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왜?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어?”
내가 묻자 이하민이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우리 있잖아. 매칭률을 알아보면 어때?”
“매칭률? 하지만 너는…….”
이하민은 이미 S급과 높은 매칭률을 기록했기에 다른 에스퍼와 매칭률을 알아보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다른 에스퍼와 매칭률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이하민은 계속해서 S급 에스퍼의 전담 가이드일 테니까.
‘그래도 지금이라면 혹시?’
이하민이 에스퍼 겸 가이드인데 에스퍼로서의 능력도 절대 낮지 않다면 그리고 세계 최초로 발현한 특이 능력이라면 이하민에게는 얼마든지 선택권이 주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지금은 모든 장비가 다 갖춰져 있어서 그대로 가서 매칭률을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가이딩이 필요 없는데?”
“지금은 그렇지. 그런데 나중에 위험도가 높은 던전에서 격렬한 전투를 하고 치명상을 입는다고 해 봐.”
그때의 이하민은 내가 알던 모습과 달라져 있었다.
이번만큼은 고집을 꺾지 않을 거라는 것이 그의 눈을 통해 고스란히 보였고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돌아갔을 때 그 자리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다른 곳으로 가느니 그곳에 있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의견을 듣기에 적합할 거라는 마음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다가 우리가 돌아온 걸 먼저 발견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이하민이ㄷ……. 아니…… 이하민 에스퍼님이다…….”
이하민.
이하민 가이드.
그동안은 그렇게 불렸지만 이제는 그의 호칭도 달라지게 될 터였다.
이하민 에스퍼도 아닌 이하민 에스퍼님.
그것은 엄청난 변화였다.
우리가 다가가자 등급을 측정하던 사람이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으로 이하민을 보았다.
그 자리에서 처음에 이하민을 맞았을 때와는 확실히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이, 이하민 에스퍼님…….”
“매칭률을 확인하고 싶어서요.”
“예? 하지만 이하민 에스퍼님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우리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굳이 설명은 하지 않은 채 잠시 기다렸다.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가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가 혼자서 작게 탄성을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의 이하민이라면 자기가 원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할 수 있을 테고 다른 이의 가이딩을 해 주고 싶다고 한다면 그것도 센터에서 막을 수 없겠다고 깨달은 듯했다.
이하민이 실제로 다른 사람의 가이딩을 해 주는 것은 S급 에스퍼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고 여러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자기는 그냥 매칭률만 확인해 주는 것이니 그 정도야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구와의 매칭률을 알고 싶으신지…….”
“서은우 에스퍼입니다.”
이하민의 당당한 목소리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뭐. 왜!
내가 해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이하민이 해 달라고, 해 달라고 졸라서 그냥 매칭률만 보려고 그러는 거다!
나는 대충 그런 표정을 담아 그곳의 에스퍼와 가이드들을 일별했다.
그중에는 자기가 S급 에스퍼들의 전담 가이드가 되고 싶다고 했던 가이드도 보였다.
아주 잠깐 눈이 마주친 것뿐이었는데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나에게 파이팅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 이곳으로 함께 올라가셔서 마주 보고 손을 맞대시지요.”
그의 말에 따라 이하민과 함께 기계 위에 올라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지?
그러면서 이하민을 봤더니 그는 나보다 대략 서른 배 정도는 더 떠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얘보다는 낫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어, 얘는?
“헉!”
함께 기계 위에 올라가고 손까지 마주 댄 채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의 입에서 경악성이 나왔다.
수치는 그쪽에서만 보이고 우리에게는 가려져 있었기에 답답했다.
“얼만데 그래요?”
이하민이 묻자 어느새 그곳으로 가서 수치를 확인한 견인이 한 손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변태영과 심우진도 그곳에 가 있었다.
저 인간들이 원래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인간들이 아닌 것으로 아는데?
“가이딩 불가로 나오는군. 가이딩 시 에스퍼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대.”
변태영이 말하자 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수치도 가능하기는 하군.”
“12퍼센트면 이건 일반인이랑 할 때보다 더 낮은 수치 아닌가요?”
심우진까지 거기에 말을 보탰다.
12퍼센트?
이하민은 금방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기계에서 내려가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변태영이 기계를 껐지만 점멸하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99.8퍼센트? 이런 매칭률도 존재해?’
