앞에서 재현을 기다리며 어디에 있다고 연락한 다음에 영화 시작 전에 꺼서 가방 안에 넣어 놨는데. 전공 서적과 쓰레기 사이에서 핸드폰을 발견한 상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꾼 지 1년도 안 됐는데 잃어버렸으면 등짝을 맞는 거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도 많은 일이 있었어 그런가. 전원을 꺼놓은 채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평소에는 핸드폰과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분리 불안이 생겼지만, 어제는 상우도 정말 정신이 없었다. 전원을 켜자 엄마로부터 쏟아진 분노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상우를 뒤늦게 공격했다.

“어휴. 꺼 놓길 잘했네.”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혼잣말에 상우는 깜짝 놀랐다. 뭐야. 나 지금 어젯밤 엄마한테 방해받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거야? 끔찍한 생각을 떨쳐 내려 상우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정신이 나갈 만큼 좋긴 했는데, 그건 그냥 제가 인큐버스여서 쾌락에 약할 뿐이라고 상우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먹이도 주고 밥도 주고 데려다주기까지 한 상대에게 짜증만 잔뜩 내고 보내 버린 건 조금 미안했다. 잠시 고민하던 상우는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아직 운전 중인 건지 전화를 받은 재현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웅웅 울렸다.

“아뇨, 그냥…… 데려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못 해서요…….”

우물쭈물 내뱉은 상우의 말에 재현이 허, 하고 기가 막힌다는 듯 소리를 냈다.

[집에 가자마자 부모님께 남자랑 뒹굴다 왔다고 잘 보고했고?]

와. 비꼬는 거 보소. 상우는 재현의 인성에 새삼 감탄을 했다.

“연락 안 하고 외박한 거로 혼나느라 아직 말 못 했어요.”

[안 혼났으면 바로 말했을 텐데. 아쉽다, 그렇지?]

“아, 정말. 비꼬지 좀 마세요. 먼저 서큐버스 얘기 한 건 사장님이잖아요.”

[그래서. 내 탓이다?]

“진짜 유치하시네요.”

열 살이나 어린놈한테 유치하다는 소리를 들은 재현이 울컥했다.

[서큐버스니 인큐버스니 하는 개소리가 유치한 거지.]

잠자코 그 말을 듣고 있던 상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사장님 설마 진짜로 안 믿고 계신 거예요?”

계속 긴가민가했지만, 이제는 확신이 들었다. 이 인간 전혀 안 믿고 있었네. 전혀 안 믿고 있었어!

[넌 내가 병신으로 보이냐? 그걸 왜 믿어.]

상우의 입에서 헉,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정말 안 믿고 있었다면 재현은 왜 저랑 뒹굴고 있는 거지? 그냥 적당히 정액만 주면 되는데 섹스까지 했던 것도 이상하고.

“그럼 사장님은 절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무엇보다 그럼 정액을 달라며 울고불고 진상까지 부리던 저를 뭐라고 생각했던 건지 숨이 콱 막혔다.

[…….]

아무리 상우 눈치 안 보고 밉살맞은 말을 쏟아 내는 재현도 지금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아주 피곤해진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변태 게이 새끼’라고 말했다가는…… 어젯밤과 같은 섹스는 인생에 다시 없을지도.

“안 믿는 거면 왜 도와주신다고 하신 거예요.”

재현이 저를 믿지 않았다는 사실에 속이 상해서 그런가. 상우의 말끝이 울먹거렸다. 눈물은 안 나는데 갑자기 목이 메어서 상우는 목을 큼큼 다듬었다.

[너 울어?]

“아뇨. 안 우는데요…….”

차라리 아까 전처럼 빽 소리 지르는 거면 맞받아치기라도 할 텐데.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가 재현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알았어. 믿을게. 믿으면 되잖아.]

“그게 어디가 믿는 말투예요.”

[그럼 어떡할까?]

솔직히 길에 다니는 사람 붙잡고 인큐버스의 존재를 믿냐고 물어봐라. 백이면 백 전부 다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제가 어떻게 하면 믿으실 건데요?”

상우는 답답했다. 이걸 배를 갈라서 보여 줄 수도 없고. 한 2주 쫄쫄 굶고 죽기 직전의 상태로 만나서 정액을 먹은 후 기적적으로 소생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나. 재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눈 딱 감고 믿는 것도 정도껏이어야 믿지. 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대면서 믿어 달라고 억지 부리는 건 정신적 폭력 아닌가?

그럼에도 상우와 재현은 각자의 원초적인 목적 때문에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상우에게는 먹이라는 목적, 재현에게는 섹스라는 목적.

[글쎄. 이제부터 같이 노력해 봐야 하나.]

언제나 퉁명스러운 재현의 입에서 나온 ‘같이’라는 단어가 너무 달콤해서 상우는 폭 쭈그려 앉은 채 네,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뭘 어떻게 노력한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감출 수가 없었다.

* * *

상우가 방문을 빼꼼히 열었다. 엄마도 이제 좀 화가 가라앉았으려나. 부엌에서 통통통통 도마 위에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 상우는 침을 꼴딱 삼켰다. 지금 말을 걸었다가 까딱하면 칼부림 나겠구나. 상우는 엄마의 칼질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부엌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엄마.”

그리고 최대한 불쌍한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대답조차 없는 것을 보니 화가 안 풀렸구나. 상우는 꿋꿋이 다시 말을 걸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저녁상 위에 제 밥그릇만 없을 것이다.

“죄송해요. 근데, 나 엄마한테 할 얘기가 있는데…….”

돌아보지도 않는 엄마의 뒤에 서서 상우는 드디어 더 일찍 해야만 했던 말을 꺼냈다.

“나 어제 먹이네 집에서 잤는데…… 사실, 먹이가 남자야.”

드디어 상우의 엄마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경악이 가득한 표정으로. 상우는 아까보다 더 무시무시해진 엄마의 얼굴을 보며 침을 꼴딱 삼켰다.

“뭐……?”

“아니, 그게. 숨기려고 했던 건 아닌데 나도 잘 모르겠어서 이것저것 실험하다 보니까 얘기하는 게 늦어졌네.”

상우는 얼른 변명을 쏟아 내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칼보다는 낫겠지만, 국자도 맞으면 아픈데. 중학생 때 학원 땡땡이쳤다가 국자로 제대로 맞았을 때 등에 동그랗게 남은 멍 자국이 일주일 넘게 갔었다.

“……언제부터?”

“처음부터…….”

이제 날아올 국자를 대비하며 상우는 언제든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엄마가 국자를 싱크대 위에 내려놓았다. 부엌칼을 다시 잡으려는 건가? 상우는 곁눈질로 칼의 위치를 힐끔힐끔 확인했다. 하지만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다가온 엄마는 상우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엄마가 안아 준 건 고추 털 난 이후로 한 번도 없었는데. 상우는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어정쩡하게 엄마를 마주 안았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우리 아들 힘들었겠구나. 엄마가 그동안 몰라 줘서 미안해…….”

“어……? 이거 괜찮은 거야? 그리고 몇 번 안 먹었어.”

그중에 반은 어젯밤 하루에 몰아 먹었고. 게다가 먹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제가 말하지 않은 건데 엄마가 어떻게 알겠는가. 몰라줬다고 엄마를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상우는 괜히 제가 잘못하고 제가 사과받는 것 같아 찝찝했다. 그나저나 괜찮다는 거야 안 괜찮다는 거야.

“엄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의 말끝이 울음에 번져 제대로 끝마쳐지지 않았다. 상우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생각보다 안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빠한테는 엄마가 얘기할게. 방에 들어가 있어.”

아빠한테 뭘 얘기해? 상우가 묻기도 전에 엄마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눈가를 계속 훔치시는 게 우시는 건가. 제가 서큐버스인지 인큐버스인지 고민 상담이 필요한 거였는데 엄마를 울릴 정도의 내용인 줄이야. 엄마는 뭐든 해결 방법을 알고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탓하며 상우는 방으로 돌아갔다.

잠시 후, 상우의 방문을 노크하시는 아빠의 눈가도 빨갛게 부어 있었다.

“상우야, 아빠랑 얘기 좀 할까?”

침대에 누워 있던 상우가 일어나자 아빠가 옆에 앉아 상우의 손을 꼭 잡았다. 아니. 다들 왜 이래? 설마 이거 죽을병이었던 건가? 인큐버스의 몸에 정액으로 얻은 에너지가 누적되면 죽는 건가?

“일단, 말하기 힘들었을 텐데 용기 내 줘서 고맙고.”

상우의 손을 잡은 아빠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네가 어떻든 너는 아빠와 엄마의 소중한 아들이란다.”

가만히 듣던 상우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까부터 분위기가 어딘가 이상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 네가 조금만 이해하고 기다려 주겠니?”

“아빠, 아빠. 잠깐만.”

상우가 다급하게 아빠의 말을 가로막았다.

“나 곧 죽어?”

“죽는다니. 남들과 조금 다를 뿐 틀린 건 아니야.”

아빠의 말은 마치 상우가 아니라 자신에게 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내가 인큐버스인 것부터 남들이랑 다른 거 아니야?”

“상우야, 아빠는 네가 인큐버스라고 해도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도 사랑한단다.”

상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소리야! 내가 남자를 왜 좋아해!”

“괜찮아. 아빠 엄마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할게.”

상우는 후다닥 안방으로 달려가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아빠가 이상한 얘기 해!”

하지만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리는 엄마를 보며 상우는 여기에 일러 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 게이 아니라고―!”

상우가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봤자 엄마도 아빠도 믿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 왜 사장님도 엄마 아빠도 내 말을 안 믿어 주는 거야! 상우는 답답함에 혼자 절규했다.

* * *

“흐읏, 사장님…….”

조그맣게 저를 부르는 촉촉한 목소리가 귀여워서 재현은 말랑한 뺨에 입술을 꾹꾹 눌렀다. 쪽쪽 소리 나게 입술이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조여지는 자지의 부위가 점점 몸과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귀두가, 그다음에는 기둥 중간이, 그리고 마지막에는 뿌리 근처로. 끝까지 집어넣는 게 이렇게 기분이 좋다니. 재현은 기특하게도 저를 모두 품은 구멍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으응…… 간지러워.”

“간지러워? 어디가?”

심술궂게 일부러 물어보자 부끄러운지 허리가 달싹달싹 움직였다. 보채는 것도 귀엽게 하네.

“말을 해야 도와주지.”

“안…… 쪽이요. 안쪽이 간지러워요…….”

수줍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도 예뻤다.

“이 안이 간지러운 거야?”

재현이 구멍을 더듬거리던 손가락에 꾸욱 힘을 줘서 누르자 잔뜩 긴장했는지 좆을 물고 있던 근육이 사정없이 조여들었다. 하긴. 자지만 넣어도 한계일 텐데 손가락까지 넣으면 진짜 피를 볼지도 모르지.

“싫어, 흑, 그거 무서워요……!”

재현이 엉덩이 사이를 쓰다듬던 손을 떼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반듯한 이마에 쪽쪽 입을 맞추자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쉬―. 힘 빼야 움직이지. 착하지?”

달콤한 목소리로 어르고 달래자 끊어먹을 듯이 조이던 아래가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재현이 좆을 뒤로 물렀다가 다시 콱 박아넣었다.

“아흑―!”

고개가 뒤로 넘어가며 드러난 매끈한 목선이 재현의 시선을 모조리 빼앗아 갔다. 쭉 뻗은 채 잘게 떨리는 선이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만들어 재현은 얼른 그 위에도 꾹 입술을 눌렀다.

“앗, 흐아……! 사장님, 흑…… 사장님……!”

안쪽 어디를 자지로 쿡쿡 찔러도 새된 소리를 내는 바람에 재현의 심장이 점점 빠르게 뛰었다. 아파, 그만해, 말고 이렇게 간드러진 목소리를 들은 게 얼마 만인지. 더 박아 달라는 듯 등을 꽉 끌어안는 온기를 느껴 본 건 아예 처음인 것 같았다. 재현은 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뜨거운 몸 안이 사랑스러워 더 꽉 힘주어 안았다.

“후…… 좋아……?”

절대 물어본 적 없던 질문이 재현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상대가 좋아 보였던 적이 없기에 물었던 적도 없던 말이었다. 그리고 좋냐고 물어보는 게 촌스럽다고 굳게 믿고 있기도 했고. 사실 반응만 봐도 좋은지 싫은지 알 만했지만, 그래도 재현은 확인받고 싶었다.

“으응……! 좋…… 아요! 학, 너무 좋아!”

“자지 맛있어?”

“흐읏, 맛있어…… 아윽, 맛있어요…….”

“아, 진짜 존나 꼴리네.”

맛있다는 말에 재현은 소름이 삐죽 돋았다.

“누구 자지가 맛있어?”

“흐앙, 사장님. 아아……! 사장님 자지, 흣……!”

재현은 아랫입술을 꽉 즈려물었다. 쿵쾅쿵쾅 열심히 운동하는 심장이 뜨겁게 차올랐다. 이 만족감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하으…… 사장님도 맛있어요……?”

저를 향한 질문에 재현은 참기 어려워 말캉한 입술 위에 제 것을 문질렀다. 당연한 소리를.

“응, 맛있어. 존나…… 맛있어.”

“누가 맛있어요?”

갑자기 신음도 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물어 와 재현은 픽 웃었다. 누구긴 누구야.

“박상우, 너 존나 맛있어.”

잠깐. 박상우?

박상우!? 그 변태 게이 새끼!?

“헉―!”

