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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11화 (11/137)

11화.

정작 본요리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하민이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것을 보고 뭐 하는 짓이냐며 말렸는데 이하민은 배가 고파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얼굴이었다.

다음부터는 훈련을 시키더라도 먹여 가면서 해야겠다고 진지하게 마음을 먹었다.

그들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본요리를 내오게 했고 이하민은 요리의 맛은 전혀 느끼지 않고 그저 살기 위해서 허겁지겁 입 안에 집어넣는 듯했다.

내가 봐도 S급 에스퍼들이 안돼 보였다.

“아…… 살겠다.”

S급 에스퍼들은 설마하니 자기들이 준비한 회심의 요리가 그런 평가를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하민은 일단 배가 부르고 나니 어떤 의욕도 없는 듯했고 S급 에스퍼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서은우 에스퍼, 이하민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견인은 당장 나를 의심하며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죠.”

“그런데 옷이 왜 이렇게 젖은 거야? 머리카락은 왜 또 젖었고?”

“그냥 운동 좀 했습니다. 저도 체력을 길러야죠.”

이하민이 말하자 견인이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어 버렸다.

“가이드가 체력을 길러서 어디에 쓰려고?”

“쓸 일은 많죠. 가이딩할 때도 힘이 들고 던전이 센터 근처에 생기면 저도 도망쳐야 하잖아요. 센터에 던전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고요.”

이하민이 말하자 다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이드가 도망치면 가이딩은 누가 하지?”

변태영은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물었고 이하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던전이 센터에 생기면 저는 도망갈 건데요.”

그 말은 하지 말지.

아직 일어난 일도 아닌데 그렇게 소신껏 발언을 해서 괜히 S급 에스퍼들의 원성을 살 필요는 없지 않나.

나도 그럴 거기는 하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지 않은가.

눈치를 챘는지 견인이 나를 보았다.

“서은우 에스퍼는 어쩔 생각이지? 설마 서은우 에스퍼도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

“네.”

“네라는 건. 아니라는 거지?”

“네.”

“길게 얘기 좀 해 보지?”

“아닙니다.”

“그게 다야?”

“네.”

이 정도면 충분히 길었지.

그러는 동안 심우진이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유심히도 보는데 나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그의 희한한 능력을 언젠가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견인이 하는 말을 놓쳤다.

어차피 중요하지도 않은 말을 했을 거면서 내 대답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네.”

귀찮아서 대충 대답을 했더니 견인이 멍하니 나를 보았고 변태영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보니까 서은우 좀 전에 형이 한 말 못 들었어. 그런데 귀찮아서 다시 묻지도 않고 그냥 ‘네’라고 해 버린 거야.”

“일일이 그렇게 말 안 해도 나도 다 알아.”

견인은 수치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변태영의 실제 능력은 독심술이 아닐까.

“형이 전투 중에 방심하다가 괴수에게 죽을 뻔했다며. 형이 죽었으면 서은우는 좋아했을 거라고 했어.”

변태영이 친절하게 그 말을 다시 해 주었다.

“아…….”

역시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게 맞았다.

그런 소리에 대꾸를 해 줘야 한다는 게 새삼스럽게 피곤하게 느껴졌다.

‘전투 중에 방심하다가’라고 했다.

나는 견인이 그때의 일을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하며 그를 보았다.

오래 보지는 않았다.

내 시선에 어떤 감정이 실릴지 자신이 없어서.

그가 이하민을 대해 온 방식 때문에 견인을 경멸하고 있는데 그 감정을 들켜서 좋을 건 없었다.

그런데 견인은 생각보다 더 감이 좋았고 내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차린 듯했다.

그런 쪽으로만 감이 발달한 건 안 좋은데.

변태영이 그런 나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거지? 형 말을 들어보면 서은우가 아니었으면 그때 큰일이 날 뻔했던 것 같던데. 나도 그날은 괴수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평소하고는 달랐어. 평소라면 벌써 죽었어야 했는데 다시 살아서 움직였지. 다시 말이야. 분명히 죽었고, 끝났다는 느낌이 전해져 왔는데 말이지.”

그러면서 그는 재차 나에게 답을 요구했다.

“어떻게 알았지?”

“저는 신체 강화자입니다. 안력도 좋죠.”

“그래. 신체 강화자지. D급의 신체 강화자.”

어쩌라고.

관심 없다는 듯이 흘리자 변태영이 피식 웃었다.

“재미있군. 우리 앞에서 이렇게 심드렁하게 구는 사람은 없는데. 센터의 능구렁이들도 우리에게는 그렇게 못하는데. 덕분에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신기한 기분을 느끼고 있어.”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가 나를 탐색하며 바라보는 눈과 마주쳤다.

