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 : 사장님의 버킷리스트
어두운 집안, 상우는 문가에 서서 재현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재현이 서재라는 곳에 틀어박혀 있는 모습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고뇌에 빠진 철학자처럼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던 재현이 쓰고 있던 종이를 쫙쫙 찢어 흩날렸다. 어찌나 제 세상에 빠져 있는지 상우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게 이렇게까지 고민할 일이냐고요. 상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침실로 돌아갔다. 새벽까지 한참을 고민하다 잠들 기세였다.
계약이 뭐라고. 재현의 기가 막힌 소원을 듣고 나서도 한참 동안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상우가 어디 그 버킷리스트 한번 들어나 봅시다, 하니 재현이 신이 나서 읊기 시작했다.
“결박플도 해 보고 싶고, 바니걸 복장도 입혀 보고 싶어. 딜도 써도 돼? 딜도 싫으면 바이브레이터도 좋아. 사정할 때까지 목구멍 쓰면 네가 힘들까? 아, 노예플. 이건 네가 노예 하는 거로.”
“잠깐. 잠깐만요, 사장님.”
재현이 한 번에 이렇게 길게 말하는 모습이 적응되지 않아 상우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재현을 멈췄다.
“아직 안 끝났는데.”
재현이 사납게 대꾸했다. 네가 말해 보라며.
“하…… 네, 계속하세요.”
“야한 속옷도 입어 봐. 여자 속옷으로. 카섹스는 괜찮지? 그럼 완전 야외에서 해도 돼? 사람 없는 데로 알아볼게. 아예 우리 둘만 들어갈 수 있게 야외플용 땅을 사 둘까? 아, 롤플레잉도 하고 싶어. 선생님이랑 제자는 너무 진부한가? 아니면 의사 선생님이랑 환자? 너는 똥강아지 같으니까 도그플도 어울리겠다.”
기가 막힌 상우가 뭐라고 말할 것처럼 입술을 달싹거리자 재현이 얼른 그 위에 쪽, 입을 맞췄다.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딜 끼어들려고.
“사정 컨트롤 공부해 올게. 너는 춤 배워 와. 스트립쇼 하게. 학원비는 걱정하지 말고. 사실 이거 말고도 떠오르는 건 더 있는데 네가 진짜 싫어할 거 같아서.”
재현이 봐준다는 듯이 말했다.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리스트들이 줄줄 읊어졌는데 이제 와서?
“들어는 줄게요. 일단 말해 보세요.”
“요도 카테터 써 보고 싶어. 스팽킹도 해 보고 싶어. 제일 해 보고 싶은 건 딜도랑 내 자지랑 한 번에 넣어 보고 싶어.”
“셋 다 기각이에요.”
상우가 경멸의 눈빛을 보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특히 마지막 말은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자기 물건 크기를 생각하면 저런 말은 하면 안 되지. 재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그 전에 말했던 것들은 다 되는 거고?”
상우가 이를 악물었다. 너무 많아서 뭐가 있었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가만히 두면 재현이 소원을 핑계로 마음껏 야한 짓을 할 게 분명했다. 뭔가 수를 쓰긴 해야 하는데.
“일단…… 절대 안 할 것들 먼저 정리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쓰리썸, NTR. 이건 네가 하고 싶다고 해도 안 돼. 절대 양보 못 해.”
상우가 눈을 깜빡거렸다. 재현이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하마터면 제가 하고 싶다고 부탁한 줄 알았다. 그래도 재현이 아직은 상식의 테두리 안에 있구나 싶어 상우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말했던 요도 카테터, 스팽킹, 그리고…… 한 번에 두 개 넣는 것도 싫어요.”
“알겠어.”
“그 전에 말한 것들은 한 번에 한 개씩만.”
재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아니지. 노예플이랑 스팽킹이라든가, 아니면 결박플이랑 사정 컨트롤이랑 같이 한다든가. 두 개가 시너지 효과 나는 게 있는데.”
시너지? 그 시너지는 재현에게나 좋은 거였지 상우에게는 절대 아니었다. 상우의 기겁하는 표정에 재현이 스윽 눈치를 봤다. 조금 돌려서 말할 걸 그랬나? 이랬다가 하나도 안 들어주면 어쩌지.
“왜 은근슬쩍 스팽킹 끼워 넣으세요.”
“……아프게 안 할게.”
가만히 노려보는 상우의 눈빛에 재현이 아무 소용도 없는 말을 뒤늦게 내뱉었다. 사람을 밧줄로 묶고 때리는데 그게 어떻게 안 아플 수가 있을까. 상우는 이걸 어디까지 받아 줘야 할지 고민이 됐다. 소원을 이딴 거로 빌었으니 안 들어줄 수는 없을 것 같고. 보아하니 한 번에 하나씩만 할 생각도 없는 것 같고. 가만히 고민하던 상우가 재현에게 타협안을 제시했다.
“그럼 한 번에 최대 두 개까지만.”
재현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리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이를 보이고 웃었다가는 말짱 도루묵이 될지도 몰랐다.
“사장님, 근데……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상우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재현이 말한 것들이 적당히 평범해야지. 괜히 다 한다고 했다가 아파서 엉엉 울고 재현도 재미없어 하면 어떡하지. 그 말을 들은 재현이 상우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마치 연약하고 소중한 보물을 대하듯 조심스러운 포옹에 상우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내뱉은 말들과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다른 거 아니야?
“무조건 잘할 수 있어. 너는 내가 인정한 변태 새끼인걸.”
어휴. 소원을 물러도 되는지 엄마한테 물어보기라도 할걸.
“이건 어때요? 사장님이 꼭 하고 싶은 거만 골라서 세 번까지 테스트해 보는 거.”
상우를 안은 재현의 팔에 힘이 꽉 들어갔다. 싫다는 암묵적인 표현에 상우는 얼른 다음 말을 이어 갔다.
“그 세 번은 무조건 해 드릴게요. 대신 세 번 해 봤는데 도저히 안 될 거 같으면 사장님도 소원 다시 생각해 주세요…….”
“겨우 세 번?”
불만 가득한 목소리에 상우가 생긋 웃었다.
“싫으시면 두 번.”
“아니야. 세 번 좋아.”
이제는 아주 손바닥 위에 저를 올리고 마음대로 주무르는 상우에게 재현이 마지못해 좋다는 대답을 했다. 꼭 하고 싶은 거 세 번이 인생의 마지막 플레이가 될지도 몰랐다. 한 번에 두 개씩은 가능하다고 했으니 총 여섯 개의 플레이를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건데.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조건 신중, 또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중복해서 해도 돼?”
재현은 더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굳이 여러 번 하시려고요?”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아서.”
뭘 어떻게 할 생각인 거지? 순간 상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음대로 하세요.”
뭐. 그래도 한 번 해 본 거 또 하는 게 그나마 적응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까지도 상우를 품에 안고 있던 재현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화장실에 가는 거라기에는 너무 진지한 표정이라 상우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어디 가세요?”
“여섯 개 플레이 고르러 가.”
그게 어디 딴 데 가서 골라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인가? 재현이 너무도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아 상우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도 받았겠다. 방문을 나가던 재현이 갑자기 뒷걸음질 쳐서 돌아와 상우에게 물었다.
“피어싱해도 돼?”
그 세 번 안에 상우의 몸에 제 것이라는 징표 하나는 남겨 놔야 하지 않을까?
“귀에요?”
“아니. 자지에.”
상우가 말끄러미 재현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어이가 없으니 방긋 웃음이 나왔다.
“안 돼요.”
아. 웃길래 되는 줄 알고 기대했더니만. 안 될 줄 알면서 물어봤는데도 아쉬웠다.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은 재현은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 * *
대망의 그날이 밝아 왔다. 며칠 전부터 매일같이 전화해 오늘을 잊지 말라고 어찌나 달달 볶았는지, 상우는 ♡사장님♡ 이라는 글자만 봐도 손이 달달 떨렸다. 상우가 안 오고 도망갈까 걱정이라도 됐는지 재현은 집 앞까지 데리러 와서는 납치하듯 차에 태웠다.
정말 섹스 버킷리스트가 이렇게까지 중대한 일인가. 상우는 진지한 얼굴로 마주 앉아 있는 재현을 빤히 바라봤다.
“내가 엄청 고민해 봤는데.”
재현이 이 일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했다는 사실을 상우도 잘 알고 있었다. 버킷리스트 한번 해 보시라고 처음 말한 날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재현을 기다리다 지쳐 상우가 잠이 든 시간이 새벽 2시였으니까.
게다가 도대체 언제 잔 건지 다음 날 아침에는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하고 싶은 플레이는 많은데 그중 딱 여섯 개만 고르는 건 못하겠어.”
재현의 기다란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톡톡 두드렸다. 아, 그래서 이게 있었구나. 재현이 왜 사다리를 그린 종이를 들고 왔나 했다. 그렇게 고민해서 쓴 내용물이 뭔지 궁금해도 재현이 꼼꼼하게 포스트잇으로 가려 놓은 탓에 볼 수가 없었다.
“하나 골라봐. 오늘은 그거로 결정할래.”
“1번이요.”
1부터 8까지 적힌 숫자를 바라보던 상우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뭘 골라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데 뭐가 걸리든 무슨 상관일까.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울 뿐이었다.
“허어. 성의가 없네.”
성의 없다고 타박하면서도 재현이 실실 웃었다. 사다리 타기를 만든 장본인이니 1번이 무슨 내용인지 알고 있어 보였다.
“사장님, 근데 꽝은 없어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이때다 싶어 상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우기기 시작했다.
“꽝이 사다리 게임의 묘미인데 어떻게 없을 수가 있어요!”
이렇게 나오시겠다. 재현의 눈이 슬그머니 가늘어졌다. 그 모습에 불안해진 상우가 침을 꼴딱 삼켰지만, 어쨌든 지금은 꽝을 사수하기 위해 물러설 수 없었다.
“좋아. 꽝 넣어 줄게. 대신 테스트 횟수 늘리기도 넣어 줘.”
“……몇 번으로요? 네 번……?”
“여덟 번.”
“진짜 양심 없으신 거 아니에요!?”
해 보고 싶은 거 다 해 보겠다는 소리잖아요! 재현이 자기는 상관없다는 듯 의자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싫으면 말아.”
어쩌지. 상우는 눈알을 되록되록 굴리며 고민했다.
“그럼 저도 꽝 말고 하나도 안 하기로 넣어 주세요.”
“소원 들어준다며.”
상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재현이 어림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맞다. 이거 재현이 빈 소원 때문에 하는 짓이었지. 원하는 게 있으면 위험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는 법. 상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자리에서 일어난 재현이 새 종이와 펜을 들고 왔다. 재현이 열 개의 줄을 쭉쭉 긋고서 1부터 10까지 유려한 필체로 적었다.
“꽝 어디에 적을지 골라.”
“럭키세븐.”
도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상우가 7과 이어진 선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횟수 늘리기는 내가 정한다?”
“어디에 쓰시게요?”
펜 끝으로 종이를 탁탁 치던 재현이 마음을 정한 듯 씨익 웃었다.
“행운의 숫자, 4.”
재현의 대답에 상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4를 행운의 숫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보통 불길하다고 싫어하지 않나?
“왜?”
“4가 왜 행운의 숫자예요?”
“몰라. 시험 볼 때 모르는 거 4번으로 찍으면 맞더라고.”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학생인 재현이 고민하다가 결국 4번을 찍는 모습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재현은 어땠으려나. 테스트 8회 진행. 재현이 슥슥 써 내려가는 글자를 지켜보던 상우가 고개를 휙 들었다.
“사장님, 저도 소원!”
갑자기 소원은 무슨. 뭐 하는 건가 싶은 마음과 달리 기대감에 반짝거리는 상우의 눈동자를 마주친 재현은 뭐든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사장님 졸업앨범 보고 싶어요.”
당돌하게 외치는 소원에 재현은 픽 웃어 버렸다. 그런 소원이라면 백 번도 더 들어 줄 수 있었다.
“서재에 가면 졸업앨범 있어. 사다리 그리고 있을 테니까 가서 가져와.”
그 말에 상우는 당장에라도 서재로 뛰어들어 갈 기세로 일어났다.
“보면 실망할 텐데.”
“왜요? 지금이랑 완전히 달랐어요?”
상우는 여드름투성이에 두꺼운 동글뱅이 안경을 쓰고 반삭 머리를 한 재현을 상상해 보았다. 재현이라고 생각하니 약간은 찌질한 모습조차도 귀여울 것 같았다.
“아니. 똑같아서.”
재현이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뭐래. 상우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서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상우야.”
웃음기 섞인 다정한 부름에 상우가 발걸음을 멈칫했다. 돌아본 곳에 있는 재현이 손가락으로 톡톡 제 뺨을 두드렸다. 상우는 당연한 듯 다가가 아직까지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술을 꾹 재현의 뺨에 눌렀다. 그도 모자라 고개를 돌려 상우의 입술 위에 쪽쪽, 두 번이나 입을 맞췄다.
사다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방으로 끌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둥실 떠올랐지만, 눈치 없는 상우는 제 할 일을 다 했다며 서재로 쪼르르 달려가 버렸다.
