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이하민은 무사할 수 있을까?
정말 괜찮을까?
‘가이딩이 끝나면 전화하라고 할까? 아니야. 호출이 울리면 집중이 깨질 거야. 그러다가 심우진이 화라도 내면 안 되지…….’
침대에 걸터앉아 한참 고민을 하다 연락을 하지 못하고 결국 디바이스를 쥔 채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
일어났을 때는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늦잠을 잤다는 걸 깨닫고 허겁지겁 뛰어다녔다.
심우진 때문에 이하민이 걱정돼서였다.
무리하게 가이딩을 하다가 쓰러지지는 않았는지도 걱정이 되고 혹시 폭주 상태의 심우진이 폭행을 하지는 않았는지도 신경이 쓰였다.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더더욱 그랬다.
‘식당에는 오겠지?’
그런 생각으로 정신없이 달려 나갔는데 왜 S급 에스퍼가 둘씩이나 우리 식당에 있는 걸까.
내가 들어갔을 때 변태영은 우리 음식을 보고 끔찍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개도 절레절레 저으면서 어떻게 이런 걸 먹고 사냐는 얼굴을 하더니, 마찬가지의 고뇌를 하고 있는 견인의 빈 식판 위에 제 식판을 포개 버렸다.
견인은 식판 두 개를 한 손에 들고 음식을 절망적인 얼굴로 조금 더 둘러보다가 그냥 식탁으로 돌아가 앉았다.
‘아직은 안 봤어. 이대로 나가면 돼.’
나는 최대한 조심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하필 그때 견인이 고개를 돌렸다.
“어! 서은우다!”
조용히 뒷걸음질로 나오려 하고 있었는데 목청도 좋은 인간이 크게 소리쳤다.
순간 변태영이 나를 바라보았다.
“안녕?”
환한 곳에서 보니 눈동자가 정말 투명하고 반질반질했고 색감이 다채로웠다.
보기 드물게 잘생긴 견인의 옆에 있으면서도 전혀 꿀리는 외모가 아니었다.
전날 저녁에는 제대로 볼 정신이 없었는데 환한 곳에서 보니 확실히 눈이 부시는 얼굴이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머리카락 아래 모양 좋은 눈썹과 아름다운 눈을 바라보면서 변태영이 국보급이라고 불리는 것은 비단 그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견인이 입을 열었다.
“이러지 말고 우리 식당으로 가자. 어차피 심우진은 오늘까지 나오지 못할 거고 여기 밥은 절대 못 먹을 것 같으니까.”
그러면서 견인이 내 손을 잡으려 했다.
미치신 모양?
내가 몸을 반쯤 돌리자 견인의 손이 허공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변태영이 재미있다는 듯 키득 웃었다.
그러고는 이제 곧 견인이 난리 치는 모습을 보겠다고 생각한 듯했는데 견인이 그냥 손을 회수하고 멋쩍어하며 주머니에 넣자 그게 신기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어. 형. 왜 안 지랄해?”
그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얼어붙는 듯했다.
견인에게 그런 말을 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해서 그러는 모양이었는데 아마도 그것이 세계 랭킹 1위의 위엄인지 견인은 화를 내기는커녕 친절하게 대답까지 해 주었다.
“서은우 에스퍼한테 그러면 안 되거든. 그러면 안 놀아 줘. 너도 조심해. 태영아, 네가 우리 식당에 같이 가서 밥 먹자고 해 봐.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게 있잖아. 너는 서은우 에스퍼랑 초면이니까 네가 하는 말은 들어줄지 몰라.”
“초면 아니야. 우리 어제도 봤는데. 하급 에스퍼가 폭주해서 난리 치는데 서은우가 가서 닥치라고 하는 것 같더라고?”
하급 에스퍼…….
S급에게는 B급도 하급 에스퍼구나.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언제 닥치라고 했다고?!
“아. 그랬어? 서은우 에스퍼라면 그럴 만하지. 내가 여기서 샹들리에 가지고 좀 놀았다고 엄청 뭐라고 했거든. 한 번만 더 그러면 죽여 버린다고 막. 형 엄청 무서웠어, 태영아. 서은우 에스퍼 좀 혼내 줘.”
자기들 맘대로 말하는 건 S급 에스퍼들 종특인가?
식사도 하기 전에 무지하게 피곤해진다고 생각하다가 두 사람이 방심한 틈을 타서 빠르게 출구로 향했을 때 활기찬 소리가 들려왔다.
“은우야. 많이 기다렸어?”
이하민이었다.
“매점으로 가자.”
나는 이하민이 식당으로 완전히 들어오기 전에 나가면서 말했다.
“왜? 줄 길어? 오늘 맛없는 거 나왔어? 아닌데. 나 식단 다 외우고 있는데 오늘 아아…….”
신나게 떠들어 대던 이하민이 내 뒤쪽을 보더니 한 번에 모든 게 이해가 된 듯 당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매점이 좋지.”
이 녀석도 그냥 아침에 눈뜨자마자 정신없이 뛰어나온 것 같은데 붓기도 하나도 없고 어쩜 이렇게 눈이 부실까.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해도 되나?
우리는 매점으로 직행하며 계속 얘기를 나눴다.
