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5화 (5/137)

5화.

“안녕하세요. 에스퍼님.”

견인은 이하민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더니 나보다 앞서가서 수프와 빵을 담고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나마 먹어 줄 만한 건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나 자기가 먼저 자리를 맡으면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갈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기다렸다.

나는 어떻게 좀 해 보라는 표정으로 이하민을 보았는데 그도 딱히 방법이 없는 듯했다.

나를 발견하고 올 때만 해도 아주 신이 나서 오더니 갑자기 힘이 쭉 빠진 것처럼 보였다.

“밖에 나가서 먹을까?”

내가 묻자 이하민의 눈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럴까?”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하민이 잽싸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러나 견인이 우리에게서 두 눈을 떼고 있지 않는 한 그런 계획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우리가 나가도 따라오려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하민이 먼저 물었다.

“그래도 나가기는 해 보자.”

그러면서 최대한 무심한 태도로 발걸음을 돌렸는데 견인은 이미 자기도 그 계획에 포함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 걸었다.

그러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게 들렸다.

흡사 우리가 제물이 되어 준 것 같은 분위기였다.

틀린 말도 아니지.

“하급 에스퍼들이 이런 걸 먹고 사는 줄은 몰랐네.”

이게 보통이고 그냥 자기들이 특별 대우를 받는 건데 왜 ‘이런 거’라고 하면서 무시하는 거지?

“흠…… 어떻게 한다? 그래도 거기에서 먹으면 안 될 텐데.”

혼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느낌상으로는 자기가 먹는 곳에서 같이 먹었으면 하는데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이하민 가이드. 이하민 가이드는 여기에서 식사하는 게 낫지 않나?”

“…….”

이하민을 좋아할 텐데 왜 이러는 거지?

그 말을 듣고 이하민이야말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견인에게서 들은 말이 너무나 달콤한데 나 때문에 차마 여기를 떠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서은우 에스퍼랑 같이 식사하기로 한 거라서 같이 먹겠습니다.”

“그래? 내가 서은우 에스퍼랑 둘이서 할 얘기가 있다면?”

견인이 작정하고 눈에 힘을 준 채 그런 식으로 말을 하면 웬만큼 담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서울 것이다.

그러나 이하민은 답지 않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견인을 바라보았다.

“식사 시간은 저희에게도 보장되어 있습니다. 하실 얘기가 있으면 다른 시간에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호오…… 그렇게 말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재미있어.”

견인이 빙긋 웃었다.

눈으로는 웃고 있지만 이 상황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서은우 에스퍼. 나랑 같이 나가지.”

더 이상 대꾸를 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그냥 구내식당에 있는 빈자리에 앉았다.

나가려는 목적이 견인을 떨구어 내려는 거였는데 이렇게 된다면 더 이상 나가려고 애쓸 이유가 없었다.

이하민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맞은 편에 앉지 않고 옆에 앉는데 그 모습이 엄청나게 자연스러웠다.

그러자 견인은 잘됐다는 듯이 맞은편에 앉았다.

“재미있군. 앞으로는 이렇게 함께 모여서 먹지.”

둘이만 먹는 건 불가능하겠다고 생각했는지 어영부영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모양새였다.

나는 그게 이하민에게 불편할 거라고 생각해서 녀석을 바라보았다.

견인과 함께 식사를 하느니 차라리 나와 따로 먹는 걸 원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러나 이하민은 그냥 식사에 열중했고 그 모습이 꽤 편안해 보였다.

내가 아는 이하민은 견인과 함께 있는 동안 위축돼서 아무것도 제대로 못 했는데…….

뭔가 좀 많이 이상하고 어긋나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더 이상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식사 한 번 하는 데 뭐가 이렇게 생각할 게 많은지.

이하민이 불편해한다고 해도 내가 더 이상 나서서 뭔가를 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나로서는 당연한 거면서도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하민을 살피고 있었다.

언제부터 내가 이런 성격이었다고?

이렇게 해 봐야 결국 상처만 주게 될 텐데.

나는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될 테고 이하민이 나를 의지할수록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나에 대한 원망과 고통은 크게 남을 터였다.

남겨진다는 것이,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 나는 알고 있었고 나는 이하민이 그것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적어도 나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하느라 내 손이 느려지자 이하민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디바이스가 울렸다.

내가 디바이스를 확인하는 동안 견인은 자신의 것을 보고 짧게 얼굴을 구기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출동……이야?”

