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19화 (19/137)

19화.

“뭐야. 이하민은 S급 전담 가이드면서 서은우랑 연애하나?”

“되게 밝히게 생기기는 했잖아요. 평소에 보면 색기도 줄줄 흐르고요. 이렇게 보니까 장난 아닌데요? 그런데 서은우는 간도 크네요. S급 에스퍼들 전담 가이드를.”

“놔둬. 이하민이 얼굴은 반반하잖아. 호기심에 만나 볼 수도 있겠지. 나도 호기심은 있는데.”

“그러면 한번 만나 보시죠. 선배님.”

그들은 우리와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을 때부터 그런 얘기를 하며 다가왔다.

빨리 지나갈 생각도 없는 듯 점점 속도를 줄이며 느릿하게 걸어오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이하민과 나를 아주 마음껏 보고 있었다.

노골적인 시선은 특히나 이하민에게 더 집중되었다.

그나마 나는 에스퍼라 선을 완전히 넘지는 못하지만 이하민은 가이드라서 자기들이 함부로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하민은 S급 에스퍼의 전담 가이드라 센터 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내 이름까지 안다는 것은 의외였다.

마지막에 심우진이랑 같이 던전에만 안 갔어도 이렇게 대대적으로 얼굴이 팔리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 센터 내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듯했다.

다가오는 이들의 얼굴에 악의적인 표정이 담겼다.

선배라 불린 A급 에스퍼가 한 명.

B급이 두 명에 C급과 D급이 섞여 있었다.

견장을 보고 파악을 끝마치고 나는 잠시 계산을 했다.

어떻게 할까…….

내가 여기에서 꼭 좋게 끝내야 할 이유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했다고 죽을 정도로 두들겨 패는 것은 좀 심한 것 같고…….

그런데 그치들이 일을 쉽게 해 주려고 귀여운 짓을 했다.

“어이. 이하민. 요즘은 가이딩할 일도 없었을 텐데 안 심심해?”

A급 에스퍼가 말하자 그 무리가 스산하게 웃었다.

이대로 우리를 스쳐 지나갈 건지 아니면 한 번 엮일 것인지 몰라 미적거리던 차에 신호가 내려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우리의 앞에서 멈췄다.

이하민은 그들이 그러기 전에 일이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한 듯했다.

“은우야. 너 먼저 가.”

그들과의 사이에 아직 거리가 있었을 때 이하민이 나에게 말했다.

괜히 자기와 같이 있다가 나까지 봉변을 당할까 봐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가이드들은 가이딩 안 할 때 다른 에스퍼들이랑 눈이 맞기도 한다던데. S급 전담 가이드라고 해도 에스퍼들이 이하민이랑 사귀는 것도 아니고 평상시까지 통제하는 건 아니지?”

그가 역겨운 상판을 이하민의 얼굴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기술이 좋은가 봐? S급 에스퍼를, 그것도 세 명이나 가이딩을 하면서 지금까지 파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온 걸 보면 말이야. 그 기술 나도 좀 보면 안 되나? 어때? 나는 마음에 안 들어? 어차피 너희 에스퍼들도 너를 가이드 이상으로는 보지 않잖아. 가이딩 받을 때나 필요한 거지 안 그래? 가이딩해 주다가 끊기면 이하민도 쌓이는 게 있지 않나? 내가 풀어 줄게. 너도 좋지 않아?”

그러는 동안 주위에 있던 에스퍼들이 음흉하게 웃었다.

“서은우도 귀엽게 생겼는데? 서은우. 에스퍼인 거 확실해? 이렇게 보니까 서은우도 가이드처럼 보이는데.”

누군가 말하자 A급 에스퍼가 그를 노려보았다.

내가 에스퍼인 이상 선은 지키라는 의미인 듯했고 그때부터 그들은 이하민을 집중적으로 에워쌌다.

내가 다가가려고 하자 그럴 거라는 걸 먼저 알아차린 듯 이하민이 나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금 내가 나서면 정작 이하민을 괴롭히는 에스퍼보다 나에게 더 원망이 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상황이 다급하게 흘러가는 것도 아니라 우선은 지켜보기로 했다.

“왜 대답이 없어? 말하기 부끄러운가? 이렇게 보니까 이하민이 대단하긴 대단하네. 엄청 꼴리게 생겼는데? 얼굴 뽀얀 것 좀 봐. 피부도 좋고. 완전 아기 피부네. 입술은 왜 이렇게 붉고 통통해? 흥분되게? 원래 생기기를 이렇게 생겼구나, 이하민? 가이딩할 때 뭘 주로 해? 점막 가이딩은 당연히 할 거고. 가이딩이 필요 없을 때도 자주 부르는 거 아니야? 한 번 하면 자꾸 생각날 것 같은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A급 에스퍼가 이하민의 귓가에 대고 말하더니 이하민의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대려 했고 이하민은 몸을 돌려 그의 손길을 피했다.

