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4화 (4/137)

4화.

원래 누나가 쓴 소설 자체가 땅을 파고들어 갈 정도로 분위기가 어둡고 피폐한 데다 폭력이 수시로 자행되는 설정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더군다나 소설의 첫 장면도 이하민이 S급 에스퍼들에게 사냥감처럼 몰이를 당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어두워지는 숲속으로 도망치며 나뭇가지가 사정없이 맨살을 할퀴고 때리는 동안 눈물범벅이 된 채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내가 자기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리가 없는 견인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이어 갔다.

“그런데 이하민도 대단하던데? 끝까지 말을 하지 않더라고? 왜 늦었는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서야 알았어. 우리한테 오기 전에 뭘 하고 있었는지 말이야. 그게 뭐가 대수라고 말을 하지 않은 건지 모르겠어. 그 말을 하면 우리가 서은우 에스퍼를 괴롭히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우리가 서은우 에스퍼를 보는 게 싫었나? 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이하민이 귀여운 구석이 있네?”

그건 또 무슨 말일까.

나를 보는 게 싫었다는 건 뭐고 그럴 수도 있을 건 같다는 건 또 뭐고?

견인이 나가고 나는 계속 멍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일어섰다.

먼저 이하민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

허락 없이 가이드의 방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 같은 낮은 등급의 에스퍼에게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지휘부에 걸리면 본보기로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징계를 받더라도 우선은 이하민을 먼저 봐야 할 것 같았다.

에스퍼가 가이드를 다치게 하면 센터에서 제재를 하지만 S급 에스퍼들은 많은 규칙에서 자유로웠다.

‘가이딩하다 맞고 치료도 못 받아서 혼자 끙끙거리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러나 이하민의 방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을 때 문은 잠겨 있고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아직 가이딩이 안 끝난 건가?’

그냥 돌아가자고 하면서도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는 생각이 이겼고 결국은 그 자리에서 끝까지 기다렸다.

이하민이 돌아온 것은 거의 두 시간이 지난 후였다.

초췌한 모습으로 힘없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것이 진이 다 빠진 것 같았다.

그래도 맞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봐서는 모르는 것이라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못했다.

“이하민.”

다가가며 부르자 이하민이 나를 보고 반가운 얼굴로 냉큼 달려왔다.

“왜 여기에 있어?”

그러다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혹시 나 기다리다가 밥 못 먹었어? 그런 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먹었어. 그런데 네가 안 나와서 무슨 일 있나 하고.”

나는 말을 하고서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괜찮아?”

“응. 그럼. 다행히 모두 능력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됐나 봐. 나타난 던전이 그냥 가벼운 수준은 아니었나 보던데 역시 대단하지? 그런데…… 여기에 오면 안 되는 거 알지? 나갈까?”

“어? 아. 아니야. 얼굴 봤으니까 됐어.”

그러자 이하민이 웃었다.

“고마워. 보러 와 줘서. 나를 보러 와 준 사람 처음이야.”

“약속을 안 지켜서 무슨 일인가 하고 와 본 것뿐이야. 괜히 이상한 생각하지 마.”

“내일은 일찍 갈게. 꼭.”

신이 난 이하민에게 건성으로 손을 흔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을 때 디바이스가 울렸다.

던전이 나온 건가 싶어서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가 벨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디바이스에서 이런 소리가 나기도 하나? 하면서 확인하자 액정에 발신자의 이름이 떴다.

‘아…… 이거 전화기도 되지.’

그동안 그게 그런 식으로 사용된 일이 거의 없어서 잊고 있었다.

‘그런데 견인이 왜 나한테 전화를 걸어?’

안 받아도 되는 거라면 그냥 안 받고 싶은데…….

그리고 나는 그대로 못 들은 척 음을 소거하려 했다.

그러다가 디바이스에는 그런 기능이 없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음소거를 했다가 던전이 나타났을 때 소집 명령을 듣지 못할까 봐 그런 듯했다.

안 받겠다고 작정을 했지만 그러고도 끝까지 벨이 울리는 바람에 결국 포기하고 전화를 받았다.

[왜 이렇게 늦게 받아?]

“무슨 일입니까?”

[안 받으려고 한 거야? 서운한데?]

전화번호는 어떻게 안 거냐고 물으려다가 상급 에스퍼에게는 내 정보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무슨 일인데요?”

[용건 없으면 전화하면 안 되는 것처럼 왜 이렇게 서운하게 이러실까.]

“용건 없이 통화할 사이 아닌 걸로 압니다만.”

[에에이. 그렇게 말하면 서운하지. 아니. 그 말이 맞기도 하네. 그래. 우리가 아직 용건 없이 통화할 사이가 아니긴 하지. 그러니까 용건 없이도 통화할 수 있는 사이가 되자, 우리.]

