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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13화 (13/137)

13화.

괴수가 버티고 있는 던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이상한 짓에 순위를 매기자면 이 행동은 단연 1위를 차지할 것 같았다.

도대체 뭘 하는 걸까 하고 있을 때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대기가 일렁이는 것 같더니 주위의 사물이 왜곡되며 일그러졌다.

처음에는 괴수의 열기 때문인가 했는데 그렇게 바뀌어 가던 곳에 색이 입혀지고 다른 형태가 나타나다 마침내 주위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곳이 던전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그랬는데 어느새 괴수는 사라지고 그 공간에 심우진과 나만 남았다.

심우진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가끔씩 나를 보면서 내 표정을 살폈다.

‘……뭐야. 심우진의 능력이 이거였어? 감각을 치환한다는 게?’

그가 만들어 낸 소리는 청각을 자극하는 것과 동시에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였다.

나는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 서서 은빛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를 보고 있었고 내 곁에 심우진이 있었다.

그는 바이올린도 들고 있지 않았고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와 함께 던전에 올 때 입고 있던 옷도 아니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근사한 모습을 한 채 따뜻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는 자신의 모습조차도 환상으로 만들어 보이는 거였다.

내 앞에 펼쳐진 곳은 그저 평화롭고 아늑해 보였다.

괴수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이고 있겠지.

그것이 심우진의 공격일 테고.

심우진이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그런 것들을 펼쳐 보이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나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장소를 이동한 것도 아닌데 좀 전까지만 해도 있던 괴수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내가 싸워야 할, 그리고 죽여야 할 괴수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심우진 딴에는 나를 배려한답시고 그런 거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런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다.

몇 번 그의 형상이 흐릿해지며 찢어진 깃발처럼 갈기갈기 찢어지다가 다시 이어지곤 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빈번해졌고 몇 번은 형체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했다.

심우진이 넉넉히 상대할 수 있는 괴수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에게 이것을 거둬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자칫하다가 그의 집중이 흐트러지며 심우진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심검을 펼쳤다.

여간해서는 사용하지 않는 검법이지만 지금 내 눈을 가리는 허상을 걷어 내려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사용해야 할 듯했다.

형체가 없는 심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공간이 다시 제 모습을 찾았다.

검의 극의에 이른 자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심검을 무림 세계에서 펼쳤다면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어떤 고수를 막론하고 무릎을 꿇었을 텐데 이곳에서 그런 환호는 없었다.

알아보는 자도 없거니와 유일하게 함께 있는 인간은 정신이 없는 것 같으니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멀뚱히 서 있었다.

‘저게 왜……?’

심우진이 만든 환상을 베어 냈을 때 드러난 광경은 내가 알던 던전이 아니었다.

뒤쫓아 오던 늑대를 잡으려고 급히 날린 화살에 여러 마리의 맹수들이 한꺼번에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심연 같은 어둠에서 나온 괴수들이 체액을 쏟아 내며 죽었고 그 어둠이 무너져 내렸다.

‘게이트……?’

설마 저게 게이트?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곧 확신이 생겼다.

그동안 던전에 나타나는 게이트에 대해 말만 들었는데 그것을 본 순간 그것이 게이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검이 내 눈을 가린 환영을 찢어 냈을 뿐 아니라 그곳에서 나오던 괴수들을 베어 내고 놈들을 쏟아 내던 게이트까지 무너뜨렸던 것이다.

심우진이 멍하니 서 있다가 천천히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가 돌아본다는 것을 알고 최대한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아니. 고개를 돌리면 안 되는 거였네. 심우진은 내가 지금 환상을 보며 안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그러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눈앞에 헛것이 보이는 것처럼 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 버린 것 같았다.

심우진은 다른 S급 에스퍼들보다 더 빨리 나를 이곳에 데려오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나타난 던전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온 듯했다.

그리고 나에게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새로 나타난 던전 중에 가장 위험도가 높은 곳으로 데려온 듯했는데 하필 그곳에 게이트가 열린 것이다.

만약 자세히 알아보려고 했어도 던전 안에 게이트가 존재하는 것은 센터에서도 미리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도 했다.

몇 년에 한 번씩 던전 안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 던전에 들어간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소설을 읽은 나조차도 알지 못하니 센터의 연구진들이 아무리 매달린다고 해도 알 방법이 없을 것이다.

