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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22화 (22/137)

22화.

변태영은 바닥에 손을 짚고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였다.

뒈지게 아플 거다.

이하민을 불러 자기를 치료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최대한 오래 변태영이 고통을 느끼기를 바랐다.

그의 어깨가 규칙적으로 움직이기에 너무 아파서 우는 건가 했더니 변태영이 고개를 들었다.

참을 수 없다는 듯 그가 웃어 댔고 나는 변태영이 답도 없는 미친놈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센터에 거대한 불길이 치솟자 곧 그곳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달려왔다.

“……!!”

엄청난 광경을 보고 사람들은 제대로 소리를 내지도 못했다.

그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 변태영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호출을 받은 가이드들이 달려와 가이딩을 시작했다.

옷이 타고 살이 흐물흐물해진 상태라 목숨을 잃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가이드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이하민이 달려와 내 옆에 섰다.

“은우야. 너 괜찮아?”

“응? 응.”

“다친 데는 없는 거야?”

“누가 나를 다치게 하겠어? 걱정하지 마. 멀쩡하니까.”

이하민이 꼼꼼하게 눈으로 살피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은우. 제발 말 좀 들어라. 왜 이렇게 고집이 센 거야?”

“나 아니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었어.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죽으면 안 되잖아. 안 그래? 다른 때 다른 일로 죽으면 몰라도.”

“그렇……기는 하지.”

이하민은 그렇게 말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이 되는 듯했다.

“너랑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으면 나도 그냥 갔을 거야. 그런데 네 훈련 상대가 돼 준 사람들이잖아. 본의로 그랬건 어쨌건 간에.”

이하민은 함부로 동의하지는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 말에 동의하면 앞으로도 내가 내 마음대로 할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너 말고 다른 가이드가 가이딩하는 거 처음 봐.”

나는 일부러 말을 돌렸다.

가이드들은 상의를 벗고 에스퍼와 밀착해 안은 채 입술을 맞대고 점막 가이딩을 했다.

그러나 좀처럼 파장이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하민은 그 모습을 보면서 전전긍긍했고 그러는 동안 가이드들은 가이딩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한 듯 초조해했다.

높은 단계의 가이딩을 하려면 신체 접촉을 하고 강도를 높여 가야 하는데 에스퍼들이 중화상을 입어 그게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희생을 막지는 못하는 건가 하고 있을 때 이하민이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가이딩을 하는 가이드의 뒤에서, 치료받는 에스퍼의 손을 잡았다.

단지 손을 잡은 것뿐인데도 새빨갛게 익어 있던 에스퍼의 몸이 원래의 색을 찾아가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S급 가이드의 위엄이라는 게 저런 건가 보네.’

높은 등급의 가이드의 경우 단순한 스킨십만으로도 파장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고 하더니 그때까지 가이드가 별짓을 다 해도 별다른 변화가 나타나지 않던 몸에 변화가 생겼다.

이하민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다른 에스퍼들에게도 가이딩을 했다.

가이드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무척 조심하고 있었고 가이드들은 가이딩에 열중하느라 이하민이 뭘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하민이 가이딩을 마치고 나자 에스퍼들의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고 이제 가이딩룸으로 가서 강도 높은 가이딩을 받으면 모두 위험한 고비는 넘길 듯했다.

이하민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일부러 염화를 조절하신 것 같아. 불길을 거둔 후에는 몸에서도 열기가 같이 빠져나가도록. 변태영 에스퍼님은 정말 대단하시지. 다른 사람들은 일단 불길이 손에서 떠나면 통제를 못 하는데 변태영 에스퍼님은 안 그렇거든. 다른 화염 능력자들은 불을 낸 후에 통제를 못 해서 그것 때문에 오히려 피해가 커지기도 하는데 변태영 에스퍼님은 불길도 그렇고 열기까지 회수가 가능해.”

“아…… 그런 거야?”

미친놈이 그런 것까지 한다는 걸 알게 되자 더 소름이 끼쳤다.

그러면 이건 처음부터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겁을 먹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그런 줄 알았으면 이렇게까지 내 실력을 보이지는 않았을 텐데.

심우진은 내가 심검을 쓰는 걸 직접 볼 수 없었으니 그렇다 쳐도 변태영은 내가 이기어검을 사용하는 것을 직접 봐 버렸다.

그게 이기어검이라는 것은 모를 테고 나도 어차피 끝까지 모른 척 잡아뗄 거지만.