왠지 좀…….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
이하민 역시 서두른다고 서둘러서 왔지만 그가 왔을 때는 이미 숫자가 사라진 후였다.
“뭐야? 은우 너는 봤어?”
“응? 어…….”
“정말 12퍼센트야?”
“어…….”
“아. 그래…….”
이하민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이하민의 가이딩 방법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방법은 다르다고 떠들어 대고 다니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이하민의 가이딩을 받는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멋대로 상상을 할 것이다.
나는 그런 상상 속에 등장하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고 애초에 가이드와 매칭률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했다.
이하민이 작게 한숨을 쉬는 동안 나는 다른 S급 에스퍼들이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하민이 에스퍼고, 그가 규격 외 등급의 능력을 각성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후로 줄곧 쭈그러져 있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아온 것이다.
이 인간들은 또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상관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충분히 피곤한 하루였다.
***
증폭 능력자 이하민.
그와 같이 있는 것으로 내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나는 하루하루 깨달아 가고 있었다.
이하민은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데 집중하며 앞으로 가이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건 그동안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는데 이하민이 가이딩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센터의 누구도 그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못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S급 에스퍼들조차 그럴 만하다고 수긍하는 분위기였으니 말은 다 한 거였다.
그에 따라 매칭률을 확인하는 작업이 급하게 이루어졌고 그때까지만이라도 가이딩을 해 줄 수 있는지 센터에서 이하민에게 문의를 해 왔다.
이하민도 자기에게 능력을 개발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S급 에스퍼들에게 악감정이 있다거나 그들이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 버리기를 바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 기한을 정해 두고 가이딩을 해 주기로 했다.
가이드들의 매칭률은 모두 극악이었고 그나마 가장 매칭률이 높은 A급 가이드 윤이재의 경우 견인과 변태영, 심우진에게 각각 38%, 22%, 34%의 매칭률을 보였다.
S급 에스퍼들은 그냥 안정제를 먹는 게 낫겠다면서 안정제 개발을 재촉했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가이딩을 받기로 했다.
윤이재는 한 사람의 가이딩도 제대로 못 했고 S급 에스퍼 전담 가이드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 이하민 에스퍼님도 에스퍼시니까 가이딩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가이드들과 매칭률을 확인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누군가 조심스럽게 한 말이 센터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그러게.
이하민도 에스퍼니까 가이딩을 받아야 할 텐데.
그러나 이하민은 그 말이 나오기만 하면 얼굴이 확 붉어진 채 고개를 숙였고 내 눈치를 보았다.
하. 귀여운 자식.
부끄러운 모양이네.
나는 그런 거 다 이해할 수 있는데.
응? 한창 혈기 왕성할 때고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응?
그런 거지.
다른 곳도 아니고 에스퍼 가이드 세계관인데.
그런 생각으로 흐뭇하게 웃어 주면 이하민은 내가 도대체 왜 그렇게 웃는 건가 하는 듯이 이상하게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자꾸 저럴까, 귀엽게.
소설을 보던, 소설 속의 찌통 캐릭터였던 이하민을 보던 나에게는 요즘이 그저 보상 같았다.
내 새끼가 이렇게 잘 컸다고 사람들에게 소리쳐서 알려 주고 싶기도 했다.
***
이하민에게 전담 트레이너가 붙고 에스퍼 전용 훈련소에 이하민을 위한 훈련 센터가 따로 만들어졌다.
이하민은 나와 하던 방법대로 계속 훈련을 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나는 센터의 훈련법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협 게임 세계에서 내가 해 왔던 체력 단련 정도여서 명확하게 한계가 있었다.
던전에 나타나는 괴수와 상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고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습을 하기에는 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도움이 될 거였다.
이하민은 유치원에 가는 아이처럼 긴장한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도 자기가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정도로 빨리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나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 훈련에 더욱 매진하는 듯했다.
그동안 이하민의 훈련을 봐 주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던 터라 이하민이 트레이너와 훈련을 하면서 시간이 엄청나게 남아돌았다.
‘뭐 하지?’
평소에는 시간에 따라갈 곳이 정해져 있었고 언제 뭘 할지 계획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모두 바꿔야 했고 아직은 새로운 계획을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심우진한테나 가 볼까? 또 바이올린 연주하는 거 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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