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2 : 크리스마스 후일담
(※‘크리스마스 후일담’은 본편 ‘5. 다정하게 대해 주세요’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산타클로스는 있어요, 사장님.”
단호하게 말하는 상우의 말에 재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픽 웃었다. 헛소리나 삐약삐약 하는 입을 막기 위해 한입 크기로 자른 프렌치토스트를 입가로 가져다주자 그건 또 냠, 맛있게 받아먹었다. 버릇이 완전 잘못 들어서 룸서비스가 왔는데도 상우는 여전히 침대 위에 있었다.
“넌 나이가 몇인데. 설마 산타 할아버지가 매년 선물을 주고 갔다고 믿는 거 아니지?”
“하. 사장님 절 뭐로 보시고. 그건 부모님이 준비해 주신 거죠.”
“그걸 아는 놈이.”
상우가 손까지 절레절레 흔들어 가면서 재현의 말을 끊고 항변을 시작했다.
“진짜 산타는 부모님이 선물을 준비 못할 정도로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느라 바쁠 뿐이에요. 저는 비록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어딘가에는 있습니다. UFO처럼요.”
있을 거예요, 도 아니고 있습니다, 하고 못을 땅땅 박아 버리는 상우의 말에 재현은 조용히 오믈렛을 잘랐다. 얘가 입이 비어서 또 헛소리 하네.
“핀란드에는 산타 마을도 있대요.”
“아, 그래?”
재현이 건성건성 대답하며 오믈렛을 상우의 입 앞으로 대령했다.
“그 사람들이 단체로 미치지 않고서야 산타도 없는데 마을을 만들 리가 없죠.”
빠르게 말을 마친 상우가 오믈렛을 받아먹었다. 눈빛이 결연한 게 나름대로 진지한 것 같았다.
“관광 마케팅 모르냐, 관광 마케팅. 그거 다 상술이야.”
상술이라는 말에 상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우가 또 개소리를 하기 전 입을 막기 위해 재현은 냉큼 베이컨을 상우의 입안으로 넣어 주었다.
“산타클로스 빨간 옷, 그것도 코카콜라가 만든 이미지잖아. 상술 맞아.”
이 얘기는 처음 듣는 건지 상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눈망울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져서 재현은 얼른 말을 돌렸다.
“핀란드 산타 마을 가 보고 싶어? 이번 크리스마스에 갈까?”
마치 강릉이나 한번 갔다 올까? 하는 것처럼 물어봐서 상우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제가 왜 크리스마스를 사장님이랑 보내요.”
“딴 놈이랑 보내려고?”
여자랑 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건가. 상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불퉁하게 중얼이자 재현은 졌다는 듯이 웃어 버렸다.
“그래서. 상우 어린이는 올해는 산타 할아버지한테 무슨 선물 달라고 하게?”
“저 어린이 아니에요, 사장님.”
이제는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게 놀리는 재미가 많이 사라졌다.
“그럼 내가 줄게.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재현의 말에 상우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얼마 전 재현에게 선물을 왕창 받은 기억이 떠올라서 또 뭘 받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매번 이것저것 얻어먹고 받기만 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사장님은 갖고 싶은 거 있으세요?”
“응, 있어.”
단박에 나온 대답에 상우는 꼴깍 침을 삼켰다. 예의상 물어보긴 했는데 진짜 갖고 싶은 것이 있을 줄이야. 재현이 갖고 싶다고 할 정도면 분명 장기를 팔아도 사지 못할 것이다.
“비싼 건 안 돼요…….”
비굴하게 덧붙이는 말에 재현의 눈썹이 꿈틀 올라갔다.
“안 비싼 거면 사 주게?”
재현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우는 얼른 추가로 조건을 붙였다.
“제 입장에서 안 비싸야 돼요. 사장님 입장에서 말고.”
“그런 거면 내 돈 주고 사지.”
