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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23화 (23/137)

23화.

왠지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것 같아 그쪽으로 다가가자 이하민이 나를 발견하고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하는 듯했다.

그러자 이하민과 얘기를 나누던 가이드가 돌아서더니 이하민과 나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번갈아 보았다.

그러는 동안 이하민이 나에게 달려와서 기다리고 있었냐고 물었다.

“그런 건 아닌데 왜? 뭐래?”

그러나 이하민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직 그 가이드와 거리가 멀지 않아서 얘기가 들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이하민이 하소연을 시작했다.

“저 사람 A급 가이드거든. 센터 내에서 등급이 가장 높은 가이드지. 가이드 중에는 S급으로 측정된 사람이 없으니까. 매칭률은 내가 더 높지만 등급은 자기가 더 높고 가이드 능력도 자기가 훨씬 더 나은데 왜 내가 S급 에스퍼들의 전담 가이드인지 모르겠대. 자기는 그걸 인정할 수 없고 S급 에스퍼들 가이드를 자기가 하고 싶대.”

나는 이하민이 S급 가이드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는 등급이 나오지 않았다.

검사를 할 때 측정 불가가 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이하민의 가이딩 능력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우선 S급 에스퍼들과 매칭률을 검사했는데 그때 매칭률이 높게 나와서 그때부터 S급 에스퍼의 가이딩을 전담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S급 에스퍼들이 거부했다면 성사되지 않았겠지만 그들은 이하민을 밀어내지 않았고 지금까지 이하민은 성공적으로 가이딩을 계속해 오고 있었다.

“그걸 네가 정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하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너한테 그런대? 네가 그러겠다고 한다고 해서 저 사람이 S급 에스퍼의 가이딩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중요한 건 매칭률이잖아. 나는 S급 에스퍼들이랑 매칭률이 높고. 아니. 누가 매칭률이 높고 싶어서 높아?”

내가 잠깐 잊고 있었다.

이하민이 얼마나 말이 많은지.

이제부터 대략 세 시간 정도는 그 일에 대해서 떠들어 댈 것 같았다.

“그냥 S급 에스퍼들한테 알아서 하게 넘기면 안 돼?”

“그분들이 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 줄 리가 없잖아.”

시무룩한 표정으로 이하민이 말했다.

불쌍한 것.

“그럼 이제 어떻게 하겠대?”

“직접 얘기해 보라고 했어. 그랬더니 나한테 말을 좀 해 달래. S급 에스퍼를 걱정한다면 내가 먼저 나서서 말을 해야 하는 거래. 나보다 자기가 더 가이딩을 잘할 거고 그게 S급 에스퍼들한테도 이로울 거라고. 그런데 은우야. 솔직한 말로 내가 S급 에스퍼들 걱정할 처지는 아니잖아. 안 그래?”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그런다고 해도 이하민은 그런 말을 못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이하민이 왜 그렇게 기특해 보이는지.

그동안 남이 밟으면 밟는 대로 그냥 밟히고 다른 사람이 조금만 큰소리를 쳐도 주눅 들곤 하던 이하민이 이제는 그런 소리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맞아. 너는 네 생각을 조금 더 할 필요가 있어.”

이하민은 내가 두둔하자 더 신이 난 것 같았다.

“그런데 하민아. 다른 사람의 가이드가 되면 전담이 되지는 못하잖아. 지금은 S급 에스퍼들이라서 전담으로 가이드가 된 거고 다른 에스퍼를 담당하게 되면 랜덤이 될 텐데 그러면 여러 사람에게 가이딩을 해 줘야 하고 그러면…….”

“응?”

“그러면 여러 사람을 가이딩해야 하잖아. 네 가이딩은 특별하지만 상태가 아주 안 좋으면 안아 주거나 점막 가이딩을 해야 할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여러 사람을.”

나는 그 말을 내가 꼭 해 줘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한번 상기시켜 주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말했고 이하민은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탄성을 냈다.

“그러네…… 정말 그러네…….”

이하민은 어쩔 수 없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 좋은 거네. 그냥 우리 에스퍼 가이딩이나 잘해야겠다.”

이하민은 큰일날 뻔했다는 듯이 몸까지 떨어 가며 말했다.

“그런데 하민아. 너 가이드들이랑 안 친해?”

“응? 응. 안 친해. 다 나를 싫어해.”

이하민이 해맑게 말했다.

막 슬프고 그런 얘기인 것 같은데 너무 해맑게 말해서 더 속상했다.