그러는 동안 센터 내에서 에스퍼들의 다툼을 관할하는 특무팀이 다가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

특무팀은 모두 B급 이상의 에스퍼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사건을 조사할 때는 고압적이며 하대가 기본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에스퍼들은 자기들이 잘못해서 변태영 에스퍼님이 화가 났다고 말했고 거기에 이하민을 끌어들이지 않았다.

이하민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한 처사였을 것이다.

가이드에게 맞았다고 어떻게 말을 할까.

이하민은 특무팀이 자기에게 오면 말을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특무팀은 이하민에게 관심도 주지 않았다.

에스퍼들에게서 변태영의 이름이 나온 이상 이 일은 더 이상 조사하지 않고 이대로 묻힐 가능성이 컸다.

조사를 해서 변태영의 일탈이라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S급 에스퍼는 사실상 법 위에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이 흩어지고 이하민과 나는 멀뚱히 서 있다가 슬금슬금 걸음을 옮겼다.

자백하고 처벌을 달게 받으려고 의연한 자세를 취하고 있던 이하민은 뭐가 어떻게 된 건가 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 녀석도 놀라는 걸 그만둘 때가 되기는 했다.

“은우야. 너 정말 엄청난 것 같아. 그동안에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와. 진짜 와……!!”

이하민은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그걸 이제 알았냐?”

“아니. 알기는 알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 그냥 해 봤어.”

표현력도 부족한 애가 당황한 것 같아서 기분 좋게 말을 해 주었다.

이하민은 자기가 주먹을 날려서 한 사람씩 쓰러뜨리는 걸 봤냐며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은우야. 오늘부터는 좀 더 열심히 훈련을 하는 게 좋겠어. 나는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 같아. 식사도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면 될 것 같고. 나는 시간 낭비를 너무 많이 해. 훈련 시간을 더 늘려야겠어.”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면 안 돼. 지금 네 상태에 맞춰서 계속 늘려 나가고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하면 돼.”

“그래? 그런데 은우 너는 진짜 정체가 뭐야? 다른 에스퍼도 너처럼 그렇게는 못 하잖아.”

“그렇지.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지 마. 그러다 다친다.”

“아……. 다치고 싶어. 다치면 안 될까?”

이하민이 이제 그런 말도 하다니.

처음에 식당에서 마주치고 같이 밥을 먹기로 한 날에 비해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날도 그 전에 비하자면 엄청나게 달라진 거였는데.

나에게 같이 앉아서 밥 먹어도 되냐는 말을 하기 위해서 이하민은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연습을 하고 마음을 다잡고 용기를 끌어 올렸을까.

“그런데 은우야. 다른 때는 그런 일이 있을 때 그냥 피하는 게 좋아. 던전에서 죽는 것보다 상급 에스퍼에게 당해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는 얘기도 있잖아.”

그런 얘기도 있었어?

여기에 와서 산 지 꽤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내가 모르는 얘기가 정말 많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하민. 너도 대단하더라. 가이딩하는 거 봤어.”

이하민은 그냥 웃고 거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왜? 그것도 대단한 능력이잖아.”

“그렇지.”

그러면서 웃는 이하민을 보며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녀석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짧은 사이에 일어난 큰 변화였다.

***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변태영이 그 일로 따로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같이 식사를 하는 일이 많았지만 그냥 그뿐이었고 나에게 그날의 일을 따로 묻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을 직접 묻지 않았다 뿐이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보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곧장 마주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변태영은 웃는 것도 아니고 인상을 쓰는 것도 아니고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날 있었던 일이 여전히 의문스러운데 우선은 스스로 그 답을 찾아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앞으로 조금은 근신을 해야 할 것 같아서 S급 에스퍼들에게 이하민을 던전에 데려가 달라고 말을 하려고 했던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일만 이어지던 어느 날, 함께 훈련하는 곳으로 이하민이 오고 있었고 나는 멀리서 그를 발견했다.

이하민을 부르려고 했을 때 그의 곁으로 한 사람이 다가가는 게 보였다.

전체적으로 늘씬하고 얼굴이 하얀 남자였는데 나와 자주 같은 팀이 되었던 에스퍼에게 종종 가이딩을 해 주던 가이드였다.

몇 번은 내 가이드가 되기도 했는데 가이딩을 받은 적은 없었다.

나는 그냥 가이딩이 없이 스스로 내 상태를 조절할 수 있어서 그런 거였는데 가이드는 그걸 안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이하민이 말한 적이 있었다.

얘기를 하는 동안 이하민은 무표정하게 대꾸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하민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는 같은 가이드와 있을 때도 주눅 들어 있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당당해 보였던 것이다.

그 가이드도 그걸 느꼈는지 얘기를 세게 하는 것 같고 이하민도 만만하게 밀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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