“어제 안 힘들었어? 어제 나타난 던전들이 다 공략이 어려웠다고 하던데. 너는 안 다쳤어. 은우야? 가이딩은 잘 받았고? 귀찮아도 가이딩은 꼭 받아야 돼. 가이딩도 안 받으면 정말 위험할 거야.”
“응. 걱정 안 해도 돼. 그런데 너는 괜찮냐, 이하민?”
“나야 괜찮지. 어제는 심우진 에스퍼님만 가이딩 하면 돼서 완전 편했어.”
“그래? 평소에는 귀찮았나 보네?”
“응. 셋이나 하려면 역시 좀 귀찮지.”
그걸 물은 사람은 변태영이었는데 이하민은 전혀 모른 채 활기차게 대답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말을 해 주려고 했는데 그럴 틈도 없었다.
“참치김밥은 일찍 떨어지는데 나는 좀 뛰어야겠다. 어딜 가 봐도 우리 매점 참치김밥처럼 맛있는 건 없는 것 같아. 너도 얼른 와. 은우야.”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하고서 열심히 달려가는 이하민을 보며 변태영이 혀를 찼다.
“그런 소리를 해 놓고도 타격감을 전혀 안 느끼다니.”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견인이 말을 하고 쌩하니 달려갔고 나는 그가 이하민을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고 두 사람을 따라갔다.
그러나 막상 두 사람을 보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좀 애매했다.
내가 갔을 때 견인은 이하민의 눈앞에서 참치김밥을 모조리 카운터에 올려놓고 당당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하민이 사지 못하도록 그가 다 사 버린 모양이었다.
그걸 보고 이하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눈썹을 휘었다.
“이걸 다 드시려고요, 에스퍼님? 하나만 남겨 주시면 안 돼요? 저 참치김밥 정말 좋아하는데…….”
“나도 좋아해.”
“정말 이걸 전부 다 드시려고요?”
“그래. 다 먹을 거야.”
봉투에 담으며 직원이 서른여섯 줄이라고 말을 해 주었다.
이렇게 유치한 인간이 다 있나 했는데 그게 이하민의 심장을 쥐고 흔드는 방법이 될 줄이야.
그사이에 변태영이 막대 사탕을 한 움큼 집어 계산대에 올리고 하나를 이하민에게 주었다.
“먹어.”
계산이 끝나지 않은 거지만 직원은 말을 하지 못했다.
“계산 안 끝났잖아요. 계산하고 주셔야죠.”
내가 말하자 견인이 쌤통이라는 듯이 웃었다.
“거봐라. 변태영. 내가 서은우 에스퍼는 조심해야 한다고 했지?”
그러고는 계산이 끝나기를 기다리더니 당당하게 김밥 한 줄을 이하민에게 내밀었다.
“먹어.”
이하민은 우울한 얼굴을 하고 김밥 한 줄을 받아 들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참치김밥을 이런 식으로 받아먹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한 줄을 더 먹고 싶을 때마다 사정을 하게 생겼으니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견인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소설에서는 이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잔인하고 야비하게 굴었던 것 같은데 이건 괴롭히는 건지 아닌지도 조금 헷갈렸다.
“샌드위치도 맛있어, 이하민. 베이컨 샌드위치. 그거 먹자.”
너무 낙심한 것 같아서 이하민에게 대안을 제시했다.
“은우 너도 그거 먹을 거야……?”
“응.”
그렇게 되자 이제 당황하는 쪽은 견인이 되었다.
자기 혼자 참치김밥 서른여섯 줄을 어떻게 하려고.
“오, 오늘은 김밥 먹어. 부……탁이야, 이하민.”
견인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너무 호락호락한데?
무릎까지 꿇으라고 할까?
이하민은 한 번만 봐주자는 듯이 나를 보았고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매점 밖에 있는 파라솔 아래 테이블에 김밥 서른여섯 줄을 올려놓은 견인은 우리에게 앞으로 격을 좀 높여 보라며 계속해서 구시렁거렸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세상이니만큼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먹는 식사를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면서.
할 수만 있으면 우리끼리 편하게 먹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그건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이하민은 참치김밥에 진심이었는지 정말 열심히도 먹었다.
서른여섯 줄이면 아무래도 너무 많지 않나 했는데 그런 생각은 할 필요도 없었다.
“맛있지, 은우야?”
그래. 맛은 있네.
견인이 캔 음료를 이하민의 옆에 가져다주었다.
염동력으로.
능력 낭비를 이런 식으로 하네.
“이거 따뜻하게 해서 마셔야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데워 줄까?”
옆에는 제 재능을 낭비하지 못해 안달인 변태영이 버티고 있었다.
“심우진 에스퍼님은 이제 파장 수치가 안정됐어요.”
이하민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뭔가 말을 하기는 해야겠다고 생각한 듯 말했지만 그 얘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이하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시 김밥을 먹었다.
정말 보기 좋게 잘도 먹었다.
굵게 말린 김밥을 입에 앙 넣고 오물거리면 볼록해졌던 뺨이 조금씩 갸름해지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변태영은 빨리 그 입에 막대 사탕을 꽂아 넣고 싶은 듯 계속 타이밍을 노렸다.
그러다가 이하민이 새 김밥을 집어 들면 그때마다 낙심한 표정을 지었는데 나는 그들이 이하민에게 나쁜 에스퍼들은 아닌 건가 해서 조금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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