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문득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 손도 뭐.
예쁘네.
이하민은 밥을 먹다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고개를 들더니, 조용히 밥만 먹으라는 말이 떠올랐는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식사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혼자 씩 웃었다.
자기도 남들처럼 다른 사람과 함께 마주 보고 앉아 식사하고 있다는 게 흐뭇한 거다.
그게 이하민의 소박한 꿈 중 하나였으니까.
누나가 소설을 읽어 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까 말이 됐다.
지 꿈이 그거라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하겠나.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야지.
“이하민.”
“응?”
입 안에 밥을 가득 넣어 볼이 불룩해진 채 커다란 눈으로 녀석이 나를 보았다.
“앞으로는 나하고 같이 밥 먹자.”
“……응?”
눈가가 촉촉하게 느껴지는 게 혹시 이 녀석…….
우나?
이하민은 밥을 씹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말을 하지도 못하고 마냥 벅찬 얼굴을 했다.
“식사 시간 되면 여기에 와 있을 테니까 너도 여기로 와. 자리 맡아 놓을게.”
이하민은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나를 보고 있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고운 얼굴에 포슬포슬 흘러내렸다.
“식사 시간 되면 여기에 와 있을 테니까 너도 여기로 와. 이하민 내가 자리 맡아 놓을게. 으흐흐흐.”
옆에서 웬 산적 같은 게 우리를 놀리듯이 말했다.
손날로 쳐서 기절시키는 건 문제도 아닌데.
그러다간 온 센터가 다 나를 주목하겠지.
이번에는 정말 조심해서 잘 있다가 집에 돌아가야지.
“저런 말 신경 쓰지 마.”
“응. 나는 괜찮은데 나 때문에 은우 네가…… 너 정말 나랑 같이 밥 먹어도 괜찮겠어?”
그렇게 물을 거면 좋아하는 티를 내지나 말지 그렇게 감격한 얼굴로 물으면 내가 뭐라고 하겠나.
에스퍼는 우리가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눈빛으로 그를 격려하는 듯했다.
“어! 은우야. 식판이 찌그러졌는데?”
그때 얌전히 밥을 먹던 이하민이 자기 식판을 내려다보다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와아…… 은우 너 신체 강화자지? 아까 식판 잡으면서 힘이 들어갔나 보다. 그렇다고 해도 스테인리스 식판을 종이처럼 우와……!! 네가 손을 잡고 힘주면 뼈도 부러지겠다.”
“그렇지.”
나는 옆에 서서 기회를 노리는 에스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에스퍼의 능력은 어떤 게 더 좋다고 단적으로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괴수를 죽이는 데 각각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효율과 전략이 달라진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신체 강화자가 유리하다.
죽이겠다고 덤비는 게 아닌 한 시비가 좀 붙었다고 상대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수도 없고 사방을 바람으로 날려 버릴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가볍게 응수하며 치고 빠지기에는 신체 강화자만 한 게 없다고 일단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에스퍼는 갑자기 허기가 느껴지기라도 한 듯 은근슬쩍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이하민은 다시 불룩하게 밥을 밀어 넣고 구겨진 식판을 감탄 어린 시선으로 보며 손가락으로 문질러 댔다.
햄스터가 놀라면 꼭 저런 모습을 할 것 같았다.
“이거 기념으로 가지면 좋겠다.”
“이건 센터 물건이잖아. 나중에 내가 적당한 거 하나 구겨 줄게.”
“정말?”
이하민이 감동받은 눈으로 나를 보는 동안 사이렌이 울렸다.
짧게 끊어 치는 것이 출동을 위한 소집 명령이다.
“은우 너도 가야 돼?”
다른 에스퍼들과 함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긴장한 얼굴로 이하민이 물었다.
말을 하는 동안 마른침을 삼키는 얼굴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가야지. 던전이 나타났다는 거잖아.”
말을 하다가 이하민이 그걸 몰라서 물은 건 아닐 거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조심해.”
“저녁도 같이 먹자. 저녁에도 여기로 와.”
던전을 공략하고 그때까지 돌아와서 무사히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될 거라고 믿게 해 주고 싶었다.
말을 마치고 나는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다른 에스퍼들은 이미 식당을 거의 빠져나가고 있었다.
사이렌이 울리면 에스퍼들은 각자 정해진 정소로 가야 한다.
어디엔가 던전이 나왔고 그 소식을 들은 센터의 지휘부가 던전에 맞는 유형의 에스퍼들을 소집하면 그사이에 팀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모여든 이들 중에서 적합한 사람들을 골라 출동한다.
나는 신체 강화자고 등급은 높지 않다.
전에는 나를 데리고 나가려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실수로 몇 번 실력 발휘를 해 버리는 바람에 한동안 서로 데려가려고 서둘렀다.