심우진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어려웠다.

굉장히 세련된 것 같으면서도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공존했다.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단어들이 그에게는 모두 딱 어울렸다.

예의 바르면서 무례하고 유해하면서 무해하고 타락한 듯하며 순진한…….

희한한 것은 그 각각의 단어들이 그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처럼 느껴진다는 거였다.

“다음에는 나랑 가 보는 게 어때요. 은우씨? 다음에는 나랑 같은 팀 해요.”

“웃기시네. 서은우 에스퍼는 이제부터 나랑 다니기로 했어.”

견인이 당당하게 말했다.

하. 언제?

그런데 변태영마저 끼어들었다.

“형들은 팀원 없어도 문제없잖아. 그러니까 서은우는 내가 데리고 다닐게.”

“야, 태영아. 너 지금까지 무슨 말 들었냐? 서은우 에스퍼 아니었으면 나 죽을 뻔했다니까? 내가 얼타고 있는데 서은우 에스퍼가 괴수를 죽이고 나를 구해 줬다고. 햐~ 그걸 네가 봤어야 하는데.”

“걱정하지 마. 이제 보게 될 테니까.”

변태영의 말에 심우진은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였다.

랭킹 1위의 위엄이 이런 데서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그런 것을 결정하는 데 내 의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건가 싶어서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심우진은 그들의 바보 같은 싸움에서 일찌감치 빠지는 것 같았고 그라도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라고 나는 함부로 안도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이하민은 옆에서 정말 얌전히 있었다.

갑작스러운 체력 훈련이 버겁기는 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어느샌가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지극히 평화로운 소리를 규칙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설마…… 이하민. 너 자?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도롱도롱 소리를 내면서 잠이 들 사람은 이하민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렇게 곯아떨어질 정도로 피곤할 사람도 이하민뿐이었다.

이하민의 고개가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떨어지다가 내게 닿았고 그때부터는 아주 안락하게 느껴졌는지 편안하게 기대고 잤다.

진짜 귀엽다.

맞은 편에 있던 견인이 그 모습을 보고 쯧 하고 혀를 찼다.

그 후에 의자 하나가 저절로 가만히 움직여 이하민의 옆으로 옮겨졌다.

이들 중에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견인뿐이었는데 뭘 하는 건가 하는 동안 그가 옮겨와 앉더니 이하민의 머리를 감싸 제 쪽으로 옮겼다.

나를 불편하게 하느니 그냥 자기에게 기대라는 것 같았는데 내가 알기로 견인은 절대 이하민에게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사나운 소리로 이하민을 깨우고 퍼부어 댄다면 모를까.

나는 견인이 이하민을 괴롭히면 가만있지 않으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하민 가이드가 요즘 많이 힘들었을 테니까 서은우 에스퍼가 이해해 줘. 원래 이렇게 약골은 아닌데. 아니. 약골은 약골이지. 그래도 요즘 친구 생겼다고 좋아하는 것 같던데. 친구가 신체 강화자라서 이하민이 쫓아다니면서 같이 놀기는 힘들기는 할 거야. 그렇다고 너무 무시하고 야박하게 굴지는 말고. 서은우 에스퍼가 무식하게 근육 달고 힘자랑만 하는 부류는 아니라고 믿겠어.”

저게 견인이라고?

저게 견인에게서 나올 말이라고?

이하민도 그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듯 자세를 바르게 하고 앉았다.

“식사 끝났으니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좀 쉬고 싶어서요.”

이하민도 피곤할 거고 나도 피곤해서 일어났더니 그들도 우리를 잡지 않았다.

“그래. 식사 시간에는 이제 이리로 와. 그건 내가 센터에 말해 둘 테니까.”

견인이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나는 이하민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곳 음식이 낫기는 했고 우리가 먹던 것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하민은 단호했다.

“제 입에는 안 맞는 것 같아요. 겨우 먹었거든요.”

“……?”

혹시 이 사람들과 식사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그렇게 돌려 말하는 건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 듯했다.

정말 억지로 먹었다는 것 같은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던 것이다.

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하민을 바라보았고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를 바라보았다.

“가자. 은우야.”

“응.”

이야. 이하민.

한 방이 있네?

숙소로 돌아가 샤워를 급하게 마치고 자리에 누운 나는 내가 그토록 피하려 했던 일들이 이제 전부 이뤄져 버렸다는 것을 실감했다.

소설 속 자낮수에게 미쳐 버린 집착광공 셋을 이제 다 만났고 왠지 앞으로도 그들과 계속 엮이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계획은 나름대로 잘 세운 것 같은데 어디서 잘못된 거지?’

그래도 심우진은 견인이나 변태영처럼 제멋대로는 아닌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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