하여간. 말 한마디 예쁘게 하는 법이 없었다. 재현을 힐끔 노려본 상우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재현이 마지막 남은 프렌치토스트 조각을 상우의 입에 넣어 주었다. 야무지게 받아먹는 입술 위에 쪽쪽 뽀뽀하자 그새 기분이 풀렸는지 마주 바라보며 싱긋 웃는 눈매가 사랑스러웠다.
“크리스마스 선물 주고받을까?”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상우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니. 초등학생 이후로 받아 본 적이 없어 말만 들어도 설레었다.
“물질적인 거 말고. 그럼 너도 안 부담스럽지?”
에이. 선물은 물질적인 게 좋은데. 내심 아쉬워하면서도 재현의 ‘물질적’ 기준이 두려워 상우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고 싶은 건 지금 말하면 되나?”
재현의 말에 상우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 아저씨가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모르네.
“산타 할아버지한테 편지 쓰는 것처럼 서로 쪽지에 써서 주고받아요.”
그렇게 귀찮게까지 해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상우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기대감을 잔뜩 안고 있어서 재현은 상우의 뜻에 따라 주기로 했다.
방을 나서기 전까지 물질적이지 않으면서 재현에게 받고 싶은 것을 고민하던 상우가 무언가 생각난 듯 후다닥 거실에 있는 테이블로 뛰어갔다.
가야호텔이라고 적힌 메모지 위에 고급스러운 펜으로 꾹꾹 받고 싶은 선물을 눌러쓴 상우가 뿌듯하게 웃었다. 이 정도면 재현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쪽지를 받고 끙끙 앓을 재현을 떠올리니 상상만으로도 고소한 기분이었다.
“사장님, 저 다 썼어요!”
상우가 팔랑팔랑 종이를 흔들며 재현을 향해 웃어 보였다. 선물 주고받는 게 그렇게 즐거울 일인가. 저에게 고통을 줄 생각에 신이 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재현은 그런 상우가 귀여워서 가만히 웃어 주었다.
상우의 집 앞까지 데려다준 재현은 마침내 그놈의 선물이 적힌 쪽지를 받아 볼 수 있었다. 보면 완전 깜짝 놀라실 걸요, 꼭 주셔야 해요, 다른 거로 바꾸기 없어요. 하도 호들갑을 떨어 대서 도대체 뭐라고 썼나 궁금하긴 했다. 자기가 차에서 내릴 때까지 펴 보지도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재현은 상우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자마자 얼른 쪽지를 펼쳤다.
「크리스마스카드 써 주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한마디만 있으면 안 됨. 적어도 다섯 줄 이상. 아무 종이에나 쓰는 것도 안 됨. 꼭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카드여야 해요. 카드도 직접 사세요. 다른 사람한테 시키지 말기!」
개발새발인 글씨로 적힌 쪽지를 읽던 재현은 웃음이 터졌다. 처음에는 ‘크리스마스카드 써 주세요.’만 쓸 생각이었는지 그 문장만 종이 한가운데에 큰 글자로 적혀 있었다. 그랬다가 제가 못 미더웠는지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세세한 조건들을 적어 놨다. ‘다른 사람한테 시키지 말기’는 느낌표 두 개로도 모자라 밑줄과 별표까지 달려 있었다.
확실히 상우가 호들갑을 떨 만했다. 크리스마스카드라니. 머리털 나고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건데. 쓰기도 전에 간질간질해져 재현은 괜히 팔뚝을 문질렀다. 이거 뭐라고 써 줘야 하나. 상우의 계획대로 재현은 한참 동안 끙끙 거리게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작은 머리통을 열심히 굴려 가면서 쓴 쪽지가 귀여워서 재현은 다시 잘 접어 지갑 속에 쏙 넣었다.
방으로 돌아온 상우도 재현의 선물이 적힌 쪽지를 열어 보았다.
재현은 엄청 금방 써 버려서 쉽고 아무것도 아닐 줄 알았는데.
“미친 거 아니야?”
