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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3화 (3/137)

3화.

세 사람은 특별히 가이딩을 받아야 할 정도로 능력을 소모한 게 아니어도 이하민을 향한 집착 때문에 같이 가이딩을 받겠다고 나설 것이다.

한 번 가이딩을 하고 나면 가이드도 며칠씩 앓는다고 하던데 이하민은 S급 에스퍼를 세 명씩이나 가이딩을 해야 하는 것이라서 특히나 체력의 소모가 더 심할 터였다.

게다가 각각의 에스퍼들이 모두 성격도 더럽고.

이하민이 아니면 미쳐 날뛰는 저희들의 파장을 가라앉혀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고마운 줄 알고 잘할 것이지.

가이드들 사이에 끼어 있던 이하민이 뒤늦게 나를 발견한 듯 달려왔다.

“으, 은우야. 안 다쳤어? 괜찮아?”

“나는 괜찮지. 그런데 그 사람들 안 왔어? 네가 가이딩해야 하는 사람들.”

“아아. 왔는데 너 보고 가려고.”

“그래도 돼?”

“안 되는데…… 봤으니까 이제 됐어. 그럼 나 갈게, 은우야. 가이딩 잘 받아. 괜찮다고 그냥 넘기지 말고.”

“그래.”

받을 생각은 없지만, 말을 안 하면 계속 걱정할 것 같아서 그냥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가?’

이하민이 세 명의 에스퍼들을 기다리게 한 모양이었다.

그건 소설 속에서도 없었던 일이었고 센터에서도 절대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센터에서는 온갖 강압적인 방법을 동원해 가이드들을 억압하고 그들이 에스퍼에게 가이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도록 하는데 사실 이하민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이 거지 같은 센터가 자기들의 안위를 위해서 가이드들을 이용하는 거고 특히나 이하민이 없으면 세 명의 S급 에스퍼들은 제대로 능력을 사용할 수도 없을 거라 이하민에게 정말 잘해야 하는 건데 강압이라니.

그런데 이하민은 너무 세뇌가 잘되어 버려서 자기가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안다는 게 문제다.

‘별일 없어야 하는데.’

그러는 동안 나에게 배정된 가이드가 다가왔다.

나에게 주어지는 가이드는 나만큼이나 능력이 낮다.

지금 단계에서는 매칭률이 높은 가이드를 배정받는 게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가이딩을 받는 게 더 안 좋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가이딩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파장을 가라앉힐 수도 있고.

그건 게임 세계에서 살아남으며 배운 호흡법 때문이었는데 내가 그걸 이용해 파장을 가라앉힐 수 있다는 건 여기에 있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저는 괜찮아요.”

다가온 가이드에게 말하자 정말 그냥 가도 되는 건가 고민하는 듯 가이드가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정말 괜찮아요. 받은 거로 할게요.”

“네. 그럼…….”

가이드는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다.

가이드는 등급이 높거나 낮거나 전부 다 고생이다.

능력을 사용하고 파장의 폭주를 겪는 에스퍼들은 통제가 불가능한 맹수와도 비슷해서 가이딩을 하다가 가이드들이 폭행을 당하는 일도 빈번했다.

폭행을 하는 가해자가 능력자인 에스퍼다 보니 몇 대만 맞아도 중상해로 이어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일 년에 몇 번씩은 가이드들이 가이딩을 하다가 죽어 나갔고 가이드들은 에스퍼의 상태에 늘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조용히 지나가야 할 텐데.’

가이딩에 늦은 이하민이 걱정돼서 한동안 그가 사라진 곳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

많은 에스퍼가 계속 가이딩을 받고 있는지 식당은 여느 때에 비해 한산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 이하민은 나오지 않았다.

‘아직 가이딩이 안 끝났나? 밥은 먹이고 시킬 것이지. 밥을 먹어도 쓰러지게 생긴 애를!’

나와 함께 식사할 수 있게 된 사실에 기뻐하던 이하민이 자꾸 떠올랐다.

‘전화번호라도 받아 둘 걸 그랬나?’

다음에 보면 그것 먼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식사하는데 자꾸만 이하민이 앉았던 자리로 눈이 가며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떠들어 대던 소리가 잦아들고 작은 탄성이 여기저기서 들리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하며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럴 것도 없이 내 앞으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견인? 견인이 왜 여기에 와?’

염동력을 사용하는 S급 에스퍼.

각성되기 전에는 모델이 되려고 했다더니 만약 모델이 됐으면 정말 잘했을 것 같았다.

훤칠한 키에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가는 선, 세필로 정성 들여 그린 그림 같은 외모.

검은 슬렉스에 편안해 보이는 셔츠를 입고 있는데도 힘주고 꾸민 것보다 더 멋스러웠다.

소설 내내 그에 대해 퇴폐적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도대체 퇴폐적이라는 게 뭔가 하던 나도 그를 가까이에서 보는 순간 이해해 버렸다.

누나에게 퇴폐적으로 생겼다는 게 어떻게 생긴 거냐고 물었을 때 누나는 ‘킬 유어 달링’의 데인 드한을 보라고 했었다.

그렇게까지 찾아볼 마음은 없어서 그냥 넘겼는데 이거였구나.