“가이드는 가이드대로 나를 안 좋아하고 에스퍼는 에스퍼대로 나를 싫어해. 가이드는 내가 S급 에스퍼 전담 가이드니까 특혜를 받는다고 생각하나 봐. 사실은 전혀 아닌데. 내가 S급 에스퍼 전용 식당에 가는 것도 마음에 안 드나 봐.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잖아. 우리는 정말 안 가고 싶잖아. 그런데 가이드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 거지.”

이하민의 고충이 컸겠구나 하면서 그것이 이야기의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에스퍼는 또 어떻고? 에스퍼는 가이드를 반려동물보다 더 낮게 취급하잖아? 그런데 내가 다른 에스퍼도 아니고 S급 에스퍼의 가이드니까 그게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야. 그것도 웃기지 않아? 나는 정작 잘못한 게 없는데 자기들이 괜히 마음 불편해하고 그 탓을 나한테 돌리잖아.”

“그래. 이하민. 힘들었겠다.”

다행히 그 정도에서 얘기가 끝났다.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

결국 변태영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에스퍼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센터에서 갑자기 모든 에스퍼에게 매주 필수적으로 훈련 시간을 채우라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훈련장에 간 거였는데 그가 오는 것을 보며 혹시 여기에도 변태영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이군.”

훈련장에 나타난 그는 땀 한 방울 흘린 흔적이 없이 말끔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까지 갖춘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평소에도 흠을 찾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차려입은 것을 보니 저절로 할 말을 잃게 됐다.

아무리 그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 대단한 모습에는 절로 시선이 가고 탄성이 나올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어디 중요한 곳에 가세요?”

실없이 그런 것까지 묻게 되고.

“응. 중요한 곳에 가려고.”

변태영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그런 말에 대꾸도 해 주지 않을 것 같은데 그답지 않게 대답을 하고 있었다.

“네.”

일단 구경은 잘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훈련을 하려고 하는데 그가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서은우도 준비하지.”

“뭘요?”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서 바라보자 그가 고갯짓을 했다.

나가자는 건가?

“뭘 말하는 건데요?”

“같이 나가자고. 서은우랑 갈 거거든. 중요한 곳에.”

“그게 어딘데요?”

“좋은 곳.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면 얘기가 잘 풀리기도 하는 법이잖아. 센터 안에서는 조용한 곳을 찾기도 어렵고. 늘 누군가 따라붙으니까.”

혹시 이하민이 없는 곳에서 얘기를 하려고 에스퍼 훈련 시간을 정한 건가?

설마 나랑 얘기 한 번 하겠다고 그렇게까지 귀찮은 짓을 한 건 아니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가지.”

“아직 채워야 할 훈련 시간이 남았어요.”

“오늘 하루에 다 끝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변태영도 웃겼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니면서 혼자 옷을 차려입고 오면 내가 당연히 같이 갈 거라고 생각한 건가?

“저는 오늘 다 끝내고 싶습니다.”

변태영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기가 거절당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한 얼굴이었다.

그를 말끔히 무시해 주고 다시 훈련을 시작하려는데 그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하민을 던전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했었는데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관심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내가 갑자기 할 말이 있는 듯한 얼굴을 하자 그는 단박에 나에게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뭐지?”

“뭐. 좀. 사소한 부탁이 있기는 한데.”

“뭔데?”

그러다가 그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말하지 마. 일단은 식사를 하면서 듣는 거로 하지.”

그렇게 말을 하면 내가 별수 없이 자기와 함께 그 ‘좋은 곳’에 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드레스 코드를 맞추기는 어려웠다.

나에게는 변태영이 입고 있는 옷과 어울리는 옷이 없었다.

“제복을 입고 가도 되나요?”

“편한 대로. 준비하는데 오래 걸리나?”

“오래 걸릴 게 뭐가 있겠어요? 이십 분 후에 정문 앞에서 볼까요?”

“좋군. 그러지.”

아주 잠깐 변태영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그가 그런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수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뭐지?’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변태영이 무슨 꿍꿍이로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센터를 떠나는 에스퍼들이 변태영을 포섭한 건가? 견인을 포섭하는 것에 실패하고 변태영에게 마수를 드리웠는데 그걸 변태영이 잡은 거야? 그래서 나한테도 같이 가자고 이러는 건가? 그러면 머리를 상당히 잘 쓴 건데? 변태영이 계략공 캐릭터였어? 흠…….’

미간에 주름을 만든 채 골똘히 생각을 했더니 변태영이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아닙니다. 정문 앞에서 뵐게요.”

그러고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내 방문을 열면서 단추를 풀고 욕실에 가는 동안 옷을 벗어 던졌다.

나 자신이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다른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싫었다.

욕실로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하고 변태영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그리고 그에게 이하민에 대한 얘기를 어떤 식으로 할 건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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