꿈에서 깬 재현은 얼른 손을 내려 아랫도리를 더듬어 봤다. 시발. 저절로 욕이 툭 튀어나왔다. 다행히 오늘은 속옷이 푹 젖어 있지 않았다. 그냥 줄줄 흘러내린 쿠퍼액 덕분에 조금 축축한 정도. 선방한 건가. 재현은 끙끙 앓으며 넓은 침대에서 데굴데굴 굴러 엎드렸다. 이게 며칠째인지. 변태 새끼랑 밤을 보낸 이후로 재현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아침에 발기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니 잔뜩 치솟은 좆은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상우를 집에 보낸 첫날부터 꾸는 꿈이 문제였다. 인큐버스라는 말이 진짜였나 싶을 정도로 매일 밤 꿈에 상우가 나왔다. 그것도 아주 야한 모습으로. 똑같은 레퍼토리로.

누가 맛있냐고 물어보는 상우 때문에 재현은 첫날부터 고등학생 때 이후로 10년 동안 해 본 적 없던 몽정을 매일같이 하고 있었다. 제 위에서 허리를 돌리며 자지러지던 꿈속 상우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정액을 쏟을 만큼…….

“하, 시발.”

맨날 꾸는 그 꿈이 뭐라고 재현의 드로즈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제멋대로 박아 넣느라 기승위는 제대로 시켜 보지도 못했는데.

상우와 했던 섹스가 너무 자극적이었나, 하루면 잊히겠지, 했던 재현은 다음 날도 정액으로 범벅된 속옷을 빨며 자괴감에 빠졌다. 그래서 자기 전에 혼자 야동을 보며 풀어 봤지만, 상우는 어김없이 재현의 꿈속으로 찾아와 누가 맛있냐고 물었다. 점점 짙어지는 다크서클에 저를 주적처럼 대하던 직원들까지 걱정할 정도였다.

그렇게 상우와 매번 만나던 금요일 아침까지 재현은 쓸데없는 상상으로 젖어 버린 속옷을 빨게 되었다. 오죽하면 이거 진짜 서큐버스인지 인큐버스인지 했던 게 진짜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큐버스는 몽마라던데 제가 안 믿는다고 말해서 꿈에 나타나 복수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정기를 쪽쪽 빨리다 죽는 거 아닌가? 뭐가 됐든 정말 요망한 새끼였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비참하게 손빨래를 하고 나온 재현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상우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 수업 언제 끝나, 하고.

[4시요.]

12시쯤 이모티콘 하나 없이 온, 귀여움과는 거리가 먼 메시지를 확인한 재현은 그때부터 안절부절못했다. 당장에라도 상우의 학교로 달려가 납치해 버리고 싶었다. 아니, 납치가 아니라 제 좆을 끝까지 물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구멍에 처박고 싶었다. 성욕 폭발하는 고등학생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재현은 딱딱한 나무 책상 위에 이마를 콩콩 박다가도 고개를 들어 힐끔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1시도 되지 않은 게 더 재현을 더 빡치게 만들었다.

* * *

재현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 상우는 뭐야, 하고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언제부터 우리 사이가 이렇게 애틋하셨다고 손수 데리러 오겠다는 내용이었다. 재현이 말한 대로 위에서 흡수된 정액과 직장으로 흡수된 정액의 효능이 다른 건지 일주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상우는 크게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면 하도 많이 먹어서 아직도 에너지가 다 소비되지 않은 걸 수도 있고. 어쨌든, 비록 평범한 음식의 맛은 느끼지 못할지언정 확실히 지난 몇 주간의 금요일과 다른 날이었다.

답장도 하지 않은 채 핸드폰을 주머니 속으로 쏙 넣어 버리는 상우를 보며 오히려 인수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뭔지 궁금하기는 한데 굳이 누구냐고 물어서 귀찮아지기는 싫은 기분이었다. 한동안 제정신 못 차리던 동기가 갑자기 멀쩡해져서 수업도 잘 듣고. 이제는 해탈한 모양새로 학교 안을 휘젓고 다니니 아주 관심을 끊기는 어려웠다. 지금도 상우는 별생각 없다는 듯이 전공 책을 뒤적거렸다. 관심종자인 상우가 이렇게 세상만사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건 오랜만이었다.

“너야말로 뭔데.”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인수가 결국 상우에게 먼저 물었다.

“궁금해?”

싱긋 웃으며 인수의 관심을 끌어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보자 스멀스멀 올라오던 호기심도 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아니.”

인수의 단호한 대답에 오히려 상우가 인수의 옷자락을 붙잡고 흔들었다. 왜 관심을 가지다 말아. 더 물어봐 줘. 나한테 관심 좀 가져 줘!

“전에 말했던 그 사람이야?”

한 수 접은 인수가 묻자 상우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응. 이상하게 요즘 잘해 줘.”

같이 노력해 보자는 말도 하고. 재현이 했던 ‘같이 노력해 봐야 하나’라는 목소리가 귓가에 저절로 재생되어 상우는 혼자 빙글빙글 웃었다. 아예 제 상황에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었던 걸까.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함께 고민해 준다는 게 고맙고 좋았다.

“그럼 넌 좋은 거 아니야? 맛있는 거 많이 먹겠네.”

“많이 먹기도 하고, 좋긴 한데…….”

너무 과하게 먹어서 힘들 지경으로 많이 먹긴 했다. 그리고 미묘하게 껄끄러운 기분이 남아 있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상우의 마음속을 쿡쿡 찔렀다. 아니, 솔직히 그게 뭔지 상우도 알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오해할 정도니 말 다 했지. 그건 재현이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자신은 정말 게이가 아닌 걸까.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상우는 자꾸만 마음속에서 슬그머니 떠오르는 물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냥 먹이로서 재현의 정액을 공급받고 있다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함께했다. 차라리 재현의 좆에 박혀서 앙앙 울어 대지만 않았어도. 그러기만 했어도 자신 있게 저는 게이가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

하지만 제가 게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다른 남자의 좆은 꼴 보기 싫은 정도가 아니라 상상도 하기 싫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인수의 좆이 어떻게 생겼는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사장님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누가 봐도 건장한 남자인 저랑 물고 빨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까? 저에게 남자랑 뒹구는 게 뭐가 자랑스러우냐고 타박할 정도라면, 재현도 남자랑 이 기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재현은 언제 어느 때든 의연한 모습이었다. 어쩌면 제 생각과 달리 남자와 물고 빠는 걸 넘어서 섹스까지 하는 것에 이미 익숙해져 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상우, 자신의 마음뿐이었다.

“문제는 나인 거 같아.”

의미심장한 상우의 말에 인수가 흐음, 하고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이런 관계가 맞는 건가 싶다가도 막상 만나면 자꾸 끌려가게 돼.”

생각했던 거보다 진지한 관계인 건가. 인수는 괜히 남들보다 어딘가 모자란 친구가 걱정됐다. 상우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유부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 사이에 옳지 않은 관계라면 역시 불륜밖에 없었다. 인수는 그다지 소중하지 않은 동기에게 진심으로 조언했다.

“그만 만나면 되잖아.”

“하지만 당장 아쉬운 건 나인걸?”

어쩔 수 없다는 듯 픽 웃으며 대답하는 상우의 모습에 인수는 속으로 기함을 삼켰다. 이 새끼 진심인가? 진짜로 그 돈 많고 밥 잘 사 주는 유부녀한테 마음을 준 건가? 갑자기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져 버린 동기가 안쓰럽게 느껴져서 인수는 상우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다.

그 손길에 담긴 힘내라는 의미를 상우도 알아챘다. 순간, 상우는 기분이 묘해졌다. 재현이 얄밉긴 하지만 그래도 구제불능에 완전히 쓰레기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아주 조금 재현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상우는 열심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오늘 수업 끝나면 데리러 온다고 그랬어.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니야.”

애써 포장하려 노력하는 상우의 모습이 인수에게는 더없이 불쌍하게 느껴져서 인수는 최대한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새끼, 하면 안 될 사랑을 하면서 괜찮은 척하기는.

상우에 대한 인수의 오해는 자꾸만 깊어졌지만, 상우 혼자만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 *

시계만 노려보며 안달하던 재현은 결국 채 3시가 조금 지나자마자 호다닥 짐을 챙겨 떠나 버렸다. 어찌나 부산스럽게 자리를 떴는지 직원들이 뒤에서 쑥덕거릴 정도였다. 사장님 요새 클럽 안 간대. 지난주 금요일에도 일찍 퇴근했다던데? 하는 건 없어도 출퇴근 시간은 지키더니만, 연애하나? 에이, 설마. 누가 사장님이랑. 저를 향한 험담들을 뒤로한 채 재현은 앞만 보고 호텔을 빠져나갔다.

출퇴근 시간도 아닌 어정쩡한 시간이라 길도 막히지 않았다. 상우가 말한 4시보다 일찍 도착한 재현은 자괴감에 빠졌다. 대낮부터 발정 나서 섹스하겠다고 달려온 제 모습이 너무 꼴사나웠다. 하지만 자괴감도 잠시. 재현은 실실 웃으며 오늘은 상우에게 뭘 시켜 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지난주에 못 시킨 펠라부터 시작해야지. 통통한 입술을 잔뜩 벌리고 좆을 물리면 힘들어하면서도 결국 맛있게 빨아 댄다. 엄청난 테크닉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제 자지를 물고 있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꼴리는 건 남자라면 당연한 일. 가능하면 꿈에 나왔던 것처럼 상우를 위에 앉혀 보고 싶은데. 이제 막 첫 경험을 한 상우가 위에서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시켜는 볼까.

대회 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운동선수처럼 재현은 혼자 머릿속으로 오늘 있을 섹스를 준비했다. 덩달아 신이 난 좆 대가리가 벌떡벌떡 일어나서 곤란했지만, 재현은 얼른 토닥토닥 달래 주었다. 조금만 참아, 인마. 곧 힘들어서 살려 달라고 울 때까지 혹사시켜 줄게. 상우를 향한 다짐인지 자지를 향한 다짐인지 알 수 없는 생각이었다.

오늘의 컨셉를 운동선수로 잡은 재현의 이미지 트레이닝을 멈춘 것은 핸드폰 진동이었다. 액정 위에 뜬 ‘변태 새끼’라는 단어가 너무 반가워서 재현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어. 끝났어?”

기대감과 반가움을 애써 숨긴 재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깔렸다.

[네. 어디 계세요?]

“정문 앞에 있어.”

[금방 갈게요.]

“그래. 못 찾으면 전화하고.”

상우의 대답도 듣기 전에 재현은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금방 갈게요’라니! 우리 변태 새끼도 저랑 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조금만 더 통화를 끌었다가는 방정맞게 빨리 와, 하고 말해 버릴까 봐 통화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자꾸 광대가 씩 올라가는 게 스스로도 느껴져서 재현은 백미러를 보며 억지로 입술 끝을 끌어내렸다.

톡톡.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재현이 잠겨 있던 차 문을 풀어 주자 상우가 냉큼 조수석으로 올라탔다. 상우가 입은 옅은 하늘색 맨투맨 티가 오늘은 꽤 잘 어울렸다. 냉큼 안전벨트를 매는 상우의 미간이 약간 찡그려져 있었다.

“사장님.”

“왜?”

“차에서 이상한 짓 하신 거 아니죠?”

“왜 보자마자 시비야.”

야한 생각은 했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이상한 짓은 하지 않았다. 사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수록 빳빳해지는 자지 때문에 최대한 티 안 나게 만질까 말까 조금 고민하긴 했는데 결론은 하지 않았다. 곧 있으면 박을 구멍이 나타나는데 뭣하러 아까운 정액을 손바닥에 쏟아 낼까. 재현은 괜히 찔려서 부드럽게 돌아가는 핸들을 따라 눈길을 슬그머니 돌렸다.

“아니, 냄새가…….”

차에 타자마자 질식할 것같이 훅 풍겨 오는 단내에 상우는 잔뜩 긴장했다. 바지 속에 갇혀 있는 자지도 긴장했다고 자기주장을 하며 몸을 잔뜩 부풀렸다. 아니야, 넌 제발 가만히 있어. 상우도 아까 재현이 했던 것처럼 하반신에 대고 속삭였다.

“무슨 냄새?”

재현의 차에서는 출발하기 전 살짝 뿌리고 나온쁘레데릭 말의 묵직한 향수 냄새만 감돌고 있었다.

“엄청 달콤한 냄새요.”

상우의 대답에 재현은 조수석 쪽을 흘끗 곁눈질했다. 정신만 빠진 줄 알았더니 후각도 미친 건가. 몇 년째 쓰고 있는 재현의 향수는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애초에 어느 남자가 미쳤다고 달달한 노트의 향수를 쓰겠는가.

“또 안 믿으시는 거죠? 됐어요.”

그놈의 믿음 타령. 샐쭉하게 고개를 돌려 버리는 상우의 이마에 딱밤을 때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믿음을 원하면 어디 종교 단체나 들어가지 왜 제 호텔에서 서성거린 건지.

“아니야, 믿어. 믿기로 했잖아.”

재현이 흥분할 때마다 달콤한 냄새가 상우를 자극한다는 말은 들은 적도 없으면서 재현은 열심히 상우의 비위를 맞춰 주었다. 거참. 섹스 한번 하기 엄청 힘드네. 남들도 다 이렇게 노력해서 좆을 처박는 건가. 무언가 얻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게 처음인 재현은 이 세상의 모든 평범한 남자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보냈다.

“……사장님이 이상한 생각을 하면 단내가 나요.”

저를 믿는다는 말에 기분이 풀린 상우가 입을 열었다.

