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8화 (8/137)

8화.

‘아니야. 소설에서도 이런 식으로 잘해 줄 때가 있기는 했었어. 그게 일방적이어서 그렇지.’

“아…… 배부르다.”

이하민이 남은 김밥을 바라보며 말했고 견인은 또다시 염동력으로 그것을 이하민에게 밀어 주었다.

“배불러요. 더는 못 먹겠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봉투에 전부 담아 주기까지 했다.

변태영은 기다리던 순간을 포착한 듯 이하민의 입에 막대사탕을 꽂아 넣었다.

이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하민의 디바이스가 울렸다.

“어……!”

이하민은 말을 하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달려갔다.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지도 못하고 갈 정도면 엄청 급한 일인 듯했다.

“심우진이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

견인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혼자서 가이딩을 받게 해 줬는데도 그런가 보네.”

변태영이 쯧, 하고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말을 하기 전에 서둘렀다.

“그럼 저는 이제 가 보겠습니다.”

“뭘 이렇게 서둘러? 다시 출동 명령 떨어질 때까지는 여유 있잖아.”

변태영이 나보다 두 살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을 놓으라고 허락한 적도 없는데 그동안 얼굴 볼 일도 거의 없던 사람이 반말을 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할 일이 있어서요.”

“뭔데?”

“……훈련요.”

“내가 도와줄까? 나랑 같이 할래?”

변태영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서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됐습니다.”

“야. 태영아. 서은우 에스퍼 귀찮게 하지마. 성격 안 좋아서 다음에 볼 때는 아예 안 놀아 줄 수도 있어.”

견인이 말하자 변태영이 피식 웃었다.

“그래 봤자 하급 에스퍼잖아요.”

“상급 에스퍼라고 잘난 척할 수 있는 건 센터에서만이지. 자꾸 깝치면 센터 나가 버리겠대.”

견인은 참 경이로운 인간이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그 인간은 한 번을 제대로 옮기는 적이 없었다.

변태영은 나를 힐끔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이거 먹어.”

그러고는 막대 사탕 세 개를 내밀었다.

“저는 사탕 싫어합니다.”

“와아. 오늘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날이다. 변태영이 사탕을 권했다가 차였어!”

견인이 말하더니 염동력으로 사탕을 옮겨 내 앞으로 가져다주었다.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걸 언제 한 번 고쳐 줄 기회가 생기면 좋을 텐데.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최대한 빠르게 그곳을 떠나 버렸다.

신체 강화자라고는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내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 그 인간들이랑 같이 있다가는 진이 다 빠질 것 같아 이번에는 예외로 하기로 했다.

***

센터에 안내 방송이 울렸다.

찾아야 하는 사람과 연락이 닿지 않으면 방송이 나오는데 호명된 사람이 가이드라면 그것은 아주 좋지 않은 의미였다.

디바이스로 호출을 했는데 오지 않았다는 의미라서 필연적으로 중징계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우리처럼 감봉 정도면 상관이 없는데 가이드에게는 물리력을 행사하는 징계도 종종 이루어진다.

규정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사람들의 묵인하에 자행되곤 했다.

하필 방송으로 찾는 사람이 이하민이었다.

‘가이딩을 하려고 갔던 것 아닌가? 왜 찾는 거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 이하민의 숙소로 먼저 가 보았다.

식사를 하고 헤어진 지 상당히 시간이 오래 지났던 터라 가이딩은 다 끝났을 거라고 여겼기에 이하민이 연달아 힘겨운 가이딩을 하고 지쳐서 잠들었다가 호출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달음에 이하민의 숙소에 가서 문을 두드리려고 하던 나는 그곳에서 나오는 신음에 그대로 멈췄다.

‘……!’

괜히 왔다.

아직 가이딩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가이딩을 가이딩룸이 아닌 가이드의 방에서 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닌가? 그냥 사적인 만남인 건가?’

갑자기 소설의 내용이 떠오르면서 민망함에 얼굴이 확 붉어지는 것 같았다.

미친 누나가 그런 것도 자세히 평가를 해 줘야 한다면서 억지로 들려주는 바람에 결국 사흘동안 집을 나갔었지.

그래 봤자 집으로 돌아갔을 때부터 다시 들어야 했지만.

급하게 발길을 돌리다가 그래도 방송으로 그를 찾고 있다는 걸 이하민에게 알려 주기는 해야 한다는 생각에 걸음을 멈췄다.

‘어떻게 하지?’

어차피 지금 이하민과 함께 있는 사람은 심우진일 텐데 심우진은 이하민이 자기를 가이딩해 주느라고 호출에 반응하지 못했다는 말을 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 이하민만 호되게 당할 것이고 폭행을 당하거나 독방에 감금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단…… 말은 하자.’

가이딩을 하는 동안 외부의 개입이 생기면 파장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지만 이하민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단은 강행하기로 했다.

결국 나는 돌아가서 문을 두드린 후 아주 조금만 열고 그 틈에 대고 말을 해 주었다.