내용을 본 순간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진짜 제정신인가? 성스러운 크리스마스,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에 어떻게 이런…… 쪽지를 들고 있는 상우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노팬티로 산타 걸 코스프레하고 자위 쇼.」
적혀 있는 글씨는 쓸데없이 정갈해서 내용과 더 안 어울렸다. 연결 어미만 빼고 보면 가관인 소원이었다. 노팬티, 산타 걸, 코스프레, 자위 쇼. 이런 단어 들을 한 번에 생각해 낼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상우에게는 충격이었다. 상우는 떨리는 손으로 재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취소다. 이런 거지 같은 계획은 다 취소였다.
[응, 봤어?]
전화를 받은 재현의 목소리는 굉장히 담담했다. 상우가 쪽지를 보면 바로 전화할 줄 알았다.
“사장님…… 취소예요. 선물 주고받는 거, 취소.”
[왜. 그런 게 어디 있어. 나 지금 카드 사러 가는데.]
“어떻게 이런 내용을…….”
기가 막혀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딱 어울리지 않나?]
“대체 어딜 봐서요……!”
[크리스마스 하면 산타 걸이지.]
“아무튼, 취소예요.”
[꼭 줘야 한다며. 바꾸기 없다며.]
윽. 상우가 대꾸할 말을 잃었다. 이런 파렴치한 선물일 줄 알았다면 절대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선물 주고받기 같은 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기대하고 있을게.]
뚝 끊어져 버린 핸드폰을 붙잡고 상우는 부들부들 떨었다.
* * *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이브, 상우는 우울한 얼굴로 재현의 집 소파에 앉아 케이크를 퍼먹고 있었다. 정액부터 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재현의 얄미운 물음에도 기운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일은 단 한 개도 하고 싶지 않았다. 스무 살 인생 평생에 최악의 크리스마스였다.
재현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만났을 때부터 싱글벙글이었다. 지금도 바로 옆에 딱 붙어 앉아 눈길도 주지 않는 상우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기분 좋은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단 거 좋아하는데 맛도 몰라서 어떡하냐. 남겨 놨다가 내일 아침에 먹어.”
“걱정해 주는 척하지 마세요.”
가증스러우니까요. 상우가 재현을 가만히 노려봤다. 제발 선물 취소해 달라고, 뭐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내내 빌어 봤지만, 재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기필코 선물을 받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하며 크리스마스에 바람 맞히면 다시는 정액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협박까지 했다.
“준비는 잘했고?”
귀에다 대고 소곤소곤 물어 오는 낮은 목소리에 상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관계가 끝나면 기필코 익명으로 언론에 제보할 것이다. 가야호텔 백재현 사장의 은밀하고 파렴치한 섹스 판타지에 대해.
그 분노를 모른 척하며 재현은 쓰다듬고 있던 상우의 머리카락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다 먹었으면 얼른 갈아입고 와. 여기 내가 치울게.”
“선심 쓰는 듯 말하지 말아 주세요.”
재현이 더듬더듬 손을 내려 상우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상우가 파다닥 변태 같은 손을 쳐 냈지만, 지금은 상우가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다는 듯이 재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따위 어린애 취급하던 건 어디 사는 누구였더라. 상우는 하는 수 없이 한숨을 폭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팩을 끌어안은 상우가 화장실로 걸어가다 상우가 먹다 남긴 케이크를 정리하던 재현에게 다시 돌아왔다.
“만약 실망하시면 어떡해요……?”
힐끔 저를 올려다보는 눈초리를 보니 뭔가 제대로 준비 못 한 게 분명했다. 그래도 준비는 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 재현은 그것만으로도 기특하고 만족스러웠다.
재현이 고개를 숙여 상우의 뺨에 꾹 입술을 눌렀다.
“괜찮아. 실망 안 해. 중요한 건 자위 쇼니까.”
말투만 다정한 재현의 말에 상우는 아무 대답 없이 뒤를 돌았다. 이제는 다정하게 대해 달라는 것도 취소하고 싶었다.
화장실로 들어간 지 한참 만에 상우가 빼꼼히 문을 열었다. 얼마나 대단한 걸 입었길래 눈만 보여 주나. 재현은 피실피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장님, 진짜 전 최선을 다했어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얼른 나와서 보여 줘 봐.”