“이상한 생각?”

“야한 생각이요.”

편리하네. 재현은 차마 이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야한 거 하면 냄새가 더 진해져요.”

재현이 픽 웃었다. 진지하게 개소리를 하는 상우를 놀려 주고 싶었다.

“어떤 때 제일 진해져?”

“……지난주 금요일에 코가 마비되는 줄 알았어요.”

머뭇거리다가 성실하게 대답하는 게 귀여웠다. 그러니까 지난주 금요일이 제일 야했다는 거지? 지금 그거 또 하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돌려 말하는 거지? 요망하다, 요망하다 했더니만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냄새 싫어?”

‘또 하기 싫어?’라는 질문을 재현도 상우의 화법에 맞춰서 돌려 물었다. 상우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타이밍 좋게 신호가 걸렸다. 고개를 돌려 상우를 바라보자 민망함에 찌푸려진 콧잔등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싫어?”

재현이 은근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상우의 대답을 채근했다.

“싫은 게 아니라…… 그 냄새만 맡으면 저도 자꾸 이상해져서…….”

부끄럽다는 듯이 말끝을 흐리는 상우의 목소리에 툭, 재현의 이성이 끊겼다. 이런 내숭에 흥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지금만큼은 제정신을 부여잡기 힘들었다. 재현은 손을 뻗어 상우의 뒤통수를 잡아끌었다. 목을 길게 빼자 불편하기는 해도 상우의 말랑한 입술에 닿기 충분했다.

슬쩍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고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던 살덩이를 툭툭 건드리자 재현도 어쩐지 상우가 한 말이 이해가 됐다. 실제로 단맛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감정적인 달콤함이 깊게 배어 있었다. 내숭이란 내숭은 다 떨어 놓고 입술이 맞닿자마자 떨어지기 싫다는 듯 재현의 정장 끝자락을 꼭 쥐는 손길도 달았다. 자연스레 감긴 채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에도 달콤함이 뚝뚝 떨어졌고, 뺨에 비스듬히 닿아오는 숨결에서도 단내가 진동했다. 그냥, 상우 자체가 너무 달아서 재현은 이번 개소리만큼은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신호가 바뀌고도 출발할 기색이 보이지 않아 짜증이 난 뒤차가 경적을 울릴 때까지 재현은 상우의 입안에서 미지의 단맛을 찾아 탐험했다. 하는 수 없이 입술을 떼고 나서도 재현은 아쉬운 듯이 입맛을 쩝, 다셨다.

“……너무 단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재현을 상우가 멍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환기도 잘되지 않는 차 안을 가득 메운 달달한 냄새는 이미 치사량 수준이었다.

원래 재현의 계획은 제 체력을 따라가기 버거워했던 상우를 위해 집 근처에 있는 장어 요리 전문점에서 밥을 먹이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상우의 달콤함에 절어 버렸기에 모든 일정은 취소됐다.

현관문을 열기 무섭게 재현은 상우의 백팩을 아무 데나 내동댕이치고 상우를 침실로 끌고 들어갔다. 하늘색 맨투맨 티셔츠를 끌어 올려 벗기자 안에 받쳐입은 흰색 반팔티가 나왔다. 빨리 먹고 싶어 죽겠는데 쓸데없이 랩으로 칭칭 감아놔서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배달된 짜장면 같았다.

재현이 한숨을 쉬며 바지 속에 쏙쏙 넣어 입은 흰색 반팔티도 벗기자 선홍빛 유두가 재현을 반겼다. 여자의 봉긋하고 말캉한 가슴과 달리 밋밋한 가슴 위에서 톡 튀어나와 있는 이 작은 점이 뭐라고 이렇게 달아 보이는 건지. 재현은 재빨리 혀를 내밀어 상우의 가슴을 문질렀다.

“하으―!”

침대 위에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던 상우가 재현의 머리를 꼭 끌어안았다.

“목소리도 달아.”

웃음기 가득한 재현의 목소리가 가슴 바로 위에서 울렸다. 진짜 단 건 지금 집안을 꽉 채운 재현의 냄새인데. 상우는 차에서부터 자꾸만 달다는 말을 반복하는 재현이 무서웠다.

“지난주에는 여기만 예뻐해 줬지?”

재현의 이가 아프지 않게 상우의 왼쪽 젖꼭지를 깨물었다. 여린 살 위에 닿아오는 단단한 감촉에 상우가 파드득 등을 떨었다. 오른쪽 유두 위를 재현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오늘은 공평하게 만져 줄게.”

“아흐윽…….”

상우가 신음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번 재현이 왼쪽만 잔뜩 희롱한 탓에 한동안 옷을 입을 때마다 한쪽 젖꼭지만 쓰라려서 고생했다. 양쪽 다 예민해지는 게 어딜 봐서 공평한 거람. 둘 다 가만히 두는 게 공평한 거지! 마음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달콤한 냄새에 푹 빠진 상우는 재현의 혀와 손에 가슴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쌀알만 한 상우의 젖꼭지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극에 발딱 일어났다. 엄지와 검지로 꼬집으면 찌릿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가 몸을 떨어야 했고, 부드러운 혀가 달래듯이 동그랗게 문지르면 은근한 소름이 천천히 몸 안으로 퍼져 나갔다. 그 느낌이 무엇이든 상우의 좆은 맹렬하게 반응했다. 하반신에 자리 잡은 멍청한 생명체에게는 아픔도 쾌감이었고 간지러움도 쾌감이었다.

“으응, 사장님…… 흣, 사장님……!”

상우가 재현을 애타게 불렀다. 재현이 고개를 들자 타액에 젖어 번들거리는 입술에서 상우는 눈을 떼기 어려웠다. 아까도 잠깐 맛본 저 입술이 얼마나 달달한지 상우는 잘 알고 있었다.

“키스해 주세요…….”

상우가 팔을 뻗으며 입술을 오물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젖꼭지를 더 물고 빨고 싶었지만 차마 그 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하기 어려워 재현은 스윽 상우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작게 벌려진 입술을 베어 물자 상우가 재현의 목을 끌어안았다. 상우의 손끝에 바스락거리는 정장의 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감촉이 불편하다고 느낄 새도 없이 입안을 가득 메우는 달콤한 혀에 상우는 정신없이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재현은 개새끼처럼 낑낑거리며 제 입술을 핥는 상우의 양 뺨을 한 손으로 꾹 눌렀다. 옷이라도 벗으려고 몸을 일으키면 떨어지기 싫다고 고개를 저으며 재현의 목에 매달리는 통에 서커스보다 더 기괴한 포즈로 옷을 벗어야만 했다.

안 그래도 신축성이 없어 입고 벗기 불편한데 입술은 상우에게 딱 붙인 채 손만 꼼지락거리며 벗으려니 꽁꽁 묶인 밧줄을 풀어내는 수준이었다. 나중에 결박플도 해 봐야지. 만져달라고, 키스해 달라고 울면서 애원할 때까지 방치해 봐야지. 그 와중에도 재현의 머릿속은 새로운 플레이에 대한 계획으로 가득했다.

간신히 옷을 벗어 던지고, 상우의 바지와 속옷도 날름 벗겨 버린 재현은 뺨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줘서 떼어 냈다. 같은 사내새끼라고 힘은 어찌나 센지.

“으응…… 싫어…….”

바르작거리며 재현의 목에 두른 팔 힘이 아주 장사였다. 어릴 때 씨름이라도 했나. 근육 하나 없이 말랑한 몸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 건지. 돈 주고 PT 받는 자신이 상우에게 힘으로 밀리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 재현이 손에 더 꾸욱 힘을 실었다. 돈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돈 쓴 보람이 있게 상우의 단정한 눈썹이 일그러졌다. 그러게 어디서 힘을 쓰고 그래.

“……윽…… 우푸유!”

“뭐?”

붕어처럼 찌그러진 입으로 뻐끔뻐끔 외치는 상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가 안 가 재현은 손에 힘을 살짝 풀었다.

“아파요!”

아파서 정신을 차린 건지 제법 똑 부러지는 목소리를 낸 상우가 재현의 목에 감고 있던 팔을 풀었다. 폭신한 침대 위로 털썩 떨어진 등이 하나도 아프지 않아 상우는 새삼 이 매트리스도 엄청 비싸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누가 정신 못 차리고 매달리래?”

“사장님이 달아서 그렇죠.”

입술을 삐죽거리며 네 탓이라고 투덜거리는 모양새가 귀여워서 재현은 상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 위에 코끝을 문질렀다. 내가 달아서 정신을 못 차렸다니. 멘솔 향을 머금은 상우의 샴푸 냄새가 괜히 맛있게 느껴져 재현은 머리카락을 조금 씹어 보았다. 퉤. 물론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아 곧바로 뱉어 버렸지만.

“너무 귀여워서 큰일이네.”

재현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하기만 했어야 할 말을 툭 뱉어냈다. 말한 재현도 순간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췄고, 들은 상우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가만히 있었다. 묘한 정적이 방 안을 잠식했다.

차라리 상우가 저를 비웃거나 못 들은 척했으면 어찌어찌 넘어갔을 텐데.

“제가…… 귀여워요?”

확인하듯 더듬더듬 물어 오는 목소리에 재현은 좆됐다, 생각하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아니.”

“방금 귀여워서 큰일이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내가 귀여워서 큰일이라고.”

“에이, 사장님이 귀엽다는 건 너무 양심 없는 얘기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재현이 몸을 일으켰다. 지금 이 상황을 무마할 방법은 단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상우의 입을 틀어막는 것. 상우의 몸 위로 올라온 재현은 아까부터 벌떡 일어나 꺼떡거리던 자지를 상우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제발 이거 빨고 좀 닥쳐.”

원래는 닥치고 좆이나 빨라고 말해야 했지만 당황해서 그런지 반대로 말이 튀어나왔다. 제발이라는 없어 보이는 단어와 같이. 사실 그쪽이 더 진심이기도 했다. 궁금한 게 많은 듯 반짝거리던 상우의 눈빛은 재현의 커다란 자지가 부드러운 뺨 위에 문질러지자 노곤하게 풀려 버렸다.

얼굴 위를 뭉개는 좆을 입에 물지 못해 안달이 난 상우가 혀를 입술 밖으로 내밀었다. 상우의 혀 위에 재현의 기둥이 미끌거리며 움직였다. 들이밀어 진 달콤한 먹이에 이성을 잃은 상우가 팔꿈치를 세워 상체를 일으켰다. 빨리 입안에 넣어 빨아먹고 싶은데 야속한 먹이는 가까이 갈 때마다 뒤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누가 놓칠 줄 알고? 상우는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좆을 따라 상체를 더 일으켰다. 열심히 따라가는 게 소용없을 만큼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에서 점점 물러나는 자지 때문에 상우의 몸이 어느 순간 완전히 엎드린 모습이 되었다. 반대로 침대에 편하게 다리를 뻗고 앉은 재현이 상우의 조그마한 뒤통수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맛있게 먹어야지.”

더 이상 도망가지 않는 자지가 반가워서 상우는 냉큼 귀두 끝을 입안으로 넣었다. 혀 위로 달콤하게 퍼지는 달콤한 맛에 눈물이 고일 지경이었다. 아래로 먹는 것도 좋지만, 직접 맛을 느끼면서 먹는 것이 역시 더 좋았다. 양손으로 좆 뿌리를 움켜쥔 상우가 우물우물 여린 입 점막을 문지르는 두꺼운 귀두를 부드럽게 자극했다. 평소 같았으면 손을 써 봐라, 목구멍을 열어서 깊게 삼켜라, 참견쟁이였을 재현은 오늘만큼은 얌전히 상우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끝까지 처박을 구멍은 따로 있으니 마음이 여유로웠다.

가만히 상우를 내려다보던 재현이 상우의 어깨를 밀었다. 당황스럽다는 눈빛으로 재현을 올려다보는 게 마치 손에 들린 솜사탕을 빼앗긴 꼬마 같았다. 다시 안 쥐여 주면 울먹거리다가 눈물을 펑펑 쏟아 낼 것처럼 상우의 눈가도 발갛게 물들어 갔다. 그 멍청한 표정도 귀여워서 재현은 손가락을 들어 상우의 코를 살짝 꼬집었다.

“기다려.”

재현이 침대 위에서 일어나 움직이자 등의 근육이 살아서 움직이듯 꿈틀거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확실히 재현은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었다. 사이드 테이블의 서랍에서 무언가 꺼내 들고 온 재현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색으로 기죽일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진한 핫핑크. 어디서 이런 걸 가져왔담. 재현의 손에 들린 튜브 모양의 통은 몽롱하게 흐려졌던 정신이 번쩍 들도록 강렬한 색감이었다.

“이게 뭐예요?”

대답 대신 재현은 제 허벅지를 툭툭 쳤다. 뭐 어쩌라고. 못 알아들은 상우가 고개를 갸웃하자 재현의 커다란 손이 상우의 뒤통수를 끌어와 제 아랫도리를 향해 꾹 눌렀다. 상우는 재현의 배려 없음에 한번 놀라고, 그런 취급을 받고도 좋다고 자지를 왕 무는 제 행동에 또 한번 놀랐다. 자존심도 없지. 좆이나 물고 닥치라는 말을 듣고도 좋다고 달려들고, 흉기에다가 고개를 처박혀도 좋다고 빨고. 억울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달달한 냄새를 풍기는 재현의 좆이 잘못이었다.