“사장님 몇 반이었어요?”
책 몇 권 없는 재현의 서재 책장에서 혼자만 툭 튀어나온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찾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재벌들은 다 외국에서 유학하고 오는 거 아닌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니 의외였다.
“찾아봐.”
하여간 뭐 하나 쉽게 알려 주는 법이 없었다. 상우가 팔랑팔랑 졸업앨범을 넘기며 재현을 찾는 동안 재현은 열심히 사다리를 그렸다. 조용한 집 안에 빳빳한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와 사각사각 펜이 움직이는 소리가 울렸다.
“사장님은 왜…….”
아무 말 없이 졸업앨범을 보던 상우가 속삭였다.
“왜 사다리를 그리면서 흥분해요……?”
상우는 여전히 졸업앨범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었다. 선 긋고 글씨 쓰는 건데 왜 달콤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긴. 상우에게 해 볼 플레이들 이름을 적으면서 상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얼마 전에는 상상만 하다가 한 발 빼기도 했는데.
“그것도 맞혀 봐.”
누구 좋으라고 그걸 맞히나. 상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재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재현의 이름을 발견하고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뭐야! 지금이랑 똑같았다며!
“웃어?”
풉, 가리지 못한 웃음이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억지로 끌려 온 사람처럼 뚱한 얼굴을 한 재현은 남들은 단정한 반삭일 때 혼자 이상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이 머리를 뭐라고 부르는지 상우도 알고 있었다. 샤기컷. 덥수룩하게 기른 머리카락이 귀와 뒷목을 가득 덮고 있었다. 어우. 촌스러워.
“사장님, 놀았어요?”
“아니.”
재현이 당치도 않다며 바로 답했다.
“근데 왜 혼자만 머리가 이래요?”
“그때는 그게 유행이었어.”
졸업앨범 찍는다고 머리 기르느라 고생한 걸 생각하면 재현은 지금도 눈물이 다 났다. 학생 주임에게 걸릴까 봐 등교도 새벽같이 하고. 거울 보면서 이 표정 저 표정 연습하다가 ‘아, 나는 무표정이 제일 잘생겼구나!’ 하고 깨달은 시기이기도 했다. 그 이후로 재현은 잘생겨 보이기 위해 기본적으로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래서. 보니까 어때?”
“……귀여워요.”
상우가 힐끗 재현의 눈치를 보며 답했다. 나는 날라리입니다, 하고 티 내는 것도 아니고. 무슨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졸업 앨범을 보여 줬나 싶을 정도로 사진 속 재현은 촌스럽고 웃겼다.
이때 재현과 만났으면 어땠을까. 자신은 고작 9살이었으니 서로 완전히 무관심했으려나. 상우는 제가 초등학생 때 재현은 성인이 되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같이 학교 다녔으면 재밌었을 텐데.”
아쉬운 듯 내뱉는 재현의 말에 상우는 혼자 상상을 하다 몸서리를 쳤다. 매 쉬는 시간마다 재현에게 빵이며 과자를 사다 바치는 제 모습이 저절로 떠올랐다. 같이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차라리 상상 속 동글뱅이 안경을 쓴 재현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만 보고 이제 번호 골라. 다 그렸어.”
재현이 상우의 앞에 놓인 졸업앨범을 쓱 가져갔다. 우리 귀여운 변태 새끼가 잠시나마 재밌다며 웃었으니 보여 준 보람이 있었다.
“음…….”
상우는 재현의 머릿속을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꽝이 어디에 있을까. 7번은 무조건 아닐 것 같았다. 4번은 재현의 행운의 숫자이니 피하는 게 맞았고. 한 번 더 꼬아서 4번을 꽝으로 지정했으려나? 그래. 상우가 절대 4번을 고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꽝에 연결해 놨을 수도 있다.
아까와 달리 쉽게 고르지 못하고 끙끙대는 얼굴이 귀여워서 재현은 계속 웃음이 났다. 어차피 상우가 꽝을 골라도 살살 꼬드겨서 원하는 대로 박아 댈 생각이었다.
“……4번이요.”
상우가 힐끔힐끔 재현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후회 없어?”
“그런 말 하면 반칙이에요!”
재현의 심리전에 상우가 빽 소리를 질렀다.
“4번 확실하지?”
재현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 4번은 꽝이 확실했다. 상우는 확신에 차 고개를 끄덕거렸다. 4번이요, 4번이에요. 4번이 꽝입니다.
4번에 동그라미를 친 재현이 펜으로 사다리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또 7번을 고를 줄 알고 7번을 횟수 늘리기와 연결해 놨는데. 아쉬웠지만 4번도 나쁘지 않았다.
펜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갈 때마다 상우가 꼴딱꼴딱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렸다. 마침내 다다른 곳은 꽝도, 테스트 횟수 늘리기도 아니었다.
글자를 가린 포스트잇을 보며 상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또 5등 한 번 당첨된 적 없는 꽝 운발이라 이번에도 꽝이 걸리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괜히 힘만 뺐다. 재현이 포스트잇을 툭 떼어 냈다. 거꾸로 보느라 내용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상우는 더듬더듬 한 글자씩 읽었다.
“결박플이랑…… 사정 컨트롤…….”
“운이 좋네. 약한 거 걸렸어.”
사정 컨트롤이 뭐지? 싸는 걸 어떻게 컨트롤 하지? 상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약한 거라니 다행이었다.
“이거 아픈 거예요?”
상우의 맹한 질문에 재현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기분 좋은 거야. 자, 이리 와.”
까닥까닥 움직이는 손가락이 괜히 불길했다.
“……흣, 사장님…….”
기분 좋은 거라면서요. 상우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아까부터 흥미로운 표정으로 자지만 괴롭히던 재현은 상우가 사정을 할 것 같으면 모든 움직임을 멈춰 버렸다. 수도꼭지를 잠그듯 뚝 끊겨 버리는 자극에 상우의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손으로 만지고 싶고 다리라도 배배 꼬고 싶은데. 등받이 뒤로 돌려진 손목에는 부드러운 가죽으로 덧댄 수갑이 채워져 있고, 발목은 의자 다리에 묶여 버린 탓에 뭐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장님…… 가고…… 흑, 가고 싶어요…….”
“그래?”
움찔움찔 경련하는 상우의 허벅지를 쓰다듬던 재현이 손바닥 위에 젤을 쭉 짜냈다. 오늘 새로 뜯은 젤인데 마치 한 통을 다 써 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질척하게 젖은 손이 다시 좆에 닿자마자 상우가 잘 움직이지도 않는 허리를 들썩거렸다.
“하윽! 제발……! 으아, 제발 싸게 해 주세요!”
입에서는 절로 제발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재현의 손이 상우의 뽀얀 자지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사정 컨트롤이 그냥 봉사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건 재현의 착각이었다.
상우가 예쁘게 우는 얼굴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재현에게도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재현이 손을 더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이제는 발갛게 달아올라 터질 것 같은 상우의 자지가 움찔거렸다.
“가요, 흣! 저 쌀 거 같아요―!”
이번에는 제발 멈추지 않길 바라며 상우는 열심히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 순간 재현의 손길이 거두어졌다. 조금만 더 하면 분명히 가는데! 자꾸만 뚝뚝 끊기는 자극에 상우가 온몸을 비틀었다.
평평한 배가 항의하듯 꿀렁꿀렁 움직였다.
“흑, 더…… 조금만 더…….”
분출되지 못한 쾌감이 몸 안을 쿡쿡 들쑤셨다. 이러다 잘못되면 어떡하지.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면서 아까부터 잔뜩 고여 있던 눈물이 뚝 떨어졌다. 허공에 좆질을 하던 상우의 움직임이 멈추자 재현의 젖은 손가락이 귀두에서부터 뿌리까지 가볍게 쓸었다. 동그란 음낭을 가볍게 움켜쥐었던 손이 움찔움찔 대던 구멍을 문질렀다.
“손가락 넣어 줄까?”
상우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자지를 만져 주지 않을 거라면 뒤라도 쑤셔지고 싶었다.
“상우는 버릇이 없어. 어른이 물어보는데 고개만 끄덕이지?”
파고들 것처럼 구멍을 꾸욱 누르던 손가락이 거두어 졌다.
“죄송해요! 흐앗…… 죄송해요, 사장님……!”
상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한번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이 툭툭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상우가 허리를 달싹거렸다.
영상에서는 만져 주면 감사하다고 말하게 시키던데. 그렇게까지 시켜도 상우가 따라올 수 있을지 재현은 궁금해졌다. 상우가 마조히스트도 아니고 할 수 있으려나. 괴롭히면서 감사 인사를 강요하면…… 싫어하면서도 결국 하긴 하겠지? 재현은 싱긋 웃었다.
“상우야.”
재현이 상우의 무릎 위에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 그 작은 맞닿음에도 상우는 깜짝 놀라 몸이 펄떡펄떡 튀어 올랐다.
“이제부터 인사는 감사합니다만 하는 거야. 알았지?”
뭐라는 거야. 뭐가 감사한데. 서러움의 눈물이 눈꺼풀 사이를 비집고 펑펑 쏟아졌다.
“제대로 말하면 싸게 해 줄게.”
“흑…… 감사…… 합니다…….”
상우의 감사하다는 말에 재현은 웃으며 젤을 한가득 짜내 양손에 모두 묻혔다. 한 손이 한계까지 부풀어 있는 귀두를 꽉 움켜쥐는 동안 다른 손은 구멍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하으으―!”
멈출 때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다가온 자극에 상우는 뒤로 고개를 젖혔다. 힘줄이 설 정도로 잔뜩 긴장한 하얀 목덜미가 가늘게 떨렸다. 순식간에 치고 올라오는 소름과 닮은 쾌감이 피부를 아프게 찔러 댔다.
“인사해야지.”
“아흐윽―. 감사, 학, 감사합니다……!”
재현의 손이 천천히 천천히 상우의 자지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 속도에 맞춰 구멍에 박힌 손가락도 꼼지락거렸다. 잔뜩 예민해진 탓에 조그만 움직임에도 온몸이 감전된 것처럼 덜덜 떨렸다. 이제는 이게 쾌감인지 고통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둥 전체를 쓸어 주던 손이 점점 위로 올라가 귀두만 깔짝거리자 상우는 혹시라도 재현이 또 만지는 걸 그만둘까 봐 두려워졌다.
“사장님, 하으, 사장님…….”
재현의 손안에 조금이라도 더 닿기 위해 상우는 엉덩이를 점점 의자 위에서 떨어뜨렸다. 제발. 이제 더 참으면 망가질 것 같은데. 제발.
재현이 슬쩍 시계를 바라봤다. 매번 금방 질질 싸버리는 상우가 언제까지 참을 수 있나 궁금했는데 20분 정도가 한계인 것 같았다.
“아흑, 사장님…… 살려 주세요…… 흣…….”
살려 달라는 말까지 하며 우는 걸 보니 더 했다가는 나중에 어마어마하게 미움을 받을지도. 게다가 아직 더 해야 할 일도 남아 있었다. 재현이 상우의 자지 기둥을 힘주어 잡았다.
“아아앗―!”
“상우야, 인사하라니까.”
상우의 정신이 아득해지는 순간에도 재현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아아! 감사! 하윽! 감사합니다……!”
“착하네.”
칭찬과 함께 재현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잔뜩 벌어진 구멍에서도 거칠게 찔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전립선을 콱콱 짓누르는 감촉에 의자에 제대로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다. 발가락은 자꾸만 곱아 들고 손은 제대로 잡히지 않는 의자 등받이를 하염없이 긁어댔다. 가만히 있으면 미칠 것 같아서 상우는 고개를 저으며 몸부림을 쳤다.
“아흐으으―! 아으, 흑―! 아아―!”
재현이 이번에는 끝까지 잡고 있어 준 덕분에 상우의 자지 끝에서 정액이 쭈욱 튀어 올랐다. 오랫동안 참았던 사정의 쾌감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렬했다.
입에서는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가 정제되지 않고 쏟아졌고 눈앞은 깜빡깜빡하는 게 아니라 아예 까맣게 죽어 버렸다. 한 번의 분출로도 모자라 투둑 투둑 계속 정액이 쏟아졌다. 체액이 흐를 때마다 예민해진 요도가 쓰라렸다.
“흐윽…….”
엉덩이를 띄운 채로 사정했던 상우가 마침내 털썩 의자 위에 주저앉았다. 쾌감이 지나쳐서인지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안 아프다면서. 사장님 거짓말쟁이.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죽는 줄 알았는데.
“하으…… 으…… 사장님…… 그만…….”
잔뜩 사정을 마치고 예민한 귀두 위를 재현의 젖은 손바닥이 계속 가볍게 문지르고 있었다. 상우가 몸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만 자유를 찾고 침대에 가서 눕고 싶었다. 딱 한 번밖에 사정하지 않았는데 눕기만 하면 바로 잠들 수 있을 만큼 지쳐 버렸다.
상우는 재현이 몸을 풀어 주기를 기다리며 숨을 할딱할딱 내쉬다가 갑자기 몸을 비틀었다. 가볍게 스치던 손가락이 인정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젤과 체액이 뒤섞여 질척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마찰에 의한 열이 안 그래도 화끈화끈한 귀두를 더 뜨겁게 만들었다.
