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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18화 (18/137)

18화.

지금 이하민은 다리에 괴수의 부산물로 만든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팔에도 있었는데 각각의 무게가 상당해서 그걸 평소에 차고 있다가 던전에서 전투를 앞두고 풀어 두면 몸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기다리고 있을 줄 알고 서둘러서 왔는데 은우 너도 늦잠 잤어?”

“응. 다행이다.”

식당으로 가다 오늘은 그냥 매점에 가서 김밥을 먹으면 어떻겠냐고 하자 이하민도 흔쾌히 찬성해서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하민은 내가 저에게 따로 조용히 할 말이 있다는 것을 분위기로 알아차린 듯했다.

김밥과 샌드위치를 사 가지고 아예 숲의 초입으로 가며 조용히 작전을 얘기하자 이하민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그 말을 들어줄까, 은우야?”

“응. 네가 하면 들어줄 거야.”

“왜? 내 말 들어준 적 없는데…….”

“아니야. 그건 네가 몰라서 그래. 너 지금까지 S급 에스퍼님들한테 뭐 부탁해 본 적 없잖아.”

“그렇기는 하지.”

“거봐. 그래서 그런 거야. 일단 말을 해 봐. 그러면 들어줄 거야.”

이하민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말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는데 나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하민. 자신을 가져.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네가 부탁하면 들어줄 거야.”

“잘되면 좋겠지만 내 생각에는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러면 그때는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그래 줄 수 있어? 그래. 부탁할게. 은우 네가 말을 하면 들어주실 거야.”

아…… 그 뜻이 아닌데.

만약 이하민이 말을 했는데도 안 들어주면 그때는 협박을 하겠다는 거였는데 이하민은 다르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말을 하는 게 안심이 된다면 못 할 건 없어서 알았다고 해 주었다.

“지금부터는 계획을 잘 세워야 돼. 당분간은 S급 에스퍼들에게 잘해 주는 거야. 우리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어. 알았지. 이하민?”

“응……!!”

이하민은 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도 의욕이 생겼다.

그리고 그 일은 바로 시작되었다.

***

우리가 S급 에스퍼 전용 식당에 가자 그 안에서 식사를 하던 세 명의 에스퍼들이 희한하다는 듯이 우리를 보았다.

그러면서 누가 부른 건가 하는 듯이 서로를 보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품격이 다른 냄새가 코끝에 감돌았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애썼다.

“어. 어서 와. 서은우 에스퍼. 그런데 여기는 웬일? 여기에서 식사하는 거 싫어했잖아. 안 그래도 가서 볼까 하다가 거기 식사 시간이 다 끝난 것 같아서 저녁을 노리고 있었는데. 우리 이제 막 왔거든. 던전에 갔다가. 그 던전 있잖아. 게이트 나온 거. 사라지기 전에 부지런히 들락거리고 있지. 뭐라도 알 수 있는 게 있을까 해서 말이야.”

견인은 나에게 길드에 대해 말한 것은 완전히 잊은 듯 그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얘기를 했다.

다른 두 에스퍼도 우리가 온 게 확실히 반가운 듯한 얼굴이었다.

내가 이하민의 옆구리를 쿡 찔렀더니 이하민이 계획한 웃음을 지었다.

“아하하하하. 에스퍼님들. 오늘도 안녕하셨어요?”

그래. 이하민.

저 사람들은 네가 웃으면 껌뻑 죽을 거야.

잘하고 있어.

그러나 이하민을 보는 에스퍼들의 표정이 이상했다.

뭘 잘못 먹었기에 저러나 하는 듯한 얼굴로 힐끔 보고 고개를 돌렸던 것이다.

“서은우. 식사는 했어? 안 했으면 요리사한테 해 달라고 할까? 식사했어도 먹어. 양도 부족했을 것 같은데.”

변태영이 말하더니 심우진을 바라보았다.

심우진은 왜 자기를 보냐고 할 법도 했는데 얌전히 일어나서 요리사에게 말을 하고 오는 것 같았다.

“12분 기다려야 한대요. 나도 아직 시작 안 했으니까 기다렸다 같이 먹죠.”

심우진의 말에 다른 에스퍼들도 식사를 멈췄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평소의 그들을 보면 그건 정말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먼저 드셔도 되는데요…….”

이하민이 미안해하며 말했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 정말 어쩐 일이야? 평소에는 오라고 사정을 해도 안 오던 사람들이. 설마 우리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아니지. 이 인간들은 보고 싶을 리가 없을 테니까 역시 나를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서은우 에스퍼. 솔직하게 말해 봐.”

견인의 말에 변태영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한테 할 말 있어서 온 건가? 그럼 나갈까?”

