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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버스 이물질이 되어버렸다-28화 (28/137)

28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는데 심우진에게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도 훈련의 일환이라 그 시간에 내가 찾아가는 게 훈련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하면서도 일단은 한 번 양해를 구해 볼 생각이었다.

마지막에 들었던 연주가 오래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다시 듣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내가 찾아간 곳에 심우진은 없었다.

‘다른 데에 갔나?’

S급 에스퍼의 스케줄은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라 그럴 만도 했다.

내가 막 돌아가려 할 때 심우진이 그곳에 나타났다.

“아. 은우 씨. 여기에는 어쩐 일이에요?”

그가 바이올린을 든 채 서둘러 다가왔다.

“이하민 에스퍼가 바빠서 혹시 연주하시는 걸 들을 수 있을까 하고 왔죠. 어긋난 줄 알고 돌아가려고 했어요.”

“그래요? 하마터면 못 만날 뻔했네요.”

“연주하는 거 봐도 되나요? 에스퍼님에게는 훈련일 텐데.”

“사실은 은우 씨에게 따로 부탁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은우 씨 말대로 훈련인데 연주가 항상 잘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렇게 말하면 대부분은 잘되고 어쩌다 안 되는 때도 있다는 것처럼 들릴 것 같은데 사실은 거의 대부분 잘 안되고 한 번씩 잘돼요.”

그가 힘들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은우 씨가 있는 동안에는 연주가 잘 되더군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습니다. 그래서 만약 어렵지 않으면 제가 연주하는 동안 옆에서 같이 훈련을 해 주면 안 될지 부탁해 보려고 했습니다.”

“정말 도움이 돼요? 그러면 당연히 옆에 있어야죠. 잘됐네요. 저는 방해될 줄 알았거든요.”

“방해된다고 하면 어쩌려고 했는데요?”

“그러면 안 듣는 척하고 소리가 들리는 곳에 숨어 있으려고 했죠.”

그 말에 심우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듣고 싶은 연주 있어요?”

“클래식을 잘 알지는 못해요. 음. G 선상의 아리아?”

“좋아요.”

그는 나를 보고 한 번 웃음을 짓더니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했다.

선율이 울려 퍼지는 동안 눈을 감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심상이 있었다.

안개 낀 숲이 넓게 펼쳐진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나는 혹시 그가 만들어 낸 환상일까 생각하며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도 그 광경은 계속되었다.

나는 검이 없이 그가 만든 환상을 없애 보려 했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내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심우진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자신을 똑바로 보는 것을 알고 연주를 멈췄다.

이게 가장 어렵다.

시선 처리가 안 되는 것이다.

그를 보면 안 되는 건데 거의 본능적으로 눈을 보게 된다.

심우진은 이번에야말로 내가 자신의 환상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은 듯했다.

“……은우 씨.”

이번에도 아닌 척하면 넘어가 주려나?

그러나 어림없었다.

“어떻게 하는 겁니까?”

“모르겠어요. 저한테는 잘 안 통하는 모양이네요. 그래도 괴수한테는 잘 통하니까 된 거잖아요.”

애써 활달하게 웃자 심우진은 내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굳이 묻지는 않겠다는 듯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하세요?”

그것보다는 다른 걸 묻고 싶을 텐데 내가 불편해한다는 걸 알고 다른 얘기를 꺼내는 심우진이 고마웠다.

“들을 기회가 많지는 않았어요. 유명한 곡들만 조금 아는 정도고요. 그런데 소리가 정말 좋네요. 녹음된 것만 들어 왔는데 에스퍼님이 훨씬 더 잘하는 것 같아요.”

“그거 사실이거든요.”

“……네?”

역시 심우진이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각성만 아니었으면 바이올린으로 세계를 제패했을 거예요.”

아니. 그래도 솔직히 그 정도까진.

분명히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는데 마치 말을 들은 것처럼 그가 웃었다.

“바이올린 켜는 거 알려 줄까요?”

“아뇨. 안 그래도 될 것 같아요.”

“쉬워요. 그리고 저는 잘 가르쳐요.”

이거.

내가 이하민 꼬드길 때 하던 수법인데.

프로가 여기에 당할 수는 없지.

“저는 열심히 들을게요.”

“그래도 아는 만큼 들리는 거니까 배워 보세요.”

전혀 관심이 안 갔다면 나도 그냥 모른 척했을 텐데 꼭 그렇지는 않아서 흔들렸다.

