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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14화 (14/137)

14화.

도둑이 제 발 저린 것 같기는 했지만 이것저것 자잘하게 자꾸 신경이 쓰였다.

“오랜만에 운전했더니 피곤해서요.”

심우진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기도 하겠네요. 센터에만 있다 보면 운전할 기회가 많이 없을 거라 재미있어할 줄 알았어요. 이제 바꾸죠. 보고도 끝냈으니 내가 하겠습니다.”

“아니에요. 게이트까지 처리하느라고 힘드셨을 텐데 제가 하겠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제발 그런 거로 하자, 심우진.

네 공적으로 하고 연봉 협상도 유리하게 하고 그래.

심우진은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 나는 그때부터 그가 하는 말에 최소한으로만 대답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가 대답하고 싶지 않을 만한 질문을 해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에스퍼님의 능력은 정말 신기하네요.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다른 악기로 연주해도 그렇게 되는 건가요? 감각을 치환하는 능력이라는 게 그런 거죠? 소리를 내서 청각을 자극하고 그 청각이 시각에도 영향을 주게 만드는 거죠?”

내 방법이 통했다.

거기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은 듯 그가 조용해졌다.

역시 공격이 최상의 방어라는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자세하게 알려 주시면 안 돼요? 그런 능력이 나타난 건 심우진 에스퍼님뿐이고 그 후에는 그 능력이 발현된 적이 없다는데. 세계 유일의 능력을 가졌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정말 궁금해요. 그것도 최상급으로요. 어떤 환상을 보여 줄지는 에스퍼님이 정하시는 거예요? 에스퍼님이 상상하시면 그걸 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는 아예 헛기침까지 하면서 모르는 척을 하려고 하는 듯했다.

오. 재미있는데?

공수 교대는 언제나 짜릿하단 말이지.

“그런데 아까는 저에게도 환상을 보여 주시고 괴수들에게도 보여 주신 거죠? 괴수에게는 저에게 보여 주신 것 같은 그런 아름다운 장면을 보여 주지는 않으셨을 것 같은데. 정말 엄청난 것 같아요. 그런 능력을 가진 에스퍼가 없기도 하지만 만약에 있다고 해도 그걸 에스퍼님처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거기에서 에스퍼님 모습도 변하던데. 옷도 그렇고요.”

덕분에 나는 더 이상 게이트를 없앤 것에 대해 질문을 받지 않고 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심우진도 나중에는 내가 왜 그렇게 질문을 퍼부었는지 안 것 같았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에스퍼님을 알게 돼서 정말 영광이에요. 에스퍼님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예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가이딩 잘 받으세요. 에스퍼님.”

“…….”

그는 내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급히 따라 내리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러다가 내가 본 것을 같이 보고 멈칫했다.

소식이 퍼졌는지, 센터에 있던 사람들이 다 나와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던전에 출동을 나간 에스퍼들 중 먼저 온 사람들도 있었다.

‘하…….’

어느새 나는 온갖 사람들의 시선을 심우진과 나란히 나눠 받고 있었다.

어째 갈수록 주목도가 높아지는 것 같은데 이러다 나중에는 나 혼자 온 세계의 관심을 혼자 받는 거 아니야?

웃기는 건, 그것마저도 완전히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였다.

이렇게 되면 그냥 내가 알아서 내 몸을 지키는 게 나은 거 아니야?

S급 에스퍼들의 관심 밖으로 꺼져 주겠다는 계획은 이미 애초에 물 건너간 것 같은데.

에스퍼들 중 몇몇은 던전에서 게이트가 나왔다는 말에 가이딩 받는 것도 미루고 기다린 듯했다.

초조함을 감추려는 듯 아랫입술을 한껏 짓씹던 이하민도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 때문인지 나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슬금슬금 그에게 가려 했을 때 센터장과 지휘부가 급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심우진 에스퍼님.”

“말한 대로입니다. 게이트가 나왔고 없앴습니다.”

심우진은 센터장의 앞에서도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나도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하나?

심우진이 잘 말할 것 같은데.

그러나 내가 한 걸음을 옮기는 걸 보고 센터장이 턱짓을 했다.

그대로 있으라는 말인가?

그래 놓고 그는 심우진에게 얘기를 계속했다.

“없앴다는 게…… 정확하게 무슨 의미입니까.”

“게이트를 무너뜨렸습니다.”

“지금까지 게이트가 그렇게 처리된 적은 없습니다.”

“거짓말하는 것 아닙니다. 이미 사람을 보냈을 테니 그 사람들에게 직접 보고를 들으시면 될 겁니다. 말하는 걸 믿지도 않고 꼬투리만 잡을 생각이면 그냥 가도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S급 에스퍼가 아니라면 센터장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하지는 못할 텐데.

이건 좀 부럽다.

그러자 센터장이 나를 힐끔 바라보았다.