“야. 이하민. 사람들이 방송으로 너 찾아.”

신음은 그사이에 더욱 커졌다.

“은우야?”

문틈으로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신음은 계속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신음을 내는 게 이하민이 아니었어?’

“은우 맞아?”

연거푸 나를 부르기에 얼떨결에 대답을 해 주었다.

“어. 어…….”

“은우야. 잘 안 들렸는데 들어와서 다시 말해 주면 안 돼? 나는 지금 못 움직여서.”

와. 이하민. 너무 대담한데?

“너 찾고 있다고. 방송 나오고 있어.”

“은우야. 안 들려.”

그래. 그렇게까지 말하면 나도 못 들어갈 것 없다.

왠지 나를 놀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문을 확 밀고 들어갔더니 와…….

밑에는 웬 남자가 상의를 벗고 엎드린 채 깔려 있고 그 위에 올라탄 이하민은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 된 채 등판에 대고 꾹꾹이를 하고 있었다.

가이딩을…….

쟤는 저렇게 해?

이건 무슨…….

누나가 출간 제의를 받고 전연령으로 내려고 수위를 대폭 조절해 버렸나?

이게 말이 되나?

첫 장면만 해도 분명히 엄청난 고수위였는데…….

그런데 지금은 땀에 젖기는 했지만 분명 이하민은 셔츠도, 바지도 입고 있었다.

‘뭐지? 다른 가이드들도 가이딩을 이렇게 하는 거야? 아니지. 견인이 말한 것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지. 가이딩 받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냐고 했었으니까.’

이하민에게 깔린 남자는 반대쪽을 보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는데 머릿결 하나는 확실히 끝내줬다.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어서 여자로 오해할 뻔했다.

보지 않아도 심우진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내가 신음이라고 들은 건 아무래도 곡소리인 모양이었고 이하민은 그때도 멈추지 않고 계속 두 손을 겹쳐 열심히 꾹꾹이를 하고 있었다.

이게 저 아이의 가이딩이구나…….

“은우야. 뭐라고 했어?”

어찌나 땀을 흘렸는지 머리카락이 젖어 얼굴에 몇 가닥이 붙은 채로 이하민이 물었다.

땀에 젖어도 이하민은 순수하고 건전한 분위기가 났다.

순전히 신성한 노동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만약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견인이었으면 확 분위기가 달라졌을 텐데.

“아…… 너 찾는다고. 방송 나와.”

“아. 그래? 어쩌지? 가이딩을 멈출 수가 없는데 파장 수치가 너무 안 좋아서.”

“그럼 내가 너 가이딩 중이라고 말해 줄게.”

“그래 줄래? 정말 고마워. 은우야.”

“그래…… 수고해.”

그때까지도 심우진은 으윽 으윽 소리를 내면서 끙끙거렸다.

방송실에 찾아가서 그곳에 있던 직원들에게 이하민이 가이딩 중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거기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말인가.

이하민이 보고도 안 하고 가이딩을 했다고 그걸 문제 삼겠다는 건가?

그럴 거면 심우진에게 따져야 할 일이지만 그들은 절대로 그럴 인간들이 아니었다.

가이딩을 요청한 건 심우진이었을 텐데도 왜 보고하지 않고 가이딩을 해서 호출에 제때 응하지 않았냐면서 이하민만 잡으려고 들 것이다.

“가서 이하민에게 말할까요? 방송실에서 지금 당장 심우진 에스퍼에 대한 가이딩을 멈추고 오라고 했다고요?”

그러자 그들이 나를 노려보았다.

막상 그렇게 말을 들으면 얼마나 멍청한 소리를 한 건지 그들도 알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의 보고는 에스퍼가 해야지 가이드에게 요구하는 건 어폐가 있습니다. 가이드를 호출하는 사람은 에스퍼 아닙니까?”

그들은 더 이상 내가 하는 말에 대응하지 않았고 나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 상황에서 혼자 떠들어 봤자라 방송실을 나왔다.

어제에 이어 자꾸만 많은 사람들을 나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지 정말 알 수가 없다.

***

던전 처리 이후 파장 수치가 날뛴 이들이 꽤 나왔던 모양이었다.

가이딩을 하던 중에 사고가 생겼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들렸다.

폭주한 에스퍼가 가이드에게 해를 끼친 것이다.

이곳에 와서 적응을 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일이 언제까지 묵인될 것인지 진저리가 났다.

그 일 때문이었는지, 앞에서 식사를 하던 이하민도 말이 없었다.

“잘 아는 가이드였어?”

내가 묻자 이하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더 아쉬워.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 기회도 없어진 거잖아.”

“그런 생각을 하면 버티기 힘들어. 앞으로 점점 더 위험한 던전이 나올 거야. 위험도는 높아지고 폭주하는 에스퍼는 점점 더 많아질 거야. 던전에서 죽는 에스퍼도 많아질 거고. 그때가 되면 전체적으로 더 힘들어질 거야.”

내가 한 말은 소설을 토대로 한 거라서 예언에 가까웠는데 이하민이 그런 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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