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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16화 (16/137)

16화.

나중에는 S급 에스퍼들도 자주 부상을 입었고 그럴수록 이하민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졌다.

집착에 광기가 더했고 S급 에스퍼들은 이하민을 가까이 두지 않으면 불안을 견디지 못했다.

그것은 이하민을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들었고 안 그래도 자존감이 낮은 이하민은 그들의 폭언과 폭행에 갈수록 삶의 의지를 잃어 갔다.

그러면서도 버틴 것은 그들이 세계의 구원자라는 생각과 자기가 없으면 그런 그들이 계속해서 던전을 처리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잠깐. 이쯤 길드가 만들어지지 않나?’

게이트가 나타난 후 던전의 위험도가 전체적으로 높아진다.

던전을 처리하러 나갔다가 죽는 상급 에스퍼들이 늘어나고 센터는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에스퍼들 중 몇 사람이 센터를 떠났다.

센터는 탈주한 에스퍼를 범죄자로 간주하고 자발적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들을 죽이기로 결의한다.

다른 에스퍼들도 동조하고 센터를 떠날 것을 염려해서 내린 결정이지만 보란 듯이 상급 에스퍼들이 줄줄이 따라 나가며 센터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된다.

그래도 S급 에스퍼들은 센터에 남는데 이하민을 괴롭혀서 계속 독자들의 속을 뒤집어 놓던 그들이 떨어진 명예를 그나마 회복하는 구간이 그 구간이었다.

어려운 던전을 처리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능력을 발휘하며 먼치킨이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 주는데 전투 장면의 묘사가 탁월해서 지금도 그 내용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슬슬 길드가 만들어질 때가 됐나?’

그렇게 만들어진 길드는 던전을 처리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새로운 도시를 세우는 데 주력한다.

그리고 도시의 치안을 맡는 것으로 에스퍼의 역할이 바뀌는데 새로운 도시의 중심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계급이 낮아지며 철저한 지배 계급이 만들어진다.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은 괴수가 도시의 중앙으로 가는 것을 목숨을 걸고 막아야 했다.

그것이 새로운 도시의 중심부를 차지한 에스퍼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었다.

‘그 일도 곧 벌어지기는 하겠네. 그래도 나한테는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겠지? 상급 에스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그러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머지않아 밝혀졌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펼쳐 온 활약 때문이었는지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단순한 상급 에스퍼도 아니었다.

***

견인이 나를 찾아온 것은 게이트가 나타난 일로 센터 안팎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던 때였다.

견인이 나를 찾아다니는 것은 희한한 것도 아니라서 나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도 또 시작인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다른 때보다 그의 표정이 진지하기는 했지만 무슨 장난을 하려고 그러는 건가 했을 뿐이었다.

가까이 다가온 견인은 나를 힐끔 보고 내 옆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훈련 센터 뒤에서 보자. 내가 가고 5분 후에 따라와.”

“…….”

내가 견인의 말을 들을 이유는 없…….

아니지. 상급 에스퍼의 말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따르도록 내규가 바뀌었지.

아마도 S급 에스퍼들이 나서서 바꾼 것일 터였다.

5분이 지날 것도 없었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고 사람들의 눈을 피하길 바라고 그러는 거라면 그냥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였다.

누구의 시야에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한 채 내가 견인에게 갔을 때 그는 혀를 찼다.

“천천히 오라니까. 그렇게 보고 싶었어?”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할 말이나 하라는 뜻을 담아 바라보았더니 견인이 뜨끔했는지 큼큼거렸다.

“아으! 내가 하급 에스퍼를 보면서 이렇게 쫀다는 걸 알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려나 모르겠네.”

그러다가 그가 말을 이었다.

“시간 오래 끄는 거 싫어한다는 거 아니까 바로 말할게. 나랑 합류해. 서은우 에스퍼.”

“합류요?”

“그래. 새로운 일을 할 건데 나랑 같이하자.”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건데요?”

“새로운 도시를 만들 거야.”

그가 말하고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왜 견인이?

내가 알기로 S급 에스퍼 중에는 새 도시로의 엑소더스에 참가하는 사람이 없는데.

그것이 급속한 엑소더스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끝까지 잔류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였다.

새 도시가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S급 에스퍼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곳을 더 안전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견인이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놀랐어? 많이 놀랐나 보네.”