상우는 입을 크게 벌려 재현의 귀두를 완전히 입안으로 넣었다. 혀를 뾰족하게 세워 단물이 비집고 나오는 구멍을 꾹 누르자 손으로 짚고 있던 재현의 허벅지에 힘이 빡 들어갔다. 달달한 냄새가 더 농밀하게 퍼지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걸 보니 이렇게 해 주는 게 좋은가 보네. 상우는 부드러운 자지의 끝을 혀로 조심스럽게 핥다가 다시 혀에 힘을 주어 요도를 파고들듯 문질렀다.

“흐으…… 너…….”

재현의 목소리는 맹견이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닮아 있었다. 상우는 문득 재현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엎드린 채 좆을 물고서는 도저히 재현의 얼굴을 볼 방법이 없어 그냥 혼자 상상하는 게 전부였다.

사장님의 진한 눈썹이 찌푸려져 있을까? 그 사이 미간은 잔뜩 쭈글쭈글해졌겠지? 이를 악물어서 볼도 딱딱해졌을 거야. 완전히 무섭게 내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을 게 뻔해. 분명히 안 좋은 묘사들의 나열이지만 그 모든 걸 합쳐서 상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재현의 얼굴은. …… 그 얼굴은 너무 야했다. 상우의 자지 끝에서 맑은 물이 왈칵 배어 나올 정도로.

상우는 슬그머니 손을 내려 제 성기를 움켜쥐었다. 상우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를 관찰하던 재현의 눈에도 그 모습이 보였다. 뽀시락거리며 몸을 꿈틀대더니 좆을 입에 문 채로 자위를 시작한 것 같았다. 상우가 엎드려 있어서 뽀얗고 귀여운 자지를 볼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재현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손에 들고 있던 통의 뚜껑을 열었다.

지난번에는 급한 대로 콘돔 윤활유의 도움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여자와 달리 축축하게 젖지 않는 구멍은 문명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재현은 오늘을 위해 미리 야심 차게 주문해 두었다. 러브젤을. 그것도 한참 동안 인터넷을 서칭해 가며 냄새도 안 나고 오랫동안 미끌거린다는 제품을 찾아가면서. 새 제품이라는 것을 티라도 내듯이 꽁꽁 밀봉된 은박을 벗겨 내고 재현은 그대로 상우의 엉덩이 위에 젤을 쭈욱 짜냈다.

“흐읍―!”

예고도 없이 닿아오는 차갑고 주륵 흐르는 질감에 상우의 등이 파르르 떨렸다. 뭔지는 몰라도 끈적한 액체가 꼬리뼈에서부터 회음부까지 축축하게 흘러내렸다. 그것은 상우의 음낭까지 타고 흘러내려 천천히 중력을 거스르지 않으며 뚝뚝 떨어졌다. 재현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생소한 감각에 잔뜩 오므라든 상우의 구멍 위에 와 닿았다.

재현은 꼬박 일주일 만에 만난 구멍이 너무나 반가웠다. 잘 있었니? 나는 네 생각을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어. 눈만 감으면 네가 오물오물 내 자지를 씹어 대던 모습이 떠올라서 보고 싶어 죽을 것만 같았어. 오죽하면 매일 밤 꿈에 나왔다니까. 농담하는 거 아니고 진짜야. 하마터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개쳐두고 너를 만나게 해 달라고 네 주인한테 연락할 뻔했단다. 재현은 상우의 구멍에게 마음속으로 애틋하고 다정한 말을 건네며 손가락을 쑤욱 집어넣었다.

“으으응…….”

배출하는 곳으로 파고드는 불쾌한 감각에 상우가 자지를 입에 문 채로 신음했다. 미끄덩거리며 들어온 손가락이 상우의 몸 안에서 꿈틀대자 예민한 입구가 움찔움찔 재현의 손가락을 더 안으로 집어삼켰다. 구멍 입구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날카롭게 상우를 자극했다. 순식간에 밀도가 높아진 단내는 상우의 정신을 흐리게 만들었다. 정신없이 재현의 자지를 물고 빠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았다. 죽을 것같이 덮쳐 오던 지난번의 쾌락이 차곡차곡 상우의 기억을 헤집고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흐아―!”

재현의 손가락이 하나 더 몸 안으로 밀려들어 왔을 때 상우는 결국 물고 있던 것을 뱉어냈다. 재현의 단단한 허벅지에 뺨을 기대고 허리만 높게 든 채로 상우는 숨을 할딱거렸다. 이마 위에 툭툭 닿아 오는 거대한 재현의 자지가 거슬렸지만 치울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맨살에 닿아 오는 뜨거운 상우의 숨결에 재현은 놀고 있던 손으로 상우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 주었다. 넣기만 해도 좋아 죽네, 아주. 어찌할 줄 모르는 상우의 표정에 재현은 저절로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난번에 찾아냈던 전립선이 어디쯤이었더라. 재현은 손가락을 끊어 낼 것처럼 조여 오는 상우의 구멍을 억지로 벌려 가며 안을 헤집었다. 그렇게 깊은 곳에 있었던 것 같진 않은데. 재현은 끝까지 처박았던 손가락을 천천히 빼며 상우의 몸 안을 꾸욱 눌러 댔다. 그렇게 내벽을 긁으며 한마디 정도 손가락을 빼냈을 때였다.

“하으응! 사장님……!”

상우가 입을 탁 벌리며 재현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여기였구나. 재현은 저절로 끌어올려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하고 결국 소리 내 웃음을 터뜨렸다.

재현의 손가락이 집요하게 상우가 자지러지는 곳을 꾹꾹 눌러 댔다. 벌려진 입술 끝에서는 삼키지 못한 타액이 흘러내려 재현의 허벅지를 적셨고,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자지는 끊임없이 맑은 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신경이 모여 있는 입구에서 예민하게 느껴지던 이물감은 이제 온갖 데도 없었다. 모든 감각은 재현의 손끝이 닿아 오는 곳에 집중되어 상우를 괴롭혔다.

“아흑, 흣―! 사장님, 흐아…… 사장님……!”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면서 계속해서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재현은 거칠게 구멍 안을 찔걱거리는 왼손과 달리 오른손으로 상우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마치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것처럼. 어째 지난번보다 더 잘 느끼는 것 같아 재현은 러브젤을 준비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말랑하게 풀어져서 손가락 세 개를 잡아먹은 구멍이 움찔거렸다.

“그만…… 흐으, 사장님 그만…….”

재현의 단단한 복근에 이마를 비비며 상우가 웅얼웅얼 그만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재현의 손가락이 내벽을 긁어 낼 때마다 쿠퍼액이 질질 흐를 정도로 좋았지만, 상우는 다른 감각을 원했다. 한계까지 벌리고 들어와 무자비하게 안쪽을 헤집는 그 느낌을 상우는 기억하고 있었다. 관자놀이에 닿아 온 재현의 성기가 뜨겁게 후끈거렸다.

“그만해?”

재현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놀리듯이 속삭였다. 숨을 할딱이며 상우의 고개가 살짝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드러난 하얀 얼굴 위에서 화려한 눈매 주변만이 붉은색으로 번져 있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 밝은 방 안에서 상우의 색욕에 젖은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렴풋한 어둠 속에서 옅은 달빛에 의존해 보던 것과 다른 느낌이었다. 상상력이 하나도 첨가되지 않은 그 얼굴은 모순적이게도 말갛기도 하고 요염하기도 했다.

“이제 그만…….”

넣어 주세요. 들릴 듯 말 듯 작게 내뱉어진 말에 재현은 하, 낮은 신음을 토해 냈다.

“미친 새끼.”

정욕을 한껏 품은 욕설은 상우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재현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당장 상우를 눕혀 놓고 그 안에 자지를 처박고 싶어 하는, 발정 난 제 안의 짐승 같은 욕구가 무서워졌다. 재현의 손가락이 천천히 빠져나가는 느낌에 상우는 등을 동그랗게 말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성인 남성의 손가락 세 개의 굵기만큼 벌어져 있던 구멍이 천천히 오므라들었다. 분명 제 몸의 근육인데 제멋대로 움찔거리는 게 이상한 느낌이었다.

재현이 숨을 고르느라 바쁜 상우를 미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이유 없이 상우를 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것도 매번 부르던 것처럼 성까지 다 붙여서가 아니라 상우야, 하고 다정하게. 재현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집어삼키며 상우의 동그란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일어나 봐.”

상우가 비척비척 상체를 일으키자 재현의 손이 상우의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미 노곤하게 풀린 몸은 재현이 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가볍게 끌려 왔다. 상우를 제 무릎 위에 앉힌 재현이 상우의 말캉한 입술에 제 것을 겹쳤다. 방금 전까지 좆을 물고 있던 입이라는 사실도 잊었다. 맞닿은 입술을 혀로 덧그리자 머뭇머뭇 입술 사이로 틈새가 생겼다. 상우가 뭘 기대하는지 뻔히 알면서도 재현은 작은 심술을 부리며 그 틈새를 무시한 채 상우의 목덜미에 입술을 꾹 눌렀다.

“하아…….”

작게 터져 나오는 상우의 탄성이 재현의 마음을 술렁이게 했다. 겨드랑이에서 허리로 미끄러진 손에 힘을 줘 몸을 밀착하자 양옆으로 벌어진 상우의 다리가 괜히 이불 위에서 바스락거리며 소리를 냈다. 분명 마음은 급한데 이상하게 천천히 공을 들이고 싶은 기분이었다. 실험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던 지난주와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이었다.

상우의 허리를 가볍게 쓰다듬던 손은 더 아래로 내려가 젤로 질척하게 젖은 구멍을 더듬었다. 수월하게 파고드는 양쪽 집게손가락에 상우가 잔뜩 긴장하며 재현에게 달라붙었다. 그 덕분에 잔뜩 발기한 자지 두 개가 누가 더 단단하게 일어났는지 대결이라도 하듯이 부딪혔다. 이제 그만 넣어 줬으면 좋겠는데. 은근하게 자지를 비비기만 하는 재현은 상우의 마음을 모르는 척할 심보 같았다. 심지어 넣어 달라고 조른 제 말을 들어 놓고도.

“여기 완전히 풀려서 잔뜩 벌어지는 거 느껴져?”

꼭 끌어안은 머리통을 깨물어 버릴까 고민하던 상우는 재현의 물음에 멈칫했다.

“잘 모르겠어? 이 정도면 손가락이랑 자지랑 같이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상우의 구멍은 손가락도 빠듯하게 씹고 있었다. 아마 이 쫄깃한 구멍은 오늘도 재현의 자지 하나도 버거워하며 먹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제 구멍이 어떤지 모르는 상우는 저도 모르게 아래에 힘을 꽉 주며 조였다.

“아…… 힘 풀어. 힘 풀어야 넣어 주지.”

순식간에 오므라드는 입구 때문에 재현은 손가락에 피가 통하지 않아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흐읏, 사장님…… 무서워요…….”

상우가 재현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며 목에 감은 팔에 더 힘을 꽉 주었다. 이러다 괄약근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이제 막 스무 살이 됐는데 남은 평생을 기저귀를 차고 살게 되면 어쩌지. 상우의 귓가에 피식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자기 몸 아니라고 비웃는 거야? 상우는 아까 깨물지 못했던 재현의 머리통 대신 펄떡펄떡 맥박이 뛰는 목덜미 위에 이를 세웠다. 그 순간 달콤한 냄새가 날카롭게 퍼졌다.

“보채기는.”

아뇨. 아프라고 문 건데요? 물리면 아파해야지 왜 더 좋아한담. 재현이 천천히 상우를 옆으로 굴려 눕혔다. 그때까지도 상우의 몸 안에 처박혀 있던 손가락이 질척한 소리를 내며 빠져나갔다. 재현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놨던 젤을 집어 손바닥 위에 쭈욱 짜냈다. 핏줄까지 울퉁불퉁하게 솟아오른 자지를 손으로 몇 번 훑어 낸 재현이 상우의 위로 올라왔다. 상우가 숨을 쉴 때마다 납작한 가슴이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반쯤 벌려진 입술 사이로 달콤한 공기가 새어 나왔다.

젤로 축축하게 젖은 자지를 상우의 구멍에 문지르며 재현이 상우의 이마에 입술을 꾹 눌렀다.

“오늘은 천천히 할게.”

장담은 못 하지만. 재현의 귀두 끝이 꼭 닫혀 있는 상우의 아래 입을 천천히 벌려 나갔다.

“하악…….”

어찌나 천천히 열어나가는지 상우는 조금씩 조금씩 벌려지는 근육의 움직임이 다 느껴질 정도였다. 느릿한 재현의 움직임과 달리 생경한 느낌에 무서워진 상우의 심장이 콩닥콩닥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거 나 배려하는 거 맞아? 두려움에 떨다가 다 들어오기 전에 심장 마비로 죽으라고 하는 거 아니야? 차라리 지난번처럼 콱 들이박는 게 아프긴 해도 정신이 없어서 나을 것 같은데!

귀두 끝의 동그랗게 넓어지는 모양을 따라 상우의 입구가 점점 넓어졌다. 재현이 쏟아부은 젤 덕분에 지난번처럼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끝없이 벌어지는 구멍이 잘못될까 봐 무서워 상우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재현의 몸에 매달렸다. 재현도 상우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사정없이 조여 오는 구멍과 미끄러운 젤 때문에 조금이라도 힘을 풀면 바로 뒤로 밀려날 것 같았다.

“으윽, 흣…….”

재현의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가 무언가 간신히 참아 내는 것같이 들렸다.

“아파?”

대답할 힘도 없는지 상우가 고개만 도리도리 저었다. 그냥 콱! 박으라고요! 콱! 그 말이 왜 입 밖으로 안 꺼내지는지 상우도 스스로가 답답했다. 뭔가 말하려고 입을 벌리면 제가 듣기에도 민망한 소리만 할딱할딱 새어 나왔다.

