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26화 (26/137)

26화.

‘지금까지 그럭저럭 원작대로 유지돼 오던 소설이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건가?’

견인이 탈주하려고 하는 것 같기에 그때부터 원작이 틀어지나 보다 했는데 그가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고 나가지 않기에 아닌가 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렇게?

‘그러나저러나 이거 완전 흥미진진한데? 증폭 능력이라니. 증폭 능력이라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나.

이거야말로 이하민에게 가장 좋은 능력이었다.

증폭 능력이라면.

내가 그 생각을 이어 나가려고 할 때 마침 설명이 이어졌다.

“증폭 능력은 자기와 타인이 가진 기본적인 능력을 증폭해 줄 수 있는 능력이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던전이 생겨나고 능력을 각성한 자들이 나타나면서 각 능력이 최초로 생길 때마다 기기에 그 능력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고 전해졌다.

심우진의 능력이 각성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때는 나온 설명 자체가 워낙 두리뭉실하고 추상적이어서 그의 능력에 대해 사람들이 아는 게 거의 없었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들으면서 이하민에게 나타난 이 능력이 세계 최초라는 것을 함께 깨닫고 있었다.

“기본적인 능력이라면…… 우리가 가진 능력도 증폭해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변태영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묻기는 했지만 이미 답은 그의 머릿속에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염화를 이하민이 더욱 강하게 해 주는 모습이 그려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S급을 뛰어넘는 규격 외의 능력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모습이.

“그러면 염동력도 증폭할 수 있다는 거죠?”

견인이 묻자 곧 그렇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방금 말한 대로 자신의 기본 능력도 증폭할 수 있기 때문에 이하민 에스퍼님은 다른 사람의 서브 역할이 아니라 개인 자신의 기량으로 단독 전투가 가능하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단독 전투를 할 때 가장 효과적인 전투를 할 수 있다고…….”

증폭 능력을 갖고 단독 전투를 한다…….

이하민에게 나타난 능력이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의 힘에도 적용이 되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하민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공격에 증폭 능력이 더해지면 무슨 일이 생길지 그것을 상상하는 듯했다.

‘아니지. 이미 그게 적용이 돼서 나타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는 거지.’

에스퍼들을 전부 때려눕힌 것만 봐도 정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그날의 일은, 아무리 작가신(作家神)의 가호로 그렇게 된 거라고 이해하려고 해도 영 이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거였나 봐. 이하민. 내가 가르쳐 준 것만 가지고 실전에서 그렇게 하는 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이미 그 능력이 나타났던 거야.”

내가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자 이하민이 놀란 듯이 나를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하민 에스퍼님. 자세한 것은 연구를 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러는 동안 센터의 내부 관계자들이 다가왔다.

설명을 하는 중간중간 관리자들이 오가더니 그곳에 몇몇 중요한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나중에는 이야기를 하는 주체가 바뀌었다.

이하민이 에스퍼로 각성됐다면 이것은 여러모로 세계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가이드였던 사람이 에스퍼가 되고 S급을 뛰어넘는 규격 외 능력이 나타나고 그것도 지금껏 나타난 적 없던 증폭 능력인데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타인의 능력에 대한 증폭만이 아닌, 자기 자신의 능력까지 증폭할 수 있는 능력이라니.

“어쩌면 이하민 에스퍼님이 단독으로 던전을 처리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위험도가 높은 던전의 처리도 어렵지만은 않겠습니다.”

여기저기서 그런 소리들이 들려왔다.

‘뭐지?’

내가 이하민의 등을 떠밀어 버린 건가?

그동안 나는 절대 그곳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기어이 뒤로 몸을 내뺐는데 결국 이하민을 내가 그곳으로 밀어 넣어 버린 건가?

이하민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면서도 관리자들이 하자는 대로 걸음을 옮겼는데 그곳으로 가는 것이 내키지 않고 불안한 듯 계속 주저했다.

“가시죠. 에스퍼님.”

그러나 이하민은 이미 그런 말을 거절하는 능력을 잃은 후였다.

가이드로 사는 동안 너무 오랫동안 그것을 제한당해서.

“이하민.”

내가 부르자 그가 멈춘 채 나를 돌아보았다.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돼. 그 사람들이 너에게 강제로 시킬 권한 없어.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네가 궁금해지면 그때 가. 다른 사람이 너를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해. 너는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잖아. 사실 전부터 그랬지만. 내가 항상 말했잖아.”

처음에는 얼떨떨한 표정을 하던 이하민의 얼굴에 서서히 웃음이 지어졌다.