누나. 잘 살고 있는 거냐? 네가 쓴 소설 때문에 내가 여기서 개고생하고 있는 건 아냐? 아오!!!

어쨌거나 그 견인이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빈 식판을 들고 있었다.

마치 여기에서 밥 한 번 먹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식판에 담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는 것처럼.

그러다 그가 나를 발견하고 물었다.

“너야? 서은우가?”

옅은 갈색빛이 오묘하게 섞인 눈동자가 순하게 빛나고 있었다.

대답하지 않았는데도 나를 보고 웃는데 눈꼬리가 유순하게 내려오며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접혔다.

“앉아도 되지?”

그러면서 이미 의자를 끌어내 앉고 있었다.

S급 염동력 능력자는 A급 능력자와 능력 차이도 현격해서 그가 일단 작정하고 능력을 사용하면 손을 대지 않은 채 센터를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는 말이 있었다.

그가 센터 안에서 변태영과 한 번 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건물 한 동이 박살 났다고 했던가?

그 건물 안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이 가이드가 아닌 에스퍼들, 그것도 상급 에스퍼들이어서 피해가 없이 모두 도망쳐 나온 거고 그게 아니었다면 그날 큰일이 벌어졌을 거라고 했다.

견인 자신도 일이 그렇게 될 거라는 건 뒤늦게 알았던 듯했다.

그 후로 상급 에스퍼들이 머무는 곳을 부수면 에스퍼들이 알아서 도망친다는 것을 깨닫고 종종 상급 에스퍼들이 지내는 건물을 부수면서 화풀이를 했다고 들었다.

그 견인이 지금 내 앞에 있었다.

“귀엽게 생겼네?”

맞은편에 앉은 채 턱을 괴고 웃더니 그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눈 밑의 애교 살도 도톰하고 코끝이 유난히 동그래서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얼굴로 인상을 쓰면 표정과 분위기가 변화무쌍하게 달라질 듯했다.

지금 웃고 있다고 함부로 마음을 놓을 일이 아니었다.

던전에서 그가 능력을 사용하면 건물 크기의 괴수들이 갈가리 찢겨 나간다고 하던데 염동력을 그렇게까지 사용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었다.

“혹시 가이딩은 다 받았어요?”

“내가 세 살 많더라고? 말 놔도 되지?”

상급 에스퍼는 하급 에스퍼의 자료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던전이 나타났을 때 조를 구성하기 위해 알아 두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허락되는 일이다.

“안 된다고 하면 안 놓으실 건가요? 그럼 안 놔 주시면 좋겠고요.”

“항상 여기에서 먹나? 이런 음식을 어떻게 먹지?”

내가 하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계속 딴소리였다.

“가이딩은 다 받으셨냐고요.”

“왜 물어봐? 질투하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선배님 가이드가 이하민이라서 여쭤보는 거예요. 같이 식사하기로 했는데 안 나와서요.”

“으음. 나는 안 받았는데 다른 놈들은 또 모르지. 다른 놈들은 능력을 많이 사용했는지도 모르잖아. 나한테는 어렵지도 않던데. 나는 다친 곳도 없고 파장도 안정적이거든. 공략도 빨리 끝났고.”

과시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견인이라도 가이딩을 안 받아서 다행이었다.

그러면 이하민이 조금은 편할 것 같아서.

“이하민이 그런 얘기도 해 줘?”

“뭘요?”

“가이딩. 가이딩이 보통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잖아. 서은우도 가이딩을 받나? 서은우의 가이드는 남자야?”

그러면서 자세를 바꿔 팔짱을 낀 채 내 얼굴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려는 듯 고개를 들이밀었다.

“다른 에스퍼한테 가이딩 얘기는 잘 안 물어보지 않나? 거의 불문율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런 말 하는 거 부끄럽던데.”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고 하려다가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말이 맞을 터였다.

가이딩은 신체 접촉을 통해서 이루어지니까.

폭주가 심하지 않으면 손을 잡거나 입을 맞추는 것으로도 파장을 가라앉힐 수 있다지만 에스퍼의 파장이 위험 수치에 이르면 더 긴밀한 접촉이 이루어지는 만큼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실례인데…….

“죄송합니다. 이하민 가이드가 걱정되는 마음에 제가 실수했습니다.”

“아냐. 아냐. 신선하고 재미있네. 그런데 이하민이랑 친해?”

“밥을 같이 먹는 사이입니다.”

“그래? 그러면 많이 친한 거겠네? 센터에서 따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없고?”

“없습니다.”

나는 견인과 얘기를 오래 이어 나가는 게 달갑지 않았다.

그는 센터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추앙받는 남자였고 지금 내가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사람들의 불필요한 관심이 집중될 것 같았다.

“이하민이 늦는 일은 없는데 이번에는 늦었더라고. 왜 늦었는지 묻는데도 대답하지 않아서 애들이 좀 화가 났어. 애들 성격 알잖아? 기다리는 거 싫어하고 더군다나 가이드가 그러는 건 못 참지. 그래서 야단을 좀 쳤으니까 이하민 보면 달래 줘.”

야단을 쳤다는 말이 심상치 않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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