괜찮은 건가?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안아 주는 중인데. 재현은 별생각 없이 꾸준하게 좆을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귀두의 가장 두꺼운 부분 근처로 가자 잔뜩 힘을 준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상우 때문에 더 이상 진입이 어려웠다. 전에도 여기서 포기하고 그냥 힘으로 처박았었지. 재현은 오늘 상우를 천천히, 다정하게 안아 줄 생각이었기에 움직임을 멈추고 식은땀이 흥건한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상우를 안심시켰다.

아니, 제발 그냥 좀 박아 주세요. 상우는 말만 제대로 나오면 애걸복걸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늘은 괴롭히는 방법을 바꾸기로 한 건지 구멍이 완전히 벌어진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다. 재현은 제 귀에다 대고 주문을 외듯 중얼중얼하는 상우의 말에 집중했다.

“제발…… 박…… 흣! 아으…… 좀…….”

“뭐?”

끊임없이 귀에다 대고 소곤거리는 게 소름이 쭈뼛 돋을 정도로 기괴했다. 이런 소리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었다. 기담의 엄마 귀신이라든지, 주온의 애기 귀신이라든지.

상우가 결심을 한 듯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애써 들어 재현의 허리를 감쌌다. 그리고 제 몸쪽으로 있는 힘껏 끌어당기며 외쳤다.

“좀…… 박아……! 아아앗―!”

시도는 호기로웠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어찌어찌 제일 두꺼운 부분은 덜컥 들어갔지만, 확 오므라든 구멍이 사정없이 재현의 귀두와 기둥 사이를 조여 왔다. 예상치 못하게 강한 자극을 받는 바람에 재현의 자지 끝에서 울컥울컥 뜨거운 정액이 쏟아졌다.

“큭…….”

사정의 쾌감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재현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럽게 몸 안으로 휘몰아친 영양분에 상우도 탁 정신이 풀려 버리고 말았다.

“이 변태 새끼가…….”

재현이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었다. 잘해 주려고 했던 내 순수한 마음을 이렇게 짓밟아!? 분노와 함께 조루같이 빨리 사정했다는 비참함이 재현을 덮쳐 왔다. 욕이라도 한바탕 쏟아 내려고 상체를 일으킨 재현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이건 또 뭐지.

“아흐으…….”

아직도 구멍에 좆을 박은 채로 침대 위에 널브러진 상우가 가늘게 신음했다. 도대체 언제 싼 건지 상우의 배 위에는 하얀 정액이 잔뜩 고여 있었다. 완전히 풀린 눈으로 상우가 팔을 휘적거리며 재현을 끌어당겼다.

“하으, 좋아…… 더…… 더 박아 주세요…….”

가까이 다가온 재현의 목이며 뺨이며 닿는 대로 정신없이 입술을 문지르는 상우 때문에 재현은 기분이 조금 풀렸다. 하여간 위의 입이든 아래 입이든 정액이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재현은 아직 발기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자지를 천천히 밀어 넣었다. 내장에 그대로 흡수되는 정액에 취해 상우는 고통은커녕 배 속을 가득 메우는 쾌감을 느끼면서 자지를 받아들였다. 천천히 길을 만들며 재현의 자지가 끝까지 처박혔을 때 상우는 다시 한번 주륵 남아 있던 정액을 흘리고 말았다.

상우의 몸 안에서 재현의 자지가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단단해지는 기둥이 상우의 안을 밀어내며 크기를 키우자 재현의 손가락으로 희롱당했던 전립선도 저절로 콱 짓눌리기 시작했다. 재현이 상우의 등을 끌어안고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끝까지 밀고 들어왔던 자지가 상우의 무게 때문에 더 깊게 처박혔다.

상우를 안은 채로 쿵쿵, 이 집의 자랑인 통유리 창을 향해 걸어가는 재현은 생각했다. 뭐? 천천히? 다정히? 상우가 제멋대로 움직인 순간 그런 달콤한 계획들은 모두 먼지가 되어 날아갔다.

힘자랑하려고 섹스하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이 저를 들고 걸어가는 재현에게 박혀서 상우는 아흑, 아흑 울어 댔다. 재현이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자잘한 진동이 상우의 안을 들쑤셨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재현의 등에 꽉 매달린 상우의 손톱이 어깨를 파고들었지만, 재현은 개의치 않았다. 재현의 머릿속엔 오직 두고 보자, 하는 알 수 없는 복수심만 가득했다.

“앗…….”

등에 닿아온 유리창의 싸늘한 냉기에 상우는 몸을 웅크리고 재현에게 매달렸다. 이제 내려 주려나? 상우의 예상과 달리 재현은 상우의 엉덩이를 여전히 공중 부양시킨 상태로 허리를 뒤로 빼냈다. 천천히 빠져나가던 자지는 재현의 짜증을 대변하듯 콱 박혀 들었다.

“아흑―!”

상우가 재현에게 매달릴수록 재현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상우의 안에 싸질러 놓은 정액이 젤과 뒤엉켜 재현이 움직일 때마다 바닥 위로 뚝뚝 떨어졌다. 있는 힘껏 밀어붙이는 힘에 상우는 기겁하며 팔과 다리를 얽어 재현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부자 동네이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유리창이 깨지면…… 상우는 재현의 목을 더 꽉 끌어안았다.

안 어울리게 로맨틱한 얘기이지만, 지금 이렇게 재현과 죽을 것처럼 섹스하다 추락사한다고 해도 상우는 괜찮을 것 같았다. 섹스하다 죽나, 떨어져서 죽나 그게 그거니까. 단지 좆을 구멍에 박은 채로 머리가 깨져 죽어 있는 제 시체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상상은 무서웠다. 우리야 재미 볼 거 다 보다 죽는다 치고 남아 있는 가족은 무슨 죄냐! 본 적도 없는 우리 부모님을 그렇게 걱정하는 척하더니만!

땀에 젖은 등이 유리창 위에서 미끄러져 상우는 후다닥 재현의 어깨에 이를 박아 넣었다. 팔과 다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이도 힘을 보태거라.

“……후…… 집중 안 하지?”

“하윽, 사장님…….”

상우가 최대한 불쌍한 목소리를 냈다.

“왜?”

대답과 함께 재현의 좆이 안쪽으로 깊이 파고들어 상우는 우는 소리를 냈다.

“아으, 유리…… 흣, 유리 안 깨지죠……?”

지금 그게 문제야? 어처구니가 없어진 재현이 인상을 찡그렸다.

“깨지는지 안 깨지는지 해 보면 알겠네.”

“흐윽……!”

자기도 안 깨진다는 확신이 없다는 거잖아! 상우는 울먹거리며 재현의 목을 끌어안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라 혼자 바쁜 게 귀엽기는 한데, 그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섹스가 뒷전이 되는 것은 못마땅했다. 재현이 자지를 쭈욱 잡아 뺐다.

“힛, 아흐…….”

몸 안을 채우고 있던 커다란 덩어리가 빠져나가는 게 싫었는지 상우의 구멍이 재현의 자지를 꾸욱 조이며 붙잡았다.

“다시 먹여 줄 거니까 힘 빼.”

힘을 빼라는 소리를 들어도 맘처럼 쉽지 않아 상우는 결국 재현의 거대한 자지가 뽁 소리를 내며 빠질 때까지 구멍을 잔뜩 조이고 있었다. 발이 땅에 닿는 감각이 들어 안도의 숨을 내쉬기 무섭게 몸이 빙글 돌아갔다. 상우의 엉덩이에 두어 번 문질러지던 뜨거운 기둥이 거침없이 쑤욱 밀려들었다.

“하악―!”

가쁜 신음과 함께 상우의 몸이 투명한 유리창에 기대어졌다. 무게에서 자유로워진 재현의 허리 짓이 더 빨라졌다.

“앗, 아앗! 너무, 힛, 너무 빨라―!”

배 속 깊은 곳을 콱콱 찔러 오는 두려움과 완전히 부풀어 오른 기둥이 움직일 때마다 뭉개지는 전립선이 주는 쾌감이 몸 안에서 뒤섞였다. 재현이 움직일 때마다 상우의 자지 끝에서 묽은 정액이 주륵 흘러내렸다. 사정조차 느끼기 힘들 정도로 조절되지 않는 날카로운 감각이었다.

유리창을 짚고 있던 상우의 손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졌다. 뜨거운 열기와 맞닿은 창문 위로 손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흐아, 사장님, 읏! 사장님!”

상우가 아무리 불러 대도 재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은 채 구멍 안을 헤집기만 했다. 끝없이 폭발하는 열락에 상우가 울부짖었다. 상우의 몸이 계속 미끄러지는 통에 점점 다리를 굽혀 가며 박아넣던 재현이 허리를 붙잡고 있던 손 하나를 내려 상우의 허벅지를 들어 올렸다.

“으아아―!”

갑자기 한 발로 몸의 무게를 지탱하게 되자 몸 안을 휘젓던 흉기가 끝까지 처박혔다. 재현의 힘에 밀려 상우의 몸이 유리창에 완전히 밀착되었다. 잔뜩 찌그러진 뺨이 창문에 사정없이 눌렸고 재현이 괴롭힌 탓에 바짝 곤두선 유두가 창문에 뭉개진 채로 밀리는 느낌이 선연했다.

“흐윽, 아앗! 그, 앗, 그만……! 학!”

저와 상우의 키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위로 처올리기만 하는 재현의 움직임에 상우는 까치발을 든 채 속수무책으로 흔들렸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해 주면 덜 무서울 것 같은데. 귓가에 파고드는 것은 낮은 신음이 섞인 숨소리뿐이었다. 차가운 유리에 아플 정도로 문질러 지는 좆과 달리 등 뒤를 덮은 온기는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뜨거웠다. 위협적으로 퍼지는 달콤한 냄새가 아니라면 제가 지금 누구와 살을 섞고 있는지 모를 것 같았다.

상우가 정신없이 손을 내려 제 허벅지를 붙든 재현의 손을 움켜쥐었다.

“아으, 잠깐, 흑, 잠깐만요…….”

상우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상우의 몸 안으로 자지를 무식하게 박아 넣은 재현이 움직임을 멈췄다.

“후우…… 왜…….”

헐떡이는 숨을 가르고 나온 재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상우가 제 손을 잡기 전까지 순간 완전히 이성을 잃고 몰아붙였다. 모조리 잡아먹을 것처럼 꿈틀거리는 뜨거운 안쪽이 재현을 미치게 만들었다.

“아무 말이나…… 좀 해 주세요…… 흐윽, 무서워요…….”

무섭다는 말을 하는 순간 상우의 긴 속눈썹 끝에 매달려 있던 눈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쉴 새 없이 안에서 펑펑 터지는 쾌감도 무섭고 짐승처럼 추삽질만 해 대는 재현도 무서웠다.

“무슨 말을 해 줄까.”

“이름이라도 불러 주세요…….”

사장님 목소리 들을 수 있게. 흐느낌에 섞여 웅얼웅얼 나오는 말이 재현의 가슴 한구석을 저릿하게 했다. 두고 보자 생각하고 벼랑 끝으로 몰아갔는데 그 다짐은 너무나 쉽게 사라져 버렸다. 재현이 상우의 머리카락 위에 입술을 묻었다.

“상우야.”

다정하게 이름이 불리자 상우의 등이 가늘게 떨렸다.

“무서웠어?”

조그마한 머리통이 작게 끄덕였다.

“그러게 누가…….”

맘대로 움직이래, 하는 비난의 말을 내뱉으려던 재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안 그래도 무섭다는 놈을 비난할 필요까지야.

“……누가 그렇게 예쁘게 울래.”

대신 재현은 달콤한 말을 상우의 귓가에 속삭여 주었다. 의외의 말에 상우가 힐끗 재현을 바라보았다. 물기로 잔뜩 번진 발간 눈매가 심장을 울렁거리게 만들어 재현은 얼른 아무렇지 않은 척 입술로 덮어 버렸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을 핥자 달고 짠 맛이 혀 위에 스며들었다.

재현이 천천히 자지를 빼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뜨거운 내벽을 밀어 올렸다.

“으응…….”

달콤한 목소리를 들으며 재현이 아까와 달리 부드럽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처박힐 때는 정신이 없어 몰랐던 저릿한 감각이 상우의 척추 마디마디를 하나씩 휘감으며 올라왔다. 그 감각은 재현의 움직임이 차근차근 빨라질수록 날카로워지더니 급기야 송곳으로 뒷목을 쿡쿡 찔러 대는 것 같아져 참기가 힘들었다.

“아윽, 사장님―, 흣, 좋아요―. 하악, 너무…… 하으!”

“후, 좋아……?”

“네, 하아…… 좋아, 흑, 좋아……! 끝까지, 흐앗, 들어오는 거…… 좋아요―!”

상우의 말에 재현이 뿌리 끝까지 자지를 힘껏 밀어 넣었다.

“……이렇게?”

상우의 몸이 재현에게로 기대어졌다. 뜨거운 몸에 등을 기댄 채 상우가 입을 크게 벌리고 벌벌 떨었다. 신음조차 내지 못하며 몇 번째인지 모를 사정이 이어졌다. 허벅지를 잡지 않고 있던 재현의 손이 앞쪽으로 다가와 상우의 젖꼭지를 꼬집었다.

“으아―! 학, 좋아―! 거기…… 으응! 싫어, 흑, 싫어…….”