“흐읏―! 그만, 아앗! 아―! 그만이요―!”
재현의 커다란 손이 귀두만 집중적으로 흔들었다. 쾌감은커녕 바늘로 찌르는 것같이 날카로운 아픔에 상우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마저 지르지 않으면 그대로 기절할 것 같았다. 아니, 차라리 기절하고 이 끔찍한 쾌감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쳐도 재현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더 해 달라 그럴 때는 멈추더니 그만하라니까 끈질기게 흔드는 손에 상우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설상가상으로 구멍을 쑤시고 있는 손가락이 전립선을 꾹꾹 누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식은땀이 삐져나왔다.
“아으! 싫어―! 흐으윽! 싫어요―!”
덜커덕 덜커덕 상우가 앉아 있는 의자가 흔들렸다. 아까 온갖 얄미운 말을 다하던 재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상우가 무슨 말을 하든 입을 꾹 다문 재현만 남았다.
“흐읏! 아아! 사장님, 사장님!”
상우는 정신없이 재현을 불렀다. 차라리 아까 못 싸게 괴롭힐 때가 더 참을 만했다. 억지로 끌어올려지는 쾌감에 상우는 벌벌 떨면서 애원했다.
“그만―! 사장님, 그만해요―! 하악―, 학! 죽을 거 같아―! 아흑―!”
고통의 너머에 죽을 듯한 쾌감이 있는 걸까. 몸부림을 치던 상우가 움직임을 탁 멈추었다. 미처 소리조차 지르지도 못하게 덮쳐 온 쾌감과 회음부에서부터 무언가 터져 나오는 감각에 온몸이 경련하듯 잘게 떨렸다. 자지 끝에서 무언가 저절로 쭈욱 짜올려졌다. 그게 오줌인지 정액인지 부끄러워할 틈도 없었다. 튀어오른 투명한 체액이 재현의 옷까지 적시며 계속 흘러내렸다.
“흐으으…… 으흐으…….”
제대로 된 말도 나오지 않아 상우는 목을 울리는 앓는 소리만 내며 제 아랫도리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주니어야, 내가 미안해. 저런 나쁜 놈이랑 붙어먹어서 내가 미안해.
재현의 손가락이 살살 달래 주듯 상우의 자지를 쓸어 주었다. 상우는 더 고개를 들고 있을 힘도 없어 툭, 의자 등받이에 뒤통수를 기댔다. 비참하게도 여태껏 맛본 적 없는 쾌감의 여운이 몸 구석구석을 채워 나갔다. 이런 강도의 쾌감에 익숙해지면 다시는 평범하게 섹스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마침내 재현의 손이 자지에서 떨어졌다. 구멍에 박혀 있던 손가락도 천천히 빠져나갔다. 상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가만히 새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목에 감겨 있던 끈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다리를 들어 재현을 뻥 차 줄 힘도 없었다.
젖혀진 고개 위로 재현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마 위를 가볍게 문지르는 입술은 평소처럼 다정했다. 코끝에도, 아직 숨을 헐떡이는 입술 위에도 눌러지는 말캉한 감각에 상우는 소리 없이 눈물만 주륵 주륵 흘렸다.
“너무 예쁘다, 우리 상우.”
만족감이 가득 서린 목소리에 상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었다.
“백재현…… 이 나쁜 놈아…….”
달칵. 손목에 채워져 있던 수갑도 벗겨졌다. 마침내 자유를 찾았지만 상우는 손가락 하나도 까닥할 수가 없었다.
“흑…… 기분 좋은 거라 그래 놓고…….”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눈꼬리를 타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재현은 아무 말 없이 상우의 팔을 들어 제 목을 감싸게 했다. 흑흑거리면서도 상우는 재현이 시키는 대로 몸을 기댔다.
달콤한 냄새가 짙게 풍겼다. 재현이 아기 안듯 상우를 안아 들자 휘적거리던 다리도 허리에 꼬옥 감겼다. 닿아 오는 재현의 옷이 축축했다. 왜 젖었는지 떠오르자 잠깐 멈췄던 눈물이 다시 도르르 굴러떨어졌다.
“사장님 진짜 나쁜 놈이에요…….”
재현이 토닥토닥 상우의 엉덩이를 두드려 주었다. 제가 생각해도 나쁜 놈이 맞는 것 같았다.
“응. 내가 나빠.”
순순히 인정하는 목소리에 상우는 더 서러워져서 재현의 어깨에 눈가를 부볐다.
“미안해.”
거기에 사과까지……! 상우는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기는 재현에게 꼭 매달렸다. 잘생겼으니까 이번엔 봐준다. 졸업앨범 같은 머리만 하고 있었어 봐. 절대 안 봐주고 발로 팡팡 차 줬지.
상우를 폭신한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눕힌 재현이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어둠 속에서도 반질반질 빛이 나는 통통한 입술이 귀여웠다.
“상우야, 미안.”
“……네.”
차마 괜찮다는 말은 도저히 나오지 않아서 상우가 조그맣게 대답하며 이불 속으로 꼬물꼬물 파고들었다. 오늘은 진짜 기절하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따뜻하고 푹신한 이불이 누르는 무게가 온몸의 긴장을 풀어지게 만들었다.
스르르 눈이 감기고 곧이어 등 뒤로 재현이 침대에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뒷목에 부드럽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도 솔솔 잠을 불러왔다.
“진짜 미안해. 오늘 못 재울 거 같다.”
구멍 위를 문지르는 뜨거운 귀두와 재현의 낮은 속삭임에 반쯤 잠들었던 상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 뭐, 이 나쁜 놈아!? 미안하다는 게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거였어!?
* * *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상우는 혼자 나름대로 공부했다. 방학 기간에도 공부하고 있으려니 짜증이 왈칵 밀려 왔지만, 재현이 하는 대로 뒀다가는 진짜 섹스하다 죽은 시체로 발견될 것 같았다.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끔찍한 세계가 펼쳐졌지만 그나마 건진 것도 있었다.
“세이프 워드?”
재현이 잔뜩 인상을 찡그렸다.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달려온 재현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상우에게 초밥을 먹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직 정장을 입은 채로 얼굴을 구기는 재현은 누구 하나 때려죽일 것같이 무서운 얼굴이었다. 다행히 품 안에 안겨 있는 상우는 재현의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네. 이게 제가 정말 한계일 때 외치면 멈춰 주는 브레이크 같은 거래요.”
상우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이프 워드가 뭔지 몰라서 물어본 건 아니었는데. 재현은 일단 상우가 세이프 워드를 외칠 만큼 극도로 몰아갈 생각이 없었다.
진짜 SM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라 이건 그냥 바닐라들이 변태 행위를 하는 거에 가까우니까. 게다가 세이프 워드를 정하고 나면 엄살쟁이인 상우가 조금만 이상해도 빽빽 외쳐 댈 게 뻔했다.
이걸 어쩐담. 재현은 품속에 끌어안은 상우의 어깨 위에 턱을 지그시 누르며 물었다.
“세이프 워드 뭐로 정하고 싶은데.”
“음…….”
상우가 고민하는 목소리를 냈다. 세이프 워드라는 좋은 제도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지까지 공부하지는 않았다.
재현은 상우의 입술 위에 초밥을 톡톡 두드렸다. 이제는 당연한 듯 입을 아―, 벌리고 오물오물 받아먹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기특하든 괘씸하든 귀여운 건 귀여운 거라 재현은 초밥으로 가득 차 볼록거리는 뺨 위에 가볍게 입술을 눌렀다. 이대로 가다간 밤새도록 고민할 기세라 재현은 힌트를 주었다.
“보통 성욕이 싹 식는 단어들로 만들긴 하지.”
“자지 절단, 전자 발찌, 이런 거요?”
와. 그거 진짜 효과적일 것 같은데. 한창 섹스하는 도중 저런 단어를 듣는다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 후둑 돋았다.
“너무 갔는데, 그건.”
“으음…… 성욕이 싹 식는 단어…….”
상우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재현의 성욕을 식게 만들려면 어지간한 단어들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예를 들면, 맛없는 음식이라던가.”
“아.”
상우가 오물오물 움직이고 있던 입을 멈췄다.
“왜. 초밥 이상해?”
갑자기 떠오른 끔찍한 기억에 멈춘 것뿐인데 재현은 비린가? 하고 상우의 입에 넣으려고 기다리던 초밥을 제 입속으로 쏙 넣었다.
“엄청 맛없는 음식…….”
“맛 괜찮은데?”
“……김치볶음밥…….”
순간, 재현이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탁, 테이블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초밥에 정신이 팔려 놓치고 있었는데, 우리 변태 새끼가 지금 엄청 맛없는 음식=김치볶음밥이라고 한 건가? 허어.
“뭐?”
흉흉한 목소리에도 상우는 기죽지 않고 대답했다. 이제는 사장님에게 진실을 알려 줘야 할 때였다. 혀가 마비될 정도로 단 김치볶음밥을 먹었던 게 얼마나 대단한 행동이었는지. 진실한 사랑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었다. 제가 사장님을 이만큼이나 좋아한다고요.
“세이프 워드 ‘사장님이 만든 김치볶음밥’이요.”
“맛있다고 그랬잖아.”
상우가 팔짱을 꼈다. 호기롭게 말하기는 했지만, 저절로 자기방어적 태도가 취해졌다.
“사장님 솔직히 맛 안 봤죠? 그거.”
“봤는데?”
뭐? 맛을 봤었어? 그래 놓고 저에게 다 먹으라고 그 난리를 친 거였어? 어이가 없어진 상우는 꼭 안긴 품에서 몸을 바르작거리며 돌리고 재현을 바라봤다.
완전히 심기 불편한 얼굴을 한 재현이 지금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잘못한 사람은 사장님인데 왜 내가 쫄아! 그러면서도 팔짱을 끼고 있던 상우는 공손히 팔을 풀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사장님 입맛에는 괜찮았어요……?”
상우는 힐끔 재현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아니?”
단박에 튀어나온 대답에 상우가 입을 딱 벌렸다. 뭐가 이렇게 당당해! 재현은 상우의 입술이 벌어진 게 초밥을 넣어 달라는 건 줄 알고 내려놨던 젓가락을 들어 장어 초밥을 쏙 넣어 주었다. 괘씸한 놈이지만 잘 먹여 놔야 힘내서 밤새도록 섹스하지. 지금 기분으로는 장어 초밥은 죄다 상우에게 먹여야 할 것 같았다. 너무 괘씸해서 곱게 재워 주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상우는 입안에 들어온 초밥을 꼭꼭 씹었다. …… 역시 사장님네 호텔 초밥 최고.
“사장님……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니에요?”
우물우물 씹으며 열심히 말하는 게 귀여워서 재현은 통통한 입술 위에 쪽 입을 맞췄다. 아차. 지금 이럴 분위기가 아닌데. 상우가 귀여울 때마다 뽀뽀하던 습관이 안 좋은 타이밍에 나왔다.
“입에 있는 거 다 먹고 말해.”
다정하게 닿아 온 온기와 달리 매정한 말에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상우가 갑자기 입을 크게 벌렸다. 으깨지다 만 음식물이 빨간 혀 위에 남아 있었다. 흥. 이거 보고 비위나 상해라. 하는 짓이 초등학생 뺨치는 수준이었다.
그래 봤자 상우가 하는 짓은 재현에게 아무런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재현은 망설임 없이 벌려진 상우의 입술 위에 제 것을 겹쳤다. 내가 인마, 어? 너 자지도 빨고, 어? 뒷구멍도 빨고, 어? 내가 그런 사람이야, 임마!
생각지도 못한 키스에 오히려 상우가 깜짝 놀라 혀 위를 돌아다니던 음식물을 꼴딱 삼켰다. 말캉한 살덩이가 상우의 입안에 굴러다니는 밥알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기어코 혀 위에 남아 있던 몇 톨을 찾아서 가져가고, 어금니에 으깨지다 남은 찌꺼기를 훑고, 그도 모자라 어디 숨어 있는 건 없나 뒤지듯 목구멍 깊숙이까지 혀를 밀어 넣었다.
“으응…….”
달콤한 냄새와 달콤한 맛. 그리고 진짜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달콤한 행동. 재현의 달콤한 공격을 이겨 내지 못한 상우는 눈을 감은 채 작게 목을 울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더러운 짓을, 하고 생각하는 것도 잠시. 재현이 쏟아 내는 달달함이 상우를 온전히 뒤덮었다.
마음껏 입안을 헤집던 혀가 물러나고서도 상우는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할딱거렸다. 재현이 좋았다. 깨닫고 나니 가슴이 벅찰 정도로 좋았다.
“사장님…….”
“응.”
다정하게 대답하는 목소리도 좋았다.
“진짜 좋아해요…….”
“김치볶음밥은?”
아무리 재현이 좋아도 산통을 깨는 말투는 싫었다.
“그건 싫어요. 맛없었어요.”
더럽게 단 김치볶음밥의 맛이 떠오르자 상우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근데 왜 맛있다고 했어.”
재현이 취조를 시작했다. 슬그머니 눈을 떴던 상우는 비난 가득한 재현의 눈초리에 되록되록 눈을 굴려 시선을 피했다.