그래서 일부러 던전에서 얼타고 있었더니 다시 평범한 D급 에스퍼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무협 게임 세계에서 능력치 맥스를 찍었고 그 능력이 그대로 이어져서 만약 내가 실력 발휘를 하려고 하기만 한다면 이 많은 무리를 끌고 가지 않아도 충분히 혼자서 던전의 괴수를 전부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협 게임 세계에서 살면서 깨달은 게 있었다.
그렇게 해 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다는 것.
내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점점 더 나에게 의지하게 되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 뒤로 숨으려 한다.
내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내 목숨도 하난데 사람들은 그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그 생각을 하면서도 그냥 내 목숨을 내놓으라고 그러는 건지도 모르지.
팀을 이끄는 사람들 중에는 S급 에스퍼들도 보였는데 그들은 일찌감치 팀을 꾸려 떠났다.
나는 뒤늦게 8팀장에게 선택되어 차에 올랐다.
매번 돌아가면서 팀이 구성되고 센터에 의해 팀장도 지목돼서 오늘의 8팀은 딱 이번 임무에서만 유효하다.
에스퍼의 등급도, 인원수도 안정적이라 이번에도 존재감을 들키지 않고 월급 루팡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번에 나온 던전은 몇 개입니까?”
8팀장의 선택을 받고 차에 오르자 함께 오른 B급 에스퍼가 팀장에게 물었다.
“열세 개. 그중에 위험한 건 상급 에스퍼들이 맡았으니까 우리는 우리가 맡은 것만 잘하자고.”
모든 세계가 돌아가는 게 다 비슷하다.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맞게 가치가 정해진다.
그게 S급 에스퍼들이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이미 그 삶을 살아 봤고 그 결과 그게 다 부질없다고 판단을 내렸을 뿐이다.
이십 분이 되지 않아 현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이미 대피한 후였고 센터에서 먼저 나간 사람들이 던전을 지키고 있다가 우리와 교대했다.
그들은 대부분 순간 이동 능력자로 징후가 감지되면 척후의 역할을 한다.
그때부터는 정해진 절차대로 던전에 투입돼 각자의 능력대로 괴수를 처리했다.
화염 능력자가 불을 날렸지만 괴수는 몇 번이나 그 공격을 피하고 날뛰었다.
하급 에스퍼의 능력이라는 게 그렇다.
만만한 괴수를 잡을 수는 있지만 애매한 상대를 만나면 어설퍼지는 것이다.
거의 세 시간이나 사투를 벌인 끝에 우리는 그곳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도중에 내가 나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가 몇 번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에스퍼들이 그때마다 순발력을 발휘해서 다행히 그렇게까지 하지 않고 끝이 났다.
센터로 돌아가자 다른 던전에 갔던 에스퍼들도 속속 돌아왔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센터의 보물이라 불리는 세 명의 S급 에스퍼들이 무사 귀환을 했냐는 거였다.
그리고 일단 그 사실이 확인되자 그 후에는 누가 가장 먼저 끝내고 돌아왔는지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기를 하곤 했는데 세 사람은 거의 고르게 1위를 차지했다.
그들 중 변태영이 가장 압도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현장에는 무수한 변수가 작용하기에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공략이 어렵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면 에스퍼들의 똘끼가 발휘되곤 해서 한 번에 죽일 수 있으면서도 괴수를 괴롭히며 시간을 끌기도 했다.
세계 랭킹 1위인 화염 능력자 변태영은 단 한 번의 손짓으로 던전을 잿더미로 만든 적도 있었는데 그렇게 끝내 버리는 대신 괴수를 사냥감처럼 몰아 대다가 피를 말려 죽이는 게 특기였다.
화염 능력자인 변태영이나 염동력자인 견인의 능력은 상상이 어렵지 않았는데 심우진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괴수를 죽이는 건지 궁금했다.
그가 갖춘 능력 자체가 워낙 특수하고 세계적으로 그런 능력이 발현된 사람은 심우진밖에 없다고 하니.
감각 치환 능력이라고 했던가?
소리를 이용해서 뭔가를 한다는 것 같은데 그와 함께 던전을 공략하고 온 사람들도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죽은 사람은 없는 것 같죠?”
“위험도 높은 던전은 S급 에스퍼님들이 맡았으니까. 인원도 충분했고.”
에스퍼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그래도 센터에 소속된 이상 동료 의식이 어느 정도는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의 안부를 궁금해하기는 했다.
출동한 에스퍼 내에서 임무 수행 중 사망자가 나오면 센터의 분위기가 훅 가라앉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듯했다.
전투를 치르는 동안 능력을 크게 사용한 에스퍼들은 저마다 가이드를 찾았다.
에스퍼들의 불안정한 파장이 나에게도 느껴질 정도라서 가이드들이 고생을 할 듯했다.
대부분의 가이드들이 미리 나와 있었고 이하민도 그중에 있었다.
오늘 이하민은 세 사람의 가이딩을 해야 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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