좋음과 싫음이 공존하는 이상한 감상을 들으며 재현은 거칠고 깊게 상우의 안을 파고들었다.

“박상우…… 큭, 박상우. 상우야…… 상우야. 흐으…….”

상우의 이름을 부르며 허리를 흔들던 재현이 움직임을 멈췄다. 진득한 액체가 첫 번째 사정과 달리 여러 번에 걸쳐 상우의 내벽 안으로 뿜어졌다. 아랫배가 부풀어 오를 정도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에 상우가 작게 신음했다.

“하아, 하아…….”

거친 섹스의 여운은 길었다. 몽롱한 상우의 시선 끝에 어느새 어둑해진 한강의 전경 들어왔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차들의 라이트 빛이 예쁘게 반짝거렸다. 상우의 지금 기분도 반짝거리고 있었다. 포만감에 온몸이 노곤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재현의 입술이 상우의 어깨 위를 꾹꾹 눌렀다. 재현의 기분도 상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정한 누군가와 살을 맞대는 게 이렇게 만족스러운 일이었나. 어디를 어떻게 공략하면 좋아하는지 안다는 게, 그래서 다음 섹스에서는 어떻게 해 봐야지 생각하고 실행하는 게 마치 레벨 업 하는 게임 같았다. 섹스는 게임이라고 했던가. 여태까지 섹스라는 게임에서 캐릭터가 강해지는 경험을 해 본 적 없던 재현은 오늘에서야 그 의미를 깨달았다.

제 욕심대로 혼자 처박고 흔들다가 싸는 건 제대로 된 게임이 아니었다. 섹스라는 타이틀을 가진 게임은 열심히 스킬을 배워서 상대를 더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이었다. 마침내 깨달은 진리에 감탄하며 재현은 상우의 안에서 자지를 잡아 빼냈다. 주륵 딸려 나오는 정액이 상우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 야한 광경을 지켜보던 재현이 싱긋 웃었다.

아주 어릴 적, 윈도우 96 시절부터 컴퓨터를 집에 갖고 있던 재현은 온갖 게임이란 게임은 다 섭렵했다. 도스 게임도 밤을 새워 가며 왕을 깼고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CD로 온갖 게임을 구워 가며 해 볼 정도로 게임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인터넷 보급 후 등장한 온라인 게임은 재현의 역사였고, 스타는 재현의 학창 시절의 전부였으며, 롤은 대학 시절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물론, 스팀 계정 역시 메이저부터 인디까지 조금이라도 이름이 알려진 게임은 없는 걸 찾는 게 힘들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재현의 방에는 지금도 콘솔 게임기가 세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재현은 어떻게 해야 게임을 잘할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방법은 하나뿐.

“박상우, 한 번 더 하자.”

남들보다 잘할 때까지 계속하는 것밖에 없었다.

재현은 빠른 레벨 업을 위해 상우의 협조를 구했다. 재현의 말에 머뭇머뭇 상우의 몸이 돌려 세워졌다.

“조금만 쉬면 안 돼요……?”

“안 돼.”

재현은 단호했다. 게임에 쉬는 게 어디 있겠는가. 큐가 잡히면 바로 돌려야지. 이미 다음 판을 시작할 준비를 마친 재현의 자지가 상우를 향해 꺼떡거렸다.

* * *

이러다 진짜 배가 터져서 죽는 거 아닌가. 정신없이 흔들이는 상우의 시야 사이로 재현의 사나운 눈매가 보였다. 지난주에 했던 생각의 흐름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상황이었다. 도대체 몇 번을 싸야 직성이 풀리는 건지. 재현이 움직이지 않아도 배 속에 가득 찬 정액이 꿀렁거렸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던 온몸의 근육은 완전히 진이 빠져 재현이 흔드는 대로 얌전히 휩쓸려 갔다. 처음에는 재현의 허리를 꽉 휘감고 있던 상우의 다리는 이제 그저 공중에 띄워진 채 흐느적흐느적 풍선 인형처럼 움직였다. 그나마 재현의 단단한 어깨에 걸쳐져 있어 떠 있기라도 하는 거지 그마저도 없었다면 침대 위에 딱 붙어 있었을 것이다.

“아…… 흣! 그만…… 흐윽…….”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목소리도 맥아리가 없었다. 절정에 소리 지를 힘도 없어 상우는 몸을 바르르 떨며 몇 방울 나오지도 않는 정액을 투둑 떨어트리고 말았다. 오늘 재현이 주는 자극에 얼마나 사정한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차라리 정액이라도 안 나오면 덜 억울할 텐데. 재현의 손가락이 상우의 납작한 배 위를 가볍게 눌렀다. 재현의 자지 끝이 문지르고 있는 딱 그 지점이었다.

“여기를 이렇게, 잘게 문지르니까 질질 흘리네.”

“하으…… 좀…….”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재현은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박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우가 싸는가’에 꽂혀 있었다. 자기도 남자면 계속 쥐어짜 내지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 텐데. 재현은 단순하게 여기를 찔러 주니까 서네? 이렇게 박아 주면 싸네?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니 음료수가 나오네, 같은 걸로 보이냐고요.

게다가 지난번에 기절했던 게 나름대로 충격적이었는지 뒤로 갈수록 움직임이 느긋해졌다. 좋은 말로 포장하면 다정하고 상냥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냥 상우를 말려 죽일 기세였다. 빠르고 거칠게 박아넣지 않아서 사정감도 들지 않는지 재현의 무식한 자지는 배터리 풀 충전된 딜도처럼 계속 이곳저곳을 찔러 댔다. 상우가 힘들다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면 다가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넘겨주고 이마 위에 입술을 가볍게 누르며 속삭였다.

“괜찮아. 더 할 수 있어.”

아니, 제가 힘들다니까요! 달래는 듯한 그 다정한 목소리에 상우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재현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러다가도 재현이 씨익 웃으며 슬그머니 어딘가를 쿡 찌르면 저도 모르게 버둥거리던 팔로 재현의 목을 꼭 끌어안게 됐다.

“이거 봐. 더 할 수 있다니까.”

그럴 때마다 재현이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다시 부풀어 오르는 상우의 자지를 움켜쥐어서 더 항의하기도 민망했다. 상우는 이 쾌감의 고통 속에서 벗어날 방법이 많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제가 기절하거나, 아니면 재현이 만족하고 떨어져 나가거나. 누가 봐도 기절하는 게 빨라 보였다. 하지만 사지 멀쩡하고 건강한 몸은 기절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으윽…….”

그래서 상우는 재현의 좆이 몸속 깊은 곳에 박히는 타이밍을 노려 툭 손과 고개를 떨어트리고 기절한 척을 했다. 제발 통해라, 제발 속아 넘어가라!

재현은 잠깐 당황한 듯이 움직임을 멈칫했다. 이거 봐라? 갑자기 사극에 나오는 활 맞은 엑스트라처럼 과장된 신음을 내고 축 늘어지는 상우를 보며 재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죽은 척할 거면 제대로 하지. 유난히 길어서 눈에 띄는 상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귀엽게 논다고 생각하며 재현은 귀두만 담길 때까지 자지를 뒤로 쭈욱 빼냈다.

가득 차 있던 배 속이 비워지는 감각에 상우는 속으로 성공했나, 희망적인 기대를 해 보았다.

“하윽―!”

하지만 거의 끝까지 빠져나갔던 흉기가 다시 깊은 곳을 한 번에 파고들었을 때는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달뜬 소리가 튀어나왔다. 오랫동안 부딪치고 쓸려서 빨개진 상우의 엉덩이에 까슬한 음모가 비벼지는 느낌이 들었다.

벌려진 상우의 입술 사이로 재현의 혀가 거칠게 침입했다. 오죽하면 기절한 척을 했겠냐고, 제발 그만하자고 말도 하지 못하고 상우의 신음은 재현의 입안으로 먹혀들었다.

“으읍……! 흐으! 흡……!”

내장 안쪽을 무섭게 찔러 대며 이상하게도 점점 크기를 키워 가는 재현의 좆에 자지러지며 상우는 입안을 헤집는 혀에 제 것을 얽었다. 수십 번, 수백 번을 맛보아도 거부하기 어려운 달콤한 맛이었다.

“후, 이렇게 귀여우면, 반칙이지.”

재현의 허리 짓이 거칠어졌다. 아까부터 상우의 반응에 관해 탐구 생활을 하느라 방치당했던 자지가 저도 좀 신경 쓰라며 몸집을 키우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단단한 남자의 몸에 퍽퍽 부딪치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소름과 닮은 사정감이 등골을 타고 쭈욱 올라왔다. 재현은 몸에 무게를 실어 상우를 꽉 끌어안았다. 어깨에 다리를 올린 채로 눌러 대 불편할 만도 한데, 이 귀여운 변태 새끼는 깊게 박히는 게 마냥 좋다고 울면서 완전히 색이 묽어진 정액을 또 질질 싸 댔다. 사정을 조절하는 근육조차 지쳐서 조금만 차올라도 툭툭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아아―! 싫어, 흑! 하아…… 제발, 흣, 제발 그만……!”

도리질하며 우는 상우의 머리를 끌어안아 제 어깨에 묻게 만들며 재현은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철퍽철퍽, 젤과 정액이 뭉개지며 만들어 내는 소리가 상우의 귓가를 울렸다.

상우가 제 눈앞에 있는 재현의 어깨를 마지막 죽을힘을 짜내 콱 깨물었다.

“크흣…….”

날카로운 통증이 신호가 되어 재현은 상우의 안에 한 번 더 꿀럭꿀럭 정액을 토해 냈다. 이미 가득 채워져 있던 상우의 안은 또다시 쏟아지는 정액을 다 담아 내지 못했다. 아직도 빠듯하게 재현의 자지를 물고 있던 구멍의 입구 사이로 희뿌연 액체가 버겁게 흘러나왔다.

“흐윽…… 사장님…… 제발 그만해요…….”

상우의 울음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재현은 땀과 눈물로 번진 얼굴 위 여기저기에 입술을 꾹꾹 눌러 댔다. 반듯한 이마 위에도 한 번, 단정한 눈썹 위에도 한 번, 눈물에 젖어 가닥가닥 갈라진 속눈썹 위에는 두 번. 동그란 코끝에도 한 번, 하도 빨아대 오늘따라 더 통통한 입술 위에도 한 번. 그렇게 입을 맞추며 상우를 만끽하고 있자니 얼마 쉬지도 않은 자지가 반응했다. 일주일에 한 번밖에 못 박는데 성에 찰 때까지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어차피 이러고 나면 또 일주일이나 가만히 놀고먹을 자지인데.

“우리 한 번만 더 할까?”

재현의 꿀이 뚝뚝 떨어지는 속삭임에 상우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조차 역효과였다. 그것조차 예뻐 보여서 재현은 상우의 쇄골 위에 입술을 문지르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깡 생수를 식도로 들이부으며 재현이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 위에는 완전히 널브러진 채 숨만 간신히 쉬고 있는 상우가 놓여 있었다. 딱 좋은 정도로 한 것 같은데. 어린놈의 새끼가 약해 빠져서는. 재현은 제 체력이 비상식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상우를 탓했다. 그래도 지난번처럼 기절해서 중간에 싸지도 못하고 그만두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상우의 옆에 앉은 재현은 오늘도 기진맥진한 상우의 땀에 젖어 얼굴 위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 주었다. 온기가 느껴져도 눈을 뜰 힘이 없는지 숱이 많고 긴 속눈썹만 애처롭게 바들바들 떨렸다.

“물 마실래?”

상우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재현이 상우의 등을 받쳐 끌어안아 일으키자 제대로 앉아 있을 힘도 없는지 상우의 머리가 재현의 어깨 위로 툭 떨어졌다. 내리 안고 있었는데 그 가벼운 온기가 뭐라고 닿은 곳이 저릿했다. 누군가 잠시 심장을 꽉 움켜쥐고 지나가는 느낌에 재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생각이 더 길어질 것 같아 재현은 병든 닭처럼 대가리를 처박고 있는 상우를 아기 안듯 무릎 위에 올려 안았다. 부어오른 입술 위에 생수병을 가져다 대자 상우가 힘없이 입술을 벌렸다.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물을 쏟아 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힘이 없어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탓에 반은 입술 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물이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상우의 뽀얀 뺨을 지나 턱선을 따라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재현이 꼴깍 침을 삼켰다.

기묘한 감정이었다. 얌전하게 안긴 채 힘겹게 눈만 껌뻑껌뻑 감았다 뜨는 상우의 맹한 얼굴이 오늘따라 예뻐 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제 지쳤다고 말하던 자지가 다시 꿈틀거리며 상우의 엉덩이를 쿡쿡 찌를 정도였다. 상우도 대번 제 하반신에 닿아 온 딱딱한 물건의 정체를 알아챘다.

“어우…… 사장님, 저 진짜 죽어요…….”

계속 울어 댄 탓에 잔뜩 갈라진 상우의 목소리가 재현의 심장을 쿵 때렸다. 이 괴물 같은 몸을 밀어내야 마땅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우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재현의 단단한 가슴팍에 뺨을 기댔다. 두근두근. 일정한 심장 박동이…… 뭐 이렇게 빨리 뛰지? 상우는 힐끔 재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하나뿐인 먹이야, 아프면 안 돼. 재수 없긴 해도 원 없이 먹여 주는 소중한 먹이의 건강이 염려되어 상우는 재현의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 움찔, 재현의 몸이 떨렸다.

“뭐 하는 거야? 더 못한다며.”