“사장님이 열심히 만들어 주셨으니까요.”
다 사장님 기분 좋아지라고 한 일입니다. 이런 걸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한다고요! 재현이 김치를 뭉개 가며 고생하는 걸 뻔히 봤는데 거기서 어떻게 맛없다고 말하겠는가.
“내가 열심히 만든 거랑 거짓말한 거랑 무슨 상관이야.”
어휴. 그럼 그렇지. 재현은 쉽게 넘어가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 어떻게 답해야 재현이 기분을 풀까. 혼자 고민하던 상우는 문득 짜증이 났다.
생각해 보니 지옥에서 쳐들어온 맛인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다 먹으라고 강요했던 건 재현이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 건 재현인데 왜 제가 이렇게 저자세로 나가야 하는지 억울해졌다.
“솔직히 사장님도 맛없었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기특하지도 않으세요?”
상우를 빤히 바라보는 재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우리 변태 새끼, 이제 언성도 막 높이네.
아무 말 없는 재현을 보며 상우는 이 기세를 몰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상우가 손바닥으로 제 가슴을 팡 내리쳤다.
“사장님을 위해서!”
또다시 팡.
“그 맛없는 김치볶음밥을!”
이번에는 팡팡, 두 번이었다.
“맛있는 척하고 먹었는데!”
기특하지 않냐고요! 하는 말은 재현의 손에 막혀 버렸다. 씨익 한쪽 입꼬리만 억지로 끌어올리는 걸 보니 잘못 건드린 것 같았다. 상우는 얼른 깨갱 하고 꼬리를 내렸다.
“……죄송해요……?”
재현의 손을 끌어내린 상우는 일단 사과를 하고 봤다. 비록 이게 맞는 말인지 확신이 없어 말꼬리가 올라가긴 했지만.
“죄송하지?”
상우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암요. 죄송하고말고요.
“거짓말한 것도 맞지?”
“그게……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열심히 포장해 봤지만, 재현은 이미 제가 듣고 싶은 말만 듣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어쨌든 거짓말한 거네.”
“……네.”
상우는 얌전히 대답했다. 여기서 더 대들어 봤자 본전도 못 찾을 게 뻔했다.
“나쁜 어린이네, 상우는.”
“어린이는 아닌데요…….”
상우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어쩐지 무언가 크게 잘못된 기분이었다.
“나쁜 어른이면 더 큰일이네.”
“……사장님…….”
상황이 이상하게 굴러가는 것 같아 상우는 최대한 불쌍한 척하며 재현을 바라봤다.
“벌, 받아야겠지?”
상우의 눈이 동그래졌다. 벌이요? 제가 뭘 했다고 벌을 받나요? 아연실색한 상우와 달리 재현은 건수 하나 잡았다는 듯 싱긋 웃었다.
“오늘 두 번째 테스트할까?”
상우의 입술이 가늘게 떨리며 벌어졌다가 다시 닫혔다. 항의를 해야 하는데 차마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없었다. 여기서 잘못 입을 벙긋했다가는 다가올 미래가 두려워졌다. 그래서 상우는 덜덜 떨며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살려…… 살려 주세요.”
재현의 손가락이 엉덩이를 가볍게 스칠 때마다 상우는 흠칫흠칫 몸을 떨었다. 아, 뭐하자는 건데. 제대로 만져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만지는 것도 아니고. 닿을 듯 말 듯하게 쓸어내리는 온기는 간지럽기도 하고 소름이 돋기도 했다.
애매모호하게 건드리는 재현도 신경이 쓰였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지금 이 자세였다. 침대에 걸터앉은 재현의 무릎 위에 혼자만 홀딱 벗은 채 불편하게 엎드린 이 자세.
몸에 힘을 풀면 재현의 단단한 허벅지에 가슴께와 아랫배가 꾸욱 눌려 상우는 자꾸만 발을 꼼지락거리며 의미 없이 버텨 댔다. 손으로 잡을 곳이 마땅치 않은 게 불안했다.
그 와중에도 재현이 폴폴 풍겨 대는 달콤한 냄새에 주니어는 바짝 일어나 있었고. 몸을 움츠릴 때마다 자지 끝에 닿아 오는 빳빳한 정장의 질감이 기묘하게 수치심을 자극했다.
말랑한 살 위를 배회하던 손가락이 부드럽게 상우의 꼬리뼈를 문질렀다.
“하아…….”
한숨처럼 터져 나온 목소리가 귀여워서 재현은 그만 웃을 뻔했다. 웃으면 안 되지. 지금 벌주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재현의 손은 상우가 더 귀엽게 소리를 낼 만한 곳을 향해 미끄러졌다. 지금은 새초롬하게 닫혀 있지만, 잠시 후면 한계까지 벌어져 자지를 삼킬 그곳.
여태껏 방치되어 있던 구멍에 손가락이 닿자, 상우는 간신히 바닥에 닿고 있는 발가락을 애처롭게 밀어내며 몸에 바싹 힘을 주었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어떻게 파고드는지, 어디를 꾹 눌러 주는지 이미 잘 알고 있는 구멍이 기대감에 오물거렸다.
“사장님…….”
그러나 기대와 달리 입구를 동그랗게 문지르기만 하는 움직임에 상우는 조르는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잔뜩 굳어진 허벅지가 바르르 떨리고 색색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평소처럼 달려들 듯 먹어치워 주지. 왜 애를 태우는 거야.
도무지 넣어 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재현의 움직임에 몸이 달아오른 상우는 은근히 허리를 뒤로 밀었다. 재현이 넣어 주지 않는다면 제가 넣으면 된다.
짝―. 그 순간 재현의 손바닥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상우의 엉덩이를 내리쳤다.
“힉―!”
예상치도 못하게 찾아온 고통은 준비되지 않은 몸과 마음을 날카롭게 후려 갈겼다. 전에도 갑자기 엉덩이를 맞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앗!’ 하고 깜짝 놀랄 정도였다. 이번에는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꽉 조여진 엉덩이 근육이 경련할 정도로 긴장하고 손바닥과 맞닿은 부분은 후끈후끈 열이 올라왔다.
지금 나 때린 거야? 미친 거 아니야!? 너무 놀라서 자지도 흐물흐물해질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아픔이 지나간 자리로 뒤늦게 찾아온 수치심이 온몸을 헤집었다. 아무리 재현에 비해 열 살이나 어리다고는 해도, 어엿한 성인인데 발가벗고 엉덩이를 맞는 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밖이었다. 통증과 부끄러움이 한데 뒤섞여 벌떡 일어나려는 상우의 등을 재현이 손으로 꾹 눌렀다. 어딜.
“상우야, 너 벌 받는 거야.”
“시, 싫어요―! 안 때린다고 했잖아요!”
스팽킹 안 한다며! 상우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다리를 바동거렸지만, 재현의 힘에 막힌 몸은 그대로 엎드린 채 발만 제자리에서 미끄러졌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벌 잘 받으면 상 줄게.”
아직도 맞은 곳이 화끈거리는데 이런 벌을 받고 나서 뒤늦게 상을 주는 게 무슨 소용인가!
상우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요. 벌도 안 받고 상도 안 받을래요!”
상우의 다급한 목소리와 달리 재현이 느긋하게 상우의 엉덩이를 문질렀다. 손바닥 모양대로 빨갛게 달아오른 뽀얀 엉덩이가 야하게 흔들렸다. 건들기만 해도 아픈데 이렇게 몇 대를 더 맞으라고! 절대 싫었다. 아픈 건 질색이었다.
어지럽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고개를 젓는 상우를 재현은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았다. 스팽킹은 진짜 아닌 건가? 한쪽 엉덩이만 붉게 물들인 채 자지를 받아먹으면 귀여울 텐데.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재현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상우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만한 핑곗거리가 뭘까.
“으음…….”
때리는 데 이유가 있으면 안 되지. 잠시 고민하던 재현은 결국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기로 했다.
“딱 열 대만 맞자.”
아, 뭐라는 거야! 싫다니까! 상우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재현을 올려다보았다. 실실 웃고 있을 줄 알았던 재현은 평소보다 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꼴딱. 절로 마른침이 삼켜졌다.
“사장님, 진심이에요?”
정말 열 대나 때리시려고요? 상우의 울망울망한 눈빛을 마주 바라보던 재현은 손을 번쩍 들었다. 상우의 질문에 하나하나 다 대답해 주다 보면 아무것도 못한 채 오늘 밤이 그냥 지나가 버릴 것이다.
다가올 아픔이 두려워 상우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
짝―.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마음의 준비를 해서일까. 아까만큼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고통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히려, 미묘하게 전율하는 쾌감이 살갗을 타고 올라왔다. 꾸욱 감겨 있던 눈앞에 파랗고 빨간 점들이 톡톡 튀었다.
“흐으…….”
꽉 깨문 이 사이로 나오는 목소리도 마냥 고통만 들어차 있지 않았다. 눈치 빠른 재현은 제 맘대로 실룩샐룩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재빠르게 단속했다. 여기서 웃어 버리면 벌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게 뻔했다.
“잘 참네, 우리 상우.”
다정하게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상우는 바르르 등을 떨었다. 아프고 수치스러운 건 맞는데, 그 목소리를 들으니 이상하게도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상우는 아픔에 무너져 있던 무릎을 세워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재현에게 더 칭찬받고 싶었다. 이 기묘한 마음이 뭔지 더 알고 싶어졌다.
짝―. 재현의 손바닥이 세 번째 내리쳐졌다.
“아흣―!”
상우의 매끄러운 등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지탱할 곳이 없는 손은 침대 끄트머리를 간신히 붙잡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달콤한 냄새가 한층 더 깊어졌다.
열 대 말고 다섯 대만 때린다고 할걸. 뒤늦은 후회가 재현을 덮쳐 왔다. 열 대를 다 때릴 때까지 상우의 구멍에 자지를 처박지 않고 참아 낼 자신이 없었다. 고통과 쾌락의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상우의 뒷목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하, 미친. 재현은 당장에라도 고개를 숙여 그 위에 더 빨간 잇자국을 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아 냈다. 허벅지를 쿡쿡 찔러 대는 뽀얀 자지를 한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싶었다.
벌컥 일어나는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재현은 상우의 벌겋게 달아오른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으읏―!”
상우가 가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 몸짓이 결코 거부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재현도, 상우도 알고 있었다.
“상우는 맞는 것도 좋은가 보네.”
단내에 섞여든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달콤하게 상우를 비난했다.
“아니…… 아니에요…….”
구멍을 잔뜩 움찔거리며 아니라고 대답해 봤자 의미 없는 반항이었다.
“아니야?”
짝―. 재현의 손바닥이 살갗에 닿는 순간 상우의 자지 끝에서 맑은 물이 뚝 떨어졌다. 아픔을 뒤덮는 명백한 쾌락이 몰려 왔다. 뭐지. 분명 처음에는 아파서 진저리가 쳐졌는데. 문득 차라리 혀를 잘라 내고 싶게 매운 음식을 좋아하던 인수의 말이 떠올랐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고. 매운맛은 혀의 통점을 자극하는 통각이라고. 그리고 통각으로 뇌를 속여 엔도르핀을 분비해 결국 쾌감으로 이어진다고.
“하아…….”
만족스러운 한숨이 상우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새어 나왔다. 재현이 자신을 더 한계까지 몰아붙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 생각이 무서워서 상우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상이 아니었다. 이런 고통과 맞닿은 쾌감은 이상했다.
“사장님…….”
상우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재현을 불렀다.
“응.”
간결하고 무미건조한 대답조차 달콤하게 느껴졌다.
“저…… 무서워요.”
재현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상우의 하얀 등 위에 쪽쪽, 입술을 눌렀다. 싫어요, 아파요, 같은 말이 아니라 무섭다니. 고통이 쾌감이 되는 이 순간을 무섭다고 말하며 우는 목소리를 내는 게 미칠 듯이 귀여웠다.
“상우야, 진짜 좋아해.”
동문서답 같은 대답이었지만, 그 말이 상우의 불쑥거리던 마음을 달래 주었다. 내가 이상해도 사장님은 나를 좋아하는구나.
“다행이다…….”
짙게 내려앉는 달콤한 냄새에 상우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이제는 버티지 않고 재현에게 몸을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카로운 고통 뒤에 달콤한 쾌락이 찾아온다는 것을 사장님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
짝―. 또 한 번 파고드는 손길에 상우는 소리를 참으며 몸을 웅크렸다. 이제는 고통이 섞이지 않은 소리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리고 아까부터 오른쪽 엉덩이만 때리는 재현의 손길이 못마땅해졌다. 화끈거리는 오른쪽 엉덩이와 달리 왼쪽 엉덩이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상우는 몸을 뒤척거리며 왼쪽 골반을 위로 올려 소리 없는 항의를 했다. 여기도. 여기도 만져 주세요. 그 몸짓의 의미를 알아챈 재현이 낮게 웃었다.
“욕심부리면 안 되지.”
욕심이라니. 으응, 하고 불만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재현은 몸을 숙여 상우가 조금 높게 들어 올린 왼쪽 엉덩이를 꽉 깨물었다.
“아앗―!”