잠시 머뭇거리던 상우가 화장실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너무 애를 태워서 재현은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푸핫, 재현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산타 걸 코스프레를 하라 그랬지 누가 변태 산타클로스 코스프레를 하라고 했나!
“우, 웃지 마요!”
산타 옷 상의만 입은 상우가 옷자락 끝을 아래로 잡아당기며 빽 소리를 질렀다. 자기도 민망한지 얼굴은 옷만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신축성 없는 옷은 아무리 끌어내려도 휑한 하반신을 감춰 주지 못했다.
산타의 상징인 흰색 털 아래로 뽀얀 자지가 슬쩍슬쩍 보였다. 생각했던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귀엽고 야해서 재현은 만족스러웠다.
“여자 옷은 도저히 안 맞아서…….”
킁킁. 훅 피어오르는 달콤한 냄새에 안도하며 상우가 우물쭈물 변명했다. 재현은 자꾸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충분히 귀여워. 이리와.”
소파에 앉아 있는 재현에게 다가오는 걸음도 마지못해 간다는 듯 느릿했다. 마침내 손에 잡힐 듯한 거리까지 왔을 때 재현이 상우를 확 잡아끌었다. 어정쩡하게 재현의 무릎 사이에 앉은 상우가 민망함에 얼굴을 가렸다.
고개를 숙여 드러난 뒷목도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재현은 냉큼 그 위에 입술을 문질렀다.
“산타 할아버지, 이제 선물 주셔야죠.”
아, 원래 이렇게 능글맞은 사람이었나.
“너무 쪽팔려서 도저히 못할 거 같아요.”
재현이 슬쩍 어깨너머로 상우의 아랫도리를 바라봤다. 못한다고 하는 말과 달리 상우의 자지는 반쯤 발기되어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
재현의 손가락이 톡 상우의 동그란 자지 끝을 두드렸다. 상우가 후다닥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려 아랫도리를 방어했다.
“이건 사장님 단내 때문에 저절로…….”
변명을 할수록 비참해져서 상우는 더 고개를 숙였지만, 재현의 손이 턱을 잡아 돌리는 바람에 빨개진 얼굴을 그대로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 쪽, 재현이 상우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가벼운 입맞춤에 이어 달콤한 혀가 파고들었다. 부드럽게 얽혀 오는 살덩이에 상우는 저도 모르게 자지를 가리고 있던 손을 꼭 움켜쥐었다.
“으응…….”
목 안에서 작은 신음이 울렸다.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안에서 상우의 좆이 점점 단단해졌다. 입안을 매끄럽게 문지르는 살덩이가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혀를 아플 정도로 강하게 얽다가 달래듯이 입안 구석구석을 핥아 주고, 상우의 혀끝을 동그랗게 지분거리는 움직임에 자지가 들썩였다.
어느새 완전히 짙어진 달콤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아…….”
입술이 떨어지자 정욕에 가득 찬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상우는 본격적으로 자지를 쥔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삐죽이 새어 나온 프리컴이 요도 끝에 방울방울 매달려 있었다.
키스 이상은 도와주지 않으려는 건지 재현은 가만히 숨을 죽이고 무릎 사이에 앉은 상우가 자위하는 것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마른 살을 쓸어내리는 소리와 간간이 들여오는 거친 숨소리가 재현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손이 흔들릴 때마다 움찔움찔하는 몸과 가볍게 찡그려진 눈썹이 예뻐 보였다.
우리 변태 새끼는 이렇게 자위하는구나. 재현은 귀두를 감싸 쥐고 잘게 흔드는 상우의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빨리 가려고 그래.”
바로 귀 옆에서 숨소리처럼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상우가 흠칫 놀랐다. 아, 제발. 상우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천천히 해.”
주문처럼 들려오는 말에 상우가 후딱 싸고 끝내려던 움직임을 느긋하게 바꿨다. 뿌리 끝에서 귀두까지 천천히 쓰다듬던 손은 위에 머무르며 예민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문지르기도 했고, 슬쩍슬쩍 음낭을 쥐기도 했다.