심우진이 연주하는 걸 들으면서 나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던 것이다.

내가 흔들린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믿어 보세요. 정말 잘해요.”

“알았어요.”

심우진의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왼손은 현에 올려서 음을 조절하고 오른손으로 활을 움직여서 소리를 내는 거예요. 이렇게요.”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는 바이올린의 기초라고 하더니 온갖 어려운 기교를 펼쳐 보였다.

손가락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현란한 아르페지오를 하는가 하면 손가락으로 현을 뜯어 소리 내는 피치카토까지.

잠깐 사이에 나는 바이올린으로 하는 기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전까지 심우진과 나는 서로 알고 있는 사이이기는 했지만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내가 웃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물방울이 통통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웃었고 활 대신 나뭇가지로 연주를 할 때는 신기해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내가 흠뻑 빠져 있는 동안 여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곡들을 연주했다.

“잘 알려진 곡은 아니지만 은우 씨라면 이 곡도 좋아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곡들을 연주해 주었다.

“에스퍼님은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괴수를 공격하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그에게 묻자 심우진이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알기로 그는 지금까지 그것에 대해 다른 이에게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센터장도, 다른 S급 에스퍼들도 모르는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그것을 물은 것은 내가 그에게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는데 불쑥 말을 해 놓고도 그가 대답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는 생각이었는데 그가 말했다.

“혼란을 주고 균형을 잃게 합니다. 앞에 에스퍼들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요.”

“그렇게 하면 그사이에 다른 에스퍼들이 공격하나요?”

“그렇죠.”

“그런데 그날은 왜 저만 데리고 가셨어요? 그리고 저에게도 환상을 보여 주셨잖아요. 그러면 공격이 연계가 되지 않을 텐데요?”

“괴수도 고통이 극대화되면 자살을 합니다. 너무 극심한 고통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면 죽음으로 회피하려는 건 괴수도 마찬가지죠.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될 정도의 환상을 보여 주면 괴수들 스스로 죽기도 합니다.”

“그 환상을 저에게도 보여 주실 수 있나요?”

그러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

“못 견딜 겁니다. 어떤 에스퍼도, 심지어 S급 에스퍼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그는 자신만만했다.

확실히 심우진이 말한 것은 대단했고 그런 방법으로 괴수를 죽일 생각을 했다는 것도 경이로웠다.

그러나 나는 만약 그가 허락을 하기만 한다면 그것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위험할 겁니다. 정말이에요.”

심우진은 나를 설득하려고 했고 나는 그를 바라보며 다시 부탁했다.

“저는 어떤 경우에도 죽지 않을 겁니다. 자살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건 장담할게요. 저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 일을 할 때까지는 죽지 않을 거니까. 보여 주세요.”

“왜입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려고 합니까.”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이하민 에스퍼도 저랑 훈련하면서 강해졌어요.”

“…….”

심우진은 한숨을 쉬었다.

자세한 말은 하지 않고 그렇게만 얘기를 하니 꼭 눈을 감고 울어 대며 떼를 쓰는 아이처럼 보였을 수도 있을 듯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면 소리를 지르세요. 보고 있을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에스퍼님.”

그는 자기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렸다.

활을 움직이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만약 심우진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능력이 발현이 됐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능력을 사용하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왜 S급 에스퍼인지도 이해가 됐다.

그의 바이올린이 연주되기 시작하며 나는 빠르게 몰입되었고 최면에 걸린 것처럼 감정을 조종당했다.

한순간 눈앞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흉측한 괴수가 거대한 문 같은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 안에서 소름 끼치는 파충류가 튀어나왔다.

아직 거리가 있었는데 그것이 쏜살같이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내 속도로 충분히 그것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몸을 날렸고 그것은 나를 놓쳤다.

그런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일어났다.

눈앞에 나타난 것은 허상일 뿐이었고 그것을 밟고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시도해 보았고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러나 그게 허상이라는 것을 알고도 눈에 보이는 대로 반응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무리 그게 허상이라고 생각하며 다르게 반응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반응이라는 것이 이미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심우진이 괴수를 압박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심우진은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내가 자신이 보여 주는 환상을 너무 쉽게 이겨 버린 게 심술이 났는지 갑자기 강도를 더 높이는 듯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일단 한 번 그의 공격이 어떤 패턴으로 이루어지는지 안다면 나는 더 이상 겁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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