때리는 것과는 또 다른 아픔에 상우가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몸을 비틀었다. 한쪽은 빨갛게 부어오르고 다른 한쪽은 선명하게 잇자국이 남은 모습이 도저히 참기 힘들 정도로 야했다.
“상우야.”
상우를 부르는 재현의 목소리가 습했다. 상우의 갈비뼈 근처에 닿아 있는 재현의 자지는 옷 속에 갇혀 있는데도 뜨겁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저를 올려다보는 상우의 눈매가 쾌락에 젖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만해야 될 거 같아.”
재현은 이제 한계였다. 고작 다섯 번밖에 안 때렸는데,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먼저 세이프 워드를 외칠 것만 같았다.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상우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재현을 올려다보았다. 재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플레이를 못했나? 혼자만 즐겨서 짜증이 났나? 상우의 마음속으로 온갖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제가 느꼈던 달콤한 냄새가 착각이었나 싶었다.
“씨발. 존나 꼴려서 더 못 참을 거 같아.”
재현은 본심을 고백했다. 이제 그만 꿈틀거리며 저를 먹어치울 상우의 안에 자지를 처박고 마음껏 흔들어 대고 싶었다. 상우가 중간에 포기하는 상황은 예상했어도, 제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만하자고 말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잔뜩 긴장했던 상우는 재현의 말에 푸스스 웃으며 몸을 늘어뜨렸다. 뭐야. 난 또 뭐라고. 상우는 더듬더듬 손을 뒤로 뻗어 부어올랐을 것 같은 제 엉덩이를 문질렀다. 마찰열에 뜨거워진 왼쪽 엉덩이와 방치됐던 오른쪽 엉덩이의 온도가 확연히 달랐다. 양손으로 엉덩이를 잡은 상우가 재현을 부추겼다.
“사장님…….”
조그마한 부름과 함께 슬그머니 벌어지는 틈새로 붉은 구멍이 움찔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 진짜 어디까지 날 몰아붙이려고. 재현은 고개를 들고 하얀 천장을 가만히 바라봤다.
우리 귀여운 변태 새끼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가만히 몰아쉬는 숨도 너무 진득하게 느껴졌다.
사실, 재현은 벌을 준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다. 스팽킹을 하다가 제대로 못 따라오면 상우를 묶어 놓은 채 방치할 생각이었고, 그마저도 못하겠다고 울면 바이브레이터로 괴롭힐 생각이었다.
하지만 모든 계획은 상우가 예쁘게 우는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상우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냥 뜨겁고 습한 상우의 안에 자지를 쑤셔 박고 싶다는 열망이 재현을 뒤덮고 말았다.
“아앗―, 사장님―!”
재현의 힘에 침대 위로 엎드린 채 내팽개쳐진 상우는 깜짝 놀라 재현을 불렀다. 침대 시트가 흠뻑 젖을 정도로 젤을 흠뻑 뿌렸던 평소와 달리 우악스럽게 마른 구멍을 꾸욱 눌러 대는 손가락에 왈칵 겁이 났다.
아무리 흥분을 해도 젖을 리 없는 입구도 긴장으로 꼭 입을 다물었다.
“하…….”
재현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낮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음은 급해 죽겠지만 그렇다고 상우를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젤을 어디에 뒀더라.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봐도 눈앞에서 살랑거리는, 한쪽만 발갛게 달아오른 엉덩이에 정신이 팔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재현은 황급히 상우의 엉덩이를 벌리고 그 사이로 입술을 묻었다.
혀를 내어 오밀조밀하게 닫혀 있는 주름을 핥자 움찔, 온기를 반기듯 입구가 떨려 왔다.
“으응…….”
재현의 애타는 마음을 알 리 없는 달콤한 목소리가 울렸다. 미친. 진짜 어쩌려고 이렇게 몸짓 하나하나 야하게 구는 거지. 재현은 뜨거운 혀를 세워 파고들 것처럼 구멍을 꾸욱 눌렀다. 숨을 쉬는 것처럼 벌름거리던 입구가 재현의 혀끝을 꽉 깨물었다. 재현은 더듬더듬 균열 사이로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구멍은 손가락 하나쯤은 이제 익숙하다는 듯 냉큼 잡아먹었고 매끈한 내벽이 꿈틀거리며 반겨 왔다. 이제는 바로 찾을 수 있는 곳에 상우를 몸부림치게 할 스위치가 있었다.
“하윽―!”
재현이 익숙하게 그 지점을 누르자 상우의 몸이 덜덜 떨려 왔다. 인정사정없이 전립선을 공략하는 손가락도, 달래듯이 입구를 문지르는 혀도,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달콤한 냄새도 모두 상우를 힘들게 만들었다. 하얗게 번지는 머릿속이 무서워서 상우는 엉금엉금 앞으로 기어 갔다.
지나치게 기분이 좋으면 두려움이 밀려들어 한없이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러나 오히려 질척거리는 소리 사이로 손가락이 하나 더 비집고 들어왔다. 구멍을 벌리는 손가락과 그 사이로 내장을 핥을 듯 깊게 들어오는 재현의 혀.
상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끝에 걸린 베개를 끌어안고 우는 소리를 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장님…… 흣, 사장님…….”
아까는 차라리 잡아먹을 것처럼 만져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잡아먹힌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두려워졌다. 평소처럼 얄미운 말이라도 하면 덜 겁날 것 같은데. 짐승처럼 달려드는 모습이 무서워서 상우는 손을 뻗어 재현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 작은 항의의 몸짓에 재현도 덜컥 움직임을 멈췄다. 간신히 뒤를 돌아보는 말간 얼굴은 정욕과 두려움이 잔뜩 뒤섞여 곧 눈물을 펑펑 쏟아 낼 것 같아 보였다.
재현은 그제야 크게 숨을 한 번 내뱉고 상우의 몸을 가득 덮었다.
“응.”
귓가에 울리는 다정하고 낮은 목소리에 상우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사장님…… 무서워요…….”
조그맣게 내뱉어진 목소리에 재현은 작게 웃었다. 상우의 무섭다는 말은 ‘사장님이 만든 김치볶음밥’보다 더 확실한 세이프 워드였다. 뽀얀 엉덩이를 때릴 때도 상우의 무섭다는 말 한마디에 참지 못하고 등허리에 입술을 눌러 댔다. 이번에도 재현의 부드러운 입술이 상우의 눈꺼풀 위에 꾹 문질러졌다.
관자놀이를 스친 입술은 뺨에도, 코에도 잊지 않고 살그머니 부딪혔다. 구멍을 헤집고 있던 손가락이 천천히 상우를 달랬다. 제가 얼마나 상우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지, 할 수만 있다면 배를 갈라서 보여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뭐가 무서워.”
내가 옆에 있는데. 재현의 비어 있는 손이 상우의 허리를 꼭 끌어안자 상우가 털썩, 몸을 무너뜨렸다. 손가락을 천천히 빼낸 재현이 그 옆에 누워 가만히 상우를 지켜보았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상우가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파르르 파르르 떨렸다. 그러다가 제 무섭다는 말 한마디에 성욕을 꾹 억누르는 재현이 재미있는지 애써 싱긋 웃어 보였다. 엎드린 채 눈을 마주치고 배시시 웃던 상우가 꼬물거리며 몸을 돌리고 재현의 품에 안겼다.
“잡아먹히는 것 같아서…….”
소곤소곤 속삭이는 목소리도 예쁘지. 재현은 사랑해 마지않는 몸뚱어리를 꽉 끌어안았다. 이렇게 예쁜 걸 눈앞에 두고 가만히 있으려니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왔다. 벌을 주기는커녕 제가 벌을 받는 기분이었지만, 그 벌이 너무 달콤해서 재현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상우의 긴 다리가 재현의 허리 위에 걸쳐졌다. 아직 벗지 않은 재현의 와이셔츠 위에 비비적거리던 얼굴을 떼어 낸 상우가 재현의 입술에 쪽 작게 입을 맞췄다. 그거로 부족했는지 또다시 쪽, 말캉하게 닿아온 입술이 떨어지지 않은 채 웅얼거렸다.
“……이대로 넣어 주세요. 얼굴 보면서.”
상우가 빼꼼 혀를 내어 재현의 입술을 핥았다. 타액으로 젖은 구멍 위에 흉흉하게 일어선 자지만 꺼내 문지르던 재현이 살풋 인상을 찡그렸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처박고 싶어도 상우가 아프다고 우는 얼굴을 떠올리면 몸이 절로 멈춰졌다.
“아직 다 안 풀렸을 텐데.”
“괜찮아요.”
재현의 옷 위로 상우가 발딱 일어선 자지를 슬금슬금 문질렀다. 어쩐지 지금이라면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아파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은 구멍 사이를 비집고 재현의 두꺼운 귀두가 머뭇거리다가 꾹 눌러 오자 기대감에 가득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으…….”
양심 없는 크기의 자지는 구멍을 빠듯하게 벌리며 천천히 미끄러졌다. 아래를 빼곡히 채워 나가는 감각보다 간신히 참고 있다는 듯 잔뜩 찡그려진 재현의 얼굴이 너무 야해서 상우는 최대한 터져 나가겠다고 아우성치는 소리를 참아 냈다.
미간 사이에 잡힌 주름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감긴 두 눈도, 이를 악무느라 딱딱하게 굳은 뺨도 모두 너무 사랑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읏―.”
한계까지 벌려진 구멍 끝에 까슬한 음모가 닿아 왔다. 울렁거리게 배 속을 가득 채운 자지가 안에서 잘게 꺼떡거렸다.
“사장님…… 사장님.”
상우의 부름에 재현이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뭐야. 상우의 얼굴을 마주한 재현이 후다닥 상우를 끌어안고 제 품에 얼굴을 묻게 만들었다. 왜 또 울려고 그래. 상우가 눈가를 발갛게 물들인 채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어 재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픈가? 평소보다 덜 풀어 주고 들어간 게 문제였나? 너무 조급하게 밀어 넣었나? 재현의 마음이 시끄럽게 들쑥거렸다.
“많이 아파?”
빼야 하나 고민하는 것도 잠시, 상우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솔직히 아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재현이 걱정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흐으…… 좋아한다고 말해 주세요…….”
하. 재현의 짧은 숨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간신히 간신히 억눌러 참고 있는 저를 자극하는 말들을 견디기에는 이미 인내심의 한계였다. 좋아한다고 말해 달라니. 재현은 품에 폭 안긴 작은 머리통 위에 입술을 꾹 눌렀다. 숨을 내쉴 때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상우야, 좋아해.”
반짝 고개를 든 상우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가득했다. 재현은 도톰한 입술 위에 쪽, 입을 맞추며 몸을 빙글 돌려 상우의 위로 올라왔다. 이마를 마주한 채 천천히 자지를 끌어내자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입구가 자지를 꽉 조이며 물어 댔다. 어찌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는지 상우는 재현의 자지에 솟아오른 힘줄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재현이 뽑아낸 자지를 다시 느긋하게 밀어넣자 상우가 통통한 입술을 벌리고 숨을 할딱할딱 몰아쉬었다. 그 위로 포개어진 재현의 입술이 어르고 달래듯 부드럽게 문질러졌다.
“으응…….”
나름대로 제 몸 생각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건데. 그게 불만인 건지 상우는 재현의 허리에 다리를 감은 채 허리를 들썩거리며 졸라 댔다.
이렇게 감칠맛 나는 거 말고. 더 세게 박아 줬으면. 아까 전처럼 고통과 쾌감 사이에서 정신없이 허우적거리고 싶었다. 세게 박아 달라고 말만 하면 재현이 들어줄 걸 알면서도 그 말이 부끄러워서 상우는 재현의 옷깃을 꼭 쥔 채 입술만 달싹달싹하다 말았다.
그런 마음도 모르는 재현은 그저 상우의 몸 이곳저곳에 입술을 누르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사장님…….”
애매하게 전립선을 꾹 누르고 천천히 빠져나가던 재현이 상우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죽을 거…… 같으니까…… 이제 제발 좀…….”
제대로 움직여 달라는 애원의 끝이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다 말아서 상우는 용기를 내 재현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귓가에 조그맣게 속삭여진 목소리에 재현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어 버렸다.
“세게 박아 주세요.”
우리 귀여운 변태 새끼가 뭘 바라는지 몰랐던 제 탓이었다. 상우의 분부대로 재현의 뒤로 물러났던 재현의 허리가 콱 무게를 실어 박혀 들었다.
“하악―!”
상우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신음이 터졌다. 다시 한 번 빠져나갔던 자지가 전립선을 꾹 밀어 올리며 위로 치고 올라오자 상우는 재현의 목을 끌어안은 팔에 꽉 힘을 주었다. 그래. 이 기분이었다. 몸 안을 잔뜩 휘몰아쳐서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
재현의 허리가 점점 빠르고 강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상우의 허리가 자연스레 들어 올려졌다. 찍어 내리는 듯한 재현의 움직임에 상우는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다.
“아흑! 학, 사장님, 으읏―! 거기, 흑, 거기 좋아요―!”
상우에게 목을 끌어안긴 상태로 자지를 박아 넣는 게 힘들 법도 했지만, 재현은 크게 개의치 않고 상우의 이마에 쪽쪽 입을 맞추며 물었다.