“어. 피해? 귀엽게 구네? 속눈썹 봐라. 정말 긴데? 아주 새카맣고. 색기가 줄줄 흐르네. S급들이랑 매칭률이 워낙 높게 나와서 나는 매칭률을 맞춰 보지도 못했는데…… 어때. 이하민? 나하고 매칭률 한번 맞춰 볼래? 나는 이하민이랑 잘 맞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이하민이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듯 아예 작정을 하고 허리를 노렸지만 이하민은 이번에도 그 손길을 피했다.

처음에는 앙탈을 부린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웃음을 터뜨렸지만 A급 에스퍼가 연달아 놓치고 나자 그때부터는 꼴이 우습게 됐다.

그들도 A급 에스퍼가 일부러 이하민을 봐준 게 아니라 명백히 놓친 거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A급 에스퍼라고 모든 능력이 평균 이상인 것은 아니고 그가 각성한 분야에서 특출 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뿐이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사게 되는 것은 자명했다.

“귀엽다고 했더니 재미있게 노네? 거친 거 좋아하나 봐, 이하민? 그러면 진작 말을 하지 그랬어. 나 그런 것도 아주 잘하는데.”

이하민이 다시 나를 보았다.

빨리 가라는 표정이었다.

“왜? 서은우 앞에서는 부끄러워서? 그것도 모르는 거야. 안 해 본 거잖아. 그렇지? 남이 보는 앞에서 당하는 것도 생각보다 즐거울 수 있어. 인생에서 다채로운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거든.”

그는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이하민을 잡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벌써 두 번이나 놓쳤고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그것도 하급 에스퍼들 앞에서.

이번에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거였고 놓칠 생각도 없었을 터였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절대로 방심하다 놓친 건 아니었지만 그는 방심하지 않으면 이하민을 놓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이번에도 다시 이하민이 그의 손에 닿지도 않고 비켜서자 화가 솟구치는 듯했다.

“뭐 하는 거야, 이 새끼야! 귀엽다 귀엽다 했더니!”

같이 있던 에스퍼들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모습이었다.

그들도 일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속 보고만 있다가는 화살이 자기들에게 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여러 명이 우르르 이하민에게 덤벼들었다.

“그거 빼도 돼, 이하민.”

내가 말하자 이하민이 다행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듣고도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이하민이 단추를 풀고 겉에 입고 있던 셔츠를 벗자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에스퍼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여기에서 벗으려고? 몸에는 손도 못 대게 하더니 스스로 벗겠다는 말이었어? 과감한데, 이하민?”

그러다가 그들의 시선이 이하민의 팔에 닿았다.

팔에 딱 붙는 비갑이 소매 아래에 숨어 있다가 드러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괴수의 뼈로 만들어 한쪽에 찬 비갑 하나가 남자 에스퍼의 평균 체중을 거뜬히 넘는다.

센터에서 훈련에 필요하다며 특별히 제작을 부탁해 얻은 건데 뱅글처럼 밀착돼서 착용감도 좋아 보였다.

처음에는 그걸 차고 지금처럼 움직이는 게 어림도 없었고 이걸 달고 다니는 건 말도 안 된다며 꼼짝도 못 하고 바닥에 붙어 있었는데 훈련을 하며 조금씩 중량을 늘려 갔더니 이제는 그것을 제법 잘 견뎠다.

이하민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비갑을 하나씩 벗어 던졌다.

“와……. 정말 그 말이 맞네.”

이하민은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는 듯했다.

평소에 이걸 차고 있다가 던전에서 전투를 앞두고 있을 때 빼면 몸이 가벼워질 거라고 했는데 지금 그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에스퍼들은 각각의 능력이 각성된 자들이었다.

견인처럼 염동력 능력자도 있을 수 있고 변태영처럼 화염 능력자가 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 같은 신체 강화자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같은 능력이 발현됐다고 해도 실력 차이는 등급에 따라 현격했다.

솔직히 능력이 각성됐다고 다 같이 에스퍼라는 이름으로 통칭하고 그들과 같은 부류에 묶여 있다는 것이 자존심 상할 정도였다.

내가 D급으로 분류되어서 그 취급을 받는 것도 기분이 나쁜데 저런 떨거지들이 나를 하급 에스퍼 취급을 하는 것도 짜증이 났다.

이곳의 시스템이 내 능력을 제대로 연산하지 못했다 뿐이지 내가 하급 에스퍼 취급을 받을 이유는 없는 거였다.

어쨌건 이하민은 에스퍼의 능력이 각성되지 않았지만 S급 에스퍼의 전담 가이드로서 그들의 능력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있었고 그 덕분에 내가 말하는 것을 쉽게 알아들었다.

그동안 이하민이 훈련을 하는 동안 나도 구경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무공을 변형해 이하민이 여러 능력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이하민은 내가 왜 그러는지 알지 못한 채 막아 오다가 방어 능력이 상당히 습득된 상태였다.

“이 새끼가 왜 이러는 거야!!”

에스퍼들이 멍청한 소리를 하면서 허공을 노리는 동안 이하민은 계속 그들을 피했다.

심지어 B급 신체 강화자의 공격도 피하자 에스퍼들이 경악성을 냈다.

이하민은 자기가 그렇게 빠를 거라는 걸 생각도 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B급 화염 능력자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쥐새끼처럼 뭐 하는 거야!!”

그러고는 이하민을 향해 화염을 날렸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