심우진에게 묻는 건 어려운 것 같으니까 나를 털어 보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그러자 심우진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서은우 에스퍼는 잘 모릅니다. 내가 능력을 사용해서 서은우 에스퍼는 내가 만든 환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실 거면 왜 서은우 에스퍼를 데리고 가신 건지…….”

센터장은 별 희한한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그러게.

생각해 보니까 정말 웃기는 일이기는 했다.

심우진은 그 던전에서 게이트가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그곳의 괴수는 혼자서 거뜬하게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렇다고 해도 나한테 환상은 왜 보여 줘?

웃기는 사람이네.

능력이 희한하니까 별짓을 다 한다.

“그래도 또 모르잖아요. 어디서 괴수가 날뛰어서 나를 위험하게 할지.”

심우진의 말에 센터장은 그가 괜히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겠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는 못했다.

능력이 좋아서 같이 간 팀원에게 환상도 보여 주고 게이트도 없앴다는데 자기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래. 좋겠다라고 하는 것 말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심우진 덕에 조금 편해질 듯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계속 우리에게 쏠렸고 그사이에 변태영과 견인이 다가왔다.

나는 그들이 심우진에게 간 틈을 타서 살금살금 자리를 떴다.

다행히 나를 붙잡는 사람은 없었고 내 눈짓을 보고 이하민만이 조용히 나를 따라왔다.

“괜찮아, 은우야?”

“응. 나는 한 일이 없으니까.”

“정말 게이트가 나왔어?”

“응. 엄청나더라.”

“괴수들이 많이 나왔어?”

“그런 것 같았어. 나는 잘 보지도 못했어. 심우진 에스퍼님이 능력을 써서 나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의 못 봤거든.”

“너한테도…… 능력을 쓰셨어? 너한테 왜?”

센터장과 하는 얘기는 못 들은 모양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에스펀데.”

“오늘 여러 가지로 희한한 걸 많이 본다. 심우진 에스퍼님이 던전에서 돌아오면서 저런 표정인 건 정말 처음 보는 것 같아.”

이하민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런 표정이라는 게 뭔데?”

“그러게…… 나도 딱히 뭐라고 정확하게 말은 못 하겠는데 하여간 처음이야.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기도 하고. 호기심인가? 게이트가 나타난 던전에서 돌아오면서 제정신이 붙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기는 하지. 그런 의미에서 은우 너야말로 대단한 것 같아. 하급 에스퍼인데 충격도 안 받고.”

“응……. 그렇지. 내가 원래 많이 대단하잖아.”

“그래. 그렇지.”

이하민은 자주 고개를 돌려서 심우진이 간 쪽을 보았다.

가이딩을 요청하면 바로 가야 해서 그러는 듯했다.

“모르겠다. 필요하면 찾으시겠지.”

이하민은 어차피 디바이스가 있으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한 듯 버텼다.

바로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하민이 계속 따라왔고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얘기를 할 만한 곳으로 옮겨 갔다.

숲의 초입, 전에 이하민에게 수련을 시킨 곳이었다.

장소가 그곳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얘기를 하는 동안 달리 할 것이 없어서 그런 거였는지 이하민은 마보 자세를 했다.

역시 잘 배우는군.

“이제는 처음만큼 아프고 힘들지는 않지?”

“아니? 말도 안 되지. 당연히 아프고 힘들지.”

이하민이 오해하면 안 된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도 계속하네?”

“네가 나 근성 있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해 준 사람 없었거든.”

그게 뭐라고 그 말 때문에 계속하는 중인가 보다.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너한테 도움이 될 거야, 이하민.”

“그래. 고마워. 그리고 나도 너한테 나중에 꼭 도움이 될게.”

“안 그래도 돼.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말을 할 뻔했는데 입을 다물었다.

그냥 평범하게 지내자, 서은우.

잘할 수 있잖아?

스스로 그렇게 다독이고 이하민의 어깨를 꾹 눌렀다.

“몸은 편한 걸 찾으려고 하겠지만 네 의지로 눌러야 돼. 편한 자세로는 너한테 도움이 되지 않아. 그러면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응.”

“자세가 안 좋으면 몸만 고생해.”

몇 군데를 툭툭 치면서 자세를 교정해 주자 이하민은 그 자세로 계속 마보를 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겪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게이트가 나타났던 때의 일.

나에게는 없는 기억이 그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

“은우 너는 아마 그때 없었을 거라 모를 텐데 나는 그날 센터에 있었거든. 정말 무서웠어. 그렇게 무서웠던 기억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

나는 혹시 소설의 첫 장면에 나온 게 그때의 일일까 생각했다.

S급 에스퍼들이 폭주해서 파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이하민을 토끼몰이하듯 숲으로 쫓고 그를 착취한 게 아닌가 했던 것이다.

그만한 파장을 가라앉히려면 안거나 입술을 겹치는 것으로는 안 될 테고 가장 높은 단계의 성적 접촉이 불가피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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