이하민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잦지?”

“별일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에스퍼들은 모두 나갔고 식당에는 이제 거의 가이드들만 남겨졌다.

남겨진 가이드들의 표정은 애증이 뒤섞여 있었다.

에스퍼에 대해 애정보다는 증오와 원망이 조금 더 강한 것 같았지만 유독 이하민의 표정은 달랐다.

뭐라고 정확하게 말을 하지는 못하겠는데 확실히 다른 가이드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무리 미워도 자신의 에스퍼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걸까.

문득 돌아보았다가 그를 봤고, 불안한 얼굴에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보이는 녀석과 마주쳤다.

그냥 피식 웃음이 나왔다.

소설 속 이하민에게 그런 인사를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기에.

***

팀을 배정받으며 처음부터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지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견인의 팀이 되었다.

견인이 나를 지목했을 때 다른 에스퍼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말 없는 눈마다 의구심이 가득했다.

견인의 선택을 받았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하는 에스퍼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서은우가 어떤 에스펀지 볼 수 있겠군.”

그저 그걸 알아보려고 그런 거라는 듯이 말하고 견인이 차에 탔다.

평소에는 더 서두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은 꽤나 여유로웠다.

그것도 던전에 도착할 때까지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견인은 몇 번 나에게 말을 걸었고 그때마다 나는 단답을 하거나 꼭 해야 할 말이 아닌 것 같으면 그냥 지나갔다.

그때마다 다른 에스퍼들은 내가 대답을 잘하기를 바라는 듯이 눈치를 주었다.

그러나 견인은 거기에 대해서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정신이 박힌 놈이라면 그런 얘기를 해서 내 집중력을 흐트러지게 하는 일도 하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긴장하고 있는 것 같네. 그럴 것 없어. 그냥 같이 가자는 것뿐이지 서은우 에스퍼에게 기대하는 건 없으니까.”

그 말에 다른 에스퍼들이 웃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으면 마음껏 해 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던전은 평소와 다를 것이 거의 없었고 괴수도 특별히 더 위험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내가 해 보지. 다른 사람들은 그냥 적당히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지켜보도록 해.”

견인이 평소에도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에게는 그가 만용을 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괜히 나섰다가 남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싶지는 않아서 기꺼이 얌전히 있을 생각이었다.

던전에서 견인은 압도적인 위용을 선보였다.

저래서 사람들이 견인, 견인 하는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랬다.

그렇게 능력 있는 인간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견인과 비슷한 인간이 둘이나 더 있어서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견인은 초반부터 괴수를 압박해 나갔다.

괴수는 집채만 한 동물형이었는데 견인의 염동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염동력을 저런 식으로 사용하는군.’

그 거대한 괴수가 이리저리 처박히고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견인이 완전히 장악하며 무시무시한 힘으로 압박을 해 대는 통에 괴수는 견인의 공격을 불편해했다.

바람 소리를 내고 벽에 날아가 부딪쳤다가 쓰러질 때는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다른 에스퍼의 공격이 이어지는 동안 괴수의 살이 찢기며 체액이 튀었다.

이제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두가 이번 던전도 어렵지 않게 공략에 성공할 거라고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이상한데? 뭐지?’

모든 것이 제대로 되고 있었다.

이대로 한다면 앞으로 몇 분 후면 순조롭게 던전을 클리어하게 될 거라고 모두들 예상하고 있을 터였다.

그때 아주 잠깐 동안 괴수의 형상이 겹치는 듯 보이다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봤을까 했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사람은 없는 듯했다.

견인은 이번에야말로 끝낸다고 생각한 것처럼 괴수를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괴수는 가벼운 쓰레기처럼 들렸다가 무서운 속도로 처박혔고 에스퍼들은 탄성을 지르며 성공을 기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팀장님이십니다.”

“던전이 바로 연달아 생겨나서 걱정했는데 던전 자체의 위험도나 괴수의 힘은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에스퍼들은 공략을 이미 성공한 것처럼 말했고 무표정한 얼굴이기는 했지만 견인도 같은 생각을 한 듯했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거였을까.

다 처리되었던 괴수가 서서히 일어섰다.

정작 견인 자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괴수를 등 뒤에 두고 걸어오고 있었는데 마치 게임이 리셋되기라도 한 것처럼 괴수는 우리가 그곳에 처음 도착했던 때의 상태로 돌아갔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한 상황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우리 표정을 본 견인이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뒤를 돌아보았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