“여기? 후, 여기 좋아?”
재현이 물어보며 허리를 흔들 때마다 닿기만 해도 자지러지는 곳이 강하게 눌렸다.
“으응―! 조, 하악, 좋아요……!”
한참 전부터 흐르던 프리컴은 이제 구부려진 상우의 가슴 위에 고여서 몸을 타고 주륵 흘러내렸다. 도저히 참기 힘든 재현의 움직임에 상우는 쌀 거 같다고 말도 하기 전에 툭툭 정액을 뿌려 댔다. 허리가 들린 채로 몸을 부르르 떨며 사정한 탓에, 자지 끝에서 떨어진 정액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상우의 얼굴 위로 흩어졌다.
“하아…… 존나 야하다.”
재현은 고개를 더 깊숙이 숙여 상우의 뺨을 타고 흐르는 정액을 핥았다. 약간은 비릿한 그 맛이 재현에게는 달콤함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상우는 한번 사정하고 나면 그 여운이 끝날 때까지 잠깐 기다려 주는 걸 좋아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재현의 자지가 다시 상우의 안을 헤집었다. 정신이 없어서 듣지 못했던 질척거리는 소리에 상우의 가느다란 신음이 섞여들었다.
“으읏…… 하으, 저 이러다 죽어요…….”
죽기는. 재현은 엄살쟁이인 상우의 내벽을 콱 짓누르며 혼자 웃었다. 지난번에는 죽을 거 같다고 하더니만, 이번에는 이러다 죽는다고 울며 매달리는 게 귀여웠다. 어찌 됐든, 여태껏 몇 번이나 해 댔는데 상우는 잘만 살아 있었다.
역시 재현이 인정한 변태 새끼답게 방금 사정한 상우의 자지가 전립선에 직격으로 꽂히는 자극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힘들다고 울먹거리면서도 뽀얀 자지를 잘만 세우는 게 귀여워서 재현은 사정없이 상우의 안을 휘저었다.
“아으윽……!”
상우가 온몸의 근육을 단단히 굳히면서 바들바들 떨어 댔다. 사정없이 조여 오는 구멍에 재현도 버티지 못하고 몇 번에 거쳐 정액을 울컥울컥 쏟아 냈다. 가만히 숨을 고르던 재현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여 상우의 좆 상태를 살폈다. 아무리 전립선을 집중 공략했다지만, 방금 사정한 것치고도 너무 빠르게 또 정액을 쏟아 낸 게 아닌가 싶었다.
“음…….”
재현의 입술 사이로 미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거, 그건가? 드라이 오르가슴. 상우의 뽀얀 성기는 사정하지 않은 채로 파르르 파르르 떨고 있었다. 하. 미친. 이 정도면 야함의 절정이라고 생각했던 상우의 몸은 매일같이 재현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장면을 보고도 멀쩡한 놈이 있으면 그건 고자지. 상우는 빼내지도 않은 채 제 안에서 꺼떡거리며 부피를 더 키우는 재현의 자지에 기겁하며 도리질했다.
“사장님! 김치볶음밥! 김치볶음밥! 김치, 읍―!”
그러나 열심히 정했던 세이프 워드는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재현의 입속으로 먹혀 들었다.
* * *
“방학 끝나기 전에 여행 갈까?”
재현이 상우의 우물우물 움직이는 뺨을 꾸욱 누르며 물어봤다. 잘 먹는 게 귀엽기는 한데, 내 말을 씹는 건 곤란하지. 재현은 대답 없는 상우의 뺨을 또 꾸욱 눌렀다. 손가락 끝을 타고 잔잔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러다 꼴딱 음식물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진동도 느껴졌고.
“어디요?”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데. 상우는 재현이 만들어 준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었다. 세이프 워드를 사장님이 만든 김치볶음밥으로 한 게 어마어마하게 자존심 상했던 건지 다시 배워 오겠다며 몇 날 며칠 동안 집에 부르지도 않고 김치볶음밥 수련을 하셨다.
회사는 나갔나 몰라. 상우는 재현이 김치볶음밥 마스터라도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뽀뽀도 포옹도 없이 차려진 김치볶음밥은 다행히도 꽤 맛있었다.
“글쎄. 어디가 좋을까. 날이 추우니까 따뜻한 데로 갈까? 몰디브나 하와이?”
그게 무슨 신혼여행지람. 상우는 잽싸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휴양 여행은 좀 늙은이 같은가? 그래. 한창 빨빨 돌아다니면서 여행할 나이이긴 하지. 재현은 다시 선택지를 주었다.
“뭐 보고 돌아다니는 게 좋아? 런던이나 뉴욕으로 갈까?”
상우가 또 고개를 저었다. 뭐지. 너무 먼가? 곧 개학이니 유럽이나 미국은 무리일 수도 있었다. 진작 가자 그럴걸.
“일본 온천 갈래?”
상우가 김치볶음밥을 입에 넣으며 말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재현의 인내심은 짧고 가늘어서 금방 똑 끊기고 말았다.
“박상우, 똑바로 말 안 하지.”
갑자기 스산하게 낮아진 목소리에 상우는 눈동자만 되록되록 굴려 재현의 눈치를 봤다. 왜 죄다 해외인 건데.
“그게 아니라…… 저 여권 없는데요…….”
민망한 듯 말하는 목소리에 재현은 큰 충격을 받았다. 여권이 없다니. 그거 태어나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신분증 중 하나 아니었나. 기억조차 나지 않을 때부터 부모님과 형들 손을 잡고 해외를 드나들었던 재현에게는 여권이 없다는 상우의 말이 제대로 와 닿지 않았다.
“여권이 없을 수가 있어?”
“놀리지 마세요.”
상우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주변 동기들도 스무 살 되고 처음 해외 배낭여행 가는 경우가 많은데. 재현이 꼭 기본도 안 된 놈처럼 자신을 생각하는 것 같아서 조금 섭섭해졌다.
“아무튼, 그래서 해외는 못 가요.”
괜히 숟가락으로 김치볶음밥을 꾹꾹 누르고 있자니 재현이 옆에서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국내 여행이라. 상우를 데리고 국내 여행 갈만한 곳이 어디 있지? 떠오르는 게 골프장밖에 없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둘이 같이 갈 만한 별장이 어디 어디 있더라.
“꼭…… 여행을 가야 해요……?”
상우가 힐끔힐끔 재현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여행, 좋지. 하지만 이상 한파 소리가 나올 정도로 날씨도 춥고, 이것저것 챙기는 것도 귀찮고. 무엇보다 재현의 집에서 알콩달콩 붙어 있는 게 약간은…… 신혼부부 같아서 괜히 몽글몽글한 기분이었다. 여행 가는 것보다 그냥 여기서 뒹굴거리고 싶은데.
상우의 물음에 재현이 팍 인상을 썼다. 싸웠을 때 집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하던 상우가 저절로 떠올랐다. 세상에 집돌이도 이런 집돌이가 없지. 상우가 나돌아다니는 걸 귀찮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려 ‘처음으로’ 여행 가자는 제 말에도 싫다고 할 줄이야! 재현은 괜히 혼자 들떴다가 병신 된 기분이었다.
“왜. 왜 가기 싫은데.”
아, 망했다. 재현의 목소리에 기분 나쁨이 뚝뚝 묻어났다.
여기서 사실대로 귀찮다고 이실직고했다가는 분노로 날뛰는 재현을 소환하게 될 텐데. 상상만으로도 상우는 그런 재현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매섭게 쏘아보는 눈빛에 쫄아 적당한 핑곗거리가 뭐가 있을까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래서 나오는 대로 내뱉은 말이.
“……돈이 없어서요?”
가만히 말을 멈추었던 재현이 하, 참나, 하고 기가 막힌다는 듯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 변태 새끼는 제가 지금 누구랑 사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애초에 재현은 단 한 번도 상우에게 돈을 쓰게 한 적이 없었다. 여태까지 잘만 받아먹어 놓고. 핑계를 대도 좀 그럴듯한 걸 대야지. 상우가 생각 없이 한 말이 재현의 분노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상우야.”
당장 죄송하다고 말할까 말까. 상우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런 분위기일 때는 닥치고 죄송하다 머리 박는 게 최고이긴 한데, 지난번에 죄송하다는 말을 잘못 꺼냈다가 엉덩이를 맞은 걸 떠올리면 함부로 막 할 말도 못됐다.
지금 죄송하다고 하면 재현은 분명히 꼬투리를 잡아서 이것저것 괴롭힐 기세였으니까.
“솔직하게 말해 봐. 왜 가기 싫어?”
재현이 무서운 얼굴로 상우를 살살 꼬드겼다. 그런 생각이라면 표정이라도 온화하게 풀고 말하던가! 상우는 재현의 말 뒤에 숨겨진 ‘좋은 말로 할 때 제대로 대답해라.’ 하는 의미를 냉큼 눈치챘다. 재현의 기분을 풀어 줄 말이 필요했다.
“사장님이랑 집에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걸요.”
상우는 최선을 다해 방긋방긋 웃었다. 집, 최고! 제발 먹혔길 간절히 기도했건만.
“아…… 한마디로, 귀찮다?”
어휴. 그러면 그렇지. 이미 제 마음 상태를 눈치채고 떠본 거였군. 상우는 이제 포기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재현이 여행에 끌고 가면 끌려가는 거고, 여권을 발급받으라고 하면 발급받는 거고. 살처분을 기다리는 가축의 심정으로 가만히 재현을 바라보고만 있자 잘생긴 입술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이 아저씨, 또 악마 같은 생각하나 보네. 그로 모자라 달콤한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했다. 악마 같은 생각이 야한 건가 보네!
“집에 있는 것도 충분히 귀찮을 수 있는데.”
상우의 귓바퀴를 만지작거리는 재현의 몸에서 왈칵 단내가 쏟아졌다.
롤플레잉이란 무엇인가. 상우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재현의 서재 방을 치우면서. 상우가 야동에서 봤던 롤플레잉은 야한 옷을 입고 침대 위에서 야한 말을 하다 결국엔 야한 짓으로 넘어가는 거였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야함은 한 숟가락도 섞여 있지 않았다.
메이드 복이 없다며 알몸에 앞치마만 두르게 한 것까지는 이해가 갔다. 그다음은 야한 말을 하다 야한 짓으로 넘어가야지! 실제로 평생을 집안일을 도와주는 분들과 함께 자라온 재현에게는 메이드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그래서 상우는 지금, 앞치마만 입은 채 진짜로 집안일을 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많이 봐줬다는 듯 서재만 정리하라고 거들먹거리는 재현의 감시를 받으면서.
“사장님…… 이거 어디에 둬요?”
여기가 서재인지 게임방인지. 구석구석 흩어져 있는 게임 타이틀이 책보다 더 많았다.
“사장님 아니고.”
“네, 주인님. 이 게임 타이틀은 어디에 꽂을까요?”
상우가 한숨을 폭 내쉬었다. 주인님이고 나발이고 집에 있는 것도 귀찮게 해 주겠다는 소리가 이런 의미일 줄이야. 상우는 진짜 하인처럼 부려먹는 재현은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만 까닥까닥 움직이고 있었다.
“제일 오른쪽 위에서 두 번째 칸.”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꽉 들어찬 책꽂이의 두 번째 칸을 향해 손을 뻗자 갑자기 방을 채우고 있던 달콤한 향이 밀도 높아졌다. 도대체 왜? 어디서 흥분하는 건데? 어이가 없어진 상우가 뒤를 돌아 봐도 재현은 그냥 무표정으로 빤히 마주 바라볼 뿐이었다. 이대로는 안 됐다. 계속 이 상태로 있다가는 서재 정리에 모든 체력을 쏟아부을 판이었다.
종종걸음으로 재현의 앞에 다가간 상우가 풀썩 무릎을 꿇었다. 상우에게도 나름대로 쌓아 온 지식이 있었다. 베이지색 면바지 위에 뺨을 비비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재현을 올려다보자 미동도 없던 뺨이 움찔 떨렸다.
“주인님…… 이제 청소 말고 딴 거 해요, 우리.”
재현의 몸에서 울컥울컥 쏟아지는 단내에 숨을 쉬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이거 정답이었나? 기다란 손가락이 상우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딴 거 뭐 할까?”
뭐긴, 뭐예요!
“……야한 거요.”
상우는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든 재현의 손가락이 제 몸을 일으키고 무릎 위에 앉힐 때까지 작전에 성공한 줄 알았다. 정말로.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는 손길은 다정했고, 뺨 위에 문질러 지는 입술은 따뜻했고, 상우를 감싸는 달콤한 냄새는 이보다 더 진할 수 없었다. 책상 서랍을 드륵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까지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고 있었다.
차가운 젤이 쭈욱 엉덩이골을 타고 흘러내렸을 때는 조금 놀라 몸을 흠칫 떨었지만. 평소 같으면 이것저것 말하고 예뻐해 줬을 텐데 다짜고짜 젤부터 짜는 게 좀 이상하긴 했어도, 상우는 제 작전이 성공했다고 믿었다.
“사장님.”
“쉬이―. 사장님 아니라고 했잖아.”
거참. 롤플레잉 같지도 않은 거 하면서 호칭에 되게 집착하네.