뭐래.

멍하니 있다가 할 얘기가 없으면 끊겠다고 했더니 그가 후다닥 말을 이었다.

[아니지. 그러면 안 돼. 내일부터는 그 식당 말고 우리가 이용하는 식당으로 오라고 하려고 전화했어.]

“저는 D급 에스퍼고 제가 사용할 곳은.”

[아. 그래. 맞네. 그 말이 맞네. 내 생각이 짧았어.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해.]

화가 났나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목소리가 희한할 정도로 상큼했다.

그 얼굴로 이런 분위기를 낸다는 것도 신기하기는 했다.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신나게 말을 한 건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신경 쓸 건 아니겠지.’

애초에 멋대로인 성격들이라 그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하민에게 전화번호 물어본다는 걸 잊어버렸네.’

그 생각을 하다 다음에는 제발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며 메모를 해 두었다.

메모를 한다고 기억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

다음날 식당에 갔을 때 나는 이하민이 나와 있는지 먼저 찾았다.

그러다가 왠지 식당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려서 그쪽만 엄청나게 붐비고 다른 한쪽은 거의 텅텅 비다시피 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뒷모습에서도 독특한 아우라가 풍기고 있어서.

견인은 턱을 괴고 앉았는지 허리가 구부정했는데 그 뒷모습만 봐도 그가 얼마나 이 시간을 지루해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향한 곳을 봤더니 이 미친놈이……!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어도 우리 식당에는 샹들리에가 있었는데 그 샹들리에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냥 흔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천장에 박힌 선들이 서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누가 가서 완력으로 잡아당기는 것도 아닌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하! 이 인간이!’

샹들리에는 깃털처럼 가볍게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심심하다고 저 짓을 하고 있다는 건가?

남의 식당에서 왜?

천장에서 샹들리에가 빠졌는데 먼지도 내려앉지 않았다.

수많은 먼지를 염동력으로 조절하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견인이 그 미친 짓을 하는 동안 옆에 견인이 없는 것처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은 채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만약 자기들에게 시비를 걸면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샹들리에가 바닥에 내려앉자 견인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뭘 할까 하는 것 같은데 계속 놔두면 우리 식당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뭐 하는 겁니까?”

내가 묻자 견인이 뒤를 돌아보더니 나를 발견하고 해맑게 눈을 접었다.

하. 저 미친!

설마 했는데 나를 기다리다가 심심해서 그런 건가? 정말로?

“어서 와. 왜 이렇게 늦었어? 기다리는 게 지루해서 벽을 뜯어 볼까 했거든. 훈련도 되고.”

“그 훈련을 왜 여기에서 하는데요? 훈련할 수 있는 곳이 있을 텐데요?”

“환경을 바꿔 가면서 훈련을 해야 나중에 던전이 나타났을 때도 효과적으로 대응을 할 수가 있지.”

말은 잘도 했다.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것 같아서 조금만 함께 있어도 지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런 걸 먹고 어떻게 살아?”

그 말에 대답을 해 줄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다른 곳으로 가서 앉았더니 견인이 그곳으로 쪼르르 쫓아왔다.

“식판에 음식 담아다 줄까?”

됐다는 말도 없이 내가 일어서 음식을 가지러 가자 견인이 나를 다시 따라왔다.

그러면서 자기도 새로 식판을 들고 뭘 좀 담아 볼까 하는 듯이 같이 오더니 한숨만 내쉴 뿐 결국 음식을 담지는 않았다.

왜 남이 먹는 음식을 보면서 한숨을 쉬는 걸까.

짜증 나게.

다른 사람들도 그의 행태가 못마땅하겠지만 말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는 못 먹겠는데…… 우리 그냥 다른 데로 가서 먹을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식판에 음식을 담고 있는데 뒤에서 신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 않아도 이하민이라는 걸 알 것 같았다.

기분 좋은 발걸음 소리를 듣기만 해도.

“은우야.”

이하민은 내 옆에 바로 올 때까지도 견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내가 좀 늦었지? 많이 기다린 건 아니지?”

“시간이 딱 안 맞을 수도 있지. 참. 전화번호 알려 줘, 이하민.”

“응. 그래. 아. 죄송합니다. 제가 새치기한 게 됐네요. 먼저 하시…….”

먼저 하시라고 말을 하려던 그의 표정이 변해 갔다.

깜짝 놀라서 입이 벌어지고 눈이 동그래졌지만 내가 예상했던 그림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이하민이 더럭 겁을 먹고 벌벌 떨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사람들 불편하게?

그 정도의 느낌이라고 할까.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