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그 모습을 보며 견인이 퍽 당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S급 에스퍼가 나서기만 하면 그 던전은 성공적으로 공략할 수 있을 거라던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괴수의 움직임을 보며 나는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놈은 우리가 처음 그곳에 왔을 때로 돌아간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빠르고 강하게 변해 있었다.
견인은 처음처럼 공격을 했지만 그를 향해 달려오는 괴수를 멈추지 못했다.
더 이상 지루하다는 듯 나른하고 무심하게 손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견인도 제대로 집중하고 능력을 끌어 올리는 것 같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견인은 점차 뒤로 밀렸고 그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결계 능력을 가진 에스퍼가 재빠르게 결계를 펼쳤지만 괴수는 그것을 찢고 나왔다.
‘젠장.’
아무래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겠다는 내 계획은 어그러질 것 같았다.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는 견인을 지나치자 그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내가 일으킨 바람에 휘날렸다.
괴수는 내가 제 앞을 지나치는 것을 보며 뒤로 돌았고 나는 바닥을 차고 뛰어올라 놈의 등을 밟고 머리 위로 올라갔다.
어떤 존재건 머리는 치명적으로 약하다.
그리고 놈은 절대 이 공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어깨를 박차고 날아올랐다가,
쿠콰콰콰쾅-!
이렇게 머리를 주먹으로 치면,
쿠당-.
아무리 강한 괴수라고 해도 별수가 없다.
가격하는 사람이 신체 강화자라면.
게다가 그 에스퍼의 몸에서 깨어난 사람이 한때 무협 게임 안에서 동서고금 천하제일인으로 불리던 자였다면.
이번에 나타난 녀석이 아무리 별종이라고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쓰러지는 놈의 옆에서 바닥으로 내려서며 나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꼈다.
돌아보지 않았는데도 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뚜렷했다.
젠장.
그동안 존재감을 잘 숨겨 왔는데 왠지 이번에는 내 계획이 대실패로 돌아간 것 같았다.
***
돌아가는 차 안에서 견인은 나를 계속 주시했다.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 대고 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을까.
그가 나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센터로 돌아간 뒤 견인이 나를 따라왔다.
우리가 머무는 곳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상관도 없는 듯했다.
나에게 먼저 말을 하려나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아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뭘 물어야 할지 마음이 정해지지 않아서 할 말을 고르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가이드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다가왔다.
이하민은 보이지 않았다.
이하민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내 가이드가 다가왔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 옆에 있는 견인이 무척 신경 쓰이는 듯했는데 내가 고개를 젓자 두 번 묻지도 않고 환한 얼굴을 하고서 돌아섰다.
“서은우 에스퍼. 나랑 얘기 좀 하지.”
결국 마음을 정한 듯이 견인이 말했다.
“피곤해서 좀 쉬었으면 합니다.”
“하급 에스퍼가 상급 에스퍼의 말을 듣지 않아서 좋을 건 없을 텐데.”
그렇게 말을 하기에 나는 말 한번 잘했다고 생각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기회가 되면 언제 한번 그 말을 꼭 해 주고 싶은 참이었다.
“사실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바라는 게 없으면 손해 볼 것도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저는 꼭 센터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
견인은 내가 그렇게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듯 눈에 띄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아니. 사람이 뭐가 이렇게 극단적이야? 그냥 얘기 좀 하자고 했다고 센터를 그만두네 마네 하고 말이야. 에스퍼로 각성했으면 사명감을 갖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지 말이야. 사람이 못 쓰겠네.”
“들어가겠습니다.”
“식사는 내일 그 시간에 할 거지? 그럼 내일 식당에서 보는 거로 하지. 푹 쉬도록 해. 오늘은 수고 많았어. 그리고 다음에도 나랑 같은 팀이 될 거야. 우리 팀으로 조정해 달라고 말을 해 둘 거거든.”
아. 왜?
그를 노려보며 할 말 많은 얼굴을 하자 견인이 상큼한 표정을 지었다.
내내 무관심한 나에게 대고 얘기를 해 대다가 내가 적극적인 표정을 보인 게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다.
“역시 좋아할 줄 알았어. 우리는 잘 어울릴 거야. 내가 잘 알려 줄게. 내가 얼마나 유능한 에스퍼인지는 귀가 아프게 들었지? 앞으로는 그것들을 직접 보면서 배울 수 있을 거야. 이게 얼마나 영광인지는 서은우 에스퍼도 알 거야.”
만약 내가 싫다고 말을 하면 바뀔 여지가 있을까.