“……주인님.”
풀어 주지도 않은 구멍 끝에 차갑고 딱딱한, 이질적인 물것이 닿아 왔다. 손을 내려 뭔지 확인하려고 해도 재현에게 꽉 붙잡히는 바람에 끙끙대며 안겨 있는 게 전부였다.
“상우야, 힘 풀어.”
손가락으로 풀어 주지도 않은 구멍을 밀고 동그란 것이 쑥 밀려들어 왔다.
“흐읏―!”
뭐냐고 항의하기도 전에 들어온 것은 재현의 손가락에 밀려 깊숙한 곳으로 꾸욱 밀려들었다.
“이게…… 이게 뭐예요?”
음. 아직 안 닿은 건가. 재현은 상우의 말을 들은 척 만 척 하며 손가락을 휘저어 안에 든 것을 조금씩 움직였다. 이쯤 이었던 거 같은데.
“아흐……!”
품 안에 안긴 상우가 몸을 꿈틀댔고, 예쁘게 입혀 놓은 네이비 색 앞치마에 가려진 자지가 천천히 두꺼운 천을 들어 올렸다. 아이고, 귀여워라. 당장에라도 엎어 놓고 처박고 싶었지만, 재현은 상우랑 꼭 한번 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질척한 소리를 내며 빠져나온 손이 토실한 상우의 엉덩이를 도닥거렸다.
구멍 안에 뭘 넣었는지 몰라서 당황한 건지 기다란 속눈썹이 파들파들 떨려 왔다.
“자, 옷 입자. 저녁 먹으려면 장 보러 가야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에 상우가 기겁하며 재현을 바라보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는지 반쯤 벌려진 입술이 무언가 말하려고 달싹거리다가 할 말은 찾지 못하고 닫혔다. 아니, 지금 안에 넣은 건 뭔데!
“시켜…… 먹어요. 싫어요. 안에 넣은 거 빼 주세요…….”
재현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며 애교를 떨어 봐도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평생 마트 한번 가 본 적 없을 거 같은 사람이 갑자기 무슨 장을 보러 가자고 그래! 불길했다. 지금 몸 안에 넣은 게 뭔지는 몰라도, 안 하던 짓을 하러 가자 말하는 거 보니 좋은 꼴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오늘은 귀찮은 날이니까 네가 요리도 해야 해, 상우야.”
하. 상우는 누가 재현을 잡아다 놓고 메이드물 롤플레잉 야동을 50편쯤 보여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어느 야동에서 롤플레잉 한답시고 집 정리, 장보기, 요리를 진심으로 시키는가.
싫다고 바둥바둥하는 상우를 억지로 일으킨 재현은 누가 주인이고 누가 하인인지 모르게 속옷부터 니트와 청바지까지, 그리고 상우가 입고 온 패딩까지 직접 입혀 주었다. 중간중간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 게 씹어먹고 싶을 만큼 귀엽긴 했지만, 대의를 위해 이 정도의 인내는 필요한 법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상우는 다시 한 번 느꼈다. 제가 언제 싫다고 울먹거렸냐는 듯이, 재현의 집 앞 체인 슈퍼마켓에 도착한 상우는 신이 났다. 의외로 몸 안에 들어간 건 그냥 그대로 잘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약간의 불편함만 느껴질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상우는 재현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자신을 귀찮게 만들기 위해서 장을 보러 나온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르륵 카트를 밀며 재현은 이것저것 집어 드는 상우를 흐뭇한 마음으로 구경했다. 처음부터 요리할 생각은 없었던 건지 카트 안으로 밀어 넣는 것들은 죄다 데우기만 하면 되는 간편 조리 식인 게 웃기기도 했고. 카트 안에 3분 미트볼과 스파게티 소스, 스파게티 면을 넣으며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이는 게 너무 귀여워서 재현은 잠시 계획을 미룰까 고민도 했다.
“사장님, 아이스크림 사도 돼요?”
상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한겨울에 아이스크림이라.
“사고 싶은 거 다 사.”
원하면 이 매장 자체를 사 줄 수도 있는데 아이스크림 정도로 허락을 구하다니. 저를 기특하게 바라보는 재현의 눈빛을 받으며 상우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로 종종 달려갔다.
상우가 낮은 냉장고 문을 열고 원하는 아이스크림을 찾기 위해 허리를 숙인 순간.
“히익―!”
작은 신음과 함께 상우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모서리를 잡고 있는 손에는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하얗게 손가락 마디가 불거져 있었다. 구멍 안에서 잠자코 있던 정체불명의 것이 부르르 진동하며 예고도 없이 전립선을 자극하는 바람에 굽어진 허리를 도저히 펼 수가 없었다.
“상우야, 왜 그래?”
걱정의 말치고는 재현의 목소리가 아주 평화로웠다. 정말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내뱉을 수 없는 느긋한 말투로 상우의 속을 뒤집은 재현이 천천히 다가와 상우의 등을 쓸어 주었다.
“흣, 으…… 사장님, 안에…….”
간신이 고개를 돌린 상우의 눈매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응, 안에 뭐?”
“미…… 쳤어요?”
시치미를 뚝 뗀 재현이 상우의 어깨너머로 아이스크림 냉장고 안을 둘러보았다.
“먹고 싶은 게 없어? 가는 길에 베스킨라빈스라도 들를까?”
악마였다. 악마가 따로 없었다.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달콤한 향이 진동하는 것을 보니 이미 재현은 처음부터 이럴 계획으로 나온 것 같았다.
“꺼 주세요…… 얼른.”
항의하는 목소리도 바르르 떨려 왔다. 상우의 말에 어깨를 으쓱한 재현은 입술을 귓가에 바짝 붙여 오더니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직 1단계야. 10분에 한 단계씩 올릴 거니까 빨리 집에 가는 게 좋을걸?”
이게 1단계라고? 기겁하며 간신히 몸을 일으킨 상우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한 발자국 움직였다. 시끄러운 매장 소리에 묻혀 진동하는 소리는 안 들렸지만 온몸의 신경이 한 곳으로 모여들어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어쩐지. 당연히 차로 마트에 갈 줄 알았던 재현이 그냥 걸어서 갈 수 있는 집 앞 슈퍼마켓에 가자 그럴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제 와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진동이 더 올라가기 전에 얼른 집에 가는 게 상책이었다.
“집…… 후, 집 갈래요.”
애써 심호흡을 하며 말한 상우는 끊임없이 전립선을 잘게 흔드는 이물질에 제대로 걷기 어려워 재현이 밀고 있는 카트를 꽉 움켜쥐었다. 나는 인어공주다. 사악한 마녀에게 목소리를 빼앗기고 두 다리를 얻어 육지로 올라왔지만 걸을 때마다 칼 위를 걷듯 아픈.
상우는 인어공주의 마음을 통감하며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에도 안쪽에서 징징 울려 대는 것이 위치를 조금씩 바꿔 가며 상우를 괴롭게 만들었다.
상우의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카트를 밀던 재현이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불쌍해서 이만 꺼 주려나 싶은 마음에 돌아본 상우를 향해 재현이 물었다.
“맥주 사 갈까?”
재현은 마녀보다 더 나쁜 놈이었다. 안절부절못하는 상우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무뚝뚝한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집…….”
길게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집에 가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더니, 일단 어떻게든 시간을 벌려는 재현을 끌고 계산대로 가는 거부터 막혀 버렸다. 상우의 대답을 들어 놓고도 재현은 맥주 매대 앞에 서서 몇 종류 없는 맥주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맥주 종류가 많아졌네.”
상우는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카트를 붙잡고 가만히 서 있었다. 엄마. 만약 내 계약이 파기된다면, 오늘 내가 사장님을 칼로 찔러서 그런 거야. 아무리 우리 집이 먹고 살기 빠듯해도 사식은 넣어 주겠지. 맥주 몇 캔을 골라 돌아온 재현이 손목시계를 힐끔 봤다.
아쉽게도 아직 10분이 지나지는 않았다. 또 어디서 시간을 끈담. 천천히 걸어가던 재현은 평소에는 절대 입에 대지도 않던 과자 매대에 멈췄다.
“과자 사 갈까?”
“흐윽…….”
살짝 벌어진 상우의 입술 사이로 울음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조금 더 하면 진짜 울어 버릴 것 같아서 재현은 쓰윽 눈치만 보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뒤뚱뒤뚱 걸어가는 뒷모습이 아기같이 귀여워서 꼭 끌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아직 10분이 지나지 않았지만, 재현은 코트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단계를 하나 올렸다. 이제 진동에 익숙해질 때가 됐으니까.
“읏―!”
간신히 걸어가던 상우가 걸음을 덜컥 멈추고 가만히 서서 숨을 골랐다. 카트 손잡이 위에 올라간 손이 파들파들 떨려 왔다.
“상우야, 너무 티 내면 사람들이 알아봐.”
걱정스레 건넨 재현의 말에 뒤를 돌아본 상우의 눈망울에 원망이 가득했다. 상우에게 미움을 받는 게 이렇게 짜릿한 일일 줄은 몰랐다. 재현에게 말해 무엇 하나 싶어 상우는 다시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롱패딩을 입고 나와 다행이지. 전립선을 규칙적으로 때리는 진동에 바지 속 자지도 불편할 정도로 부풀어 올랐다.
계산대 앞으로 와서도 제일 줄이 긴 곳에 자연스럽게 선 재현을 노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당장 입을 열면 억지로 삼켜 내고 있는 신음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아무리 노랫소리와 사람들 말소리로 매장이 시끄럽다지만 진동 소리가 들릴까 봐 걱정이 됐다.
“걱정 마. 소리 안 들려.”
상우에게 걱정을 안겨 준 재현이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를 해 댔다. 그냥 카드로 계산하면 될 것을. 재현은 굳이 현금 계산을 하고 현금 영수증까지 발행했다. 아마 이렇게 알뜰살뜰한 재벌 3세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어디 아픈 사람처럼 상우는 장본 짐을 든 재현의 팔을 붙들고 낑낑대며 걸어갔다. 몸 안에서 굴러다니던 이물질이 가끔 자지러지는 곳 위에 정통으로 위치할 때면 도저히 걷지 못하고 멈춰 서곤 했다. 그나마 겨울이라 빨리 어두워져서 다행이지, 환한 대낮이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죄다 눈치챘을 것이다.
“이대로면 집까지 한참 걸릴 텐데.”
정말 걱정을 하는 게 맞긴 한 건지.
“아흐윽―!”
그다음번 상우의 걸음이 멈췄을 때를 노려 재현은 진동을 한 단계 올렸다. 재현에게 안기다시피 기댄 상우가 까치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을 떨어 댔다.
진동이 강해진 순간, 찌릿한 쾌감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척추를 타고 올라오더니 뒷목을 날카롭게 찔러 왔다.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자지 끝에서는 정액인지 프리컴인지 모를 게 줄줄 새어 나왔다.
“사장님…… 흣, 한계…… 아으, 한계예요…….”
상우가 고개를 저었다. 1단계, 2단계까지야 어떻게든 참고 걸을 만했지만 3단계의 진동은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여기가 밖이든 안이든 상관없이 다 벗어 버리고 구멍을 쑤시고 싶은 기분이었다.
“앉아서 조금 쉬었다 갈까?”
“싫…… 어. 흑, 집에 갈래요…….”
길거리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싶은 자괴감과 누가 알아볼지도 모른다는 수치심이 쾌감 사이로 섞여들었다. 더듬더듬 제대로 걸어지지 않는 다리를 옮기자 재현이 상우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도와주는 방법이 글러 먹었다. 진짜 도와줄 마음이 있었으면 진동을 꺼 줬겠지.
재현에게 거의 들린 채로 걸음을 옮기는 상우가 얼굴을 양손으로 가렸다. 사정하기에는 약하고 그렇다고 끝날 기미는 안 보이는 자극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아까 슈퍼까지 걸어오는 데 얼마나 걸렸더라. 오는 길은 짧았던 것 같은데 돌아가는 길이 죽을 만큼 멀게 느껴졌다.
“사장님…… 흐읏…… 한 단계만 낮춰 주세요…….”
타협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재현은 하는 수 없이 진동의 단계를 하나 낮췄다.
여기서 상우의 말을 안 들어 줬다가는 진짜 뺨을 후려치면서 헤어지자고 할 거 같았다. 죽을 것 같이 울리던 진동이 하나 낮아지자 상우는 그제야 후들거리는 다리로 똑바로 몸을 일으켰다.
“상우야, 근데 그거.”
재현의 부름에 상우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고 가만히 노려보았다.
“진동 모드도 바꿀 수 있어.”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재현의 손이 무언가 꾹 누르는 순간, 상우의 눈에서 참고 있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윙윙 흔들리기만 하던 것이 갑자기 약해졌다 강해졌다 하며 규칙적인 진동을 박아 넣기 시작했다. 진짜 섹스를 떠올리게 하는 그 움직임은 단순히 흔들릴 때보다 더 자극적으로 성욕을 끓어올렸다.
이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짜증이 나서 상우는 더 울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여기서 울며 매달리면 그게 바로 재현이 원하는 상황이었다.
“……거야.”
“응?”
