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이하민을 공격해도 되는 건가? S급 전담이잖아. 이하민을 공격했다가 괜히 일 생기는 거 아니야? 가뜩이나 성격도 안 좋은 사람들인데.”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래도 전담 가이드인데 우리가 공격해서 이하민이 쓰러지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던전 처리하고 와서 가이딩 필요할 때 차질이 생길 테고요.”
에스퍼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말했고 이하민은 그런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저는 정말 괜찮으니까 공격해 주세요. 아무 말도 안 할게요.”
“이하민. 에스퍼로 각성했어?”
새로 온 에스퍼 중 누군가 그렇게 말을 했다가 자기도 그게 얼마나 멍청한 소리인지 알고 있다는 듯이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의심하는 듯했다.
“가지. 우리는 이 일이랑 상관이 없는데. 개인적인 문제 같잖아.”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고 이하민은 아쉬워했다.
“그러면 어쩔 수 없겠는데 제가 조금만 더 공격을 해 봐도 될까요?”
이하민은 쓰러져서 바닥과 한 몸이 된 것 같은 에스퍼들을 보며 공손하게 물었다.
그러나 에스퍼들은 고개를 저으며 두 손을 빌기까지 했다.
혹독하게 당하고도 그때까지 기세 좋게 건방을 떨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하민을 보니 그는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건 그냥 말을 하지 않고 바로 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던 것이다.
그때 그 자리에 별로 반갑지 않은 사람이 나타났다.
“……이하민 가이드?”
견인이었다.
그는 이하민을 보다 바닥에 눌어붙어 있는 에스퍼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견인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머리가 느리게 굴러가는 것 같았다.
“이하민 가이드. 설마 이하민 가이드가 이래 놓은 건……. 아니야. 아니다. 못 들은 거로 해. 워낙 희한한 걸 봐서 내가 헛소리를 할 뻔했어.”
그러던 견인의 뒤에서 변태영마저 모습을 드러냈다.
심우진은 다른 곳에 갔는지 그곳에 온 사람은 둘뿐이었다.
그게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알 수도 없었다.
심우진이 있었다면 두 사람을 말려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두 사람이 모른 척 지나가지는 않을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뭐 하고 있어요. 다들? 피까지 뒤집어쓰고. 던전에 갔다 온 겁니까?”
변태영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갸웃하며 에스퍼들에게 묻더니 이하민의 주먹을 보았다.
이하민의 주먹에는 피가 묻어 있었는데 그는 그때까지 그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듯했다.
“이하민. 싸울 줄 알아?”
뒤늦게 그의 질문이 이어졌다.
“네. 요즘에 배우고 있습니다.”
이하민이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그래? 이제 보니 무슨 상황인지 알겠네. 이하민이 미친놈도 아니고 이 많은 에스퍼들에게 그냥 마구잡이로 덤빈 건 아닐 테고. 이 자들이 이하민을 먼저 도발한 거고 이하민이 거기에 넘어간 거지?”
대충은 맞았다.
“그래…… 가이드가 에스퍼를……. 에스퍼도 우습게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센터 내에 알려지면 안 좋을 거라는 건 알고 있지?”
“예…….”
이하민이 자기도 잘한 건 없다고 생각한 듯 순순히 대답했다.
“이하민이 누구인지, 누구의 가이드인지 알고 있었을 텐데 이런 짓을 했으니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지? 누가 키우는 강아지인지 알면서 때렸으면 그 주인을 우습게 본 거잖아. 이제 주인이 나타났는데 이제 어쩔 거지?”
순식간에 이하민을 강아지 취급을 해 버려서 기분이 나쁠 만도 했을 텐데 이하민은 화를 내지도 못했다.
그만큼 변태영이 풍기는 기세가 대단했다.
“능력까지 사용한 모양이지? 같잖은 성냥불 같은 냄새가 나는데. 가이드한테 이런 능력을 썼다는 건 죽이려고 한 거고 그러면 나도 너희 전부 죽여도 되는 거지? 내 가이드를 죽이는 건 나를 죽이는 거라는 걸 몰랐다고 하지는 않을 거고? 맞지?”
에스퍼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잘못했다며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이하민에게 엉망으로 맞아 몸을 움직이지도 못했다.
견인은 변태영을 말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표정을 보니 변태영이 하는 말이 전부 다 맞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라도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생각을 하는 동안 갑자기 대기가 뜨거워졌다.
‘저 미친!!’
말릴 틈도 없이, 뜨거운 열기가 대기를 뒤덮었다.
족히 반경 5킬로미터는 될 일대가 그대로 화염에 뒤덮인 것이다.
와씨!