숨어서 은밀하게 하던 행위를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예상보다 더 흥분됐다. 등을 감싸고 있는 온기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짙은 단내와 애써 죽이는 거친 숨결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우를 덮쳐 와 소름이 오싹오싹 돋았다.
“아으…….”
천천히 움직이기만 하니 터질 곳 없는 쾌감이 몸 안에 점점 쌓여 갔다. 이제 빨리 움직이고 싶은데. 상우는 눈만 살짝 돌려 재현의 눈치를 봤다. 상우의 자지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재현의 얼굴은 심각한 내용의 다큐멘터리라도 보는 것처럼 진지했다.
이게 그렇게 집중해서 볼 건가. 맨날 변태 새끼, 변태 새끼 하고 저를 부르지만 둘 중에 진짜 변태를 가려 내라면 무조건 재현이었다. 상우의 픽, 웃는 소리에 좆 대가리에만 집중하던 재현이 고개를 돌렸다.
“도와줄까?”
“흐읏…… 혼자서도…… 잘하고 있는데요…….”
도와준다고 하고 어떻게 괴롭힐지 몰랐다. 그냥 만지고 싶은 것뿐이면서. 상우의 손이 조금씩 빨라졌다. 프리컴이 묻어 미끄러워진 귀두를 스칠 때마다 허리가 저절로 같이 흔들렸다.
“잘 보여 줘.”
재현의 손이 가볍게 상우의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양옆으로 활짝 벌려진 다리 사리에서 뽀얀 자지가 꺼덕거렸다. 산타 옷도 귀엽긴 한데 자꾸만 시야를 방해하는 게 거슬렸다. 재현은 흰색 털이 달린 옷자락을 끌어올려 상우의 입가로 가져갔다. 귀여운 변태 새끼가 눈치 좋게 알아듣고 옷 끝을 앙 물었다.
“으읏, 흐…….”
입안에 들어온 가벼운 인조 털이 혀에 걸렸지만, 그 이물감마저도 흥분으로 다가왔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쌀 것 같아서 상우는 어깨를 동그랗게 말고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탁탁탁, 살이 쓸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조금 부족한 거 같아서 손을 더 빠르게 움직이려고 할 때, 갑작스럽게 앞으로 다가온 재현의 손가락이 양쪽 유두를 콱 꼬집었다.
“하읏―!”
상우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입에 물고 있던 옷자락을 놓쳐 버렸다. 찌릿한 아픔을 동반한 쾌감이 등줄기를 따라 소름처럼 퍼져 나갔다.
말려 있던 등은 어느새 사정감으로 꼿꼿하게 세워져서 재현의 가슴에 완전히 기대어져 있었다.
“아아!”
재현의 손가락이 가슴을 한 번 더 꼬집었을 때 상우는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지르며 뚝뚝 정액을 흘렸다. 꽉 감아 버린 눈앞에 파랗고 빨간 점들이 톡톡 튀어다녔다.
“하아, 하아…….”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재현의 단단한 어깨에 뒤통수를 기댄 채 숨을 고르며 상우는 싱겁게 생각했다. 처음엔 쪽팔리긴 했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별거 아니었다. 오히려 혼자 자위할 때보다 더 흥분되고 좋았던 거 같기도 하고.
이쯤 되면 잘했어, 예쁘다 같은 칭찬의 말 한마디는 할 줄 알았던 재현이 아무 말도 없어 상우는 슬쩍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후…… 선물 잘 받으셨어요?”
가벼운 질문을 하며 고개를 돌린 상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망했다. 아직도 상우의 자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재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상우는 본능적으로 오늘 밤이 어느 때보다 힘들 것을 깨달았다.
아무 말도 없이 상우의 배 위에 손을 꽉 두른 재현이 상우를 들고 벌떡 일어났다. 재현에게 대롱대롱 매달리는 모양새로 끌려가는 상우는 끊임없이 작은 소리로 애원했다. 살려 주세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이런 짓 안 할게요!