변태영은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서기까지 했다.

“아뇨. 아니에요. 그동안 센터에서 안 보이길래 걱정돼서요. 그러다가 식당에 오면 뵐 수 있을 것 같아서 와 봤어요. 무사하신지……. 당연히 무사하시겠지만. 그렇지. 이하민?”

“네. 그럼요. 맞아요.”

이하민이 말을 했지만 세 사람의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 향해 있었다.

심우진이 말을 했나?

그래서 게이트를 없애 버린 게 나라는 걸 눈치채고 이러는 건가?

그래도 힘내 봐. 이하민. 너라면 할 수 있어!

내 눈짓에 이하민은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사랑스러운 얼굴에 사랑스러운 표정까지 지었으니 이제 넘어가는 것밖에 없었다.

나는 작전이 꽤 성공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하민에게 넘어오게 해 놓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만나서 공략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요리가 나왔다.

우리는 S급 에스퍼들과 대화도 해 가면서 여유롭게 식사를 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나는 이하민에게 몇 번 신호를 보냈고 그때마다 이하민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 저거지.

이하민이 저렇게 웃으면 누가 안 넘어가겠나.

나라도 넘어가겠는데 집착광공들은 더 하겠지.

식사를 끝내고 나는 작전이 완벽하게 성공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이하민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이하민은 어려운 미션을 간신히 마쳤다고 생각한 것처럼 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항상 몸조심하세요. 에스퍼님들은 센터의 보물이니까요.”

얼굴에 금칠도 해 주고 완벽한 임무 수행을 끝마친 후 밖으로 나왔는데 그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따라 나왔다.

“……왜요?”

할 말이 있나 싶어서 묻자 세 사람도 막상 할 말은 없었는지 멀뚱하게 서 있었다.

“저녁은 어디에서 먹을까?”

변태영의 말에 이하민이 웃었다.

“좀 전에 점심을 먹었는데 벌써 저녁 먹을 생각을…….”

이하민이 말하자 변태영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표정을 보면서 나는 평소에 변태영이 하급 에스퍼나 가이드들에게 어떤 표정을 하는지 떠올렸다.

바로 지금의 이 표정이다.

그런데 이하민한테 왜 이러지?

얘는 이 소설의 주인수 이하민인데?

이하민은 자기가 너무 나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에스퍼님들이 원하시는 대로 하면 어떨까요?”

이하민은 바로 꼬리를 내리고 말했고 S급 에스퍼들은 서로 의논을 할 생각도 하지 않고 각자 나오는 대로 말했다.

“여기서 먹지.”

“하급 에스퍼 식당으로 갈게.”

“저녁은 매점에서 먹는 건 어때요?”

이 사람들은 서로 상의라는 건 안 하는구나…….

“아. 저녁에는 도시락을 싸서 밖에서 먹을 거라고 해 놓고 그렇게 하면 되겠다. 이하민이 받아서 정원으로 와.”

변태영이 말을 하더니 견인을 바라보았다.

도시락을 싸라고 요리사에게 말을 하라는 것 같은데 견인은 또 그 말을 듣는다.

상하 관계는 대충 알겠다.

변태영이 가장 위이고 견인과 심우진은 아직 모르겠다.

아마 두 사람이 2위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겠지.

견인만 치열하고 심우진은 관심이 없으려나?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말을 하고 이하민을 끌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갑자기 부르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패한 것 같아.”

이하민이 눈썹을 휘면서 말했다.

그럴 리가.

이렇게 생긴 이하민이 부탁을 하는데 강철 심장을 가진 게 아닌 한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 인간들은 강철 심장일 수도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이하민인데.

그래. 그래. 잘될 거다.

“이하민. 걱정하지 마. 너를 믿어 봐.”

쟤들 집착광공이라니까?

너한테 완전히 미쳐 있어. 그건 내가 장담해.

그 말을 해 주지 못하는 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배도 부르겠다, 임무도 성공적으로 완수했겠다.

기분이 좋아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에스퍼들이 다가왔다.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이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 얼마나 머릿속이 복잡할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았다.

센터의 균열.

센터에서 도망치는 에스퍼들.

이미 그 흐름을 감지하고 있을 것이고 조만간 그들도 행보를 결정하기는 해야 했을 것이다.

이곳에 있어도 S급 에스퍼들 때문에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센터를 나갈 수도 있을 터였다.

특히나 A급 에스퍼들은 S급 에스퍼만 없으면 꿈을 키워 볼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센터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게 아닐까 했다.

이하민을 향한 시선을 보면서 그들이 뭔가 선을 넘을 것 같다고 느낀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계속 센터에 남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행동을 조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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