화염은 누구도 가리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이들이 전부 불에 타서 죽을 것 같았다.
순식간에 치솟는 온도는 이 불이 그냥 겁을 주려는 목적으로만 타오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했다.
“아무리 가이드가 마음에 안 들고 손봐 주고 싶어도 내 가이드면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이하민이 내 가이드인 걸 몰랐나? 그 정도로 멍청했으면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는 거고, 알고도 그랬으면 죽는 게 당연한 거지. 처돌아서 죽으려고 환장한 것 같은데 죽여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시신 처리까지 한 번에 끝내줄 테니까 고마운 줄 알라고. 화장비는 따로 안 받는다.”
변태영은 특별히 화가 난 표정을 짓지도 않은 채 말했다.
열기에만 닿아도 중증의 화상을 입을 것 같고 불길에 직접 닿으면 뼈까지 녹아 버릴 듯했다.
실제로 변태영이 작정을 하고 염화를 만들어 내면 그렇게 된다.
그의 능력은 던전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도망쳐, 이하민!”
“으, 은우야……!”
이하민은 혼자서만 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변태영은 이 자리에서 정말 모두를 죽일 생각인 듯했다.
내 앞에서 정상적인 모습을 조금 보여 줬다고 그에 대해 섣부르게 마음을 놓고 안심한 내가 미친 거였다.
“도망치라고, 이 멍청아!”
이하민에게 다시 한번 소리쳤지만 이하민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이하민의 몸이 움직였다.
그것은 이하민의 의지로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몸이 저절로 허공에 떠오른 것을 보면 견인이 한 일이었을 것이다.
내 몸도 허공으로 떠오르려고 했고 실제로 얼마쯤은 뜨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바닥에 내려섰고 견인은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자기가 작정을 하고 내 몸을 옮기려고 했는데 내가 거기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대해 오래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이미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이 염화는 그에게도 부담스러웠을 테고 견인도 이 상황에 위협을 느끼는 듯했다.
평소에도 그가 변태영을 어려워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었는데 두 사람이 이렇게 맞서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단 변태영이 마음을 먹고 나면 견인은 그를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변태영을 보면서 그가 이곳을 확실히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그럴 필요가 있다고 해도 쉽게 결단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에스퍼들이 작당을 해서 자신의 가이드를 공격했다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일 생각을 한다니.
견인은 다시 나를 끌어당기려고 했고 그사이에 변태영의 불길이 한층 더 치솟았다.
곳곳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졌다.
괴수가 날뛰는 던전보다 더 참혹한 모습이었다.
이곳은 어느새 변태영이라는 괴수가 날뛰는 던전으로 변해 버린 듯했다.
대기는 더욱 달아올랐고 쓰러진 이들이 입고 있던 옷이 열기에 사그라졌다.
견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는 듯 이하민을 데리고 사라졌다.
이하민은 나를 데려가야 한다면서 울부짖었고 변태영은 그 와중에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이제 어쩔 거냐는 듯 꽤나 도전적인 얼굴이었다.
이 새끼는 한번 미치면 정도라는 게 없구나 하는 걸 깨달으며 손을 들었다.
웬만하면 내 능력을 변태영의 앞에서 보일 생각이 없었지만 이 자리에서 바닥에 쓰러진 이들을 전부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옮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 손대면 살이 발라지고 회생이 불가능해질 터였다.
시전자만 멈추면 되는 일이다.
잠시 방법을 생각하다가 쓰러진 에스퍼 중에 검을 가진 자가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쳐 그에게 다가가 검을 들었다.
검파는 웬만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워져 있었지만 기운을 돌려 간단하게 손바닥을 보호하고 해를 입지 않은 채 그것을 들 수 있었다.
변태영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잘 봐라.
조금 후에는 갸웃거릴 목도 없어질 테니까.
그를 향해 검을 날리자 변태영이 터무니없는 짓에 실망했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그 정도는 간단히 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변태영은 내가 날린 검을 피하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가소롭다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러나 웃지는 못했다.
내가 이 엄청난 열기를 어떻게 견뎌 내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터였다.
열기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었고 그 불을 만들어 낸 변태영이 아니라면 이 자리에서 살아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거기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이 그의 감각과 집중력을 둔하게 한 듯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기가 피했다고 생각한 검이 내 손의 움직임과 함께 궤적을 바꿔 자신의 등을 노리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아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끄으으으아아아악!!”
등에 검이 꽂히자 거짓말처럼 불길이 사라졌다.
불길이 아무리 기세 좋게 날뛰어도 결국 시전자와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고 시전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세력이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변태영의 염화도 마찬가지였다.
대기의 열기마저 순식간에 사라지고 정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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