스멀스멀 올라오는 요의에 상우가 번쩍 눈을 떴다. 재현이 화장실까지 쫓아 들어온 뒤로 상우는 조금이라도 볼일이 보고 싶으면 번뜩 잠에서 깨 화장실로 가곤 했다. 이게 트라우마인가. 재현이 깨지 않게 살금살금 조심하며 침대에서 내려온 상우는 호다닥 화장실로 뛰어들어 갔다.
처음 시작할 때 분명히 입고 있었던 산타복은 어디로 갔는지 벗겨져 있었고 상우의 몸에는 흰색 털만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역시 싸구려라 털이 빠지는 건가. 폭풍 같았던 어젯밤을 생각하면 다시는 입을 일 없는 옷이었다.
볼일을 보는 요도 끝이 쓰라려서 상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달칵. 화장실 불을 끈 상우는 조심스럽게 거실로 향했다. 기절하듯 잠들기 전 재현이 거실 테이블 위에 카드를 올려놨다고 한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
고급스러운 거실 테이블 위에 누가 봐도 나 크리스마스카드예요, 하고 뽐내는 빨간 봉투가 눈에 띄었다. 어디, 뭐라고 썼는지 좀 볼까. 상우는 희희낙락 웃으며 봉투를 열었다.
성의 없게 썼기만 해 봐라. 그러면 자신도 재현에게 산타 옷만 입히고 자위하라고 시킬 것이다.
재현이라면 고급스러운 카드를 고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귀여운 루돌프 그림에 빨간색 폼폼이로 코가 달린 카드가 튀어나왔다. 어떤 표정으로 이 카드를 골랐을지 상상하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메리 크리스마스.」
첫 시작은 너무나 당연한 문장이었다. 그다음은 고민하다 나중에 썼는지 첫 줄과 굵기가 다른 펜으로 바뀌어 있었다.
「너는 배부르다면서도 꾸역꾸역 잘 먹는 게 귀여워.
개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것도 귀엽고,
패션 센스가 한참 모자란 것도 귀여워.
능력도 없으면서 야하게 보채는 것도 귀여워.」
뭐야. 내용 왜 이래. 귀엽다는 말만 빼면 죄다 욕이었다. 까고 싶어서 쓴 카드인가?
디스전 랩배틀 나가면 약 올리는 거로 1등 하시겠는데? 상우는 어이가 없어졌다.
「상우야, 좋아한다.」
그래도 마지막 줄은 꽤 마음에 들었다. 평생 크리스마스카드는 한 번도 안 써 봤을 것 같으니, 이 정도면 봐줄 만했다. 자위 쇼를 하고 대가로 욕만 주구장창 먹은 기분이었지만, 어쨌든 다 귀엽다고 했으니 좋은 마음에서 쓴 말이겠지.
카드를 봉투 안으로 다시 넣은 상우는 백팩 안에 쏙 집어넣었다. 재현이 잊을 만하면 이 카드로 놀려줄 것이다. 자기가 쓴 편지를 눈앞에서 낭독 당하는 것만큼 수치스러운 일이 없지. 상우는 혼자 키득키득 웃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색색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재현은 평소보다 착해 보였다. 호랑이도 잘 때는 귀엽다더라. 상우는 재현의 옆에 누워서 잠시 그 얼굴을 구경했다.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어 몰랐는데 재현은 생각보다 속눈썹이 길었다. 살짝 휘어지긴 했지만, 콧대도 높았다. 왼쪽 볼 위에 있는 작은 점은 오늘 처음 발견했다. 맨날 밉살맞은 말만 해 대는 입술도 지금만큼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구석구석 재현을 구경하던 상우는 다시 잠이 솔솔 쏟아져서 마지막으로 쪽, 잠든 재현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다정히 대해 주세요. 마음속 말을 담아서.
아 참, 재현에게 하지 못한 말이 남아 있었다.
“사장님도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기브 미 스위츠!>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