그의 주위에 있던 관리자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하는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거냐는 듯이 노려보는데 에스퍼들의 탈주도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내가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그들도 소문을 우려해서 축소하려 할 뿐이지 A급 이하의 에스퍼 중에는 센터를 탈주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런 에스퍼 수천 명이 나가도 이하민 같은 에스퍼 한 사람이 이곳에 남는다면 센터는 전보다 더 강력해지겠지만.

이하민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들에게 말했다.

“하고 싶지 않네요. 그 연구는 저에게 불필요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 말에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이하민이 나에게 다가오는 동안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커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지금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 저…….”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다급한 소리로 외쳤다.

이하민을 부르는 관리자일 거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 말에 대꾸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계속됐고 자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생각한 듯 그대로 말을 해 버렸다.

“능력치가 나타났습니다.”

이하민의 등급을 측정하던 사람이었다.

그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고 일순간 숨 막히는 정적이 감돌았다.

“A급이라고 떴습니다.”

“…….”

측정 불가라고 했으면 그냥 측정 불가라고 할 것이지 그놈의 장치는 왜 굳이 그걸 꾸역꾸역 측정을 해냈다는 것인지.

만약 처음에 A등급이 나왔다면 이하민은 환호성을 들었을 것이고 모두의 놀라움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을 텐데 S급을 뛰어넘는 규격 외라는 말을 듣고 설레발을 전부 친 후에 A등급이 뜨자 갑자기 푸시식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하민은 그것도 여전히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나도 그를 축하해 주었다.

“잘됐다. 이하민. S급보다 A급이 더 나아. S급이 되면 정말 귀찮아질 거야. 그 식당에서 밥을 먹어야 하고.”

그러자 이하민이 키득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여전히 현실감이 들지 않는 얼굴로 그런 우리를 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찮게 보이던 S급 에스퍼들은 가까스로 존재감을 다시 찾았다.

그들도 아마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터였다.

이하민은 그곳을 빨리 뜨고 싶은 듯 나에게 신호를 보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자들은 이제 이하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한 듯했다.

S급 에스퍼는 아니지만 이하민의 능력은 엄청났다.

그가 있으면 S급 에스퍼들이 SS급이나 SSS급 에스퍼처럼 능력 발휘를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동안 S급 위의 등급은 없었지만 이하민으로 인해 그 단계에 대한 논의가 새롭게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이하민 에스퍼님. 지금이 아니라고 해도 꼭 한 번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든지 편안한 시간에 말입니다.”

관리자는 이하민의 호칭을 에스퍼님으로 하기로 굳힌 듯했고 그것은 센터에서 사람들이 이하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공식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하민은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더니 이하민이 그런 듯했다.

그 잠깐 사이에.

이하민은 처음부터 그랬는데 이제 와서 우리의 생각이 바뀐 건가?

아니지. 이하민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지.

이하민은 최대한 빠르게 그곳을 떠나고 싶은 듯했고 나는 기꺼이 이하민과 발을 맞춰 주었다.

우리가 떠난 곳에서 얼마나 큰 놀라움이 사람들을 찍어 누를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정말 재미있다.”

우리끼리 있게 됐을 때 이하민이 말했다.

“사실 나는 은우 네가 A급이 될 줄 알았어. S급이 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면서도 네가 계속 D급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

만약 내가 상급 에스퍼가 되면 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달랐다.

“만약에 네가 상급 에스퍼가 되면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주목하고 너에게 위험한 임무를 맡아달라고 할 것 같아서. 너는 그 임무들을 정말 잘 수행할 거잖아. 일단 너에게 맡겨지면 최선을 다할 거고. 네가 위험해지건 아니건 그런 건 상관하지 않고. 그렇게 될까 봐 걱정됐거든.”

그렇게 말하고 이하민이 아름다운 눈을 접으며 웃었다.

“내가 안 놀아 줄까 봐 겁난 건 아니었고?”

“응. 그건 아니었어. 내가 놀아 달라고 하면 어차피 은우 너는 내가 불쌍해서 놀아 줄 것 같았거든.”

그러고는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이 녀석이 맹해 보여도 나에 대한 판단은 정확하게 끝내 둔 듯했다.

“은우야. 내가 네 능력 증폭해 줄게. 누구보다 빠르고 강해지게 해 주고 어디에서도 다치지 않게 해 줄게.”

그러던 이하민이 나를 보더니 눈을 빛냈다.

뭔가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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