음. 완전히 정상이군. 재현의 퉁명스러운 말과 엉덩이 살을 더 압박하며 커지는 자지의 반응에 상우는 나름대로 객관적인 진단을 내렸다. 상우가 안심하고 있는 사이 재현의 손가락이 상우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상우가 화들짝 놀라자 재현은 나름대로 서칭한 결과를 기계처럼 읊었다.

“안에 싸고 나면 긁어 내야 한다던데.”

“어떻게 먹은 건데 아깝게…….”

상우가 손을 내려 제 구멍 위를 꾹 덮었다. 이거 먹으려고 무슨 고생을 했는데 긁어 낸다니. 새초롬하게 반응하는 상우가 못 견디게 사랑스러워서 재현은 상우의 정수리 위에 코끝을 비볐다. 오늘은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자신이 조금 이상했다. 상우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이렇게 귀엽게 느껴지는 건 확실히 정상이 아니었다.

“……자고 갈 거지?”

당연하다는 듯 물어 오는 재현의 말에 상우가 흐음, 고민하는 목소리를 냈다. 지금 상태로는 집에 가긴 힘들 것 같은데 확신에 가득 차서 물어보니 싫다고 말하고 싶기도 하고.

“자고 가.”

바람이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운 뉘앙스라 상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갑님의 말씀을 제가 어찌 거절하겠나이까. 아직도 구멍 위를 가리고 있던 상우의 손끝에 재현의 손가락이 톡톡 닿아와 두드렸다.

“넣고만 있을게. 안 움직일 테니까.”

이 아저씨가 정말! 상우가 휙 고개를 들어 재현을 노려봤다. 상우의 짜증 가득한 눈빛이 뭐 그리 좋다고 재현은 피실피실 웃고 있었다. 그도 모자라 상우의 말은 제가 원하는 답이 아니면 모조리 막으려는 듯이 쪽쪽, 입술 위에 가벼운 키스를 해 댔다.

“대답해야지.”

아랫입술을 꾹 깨문 상우는 열심히 대가리를 굴려 재현의 품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 냈다.

“……부모님께 외박한다고 말씀드려야 해요.”

이 말은 재현과 떨어지기 위해 한 말이었지, 결코 구멍에 좆이 박힌 채로 엄마에게 전화를 드리려고 했던 말이 아니었다. 재현은 다르게 받아들인 것 같지만.

* * *

누구나 끔찍하게 싫어하는 월요일 아침. 재현은 보통의 월급쟁이들과 다르지 않게 책상 위에 이마를 쿵쿵 찧고 있었다. 다른 게 있다면 재현은 월급쟁이가 아니라 월급을 주는 사장이었고, 월요일이 싫어서 자해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일 뿐.

진짜 미친 게 아닐까. 재현은 자신의 정신 건강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회사는 출퇴근만 하는 곳이라 고민할 시간은 차고 넘쳤다. 지난주에는 자꾸만 꿈에 상우가 야하게 나와서 돌아 버릴 것 같더니만 어젯밤에는 아주 귀여운 모습으로 나와서 저를 돌아 버리게 만들었다.

꿈속에서 눈을 뜨니 상우가 품에 안겨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 봤던 모습 그대로. 꿈인지 현실인지 긴가민가해서 재현은 가만히 상우의 얼굴을 구경했다. 색색 고른 숨을 내쉬며 잠이 든 상우는 마치 꼬마 돼지 베이브처럼 귀여웠다. 어릴 때 그 영화를 보고 어떻게 이런 귀엽고 뽀송뽀송한 돼지를 먹을 수 있냐고 울고불고 난리 쳤었는데. 덕분에 재현의 집에서는 한동안 돼지고기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게 소고기를 더 좋아하는 형들의 못된 농간이었다는 건 다 크고 나서 안 사실이었지만.

손가락으로 매끈한 콧날을 따라 쓸어내리자 간지러웠는지 콧잔등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귀여워라. 재현은 잠든 상우를 살짝살짝 건드리며 어서 잠에서 깨길 기다렸다. 마침내 상우의 속눈썹이 팔랑팔랑 움직였다. 밝은 갈색의 눈동자가 멍하게 재현을 인지하더니 상우의 얼굴 한가득 웃음꽃이 피었다.

이 시점에서 재현은 이게 꿈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재현은 한 번도 상우가 이렇게 아무런 사심 없이 밝게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꼬물꼬물하던 꿈속의 상우가 재현의 등을 꼭 끌어안았다. 게다가 기분이 좋은지 가슴팍에 뺨을 문질러 댔다. 재현은 상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확신했다. 이건 100% 꿈이구나. 지난 토요일 아침에 일어난 현실의 상우는 재현에게 소리를 질렀었다. 당장 이 무식한 몽둥이를 제 몸에서 빼라고.

―사장님…….

애교 섞인 상우의 부름에 재현도 다정하게 대답해 주었다.

―잘 잤어?

조그맣게 끄덕이는 머리통이 귀여워서 재현은 쪽쪽 정수리 위에 입을 맞췄다.

―사장님, 좋아해요.

그 말을 끝으로 재현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지난주부터 이어진 습관대로 속옷 위를 더듬어 본 재현은 자괴감에 빠졌다. 야하게 제 위에서 허리를 흔들던 모습도 아니고 그냥 좋아한다는 말만 들은 건데, 그게 왜 몽정을 할 일이냐! 재현은 애꿎은 제 자지를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내리쳤다.

아침에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라 책상 위에 머리를 처박고 있던 재현이 핸드폰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이상한 꿈을 꿔서 그런지 괜히 상우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밥은 뭐 먹나. 밥 먹을 때 햄스터처럼 양 볼에 음식을 쑤셔 넣고 오물오물하는 게 귀여운데. 뭐하냐고 연락을 해 볼까 하다가도 재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하고 있긴. 학교에서 강의 듣고 있겠지.

혹시나 상우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지는 않을까.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재현은 괜한 기대를 하며 몇 번이나 핸드폰 액정을 켰다가 끄고 다시 켰다. 이건 시간을 확인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오전 근무 시간을 충실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보낸 재현은 노크 소리에 자세를 바르게 앉았다.

“들어와요.”

재현이 호텔과 관련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는 건 본인도, 직원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했다. 문이 빼꼼히 열리고 들어온 얼굴에 재현은 잔뜩 인상을 썼다.

“뭐야. 왜 왔어?”

“오늘 호텔 근처에 올 일 있다고 했잖아.”

“아…….”

“아, 는 무슨. 빠져서는.”

재현과 닮은 얼굴의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사장실 소파 한가운데에 털썩 앉았다.

재현의 둘째 형, 재우였다. 어렸을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으며 주변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후계자로 자란 큰 형, 막내라는 이유로 마음껏 제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재벌이라는 배경 덕분에 비로소 한 사람 몫을 하고 있는 재현과 달리 재우는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알아서 제 살길을 찾아냈다. 그 살길이 합법과 거리가 조금 멀긴 했지만.

삼 형제 중 유일하게 백제그룹의 후광에서 벗어난 재우는 재현과 사이가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큰 형은 재현을 예뻐했지만 세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둘째 형은…… 악마였다. 양지와 음지에 적절히 발을 걸치고 있는 진짜 악마.

재현이 아끼는 장난감은 하나도 빠짐없이 죄다 둘째 형 손에 망가졌었고, 아껴 먹으려고 숨겨 둔 음식은 귀신같이 찾아내서 자기 배 속으로 처넣었다. 빽빽 울면서 대들면 어김없이 응징을 당했는데, 그 응징이 가벼운 꿀밤 정도가 아니라 날아 차기나 풀 스윙의 주먹질이라 꼭 재현이 피를 보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이 됐다.

재현이 어머니에게 울면서 일러 봤자 아들 셋을 키워 낸 강한 어머니는 호호 웃고 말 뿐이었다. 아, 물론 처음에는 재우에게 동생한테 양보해라 같은 말을 몇 번 했지만, 어린애답지 않게 재우가 요목조목 논리를 펼쳐 대는 탓에 어머니도 나중에는 중재하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그래서 재현은 큰 형에게 달려갔다. 그나마 재우의 폭정에서 저를 구해 줄 사람은 큰 형뿐이었다. 재우와 세 살 차이 나는 큰 형은 어김없이 재우에게 똑같은 응징을 내려 주었다.

이런 게 바로 형제들 간의 내리사랑이 아닐까. 큰 형에게 맞아서 엉엉 우는 재우를 구경하며 어린 재현은 힘의 흐름을 깨달았다.

그런 둘째 형을 조금이나마 다시 보게 된 것은 재현이 중학생 때 일이었다. 길가다 고등학생 형들이 가진 돈 있냐고 물어봐서 재현은 쿨하게 지갑에 든 돈을 전부 주었다. 이런 푼 돈을 주고 안전히 귀가할 수 있다면 손해는 아니지, 생각하면서. 그런데 돈을 뺏은 거로도 모자라 뒤통수를 툭툭 치는 바람에 재현도 참지 못하고 같이 주먹질을 했다. 아무리 재현이 또래보다 키가 큰 편이라지만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힘 차이는 이길 수 없었다.

실컷 두들겨 맞고 씩씩거리며 집에 돌아온 재현을 처음 본 사람은 재우였다. 어디서 쥐어 터지고 왔냐고 저를 놀려 댈 줄 알았던 재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재현을 끌고 그 새끼들을 찾아 나선 재우는 멋있게, 돈을 써서, 친구들을 죄다 끌어모아 복수를 해 주었다. 그날 재우가 했던 말을 재현은 평생 잊기 어려울 것이다. 이 새끼는 나만 때릴 거야! 하는 비뚤어진 독점욕. 저는 때려도 남들이 때리는 꼴은 못 보겠다는 건가. 재현은 그 말을 들으며 치를 떨었다.

그 이후에도 재우는 재현이 조금만 엇나가면 부모님께 일러바치기 일쑤였고, 서른이 된 지금도 본가에서 얼굴만 마주치면 서로 욕부터 내뱉었다. 어쩌면 상우가 악마라고 자신을 소개했을 때 재현이 코웃음 친 것은 진짜 악마 같은 새끼랑 같이 자랐기 때문은 아닐까. 그게 평범한 형제 간의 관계라는 걸 이제는 깨달을 만도 했지만, 재현은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얼굴이 왜 그렇게 죽상이냐?”

재우의 물음에 재현은 뺨을 손으로 쓸어 보았다. 평소랑 비슷한 정도의 까칠함이었다.

“뭐가.”

“어? 나 이 얼굴 알아!”

재우가 싱글벙글 웃으며 재현에게 삿대질했다.

“너 스무 살 때 첫 여자 친구한테 차인 다음 날 딱 이 표정이었어.”

재현이 사납게 재우를 노려봤다. 이래서 둘째 형이 싫었다. 꼭 잊고 있던 남의 부끄러운 기억을 다시 꺼내야 직성이 풀리는 작자다.

“차이고 완전 꼴아서 엄마한테 왜 왕꼬추로 낳았냐고 울고불고했던 거 기억 나냐?”

“하…….”

재현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튿날 술 깨서 완전히 넋 나간 표정이랑 지금이랑 똑같네.”

재우가 킬킬거리며 재현을 놀렸다.

“볼 일 다 봤으면 제발 좀 가.”

“어쭈. 형님이 점심 사 주러 왔는데 이 새끼가.”

“필요 없으니까 그냥 가.”

재현이 피곤한 표정으로 꺼지라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사 주기는 개뿔. 어차피 호텔 식당에서 무전취식하고 도망갈 거면서.

한두 번 당한 게 아님에도 재현은 오늘도 재우에게 끌려가 같이 점심을 먹었다. 먹는 내내 재우의 놀림에 체할 지경이었다. 우리 재현이 꼬추가 얼마나 왕꼬추길래 또 차였어? 재현이 꼬추 보고 놀라서 도망갔어? 엄마한테 가서 왜 왕꼬추로 낳았냐고 또 울 거야?

“그런 거 아니야.”

“오, 아니야? 그럼 재현이 왕꼬추 좋아한대?”

젓가락을 쥔 재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응. 존나 좋아해.”

헉. 재현의 대답에 재우가 입을 틀어막았다. 정기행사처럼 대물 때문에 차이고 돌아오는 동생을 놀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드디어 임자를 만난 건가?

“근데 왜 죽상이야? 잘된 거 아니야?”

“그 왕꼬추만 존나 좋아해.”

딱 벌어진 재우의 입이 닫힐 줄을 몰랐다. 제 동생이라 놀릴 만한 거지, 사실 재현은 객관적으로 보기에 여자들한테 잘 먹힐 요소들을 다 갖고 있었다. 형제 중에 혼자만 외조부를 닮아 키가 컸고 얼굴도 엄마의 좋은 유전자와 아빠의 좋은 유전자가 잘 조합되어 사납긴 해도 잘생겼다. 게다가 백제그룹의 삼남이니 최고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귀찮게 장남으로 태어난 형과 달리 돈은 많고 책임질 건 딱히 없으니까.

“……네가 싫대?”

“싫어하지는 않는 거 같은데, 좋아하는 것도 아닐걸?”

그러니까 정액 먹을 때 빼고는 연락도 없지. 재현이 한숨을 쉬었다. 변태 새끼는 지금 저를 까맣게 잊고 룰루랄라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근데 왕꼬추는 좋아한다고?”

“아, 왕꼬추라는 말 좀 그만해. 쪽팔려.”

“그럼 왕꼬추를 뭐라고 하냐.”

“내가 형이랑 프라이버시까지 나눠야 하는 거야?”