던전에 들어간 사람들은 나오지 못했고 나중에 사람들이 들어갔을 때 그곳에는 임무를 마친 게이트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게이트를 통해 괴수들이 들어왔다가 에스퍼들을 끌고 갔을 거라고 했는데 하필 이번에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만약 그곳에 있던 게 한두 마리의 괴수뿐이었다면 심우진의 계획대로 됐을 텐데 우연도 그런 우연이 다 있을까.

심우진도 이 경우에는 자신의 능력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거고 나를 그곳에 데려온 게 미안했을 것이다.

심우진은 나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아무리 세계 랭킹 1위의 변태영이라고 해도 게이트를 없앨 수는 없었다.

그건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실제로 밝혀진 사실이었다.

변태영과 견인이 함께 게이트가 나타난 던전의 후처리를 위해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같이 간 에스퍼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공략을 하러 갔다가 사라진 후 뒤늦게 투입된 거라서 살아남은 거지 그게 아니었다면 그들도 그날 같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간신히 게이트를 봉쇄하고 나서 둘 다 크게 폭주하는 바람에 그날 이하민은 목숨을 걸고 가이딩을 했다.

소설에 회상 장면으로 한두 단락에 걸쳐 나오는 내용이었는데 여기에서 눈을 뜬 후 다른 에스퍼들이 그 얘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봉쇄.

맞지……. 봉쇄였다.

센터의 거의 모든 에스퍼가 달려들어서 겨우 할 수 있었던 것이 결계 능력을 가진 에스퍼들을 모아 결계를 만들어 봉쇄를 하는 거였다.

더 이상 괴수가 나오지 못하도록 게이트를 막아서고 있다가 그 후로도 수십의 에스퍼가 목숨을 잃으면서 겨우 봉쇄에 성공했고 던전이 사라지면서 게이트도 같이 소멸되며 일이 끝났었다.

그 후로 언제 다시 던전에 게이트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하필 그게 오늘 나타난 것이다.

“은우…… 씨?”

“네.”

“은우 씨가 한 겁니까?”

“뭘요?”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모른 척하는 수밖에.

“좀 전에 그 게이트…….”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갑자기 바다가 나타나서 놀라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여기였는데요?”

“…….”

심우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네 착각이었다고 생각해.

그러나 그는 다시 게이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처참하리만치 완벽하게 무너져 버린 게이트는 게이트가 그런 모습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우쳐 주고 있었다.

경계가 무너지고 어둠이 슬금슬금 물러나는 것처럼 틈이 스스로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심우진이 지금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 것 같았다.

“끝났으면 가죠?”

여기에 계속 있을수록 나만 불리해질 것 같아 말하자 별수 없다는 듯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을 나오면서 심우진은 몇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 자기가 그런 건가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신체 강화자이기는 하지만 내 능력으로 게이트를 무너뜨린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내 공격법은 주먹을 쓰거나 발로 차는 정도일 테니 더더욱 상상이 어려울 터였다.

센터로 돌아가는 동안 심우진이 보고를 해야 해서 차는 내가 운전했다.

평소 같았다면 돌아가는 동안 급하게 보고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던전에서 나오며 던전을 클리어했다는 내용만 전하면 끝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가 공략을 마친 던전에 게이트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센터에 알려야 했다.

게이트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그의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호들갑을 떨었는지 옆에 앉아 있는 내 귀까지 따가울 정도였다.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디바이스를 멀리 뗐다.

[지금 어디십니까, 에스퍼님?]

“센터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예? 던전은…… 어떻게 하고요? 던전에서 그냥 나오신 건가요?]

“클리어했습니다.”

[하지만 좀 전에 게이트가 나왔다고…….]

“클리어했고 돌아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에스퍼님은 서은우 에스퍼하고만 가지 않으셨습니까? 분명히 게이트였습니까? 게이트가 나온 거라면 이건 말이 되지 않는 얘기인데요.]

“자세한 보고는 가서 하겠습니다. 끊습니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같은 소리를 계속하는 바람에 짜증이 난 듯 작게 한숨을 쉬더니 그가 나를 돌아보았다.

“운전 잘하네요.”

좀전의 말투와 대비되는 어조로 그가 말했다.

“예.”

“더 하고 싶은 얘기 없습니까?”

“네. 피곤하네요.”

“그래요? 피곤해요?”

던전에서 한 게 없을 텐데 뭐가 피곤하냐는 말일까?

혹시 게이트를 그렇게 만든 것과 관련이 있냐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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