잠시 그 생각을 했지만 거기에서 입을 벌리면 오히려 견인은 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우선은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몸을 던지고 나자 내가 왜 그랬나 하는 후회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달리 방법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못 본 것 같던데. 혹시 다른 던전에서도 그랬나? 그러면 오늘은 부상당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을 것 같은데.’
잠시 누워 있다가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함께 나간 사람들의 상황을 듣고 싶어서였다.
하급 에스퍼들이 저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역시나 내가 생각한 대로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이 많이 나왔고 센터가 어수선했다.
“심우진 에스퍼님도 크게 다쳤다던데.”
“나도 얘기 들었어. 완전히 쓰러졌던 괴수가 다시 움직였다며. 에스퍼님이 아니었으면 그곳에 갔던 사람들은 전부 다 죽었을 거라고 하던데. 그래도 별일은 없겠지?”
“여기에 왔을 때 이미 심한 폭주 상태였다고 하더라고. 능력을 갑자기 크게 끌어 올리느라고 그런 것 같던데.”
“그래도 별일은 없을 거야.”
별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는 근거는 가이드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심우진에 대한 믿음도 아니고 고집이었다.
별일이 생기면 안 되어서.
그래서 고집스럽게 그렇게 믿으려 하는 것이다.
이하민이 있는 곳으로 가 볼까 하다가 가 봤자 만나지도 못할 것 같아 그만두었다.
‘끝나고 연락을 해 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비명이 들리더니 거친 타격음이 연달아 났다.
“으윽!! 살려 주세요!”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둔탁한 소리가 이어졌다.
폭주한 에스퍼가 살려 달라고 고함을 지르는 가이드를 걷어차며 무자비하게 때리고 있었다.
“으으아아아악!!”
가이딩을 실패했는지 에스퍼는 괴로운 듯이 고함을 질러 댔다.
B급 에스퍼.
견장의 표식을 보며 나는 가이드가 오늘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소설에 언급도 안 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이들이었다.
누구도 가이드의 죽음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여야 했다.
여기에서 나선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 왜 나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걸까.
정신 차려, 서은우.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거야?
속으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어느새 몸을 날려 다시 가이드를 향해 무섭게 날아가는 에스퍼의 팔을 붙잡았다.
어찌나 굵은지 한 손에 다 잡히지도 않았지만 그는 나에게 붙잡혀 팔을 움직이지 못했다.
설마하니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폭주하고 잠식되고 생명이 사그라들 거라는 그 생각부터 버리세요. 살고 싶으면 당신이 거기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겁니다. 가이드를 죽이면 당신의 수명이 늘어납니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가이드보다 당신의 생명이 중요하다고 누가 그러죠? 그것도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죽어 버려요.”
그는 충격을 받은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하급 에스퍼에게 손목을 붙잡히고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상태에 놀란 듯했다.
그 일로 충격을 받아서건 어째서건 그는 잠잠해졌고 나는 주위가 고요해진 것을 느꼈다.
‘아. 제발.’
그냥 사람들이 다 들어간 것이기를.
나를 보느라고 이렇게 조용해진 것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천천히 돌아섰는데 이번에도 내 바람은 수포로 돌아간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었다.
설상가상 그중에는 변태영마저 서 있었다.
굉장히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담배를 피우나 했더니 막대 사탕을 입에 넣고 있었다.
‘그렇지. 막대 사탕이 저 남자의 시그니처였지.’
다갈색 눈동자가 흥미롭다는 듯 반짝였다.
던전에서의 시간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곤혹스러웠을지 몰라도 변태영만큼은 말끔하게 일을 수행하고 온 듯했다.
막 던전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었던 것 같은데 괴수의 체액을 뒤집어쓴 흔적도 없었다.
나는 일단 여기에서 더 이상 소란을 부리지만 않으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지금 본 것을 잊어 줄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 자리에 변태영이 나타나서 그런 건지, 소리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나에게 달라붙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연달아 두 번이나 일을 일으켰다.
그것도 하루 동안에.
‘좋지 않아. 좋지 않아. 생각이라는 것 좀 해. 서은우. 어쩔 생각이야?’
머리를 쥐어박다가 디바이스를 만지작거렸다.
에스퍼들의 상태를 보니 이하민이 더 걱정됐다.
얘길 들으니 심우진도 폭주했다는 것 같은데.
S급 에스퍼의 폭주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고작 B급 에스퍼도 가이드를 거의 죽을 정도로 패는데 심우진이면…….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