재현이 짜증을 냈다. 호오, 요놈 보게나. 재우의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그러니까 사귀지도 않는 여자랑 잤는데 그 여자가 연애할 마음은 없다고 하는 건가? 많이 컸네, 백재현. 원나잇도 다 하고. 재우의 눈에 서른 살 먹은 재현은 여전히 코흘리개 꼬꼬마였다.

“이야. 우리 백재현이 왕꼬추 홀랑 따먹고 버린 그 여자 얼굴 좀 보고 싶다.”

“말 가려서 해. 따먹고 버리고 그런 거 아니야.”

“편 들어 주는 거 보소.”

재우의 능글능글한 웃음에 재현이 몸서리를 쳤다. 평소에 제가 누굴 만나든지 관심도 없었으면서 왜 이런담.

“……계속 만나고 있긴 해.”

재현의 중얼거림에 재우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이거 재밌네? 빨갛게 달아오르는 재현의 귀를 보며 재우는 더 놀리고 싶은 마음에 신이 났다.

“고백했다가 차였어? 엔조이로만 남자고 해?”

“아 씨, 고백을 왜 해! 그만 좀 해!”

고백이라는 단어에 재현이 벌컥 화를 냈다. 상우와 재현은 고백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사이였다.

“네가 그 사람 좋아하는 거 아니야?”

재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재현도 재우를 따라 고개를 기울였다. 좋아한다고? 누가 누구를?

“그런 거 아니면 왜 그렇게 신경 쓰는데?”

쿵. 커다란 바위가 재현의 심장 위로 떨어졌다.

사장님 좋아해요, 꿈속에서 들었던 상우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재현의 귓가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재우 때문에 술 마실 기분도 들지 않아 집으로 곧장 돌아온 재현은 출근해 있는 동안 깨끗하게 치워진 집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현관에 들어온 순간 상우를 집에 데리고 온 첫날 허겁지겁 달려들어 키스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키스를 태어나 처음 해 보는 사람처럼 제대로 입도 못 벌린 주제에 막상 혀를 얽고 나니 진득하게 매달려 오는 게 귀여웠는데. 냉수라도 마시고 정신 차리기 위해 부엌에 가면 오물오물 밥을 먹던 상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보는 사람이 기분 좋아질 정도로 맛있게 먹으면서 끊임없이 감탄사를 내뱉는 게 귀여웠다.

일찍 잠이나 자고 다 잊자는 생각에 침실로 들어가니 온갖 야한 기억들이 재현을 덮쳐 왔다. 다리를 활짝 벌리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할딱거리다가도 재현이 쿡쿡 찔러 주면 자지러지면서 좋아했지. 어디선가 상우의 야한 신음이 환청처럼 들려와 재현은 후다닥 거실로 대피했다. 집안 어디를 가도 상우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재현의 자지는 그 잔상에도 성실하게 반응을 했다.

“진짜 미친 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계속 떠오를 리가 없었다. 이렇게 계속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재현도 잘 알고 있었다. 십 대의 풋풋한 감성도 아니고, 서른 살씩이나 먹어서 이 노골적인 감정조차 알지 못할 리는 없었다. 단지 재현이 인정하기 힘들 뿐. 여러 번 섹스한 상대를 처음 만나서 성욕이랑 관심을 착각하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어젯밤 꿈을 떠올리면 한숨이 푹 나왔다.

소파에 앉아서 멍하게 있던 재현은 마음을 굳히고 변태 새끼라고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신호음이 길어질수록 재현의 마음속이 시끄러워졌다.

[여보세요.]

높낮이 없이 평온한 상우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술렁이던 재현의 마음이 쿵, 소리를 내며 가라앉더니 한없이 고요해졌다. 고요한 마음 한가운데에서 쿵쾅쿵쾅 빠르게 뛰어 대는 심장 소리가 온몸을 두드렸다. 어디선가 원활한 혈액 순환과 발기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본 적이 있었다. 그게 과연 여보세요, 한마디 들었다고 두근거리면서 좆을 벌떡 세우는 것과 상관있을까.

“시발…….”

상우는 난데없이 들려온 욕설에 귀에서 핸드폰을 떼고 까만 액정을 가만히 쳐다봤다. 하얀색 글자로 새겨진 가야 호텔 백재현 사장님이라는 글자는 두 번을 보고 세 번을 봐도 바뀌지 않았다. 지금 전화해서 다짜고짜 욕부터 박은 거야?

[사장님?]

차마 돌았냐고 물어볼 수가 없어서 상우는 재현을 불러 보는 게 전부였다.

“뭐해?”

재현의 낮은 목소리가 상우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이렇게 속삭이듯 말하던 사람이었나?

[그냥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어요.]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재현의 집에서 잘못 가지고 온 게 있나? 상우는 갑자기 욕부터 하고 나서 뭐하냐고 묻는 재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식사할 때 빼고는 평소에 뭐 하고 지내는지 서로 안부를 물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

[무슨 일이세요?]

“그냥. 심심해서.”

재현의 말을 끝으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상우는 혼자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그냥 전화했다니. 그럼 그냥 끊어 주면 안 되나?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상우는 혼자 나불나불 얘기하기 시작했다.

[저 이제 곧 기말이에요.]

“…….”

아, 사장님 제발 제가 뭔가 말하면 맞장구라도 쳐 주시면 안 될까요. 상우는 애달픈 심정으로 말을 이었다.

[전공 하나 잘못 잡아서 완전히 죽어 나고 있어요.]

“왜?”

[영어 강의인데, 교수님이 아이비리그 출신이거든요? 근데 진짜 엄청 어렵게 설명하고 나서 우리가 이해 못 하면, 왜 그걸 이해 못 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말해요. 그래서 교수님도 계속 다시 설명하느라 지치고 우리는 여전히 못 알아듣는데 계속 듣느라 지치고.]

상우가 투덜투덜 교수님을 욕하기 시작했다. 다들 자기처럼 천재인 줄 아나. 공부를 잘하는 거랑 잘 가르치는 건 다른 영역이라던데 완전 공감이에요. 재잘재잘 쏟아 내는 상우의 목소리에 재현은 픽 웃었다. 딱히 열심히 공부해 본 적 없는 재현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는 얘기였지만, 상우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재현은 상우의 투덜거림을 들으며 완전히 발기한 자지를 꺼내 오른손으로 움켜쥐었다. 아마 자신이 교수님 욕을 하는 걸 반찬으로 자위하고 있다는 것을 상우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사장님, 이거 웃긴 얘기 아니에요.]

“알아.”

안다고 말하는 재현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웃음이 섞여 있었다. 재현의 손이 천천히 흔들렸다.

[……사장님은 오늘 뭐 하셨어요?]

“그런 게 궁금해?”

재현의 삐딱한 물음에 상우가 가슴을 쿵쿵 쳤다. 지금 심심하다고 전화 와서 열심히 수다 떨어 주고 있는데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람.

[하나도 안 궁금해요.]

“출근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형이랑 점심 먹고 또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퇴근했어.”

[와…… 사장님처럼 일하고 돈 받는 거면 빨리 회사 가고 싶다.]

“난 사장이니까 이래도 되는 거고 너는 이렇게 일하면 안 될걸?”

굉장히 현실적인 재현의 말에 상우는 말문이 막혔다.

“내일은 뭐 해?”

[학교 가죠, 뭐.]

퉁명스럽게 대답하면서도 상우는 내심 긴장했다. 설마 금요일도 아닌데 벌써 만나자고 하지는 않겠지? 지난 금요일 밤이 떠오르자 무서움과 동시에 은근한 기대가 피어올랐다. 재현과 보내는 밤이 힘들긴 해도 완전히 싫은 건 아니었다. 재현이랑 섹스하고 나면 배도 어마어마하게 부르고, 솔직히 죽을 것처럼 좋았다. 절정과 죽음의 감각은 맞닿아 있다던데. 그 말의 의미를 상우는 벌써 두 번이나 깨달았다.

“그래.”

하지만 재현의 입에서 만나자는 말이 나오지 않아 팍 김이 샜다. 게다가 이제 끊어 버리려고 하는 건지 ‘그럼 이만’이라는 소리를 해 댔다.

[사…… 사장님!]

“왜.”

[음…… 안녕히 주무세요.]

다급히 재현을 부르긴 했지만 차마 먼저 내일 뭐 하시냐고, 만나자고 하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지 않아 상우는 멋쩍게 저녁 인사를 했다. 그 목소리가 귀여워서 재현은 또다시 작게 웃고 말았다. 재현의 자지도 상우의 귀여운 목소리가 좋다면서 투명한 물을 삐죽 내뱉기 시작했다.

“너도 잘 자.”

상우는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잘 자’라니. 그 짧은 말이 뭐라고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변태에 배려심은 제로여도 재현은 상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자 어른의 모습이었다. 잘생기고 키 크고 몸 좋고 돈도 많고. 그리고 자지도 크고. 저도 재현처럼 태어났으면 살 맛이 났겠다 싶어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셨다.

전화를 끊은 재현은 소파 헤드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상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싱숭생숭했던 기분이 확 좋아졌다. 자위하는 게 티 날까 봐 평소보다 말도 엄청 짧았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이제 곧 기말이라고 했는데 공부하느라 저랑 만날 시간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 당장 이번 주 금요일에는 공부할 수 있게 적당히 하고 집에 보내 줘야 하는 건가? 온갖 생각을 하며 완전히 단단해진 좆을 흔들던 재현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후우…….”

탁탁 소리를 내며 재현의 손이 점점 빠르게 움직였다. 그만하라고 울면서 제 어깨를 끌어안던 온기를 떠올리자 사정감이 치솟았다. 문득 어젯밤 꿈속에 상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장님, 좋아해요. 순간 재현의 허벅지가 단단하게 굳어지고 손 위로 정액이 뚝뚝 떨어져 흘렀다.

사정 후 탈력감에 가만히 앉아 있던 재현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두근거림은 확실히 연애 감정에 가깝기는 했지만, 여전히 재현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남자를 상대로 연애할 수 있을까. 상우를 보면서 귀엽다, 예쁘다, 사랑스럽다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그렇다고 사귀는 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재현은 제대로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만나서 밥 몇 번 먹고, 술 몇 번 마시고 호텔로 들어갔다 몇 시간 뒤에 차이는 게 해 왔던 연애의 전부였다. 그러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간지러운 데이트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게 전부였다. 그나마 상우와 영화를 본 것이 인생에 몇 번 없는 평범한 데이트 중 하나였다. 비록 그 데이트의 끝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재현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을 최대한으로 가동해 상우와 사귀는 장면을 그려 보았다. 보통 놀이공원 많이 가지 않나? 우선 동물 머리띠를 하는 상우를 떠올렸다. 얼굴이 뽀얗고 조루니까 흰 토끼 귀가 어울릴 것이다. 음, 토끼 머리띠를 한 상우의 얼굴은 꽤 잘 어울려서 상상할 가치가 있었다. 동시에 언젠가는 바니 코스프레를 하고 섹스해 봐야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토끼 머리띠를 한 상우랑 같이 신데렐라 성 앞에서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제 모습을 상상하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상우 자체는 귀여운데 그 장면에 자신이 들어가는 순간 몸서리가 쳐졌다. 다시 집중해서 상상 속 상우와 저를 회전목마에 태운 재현은 속이 메슥거려 그만 상상하기로 했다.

그래, 이건 너무 유치한 상상이었다. 상우야 푸릇푸릇한 스무 살이니 그런 데이트가 어울리지만, 자신은 그럴 나이가 아니었다. 조금 더 어른스러운 데이트라고 하면…… 남이섬. 재현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드라마에서나 봤던 남이섬을 떠올렸다. 가을이니 낙엽이 소록소록 떨어지는 가운데 통통 걸어 다니는 상우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 속의 상우는 평소처럼 후드티에 백팩을 메고 있었고 여전히 귀여웠다.

상우야, 하고 부르면 돌아보고 토도독 달려오겠지? 이번 상상은 만족스러워서 재현은 씩 웃었다. 드라마에서 보니까 이렇게 달려오면 남자 주인공이 꼭 안아서 빙글빙글 돌리던데. 재현의 산만한 등치의 사내새끼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리는 상상을 하다 눈을 떴다. 한계였다.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무슨 상상이든 상우만 놓고 보면 봐줄 만했지만 제가 끼어드는 순간 분위기가 와장창 깨졌다.

도대체 이게 뭔가. 혼자 고뇌하던 재현은 최대한 기분 좋은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좋아해요, 하던 그 수줍고 사랑스러운 모습. 한풀 기세가 꺾였던 자지가 다시 방긋 웃으며 기지개를 켰다. 재현은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모른 척하는 것도 힘들었다. 나는 변태 새끼를 어떻게 해 보고 싶은 거구나. 그 어떻게가 사귀는 건지, 그냥 섹스인 건지는 몰라도 지금처럼 박고 흔들고 싸고 헤어지는 관계는 확실히 넘어서는 호감이었다.

지금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순간 고백했다 차였어? 하던 재우의 목소리가 재현의 귓가에 윙윙 울렸다. 재현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열 살이나 어린놈한테 사귀자고 매달리라고? 그러기에는 가진 게 너무 많은 재현은 자존심이 팍 상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 상우가 저에게 고백하면 된다. 받아 줄지 말지는 그때 가서 결정하더라도 우선은 상우에게 고백을 받고 싶었다. 꿈속에서처럼 말간 얼굴로 부끄러운 듯이 말하는 그 표정이 보고 싶어졌다.

드디어 명쾌하게 정리가 됐다. 상우가 자신에게 고백하도록 만들면 되는 거였다. 재현은 더없이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소파에서 일어나 정액이 잔뜩 묻은 손을 닦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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