울망울망한 눈으로 저를 노려보며 들릴 듯 말 듯 하게 속삭이는 상우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재현이 고개를 숙였다.
“죽일 거야…… 읏, 백재현…… 진짜 죽일 거야…….”
앗. 재현은 마침내 깨달았다. 상우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넘어섰다는 것을. 재현은 후다닥 리모컨을 꾹꾹 눌러 로터를 껐다. 계속하다간 뺨 맞고 헤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악마에게 저주받아서 죽을지도 몰랐다.
마침내 진동이 사라지고 나자 상우는 재현과 대화도 하기 싫다는 듯 척척 걸어서 앞서 가기 시작했다.
“상우야, 박상우―!”
재현이 열심히 부르며 쫓아가 봤지만, 상우는 뒤를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매정하게 걸어갈 뿐이었다. 어차피 재현이 없으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결국, 상우는 재현의 집 앞에서 씩씩대며 멈출 때까지 재현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미안해. 너무 귀여워서 그랬어.”
“…….”
이 와중에도 내 탓을 하다니. 재현과 말 한마디 섞고 싶지 않은데 사랑이 뭐라고. 재현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순간 쾌락이 쌓이기만 하고 배출되지 못한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흐읏―. 건들지 마요.”
상우가 짜증을 내는 것조차 좋은 건지 재현이 단내를 풍겨 댔다. 어떻게 된 게 재현은 날이 갈수록 더 애처럼 굴고 있었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어린애라더니만. 같은 남자한테도 애처럼 보일 정도면 말 다 했다.
너무 분한데, 정말 재현을 암살하고 싶을 정도로 분한데 상우는 지금 앞뒤로 축축하게 젖은 이 몸을 달래 줄 사람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재현의 정액이 조금만 맛없었더라면 이런 꼴을 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이내 현관문이 열렸고 재현을 밀치고 먼저 들어간 상우는 운동화를 벗기 무섭게 패딩부터 벗어 던졌다. 그리고 다급한 손길로 바지 버클을 풀어 쑥 내렸다. 아직 신발도 벗지 못한 채 현관에 서 있던 재현은 그 놀라운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목숨을 위협받은 대가가 이거라면, 다음에도 시도할 만하다고 생각하면서.
상우의 손이 제 뽀얀 엉덩이를 양쪽으로 잡아 벌렸다. 얼마나 느껴댄 건지 하얀 허벅지까지 체액이 흘러내려 젖어 있었다. 꼴딱꼴딱 마른침만 삼키며 가만히 있자 상우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재현을 바라보았다.
“빨리…… 하아, 빨리 빼 주세요.”
재현의 이성도 빠르게 타들어 갔다. 벌려진 엉덩이 사이에 자리 잡은 분홍색 구멍에 나온 로터 줄만 뽑아 주면 되는 건데, 짐을 툭 내려놓은 재현이 주섬주섬 제 바지 단추를 풀었다.
설마. 상우는 재현의 스위치가 이상한 쪽으로 켜졌다는 것을 감지하고 엉덩이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재현의 눈빛이 완전히 돌아 있었다. 도망가기 위해 앞으로 한 발짝 나가자마자 커다란 손이 다가와 허리를 와락 움켜쥐었다.
“아아―!”
터질 듯이 발기한 재현의 자지가 그대로 상우의 안에 처박혔다. 너무 놀라서 고꾸라지는 몸을 제대로 세우지도 못하고 상우는 손가락 끝으로 간신히 바닥을 짚은 채 덜덜 떨었다. 지금 안에 있는 거 빼달라고 했더니 빼지도 않고 좆을 처넣은 거야? 그 무식하게 큰 좆을!? 놀람이 한풀 사그라들자 잊고 있던 쾌감이 차올랐다. 재현의 두꺼운 자지 기둥에 눌린 로터가 꾸욱꾸욱 전립선 위를 짓눌러 왔다.
“하윽, 그거―, 읏, 그거 빼 주세요―!”
상우가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성욕이 뇌를 지배한 재현에게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응? 뭐? 켜 볼까? 이대로 켜 볼까?”
겁에 잔뜩 질린 상우가 애처롭게 고개를 저어 봐도 재현의 손은 이미 코트 호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흐으윽―!”
부르르 울리는 진동이 내벽과 자지 사이에 빠듯하게 눌려 전립선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댔다. 상우의 자지 끝에서 맑은 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안쪽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너무 강렬해서 자지에서 뭐가 새어 나오고 있는지조차 알아채기 어려웠다.
“아까, 후…… 3단계는 힘들다고 했지.”
상우의 안에 들어찬 로터의 진동이 좆 기둥을 자극하고 있어 재현도 숨이 가빠졌다. 꾹꾹, 두 번 더 리모컨을 눌러 진동의 강도를 높이자 상우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한 손으로는 로터가 너무 안쪽까지 들어가지 않게 로터줄을 잡으며 재현은 남은 손으로 상우의 배를 꽉 둘러 안았다.
제정신이 아니라 힘 조절에 실패한 재현의 손이 사정없이 상우의 아랫배를 쥐어짜 냈고, 덕분에 상우는 제대로 된 소리조차 내지도 못하며 울컥울컥 정액을 토해 냈다.
“흐으…… 흑…….”
온몸의 감각이 따가울 정도로 살갗을 찔러 대 상우는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눈앞이 깜빡깜빡 점멸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갑자기 시력을 잃은 것처럼 완벽한 어둠이 찾아왔다가 탁 내뱉는 숨결에 맞춰 서서히 밝아졌다.
재현과 섹스를 하면서 몇 번이나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진짜 죽음의 문턱을 넘은 것 같은 적은 처음이었다.
상우의 아랫배를 문지르던 재현이 고개를 갸웃 숙여 바닥을 보고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벌써 쌌어? 안 되는데. 이제 시작인데.”
“흐윽…… 죽어요…… 이번에는 진짜, 읏, 죽어요…….”
아까는 재현을 죽인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이제 자기가 죽겠다고 말하는 게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이 죽는다는 소리는 며칠 전에도 분명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전에 할 때도 죽을 것 같다고 했고. 할 때마다 매번 죽는다고 하면 안타까워서 어떡하나. 재현은 고개를 숙여 니트 위로 드러난 상우의 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꾹꾹 눌렀다.
“괜찮아. 안 죽어.”
뒤로 슬그머니 빠진 자지가 콱 안을 처 올렸다. 상우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재현의 좆 대가리가 평소보다 더 두껍게 느껴졌고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든 것 같았다.
재현의 한쪽 팔에 몸을 지탱한 채 상우는 말도 안 되는 쾌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아앗, 학! 안 돼―, 으아, 사장님……! 흑, 잠시만―!”
안을 쳐올리는 감각과 끊임없이 전립선을 짓누르는 진동이 상우의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 갔다. 방금 사정한 자지 끝에서 끝도 없이 맑은 물이 흘러내렸다. 재현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맨날 야하다 귀엽다 생각했는데 오늘은 조금의 이성도 남지 않을 만큼 상우가 야해서. 오물오물 물어 오는 구멍이 오늘은 자지를 잘라낼 것처럼 꽉 깨물어서. 상우를 어르고 달래는 것도 잊은 채 재현은 크게 허리를 흔들었다.
“하…… 시발, 존나 조여.”
요령 없이 퍽퍽 박아 대기만 하는 섹스는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하면 상우가 더 느낄 수 있을까, 더 예쁘게 울릴 수 있을까 눈치 보지 않고 말 그대로 처박기만 하는 몸짓이었다.
어차피 지금 상우는 죽을 만큼 느끼고 있으니까.
“아윽, 그만! 하으읏―! 제발…… 흐읏, 제발―!”
숨을 제대로 쉴 틈도 없이 몰아붙여 오는 감각에 상우가 손을 뒤로 뻗어 재현을 밀어냈다. 이 정도로 무자비하게 밀려 오는 쾌감은 감히 쾌감이라고 부르기 힘든 것이었다.
자꾸만 눈앞이 흐려지는 게 무서워 눈을 제대로 뜨는 것조차 힘들었다. 눈을 감자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날이 섰다. 몸 안에 박혀 오는 자지의 끝 부분이 어디를 누르는지, 진동하는 로터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 구멍을 들락날락하며 질척거리는 소리와 등 뒤에서 으르렁거리는 숨소리 모두 세밀하게 쏟아졌다.
“흐윽, 흑…… 무서워…… 으흑…… 무서워요…….”
덜컥, 재현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상우는 모르고 재현만 알고 있는 세이프 워드가 우주 끝까지 날아가 버린 이성의 멱살을 붙들고 빠르게 되돌아왔다.
“아…….”
뿌옇게 흐려졌던 머릿속이 깨끗해지자 재현은 그제야 지금 저와 상우가 어떤 모습으로 뒹굴고 있는지 눈에 들어왔다. 코트도,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짐승처럼 자지만 꺼내 놓고 처박는 꼴이라니. 재현은 천천히 상우의 구멍에 흉기처럼 박혀 있는 자지를 잡아 빼냈다.
상우를 돌려세우자 눈물 콧물로 엉망진창인 얼굴이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아이고. 이걸 언제 키워서 이런저런 야한 짓을 시키나. 아직도 꾹 감고 있는 예쁜 눈매를 손으로 쓸어 준 재현이 상우를 꼭 끌어안았다.
“안에…… 읏, 안에 있는 거…… 빼 주세요…….”
엉엉 울지도 못하고 가늘게 흐느끼는 상우의 목소리가 재현의 죄책감을 자극했다. 로터에 연결된 끈을 잡아당기자 몸 밖으로 빠져나온 동그란 물체가 윙윙 울리며 제 존재를 과시했다. 재현은 얼른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소리를 멈추었다. 거칠게 살이 부딪혀 빨개진 엉덩이를 안아 올린 재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완전히 미움 받은 건 아니었는지 상우의 팔다리가 재현의 몸에 꽁꽁 얽혀들었다. 상우의 울음이 멈추지 않는 걸 보니 오늘은 더 이상 맘껏 박아 대기 힘들 것 같았다.
막 사정하기 직전이었던 재현의 자지가 천천히 상우의 구멍 안으로 파고들었다. 울면서도 꿈틀꿈틀 받아 먹는 게 기특하기는 한데. 어느 정도까지 움직여도 되는 건지 가늠이 잘되지 않아 재현은 좆을 박아 넣은 채로 가만히 상우의 지시를 기다렸다.
“흑…… 다정하게 대해 준다고 그래 놓고…….”
울먹임이 가득한 비난에 재현은 고개를 돌려 쪽쪽, 부드러운 머리카락 위에 입술을 눌렀다.
“미안해. 응?”
침실로 걸어가는 동안 재현의 발걸음에 맞춰 울리는 자극에도 상우는 움찔거리며 정액을 내뱉었다. 감당하기 힘든 자극을 받은 안쪽이 작은 움직임마저도 크게 받아들였다. 여전히 자지를 박아 넣은 상태로 상우를 침대 위에 눕힌 재현이 상우의 얼굴 이곳저곳에 다정하게 입을 맞추며 다시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죄책감과 섹스는 재현에게 별개의 문제였다.
* * *
상우는 일어나자마자 제 몸에 좆을 비비는 재현을 정좌 자세로 앉혀놓고 노려보았다. 밤새 하도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노려보니 무섭기는커녕 귀엽기만 했지만, 그런 소리를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사장님.”
상우의 요청대로 다정하게 몇 번이나 싸게 만든 장본인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소원 다시 빌어요.”
“왜?”
상우는 재현이 정말 몰라서 묻는 건지 궁금해졌다. 딱 세 번 테스트해 본다고 했는데 그 세 번 모두 상우의 입에서 죽는다는 소리가 나왔다. 양심이 있으면 왜냐고 물어볼 수가 없는데!
“저 진짜 죽을 것 같았다고요!”
빽 소리치는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죽을 만큼 좋았잖아.”
재현이 억울하다는 듯 반론을 펼쳤다. 너 죽겠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싼 줄 알아? 진짜 죽은 건 아니었잖아. 죽을 것처럼 좋은 거랑 죽는 건 다르지. 그 말을 가만히 듣던 상우가 회심의 한 마디를 내뱉었다.
“무서워서 싫어요.”
아. 상우가 재현의 세이프 워드를 눈치챈 것 같았다. 할 말을 잃고 입을 꼭 다문 재현에게 상우가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했다.
“소원, 다시 빌어요.”
타협의 여지가 없는 목소리였다. 재현은 상우의 토라진 마음을 풀어 줄 마법 같은 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상우가 처음 소원을 빌라고 했을 때부터 기다렸던 그 말. 무슨 말을 바라는지 빤히 눈에 보여서 일부러 모른 척했던 건데, 이제 얘기해 줄 때가 된 것 같았다. 재현이 팔을 벌리자 우물쭈물하던 상우가 꼼지락거리며 안겨들었다.
“딱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
재현은 품 안의 사랑스러운 존재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상우를 제외한 이 세상 그 누구도 듣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소원이었다.
“평생 내 곁에 있어 줘.”
재현의 등을 감싼 손에 꼬옥 힘이 들어갔다.
퉁퉁 부은 눈으로 보는 아침의 햇살이 상우의 벅찬 감정만큼 예쁘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