견인은 나를 놀라게 한 것이 퍽이나 만족스러운 듯했다.

“이제 변화가 필요해. 게이트가 나타나기도 했고. 게이트가 나타나면 던전의 위험도가 전체적으로 높아지지. 죽는 사람이 많아질 거야.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에스퍼들 중에서도.”

견인은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이 나를 동요하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그 모습을 즐기려고 한 모양인데 나는 이미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견인이 모르는 것까지 줄줄 꿰고 있었다.

그는 단순히 추측을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나는 확신에…….

아니다. 그것도 이제 견인의 행동 때문에 틀어지게 생겼다.

갑자기 왜 견인이 그런 생각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인간 때문에 내가 아는 일들이 틀어질 거라고 생각하자 조금 짜증스럽기는 했다.

어떤 미래는 바꿔야 하고 안정제를 만드는 일 같은 것은 앞당기기도 해야 하지만 왜 새 도시에 견인이 가?

그 생각을 하는 동안 견인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당황한 모습이었다.

“길드를 만들 거야.”

“그런데 왜 저한테 그 얘기를 하시죠?”

“같이 갔으면 해서.”

“상급 에스퍼들에게 얘기해 보시죠. 그 사람들 중에는 따를 사람이 많을 텐데.”

“머릿수만 채우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기왕이면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해. 던전이 나타나고 괴수들과 싸워야 하는 삶이라고 해도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저는 관심 없습니다. 길드도, 새 도시도요.”

“왜지?”

“저는 원래 움직이는 거 싫어해요.”

그러자 그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나를 보더니 혀를 찼다.

“알았어. 움직이지 않게 할게. 가는 동안 내가 운전하면 되는 건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아실 것 같은데요. 환경이 바뀌는 게 싫어요.”

“그럼 여기랑 똑같은 환경으로 만들어 주면 되잖아.”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 테고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다른 곳으로 가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우리 식당에서 나오는 밥이 좋아요. 요리사도 데려가 주겠다는 말 같은 건 하지 마시고요. 이 얘기는 안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알려지면 에스퍼님이라고 해도 징계를 받으시게 될 거예요.”

견인이 웃었다.

그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른 S급 에스퍼님들도 같이 가시나요?”

“그렇다고 하면 갈 건가?”

“아뇨. 그냥 몇 사람이나 떠나는 건지 센터의 전력에 어느 정도 변동이 생기게 되는 건지 알아 두려고 그러는 것뿐인데요.”

견인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것이 어느 정도 답이 됐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 말도 하지 않았고 같이 갈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새 길드와 도시에 견인이 합류한다는 것이 원래 정해져 있던 결말에 얼마나 큰 변화를 초래할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견인이 거기에 낀다면 센터에서 탈주 에스퍼에 대응할 수 있는 수위도 훨씬 더 약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의 센터로는 언제까지 안전을 장담할 수 있을지 몰라. 센터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어. 앞으로는 처리하지 못하는 던전이 더 많이 생길 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리고 에스퍼가 분산되는 것보다는 지금 상황이 새로운 위기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제가 센터를 탈주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와 관련된 내용을 저에게 말씀하신다면 그때는 에스퍼님이 저에게 한 말을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

견인은 그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듯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은우 에스퍼. 나는 서은우 에스퍼에게.”

“지금부터 해당됩니다. 새 도시로 가자는 얘기나 새 길드에 합류하라는 말, 센터를 떠나자는 말 모두 꺼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견인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나라면 정말 그 일에 대해 상부에 보고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위험해질 수도 있을 거야. 서은우 에스퍼.”

“그런가요? 이미 조직이 상당히 갖춰져 있는 모양이죠?”

그러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피식 웃어 버렸다.

“이런 반응은 생각도 못 했는데.”

그러다가 그가 다시 표정을 바꾼 채 나를 보았다.

“알았어. 무슨 마음인지. 그냥 오늘 여기에서 나를 만나서 나눈 얘기 자체를 완전히 잊어 주면 고맙겠군. 나도 서은우 에스퍼를 만나서 새 센터에 대해서, 그리고 길드에 대해서 얘기 나눈 걸 말하지 않을 테니까.”

“네. 그렇게 하죠. 그러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내가 돌아서려 하자 그가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내 뒤에 대고 말했다.

“나도 계속 흔들리기는 했는데 이렇게 되면 결정을 내리기가 훨씬 수월하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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